여긴 성충 지궁밖에 없는데, 두 사람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면 그곳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염구준은 눈을 빛냈다. 몇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찾아온 기회였다. 덜컹! 앞에 있던 사람이 어느 한 곳을 누르자, 바닥이 들썩이며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지하 입구가 나타났다.“먼저 내려갈 테니, 문 단속하는 거 잊지 마.”앞에 있던 사람이 뒤따라오던 사람에게 말하며 먼저 지하로 내려갔다. “뭐가 그렇게 급해? 가도 뭐 좋은 일이 있다고.”뒤에 있던 사람이 핸드폰을 보며 콧방귀를 뀌고는 천천히 따라갔다. 서서히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염구준은 재빨리 통로가 닫히기 전에 굳은 마음을 먹었다. ‘해보자!’슉!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절반쯤 닫혔을 때, 염구준은 통로 안으로 몸을 날렸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가 한 첫번째 일은 바로 숨을 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선으로 뚫려 있는 길 때문에 장애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염구준은 최대한 인기척을 죽인 채 핸드폰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아무리 통로가 어둡고 인기척을 죽였다고 해도, 이 거리에선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만약 남자가 고개를 뒤로 돌린다면, 즉시 그를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염구준의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남자는 핸드폰에만 집중할 뿐, 전혀 뒤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염구준은 느긋하니 둘의 뒤를 따랐다. “매일같이 저놈을 보러 와야 하다니, 지겹다, 지겨워.”“쉿, 조용히 해. 저 뱀, 영물이야. 사람 말 다 알아듣는다고. 조심하지 않으면 진짜 먹힐 수도 있어.”한 마디씩 주고받는 두 사람, 그 말을 들은 염구준은 가슴이 덜컹했다. 쌍두성사를 뒤로 뱀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귀가 쫑긋하고 섰다. 만약 이들이 말하는 영물 뱀이 염구준이 찾고 있던 쌍두성사라면? 염구준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두운 길을 한
전신 경지 한 명, 무성 경지 두 명, 모두 실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염구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더는 들어가지 마, 들킬 거야.’조금만 앞으로 더 가면 독충들이 진을 치고 있는 한 지점이 나온다. 이 독충들은 사람에게 큰 해가 되진 않지만, 침입자가 있다는 경고를 날리는 역할을 했다.이름하여 비명충, 한번 울기 시작하면 최소 이, 삼 킬로미터 밖까지 들린다. 염구준은 그래서 일부로 산을 오를 때 더 멀리 돌아왔었다.그리고 잠시 뒤, 역시나 위웅위웅 벌레 소리가 산에 울려퍼졌고 순찰대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어.’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염구준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세 침입자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세 사람 때문에 덩달아 그도 난감한 상황에 처해버렸으니. 조용히 침투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모두 무산되었다. “여덟 번째 경계선 쪽에 침입자가 발생했다!”순찰대가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웠던 산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사각지대가 모두 사라졌다. “도망쳐!”들킨 세 사람은 곧바로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단 세 사람만으로 천무산 전체를 상대하긴 무리였기 때문이다. ‘제기랄!’염구준은 속으로 세 사람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세 사람이 도망친 방향이 바로 그가 은신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말 운이 안 따르는 것 같았다. “저기, 또 한 명 더 있다!”밝은 조명이 비춰지자 염구준의 모습도 드러났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산을 내려가야 했다. 아무리 반보천인이라도 이 많은 숫자를 한번엔 상대하기엔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쌍두성사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이상, 지금은 천무산을 전멸시킬 수는 없었다.“형씨, 뒤 좀 부탁해.”세 사람 중 한 명이 염구준을 지나치며 종아리 쪽으로 단검을 던졌다. 그의 움직임을 막아 대신 순찰대의 추격을 늦출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주 비열한 수단이었다.“빌어먹을 자식들!”염구준은 화가
