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수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목소리도 싸늘하게 가라앉으며 약간의 살기마저 느껴졌다. 남자의 말은 그녀가 하여금 전 문주에게 당했던 치욕스러운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자극된 것이다.“거 되게 까탈스럽게 구네.”남자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줄도 모르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역겹고도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죽어!”수안이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자신의 전갈을 보내 그의 목을 찔렀다. 남자의 목을 찌른 전갈의 꼬리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었다.“악!”남자가 비명과 함께 입에 거품을 문 채 바닥에 쓰러졌다. 전신 경지에 가까운 독충이 품은 독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 사람이 죽었어!”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남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흩어졌다. 마냥 예쁘기만 한 여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높은 경지를 가진 주술사였다!이때, 염구준이 수영장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수안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또 사고 쳤어?”“아니, 먼저 시비를 걸잖아요.”수안이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답했다. 전갈문 사람들이 봤더라면 기겁할 모습이었다. 그만큼 수안은 염구준을 의지하고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이런 표정이 튀어나왔다.염구준은 철없는 여동생을 보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상대가 어느 경지에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함부로 건드리다니,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 수안도 수안이지만, 죽은 남자가 한심스러웠다.“그 쪽은 일 잘 해결됐어요?”수안이 전에 있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물었다.“순조로워.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어.”염구준이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수안이 눈을 반짝이며 존경어린 표정으로 감탄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저 남자가 남자친구인가 보네. 그런데 차림새가 좀 촌스럽지 않나?”“예쁜데 강하기까지? 정말 아깝다, 아까워.”“내가 10년만
“아바사, 너 죽고 싶어?”옆에 있던 고 대사가 고함을 쳤다. 어느 조직이던 배신자를 용납할 리 없었다.아바가사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애서 담담한척 답했다.“하하, 그렇게 말할 것까지 있나요? 저희가 발전하려면 이정도에서 서로 헤어지는 것이 나아요.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저희가 상납한 돈이 얼마인데, 충분히 벌지 않으셨나요?”아바사는 결코 의지할 곳이 없이 막 나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면전을 반가워할 인물도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나오자 고 대사 옆에 함께 있던 몇몇 주술사들이 항의하려 들었지만, 고 대사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손을 들어 제지했다.“아바사, 좀 전에 했던 말 취소해. 그럼 오늘 있었던 일 다 없던 걸로 해줄게.”이것은 고 대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고였다. 하지만 아바사는 이 말을 듣자 돌연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고 대사, 당신도 이제 좀 적당히 하지 그래? 그쪽이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야?”그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한 번에 폭발했다. 그러더니, 돌연 고 대사한테서 시선을 떼더니 수안을 향해 삿대질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너, 네가 전갈문 문주면 다야? 감히 날 무시해?”수안은 뜻밖의 공격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안 봐준다. 배신사에겐 죽음뿐! 쳐라!”고 대사가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배신자가 나타난 이상, 그는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줬는데도 못 잡은 건 상대였다. 봐줄 이유가 없었다. 고 대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주술사들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먼저 공격한 건 그쪽이니, 날 원망하지 마라.”아바사가 전혀 두려움이 없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부하들도 앞으로 나섰다. 그들 손엔 모두 처음보는 형태의 무기들이 들려 있었다. 곧이어 그것이 공격해오는 주술사들을 향해 겨누었다. 저게 뭐지? 주술사들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발사!”아바사의 명
