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로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힘을 아껴야 했다."켁켁!" 천면색용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심하게 기침하면서도 입꼬리를 사악하게 올렸다."하늘이 나에게 기이한 뼈대를 가진 사람을 찾아 전형으로 만들게 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전형, 자..." 쾅!천면색용은 전형에게 자폭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입을 떼기도 전에 살해당했다.주인이 사라지자, 전형은 다리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잠자는 듯했다.전형을 일으켜 세우던 염구준은 떠날 준비를 했다. 사람도, 귀신도 아닌 용필을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염구준을 힐끗 보던 순장로가 씨익 웃었다. "자네도 한 실력 하는군.""시간 낭비하지 말고 할 말이 있으면 해라."기분이 안 좋았던 염구준은 매우 차갑게 대꾸했다.순장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자신의 조건을 말했다. "하하, 별일 아니고 그저 저 전형만 두고 가면 된다.""전형이 아니라, 용필이고 내 사촌 형님이야. 나는 오랫동안 형님을 찾고 있었어.""그러니 오늘 반드시 데려갈 것이야.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염구준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그저 되도록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용필’이 두 글자는 짧디짧은 며칠 사이에 무리안 전역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를 찾고 있는 강자가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네가 그 악마냐?" 참지 못한 순장로가 물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난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답했다고 생각하는데? 비켜."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던 염구준은 극도로 차가웠다. 눈은 이미 살기로 번뜩였다. 순장로는 염구준의 소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말투에서도 굴복하려는 기색이 없었다."젊은이, 너무 성급하게 굴면 쉽게 다쳐."대화를 이어갈 수 없으니 좋게 끝날 리 없었다."수안아!"염구준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무시무시하게 날아오는 주먹에 잔뜩 겁을 먹은 순장로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하지만 오른손에 꽉 잡혀 있어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집게에 끼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쾅!엄청난 기운을 머금은 염구준의 철권이 순장로의 얼굴을 가격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힘이 폭발했다. 순장로는 하늘 땅이 맞붙는 느낌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이빨도 모조리 빠졌고 피를 쉴 틈 없이 토해냈다.눈 깜짝할 사이에 두 강자가 쓰러졌다!"죽여라!" 수많은 부하들의 외침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염구준은 신속하게 기운을 돌렸다. 그러자 불꽃이 튀며 사람들 속으로 곧바로 돌진했다. 그는 마치 호랑이처럼 맹렬히 뛰어들어 일방적인 학살을 벌였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쓰레기들은 아무리 모여도 쓰레기 더미일 뿐, 예술품이 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가... 컥." 순장로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한쪽 얼굴은 심하게 부어올라 눈을 완전히 가렸다.상대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이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순장로는 최후의 수법을 쓰기로 했다."모두 물러서라, 내가 상대하겠다!" 순장로는 높게 외치며 광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갈사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위대한 성충이여, 나와 합체하여 그 위대한 계획의 일부분이 되게 해주십시오." "크아악!" 갈사는 주저 없이 입을 벌리고 순장로를 삼켰다. 제 발로 찾아온 먹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제물? 동료를 제물로 바치는 경우는 많지만,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실로 악랄하기 그지없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단지 떠나고 싶다는 나를 목숨을 걸고 막을 필요는 없잖아." 염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형에 이토록 집착하는 상대가 이해되지 않았다.한편, 순장로를 삼키고 나서 기운이 급격히 상승한 갈사는 살기를 내뿜으며 염구준에게 돌진했다. 슉!꼬리 부분의 뱀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린 염구준은 갈