그렇게 전신 경지 강자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셋은 순찰대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산을 내려가기 위해선 지금 이 길을 뚫을 수밖에 없었다. 칼부림과 비명소리가 산에 울려 퍼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 염구준은 산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산 초입구에 있는 바위 옆에 몸을 기댄 채 대기했다. 비록 계획이 그가 의도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정보도 얻었고 나쁘진 않았다. 곧 눈앞에 이어서 검은 그림자와 함께 발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이 가지 않고 이곳에 아직 머물고 있었던 이유였다. 산에 남은 세 명 중 한명인, 전신 경지 강자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처참한 모습으로 내려왔다. 나머지 무성 강자 두 명은 전투 중에 죽은 것 같았다.“도망가지 않고 기다리다니, 제 발로 죽을 길을 택했구나!”전신 경지 강자가 눈이 가득 충혈된 채로 살기를 내뿜으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용케 살아남았네.”염구준이 남자의 공격에 맞서며 다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이전에 받은 공격에 대한 복수였다. 결국 남자는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중상을 입었다.“차라리 죽여라!”주변에 슬금슬금 접근해오는 벌레들을 보며 남자가 겁에 질린 채 외쳤다. 벌레들에게 고통스럽게 먹혀 죽는 것보단, 차라리 한방에 죽는 것을 택한 것이다.“싫은데? 내 손이 더러워지잖아.”이 말을 마지막으로 염구준은 자리를 떠났다. 그가 여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건 언제까지나 좀 전에 받은 기습에 대한 복수이지, 남자의 목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안 돼!”전신 경지 남자의 처절한 외침이 뒤에 울려 퍼졌다. 반면, 염구준은 다시 수안과 헤어졌던 작은 공터로 돌아왔다. “오라버니, 가셨던 일은 잘 해결됐어요?”수안이 돌아온 그를 보며 반갑게 물었다. “응, 순조롭게 끝냈어. 이제 그 할망구가 움직이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돼.”염구준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뒤, 날은 밝아졌지만, 떠올라야 할 태양은 구름에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다. 땅 아래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왔던 벌레는 그저 맛보기였던 듯, 상상 이상으로 많은 벌레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소름 돋는 광경에 말문이 막히고 다시 슬금슬금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두려워하지 마! 겨우 이 정도로 물러서면 안 돼! 다들 공격해!”노파가 손에 든 지팡이로 벌레 떼를 향해 공격을 쏟아 부으며 외쳤다. 그제야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벌레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해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비교적 무력이 약했던 사람을 시작으로 희생자가 늘어갔다. “아악! 살려줘!”“옥패 따위 필요 없어. 여길 탈출하게 해줘!”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만고탈혼 관문에서는 방어가 가장 중요했기에 주변을 돌볼 여지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염구준은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자기 능력이 되지도 않는 일에 뛰어드니 이 꼴이 나지.”그 또한 실력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방어에만 집중했다. 성인이라면 모두 자기 선택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법, 그것이 목숨이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움이 지나간 뒤, 벌레들 대부분 죽었고 나머지는 땅속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첫 관문이 진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전투에 참가한 중 많은 인원이 죽었고,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관문은 넘어가야 할 관문은 열 일곱 개나 되니, 당연했다.“빨리 신속하게 이곳을 통과해야 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쉴 틈이 생겨!”노파가 현장을 지휘하며 말했다. 만약 이 상황에 또다시 벌레가 튀어나온다면 답이 없었다. 사람들도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안 된다는 자각은 하고 있었기에, 옆에 있는 부상자를 부축하며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물론 가벼운 상처가 아닌 움직이기 힘든 중상자와 시체는 자연스레 버려지게 되었
염구준의 말에 좀 전에 소리쳤던 남자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지만, 남의 목숨은 파리처럼 여기는 전형적인 비겁한 인간이었다. 이때, 옆에 있던 노파, 사우가 웃으며 끼어들었다.“젊은이, 준비되려면 시간 더 필요해?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시간을 미룬다고 해서 저기를 올라가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어.”‘뻔뻔하기는!’노파는 상냥하게 말했지만,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알겠어요. 바로 올라갈 게요.”이 말과 함께 염구준은 천천히 오른발을 들어올려 첫 계단을 밟았다. 사실 어젯밤 이곳을 방문하면서 이미 대책을 세워둔 상태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오감 차단!사실 좀 전에 계단 앞에서 시간을 끈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오감을 차단하기 위해선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조용한 환경속에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발소리, 염구준의 오른발이 계단에 닿았다. 모두 숨 쉬는 법도 잊은 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깊이 관찰했다. 속으론 그가 무사히 이 계단의 끝자락까지 도달하길 바라면서.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공하길 바랐지만, 정말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노파는 의아했다. “젊은이, 괜찮은 것 같으니까 앞으로 두어 걸음만 더 가봐.”그렇지만 오감을 모두 차단한 그는 노파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염구준은 말없이 계속해서 스무 계단 정도 더 올랐다. 그리고 뒤 돌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노파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옆에 있던 사람에게 지시했다.“너도 올라가 봐.”“네.”염구준이 무사한 것을 복고 안심한 사람은 망설임 없이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 별일 없는 듯했으나, 세번째 계단을 밟았을 때,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몸 안에 뭔가 들어왔어!”곧이어 급격이 몸이 팽창하기 시작한 남자, 큰 폭