“컥!”고 대사가 뻗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두둑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바사의 숨이 끊겼다. 결국 그가 발명한 무기는 진정한 강자에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던 나머지 경호원들도 순식간에 금색 두꺼비에 당해 뿔뿔이 흩어졌다. 음파 무기에 한계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가였다. 아바사의 편을 들었던 사람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고 대사 등이 당하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복이 두려웠다. 하지만 고 대사는 남은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시체를 염구준 쪽으로 내던졌다.“피하고 했지만, 결국 이렇게 마주치게 됐군.”아바사가 그를 이곳으로 초대하지만 않았어도, 염구준과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아바사, 망할놈! 배신한 것도 모자라,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다니!“그쪽이 진짜 배후인가 보네? 그 거대한 지네의 진짜 주인.”염구준이 고 대사를 훑어보며 빠르게 경지를 파악했다. 전신 이상, 어쩌면 그 거대 지네보다 더 강한 자.“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어. 그 지네는 나와 같은 천무산 소속일 뿐이야.”고 대사가 굳이 정정했다. “흠….”염구준이 코웃음 치며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같은 패라는 거 아니야? 그 거면 돼. 괜히 사람 잘못 죽이고 싶진 않으니까.”그는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는 대답에 고 대사가 살기를 피우며 염구준에게 짜증스레 물었다.“이해가 안 되네.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 왜 느닷없이 우리 성충과 사람들을 죽이지?”고 대사는 염구준이 이렇게까지 천무산을 공격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차피 마지막이었다. 염구준도 이렇게 된 이상, 말해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죽인 죄, 그것만으로 부족한가?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가 죽인 사람들, 용하국 사람들이라는 건 알고 있나?”그 말을 들은 고 대사는 더 의
수안과 본명충의 호흡은 아주 완벽했으며, 그만큼 위력도 대단했다. 하지만 상대는 경력이 많은 주술사, 전투력 또한 전신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어이, 예쁜이. 나랑 같이 가는 거 어때? 내가 겉보기엔 이래도, 경험은 네 옆에 있는 애송이보다는 아주 풍부하거든.”전투 중인데도, 고 대사는 아주 여유롭게 수안을 우롱했다. 즉, 전력을 다하고 있는 수안과 달리 상대는 아직 힘을 다 쓰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실력 차이가 났다.“망할 늙은이, 감히 나한테 그 따위 소리를 지껄여? 다시는 제 구실 못하게 만들어주마!”수안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분노했다. 그러나 무섭기 보다는 오히려 더 예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큭, 진국이구나!”고 대사가 음흉하게 웃으며 눈을 빛냈다. “이익!”그 말에 수안은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겉으론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비슷한 상황에 닥치면 자꾸만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염구준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대로는 농락당할 뿐, 절대로 상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공격에만 집중해!”염구준이 수안을 향해 외쳤다.사람에 따라 별것 아닌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수안에겐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수안은 그의 말에 겨우 안정을 찾으며 과거를 묻어두고 오직 공격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무리 고 대사가 추파를 던져도 그녀에겐 통하지 않았다. 전투 중 상대의 약점을 읽어내고 마음을 흔들어 공격에 빈틈을 만드는 것, 이건 고 대사의 오랜 습관이자 전술이었다. 하지만 수안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자, 오히려 빈틈이 생긴 것은 고 대사였다. 그 순간, 수안은 놓치지 않고 바로 그의 양손을 못 움직이게 붙잡았다. 그 틈을 타, 금색 전갈이 그의 등으로 올라타 순식간에 독 주머니가 가득 든 꼬리를 찔러 넣었다. 강력한 독이 온 몸에 주입되자 고 대사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수안은
“부, 불가능해! 그건 내가 정성을 들여 만든 혼합 고독인데!”고 대사는 자신이 만든 고독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일단 한번 몸에 닿으면 뼈까지 스며들어 절대로 해독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는 손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그 고독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수안마저 멀쩡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오라버니, 제가 또 폐를 끼쳤네요.”보기 좋게 먼저 나섰으나, 패배하게 되니 수안은 무척 민망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만나 어느정도 타격을 입힌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어.”염구준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 나아가 덤덤히 고 대사와 그 떨거지들을 향해 말했다.“그냥 다 같이 덤벼. 아까운 내 시간 잡아먹지 말고.”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그에겐 똑같았다. “흥, 사람 뭘로 보고. 나 혼자로도 충분해.”고 대사가 다시 금색 두꺼비를 소환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어리석긴!”염구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심스럽게 상대를 바라봤다. 너무 약해 싸울 맛도 안 날 것 같았다. “건방지긴! 나중에 죽기 진적에나 후회하지 마라!”고 대사는 이 말을 끝으로 곧바로 두꺼비와 함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사방에서 금빛이 번쩍거리며 두꺼비가 혀를 날름거리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너무나도 쉽게 두꺼비의 공격을 잡아채며 순식간에 수영장 안으로 던져버렸다. 