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쳐다보면 눈알 뽑아버릴 줄 알아.”수안이 이들을 노려보며 말하자, 그녀의 전갈도 함께 어깨 위로 올라와 꼬리를 치켜 세우며 위협했다. 그러자 겁먹은 얼굴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 남자들, 수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이상하네, 천면도에 모래사장이 있었나?”천면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여기서 생활한 건 겨우 어린 시절뿐, 제대로 기억날 리 없었다. 그러자 천면 가문 사람들이 그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천면진, 이 배신자! 우리랑 같이 죽자!”“감히 외부인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다니, 용서할 수 없다!”“넌 몰랐겠지만, 여긴 황금사충의 번식지야!”그 말을 듣자, 천면진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뭐? 미친놈들! 젠장, 뛰어!”천면진이 모래 밖, 숲을 향해 뛰며 말했다.“오라버니, 빨리 뛰어요! 최대한 빨리 모래를 벗어나야 해요!”수안이 다급히 외치며 경고했다. 확실히 이상한 모래사장이었다. 염구준은 제대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은 수안을 따라 모래 밖으로 뛰었다.“이미 늦었어!”천면 가문 남자들이 평온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그 순간, 갑자기 들썩거리기 시작하는 모래 바닥! “악!”제일 먼저 앞서 달리던 천면진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동시에 그의 몸을 뒤덮기 시작한 모래! 그는 몸부림쳤지만, 모래가 닿은 곳마다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금사충은 무리안에서 가장 기이하게 여겨지는 벌레입니다. 굉장히 작은 크기지만, 무리 지어 다녀 죽이기도 매우 까다롭죠. 하지만 멸종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이야!”수안이 물음표가 가득한 염구준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황금사충에 대한 기록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수안도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그 말을 들은 염구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기이한 벌레인가? 모래 알갱이만 것들이 이토록 쉽게 전사 경지 강자를 상처 입히다니!“떨어져! 떨어지라고!”천면진이 몸에서 전신 영역을 펼
“왜 우릴 구했어요?”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소년들의 태도였다.“구하다니? 지금은 여기서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염구준이 좁혀오는 황금사충 포위망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다루기 너무 까다로운 벌레였다. 벌써 향낭에 적응해 조금씩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무리안의 벌레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펑! 염구준이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며 황금사충들을 날려버렸다. 우수수 모래알처럼 떨어지며 죽어가는 벌레들, 하지만 죽는 족족 더 몰려들었다. 피라냐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심지어 이 벌레는 발산된 기운에 겁먹기는커녕 흡수까지 하고 있었다. 벌레는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서 염구준이 진짜 실력을 보인다면 혼자서 빠져나가는 것쯤이야 별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벌레와 함께 같이 죽게 된다. 천면 가문 소년들은 구할 수 없다면 그만이지만, 수안은 꼭 데리고 나가야 했다. “수안아, 내가 널 좀 안아 올려야 할 것 같아.”염구준이 뜬금없이 말했다. 그녀를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수안이 놀라 반항하기라도 한다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경고한 것이다.“앗!”아니나 다를까 경고했음에도 수안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공주님 안기라니, 그녀의 얼굴이 수줍은 소녀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염구준은 그녀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급박한 상황이라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다.“아, 네. 알겠어요!”수안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염구준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 이상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은연중 그녀는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염구준이 그녀를 안은 채 순식간에 모래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제야 수안은 상황을 파악하고 이번엔 민망함으로 얼굴을 붉혔다. ‘창피해 죽겠네!’염구준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를 구하기 위해 끌어안은 것이었다
천면진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 전에 이미 황금사충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벌레에게 잡아 먹히다니, 처참한 죽음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해온 악행들의 대가였다.“당신들 도대체 누굽니까?”유일하게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던 소년이 물었다.행동을 보니 분명 나쁜 사람들 같지 않았지만, 천면진과 함께 나타난 것이 걸렸다. 하지만 천면진이 죽어가는 걸 방치한 것을 보니, 적어도 한패는 아닌 것 같았다.소년의 의문을 알아챈 염구준이 간단히 설명했다.“내 친척이 천면 가문 때문에 전괴가 되었어. 여기 족장이 그걸 풀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찾아온 거야.”그 말에 소년은 그제야 표정이 풀어졌다. 소년도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천면진은 십여 년 전, 천면 가문 고서실에 몰래 들어가 전괴 만드는 비법을 훔치다 발각되어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는 이미 천면 가문에 제적당한 상태인데, 쫓겨난 뒤로도 가문의 이름을 이용해 많은 악행을 저질러 왔다고 했다.