좀 전에 사람이 폭발하는 장면은 그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럼 죽어!”노파가 손을 들어 남자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 즉사했다. “이득을 얻고자 하면서 대가는 치르기 싫어하다니, 어리석구나.”“스승님, 제가 가겠습니다.”이때, 리아가 앞으로 나서 스스로 본보기가 되기를 자청했다. 사우가 동맹의 대표로서 힘을 쓰려면 그에 걸맞은 명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오감을 차단한 뒤,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역시나 노파의 말 대로 오감을 차단한 것이 답이었는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나는 포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돌려 사람들을 향해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봤겠지? 날 믿고 오감을 차단한 뒤, 한 사람씩 계단을 올라!”운 좋게 맞춘 거지만, 노파는 티를 내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역시 어르신이네요. 경험이 많은 분 답게 단번에 이 어려운 관문을 돌파할 방법을 찾으시다니!”“어르신을 저희 동맹 대표로 선출한 게 정말 큰 행운이네요!”“정말 위대하십니다. 앞으로는 전적으로 어르신만 믿고 따르겠습니다!”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아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의 말에 따라 오감을 차단한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순조롭게 성공하진 못했다. 일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을 내뱉으며 포자가 체내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 덩달아 옆에 있던 사람들까지 함께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열대명의 사상자가 나오긴 했지만, 다행히 나머지는 무사히 관문을 통과했다. “오! 다들 잘 올라오셨네요!”먼저 올라가 있던 염구준이 차례로 도착하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어이! 해결책을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해야 할 거 아니야!”이때, 한 남자가 나서며 그에게 따졌다. 이들은 염구준이 일부러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 입을 다문 것이라 생각했다.“멍청한 소리 하지 마시죠.”염구준이 냉랭한 눈빛을 보
물론 염구준은 어젯밤 경험 덕에 이미 모든 관문을 파악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실력을 숨긴 채 어떤 관문에 들어가게 되어도 무사히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노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리 중 아무나 가리키며 지시했다.“거기 너, 네가 한번 올라가 봐!”비록 두번째 관문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노파는 아직 염구준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예!”운 없게 지목된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숲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남자는 돌아올 기색이 없었다. 노파는 또다시 사람을 파견했다. 그런데 반나절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참다 못한 그녀는 열댓 명을 한 번에 들어가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을 삼키기만 할 뿐, 돌려주지 않았다.“스승님, 제가 가볼까요?”리아가 앞으로 나서며 자청했다. 그녀가 노파의 제자이자 오른팔이 될 수 있었던 건 강해서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 항상 알맞게 지지해주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순간에 도와주는 사람만큼 기억에 남는 것도 없으니까.“아니, 됐어. 다 같이 들어가자. 어쩌면 앞서 나간 사람들, 무사히 숲을 지나 다음 관문에 갔을지도 몰라.”노파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귀가 솔깃했다. 노파는 앞서 나간 사람들이 위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욕심에 눈먼 사람들은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자진해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주 교활한 계략이었다.그렇게 노파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모두 발등에 불이 붙은 듯 숲으로 돌진했다. “숲에 들어가면 최대한 내 옆에 붙어있어. 저 숲은 기운이 안 좋아.”염구준이 주의를 주었다. 어젯밤 가장 그의 발목을 가장 오래 잡았던 관문이 이 숲이었기 때문이다.“네, 알겠어요.”수안은 결연한 얼굴로 대답한 뒤, 양 볼을 붉히며 수줍게 염구준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숲은 전갈문 대나무 숲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안개로 가득한 숲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큰 혼란에 빠졌다.