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다. 땅 아래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왔던 벌레는 그저 맛보기였던 듯, 상상 이상으로 많은 벌레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소름 돋는 광경에 말문이 막히고 다시 슬금슬금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두려워하지 마! 겨우 이 정도로 물러서면 안 돼! 다들 공격해!”노파가 손에 든 지팡이로 벌레 떼를 향해 공격을 쏟아 부으며 외쳤다. 그제야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벌레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해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비교적 무력이 약했던 사람을 시작으로 희생자가 늘어갔다. “아악! 살려줘!”“옥패 따위 필요 없어. 여길 탈출하게 해줘!”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만고탈혼 관문에서는 방어가 가장 중요했기에 주변을 돌볼 여지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염구준은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자기 능력이 되지도 않는 일에 뛰어드니 이 꼴이 나지.”그 또한 실력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방어에만 집중했다. 성인이라면 모두 자기 선택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법, 그것이 목숨이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움이 지나간 뒤, 벌레들 대부분 죽었고 나머지는 땅속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첫 관문이 진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전투에 참가한 중 많은 인원이 죽었고,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관문은 넘어가야 할 관문은 열 일곱 개나 되니, 당연했다.“빨리 신속하게 이곳을 통과해야 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쉴 틈이 생겨!”노파가 현장을 지휘하며 말했다. 만약 이 상황에 또다시 벌레가 튀어나온다면 답이 없었다. 사람들도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안 된다는 자각은 하고 있었기에, 옆에 있는 부상자를 부축하며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물론 가벼운 상처가 아닌 움직이기 힘든 중상자와 시체는 자연스레 버려지게 되었
염구준의 말에 좀 전에 소리쳤던 남자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지만, 남의 목숨은 파리처럼 여기는 전형적인 비겁한 인간이었다. 이때, 옆에 있던 노파, 사우가 웃으며 끼어들었다.“젊은이, 준비되려면 시간 더 필요해?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시간을 미룬다고 해서 저기를 올라가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어.”‘뻔뻔하기는!’노파는 상냥하게 말했지만,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알겠어요. 바로 올라갈 게요.”이 말과 함께 염구준은 천천히 오른발을 들어올려 첫 계단을 밟았다. 사실 어젯밤 이곳을 방문하면서 이미 대책을 세워둔 상태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오감 차단!사실 좀 전에 계단 앞에서 시간을 끈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오감을 차단하기 위해선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조용한 환경속에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발소리, 염구준의 오른발이 계단에 닿았다. 모두 숨 쉬는 법도 잊은 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깊이 관찰했다. 속으론 그가 무사히 이 계단의 끝자락까지 도달하길 바라면서.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공하길 바랐지만, 정말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노파는 의아했다. “젊은이, 괜찮은 것 같으니까 앞으로 두어 걸음만 더 가봐.”그렇지만 오감을 모두 차단한 그는 노파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염구준은 말없이 계속해서 스무 계단 정도 더 올랐다. 그리고 뒤 돌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노파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옆에 있던 사람에게 지시했다.“너도 올라가 봐.”“네.”염구준이 무사한 것을 복고 안심한 사람은 망설임 없이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 별일 없는 듯했으나, 세번째 계단을 밟았을 때,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몸 안에 뭔가 들어왔어!”곧이어 급격이 몸이 팽창하기 시작한 남자, 큰 폭