염구준은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모든 것은 결국 천면진 부자가 가문과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벌인 짓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죽었으니, 이제 진짜 용필과 같은 전괴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괴를 치료하는 비법은 필요했다.“너희 족장에게 데려다 줘. 비법만 얻으면 떠나도록 하마.”염구준이 섬 안 쪽, 산 중턱쯤 세워져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아, 그래도 적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소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기절했다. 황금사충에 물린 고통 때문에 다른 소년들처럼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가문이 걱정돼 무리하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까지 기절해버리자, 길을 안내할 사람이 없어졌다.“오라버니, 이제 어떻게 하죠?”수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오해는 풀렸지만, 모두 기절해버려 상황을 전달한 사람이 없어졌다. “너는 여기서 일단 얘들을 지켜보고 있어. 나 혼자서 잠깐만
푸른 호수가에 도착한 염구준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적을 피해 호수 아래로 숨은 것이라면, 기발하지 않은가? 이어서 염구준도 호수 안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해 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물속으로 들어간 염구준은 좀 전에 들어간 사람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그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놓치다니!’이런 환경속에서 사람을 추적하는 건 그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염구준은 계속해서 잠수를 반복하면서 호수 바닥을 살폈다. 특히 암초가 가득 자란 주변을 위주로. 사람이 숨을만한 장소라면 평범한 지형은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흔들리는 수조와 돌부리 사이로 입구로 보이는 작은 공간이 있는 지형이 눈에 밟혔다. 염구준은 좀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그곳으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 정말로 그곳이 입구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섬 방향으로 파져 있는 작은 입구! 왠지 이곳이라면 그가 찾던 섬의 주민들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그 통로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 진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야, 너 아까 몰래 나가서 뭐 했어?”한 중년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젊은 남자를 꾸짖고 있었다. 몸집이 매우 건장한 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천면휘, 천면 가문 현 족장이었다.“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잠시 충전기 가지러 갔었습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남자는 천면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바로 좀 전에 염구준이 쫓고 있던 도둑이었다. “이런, 망할 놈!”천면휘가 크게 화를 내며 도둑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까짓 거 하나 때문에 온 일족을 위험에 노출시켜? 오냐, 너 오늘 내 손에 죽어보자!”그리고는 다시 한번 젊은 남자를 향해 손을 들었다. “족장님, 진정하십시오!”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말리며 나섰다. 같은 가문 친척으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그는 전신전 전주, 반보천인 경지 강자이기 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어린 소녀를 보자 딸이 떠오르며 자연스레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아이를 달래 준 뒤, 염구준은 다시 천면 가문 사람들을 돌아보며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여러분, 일단 저는….”하지만 말을 제대로 꺼내기도 전에 이들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아이를 놔줘!”천면휘가 가장 먼저 일격을 날리며 외쳤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뒤따라 공격하기 시작했다.이 장소는 발견되기 어려운 만큼,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길도 하나뿐이었다. 적이 쳐들어온 이상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다. 천면 가문 사람들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 첫번째는 대화, 두번째는 무력이다. 하지만 이미 대화는 글렀으니, 남은 것은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염구준 또한 후자를 선호했다.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고 간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맹렬한 기세로 공격해 오는 사람들을 향해 오른손으로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왼손으론 아이를 감쌌다. 그리고 초토화된 현장, 단 일격만에 천면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으아!”그 광경을 보고도 천면휘는 포기하지 않고 염구준을 향해 다시 오른 주먹을 날렸다. 모든 것을 건, 그의 최고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염구준은 간단하게 손바닥을 펼쳐 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펑하고 주먹과 손바닥이 충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명중이었다!천면휘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한 줄 알고 주먹에 기운을 더 실었다. 상대가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신 경지에 대한 자부감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밖의 일이 일어났다.천면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무리 힘을 실어보아도 손바닥의 힘을 밀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이런 빌어먹을!”그는 이미 과도한 힘을 사용해 피가 역류하며 몸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확실한 경지의 차이를 느꼈다.“아저씨, 힘내요!”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어린 아이의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천면
