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릴 구했어요?”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소년들의 태도였다.“구하다니? 지금은 여기서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염구준이 좁혀오는 황금사충 포위망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다루기 너무 까다로운 벌레였다. 벌써 향낭에 적응해 조금씩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무리안의 벌레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펑! 염구준이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며 황금사충들을 날려버렸다. 우수수 모래알처럼 떨어지며 죽어가는 벌레들, 하지만 죽는 족족 더 몰려들었다. 피라냐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심지어 이 벌레는 발산된 기운에 겁먹기는커녕 흡수까지 하고 있었다. 벌레는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서 염구준이 진짜 실력을 보인다면 혼자서 빠져나가는 것쯤이야 별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벌레와 함께 같이 죽게 된다. 천면 가문 소년들은 구할 수 없다면 그만이지만, 수안은 꼭 데리고 나가야 했다. “수안아, 내가 널 좀 안아 올려야 할 것 같아.”염구준이 뜬금없이 말했다. 그녀를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수안이 놀라 반항하기라도 한다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경고한 것이다.“앗!”아니나 다를까 경고했음에도 수안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공주님 안기라니, 그녀의 얼굴이 수줍은 소녀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염구준은 그녀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급박한 상황이라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다.“아, 네. 알겠어요!”수안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염구준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 이상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은연중 그녀는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염구준이 그녀를 안은 채 순식간에 모래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제야 수안은 상황을 파악하고 이번엔 민망함으로 얼굴을 붉혔다. ‘창피해 죽겠네!’염구준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를 구하기 위해 끌어안은 것이었다
천면진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 전에 이미 황금사충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벌레에게 잡아 먹히다니, 처참한 죽음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해온 악행들의 대가였다.“당신들 도대체 누굽니까?”유일하게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던 소년이 물었다.행동을 보니 분명 나쁜 사람들 같지 않았지만, 천면진과 함께 나타난 것이 걸렸다. 하지만 천면진이 죽어가는 걸 방치한 것을 보니, 적어도 한패는 아닌 것 같았다.소년의 의문을 알아챈 염구준이 간단히 설명했다.“내 친척이 천면 가문 때문에 전괴가 되었어. 여기 족장이 그걸 풀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찾아온 거야.”그 말에 소년은 그제야 표정이 풀어졌다. 소년도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천면진은 십여 년 전, 천면 가문 고서실에 몰래 들어가 전괴 만드는 비법을 훔치다 발각되어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는 이미 천면 가문에 제적당한 상태인데, 쫓겨난 뒤로도 가문의 이름을 이용해 많은 악행을 저질러 왔다고 했다.염구준은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모든 것은 결국 천면진 부자가 가문과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벌인 짓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죽었으니, 이제 진짜 용필과 같은 전괴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괴를 치료하는 비법은 필요했다.“너희 족장에게 데려다 줘. 비법만 얻으면 떠나도록 하마.”염구준이 섬 안 쪽, 산 중턱쯤 세워져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아, 그래도 적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소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기절했다. 황금사충에 물린 고통 때문에 다른 소년들처럼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가문이 걱정돼 무리하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까지 기절해버리자, 길을 안내할 사람이 없어졌다.“오라버니, 이제 어떻게 하죠?”수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오해는 풀렸지만, 모두 기절해버려 상황을 전달한 사람이 없어졌다. “너는 여기서 일단 얘들을 지켜보고 있어. 나 혼자서 잠깐만
푸른 호수가에 도착한 염구준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적을 피해 호수 아래로 숨은 것이라면, 기발하지 않은가? 이어서 염구준도 호수 안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해 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물속으로 들어간 염구준은 좀 전에 들어간 사람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그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놓치다니!’이런 환경속에서 사람을 추적하는 건 그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염구준은 계속해서 잠수를 반복하면서 호수 바닥을 살폈다. 특히 암초가 가득 자란 주변을 위주로. 사람이 숨을만한 장소라면 평범한 지형은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흔들리는 수조와 돌부리 사이로 입구로 보이는 작은 공간이 있는 지형이 눈에 밟혔다. 염구준은 좀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그곳으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 정말로 그곳이 입구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섬 방향으로 파져 있는 작은 입구! 