아비규환 속에서 수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염구준이 고개를 돌려보니 용필이 계속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은 보라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이었다!용필에게 다가간 염구준은 오른손으로 맥을 짚었다. 맥상은 매우 혼잡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맥이라고 할 수 없었다.전장에서 수많은 부상을 입었던 염구준은 의술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지금 어떤 상황이지?" 염구준이 물었다. 전문적인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 주술사들은 적어도 염구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안은 고개를 저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형의 제조법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서 누구나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고서적을 뒤져도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상황은 염구준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지금은 고서적을 찾을 시간이 없다. 이대로 더 지체하면 그를 잃을 것이다. "추워..." 두 눈을 감고 용필이 마침내 정상적인 말을 내뱉었다. "일어나 봐요. 어머님이 형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염구준은 크게 외치며 그를 깨우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용필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염구준이 살짝 이마를 짚어보니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염구준은 반보 천인의 기운으로 체온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내가 먼저 용하로 데려갈 테니, 너는 빨리 치료법을 알아봐." "네!" 수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어떤 이들은 지나가는 손님일 뿐, 인연이 아니었다. 염구준은 전신전 내부 통신 채널을 열어 주작에게 전투기를 보내도록 했다.지금은 시간이 곧 생명이었다.청해, 치백병원.전투기에서 내린 염구준은 용필을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체온을 계속 낮추었기 때문에 염구준의 기도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응급입니다!" 염구준의 외침소리가 로비에 있던 모든 이의 주목을 끌었다. 이토록 야만스러운 방식은 흔한 광경이 아니었다."멍하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이들 부부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 "흠, 흠!" 사람들을 데리고 온 손태석이 인기척을 주어서야 두 사람은 떨어졌다. 그는 웃으며 물었다. "다친 곳은 없나?" "없습니다. 저를 다치게 할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요," 염구준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네. 용필을 찾았다고?" 손태석은 계속해서 염구준을 살피며 정말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네, 지금 응급실에 있습니다," 염구준은 엄숙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사촌 이모는 다급히 염구준의 손을 잡고 물었다. "많이 심각한 거야?"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던 그녀는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손씨 그룹에서 먹고 자는 걱정은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괜찮아요. 형님은 조금 다쳤을 뿐이에요. 곧 나올 겁니다." 거의 무너질 듯한 사촌 이모를 보며 염구준은 차마 충격을 안겨 드릴 수 없었다. "진짜지?" 응급실의 빨간 글씨를 보며 이모는 반신반의했다. "당연하죠. 제가 여기까지 모셔 왔는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죠." 염구준은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무리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반인의 인식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응급실 문이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왔다. "보호자는 어느 분이시죠?" "제가 엄마입니다." 이모가 급히 다가갔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잖아요.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의사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날카로운 수술칼로도 피부를 뚫지 못하니, 인형이라고 생각할 만했다. 전형의 몸은 철처럼 단단했다. "인형이요?" 이모는 어리둥절해하며 옆에 있는 염구준을 보았다. 그가 설명을 해주길 바랐다. 통화 속에서 분명 아들을 찾았다고 했는데, 왜 인형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염구준은 용필을 안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 다음 기운으로 그의 체온을 낮추었다. "용필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들을 본 이모가 울먹이며 달려왔다. 오랜만에 아들을 만났지만, 생명이 위태롭다는 말에 마음이 복잡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염구준은 급히 제지했다. 용필의 지금 상태로는 주위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영안실에 들어선 염구준은 용필을 냉동고에 눕혔다. 기운 소모가 많이 줄었다.손가을과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도착했다. "솔직히 말해줘. 용필이 살 수 있어?" 이모는 아들을 바라보며 울먹였다. "실력 좋은 친구가 있는데 지금 여기로 오고 있어요." 그는 약속을 할 수 없었기에, 이 정도로 대답했다.전형의 문제는 주술사들도 확신할 수 없었다. 듣고 있던 손태석이 말했다."이 다리도 그분이 치료한 거여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쯤이면 도착해야 할 이제마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염구준이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먹고 있는 듯 말하는 것이 어눌했다. "... 