“천면진 그 부자를 진작에 처형시켰어야 했는데… 그러면 우리 가문이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일도 없었을 텐데!”모두 전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니!이때, 천면휘가 손을 들어올리며 모두에게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크흠, 진작에 말씀하지 그러셨습니까? 괜히 쓸데없이 오해했잖아요.”염구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진작에 말하지 않고 뭐했냐니,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친절해진 태도에, 염구준도 차가웠던 모습을 내려놓았다.“뭐, 됐어요.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까.”염구준은 논쟁하기 귀찮았다.“아, 불쌍한 아이들… 괜한 오해에 엄한 사람들만 죽었구나….”천면휘가 한숨을 내쉬며 어류술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이고, 내 아들…!”멀리서 한 부부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울부짖었다. 부모에게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만큼 가혹한 일이 있겠는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자, 염구준은 이들이 또다른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저랑 함께 있던 그 소년들 말하는 거죠? 다들 무사히 잘 살아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정말이에요?”그제야 울음소리가 멈췄다.“이런 걸로 굳이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섬 서쪽 해안에 있어요. 황금사충 때문에 좀 부상을 입었는데,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거예요.”염구준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럼 어서 가봅시다!”소년들의 부모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허둥지둥 호수가로 뛰어들며 밖으로 헤엄쳐 나갔다. 염구준의 태연한 표정을 보며 천면휘는 그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제야 천면휘의 얼굴에도 미소가 맺혔다. “이렇게 아량이 넓으신 분일 줄이야, 제가 어리석었습니다.”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천면휘의 시선이 어류술사에게로 향했다. 어류술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오해를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잘못된 상황 판단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를 뻔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했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어류술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그는 화가 난다고 해서 남한테 푸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잘못은 잘못한 사람에게, 그게 염구준의 모토였다. 막다른 길에 왔다면, 길을 뚫으면 된다. 그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사람을 구하겠다고 엄한 사람을 상해 입힐 생각은 없었다. 쿵! 이때, 어디선가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들이 있는 이 동굴 가장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모두 그 굉음에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염구준도 마찬가지로 가늘어진 눈으로 동굴 안쪽을 주시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 분명 젊은 체격은 아님에도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굴 안 쪽, 바위 틈에 겨우 한 명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공간이 갈라져 있었다. 거기서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그의 몸엔 따개비와 온갖 조개껍질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몰골이었다.“저건 뭐지?”천면휘가 의아한 표정으로 인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이 자식아, 네 아버지다!”검은 그림자가 천면휘의 얼굴에 따귀를 날리며 말했다. 겨우 폐관수련을 마쳐 좋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자기 아버지도 못 알아보다니!그러했다. 인물의 정체는 바로 수련을 마친 천면휘의 아버지, 노족장 천면현이었던 것이다! 우웅! 천면현의 몸이 진동하며 기운이 폭발하자 몸에 붙어 있던 온갖 조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들어난 얼굴, 꽤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노족장님을 뵙습니다!”그제야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기 시작한 사람들, 염구준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맺혔다. 이 시기에 노족장이 수련을 마치고 나오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시점인가!천면휘가 급히 앞으로 나아가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아버지, 급히 소개해드릴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천면현의 얼굴이 굳어지며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내 아들을 다치게 하다니, 받아라!”천면휘의 성격은 유전인 듯했다