“나무가 움직여, 나무가 사람을 먹고 있다고!”“다가오지 마! 다 베어버릴 거야!”“이런 미친놈, 눈깔이 삐었어? 어디를 찌르고 난리야!”적을 보지도 못했는데, 아군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서로 언제 뒤통수 때려도 이상할 것 없는 오합지졸들이 모인 동맹 답게, 단합심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다들 진정해! 우왕좌왕하지 말고 서로 등 맞대고 방어해!”노파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그녀의 해결책은 이 상황에 매우 타당했지만,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사람들의 귀엔 들어가지 않았다. 비명 소리의 빈도를 보아 최소 스무 명은 공격당했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었다. ‘왔어!’염구준의 오른쪽 귀가 움찔거리며 미세한 움직임 소리를 포착했다. 무언가가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본 염구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공격해온 것의 정체는 바로 나무였다! 손처럼 뻗은 나무!하지만 곧 이질적인 기운도 함께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나무 속에 숨어 있는 사람, 역시나 식물이 자기 의지가 있을 리 없었다.‘요상한 짓거리 하기는!’쾅하고 염구준이 주먹을 날리자 나뭇가지와 함께 안에 숨어 있던 사람도 함께 날려버렸다. 이 정도는 그에게 운동거리도 되지 않았다.“오라버니, 천무산은 정말 상상력이 대단한 집단 같아요.”수안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게… 하지만 실력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아. 지금 상황에 전신 경지 강자 몇몇만 보냈어도, 여기 사람 중 절반은 죽였을 텐데 생각보다 부진해.”염구준은 적의 문제점을 단번에 짚어낸 것도 모자라 해결 방안까지 내놓았다. 전신전 전주로서 본능과도 같은 사고였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노파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나무는 천무산 놈들이 위장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전력으로 나무들을 부숴라!”정체를 알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희망에 차기 시작했다. 이제 뭐가 진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
사람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작은 더 빠르게 공격해 몇 분만에 개조 로봇을 부숴버렸다.이런 공격이 몸에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괜찮아?"한편, 설웅은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로 달려갔다."도련님,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설웅을 본 후 감동에 겨워 그를 에워싸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설웅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걸 보니 그들은 최근에 고생한 게 모두 보람차게만 느껴졌다.곧바로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작과 백호를 소개해주었고, 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소개를 다 들은 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염구준 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탐험가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한 뒤 설씨 가문의 주둔지에 머물렀다.진실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설씨 가문의 사람들 중 혹여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가 고자질을 할까봐서였다. 오랫동안 예속되어 왔으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한편, 눈밭에서 풀려난 감독관은 다른 광산까지 미친듯이 달려갔다. "너희 우두머리를 만나야겠으니 빨리 소식을 알려!""백어, 뭘 이렇게 급해해? 도망온 사람처럼 말이야."그를 본 이곳의 감독관이 농담하듯 말했다. 두 광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평소에 서로 왔다갔다하며 잘 알고 지냈다."백씨 가문의 주둔지에 있던 광산이 침략 당해서 보고해야 해.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있지?" 백어는 벌벌 떨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청목 조직은 등급이 삼엄해서 그의 신분으로는 본부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몇몇 감독관들은 입꼬리가 내려가더니 크게 놀라했다.남극 빙원에서 감히 청목 조직과 맞서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직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더더욱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얼른 따라와!" 이곳의 감독관은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이렇게 큰 일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그 후 백어는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는 본부에 보고했