곧 도착합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염구준은 차갑게 물었다. "하하, 청해에 왔으니 당연히 매운탕은 먹어야죠." 이제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갈수록 가관이로군! 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위급상황입니다. 부디 신중히 행동하세요!" 이 말의 무게를 이제마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염구준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영안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가 걸어왔다. 문이 열리고 가운을 입은 자가 들어섰다. 그 사람의 가운은 조금 달랐다."저희와 함께 가시죠!" "어디를 말씀인가요?" 염구준은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철근 정신병원으로요." 상대방은 매우 진지했다."... " 염구준은 그 자리에 벙졌다. 그들이 자신의 어떤 점에서 이런 진단을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염구준이 반응이
"영안실? 이런,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다네."문밖에서 늙은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제마가 도착한 것이다."빨리 들어오세요."염구준은 재촉하기 바빴다."조급해 하지 말아요. 숨이 붙어있는 한 치료할 수 있어요."이제마는 생명 신호를 느끼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용필의 맥을 짚고, 눈을 뒤집어 보던 그는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전형법에 따라 만들어진 몸인데, 주인이 이미 죽어 체내에 흐르는 주술사의 피가 제어되지 않아 폭주하고 있군요."이게 바로 신의의 실력이다. 한눈에 문제의 근원을 파악했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은침으로 피를 뺀 다음에 혈을 봉인해야 해요."시간이 없어 이제마는 대충 설명했다.염구준은 확신하지 못하는 이제마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한번 해봅시다." 염구준은 갈팡질팡하는 사촌 이모 대신 결정을 내렸다."네!"고개를 끄덕이던 이제마는 침구 세트를 꺼내 준비했다."하, 이번엔 미친 노인이군. 왜 인형을 괴롭히는 거지?"주치의는 한숨을 쉬었다."젊은이, 함부로 말하지 말게나."이제마는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는 약간의 분노를 띠고 있었다.단지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의 의술을 의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인형이 아니고 살아 숨 쉬는 사람이다."하, 낡은 침구 세트를 들고 있다고 모두 신의는 아니죠." 주치의는 서양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한의학을 약간 무시하는 눈치였다."침술의 오묘함을 자네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내가 신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차라리 내기 하는 게 어떤가?"상대가 한의학을 깔보고 있으니 한번 겨뤄보고 싶었다."어떤 내기를 할 건가요?" 주치의는 흥미를 보였다."내가 침을 놓았을 때, 환자가 깨어나면 자네가 지는 거야. 그 후 환자를 볼 때마다 ‘한의학이 제일이다’라고 말해야 하네. 어떤가?""당신이 지면요?"주치의가 되물었다."그건 자네가 정하면 되네
감동 받은 주치의는 이제마를 인정하며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의사들이 모두 나를 이제마라고 부른다네." 이제마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마! 주치의는 깜짝 놀랐다. 전설 속 그 사람, 그저 숨만 붙어있다면 뭐든지 고칠 수 있는 그 신의였다.실제로 존재했고, 지금 바로 눈앞에 있다!"신... 신의님,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요." 주치의는 순간 팬으로 바뀌었다.태세 전환이 너무 빨랐다."조금 자중하시죠? 다시 기절했잖아요." 염구준이 말했다. "괜찮아요. 기와 혈이 순조롭지 않을 뿐입니다. 침을 몇 번 더 놓으면 돼요." 이제마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는 듯했다.이후, 용필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이제마는 계속해서 침을 놓았다. "이모, 안심하세요. 신의님이 치료하시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손가을이 위로했다. "그래!" 다른 방법이 없었던 이모는 믿어 보기로 했다.밤이 되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던 염구준과 다른 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 발소리를 들은 염희주가 문 쪽으로 달려갔다. 이 묵직하고 안정적인 소리는 틀림없이 아빠의 발소리였다."우리 천사 아가씨 점점 예뻐지네." 염구준은 그녀를 안아 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놀이공원 가고 싶어요." 염희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좋아, 내일 엄마랑 같이 가자!" 염구준은 흔쾌히 동의했다. 딸과 아내를 바라보며 이것이 행복이라고 느꼈다.반디는 청해에서 가장 큰 놀이공원으로, 항상 북적였다.오늘은 햇빛이 찬란했다. 염구준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딸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아빠, 설탕 과자 먹고 싶어요." "그래!" "아빠, 솜사탕!" "그래!" "아빠, 롤러코스터 탈래요." "안 돼, 그건 위험해." 즐겁게 놀다 보니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갔다. 즐거운 시간은 항상 빠르게 흘러간다! "힘들지?" 염구준은 물티슈를 꺼내 아내의 땀을 닦아주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슈퍼맨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높이?’