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두 사람은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현장엔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노파마저 패배한 마당에 그 누구도 앞을 가로막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추적해. 인원이 많으니, 마을 전체를 수색하는 것 따위 어렵지 않을 거야.”그러자 즉시 모두 사방으로 흩어지며 두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날 밤, 무산채는 소란스러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반면, 염구준은 마을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정말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놈들이군. 별 볼일 없는 것들이 옥패를 노리다니.”“오라버니, 그 옥패 그렇게 대단한가요?”수안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물었다. “자, 여기. 직접 보던가.”염구준이 품에서 옥패를 꺼내 수안에게 건네주었다. 청용, 백호, 주작, 현무, 모두 옥패를 봤지만, 각자 받아들인 것은 모두 달랐다. 결국 제대로 옥패의 능력을 이어받으려면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야 했다. 이건 마치 수학과도 같았다. 어떤 이들은 이론 한 번에 바로 이해하지만, 어떤 이들은 여러 번 봐도 풀지 못하는 것처럼.잠시 후, 수안이 옥패를 돌려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안에 들어있는 것은 기억했지만, 이해하려면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아, 맞다. 그런데 아까 왜 그 할망구를 죽이지 않았어요?”노파와의 전투에서 염구준은 압도적인 실력차이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충분히 상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 쓸데가 있어서, 일단 내버려 두려고.”그에게 패배한 이상, 노파는 반드시 동맹을 맺어 천무산을 공격하려 할 것이다. 염구준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알아서 이들이 파멸하는 모습을 지켜볼 생각이었다.“아, 손 안 쓰고 코 풀기?”수안이 깨달은 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들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을 것 같으니,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지.”거저 생긴 인력, 이용할 수 있으면 기꺼이 이용해줘야지!“수안아, 넌 여기 남아 있어. 난 잠깐 산 좀 둘러보고 올게.”
여긴 성충 지궁밖에 없는데, 두 사람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면 그곳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염구준은 눈을 빛냈다. 몇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찾아온 기회였다. 덜컹! 앞에 있던 사람이 어느 한 곳을 누르자, 바닥이 들썩이며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지하 입구가 나타났다.“먼저 내려갈 테니, 문 단속하는 거 잊지 마.”앞에 있던 사람이 뒤따라오던 사람에게 말하며 먼저 지하로 내려갔다. “뭐가 그렇게 급해? 가도 뭐 좋은 일이 있다고.”뒤에 있던 사람이 핸드폰을 보며 콧방귀를 뀌고는 천천히 따라갔다. 서서히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염구준은 재빨리 통로가 닫히기 전에 굳은 마음을 먹었다. ‘해보자!’슉!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절반쯤 닫혔을 때, 염구준은 통로 안으로 몸을 날렸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가 한 첫번째 일은 바로 숨을 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선으로 뚫려 있는 길 때문에 장애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염구준은 최대한 인기척을 죽인 채 핸드폰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아무리 통로가 어둡고 인기척을 죽였다고 해도, 이 거리에선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만약 남자가 고개를 뒤로 돌린다면, 즉시 그를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염구준의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남자는 핸드폰에만 집중할 뿐, 전혀 뒤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염구준은 느긋하니 둘의 뒤를 따랐다. “매일같이 저놈을 보러 와야 하다니, 지겹다, 지겨워.”“쉿, 조용히 해. 저 뱀, 영물이야. 사람 말 다 알아듣는다고. 조심하지 않으면 진짜 먹힐 수도 있어.”한 마디씩 주고받는 두 사람, 그 말을 들은 염구준은 가슴이 덜컹했다. 쌍두성사를 뒤로 뱀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귀가 쫑긋하고 섰다. 만약 이들이 말하는 영물 뱀이 염구준이 찾고 있던 쌍두성사라면? 염구준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두운 길을 한
전신 경지 한 명, 무성 경지 두 명, 모두 실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염구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더는 들어가지 마, 들킬 거야.’조금만 앞으로 더 가면 독충들이 진을 치고 있는 한 지점이 나온다. 이 독충들은 사람에게 큰 해가 되진 않지만, 침입자가 있다는 경고를 날리는 역할을 했다.이름하여 비명충, 한번 울기 시작하면 최소 이, 삼 킬로미터 밖까지 들린다. 염구준은 그래서 일부로 산을 오를 때 더 멀리 돌아왔었다.그리고 잠시 뒤, 역시나 위웅위웅 벌레 소리가 산에 울려퍼졌고 순찰대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어.’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염구준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세 침입자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세 사람 때문에 덩달아 그도 난감한 상황에 처해버렸으니. 