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번화한 거리를 지나 외딴 곳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마치 누가 쫓아올까 두려운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염구준의 기척을 알아차리긴 역부족이었다. 염구준은 소리소문 없이 남자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곧이어 남자가 한 오두막집 앞에 멈춰서더니, 경계가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다 이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렇게 그가 오두막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자갈 크기의 벌레들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순식간에 오두막 속으로 들어갔다. 아마 감시용으로 사용된 벌레들 같았다. 염구준은 이 모든 것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염구준은 발끝에 최대한 힘을 덜 준 채 가볍게 오두막 주변에 있는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 편이 벌레들 몰래 오두막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기 쉬웠기 때문이다. 오두막 안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둘, 하나는 비교적 평범했으나, 한 명이 심상치 않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일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던 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순 장로님.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옥패를 미끼를 사용하니,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남은 한 명, 소좌가 대답했다. “하하, 아주 좋아. 다시 한번 성충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겠군.”순 장로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몇시간 전, 그는 고 대사가 한 정체불명 인물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 대사의 부고는 꽤 큰 일이었지만, 일을 여기서 그르칠 수는 없었다. 그는 소좌에게 더 철저히 상황을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소좌가 살짝 망설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으면 얼른 해. 시간 끌지 말고.”순 장로가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어 보이는 소좌를 보며 재촉했다. 그러자 소좌가 품에서 한 명단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번 대회에 참석하기로 한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고 있었지만,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흥, 겨우 그정도 실력으로 엿들을 생각을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군.”소좌가 사람들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천무산, 이 개자식들! 뒤에서 이 따위 일들을 꾸미고 있다니, 절대로 편하게 죽진 못할 것이다!”소좌의 벌레에 당한 주술사들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약육강식, 그러게 누가 너희들 보고 약하래?”순 장로가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됐다, 소좌야. 저놈들 다 죽여버려라.”“이 사실을 밖에 알리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군.”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주술사가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소좌는 벌레를 시켜 이들을 시체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우게 했다. 이들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황을 마무리 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눈짓한 뒤 빠르게 현장을 떠났다. 이들의 행적을 모두 지켜보는 사람, 염구준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염구준은 멀어지는 두 인영을 보며 계속 뒤따라야 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한편, 번화가.독무대회가 슬슬 시동을 걸며 시작을 알렸다. 대회는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나 독을 겨루는 것이었다. 독을 중독시키는 자와 독을 해독하는 자의 대결, 패자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독매가 열한 번째 시합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또 누가 도전하실 건가요?”심판의 목소리가 대회장에 울려 퍼졌다. 독을 신기할 정도로 잘 다루는 작은 체구의 여자 아이, 이번에도 독매의 승리였다. “시시해. 왜들 이렇게 약하지?”독매가 껌을 씹으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모두 시선을 피했다. 겉모습은 어린 꼬마처럼 보일지 몰라도, 독매의 실력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때, 슉하고 한 인영이 나타났다. 염구준이었다!그는 원래 순 장로 등을 계속 추적할 예정이었지만, 상대가 기시감을 느
독매가 작은 손을 내밀며 알약 하나를 염구준에게 건넸다. 검은색에 무색무취의 초콜릿 같이 생긴 알약이었다. 염구준은 별 생각 없이 그것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속으로는 독이 퍼지지 않도록 충분히 진기를 풀어 두었다. 겨우 이까짓 걸로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그는 독을 없애고 밖으로 배출했다. 이들은 독엔 능했지만, 경지가 낮아 염구준의 은밀한 움직임을 눈치챌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모두 염구준이 독에 당해 죽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그가 멀쩡한 모습으로 있자, 먼저 정신을 정신차린 심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괘, 괜찮은 겁니까?”“아, 네. 괜찮은데요.”염구준이 담담히 답했다. 독을 섭취한 사람 치고 너무나도 멀쩡한 호흡과 안색, 그리고 의식, 심판은 믿기지 않았다.“말도 안 돼… 이 독은 내가 아니면 해독할 수 없는데….”이 독의 비밀은 오직 그녀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하다니, 독매는 믿기지 않았다.“너무 실망하지 마, 꼬마 아가씨. 너의 실력은 꽤 출중하니까.”염구준이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는 승패에 딱히 관심 없었다. 그저 소란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잠깐만,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더 강한 독이 있으니, 다시 도전해라!”독매가 그를 붙잡으며 억지부리기 시작했다.“그럼, 내놔 봐.”그렇게 염구준은 또 다시 독을 섭취했고, 이번에도 이변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젠 됐지?”염구준이 다시 멀뚱멀뚱한 얼굴로 물었다. 그를 조롱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독 하나를 해독하는 것은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염구준은 독에 또 독을 복용한 셈이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독매가 울먹이며 소매로 눈가를 비볐다. 마치 어린 아이가 게임에 져서 어리광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더 도전하실 분 계신가요?”심판이 군중을 향해 물었다. 사람들은 꼿꼿이 서 있는 염구준의 모습을