좀 전에 사람이 폭발하는 장면은 그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럼 죽어!”노파가 손을 들어 남자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 즉사했다. “이득을 얻고자 하면서 대가는 치르기 싫어하다니, 어리석구나.”“스승님, 제가 가겠습니다.”이때, 리아가 앞으로 나서 스스로 본보기가 되기를 자청했다. 사우가 동맹의 대표로서 힘을 쓰려면 그에 걸맞은 명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오감을 차단한 뒤,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역시나 노파의 말 대로 오감을 차단한 것이 답이었는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나는 포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돌려 사람들을 향해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봤겠지? 날 믿고 오감을 차단한 뒤, 한 사람씩 계단을 올라!”운 좋게 맞춘 거지만, 노파는 티를 내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역시 어르신이네요. 경험이 많은 분 답게 단번에 이 어려운 관문을 돌파할 방법을 찾으시다니!”“어르신을 저희 동맹 대표로 선출한 게 정말 큰 행운이네요!”“정말 위대하십니다. 앞으로는 전적으로 어르신만 믿고 따르겠습니다!”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아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의 말에 따라 오감을 차단한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순조롭게 성공하진 못했다. 일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을 내뱉으며 포자가 체내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 덩달아 옆에 있던 사람들까지 함께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열대명의 사상자가 나오긴 했지만, 다행히 나머지는 무사히 관문을 통과했다. “오! 다들 잘 올라오셨네요!”먼저 올라가 있던 염구준이 차례로 도착하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어이! 해결책을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해야 할 거 아니야!”이때, 한 남자가 나서며 그에게 따졌다. 이들은 염구준이 일부러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 입을 다문 것이라 생각했다.“멍청한 소리 하지 마시죠.”염구준이 냉랭한 눈빛을 보
물론 염구준은 어젯밤 경험 덕에 이미 모든 관문을 파악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실력을 숨긴 채 어떤 관문에 들어가게 되어도 무사히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노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리 중 아무나 가리키며 지시했다.“거기 너, 네가 한번 올라가 봐!”비록 두번째 관문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노파는 아직 염구준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예!”운 없게 지목된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숲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남자는 돌아올 기색이 없었다. 노파는 또다시 사람을 파견했다. 그런데 반나절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참다 못한 그녀는 열댓 명을 한 번에 들어가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을 삼키기만 할 뿐, 돌려주지 않았다.“스승님, 제가 가볼까요?”리아가 앞으로 나서며 자청했다. 그녀가 노파의 제자이자 오른팔이 될 수 있었던 건 강해서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 항상 알맞게 지지해주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순간에 도와주는 사람만큼 기억에 남는 것도 없으니까.“아니, 됐어. 다 같이 들어가자. 어쩌면 앞서 나간 사람들, 무사히 숲을 지나 다음 관문에 갔을지도 몰라.”노파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귀가 솔깃했다. 노파는 앞서 나간 사람들이 위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욕심에 눈먼 사람들은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자진해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주 교활한 계략이었다.그렇게 노파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모두 발등에 불이 붙은 듯 숲으로 돌진했다. “숲에 들어가면 최대한 내 옆에 붙어있어. 저 숲은 기운이 안 좋아.”염구준이 주의를 주었다. 어젯밤 가장 그의 발목을 가장 오래 잡았던 관문이 이 숲이었기 때문이다.“네, 알겠어요.”수안은 결연한 얼굴로 대답한 뒤, 양 볼을 붉히며 수줍게 염구준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숲은 전갈문 대나무 숲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안개로 가득한 숲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큰 혼란에 빠졌다.“나무가 움직여, 나무가 사람을 먹고 있다고!”“다가오지 마! 다 베어버릴 거야!”“이런 미친놈, 눈깔이 삐었어? 어디를 찌르고 난리야!”적을 보지도 못했는데, 아군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서로 언제 뒤통수 때려도 이상할 것 없는 오합지졸들이 모인 동맹 답게, 단합심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다들 진정해! 우왕좌왕하지 말고 서로 등 맞대고 방어해!”노파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그녀의 해결책은 이 상황에 매우 타당했지만,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사람들의 귀엔 들어가지 않았다. 비명 소리의 빈도를 보아 최소 스무 명은 공격당했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었다. ‘왔어!’