왠지 이곳이라면 그가 찾던 섬의 주민들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그 통로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 진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야, 너 아까 몰래 나가서 뭐 했어?”한 중년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젊은 남자를 꾸짖고 있었다. 몸집이 매우 건장한 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천면휘, 천면 가문 현 족장이었다.“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잠시 충전기 가지러 갔었습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남자는 천면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바로 좀 전에 염구준이 쫓고 있던 도둑이었다. “이런, 망할 놈!”천면휘가 크게 화를 내며 도둑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까짓 거 하나 때문에 온 일족을 위험에 노출시켜? 오냐, 너 오늘 내 손에 죽어보자!”그리고는 다시 한번 젊은 남자를 향해 손을 들었다. “족장님, 진정하십시오!”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말리며 나섰다. 같은 가문 친척으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그는 전신전 전주, 반보천인 경지 강자이기 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어린 소녀를 보자 딸이 떠오르며 자연스레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아이를 달래 준 뒤, 염구준은 다시 천면 가문 사람들을 돌아보며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여러분, 일단 저는….”하지만 말을 제대로 꺼내기도 전에 이들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아이를 놔줘!”천면휘가 가장 먼저 일격을 날리며 외쳤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뒤따라 공격하기 시작했다.이 장소는 발견되기 어려운 만큼,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길도 하나뿐이었다. 적이 쳐들어온 이상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다. 천면 가문 사람들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 첫번째는 대화, 두번째는 무력이다. 하지만 이미 대화는 글렀으니, 남은 것은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염구준 또한 후자를 선호했다.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고 간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맹렬한 기세로 공격해 오는 사람들을 향해 오른손으로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왼손으론 아이를 감쌌다. 그리고 초토화된 현장, 단 일격만에 천면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으아!”그 광경을 보고도 천면휘는 포기하지 않고 염구준을 향해 다시 오른 주먹을 날렸다. 모든 것을 건, 그의 최고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염구준은 간단하게 손바닥을 펼쳐 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펑하고 주먹과 손바닥이 충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명중이었다!천면휘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한 줄 알고 주먹에 기운을 더 실었다. 상대가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신 경지에 대한 자부감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밖의 일이 일어났다.천면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무리 힘을 실어보아도 손바닥의 힘을 밀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이런 빌어먹을!”그는 이미 과도한 힘을 사용해 피가 역류하며 몸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확실한 경지의 차이를 느꼈다.“아저씨, 힘내요!”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어린 아이의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천면
“천면진 그 부자를 진작에 처형시켰어야 했는데… 그러면 우리 가문이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일도 없었을 텐데!”모두 전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니!이때, 천면휘가 손을 들어올리며 모두에게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크흠, 진작에 말씀하지 그러셨습니까? 괜히 쓸데없이 오해했잖아요.”염구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진작에 말하지 않고 뭐했냐니,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친절해진 태도에, 염구준도 차가웠던 모습을 내려놓았다.“뭐, 됐어요.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까.”염구준은 논쟁하기 귀찮았다.“아, 불쌍한 아이들… 괜한 오해에 엄한 사람들만 죽었구나….”천면휘가 한숨을 내쉬며 어류술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이고, 내 아들…!”멀리서 한 부부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울부짖었다. 부모에게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만큼 가혹한 일이 있겠는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자, 염구준은 이들이 또다른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저랑 함께 있던 그 소년들 말하는 거죠? 다들 무사히 잘 살아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정말이에요?”그제야 울음소리가 멈췄다.“이런 걸로 굳이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섬 서쪽 해안에 있어요. 황금사충 때문에 좀 부상을 입었는데,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거예요.”염구준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럼 어서 가봅시다!”소년들의 부모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허둥지둥 호수가로 뛰어들며 밖으로 헤엄쳐 나갔다. 염구준의 태연한 표정을 보며 천면휘는 그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제야 천면휘의 얼굴에도 미소가 맺혔다. “이렇게 아량이 넓으신 분일 줄이야, 제가 어리석었습니다.”