“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남자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염구준이 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인사받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옆으로 고개를 돌린 염구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내와 딸이 없어졌다.“꼬마야, 그런데 어쩌다가 저기까지 올라가게 된 거야?”염구준이 아이에게 물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한 아저씨가 갑자기 절 저기에 매달았어요.”아직 진정되지 않았는지, 남자 아이가 울먹이며 답했다. 염구준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범인이 짐작되지 않았다. 그는 우선 멀리 가지 못했을 범인을 찾아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로브를 입은 두 인영이 손가을과 염희주를 끌고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천무산, 그는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죽을라고!”염구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가족을 건드리다니,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으리라!반면, 검은 로브 인영들은 손가을과 염희주를 재촉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빨리 움직여!”“아저씨들 나빠! 아빠가 오면 다 혼내 줄 거야!”염희주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 어린 게 아주 입이 험하구나. 얼굴에 칼자국 내줘?”두 인영 중 한 명이 악랄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했다. “그냥 아이잖아. 건드리지 마!”손가을이 기겁하며 아이를 자기 뒤로 숨겼다. “우리 아빠 최강이야! 난 아저씨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하지만 염희주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큭, 그럼 어디 너희 아빠보고 지금 오라고 해!”남자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아주 완벽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절대로 단기간 내에 염구준이 따라올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때,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
사람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작은 더 빠르게 공격해 몇 분만에 개조 로봇을 부숴버렸다.이런 공격이 몸에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괜찮아?"한편, 설웅은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로 달려갔다."도련님,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설웅을 본 후 감동에 겨워 그를 에워싸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설웅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걸 보니 그들은 최근에 고생한 게 모두 보람차게만 느껴졌다.곧바로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작과 백호를 소개해주었고, 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소개를 다 들은 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염구준 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탐험가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한 뒤 설씨 가문의 주둔지에 머물렀다.진실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설씨 가문의 사람들 중 혹여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가 고자질을 할까봐서였다. 오랫동안 예속되어 왔으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한편, 눈밭에서 풀려난 감독관은 다른 광산까지 미친듯이 달려갔다. "너희 우두머리를 만나야겠으니 빨리 소식을 알려!""백어, 뭘 이렇게 급해해? 도망온 사람처럼 말이야."그를 본 이곳의 감독관이 농담하듯 말했다. 두 광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평소에 서로 왔다갔다하며 잘 알고 지냈다."백씨 가문의 주둔지에 있던 광산이 침략 당해서 보고해야 해.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있지?" 백어는 벌벌 떨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청목 조직은 등급이 삼엄해서 그의 신분으로는 본부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몇몇 감독관들은 입꼬리가 내려가더니 크게 놀라했다.남극 빙원에서 감히 청목 조직과 맞서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직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더더욱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얼른 따라와!" 이곳의 감독관은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이렇게 큰 일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그 후 백어는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는 본부에 보고했