염구준의 오른쪽 귀가 움찔거리며 미세한 움직임 소리를 포착했다. 무언가가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본 염구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공격해온 것의 정체는 바로 나무였다! 손처럼 뻗은 나무!하지만 곧 이질적인 기운도 함께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나무 속에 숨어 있는 사람, 역시나 식물이 자기 의지가 있을 리 없었다.‘요상한 짓거리 하기는!’쾅하고 염구준이 주먹을 날리자 나뭇가지와 함께 안에 숨어 있던 사람도 함께 날려버렸다. 이 정도는 그에게 운동거리도 되지 않았다.“오라버니, 천무산은 정말 상상력이 대단한 집단 같아요.”수안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게… 하지만 실력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아. 지금 상황에 전신 경지 강자 몇몇만 보냈어도, 여기 사람 중 절반은 죽였을 텐데 생각보다 부진해.”염구준은 적의 문제점을 단번에 짚어낸 것도 모자라 해결 방안까지 내놓았다. 전신전 전주로서 본능과도 같은 사고였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노파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나무는 천무산 놈들이 위장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전력으로 나무들을 부숴라!”정체를 알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희망에 차기 시작했다. 이제 뭐가 진
낯익은 존재의 정체는 바로 크롱이었다. 두번째 관문을 통과한 뒤, 곧바로 염구준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남자! 미로를 벗어나다니, 어쩌면 남자 또한 실력을 숨기고 잠입한 고수였던 것일까? 염구준은 의아했다.“너!”크롱이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곤 손가락질했다. 운 좋게 길을 헤매다가 숲을 빠져나왔더니, 외나무다리에 원수를 만나고 말았다.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었다.“그래, 나야. 다시 만났네.”염구준이 웃으며 대답했다.“알아서 목을 내주러 오다니, 정말 하늘이 내 편인가 보구나.”크롱이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그는 반드시 염구준을 죽이고 아까 받은 치욕을 씻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늘이 네 편이라고? 아니, 넌 하늘의 저주를 받은 것 같은데?”염구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흥, 죽어라! 네가 죽으면 네 뒤에 있는 여자는 내가 가지고 노마!”크롱이 음흉하게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승리와 그 뒤에 따라올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악!”이때, 검은 그림자가 번뜩였다. 동시에 크롱은 가슴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무기력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공격이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또 한 명이 염구준의 손에 삶을 마감했다. “오라버니, 저쪽 전투 끝나면 저희 다시 저 무리로 돌아가나요?”수안이 조금씩 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숲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이젠 그럴 필요 없어. 우린 다른 길로 산을 오를 거야.”염구준이 손을 들어 숲 밖, 인적이 드문 한 공간을 가리키며 답했다.평소 천무산은 방어가 매우 철저해 쉽게 뚫을 수 없지만, 오늘은 노파의 일당이 시선을 끌어주고 있어 구멍이 생겼다.그렇게 두 사람은 신속하게 천무산 정상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이 나 있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이라면 거닐 수 없는 곳이었을 테지만, 두 사람 모두 무공을 익힌 강자였다. 가시밭길이라도 평지처럼 달릴 수 있었다. “후….”그런데 이때,
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두르며 자신을 공격해 오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렸다. 주먹 한 대에 한 명, 그의 공격을 받은 사람 모두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 염구준은 전투를 치르면서 계속해서 정상을 향해 움직이며 포위당하는 것을 방지했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그의 능력은 더 빛났다.“저 자는 도대체 뭐지?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가 있지?”천무산 주술사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아군의 사상자는 점점 늘어갔지만, 상대는 작은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무적이라 생각했던 모든 전술이 깨진 순간이었다.“덤벼!”염구준이 적을 도발하며 외쳤다. 전투가 치열 해질수록 염구준은 더욱 불타올랐다. 그러나 천무산 사람들은 이미 겁에 질려 그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염구준은 이들에게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 그 자체였다.“으악!”이때, 수안이 피를 토하며 그의 방향으로 날아왔다. 