펑! 펑!전신지상 고수의 공격은 강력했다.주작은 마치 썩어빠진 나무를 자르듯 개조 로봇들을 하나씩 물리쳤다.이 실력이라면 고철덩어리도 자를 것 같았다.상대방의 실력을 보고 담당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개조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꺽다리. 저년을 죽여!”꺽다리는 최고 병기였다.“접수.”개조 로봇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주작과 주먹다짐을 벌였다.쿵!쌍방의 실력은 비슷해서 한 번 치고 뒤로 물러났다.전신지상의 개조 로봇이었다.개조 로봇은 잠시 부품들을 재정비하더니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목표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매서운 공격이 다가올 때마다 주작은 피할 수 없어서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한동안 쌍방은 치고 박고 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가서 설웅을 죽여.”담당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개조 로봇은 맷집이 세고 마모에 강하며 보험도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딱 한 가지 단점 융통성이 없었다.탁탁!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개조 로봇들이 설웅을 향해 돌진했다.한 켠에서 주작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그를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부릉부릉!위급한 순간, 마침 스노우모빌의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백호가 현장에 나타났다.그는 스노우모빌을 세우기 전에 몸을 날려 개조 로봇을 폐철로 만들었다.또 전신지상의 고수가 나타나자 담당자는 골치가 아팠다.조직에서 전신지상인 로봇을 한 대만 주어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5분도 안 되어서 개조 로봇들이 모두 부품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이봐. 나랑 좀 놀자.”백호가 담당자에게 말을 건넸다.단진 무성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싸울만했다.“다들 뛰어!”담장자가 말하는 동시에 부하들이 바로 도망쳤다.“컥!”그런데 얼마 뛰지 못하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아찔했다.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가슴에 피가 묻은 손바닥이 뚫고 나온 것이다.백호는 손칼 하나로 그를 황천길로 보냈다.휙!그는 손에 묻은 피를 휙휙 털어내고는 다
이번에 가족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우리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어요.”주작이 보고했다.“알았어. 먼저 상황을 살펴보고 있어. 우리도 곧 도착해.”뒤에서 염구준이 지시를 내리고 위치를 파악했다.10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전속으로 달린다면 금방이면 도착한다.“일단 가서 보자.”주작도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눈 위에 엎드려 포복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기어갔다.그리고 고개를 쏙 내밀어 전방을 살펴봤다.설웅이 말한 주둔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광산 같았다.그가 집이 맞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잘못 왔다고 착각했을 것이다.광활한 광산에서 욕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렸다.퍽!“당장 일어나, 아니면 때려죽인다.”“흑흑. 제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가 버티지 못해요.”한 소녀가 노인을 보호하며 애원했다.바닥에 엎드린 노인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방한복이 피에 흠뻑 젖었다.“차라리 잘 됐지. 버티지 못하면 바로 뒷산에 던져.”현장 감독 담당자가 채찍을 흔들며 쏘아붙였다.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소녀는 흐느끼면서 애원했다.퍽!“하하하. 꺼져!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담당자는 소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웃었다.그래도 소녀는 노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설웅이 이를 갈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소리질렀다.“때리지 마! 나한테 덤벼!”얻어 맞던 소녀는 바로 설웅의 친여동생이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작은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우리 들통났어요.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어떡할까요?”주작이 바로 보고했다.“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지.”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백호 가서 지원해. 나머지는 나한테로 와.”전신지상 고수 두 명이 나서면 충분하니 반천인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염구준은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설씨 가문 개똥에도 쓸모없는 도련