펑! 펑!전신지상 고수의 공격은 강력했다.주작은 마치 썩어빠진 나무를 자르듯 개조 로봇들을 하나씩 물리쳤다.이 실력이라면 고철덩어리도 자를 것 같았다.상대방의 실력을 보고 담당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개조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꺽다리. 저년을 죽여!”꺽다리는 최고 병기였다.“접수.”개조 로봇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주작과 주먹다짐을 벌였다.쿵!쌍방의 실력은 비슷해서 한 번 치고 뒤로 물러났다.전신지상의 개조 로봇이었다.개조 로봇은 잠시 부품들을 재정비하더니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목표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매서운 공격이 다가올 때마다 주작은 피할 수 없어서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한동안 쌍방은 치고 박고 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가서 설웅을 죽여.”담당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개조 로봇은 맷집이 세고 마모에 강하며 보험도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딱 한 가지 단점 융통성이 없었다.탁탁!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개조 로봇들이 설웅을 향해 돌진했다.한 켠에서 주작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그를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부릉부릉!위급한 순간, 마침 스노우모빌의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백호가 현장에 나타났다.그는 스노우모빌을 세우기 전에 몸을 날려 개조 로봇을 폐철로 만들었다.또 전신지상의 고수가 나타나자 담당자는 골치가 아팠다.조직에서 전신지상인 로봇을 한 대만 주어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5분도 안 되어서 개조 로봇들이 모두 부품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이봐. 나랑 좀 놀자.”백호가 담당자에게 말을 건넸다.단진 무성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싸울만했다.“다들 뛰어!”담장자가 말하는 동시에 부하들이 바로 도망쳤다.“컥!”그런데 얼마 뛰지 못하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아찔했다.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가슴에 피가 묻은 손바닥이 뚫고 나온 것이다.백호는 손칼 하나로 그를 황천길로 보냈다.휙!그는 손에 묻은 피를 휙휙 털어내고는 다
이번에 가족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우리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어요.”주작이 보고했다.“알았어. 먼저 상황을 살펴보고 있어. 우리도 곧 도착해.”뒤에서 염구준이 지시를 내리고 위치를 파악했다.10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전속으로 달린다면 금방이면 도착한다.“일단 가서 보자.”주작도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눈 위에 엎드려 포복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기어갔다.그리고 고개를 쏙 내밀어 전방을 살펴봤다.설웅이 말한 주둔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광산 같았다.그가 집이 맞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잘못 왔다고 착각했을 것이다.광활한 광산에서 욕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렸다.퍽!“당장 일어나, 아니면 때려죽인다.”“흑흑. 제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가 버티지 못해요.”한 소녀가 노인을 보호하며 애원했다.바닥에 엎드린 노인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방한복이 피에 흠뻑 젖었다.“차라리 잘 됐지. 버티지 못하면 바로 뒷산에 던져.”현장 감독 담당자가 채찍을 흔들며 쏘아붙였다.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소녀는 흐느끼면서 애원했다.퍽!“하하하. 꺼져!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담당자는 소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웃었다.그래도 소녀는 노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설웅이 이를 갈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소리질렀다.“때리지 마! 나한테 덤벼!”얻어 맞던 소녀는 바로 설웅의 친여동생이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작은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우리 들통났어요.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어떡할까요?”주작이 바로 보고했다.“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지.”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백호 가서 지원해. 나머지는 나한테로 와.”전신지상 고수 두 명이 나서면 충분하니 반천인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염구준은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설씨 가문 개똥에도 쓸모없는 도련