염구준은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그녀를 받아낸 다음, 공격한 대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수안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아, 꽤나 만만치 않은 상대 같았다. “염구준, 네가 여기에 나타날 줄이야.”그는 천무산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대장로이자, 전신 경지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강자였다. “당황할 것 없어. 아직 놀랄 일 더 남았으니까.”염구준이 수안을 옆으로 내려놓으며 반보천인의 힘을 끌어올렸다. “역시 반보천인이었구나!”자신의 추측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대장로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도달하기 그렇게 어렵다는 반보천인의 경지, 지금까지 그가 본 반보천인은 산주 현충이 유일했는데, 오늘 한 명이 더해졌다.“순식간에 죽고 싶지 않으면, 힘 아끼지 말고 마지막 수단까지 사용해야 할 거야.”주술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비법, 후유증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사용하는 순간 순식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게 되는 기술! 염구준은 그걸 말하고 있었다.“독충!”대장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염구준의 말 대로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
천무산 꼭대기엔 인공적으로 평평하게 다듬어놓은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 중앙, 거대한 둥근 제단이 있었는데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비한 무의가 그려져 있었다. 제단 주변에 약 20명 정도 되는 강력한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바로 천무산을 대표하는 전력들이었다. 염구준은 조금 떨어진 경사진 곳에서 몸을 숨긴 채 제단 위에 올려져 있는 쌍두성사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쌍두성사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반보천인의 경지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이 강력한 존재를 키워내기 위해 천무산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을 지 상상이 갔다. ‘그런데 왜 쌍두성사를 제단 위에 올려 놨지?’염구준은 이제 막 도착한 터라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제단 위, 쌍두성사가 꼬리로 거대한 거미를 움켜잡은 채 와그작와그작 씹어 댔다.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절대로 약할 리 없는 거대 거미가 전혀 반항하지 않고 뱀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거미와 비슷한 크기의 독충들이 줄줄이 먹히는 걸 기다리 듯, 바닥에 조용히 붙어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쌍두성사가 몸을 뒤틀더니, 하늘을 향해 입을 쩌억하고 벌렸다. 드디어 반보천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좋아!’염구준은 속으로 기뻐하며 눈을 빛냈다. 반보천인의 경지에 도달한 쌍두성사의 영단을 얻게 된다면 딸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딸이 더 이상 고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오라버니, 이제 움직일까요?”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수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염구준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쌍두성사를 찾길 원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염구준은 이상하게도 망설여졌다. 상황을 보니, 비록 쌍두성사가 반보천인의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저 독충들을 모두 섭취해야 상황이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쌍두성사는 그와 맞먹는 힘을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강한 상대와 맞붙을 수 있
”여기 사람 꽤 많네. 아가씨 예쁘게 생겼다.두 남자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척후야.”염구준은 기운으로 그들의 신분을 추측했다.여기 도착했다는 것은 머지않아 은세가문의 대부대가 곧 도착한다는 것을 설명했다.두 전신경 고수는 염구준 일행을 완전히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거록이 키운 개는 정말 약해. 뭘 이렇게 쉽게 죽냐?”“너희들이 죽였어?”정말 안하무인이었다. 전신 경지 정도면 어디를 가도 중견 고수에 속하니 다들 이렇게 거만했다.“잡것들은 내가 처리했어. 복수하러 온 건가?”염구준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되물었다.“복수? 하하하. 거록의 부하들은 원래 쓰레기야. 우리가 나서서 복수할 가치도 없어.”한 고수가 미친듯이 웃으면서 거록의 부하가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염구준은 왠지 눈에 거슬렸다.“그래? 그럼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이유가 뭐야?”그런 성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당연히 너를 제압하러 왔지. 여기 물건은 외부인이 넘볼 것이 아니야.”상대방이 직설적으로 말했다.“나 여기 있어. 능력이 있으면 와서 제압해.”염구준은 쓰레기를 보듯 경멸하면서 보았다.