“…”우두머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내고 두 손으로 소중이를 감쌌다. 어엿한 무성지상 고수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안타깝지 그지없었다.그것도 여자에게 홀려서 소중이까지 망가져버렸다.“저년을 쳐라!”나머지 부하들은 그제야 반응하고 우르르 쓸어왔다.방심한 탓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하. 다 쓸어와도 소용없어.”주작은 가볍게 웃음을 치며 전력으로 맞섰다.“젠장, 저년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적어도 전신 경지야. 얼른 튀어!”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주작은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전부 쓰러트렸다.염구준이 한 놈이라도 살려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죽였을 것이다.“말해.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 본거지는 어디야?”주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고 은밀하게 말을 돌렸다.첫 번째 질문은 가짜이고 두 번째가 진짜 목적이었다.“청…”펑펑!잔뜩 겁을 먹은 부하가 말하려고 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미행하던 일행이 전부 죽었다.주작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설웅 곁으로 다가가 전신 영역으로 총알을 받아냈다.이 정도 공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저격수가 1킬로미터 밖에 있습니다.”설웅을 보호해야 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착했어.”마침 염구준이 저격수 뒤에 나타났다.첫 총성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간 것이다.“언제 왔어?”저격수는 뒤에서 말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퍽!염구준은 기운으로 저격수를 밀쳐내고 평가를 내렸다.“방금 도착했지. 사격은 봐줄만했는데 자아 보호 실력은 엉망이네.”“아악!”저격수는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면서 비수를 꺼냈다.“넌 뭐야?”염구준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갔다.“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을 앗아갈 사람이지.”“꿈 깨!”저격수는 비수를 들고 죽을 각오로 공격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그 자리에서
“고객님, 안목이 있으시네. 우리 가게에서 성능이 최고로 좋은 놈이라 1억만 주세요.”사장은 두 손바닥을 비비며 교활하게 웃었다.‘돈에 환장했나.’염구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장이 계속 설명했다.“비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들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운비만 해도 꽤 돈이 들었어요. 우리 집 물건은 이 바닥에서 제일 싼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염구준은 개떡 같은 이유를 듣지 않고 스노우모빌에 올라타 연료 탱크를 점검했다.그리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마디 던졌다.“이체할게요.”휘발유는 그래도 얼지 않는 것으로 사용했다.“네.”거래가 성사되자 사장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은행 계좌를 알려줬다.이것만 팔아도 이번 달은 장사를 접어도 되었다.염구준은 추가로 휘발유 두 통을 샀다.“고객님, 어디 멀리 가십니까?”사장은 염구준이 산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휘발유 두 통에 연료 탱크에 있는 휘발유까지 하면 수백 킬로는 족히 달릴 수 있다.“여행하러 왔으니 멀리는 못 가고 주변만 돌아보려고요.”염구준은 그럴싸하게 대답했다.사장의 손등에 있는 나뭇잎 문신을 보고 이미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남극 빙원에서 청목 조직의 세력은 각 업계로 뻗은 것 같았다.“그렇군요.”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때 이어폰에서 주작의 목소리가 들렸다.“부두 3시 방향 설산 뒤에서 미행자들이 공격할 것 같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잡것들이 고새를 참지 못하고 움직인 것이다.부릉부릉!염구준은 스노우모빌 시동을 걸고 주작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렸다.부두를 나서며 그가 주작에게 지시를 내렸다.“한 명 정도는 살려둬, 물어볼 게 있어.”남은 일행도 스노우모빌을 사고 각자 출발했다.부두 근처에는 워낙 스노우모밀을 대여하는 유람객들이 많아서 이상한 티가 나지 않았다.설산 반대편에서 주작과 설웅은 각자 스노우모빌을 타고 천천히 달렸다.그때 뒤에서 모터가 몇 대 따라오
“알았어. 함께 청목을 처단하자.”“작전에 참여한 걸 환영해. 그럼 너와 청목 사이의 원한과 그놈의 행방을 말해 봐.”염구준이 이어폰을 하나 건넸다.이번 작전에서 조력자 한 명이 늘었다.설웅은 유골을 품에 안고 가족들의 사연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우리 설씨 가문은 적을 피하려고 남극 빙원에 도피했어. 그곳에서 일찍 정착한 편이었어. 빙원에서 생활은 무료했지만 가족들은 서로 아끼고 보살펴서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청목이 나타난 거야. 우리를 자신의 노예로 삼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따르지 않자 바로 주먹을 휘두르더라고. 참지 못한 사람들은 반항하다가 죽고 나머지 가족과 노비들은 끌려가서 생체실험을 당했어. 그놈은 완전히 미친놈이야!”설웅은 서러움에 북받쳐 마지막에 고함을 질렀다.“청목의 전력과 부하들의 실력, 그리고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설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몰라. 아버지는 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지만 한 주먹도 받아내지 못했어.”반천인 경지는 전신 경지 고수를 한 주먹에 죽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전신 경지는 그럴 수 없다.“됐어. 쉬고 있어.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마.”염구준은 본인들 객실로 돌아가 짧게 회의를 열었다.지금 흑풍이 청목과 손을 잡아 반천인 경지 고수가 두 명이나 되어서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그동안 염구준이 옥패의 무술비법을 베껴서 전신전의 부하들에게 보여준 덕에 전체적으로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백호, 주작, 현무는 전신지상 경지에 도달하고 나머지 전왕들은 전신 경지에 도달해 반천인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이어서 며칠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유람선을 내릴 때 설웅은 주작과 한 팀으로 움직이고 나머지 일행은 신분을 감추려고 캐리어를 든 유람객으로 분장했다.주작은 여자라 염구준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일부러 안배한 것이다.“존경하는 유람객들 주의하십시오. 남극 빙원에 도착했으니 여기서 이틀 정착하겠습니다. 이곳의 치안이 복잡하여 가이드가 없거나 강력한 실력이