무너져가는 동굴,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떨어지는 돌에 맞아 다치기 시작했다. “멈춰!”천면현이 손을 들어 올리며 휴전의 신호를 보냈다. “갑자기 왜요?”한참 싸움에 열중하던 와중에 갑자기 중단되자 염구준은 심기가 불편했다. “장소가 너무 좁아서 제대로 싸울 수 없어. 밖으로 나가자.”천면현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제야 염구준의 눈에도 주변의 광경이 들어왔다. 천면 가문 사람들 몇몇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싸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주변을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 “그래요.”염구준이 대답했다.“아버지, 그만 싸우세요. 사실은….”두 사람이 멈춘 틈을 타 천면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하지만 풍덩, 두 사람은 듣지도 않고 물속에 뛰어들더니, 빠르게 밖으로 헤엄쳐 나갔다. 천면휘는 이번에도 입 한 번 제대로 못 열어보고 무시당했다. 그는 점점 조초해졌다. 두 사람 모두 무시무시한 강자,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게 된다. 누구든 크게 다치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건 좋지 않았다. 천면휘가 다급히 사람들에게 외쳤다. “멍하니 있지 말고, 얼른 다들 밖으로 나가!”천면도, 얕은 모래사장 위에 염구준과 천면현이 서로 마주 서 있었다. “젊은이, 여긴 호수가라 물속성을 가진 내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겠지?”천면현이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을 제압할 수 있는 속성인 물, 물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상관없어요. 싸움터는 제 선택이 아니었지만, 길고 가는 거는 대봐야 아는 법이죠.”염구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대가 강할수록 그는 더 흥분되고 전투력이 불타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건방지긴!”천면현이 물의 기운이 가득 담긴 분노의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투명한 물줄기가 공중에서 화살처럼 변하며 강력한 기운을 담긴 채 발사되었다. 전투는 시기와 장소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실력이었다. 하지만 천면현은 이를 망각하고 시기와 장소만 따져 자신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
“가서 건져 와. 살아있으면 좋고, 죽었으면 하는 수 없지.”그 한마디를 남기고 메노스는 계속 시끄럽게 구는 꽃무늬 셔츠남을 뒤로한 채 조용히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메노스가 이 후계자를 아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기 목숨까지 걸 정도는 아니었다.한편, 잠수함을 타고 온 대어당, 안설홍, 레온 가문의 세 세력은 자연스레 한데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다른 세력에 대항할 방비를 했다.그에 비해 염구준의 일행은, 아까 그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목격한 덕분에 분위기가 다시 끓어올랐다.“염 선생님은 진짜 강하시네요! 한두 번 만에 반보천인 한 명을 처리하시다니!”“염 선생님만 계시면 스텔라성도 별 것 아니에요!”“전 마음 정했어요. 이번 일만 끝나면 무조건 염 선생님을 제 스승님으로 삼을 거예요.”세 척의 어선 위의 사람들은 불과 며칠 만에 염구준의 팬이 되어버렸다.하지만 정작 염구준 본인은 사람들의 찬사 따위에 눈도 깜빡하지 않고, 아타와 노신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계획대로 시작하죠.”“네!”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수색 인원들을 바다에 투입했다.다른 세력들도 질세라 각자 인원을 내보냈지만, 서로 자기 일을 하느라 별로 큰 충돌은 없었다.이 바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피를 흘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은 주변을 둘러보고 모든 세력이 각자 행동 중인 걸 확인하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운 회복에 집중했다.방금 전의 싸움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내기 위해 일부러 몸에 무리를 주는 권법을 강제로 사용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그 한 방의 주먹과 한 번의 검격으로 무려 30%의 기운이 빠져나간 상태였다.완전히 회복하려면, 최소 열 시간이 필요했다.그의 모든 행동은 타 세력들에게 낱낱이 관찰되고 있었지만, 감히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그리고 날은 조용히 어두워졌다.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무수한 별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마치 두 개의 은하수가 펼쳐진 듯한
“하하하! 겉멋만 든 자식이, 결국은 허세였구나!”로브는 이 약한 일격에 박장대소하며 자신감이 들었다.‘어쩌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아직 몸을 채 회복하지 못한 것일 수 있겠어.’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르 일행은 눈에 띄지 않게 기운을 운용하며 적당한 타이밍에 염구준을 제거할 기회를 노렸다.하지만 뭔가 이상했다.사람들은 곧 염구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기운의 강도로 보아 그들을 속이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특히, 왼주먹에 모인 에너지는 숨이 멎을 만큼 강렬했다.“이런 허세에 난 안 속아!”로브는 상대방이 그저 겁을 주려는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는 기세등등하게 구자검을 뿌리치고, 단검을 휘두르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원래 지는 척하려고 했었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아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칠상권종극오의, 칠권합일!”이에 염구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두 자루의 단검을 향해 왼팔을 휘둘렀다.