“…”우두머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내고 두 손으로 소중이를 감쌌다. 어엿한 무성지상 고수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안타깝지 그지없었다.그것도 여자에게 홀려서 소중이까지 망가져버렸다.“저년을 쳐라!”나머지 부하들은 그제야 반응하고 우르르 쓸어왔다.방심한 탓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하. 다 쓸어와도 소용없어.”주작은 가볍게 웃음을 치며 전력으로 맞섰다.“젠장, 저년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적어도 전신 경지야. 얼른 튀어!”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주작은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전부 쓰러트렸다.염구준이 한 놈이라도 살려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죽였을 것이다.“말해.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 본거지는 어디야?”주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고 은밀하게 말을 돌렸다.첫 번째 질문은 가짜이고 두 번째가 진짜 목적이었다.“청…”펑펑!잔뜩 겁을 먹은 부하가 말하려고 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미행하던 일행이 전부 죽었다.주작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설웅 곁으로 다가가 전신 영역으로 총알을 받아냈다.이 정도 공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저격수가 1킬로미터 밖에 있습니다.”설웅을 보호해야 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착했어.”마침 염구준이 저격수 뒤에 나타났다.첫 총성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간 것이다.“언제 왔어?”저격수는 뒤에서 말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퍽!염구준은 기운으로 저격수를 밀쳐내고 평가를 내렸다.“방금 도착했지. 사격은 봐줄만했는데 자아 보호 실력은 엉망이네.”“아악!”저격수는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면서 비수를 꺼냈다.“넌 뭐야?”염구준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갔다.“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을 앗아갈 사람이지.”“꿈 깨!”저격수는 비수를 들고 죽을 각오로 공격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그 자리에서
“고객님, 안목이 있으시네. 우리 가게에서 성능이 최고로 좋은 놈이라 1억만 주세요.”사장은 두 손바닥을 비비며 교활하게 웃었다.‘돈에 환장했나.’염구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장이 계속 설명했다.“비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들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운비만 해도 꽤 돈이 들었어요. 우리 집 물건은 이 바닥에서 제일 싼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염구준은 개떡 같은 이유를 듣지 않고 스노우모빌에 올라타 연료 탱크를 점검했다.그리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마디 던졌다.“이체할게요.”휘발유는 그래도 얼지 않는 것으로 사용했다.“네.”거래가 성사되자 사장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은행 계좌를 알려줬다.이것만 팔아도 이번 달은 장사를 접어도 되었다.염구준은 추가로 휘발유 두 통을 샀다.“고객님, 어디 멀리 가십니까?”사장은 염구준이 산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휘발유 두 통에 연료 탱크에 있는 휘발유까지 하면 수백 킬로는 족히 달릴 수 있다.“여행하러 왔으니 멀리는 못 가고 주변만 돌아보려고요.”염구준은 그럴싸하게 대답했다.사장의 손등에 있는 나뭇잎 문신을 보고 이미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남극 빙원에서 청목 조직의 세력은 각 업계로 뻗은 것 같았다.“그렇군요.”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때 이어폰에서 주작의 목소리가 들렸다.“부두 3시 방향 설산 뒤에서 미행자들이 공격할 것 같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잡것들이 고새를 참지 못하고 움직인 것이다.부릉부릉!염구준은 스노우모빌 시동을 걸고 주작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렸다.부두를 나서며 그가 주작에게 지시를 내렸다.“한 명 정도는 살려둬, 물어볼 게 있어.”남은 일행도 스노우모빌을 사고 각자 출발했다.부두 근처에는 워낙 스노우모밀을 대여하는 유람객들이 많아서 이상한 티가 나지 않았다.설산 반대편에서 주작과 설웅은 각자 스노우모빌을 타고 천천히 달렸다.그때 뒤에서 모터가 몇 대 따라오
“알았어. 함께 청목을 처단하자.”“작전에 참여한 걸 환영해. 그럼 너와 청목 사이의 원한과 그놈의 행방을 말해 봐.”염구준이 이어폰을 하나 건넸다.이번 작전에서 조력자 한 명이 늘었다.설웅은 유골을 품에 안고 가족들의 사연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우리 설씨 가문은 적을 피하려고 남극 빙원에 도피했어. 그곳에서 일찍 정착한 편이었어. 빙원에서 생활은 무료했지만 가족들은 서로 아끼고 보살펴서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청목이 나타난 거야. 우리를 자신의 노예로 삼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따르지 않자 바로 주먹을 휘두르더라고. 참지 못한 사람들은 반항하다가 죽고 나머지 가족과 노비들은 끌려가서 생체실험을 당했어. 그놈은 완전히 미친놈이야!”설웅은 서러움에 북받쳐 마지막에 고함을 질렀다.“청목의 전력과 부하들의 실력, 그리고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설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몰라. 아버지는 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지만 한 주먹도 받아내지 못했어.”반천인 경지는 전신 경지 고수를 한 주먹에 죽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전신 경지는 그럴 수 없다.“됐어. 쉬고 있어.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마.”염구준은 본인들 객실로 돌아가 짧게 회의를 열었다.지금 흑풍이 청목과 손을 잡아 반천인 경지 고수가 두 명이나 되어서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그동안 염구준이 옥패의 무술비법을 베껴서 전신전의 부하들에게 보여준 덕에 전체적으로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백호, 주작, 현무는 전신지상 경지에 도달하고 나머지 전왕들은 전신 경지에 도달해 반천인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이어서 며칠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유람선을 내릴 때 설웅은 주작과 한 팀으로 움직이고 나머지 일행은 신분을 감추려고 캐리어를 든 유람객으로 분장했다.주작은 여자라 염구준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일부러 안배한 것이다.“존경하는 유람객들 주의하십시오. 남극 빙원에 도착했으니 여기서 이틀 정착하겠습니다. 이곳의 치안이 복잡하여 가이드가 없거나 강력한 실력이