그런데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또다른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수안이었다.‘변태 도둑?’염구준은 의아했다. 아무리 눈이 가는 외모라도, 도대체 누가 감히 겁도 없이 전신 경지 강자에게 도전을 했단 말인가?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함정?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순 장로와 소좌가 나눴던 낮의 대화가 떠올랐다.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문을 열고 둘을 따라 나섰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연군 순간, 그는 멈칫했다. 골목 쪽에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염구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골목이 아닌 수안이 떠난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후….”골목 안, 한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발견하진 못했겠지?’남자는 안도하며 조심스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상황을 보고했다.“로버트님, 목표물이 여관을 떠나 북쪽 숨으로 향했습니다.”“좋아. 계속 추적하면서 수시로 보고 올려.”브루스의 아버지, 로버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보고를 올린 남자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계속 그를 추적하라니,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예!”하지만 그에겐 거부할 권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얼굴을 찡그린 채 염구준을 따라갔다.한편, 진작에 꼬리가 붙은 것을 눈치챈 그는 일부러 상대가 잘 따라붙을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비록 표적이 되었지만, 그는 역으로 이 기회를 이용해 뒤에 있는 배후를 캐 한 번에 없앨 생각이었다. 염구준이 멈칫거리며 속도를 조절할 때마다, 뒤에 붙은 감시자는 심장이 쫄렸다. 혹시라도 상대가 자신을 발견했을까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외각으로 빠졌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복면을 쓴 여러 무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서로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복수하러 온 사람들이 당당히 정체를 까발린 채 움직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염구준은 그런 이들을
공중에 독이 발린 가시 그물이 염구준을 덮쳤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즉사였다. 촘촘하고 굵은 쇠 가시, 초록색 독이 뚝뚝, 섬뜩했다. 곧이어 정체불명의 가루가 담겨 있는 구체가 구름 위로 지나며 온 세상을 물들였다. 그렇게 현장은 뿌연 안개가 낀 듯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동시에 공기를 가르고 쏟아진 수많은 화살들, 누구든 이 함정에 걸려든 이상 죽지 않고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전신 강자 정도 되면 살아서 도망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치명상을 피할 수는 없을 터!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염구준의 죽음을 예상했다. “하하, 성공이다! 일 소대, 가서 확인해봐라!”누군가가 지시했다. 사실 다들 그물이 떨어질 때부터 자신들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현장을 살피고 있던 일 소대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없어. 놈이 여기에 없어!”그 말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수백개의 눈동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목표물이 함정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얀 가루가 가라앉으며 드디어 시야가 열렸다. 정말 함정엔 아무도 없었다.“나, 찾아?”이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나무 위에 염구준이 선채 물었다.매복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 그 모습을 보고 간담이 싸늘해졌다. ‘저 놈이 어떻게?’모두들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염구준의 경지와 그 속도는 그들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성스레 준비한 함정,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누가 보냈지?”염구준이 뒷짐 진 채 여유롭게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독충을 풀어. 놈을 죽여라!”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명령했다. 함정이 헛수로고 돌아간 이상,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사람들이 품에서 독충이 담겨 있는 상자를 꺼내 염구준에게 돌진했다. “멍청한
“배신자에겐 죽음뿐!”그리고 이어서 나타난 인물, 브루스의 아버지, 로버트였다. “아버지, 이 놈이에요! 절 때린 그 놈! 놈을 족치면 독충의 먹이로 줄 거예요!”브루스가 염구준을 바라보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로버트가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키며 가증스럽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자, 기회를 주지. 우리 가문에 들어와 내 밑에서 일해라. 그럼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해주마.”그 말을 들은 브루스는 조급한 얼굴이 되었지만, 차마 아버지에게 반격할 수 없어 조용히 있었다. “거절한다면?”염구준이 로버트를 위아래로 내려다보며 오만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죽어야지!”로버트가 가볍게 오른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주술사 다섯명이 뒤에서 튀어나왔다. 뿜어대는 기운을 보니 분명 매우 강한 독충을 가진 최소 무성 강자로 보였다.그런 강자가 다섯명이나 모였으니, 전신 초기 강자까지도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먼저 죽는 건 누굴까?”염구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상대도 빠르게 움직이며 염구준을 둘러쌌다. 한 명이 정면으로 붙으면 나머지 네명이 서포트 하는 그런 형식의 진형이었다. 염구준은 이들이 취한 자세에 꽤 흥미를 느꼈다. 그는 바로 다섯을 죽이지 않고 그들이 움직임에 협력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 다섯은 더 의기양양 맹렬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다섯이 우세하다고 느껴졌던 전투가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아무리 공격을 날려도 염구준의 옷자락 하나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섯은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멈춰!”정면으로 공격을 리드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전투를 멈추더니 염구준을 바라봤다. “미꾸라지처럼 피하지만 말고 정면으로 맞서라!”남자는 무성 경지 강자로서, 우롱당하는 이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염구준이 실망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
로버트의 맹렬한 공격에도 염구준은 여유만만해 보였다. 그는 오른발은 지지대 삼아 몸을 지탱한 뒤, 오른쪽 주먹을 뒤로 당기며 기운을 힘껏 모았다. ‘나를 상대로 전신 영역을 펼치지 않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로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염구준의 오만한 태도를 비웃었다. 이대로 승리는 자신의 것이라 확신하면서.그런데 염구준이 로버트를 향해 주먹을 뻗은 순간이었다. 쾅하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강풍과도 같은 기류가 둘 사이에 흘러 넘쳤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하면 로버트의 옷자락이 펄럭일 정도였다. 견고하고도 강한 로버트의 전신 영이 염구준의 주먹 한방에 산산조각 났다. 로버트는 그 힘에 밀려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큭, 주먹 한방에 이정도 상해라니, 설마 전신 경지를 넘었나?”로버트는 방금 그 일격에 중상을 입어 전투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를 꺼냈는지 알게 되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주제에, 상대보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하다니, 얼마나 웃겨 보였을까?’“내 경지는 네가 신경 쓸 바 아니야.”염구준이 위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며 로버트를 향해 걸어갔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제가 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절 살려주시겠습니까?”로버트가 자존심도 버리고 목숨을 구걸했다. 죽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생각에는?”