곧이어 고 대사도 독을 뿜어대는 주먹으로 염구준을 향해 강한 펀치를 날렸다. 그냥 일반 사람의 눈으로는 그림자가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고 인식될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였다.염구준도 그 공격에 맞서 태조장권을 쏘았다. 주먹끼리 부딪히며 주변 공기를 뒤흔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번이나 되는 주먹이 오갔고, 고 대사는 주먹이 부으며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점 밀리기 시작한 고 대사,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염구준의 주먹이 그의 가슴에 닿은 후였다. 순식간에 갈비뼈가 부러지며 입과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자, 이제 후회는 누가 하지?”멀
승리를 얻었지만, 염구준은 딱히 감흥이 없어 보였다. “신호 보내. 제정도 문주에게 이제 사람 데리고 와도 된다고.”염구준이 한쪽에 있는 수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곧이어 신호탄이 하늘로 쏘아졌고, 폭홍구의 하늘은 밝은 빛으로 뒤덮였다. 잠시 뒤, 사람들을 대동하고 온 제정도가 공손히 염구준에게 말을 꺼냈다. “염 선생님,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그러자 염구준이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저쪽 구석에 보면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창고가 있어요. 거기 사람들 갇혀 있으니까, 구해오세요.” 그렇게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구출되었다. 몸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사람들은 바로 집으로 보내졌고 고독에 중독된 사람들은 전갈문으로 이동돼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폭홍구는 제정도가 관리하게 되었다. “수안아, 독무대회 얼마 남았지?”상황이 모두 정리되자, 다시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온 염구준이 물었다. “여섯 시간 정도 남았네요.”수안이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독용촌, 이곳은 원래부터 많은 주술사들이 자리잡고 있는 구역이었다. 하지만 독무대회까지 열리는 더욱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밝아오고, 독용촌 외각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 채 독무대회 입장을 기다렸다. 독용촌에 도착한 염구준과 수안도 긴 줄을 보고 새삼 독무대회의 열기를 실감했다. “오라버니, 초대장 없는 사람들은 줄을 서서 심사를 통과해야 해요.”수안이 입장 규칙을 설명하며 자신의 초대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염구준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먼저 들어가. 난 줄 서서 들어갈게.”방법이 있는데, 그는 굳이 특권을 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저도 같이 줄 설까요? 아직 대회 시작까지 시간 남았잖아요.”수안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니, 내 목적은 사람 찾는 거잖아. 너랑 같이 있으면 너무 눈에 띄어서 행동하기 불편해.”염구준이 사정을 설명하며 곧바로 줄에 합류했다. 전갈문 문주 자리에 있는 수안을
머리에 큰 충격과 함께 입과 코에서 피가 베어 나왔다.줄 서고 있던 주변 사람들 모두 통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막상 염구준은 귀찮은 파리를 잡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툭툭 털뿐이었다.“스스로 얼굴을 들이밀면서까지 때려달라는 놈은 또 처음 보네.”“네, 네 이놈! 감히 우리 도련님을 때려?”경호원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먼저 때려달라고 한 건 그쪽 도련님이잖아? 안 될 거 뭐 있어?”그 말과 함께 염구준은 유유히 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브루스가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멍청하게 뭘 보고 있어? 저 놈을 잡지 않고!”처음 당해보는 굴욕이었다. 브루스의 명령에 경호원들 모두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몇번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것은 염구준이 아니라 경호원들이었다. 얼마나 움직임이 빨랐는지, 공격에 맞은 경호원들은 물론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도 전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비를 베풀어줬으면, 눈치껏 물러날 것이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다니.”염구준이 브루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에 브루스는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압박감에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어렴풋이 염구준의 실력을 알아차리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강자는 원래 건드리는 법이 아니었다. “이제 제가 심사 받을 차례죠?”염구준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대회 입구 쪽에 진을 치고 있는 직원을 향해 다가가며 친절하게 물었다. “네, 네! 가서 저 기계를 힘껏 치시면 됩니다. 힘이 3 이상 측정되면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직원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염구준의 질문에 답했다. ‘음… 가볍게 치면 되겠네.’염구준은 별로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않기로 했다. 퍽!하지만 주먹이 기계를 살짝 스친 순간, 기계의 수치가 미친듯이 오르더니 이내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멍한 표정