“깨어났네.”그때 청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방금 그를 구할 때 반항할까 봐 염구준이 손으로 기절시켰다.“윽!”청년은 몸을 비틀며 일어서더니 뒷목을 문지르며 눈을 떴다.“당신들 뭐야?”정신이 들자마자 일행을 본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계했다.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해서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졌다.“널 구한 사람이다.”염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왜 나를 구했어?”“난 청목의 적이니까. 아까 보니까 너도 청목한테 원한이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손을 잡는 게 어때?”“그런 당신은 무슨 원한이 있지?”그 말에 염구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질문이 끊기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다.“알았어. 묻지 않을게.”청년은 흠칫 놀랐다.그가 묻지 않으니 이번에 염구준이 질문했다.“이름이 뭐야?”“설웅이야. 남극 빙원 설씨 가문의 소주다.”설웅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하지만 염구준이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다.“난 청목을 죽이려고 남극에 가는 중이야. 나랑 같이 가지 않겠나?”만약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얘기를 해도 의미가 없었다.“그건…”설웅은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솔직하게 말해서 꿈에서도 청목을 죽이고 싶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염구준의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현실적이지 못해서 허풍이라 여겼다.“참, 아저씨는 어디 있어?”설웅이 흥분하며 물었다.사람은 죽었지만 여태 그를 돌보았으니 제사라도 치러주고 싶었다.“책상 위 함에 있어. 내가 이미 화장하고 유골을 유골함에 넣었어.”염구준이 대답했다.사람도 구했는데 시신을 거두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마워. 이 은혜는 죽지 않는 한 꼭 갚을게.”설웅은 유골함을 끌어안고 슬픈 표정으로 객실에서 나갔다.그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더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이 문을 나서면 더는 널 도와주지 않겠다. 너도 곧 죽음을 당하겠지.”염구준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매니저는 찍 소리도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쳤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 죽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그때 청년이 일어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희들 저주할 거야. 청목 존주도 저주할 것이다.”청목 존주의 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염구준은 가슴이 벌렁거리고 뇌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친구의 친구는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적의 적은 또 말이 달랐다.염구준 일행은 남극 빙원에 있는 청목의 행적을 모르고 있으니 안내자가 있다면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그가 작은 소리로 부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시간 됐다. 죽어!”우두머리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칼을 높이 들었다.바로 그때 모든 전등이 꺼졌다.갑자기 어두워지자 홀에 비명이 쏟아지고 서로 밀치고 도망치느라 난장판이 되었다.“도망쳐! 살인이야!”누가 고함을 지르자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아아악!”여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피바다에 쓰러졌다.그들은 죽을 때까지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몰랐다.옆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보호하느라 정신없어서 누가 죽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염구준 일행은 야간 투시경을 끼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홀에서 나왔다.계획은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백호는 어깨에 청년을 메고 도망쳤다.“CCTV를 피해서 객실로 돌아가자.”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구한 것을 반드시 비밀로 해야 했다.아니면 저들이 쫓아오는 날에 일이 더 귀찮아질 것이다.“네.”백호는 혹시나 들통날까 봐 커다란 캐리어를 찾아 젊은이를 집어넣었다.객실에 돌아온 후, 염구준은 잠든 청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 녀석이 있으면 남극 빙원에서 길을 헤매고 다니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