“깨어났네.”그때 청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방금 그를 구할 때 반항할까 봐 염구준이 손으로 기절시켰다.“윽!”청년은 몸을 비틀며 일어서더니 뒷목을 문지르며 눈을 떴다.“당신들 뭐야?”정신이 들자마자 일행을 본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계했다.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해서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졌다.“널 구한 사람이다.”염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왜 나를 구했어?”“난 청목의 적이니까. 아까 보니까 너도 청목한테 원한이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손을 잡는 게 어때?”“그런 당신은 무슨 원한이 있지?”그 말에 염구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질문이 끊기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다.“알았어. 묻지 않을게.”청년은 흠칫 놀랐다.그가 묻지 않으니 이번에 염구준이 질문했다.“이름이 뭐야?”“설웅이야. 남극 빙원 설씨 가문의 소주다.”설웅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하지만 염구준이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다.“난 청목을 죽이려고 남극에 가는 중이야. 나랑 같이 가지 않겠나?”만약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얘기를 해도 의미가 없었다.“그건…”설웅은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솔직하게 말해서 꿈에서도 청목을 죽이고 싶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염구준의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현실적이지 못해서 허풍이라 여겼다.“참, 아저씨는 어디 있어?”설웅이 흥분하며 물었다.사람은 죽었지만 여태 그를 돌보았으니 제사라도 치러주고 싶었다.“책상 위 함에 있어. 내가 이미 화장하고 유골을 유골함에 넣었어.”염구준이 대답했다.사람도 구했는데 시신을 거두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마워. 이 은혜는 죽지 않는 한 꼭 갚을게.”설웅은 유골함을 끌어안고 슬픈 표정으로 객실에서 나갔다.그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더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이 문을 나서면 더는 널 도와주지 않겠다. 너도 곧 죽음을 당하겠지.”염구준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매니저는 찍 소리도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쳤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 죽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그때 청년이 일어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희들 저주할 거야. 청목 존주도 저주할 것이다.”청목 존주의 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염구준은 가슴이 벌렁거리고 뇌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친구의 친구는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적의 적은 또 말이 달랐다.염구준 일행은 남극 빙원에 있는 청목의 행적을 모르고 있으니 안내자가 있다면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그가 작은 소리로 부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시간 됐다. 죽어!”우두머리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칼을 높이 들었다.바로 그때 모든 전등이 꺼졌다.갑자기 어두워지자 홀에 비명이 쏟아지고 서로 밀치고 도망치느라 난장판이 되었다.“도망쳐! 살인이야!”누가 고함을 지르자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아아악!”여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피바다에 쓰러졌다.그들은 죽을 때까지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몰랐다.옆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보호하느라 정신없어서 누가 죽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염구준 일행은 야간 투시경을 끼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홀에서 나왔다.계획은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백호는 어깨에 청년을 메고 도망쳤다.“CCTV를 피해서 객실로 돌아가자.”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구한 것을 반드시 비밀로 해야 했다.아니면 저들이 쫓아오는 날에 일이 더 귀찮아질 것이다.“네.”백호는 혹시나 들통날까 봐 커다란 캐리어를 찾아 젊은이를 집어넣었다.객실에 돌아온 후, 염구준은 잠든 청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 녀석이 있으면 남극 빙원에서 길을 헤매고 다니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