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은 전신 경지 고수인데 이런 태도에 참을 수가 없었다.스스슥!두 고수는 갑자기 양쪽으로 흩어지더니 염구준을 잡으려고 협공했다.싸우기 전부터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마.”염구준은 제자리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워낙 실력 차이가 커서 아무리 전술을 사용해도 소용없었다.이연 일행은 두 전신 고수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믿기지 않아 계속 눈을 비볐다.그들 눈에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만 보였다.‘왔다.’염구준은 두 고수가 빠르게 다가오자 기운을 증폭시켰다.“우리를 우습게 봤어?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지.”두 전신 고수가 돌진했다.그들이 다가올 때 염구준이 순식간에 공격 범위에 들어갔다.상대방은 양쪽에서 손발이 척척 잘 맞았다.탁!그때 염구준이 양손을 들어 두 사람의 목을 조르
이연은 너무 무서웠다.그래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삽을 들고 그쪽으로 다가갔다.어쨌든 두 사람은 동아리 멤버이니 모른 척할 수 없었다.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모닥불 옆에 있었다.“가지 마. 내일 내가 처리할게. 화장을 하면 유골을 가져가.”염구준이 나서서 말렸다.이 밤중에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면 또 일을 만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연은 친분을 봐서라도 무조건 청해에 데리고 갈 것이다.“오빠, 정말 감사해요. 제가 동아리와 고인의 부모님 대신 인사를 드릴게요.”이연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이런 곳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유골이라도 가져가서 고이 묻어준다면 본인들도 안식할 수 있을 것이다.“아니야. 아직 처리할 것이 있으니까 너희들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염구준이 괜찮다 말하고는 한마디 주의를 주었다.물론, 이런 일을 겪고도 경고를 무시한다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피 비린내 사건을 겪은 후, 몇몇 사람들은 악몽을 꿀까 봐 잠에 들지 못했다.염구준은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다 곤히 잠들었다.진씨 저택에는 여전히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구체적으로 어느 곳에 숨었는지 모르겠지만 염구준을 건드리지 않고 먼 곳에서 지켜보기만 했다.방금 염구준이 발산한 기운은 너무 강력해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달은 밝게 비추고 각종 벌레 소리와 작은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끊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온했다.실은 잠복한 세력들이 몰래 움직이고 있었다.염구준이 이곳에 오면서 그들의 경각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여기 잠복해 있던 무술인들은 이미 여기 소식을 밖으로 내보냈다.한편, 충격을 받은 은세가문에서 고수들을 진씨 저택에 파견했다.솔직히 염구준도 눈치를 챘지만 귀찮아서 신경 쓰지 않은 것뿐이었다.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도 대응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그렇게 날이 밝아질 때까지 잠을 잤다.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서 따뜻한 햇살이 모두에게 비췄
염구준이 공포스러운 기운을 뿜자 다들 기운에 억눌려 숨이 턱 막혔다.“선배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희 다 말할게요.”“거록 존주님은 저희 주인입니다. 그분의 체면을 봐서 풀어주세요.”일행은 식은땀을 흘리며 소속을 밝혔다.20년이 넘어도 거록 존주는 이곳에 사람을 파견하면서 보물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었다.“거록의 개라면 죽어야겠다.”염구준은 손에 힘을 주면서 손에 잡힌 놈을 가볍게 죽였다.“도망쳐!”살의를 느낀 나머지 그림자는 소리를 지르며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해서 도망쳐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염구준이다.그 정도 실력으로 도망쳐도 소용없었다.얼마지나지 않아 염구준은 한 명씩 쫓아가 전부 살해했다.그리고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그에게 있어 애송이 몇 사람을 해결했을 뿐이었다.“귀신은 다 물리쳤어. 그 정도로 무서웠어?”“악!!”모닥불에 모여 있던 이연 일행은 염구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방금 싸우는 장면을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염구준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똑똑히 봤었다.가면을 쓰고 귀신인 척하는 나쁜 놈들도 무서웠지만 그들을 과감하게 살해한 염구준은 더 무서웠다.이토록 넓은 숲에서 사람이 죽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까지 죽일까 봐 너무 두려웠다.“구… 구준 오빠, 안 다쳤어요?”이연은 생각보다 차분했다.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괜찮아. 저놈들 실력으로 날 해치지 못해.”확실히 염구준의 얼굴과 옷은 다친 곳이 없이 멀쩡했다.