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천면휘의 시선이 어류술사에게로 향했다. 어류술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오해를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잘못된 상황 판단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를 뻔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했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어류술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그는 화가 난다고 해서 남한테 푸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잘못은 잘못한 사람에게, 그게 염구준의 모토였다. 막다른 길에 왔다면, 길을 뚫으면 된다. 그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사람을 구하겠다고 엄한 사람을 상해 입힐 생각은 없었다. 쿵! 이때, 어디선가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들이 있는 이 동굴 가장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모두 그 굉음에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염구준도 마찬가지로 가늘어진 눈으로 동굴 안쪽을 주시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 분명 젊은 체격은 아님에도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굴 안 쪽, 바위 틈에 겨우 한 명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공간이 갈라져 있었다. 거기서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그의 몸엔 따개비와 온갖 조개껍질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몰골이었다.“저건 뭐지?”천면휘가 의아한 표정으로 인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이 자식아, 네 아버지다!”검은 그림자가 천면휘의 얼굴에 따귀를 날리며 말했다. 겨우 폐관수련을 마쳐 좋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자기 아버지도 못 알아보다니!그러했다. 인물의 정체는 바로 수련을 마친 천면휘의 아버지, 노족장 천면현이었던 것이다! 우웅! 천면현의 몸이 진동하며 기운이 폭발하자 몸에 붙어 있던 온갖 조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들어난 얼굴, 꽤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노족장님을 뵙습니다!”그제야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기 시작한 사람들, 염구준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맺혔다. 이 시기에 노족장이 수련을 마치고 나오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시점인가!천면휘가 급히 앞으로 나아가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아버지, 급히 소개해드릴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천면현의 얼굴이 굳어지며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내 아들을 다치게 하다니, 받아라!”천면휘의 성격은 유전인 듯했다
무너져가는 동굴,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떨어지는 돌에 맞아 다치기 시작했다. “멈춰!”천면현이 손을 들어 올리며 휴전의 신호를 보냈다. “갑자기 왜요?”한참 싸움에 열중하던 와중에 갑자기 중단되자 염구준은 심기가 불편했다. “장소가 너무 좁아서 제대로 싸울 수 없어. 밖으로 나가자.”천면현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제야 염구준의 눈에도 주변의 광경이 들어왔다. 천면 가문 사람들 몇몇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싸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주변을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 “그래요.”염구준이 대답했다.“아버지, 그만 싸우세요. 사실은….”두 사람이 멈춘 틈을 타 천면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하지만 풍덩, 두 사람은 듣지도 않고 물속에 뛰어들더니, 빠르게 밖으로 헤엄쳐 나갔다. 천면휘는 이번에도 입 한 번 제대로 못 열어보고 무시당했다. 그는 점점 조초해졌다. 두 사람 모두 무시무시한 강자,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게 된다. 누구든 크게 다치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건 좋지 않았다. 천면휘가 다급히 사람들에게 외쳤다. “멍하니 있지 말고, 얼른 다들 밖으로 나가!”천면도, 얕은 모래사장 위에 염구준과 천면현이 서로 마주 서 있었다. “젊은이, 여긴 호수가라 물속성을 가진 내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겠지?”천면현이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을 제압할 수 있는 속성인 물, 물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상관없어요. 싸움터는 제 선택이 아니었지만, 길고 가는 거는 대봐야 아는 법이죠.”염구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대가 강할수록 그는 더 흥분되고 전투력이 불타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건방지긴!”천면현이 물의 기운이 가득 담긴 분노의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투명한 물줄기가 공중에서 화살처럼 변하며 강력한 기운을 담긴 채 발사되었다. 전투는 시기와 장소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실력이었다. 하지만 천면현은 이를 망각하고 시기와 장소만 따져 자신