남자가 번화한 거리를 지나 외딴 곳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마치 누가 쫓아올까 두려운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염구준의 기척을 알아차리긴 역부족이었다. 염구준은 소리소문 없이 남자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곧이어 남자가 한 오두막집 앞에 멈춰서더니, 경계가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다 이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렇게 그가 오두막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자갈 크기의 벌레들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순식간에 오두막 속으로 들어갔다. 아마 감시용으로 사용된 벌레들 같았다. 염구준은 이 모든 것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염구준은 발끝에 최대한 힘을 덜 준 채 가볍게 오두막 주변에 있는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 편이 벌레들 몰래 오두막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기 쉬웠기 때문이다. 오두막 안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둘, 하나는 비교적 평범했으나, 한 명이 심상치 않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일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던 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순 장로님.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옥패를 미끼를 사용하니,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남은 한 명, 소좌가 대답했다. “하하, 아주 좋아. 다시 한번 성충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겠군.”순 장로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몇시간 전, 그는 고 대사가 한 정체불명 인물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 대사의 부고는 꽤 큰 일이었지만, 일을 여기서 그르칠 수는 없었다. 그는 소좌에게 더 철저히 상황을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소좌가 살짝 망설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으면 얼른 해. 시간 끌지 말고.”순 장로가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어 보이는 소좌를 보며 재촉했다. 그러자 소좌가 품에서 한 명단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번 대회에 참석하기로 한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
사람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작은 더 빠르게 공격해 몇 분만에 개조 로봇을 부숴버렸다.이런 공격이 몸에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괜찮아?"한편, 설웅은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로 달려갔다."도련님,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설웅을 본 후 감동에 겨워 그를 에워싸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설웅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걸 보니 그들은 최근에 고생한 게 모두 보람차게만 느껴졌다.곧바로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작과 백호를 소개해주었고, 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소개를 다 들은 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염구준 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탐험가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한 뒤 설씨 가문의 주둔지에 머물렀다.진실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설씨 가문의 사람들 중 혹여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가 고자질을 할까봐서였다. 오랫동안 예속되어 왔으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한편, 눈밭에서 풀려난 감독관은 다른 광산까지 미친듯이 달려갔다. "너희 우두머리를 만나야겠으니 빨리 소식을 알려!""백어, 뭘 이렇게 급해해? 도망온 사람처럼 말이야."그를 본 이곳의 감독관이 농담하듯 말했다. 두 광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평소에 서로 왔다갔다하며 잘 알고 지냈다."백씨 가문의 주둔지에 있던 광산이 침략 당해서 보고해야 해.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있지?" 백어는 벌벌 떨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청목 조직은 등급이 삼엄해서 그의 신분으로는 본부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몇몇 감독관들은 입꼬리가 내려가더니 크게 놀라했다.남극 빙원에서 감히 청목 조직과 맞서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직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더더욱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얼른 따라와!" 이곳의 감독관은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이렇게 큰 일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그 후 백어는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는 본부에 보고했