거록의 개들을 처리하는 일은 원래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하… 하지만 사람을 죽였잖아요. 감옥에 가면 어떡해요.”이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럽게 말했다.“괜찮아. 내 세상은 너희들과 달라.”하지만 염구준은 손을 휘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강호의 분쟁은 평범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누구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지금은 속으로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 은세가문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염구준이 해결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아마도 더 있는 것 같았다.그들은 이곳을 주시하면서 들어온 사람들은 절대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전에 그림을 파는 사람이 말하길,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나가지 못했다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그럼 여기서 죽기를 기다려요?”대영이 고함을 지르며 가방을 메더니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오빠, 난 오빠를 믿어요.”이연은 모닥불 옆으로 다시 돌아갔다.남은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지금 상황에서 염구준을 믿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혼자 걸어가던 대영은 누구도 따라오지 않자 다시 돌아왔다.워낙 겁이 많아서 혼자 야밤에 숲을 빠져나갈 용기가 없었다.“왜 돌아왔어? 간다며?”염구준이 비웃었다.대영은 살기 위해서 옆에서 뭐라고 하든 꾹 참고 있었다.따르릉!“아아악!”그때 염구준의 휴대폰이 울렸다.바짝 긴장해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위성 전화였다.안목이 있는 사람은 염구준의 손에 있는 통신설비가 무엇인지 알아챘다.통화 버튼을 누르자 초상비의 목소리가 들렸다.이미 쇄룡산의 외곽에 도착했다고 보고했다.염구준은 위치추적기를 열면서 몇 마디 당부했다.“내일 아침에 도착할 거 같아.”상대방의 이동속도라면 내일 저녁에 도착할 것 같았다.통화를 마친 염구준은 위성전화를 챙겼다.스스슥!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오고 있었다.드디어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이었다.“나 봤어. 바로 저기 있어. 너무 무서워.”검은 그림자를 본 사람이 눈을 질끈 감으면서 몸을 웅크렸다.“눈을 감으면 안 무서워?”염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밝은 모닥불 근처에 있어서 본인이 눈을 감아도 다른 사람 눈에 잘 띄었다.“얍!”그때 기합소리가 들리며 그림자가 공격해 왔다.상대방이 접근할 때 달빛을 빌어 얼굴을 확인했는데 푸른색 피부에 송곳니가 튀어나온 귀신이었다.탁!염구준은 바
유령 고택을 찾은 모험 동아리는 너무 기뻤다.그들은 모닥불을 피워 주변에 둘러앉았다.지금 물도 있고 건조 식품도 있고 쉴 곳도 찾아서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반나절 전에 마실 물도 없어서 걸걸거렸던 사람들 같지 않았다.그들은 웃고 떠들며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염구준은 옆에서 이곳의 보물에 대해 생각했다.이렇게 많은 은세가문도 찾지 못한 물건을 혼자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가자. 자극적인 시간이 왔어.”그때 세 사람이 장비를 들고 고택 깊숙이 들어갈 준비를 했다.염구준이 힐끗 보았다.바로 귀신 사진을 찍겠다고 말했던 일행이었다.겁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염구준이 한마디 경고했다.“이곳은 안전하지 못해. 그러니까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괜찮아요. 금방 올게요.”세 사람은 대답하고 황급히 떠났다.그들은 여기서 사진 찍은 것을 팔기 위해서 온 것이다.귀신은 보지 못해도 공포스러운 장면만 찍어도 꽤 돈을 벌 수 있었다.어차피 목숨은 자기 것이니 이렇게 말한 이상 염구준도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세 사람이 떠나자 모닥불 주변이 조용해졌다.그때 오설희가 애교를 부리면서 말했다.“대영 오빠, 나 불편해. 나랑 화장실 가자.”“가자. 얼마나 위험하다고. 어디 한번 보자.”대영은 염구준의 눈치를 힐끗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말 속에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염구준은 이번에 멍청한 녀석에게 따지지 않았다.한 번에 다섯 명이 가자 더는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염구준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생각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았다.30분 뒤, 다섯 명은 돌아오지 않고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렸다.“살려줘! 귀신이야!”비명소리와 동시에 담벼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사방에서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모닥불에 모여 있던 일행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각성을 높였다.비명소리에 놀란 것이다.게다가 지금은 바람에 풀들이 흔들거리고 있어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정말 못 말리는 녀석들이었다.“귀신이 어디 있다고 호들갑이야.”