조용히 침투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모두 무산되었다. “여덟 번째 경계선 쪽에 침입자가 발생했다!”순찰대가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웠던 산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사각지대가 모두 사라졌다. “도망쳐!”들킨 세 사람은 곧바로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단 세 사람만으로 천무산 전체를 상대하긴 무리였기 때문이다. ‘제기랄!’염구준은 속으로 세 사람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세 사람이 도망친 방향이 바로 그가 은신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말 운이 안 따르는 것 같았다. “저기, 또 한 명 더 있다!”밝은 조명이 비춰지자 염구준의 모습도 드러났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산을 내려가야 했다. 아무리 반보천인이라도 이 많은 숫자를 한번엔 상대하기엔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쌍두성사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이상, 지금은 천무산을 전멸시킬 수는 없었다.“형씨, 뒤 좀 부탁해.”세 사람 중 한 명이 염구준을 지나치며 종아리 쪽으로 단검을 던졌다. 그의 움직임을 막아 대신 순찰대의 추격을 늦출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주 비열한 수단이었다.“빌어먹을 자식들!”염구준은 화가
그렇게 전신 경지 강자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셋은 순찰대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산을 내려가기 위해선 지금 이 길을 뚫을 수밖에 없었다. 칼부림과 비명소리가 산에 울려 퍼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 염구준은 산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산 초입구에 있는 바위 옆에 몸을 기댄 채 대기했다. 비록 계획이 그가 의도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정보도 얻었고 나쁘진 않았다. 곧 눈앞에 이어서 검은 그림자와 함께 발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이 가지 않고 이곳에 아직 머물고 있었던 이유였다. 산에 남은 세 명 중 한명인, 전신 경지 강자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처참한 모습으로 내려왔다. 나머지 무성 강자 두 명은 전투 중에 죽은 것 같았다.“도망가지 않고 기다리다니, 제 발로 죽을 길을 택했구나!”전신 경지 강자가 눈이 가득 충혈된 채로 살기를 내뿜으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용케 살아남았네.”염구준이 남자의 공격에 맞서며 다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이전에 받은 공격에 대한 복수였다. 결국 남자는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중상을 입었다.“차라리 죽여라!”주변에 슬금슬금 접근해오는 벌레들을 보며 남자가 겁에 질린 채 외쳤다. 벌레들에게 고통스럽게 먹혀 죽는 것보단, 차라리 한방에 죽는 것을 택한 것이다.“싫은데? 내 손이 더러워지잖아.”이 말을 마지막으로 염구준은 자리를 떠났다. 그가 여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건 언제까지나 좀 전에 받은 기습에 대한 복수이지, 남자의 목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안 돼!”전신 경지 남자의 처절한 외침이 뒤에 울려 퍼졌다. 반면, 염구준은 다시 수안과 헤어졌던 작은 공터로 돌아왔다. “오라버니, 가셨던 일은 잘 해결됐어요?”수안이 돌아온 그를 보며 반갑게 물었다. “응, 순조롭게 끝냈어. 이제 그 할망구가 움직이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돼.”염구준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뒤, 날은 밝아졌지만, 떠올라야 할 태양은 구름에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다. 땅 아래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왔던 벌레는 그저 맛보기였던 듯, 상상 이상으로 많은 벌레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소름 돋는 광경에 말문이 막히고 다시 슬금슬금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두려워하지 마! 겨우 이 정도로 물러서면 안 돼! 다들 공격해!”노파가 손에 든 지팡이로 벌레 떼를 향해 공격을 쏟아 부으며 외쳤다. 그제야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벌레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해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비교적 무력이 약했던 사람을 시작으로 희생자가 늘어갔다. “아악! 살려줘!”“옥패 따위 필요 없어. 여길 탈출하게 해줘!”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만고탈혼 관문에서는 방어가 가장 중요했기에 주변을 돌볼 여지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염구준은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자기 능력이 되지도 않는 일에 뛰어드니 이 꼴이 나지.”그 또한 실력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방어에만 집중했다. 성인이라면 모두 자기 선택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법, 그것이 목숨이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움이 지나간 뒤, 벌레들 대부분 죽었고 나머지는 땅속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첫 관문이 진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전투에 참가한 중 많은 인원이 죽었고,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관문은 넘어가야 할 관문은 열 일곱 개나 되니, 당연했다.“빨리 신속하게 이곳을 통과해야 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쉴 틈이 생겨!”노파가 현장을 지휘하며 말했다. 만약 이 상황에 또다시 벌레가 튀어나온다면 답이 없었다. 사람들도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안 된다는 자각은 하고 있었기에, 옆에 있는 부상자를 부축하며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물론 가벼운 상처가 아닌 움직이기 힘든 중상자와 시체는 자연스레 버려지게 되었