펑! 펑!전신지상 고수의 공격은 강력했다.주작은 마치 썩어빠진 나무를 자르듯 개조 로봇들을 하나씩 물리쳤다.이 실력이라면 고철덩어리도 자를 것 같았다.상대방의 실력을 보고 담당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개조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꺽다리. 저년을 죽여!”꺽다리는 최고 병기였다.“접수.”개조 로봇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주작과 주먹다짐을 벌였다.쿵!쌍방의 실력은 비슷해서 한 번 치고 뒤로 물러났다.전신지상의 개조 로봇이었다.개조 로봇은 잠시 부품들을 재정비하더니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목표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매서운 공격이 다가올 때마다 주작은 피할 수 없어서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한동안 쌍방은 치고 박고 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가서 설웅을 죽여.”담당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개조 로봇은 맷집이 세고 마모에 강하며 보험도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딱 한 가지 단점 융통성이 없었다.탁탁!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개조 로봇들이 설웅을 향해 돌진했다.한 켠에서 주작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그를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부릉부릉!위급한 순간, 마침 스노우모빌의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백호가 현장에 나타났다.그는 스노우모빌을 세우기 전에 몸을 날려 개조 로봇을 폐철로 만들었다.또 전신지상의 고수가 나타나자 담당자는 골치가 아팠다.조직에서 전신지상인 로봇을 한 대만 주어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5분도 안 되어서 개조 로봇들이 모두 부품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이봐. 나랑 좀 놀자.”백호가 담당자에게 말을 건넸다.단진 무성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싸울만했다.“다들 뛰어!”담장자가 말하는 동시에 부하들이 바로 도망쳤다.“컥!”그런데 얼마 뛰지 못하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아찔했다.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가슴에 피가 묻은 손바닥이 뚫고 나온 것이다.백호는 손칼 하나로 그를 황천길로 보냈다.휙!그는 손에 묻은 피를 휙휙 털어내고는 다
이번에 가족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우리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어요.”주작이 보고했다.“알았어. 먼저 상황을 살펴보고 있어. 우리도 곧 도착해.”뒤에서 염구준이 지시를 내리고 위치를 파악했다.10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전속으로 달린다면 금방이면 도착한다.“일단 가서 보자.”주작도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눈 위에 엎드려 포복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기어갔다.그리고 고개를 쏙 내밀어 전방을 살펴봤다.설웅이 말한 주둔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광산 같았다.그가 집이 맞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잘못 왔다고 착각했을 것이다.광활한 광산에서 욕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렸다.퍽!“당장 일어나, 아니면 때려죽인다.”“흑흑. 제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가 버티지 못해요.”한 소녀가 노인을 보호하며 애원했다.바닥에 엎드린 노인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방한복이 피에 흠뻑 젖었다.“차라리 잘 됐지. 버티지 못하면 바로 뒷산에 던져.”현장 감독 담당자가 채찍을 흔들며 쏘아붙였다.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소녀는 흐느끼면서 애원했다.퍽!“하하하. 꺼져!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담당자는 소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웃었다.그래도 소녀는 노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설웅이 이를 갈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소리질렀다.“때리지 마! 나한테 덤벼!”얻어 맞던 소녀는 바로 설웅의 친여동생이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작은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우리 들통났어요.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어떡할까요?”주작이 바로 보고했다.“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지.”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백호 가서 지원해. 나머지는 나한테로 와.”전신지상 고수 두 명이 나서면 충분하니 반천인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염구준은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설씨 가문 개똥에도 쓸모없는 도련