“말 조심하지 않으면 이를 전부 뽑아버린다.”“미친… 다시 안 그럴게요.”깜짝 놀란 대영은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뒷담화를 하다가 들키고 뺨을 맞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염구준은 다시 움직여서 제자리에 사라졌다.이 구역 내에서 그림자만 스쳐 지나며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몇 킬로미터 범위라도 시간이 필요했다.남은 사람들은 더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염구준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정말 식겁했었다.탐색은 계속 진행되었다.염구준은 속도를 높여 최대한 빨리 찾아내려고 노력했다.‘이 구역의 식물에 가려졌을 수도 있어.’하늘에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육지에는 소형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염구준이 스치는 곳마다 깜짝 놀란 동물들이 사방으로 도망쳤다.순식간에 숲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한편, 숲 어느 곳에서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깜짝 놀랐다.“큰 짐승인가? 먼저 철수할까?”“설마. 여기 며칠 동안 잠복해 있어도 그런 짐승은 보지 못했어.”두 사람은 이 구역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진씨 저택의 보물은 큰 비밀이 아니기에 일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때문에 이 보물을 노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아니야, 사람 같은데. 속도가 엄청 빨라.”한 남자가 경악했다.“두 분, 거기서 뭘 보고 있지?”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 뒤에 염구준이 나타났다.그 실력으로 미행하다니,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참 궁금했다.“저놈을 죽이자.”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마주치더니 기운을 끌어올려서 염구준을 포위하여 공격했다.2 대 1이라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쿵!하지만 염구준에게 접근하기 전에 중상을 입고 뒤로 튕겨 나갔다.두 사람이라도 무술 실력이 형편없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냈어?”염구준이 싸늘하게 물었다.여기에 있다는 것은 진씨 가문의 보물을 노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하지만 어느 쪽 세력인지 알 수 없었다.“우리를 보내는 게 좋을 거야. 우리 배후는 네가 건드릴 만한 사람이 아니야.”
시간이 흘러, 다들 충분히 놀았는지 물을 챙기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숲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빨리 도망쳐. 말벌이 오고 있어!”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계곡에 몇 사람이 사라진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생겼다고 판단했다.웡웡!멀리서 곤충의 날개 짓 소리가 들리더니 말벌 무리가 대영 일행을 쫓고 있었다.저것은 사람을 죽이는 벌이었다.두 번만 찔러도 바로 쇼크사로 사망할 수 있었다.대체 어떤 자식이 건드렸는지 두통이 밀려왔다.대영 일행은 계곡 옆에 뛰어오더니 바로 물속에 들어가 숨었다.나머지 사람들도 말벌의 공격을 피해 물속으로 들어갔다.목표가 사라지자 말벌은 이번에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꺼져!”그는 거대한 기운으로 말벌을 쓸어버리며 뒤로 물리쳤다.강적을 만난 말벌은 재빨리 날개를 저으며 멀리 도망쳤다.말벌도 억울하게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니 불로 태우지 않은 것이다.“푸웁!”그제야 다들 참지 못하고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주변에 말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말벌은 왜 건드렸어?”염구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대영이 꿀벌을 발견했다면서 같이 꿀 먹으러 가자고 했어요.”한 남자가 벌에 쏘였는지 퉁퉁 부은 볼을 감싸며 어눌한 소리로 말했다.벌과 말벌도 구분 못하면서 꿀을 먹겠다니 용감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만약 염구준이 없었다면 전부 여기서 죽었을 것이다.촤아악!염구준이 손을 뻗어 대영의 뺨을 쳐서 물에 빠트렸다.이번에야말로 대영은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게다가 염구준이 무서워서 감히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지금부터 누가 사고 치면 스스로 책임져. 난 다시는 도와주지 않아.”염구준이 주의를 주고 목적지로 걸어갔다.멍청한 팀원을 이끌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짜증이 났다.다들 입을 꾹 다물고 빠른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가는 길에 누구도 사고 치지 않으니 이동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해가 지기 전에 진씨 저택이