염구준의 말에 좀 전에 소리쳤던 남자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지만, 남의 목숨은 파리처럼 여기는 전형적인 비겁한 인간이었다. 이때, 옆에 있던 노파, 사우가 웃으며 끼어들었다.“젊은이, 준비되려면 시간 더 필요해?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시간을 미룬다고 해서 저기를 올라가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어.”‘뻔뻔하기는!’노파는 상냥하게 말했지만,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알겠어요. 바로 올라갈 게요.”이 말과 함께 염구준은 천천히 오른발을 들어올려 첫 계단을 밟았다. 사실 어젯밤 이곳을 방문하면서 이미 대책을 세워둔 상태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오감 차단!사실 좀 전에 계단 앞에서 시간을 끈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오감을 차단하기 위해선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조용한 환경속에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발소리, 염구준의 오른발이 계단에 닿았다. 모두 숨 쉬는 법도 잊은 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깊이 관찰했다. 속으론 그가 무사히 이 계단의 끝자락까지 도달하길 바라면서.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공하길 바랐지만, 정말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노파는 의아했다. “젊은이, 괜찮은 것 같으니까 앞으로 두어 걸음만 더 가봐.”그렇지만 오감을 모두 차단한 그는 노파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염구준은 말없이 계속해서 스무 계단 정도 더 올랐다. 그리고 뒤 돌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노파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옆에 있던 사람에게 지시했다.“너도 올라가 봐.”“네.”염구준이 무사한 것을 복고 안심한 사람은 망설임 없이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 별일 없는 듯했으나, 세번째 계단을 밟았을 때,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몸 안에 뭔가 들어왔어!”곧이어 급격이 몸이 팽창하기 시작한 남자, 큰 폭
좀 전에 사람이 폭발하는 장면은 그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럼 죽어!”노파가 손을 들어 남자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 즉사했다. “이득을 얻고자 하면서 대가는 치르기 싫어하다니, 어리석구나.”“스승님, 제가 가겠습니다.”이때, 리아가 앞으로 나서 스스로 본보기가 되기를 자청했다. 사우가 동맹의 대표로서 힘을 쓰려면 그에 걸맞은 명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오감을 차단한 뒤,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역시나 노파의 말 대로 오감을 차단한 것이 답이었는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나는 포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돌려 사람들을 향해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봤겠지? 날 믿고 오감을 차단한 뒤, 한 사람씩 계단을 올라!”운 좋게 맞춘 거지만, 노파는 티를 내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역시 어르신이네요. 경험이 많은 분 답게 단번에 이 어려운 관문을 돌파할 방법을 찾으시다니!”“어르신을 저희 동맹 대표로 선출한 게 정말 큰 행운이네요!”“정말 위대하십니다. 앞으로는 전적으로 어르신만 믿고 따르겠습니다!”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아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의 말에 따라 오감을 차단한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순조롭게 성공하진 못했다. 일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을 내뱉으며 포자가 체내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 덩달아 옆에 있던 사람들까지 함께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열대명의 사상자가 나오긴 했지만, 다행히 나머지는 무사히 관문을 통과했다. “오! 다들 잘 올라오셨네요!”먼저 올라가 있던 염구준이 차례로 도착하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어이! 해결책을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해야 할 거 아니야!”이때, 한 남자가 나서며 그에게 따졌다. 이들은 염구준이 일부러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 입을 다문 것이라 생각했다.“멍청한 소리 하지 마시죠.”염구준이 냉랭한 눈빛을 보