“…”우두머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내고 두 손으로 소중이를 감쌌다. 어엿한 무성지상 고수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안타깝지 그지없었다.그것도 여자에게 홀려서 소중이까지 망가져버렸다.“저년을 쳐라!”나머지 부하들은 그제야 반응하고 우르르 쓸어왔다.방심한 탓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하. 다 쓸어와도 소용없어.”주작은 가볍게 웃음을 치며 전력으로 맞섰다.“젠장, 저년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적어도 전신 경지야. 얼른 튀어!”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주작은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전부 쓰러트렸다.염구준이 한 놈이라도 살려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죽였을 것이다.“말해.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 본거지는 어디야?”주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고 은밀하게 말을 돌렸다.첫 번째 질문은 가짜이고 두 번째가 진짜 목적이었다.“청…”펑펑!잔뜩 겁을 먹은 부하가 말하려고 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미행하던 일행이 전부 죽었다.주작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설웅 곁으로 다가가 전신 영역으로 총알을 받아냈다.이 정도 공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저격수가 1킬로미터 밖에 있습니다.”설웅을 보호해야 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착했어.”마침 염구준이 저격수 뒤에 나타났다.첫 총성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간 것이다.“언제 왔어?”저격수는 뒤에서 말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퍽!염구준은 기운으로 저격수를 밀쳐내고 평가를 내렸다.“방금 도착했지. 사격은 봐줄만했는데 자아 보호 실력은 엉망이네.”“아악!”저격수는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면서 비수를 꺼냈다.“넌 뭐야?”염구준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갔다.“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을 앗아갈 사람이지.”“꿈 깨!”저격수는 비수를 들고 죽을 각오로 공격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그 자리에서
“고객님, 안목이 있으시네. 우리 가게에서 성능이 최고로 좋은 놈이라 1억만 주세요.”사장은 두 손바닥을 비비며 교활하게 웃었다.‘돈에 환장했나.’염구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장이 계속 설명했다.“비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들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운비만 해도 꽤 돈이 들었어요. 우리 집 물건은 이 바닥에서 제일 싼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염구준은 개떡 같은 이유를 듣지 않고 스노우모빌에 올라타 연료 탱크를 점검했다.그리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마디 던졌다.“이체할게요.”휘발유는 그래도 얼지 않는 것으로 사용했다.“네.”거래가 성사되자 사장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은행 계좌를 알려줬다.이것만 팔아도 이번 달은 장사를 접어도 되었다.염구준은 추가로 휘발유 두 통을 샀다.“고객님, 어디 멀리 가십니까?”사장은 염구준이 산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휘발유 두 통에 연료 탱크에 있는 휘발유까지 하면 수백 킬로는 족히 달릴 수 있다.“여행하러 왔으니 멀리는 못 가고 주변만 돌아보려고요.”염구준은 그럴싸하게 대답했다.사장의 손등에 있는 나뭇잎 문신을 보고 이미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남극 빙원에서 청목 조직의 세력은 각 업계로 뻗은 것 같았다.“그렇군요.”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때 이어폰에서 주작의 목소리가 들렸다.“부두 3시 방향 설산 뒤에서 미행자들이 공격할 것 같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잡것들이 고새를 참지 못하고 움직인 것이다.부릉부릉!염구준은 스노우모빌 시동을 걸고 주작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렸다.부두를 나서며 그가 주작에게 지시를 내렸다.“한 명 정도는 살려둬, 물어볼 게 있어.”남은 일행도 스노우모빌을 사고 각자 출발했다.부두 근처에는 워낙 스노우모밀을 대여하는 유람객들이 많아서 이상한 티가 나지 않았다.설산 반대편에서 주작과 설웅은 각자 스노우모빌을 타고 천천히 달렸다.그때 뒤에서 모터가 몇 대 따라오
“알았어. 함께 청목을 처단하자.”“작전에 참여한 걸 환영해. 그럼 너와 청목 사이의 원한과 그놈의 행방을 말해 봐.”염구준이 이어폰을 하나 건넸다.이번 작전에서 조력자 한 명이 늘었다.설웅은 유골을 품에 안고 가족들의 사연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우리 설씨 가문은 적을 피하려고 남극 빙원에 도피했어. 그곳에서 일찍 정착한 편이었어. 빙원에서 생활은 무료했지만 가족들은 서로 아끼고 보살펴서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청목이 나타난 거야. 우리를 자신의 노예로 삼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따르지 않자 바로 주먹을 휘두르더라고. 참지 못한 사람들은 반항하다가 죽고 나머지 가족과 노비들은 끌려가서 생체실험을 당했어. 그놈은 완전히 미친놈이야!”설웅은 서러움에 북받쳐 마지막에 고함을 질렀다.“청목의 전력과 부하들의 실력, 그리고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설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몰라. 아버지는 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지만 한 주먹도 받아내지 못했어.”반천인 경지는 전신 경지 고수를 한 주먹에 죽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전신 경지는 그럴 수 없다.“됐어. 쉬고 있어.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마.”염구준은 본인들 객실로 돌아가 짧게 회의를 열었다.지금 흑풍이 청목과 손을 잡아 반천인 경지 고수가 두 명이나 되어서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그동안 염구준이 옥패의 무술비법을 베껴서 전신전의 부하들에게 보여준 덕에 전체적으로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백호, 주작, 현무는 전신지상 경지에 도달하고 나머지 전왕들은 전신 경지에 도달해 반천인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이어서 며칠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유람선을 내릴 때 설웅은 주작과 한 팀으로 움직이고 나머지 일행은 신분을 감추려고 캐리어를 든 유람객으로 분장했다.주작은 여자라 염구준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일부러 안배한 것이다.“존경하는 유람객들 주의하십시오. 남극 빙원에 도착했으니 여기서 이틀 정착하겠습니다. 이곳의 치안이 복잡하여 가이드가 없거나 강력한 실력이