“에잇! 이판사판이다!”천면현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 방어만 하다가 진짜 공격다운 공격 한번 하지 못하고 당할 것 같았다. 그는 방어를 포기하고 부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반격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염구준은 그가 방어를 포기한 순간, 전보다도 더 매서운 공격을 연달아 날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천면현은 반격은커녕 주먹에 맞아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노쇠한 데다가 부상까지 입자 그는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해졌다.“쿨럭, 쿨럭. 내가 졌다. 원하는 대로 해.”부상을 입은 천면현이 피를 토하며 항복했다. 애송이라고 생각했건만, 상대는 자신의 실력보다 훨씬 강한 강자였다. 거기에 불굴의 의지까지, 염구준은 자신과 비등하거나 강한 상대일수록 더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사람 질리게 하는 상대였다.“수고하셨습니다.”염구준이 두 손을 모아 천면현을 향해 포권을 했다. 사실 그도 혼신의 공격을 연달아 날리면서 옅은 내상을 입은 상대였다. 천면현은 생각 이상으로 강자였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염구준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 충분히 더 싸울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아버지, 괜찮으세요?”천면현이 주먹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천면휘가 다급히 다가가며 상태를 살폈다.“몇 군데 다치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끝까지 우리 일족을 지키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쉽구나.”천면현이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아버지, 저 분은 적이 아니에요!”그렇게 천면휘는 간단히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점점 더 안색이 어두워지는 천면현, 얘기가 끝날 때쯤 되니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멍청한 놈! 왜 진작에 말하지 않고 이 사단을 만들어!” 천면현은 참지 못하고 아들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미리 말했더라면 싸우지도 않고, 망신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천면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당연히 바로 말하려고 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기회를 줬나요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용하 화폐로 200만 원입니다.”귀울진은 용하와 접해 있기에 용하 화폐를 사용했다.“용하에서 건너온 진씨 가문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염구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지금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었다.“은세가문인가?”이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그 표정을 보니 진씨 가문의 소재를 아는 것 같았다.염구준이 그것을 눈치챘다.“알고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우려하는 거라도 있습니까?”“진씨 가문에서 돈을 주면서 그들의 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이면인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염구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얼마나 원합니까?”염구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1000만 원이요.”이면인은 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 많지 않아요. 갖고 온 돈은 전부 여기 있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죠.”염구준은 가방을 앞으로 던져버렸다.그 말에 이면인은 가방을 들어 대충 훑어보았다.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두 블록 가면 진씨네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주둔지예요.”“거짓말은 아니겠죠?”염구준이 한마디 더 했다.“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어요.”이면인은 가방을 챙기고 싱글벙글 웃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이 돈이면 3년을 문을 닫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알았어요. 돈은 받으세요.”염구준은 돌아서 잡화점에서 나갔다.10분 뒤, 이면인은 도둑처럼 가방을 들고 잡화점을 나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빠르게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이 사람 역시 문제가 있었다.염구준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쉽게 돈을 떼먹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옆에 진씨네 국수집은 이미 오기 전에 들러서 알고 있었다.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 진씨 가문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마을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처리하고 찾으러 갈게요.”염구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현지 정부에서 아예 관리하지 않아 자치 행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하기 좋았다.점점 많은 범죄자들이 몰려들어 귀울진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을 규모는 중등 도시 못지 않았다.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아 치안이 엉망이었다.“젊은이, 이곳에 별의별 놈들이 살아서 아주 위험한 곳이야. 백가, 개방, 목숨파를 조심해.”“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진씨 가문도 은세가문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쫓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 가지 가능성은 진씨 가문에서 몰래 잠복해 있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그는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사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과일을 안 사면 아무것도 묻지 마.”사장님은 염구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다.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손님, 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소식통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진씨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염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몰라요. 하지만 저기 구두가게 사장이 진씨입니다.”과일 가게 사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은 머리가 아팠다.