일행은 짐을 챙기고 염구준의 안내에 따라 길을 떠났다.모두 평범한 사람이기에 움직이는 속도가 많이 느리지만 그래도 방향은 정확했다.솔직히 염구준도 그렇게 급하지 않았다.이 속도로 걷는다면 날이 어둡기 전에는 도착할 것이다.그리고 내일이 음력으로 보름이다.지금 그가 팀의 핵심 인물이니 누구나 다가가서 말을 걸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어쩔 수 없이 이연에게 다가가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모험 동아리들은 하나 같이 대단한 수다쟁이들이었다.마실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도 쉬지 않고 계속 말했다.“그거 알아? 유령 저택에 이상한 물건들이 있어서 엄청 무섭대.”“무섭게 그런 말 하지 마. 다 헛소문이야.”“알게 뭐야. 나중에 만나면 바로 눈을 감고 사진을 찍어야지. 돌아가서 비싼 값에 팔 수 있어.”그들 모두 진씨 저택으로 가려고 했다.말은 모험이지만 실은 각자 목적이 달랐다.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는 본인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오빠,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요?”이연이 염구준의 등에 대고 물었다.“없어. 어쨌든 난 보지 못했어.”염구준은 대답하고도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주제가 너무 유치해서 대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흥, 세상에 못 봤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지.”대영이 시큰둥하게 말하며 끼어들었다.그 말에 염구준은 기분이 잡쳐 힐끗 노려봤다.“네 부모님은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끼어들라고 가르쳤어?”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보지 못한 물건은 정말 많지 않았다.“아니.”대영은 욕이 튀어나왔다.하지만 방금 일을 생각하고 바로 입을 닫아버렸다.지금 어리석게 굴면 바로 깊은 산속에 묻힐 것이다.그가 염구준을 공격한 것은 트집잡으려는 본능이 발작했기 때문이다.“물 소리가 들리네.”“오빠, 무슨 말이에요?”이연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저기 계곡이 있는 거 같아. 그것도 작지 않아.”염구준은 오른쪽 방향을 가리켰다.바로 그들이 가는 방향이었다.“계곡, 물이다!”그 말에
“흥, 안 주면 내가 알아서 가지면 되지. 설마 때리기라도 할 거야?”대영은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일행은 대영의 성격을 감당하지 못했다.“경고하는데,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야.”염구준은 힐끗 보며 나지막하게 경고했다.여기 음식들은 염구준의 것이니 누구에게 주든 안 주든 본인 마음이었다.하지만 대영은 건방지게 손을 내밀어 염구준의 가방에 손을 가져갔다.탁!염구준이 마른 나뭇가지를 들어 가볍게 대영의 손등에 던졌다.“아야!”대영은 재빨리 손을 거두며 옆으로 털었지만 손등이 이미 벌겋게 부어 있었다.염구준이 힘을 주지 않아서 다행이지, 아니면 손등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대영 오빠, 괜찮아?”그때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바로 대영의 여자친구 오설희였다.방금 대영이 생수병을 빼앗을 때 속으로 자기 몫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기뻐했었다.“날 때렸어? 밖에 나가면 가만두지 않겠어.”대영이 화를 내며 겁을 주었다.“맞아요. 대영이 어쩌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어요? 그리고 식재료도 많으면서 당연히 우리한테 나눠야 하지 않나요?”오설희가 나서서 맞장구를 쳤지만 멍청하게 염구준의 탓처럼 얼토당토않는 소리를 했다.이런 사람들과 도리를 따져도 알아듣지 못하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었다.염구준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싸늘하게 노려봤다.눈빛에서 살기가 감돌았다.“이런 숲에서 두 명이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그 말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봤다.지금 염구준의 눈빛은 너무 싸늘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구준 오빠, 그러지 마세요. 다들 내 친구인데 물이라도 주면 안 돼요?”이연은 같이 온 일행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사정했다.탈수가 심하면 죽을지도 모른다.염구준은 그들을 둘러보았다.젊은 사람들이 입술이 갈라져서 왠지 마음이 측은했다.“알았어. 연이 체면을 봐서 한 사람당 한 병씩 마셔.”그러자 다들 기뻐하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감사합니다.”“좋은 사람일 줄 알았어요.”일행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