물론 염구준은 어젯밤 경험 덕에 이미 모든 관문을 파악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실력을 숨긴 채 어떤 관문에 들어가게 되어도 무사히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노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리 중 아무나 가리키며 지시했다.“거기 너, 네가 한번 올라가 봐!”비록 두번째 관문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노파는 아직 염구준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예!”운 없게 지목된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숲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남자는 돌아올 기색이 없었다. 노파는 또다시 사람을 파견했다. 그런데 반나절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참다 못한 그녀는 열댓 명을 한 번에 들어가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을 삼키기만 할 뿐, 돌려주지 않았다.“스승님, 제가 가볼까요?”리아가 앞으로 나서며 자청했다. 그녀가 노파의 제자이자 오른팔이 될 수 있었던 건 강해서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 항상 알맞게 지지해주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순간에 도와주는 사람만큼 기억에 남는 것도 없으니까.“아니, 됐어. 다 같이 들어가자. 어쩌면 앞서 나간 사람들, 무사히 숲을 지나 다음 관문에 갔을지도 몰라.”노파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귀가 솔깃했다. 노파는 앞서 나간 사람들이 위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욕심에 눈먼 사람들은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자진해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주 교활한 계략이었다.그렇게 노파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모두 발등에 불이 붙은 듯 숲으로 돌진했다. “숲에 들어가면 최대한 내 옆에 붙어있어. 저 숲은 기운이 안 좋아.”염구준이 주의를 주었다. 어젯밤 가장 그의 발목을 가장 오래 잡았던 관문이 이 숲이었기 때문이다.“네, 알겠어요.”수안은 결연한 얼굴로 대답한 뒤, 양 볼을 붉히며 수줍게 염구준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숲은 전갈문 대나무 숲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세력들은 세라와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스텔라성과 엮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베르가 말한 동맹도 결국은 이익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염병할 놈!”베르는 염구준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에취!”한편, 바다의 동굴을 지나던 염구준이 재치기를 하더니 귓구멍을 파며 중얼거렸다.“또 어떤 놈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거야?”그는 이미 수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굴을 살펴보았다.오래전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로서 지하수도로 사용했거나 육지에서 지각이 변화하여 이곳에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었다.이제 동굴 내부에 완전히 적응되어서 속도를 낼 때가 되었다슝!위험도 없고 갈림길도 없으니 팔다리를 빨리 저으며 앞으로 전진했다.동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참 기대가 되었다.그것이 고대 옥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푸!가는 도중에 갑자기 장어 같은 바다 동물의 습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누가 있어.’얼마나 헤엄쳤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염구준은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한 줄기 검기를 발사했다.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수복을 입은 시체는 부패되지도 않고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그 옆에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황금, 비취. 진주 등 값나가는 보물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진짜 보물이 있었네. 고대 옥패도 있을까?”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보물이 가득한 가방은 뒤로 한 채 계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체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염구준은 궁금했다.왜 시체들이 하나 같이 상처도 입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죽었는지 말이다.이상한 상황으로 하여금 점점 주변을 경계하게 만들었다.앞으로 더 나아갔을 때, 동굴은 사라지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이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 같았다.그리고 내부를 살펴보려고 수십 발의 불꽃을 발사하던 염구준
찾겠다고 약속했던 보물이며 고대 옥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소식을 전했다.“절벽 위에 동굴이 있어요!”“여기에도 있어요. 불덩어리를 던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요!”“동굴에서 100그람되는 금덩어리를 발견했어요!”드디어 보물이 나타났다는 말에 다들 동료를 잃은 슬픔에서 금세 벗어났다.“일단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 대책부터 세웁시다.”중요한 순간에 베르가 나서서 대국을 주재하려 했다.염구준을 고립시키고는 각 세력들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수작이었다.“부성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지시를 따를게요.”메노스가 환심을 사려고 스텔라성의 편에서 말했다.염구준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 맞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나머지 가주들은 드디어 줄을 서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줄을 서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 문제였다.만약 잘못 선택하면 아무런 이득은 보지 않고 끝없는 재앙만 맞이할 것이다.