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만 밝히고 허풍만 떨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전에도 몇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돈만 받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에 비하면 안내자 노인은 성실한 편이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고대영이 조사한 정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진씨 가문이 귀울진에만 있다는 것만 알아내서 나머지는 염구준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그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내가 귀울진의 정보왕을 알고 있는데 원하는 가격이 너무 사악하고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야.”만약 염구준이 빨리 처리한다면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고 빨리 돌아갈 수 있다.귀울진
노인은 당황해하며 현금 몇 장을 더 놓았다.“전부 여기 두었어. 그러니까 보내줘.”오늘 변고가 생겨 톡톡히 손해를 보아 속으로 산적들에게 욕을 퍼부었다.하지만 산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에 누운 염구준을 가리켰다.“저놈을 남기고 영감은 가면 돼. 소는 우리 형제들이 먹게 넘겨.”“안 돼. 우리도 소 덕에 먹고 사는데 넘기면 굶어 죽어.”노인은 애지중지하는 소를 끌고 되돌아가려고 했다.이 산적들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려는 셈이다.예전에 길을 막던 산적들은 이 정도로 선을 넘지 않았다.그냥 돈만 조금 주면 알아서들 떠났다.만약 안내자를 전부 소멸하면 누구도 이 길을 지날 수 없고 그들은 산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거기서. 죽고 싶어?”그들은 무기를 쳐들고 노인에게 돌진했다.우두머리는 손에 총까지 들고 있었다.‘젠장.’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오늘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여기 개판이네. 벌건 대낮에 길을 막고 강탈하냐?”그때 염구준이 수레에서 내리며 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발로 차서 뿌렸다.파팟!자갈은 빠른 속도로 튕겨 달려오는 무리들에게 하나씩 명중했다.그리고 핏방울을 튕기며 전부 바닥에 쓰러트렸다.순식간에 발생하여 상대방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멸한 것이다.그래도 산적들은 죽어 마땅했다.“어르신, 뭐 하세요? 갑시다.”염구준은 얼떨떨해 서 있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가는 길에 도운 것뿐이니 별일도 아니었다.“어, 그래.”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바로 그때 노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조심해.”우두머리 산적이 죽지 않고 총을 들고 염구준을 향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다.“개자식, 죽어라!”펑펑펑!산적은 방아쇠를 힘껏 당겨 총을 몇 발이나 쏘았다.노인은 너무 놀라 두 눈을 찔끔 감고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그런데 모든 탄알을 사용했지만 염구준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
망기술의 역할을 알고 있는 염구준은 문제점을 말했다.“진씨 가문은 어디 있어? 거록이 혹시 거기에 있나?”고대영은 숨기지 않고 염구준의 질문에 바로 답했다.“진씨 가문은 해외로 쫓겨나서 국경에 있는 귀울진에 있어. 거록이 거기 있는지는 나도 몰라.”염구준은 용하의 은세가문이 왜 해외로 쫓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이런 상황은 정말 흔치 않았다.“수고했어. 약속대로 내가 수고비는 보내줄게.”염구준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그가 원하는 정보는 이것밖에 없었다.“돈은 됐어. 우리 고씨 가문의 외가 가주 자리가…”고대영은 돈을 받는 대신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염구준이 끊어버렸다.“됐어. 이따가 계좌로 이체할게. 시간 되면 청해에 놀러와.”염구준은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끊어버렸다.계속 통화를 했다면 고대영이 또 이 말을 꺼낼 게 뻔했다.“모두 같은 핏줄이니 네가 고씨 외가의 가주가 되어라.”비록 염구준의 생모 고유란이 고씨 외가의 가주였지만 지금 그와 관련이 없으니 이어받을 의무도 없었다.지금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염구준은 집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갔다.손가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귀울진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자창에 갔을 때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아직 싸우기 전에 살기부터 흘리다니 정말 모자란 놈들이었다.스스슥!갑자기 나무 위, 관목 안, 하수도 뚜껑 아래서 그림자들이 뛰쳐나왔다.모두 복면을 써서 진짜 얼굴은 볼 수 없었다.“하, 실력이 제일 강한 놈이 정진왕자라니, 죽으러 왔어?”염구준이 그들을 훑어보았다.“거록 존주께서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다. 청해에만 있어라.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일행은 먼저 협박 어린 말을 전달했다.“청해에서 나가겠다면 어떡할 건데?”염구준이 껄껄 웃으면서 되물었다.“그럼 죽인다!”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하더니 일행이 동시에 염구준을 공격했다.아마도 그의 실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촤아악!염구준이 몸을 번쩍