“깨어났네.”그때 청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방금 그를 구할 때 반항할까 봐 염구준이 손으로 기절시켰다.“윽!”청년은 몸을 비틀며 일어서더니 뒷목을 문지르며 눈을 떴다.“당신들 뭐야?”정신이 들자마자 일행을 본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계했다.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해서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졌다.“널 구한 사람이다.”염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왜 나를 구했어?”“난 청목의 적이니까. 아까 보니까 너도 청목한테 원한이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손을 잡는 게 어때?”“그런 당신은 무슨 원한이 있지?”그 말에 염구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질문이 끊기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다.“알았어. 묻지 않을게.”청년은 흠칫 놀랐다.그가 묻지 않으니 이번에 염구준이 질문했다.“이름이 뭐야?”“설웅이야. 남극 빙원 설씨 가문의 소주다.”설웅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하지만 염구준이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다.“난 청목을 죽이려고 남극에 가는 중이야. 나랑 같이 가지 않겠나?”만약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얘기를 해도 의미가 없었다.“그건…”설웅은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솔직하게 말해서 꿈에서도 청목을 죽이고 싶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염구준의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현실적이지 못해서 허풍이라 여겼다.“참, 아저씨는 어디 있어?”설웅이 흥분하며 물었다.사람은 죽었지만 여태 그를 돌보았으니 제사라도 치러주고 싶었다.“책상 위 함에 있어. 내가 이미 화장하고 유골을 유골함에 넣었어.”염구준이 대답했다.사람도 구했는데 시신을 거두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마워. 이 은혜는 죽지 않는 한 꼭 갚을게.”설웅은 유골함을 끌어안고 슬픈 표정으로 객실에서 나갔다.그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더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이 문을 나서면 더는 널 도와주지 않겠다. 너도 곧 죽음을 당하겠지.”염구준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매니저는 찍 소리도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쳤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 죽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그때 청년이 일어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희들 저주할 거야. 청목 존주도 저주할 것이다.”청목 존주의 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염구준은 가슴이 벌렁거리고 뇌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친구의 친구는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적의 적은 또 말이 달랐다.염구준 일행은 남극 빙원에 있는 청목의 행적을 모르고 있으니 안내자가 있다면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그가 작은 소리로 부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시간 됐다. 죽어!”우두머리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칼을 높이 들었다.바로 그때 모든 전등이 꺼졌다.갑자기 어두워지자 홀에 비명이 쏟아지고 서로 밀치고 도망치느라 난장판이 되었다.“도망쳐! 살인이야!”누가 고함을 지르자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아아악!”여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피바다에 쓰러졌다.그들은 죽을 때까지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몰랐다.옆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보호하느라 정신없어서 누가 죽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염구준 일행은 야간 투시경을 끼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홀에서 나왔다.계획은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백호는 어깨에 청년을 메고 도망쳤다.“CCTV를 피해서 객실로 돌아가자.”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구한 것을 반드시 비밀로 해야 했다.아니면 저들이 쫓아오는 날에 일이 더 귀찮아질 것이다.“네.”백호는 혹시나 들통날까 봐 커다란 캐리어를 찾아 젊은이를 집어넣었다.객실에 돌아온 후, 염구준은 잠든 청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 녀석이 있으면 남극 빙원에서 길을 헤매고 다니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