…그 외에 무술인들은 가주들이 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것을 알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몇몇 사람들이 토론한 결과로 대다수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염 선생은 대책이 있습니까?”노신기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를 깨고 떠보듯 물었다.지금 염구준은 혼자서도 스텔라성를 상대하기 충분했다.다들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염구준이 한 동굴 입구에 서서 말했다.“상의할 게 뭐가 있어요? 보물이 보이면 능력에 따라서 챙기면 되죠. 실력이 있으면 많이 챙기고 없으면 바닷물이나 마시다 가면 되죠.”그 말 뜻은 물질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했다.지금 각 세력들이 꿍꿍이를 세우고 있으니 아무리 상의를 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다.어차피 나중에 사이가 틀어질 텐데,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염구준의 말을 들은 베르는 각 세력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염구준, 지금 분열을 일으키는 거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어떤 무술인들은 적대 관계이고 위에서 아무런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베르 일행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고 있으니 염구준을 칭찬하는 것은 더 불가능했다.“이곳은 위험해서 항상 조심하세요. 그렇다고 매번 도와줄 수 없어요.”염구준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이번만 도와줄 거라 뻔뻔하게 구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때 통신기에서 당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저기 모래벌레 무리가 오고 있어요!”그 말에 다들 다시 안절부절했다.염구준이 재빨리 통신기에 대고 모두를 진정시켰다.“당황하지 마세요. 대부분 바닥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만 뒤를 따라왔을 겁니다.”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래벌레들은 전부 그의 검에 잘렸기 때문이었다.다들 안심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공을 들고 앞에 나섰다.이곳까지 오면서 나약한 실력 때문에 항상 타인의 보호를 받았는데, 왜 이제야 나서는지 다들 알지 못했다.“썩을 놈의 벌레야! 첨단 과학기술의 위력을 보여 줄게!”젊은이가 건방지게 말하며 손에 든 공을 힘껏 던져버렸다.“안 돼!”메노스가 나서서 말렸지만 공을 이미 던져서 늦어버렸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방어!”염구준이 고함을 지르며 기운으로 호체 기운을 끌어냈다.반보천인인 염구준마저 긴장하게 만들다니, 모두 젊은이가 던진 공은 틀림없이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펑!공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으로 흘러서 올라간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마침 달려오는 모래벌레들을 순식간에 폭발시켰다.물속에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보기만 해도 감탄이 흘렀다.“악!”그런데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물속에서 퍼지더니 사람들의 몸에 부딪치며 오장육부에 침투되었다.순식간에 거대한 생물체를 몇 마리나 제거했으니 사람에 미치는 영향도 치명적이었다.실력이 약한 무술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죽었다.퍽!가장 먼저 공격받은 젊은이는 충격에 한참이나
“알겠습니다.”“네.”두 사람은 대답하자마자 각자 맡은 20명이 넘는 부하들을 이끌고 심해 모래벌레가 드문 변두리 지역으로 향했다.실력이 뛰어난 무술인 두 명이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로서 부하들의 사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그 장면을 본 남은 세력들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는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살고 싶으면 빨리 천기문의 뒤를 따라가!”지금 염구준이 뒤를 맡고 있었기에 그들도 벗어나기 훨씬 수월했다.베르가 떠날 때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의 뒤를 노려보면서 저렇게 싸우다 콱 죽으라고 저주까지 했다.결국은 살려고 바삐 피신하느라 누구도 염구준을 도와주지 않았다.혼자 남은 그는 결국 심해의 모래벌레에게 포위되었다.“에휴, 저럴 줄 알았어. 그동안 도와준 걸 봐서라도 우리도 도와줍시다.”염구준은 자신이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벌레를 살해했다.각 세력의 무술인들이 이미 멀리 떨어졌으니 지금은 이 무리를 뚫고 나가야 했다.촤아악!순식간에 수많은 검기가 주변에 발사하며 바다 밑을 들쑤시는 바람에 모래와 진흙이 시야를 가렸다.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덩치가 큰 물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이었다.아무리 바다가 모래벌레의 구역이라 해도 염구준의 검을 막지 못했다.검망이 닿는 곳은 그들 시체로 널렸다.염구준이 뛰쳐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도망친 각 세력들은 균열 변두리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염 선생이 우리를 위해 혼자 희생하는데 우리도 소수 정예병을 조직해서 도와줍시다!”그레이가 통신기에 대호 한마디 제안했다.흔쾌히 나설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말은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하, 대단한 것처럼 건방지게 굴더니, 저런 놈은 죽어도 싸.”“그러게요. 저 악마의 생사는 우리랑 상관없어요.”베르와 세라가 시큰둥하게 자신들의 태도를 표명했다.“당신들…”그레이가 나서서 비판하려고 할 때 그들과 싸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더는 말을 잇지 않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