“필요 없어. 겁 먹고 외국에 도망친 너랑 달라. 정말 창피해. 우리 떠돌이 7인조의 명성에 먹칠했어. 염구준 따위가 감히 내 대업에 끼어들었으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역시 자극을 받은 거록 존주는 흑풍을 경멸하면서 말했다.지금 흑풍은 그가 말한 것처럼 염구준이 무서워서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지난번 윤씨 가문에서 염구준과 맞붙었을 때 한 손을 잃어버려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넷째 형, 잘 생각해 봐.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흑풍은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 여전히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마. 그보다 네가 준 사술법으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냐?”지금 거록의 관심사는 염구준보다 사술법이었다.천인 경지는 꿈에서도 도달하고 싶은 것이라 매우 유혹적이었다.“물론이지. 심혈주를 만들어서 삼키면 바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흑풍은 더는 설득하지 않고 확실하게 대답했다.거록이 단호하게 나오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그렇다면 됐다. 내가 천인 경지를 돌파하면 너 대신 염구준 그놈을 죽여줄게.”거록은 자신있게 말했다.그 단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최고 고수로 거듭나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마워, 형.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염구준의 손에 있는 옥패 4개도 챙겨줘.”흑풍은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그의 목표는 지금도 옥패였으니 천인 경지에 도달하는 사술법에 관심이 없었다.어쩌면 다른 방법을 알기에 사술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걱정 마. 난 옥패에 관심이 없어. 만약 손에 넣으면 너한테 줄게.”거록도 승낙했다.옥패 8개에 심도 깊은 무학이 있어서 보물이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더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다.“그럼 이만 끊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흑풍은 말을 끝내고 통화를 끊어버렸다.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두운 지하였다.그곳에 허약한 몸의 사내가 견갑골을 입고 있었다.“젠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사술법을 알려주면 날 풀어준다고 했잖아.”사내는
염구준은 초상비 일행에게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물론 치료비는 모두 그가 부담할 것이다.광대와 서커스단 관련자들은 경찰에 보내서 법으로 다스리도록 안배했다.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청해 동물원에 보내져서 적절하게 배치했다.그 바람에 동물원에서 땡잡았다.더는 허스키를 늑대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호랑이로 분장할 필요도 없었다.모든 후사를 처리한 후, 염구준은 공연장에서 나와 모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그날 저녁, 염구준에게 전화가 왔었다.“염구준 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서커스단은 원래 합법이었는데 단장이 살해된 후 나쁜 놈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파렴치한 짓을 했더군요.”“이들 우두머리는 코브라라 부르고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유사한 패거리가 더 있는 걸로 추측합니다. 구제척인 것은 아직 자백받지 못했어요.”경찰 측에서 조사한 것을 모두 염구준에게 알려줬다.“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염구준이 대답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경찰에게 맡기면 되니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이어서 초상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구출한 사람들이 모두 고비를 넘겼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치료비는 염구준이 모두 낼 테니 이 일에 대한 모든 권한을 초상비에게 맡겨서 처리하게끔 안배했다.심혈을 뽑으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아무리 치료를 해도 수명이 최소한 10년은 줄어들 것이다.떠돌이 7인조에서 하는 짓들은 어느 하나 정당한 것이 없었다.이런 독종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염구준은 거록 존주의 소식을 얻지 못했지만 다른 방면으로 단서를 찾았다.망기술이라는 독특한 방법은 용하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는 은세가족의 윤대약, 고대영에게 연락해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동시에 직접 얼음 인간 즉 봉유곡의 초상화를 그려 전신전에서 행방을 찾으라 지시했다.모든 일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거록 존주가 사람의 심혈을 뽑았던
서커스단 공연은 염구준이 사라진 후로 잠시 중단되었다.손가을은 손씨 그룹에서 절반 넘는 경호원들을 불러 수색하기 시작했다.거기에 호찬, 초상비 등 고수들도 있고 신위무관의 원종과 정경림도 있었다.이 기세로 보아 은세가문과 전쟁을 치러도 충분할 것 같았다.용필은 신혼여행을 떠나서 연락하지 않았다.“당장 사람을 풀어줘!”손가을이 언성을 높이며 모처럼 화를 냈다.평소 그녀는 성격이 털털해서 어떤 일에 부딪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하지만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아무리 남편의 실력이 대단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여사님, 저희 계약서까지 작성했어요.”광대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촤아악!“부끄럽지 않아서 이런 불법 계약서를 꺼내?”손가을은 빼앗아와서 바로 찢어버리고 바닥에 내팽개쳤다.오늘 염구준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근데 마술사가 사라져서 저희도 찾을 수 없어요.”광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땅을 파서라도 찾아내세요!”손가을이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아빠 예전처럼 사라지는 거예요?”깜짝 놀란 염희주가 울면서 물었다.지난 일은 어린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팠다.이번 일로 인해 아마 평생 서커스단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아니야. 아빠는 우리랑 숨박꼭질하는 거야.”손가을은 애써 웃으면서 딸을 진정시켰다.지시를 받은 손씨 그룹 경호원은 이미 굴착기까지 불러서 땅을 팔 기세였다.서커스 경호원들은 아무리 말려도 역부족이었다.관중들은 그 장면을 보고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뿔뿔이 사라졌다.“가자. 대표님 화 나셨어. 보통 일이 아니야.”“손 대표님 사람이 얼마나 좋은데, 부디 남편을 찾길 바라.”“이제 보니 서커스가 문제 있네. 방금 무대에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떠들썩하던 관중석은 텅텅 비어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펑!경호원이 굴착기를 작동해 땅을 파려고 할 때 굉장한 소리가 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