쾅!주먹이 단검에 닿는 순간, 두 자루의 단검은 그대로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었다.이 공포스러운 주먹을 그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 돼!”로브는 이번 주먹이 진짜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공포에 사로잡혀 피하려 했지만, 이미 공격 태세로 몸이 나간 상태라 도망칠 수가 없었다.쾅!염구준의 일격은 그대로 로브의 가슴을 강타했고, 로브는 힘없이 밀려났다.그러나 염구준은 멈추지 않고 곧바로 검으로 로브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복부까지 갈라 길고도 흉측한 상처를 남겼다.풍덩!로브는 이 어마어마한 충격에 바다로 떨어졌고,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그러나 염구준은 그를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애초에, 이건 남들에게 자신이 초입 반보천인을 상대할 여유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 싸움은 승부가 명확했지만, 너무 빨리 끝난 탓에, 진짜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게다가 로브는 제대로 싸운 것도 아니고, 허점투성이였기에 평가 기준도 되지 못했다.관중들은 모두 멍한 표정이었지만,
불쌍하게도 그는 꿍꿍이가 많은 여우같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그러나 금발에 금색 수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구부정한 몸매에 하얀 로브를 입은 메노스는 순진한 그와는 달리, 더욱 노련했다.“이번 일은 중요하고 사방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좋아.”겨우 이정도 이간질로는 그를 속일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민폐 팀원이 있었다.꽃무늬 셔츠남은 거대한 아기처럼 징징대며,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메노스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키워주신 아이잖아요! 설마 저한테 무관심 해지신 거예요?”“그만. 복수해줄게, 그러니 그만해.”메노스는 꽃무늬 셔츠남이 우는 걸 보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옆사람을 향해 물었다.“로브, 저 녀석의 실력이 어떻지?”“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싸우는 건 본 적 없습니다. 저쪽 진영엔 반보천인이 둘이 있는데, 제 실력과 맞먹습니다.”로브는 아는 걸 전부 털어놓았지만, 계속 불안한 예감이 들어서 표정이 좋지 않았다.역시나 메노스는 그의 예감처럼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렸다.“그래, 네가 가서 한번 떠봐. 내가 뒤에서 봐줄테니.”“네.”로브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대답한 뒤, 요트에 올라타 염구준이 있는 어선을 향해 달려갔다.메노스는 정말 그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명령을 내린 거였다. 두 배 사이의 거리가 짧은 것도 아니라 위험한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바로 도와줄 수도 없었다.슉!로브는 어선에 뛰어올라 기세 넘치게 소리쳤다. “염구준, 한 번 붙어보길 원한다!”다소 똑똑한 선택이었다.혹시라도 집단구타를 당할까 걱정이 돼서 먼저 큰소리부터 친 것이다.하지만 염구준을 향해 시비를 거는 로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레이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너 따위가 감히?”부두에서 2:1로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로브는 패배자였다.게다가 이제 막 반보천인의 문턱에 선 수준이 감히 염구준을 상대로 나서기엔 한참 부족했다.“받아들일 건가?”로브는 그레이와 말싸움을
그는 입을 열자마자 자신은 염구준의 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천기문이든 아타든 그는 애초에 경쟁상대로 생각해두고 있지 않았다. “흥, 비겁한 놈!”노신기는 화를 내며 말했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염구준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렸다.어선이 잠수함을 상대한다는 건 아예 말도 안 되었다.“예부터 보물은 능력 있는 사람이 가져가는 법이지.”염구준은 꼬리를 밟혔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혹여 다툼이 생긴다 해도, 실력으로 누르면 될 일이었다.게다가, 보물을 탐색하는 세력이 많을 수록 고대 옥패를 찾아낼 확률도 커지기 때문에 어쩌면 더 이득이었다.게다가, 정확한 위치 없이 찾아야 한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게 없었다. “고마워. 만약 보물을 찾게 된다면 염 선생도 나눠줄게.”“만약 고대 옥패를 발견한다면, 바로 주고.”대어당의 당주는 크게 기뻐하며 약속했다. 염구준에게 복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이다.적과 동료는 늘 변하는 법이다. 변하지 않는 건 오직 이익뿐이었다.염구준은 그를 슬쩍 바라보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이런 식의 허울뿐인 약속 따위는 진즉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검 뿐이었다.“후욱, 후욱.”노신기는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염구준이 나서지 않는 이상 홀로 대어당과 맞붙을 자신이 없었다.철썩철썩!이윽고 바닷물이 또 한 번 요동치더니 이번엔 세 척의 잠수함이 물 위로 떠올랐다.적어도 세 개의 강대한 세력이 더 온 것 같았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의 두 방향에서 모두 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또 다른 두 세력이 오는 것 같았다.보물을 나눠가지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 것이다.“염 선생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 끼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염 선생님께서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조상 대대로 전해진 보물이니 저희도 어느정도는 가져가 가문에 보태야죠.”“염구준, 날 기억해?”새로 온 이들 중 대부분이 염구준과 한번쯤 얽혔던 사람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