염구준이 걸음을 멈추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로버트 부자가 판 함정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자기 목숨을 노린 자들에게 베풀 자비 따위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로버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경지를 보아 결코 돈으로 봐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그는 고민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로버트는 결론을 내렸다. 그도 나름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사람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언제까지 고민할 거야?”그가 머뭇거리고 있자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 파열된 몸,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로버트는 죽었다. 염구준은 그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다 몸을 돌려 중상을 입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주술사들을 바라봤다.“선생님, 저희도 저 인간한테 통제당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맞아요. 우리 몸에 저 인간이 심어놓은 독충이 있어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잘못했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로버트가 죽자, 이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며 빌기 시작했다. “꺼져!”그들을 쓱 훑어본 염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가,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들은 후다닥 인사를 건넨 뒤 빠르게 현장에서 탈출했다. 그렇게 브루스 일당은 톡톡히 사람 잘못 건드린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격렬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은 거기에 수안의 기운이 섞여 있는 것을 느끼고 빠르게 움직였다. 어두운 숲속, 두 인영이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의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거대한 바위를 방패삼아 공격을 피했지만, 여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 변태 도둑! 넌 오늘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여자가 살기를 내뿜으며 외쳤다. 그녀는 바로 수안, 스타킹 도둑을 잡기 위해 북쪽 숲까지 쫓았지만, 상대는 생각보다 강자였다. “예쁜이, 그것 하나 좀 훔쳤다고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남자가 장난스레 말했다. 남자의 별명은 초상비, 달리기에 특화된 신법을 연마한 고수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어디에 나타나든 말썽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죽여버리겠다!”수안은 상대가 뻔뻔하게 나오자 크게 분노하며 더 거칠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상비의 움직임이 너무 빠른 탓에 한 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이때, 숲속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바로 염구준이었다.“수안아, 무슨 일이야?”“어? 오라버니, 여긴 어떻게?”수안이 멍한 얼굴로 공격도 멈춘 채 물었다.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도둑이 훔쳐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용하 화폐로 200만 원입니다.”귀울진은 용하와 접해 있기에 용하 화폐를 사용했다.“용하에서 건너온 진씨 가문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염구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지금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었다.“은세가문인가?”이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그 표정을 보니 진씨 가문의 소재를 아는 것 같았다.염구준이 그것을 눈치챘다.“알고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우려하는 거라도 있습니까?”“진씨 가문에서 돈을 주면서 그들의 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이면인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염구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얼마나 원합니까?”염구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1000만 원이요.”이면인은 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 많지 않아요. 갖고 온 돈은 전부 여기 있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죠.”염구준은 가방을 앞으로 던져버렸다.그 말에 이면인은 가방을 들어 대충 훑어보았다.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두 블록 가면 진씨네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주둔지예요.”“거짓말은 아니겠죠?”염구준이 한마디 더 했다.“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어요.”이면인은 가방을 챙기고 싱글벙글 웃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이 돈이면 3년을 문을 닫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알았어요. 돈은 받으세요.”염구준은 돌아서 잡화점에서 나갔다.10분 뒤, 이면인은 도둑처럼 가방을 들고 잡화점을 나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빠르게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이 사람 역시 문제가 있었다.염구준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쉽게 돈을 떼먹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옆에 진씨네 국수집은 이미 오기 전에 들러서 알고 있었다.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 진씨 가문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마을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처리하고 찾으러 갈게요.”염구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현지 정부에서 아예 관리하지 않아 자치 행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하기 좋았다.점점 많은 범죄자들이 몰려들어 귀울진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을 규모는 중등 도시 못지 않았다.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아 치안이 엉망이었다.“젊은이, 이곳에 별의별 놈들이 살아서 아주 위험한 곳이야. 백가, 개방, 목숨파를 조심해.”“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진씨 가문도 은세가문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쫓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 가지 가능성은 진씨 가문에서 몰래 잠복해 있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그는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사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과일을 안 사면 아무것도 묻지 마.”사장님은 염구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다.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손님, 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소식통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진씨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염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몰라요. 하지만 저기 구두가게 사장이 진씨입니다.”과일 가게 사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은 머리가 아팠다.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만 밝히고 허풍만 떨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전에도 몇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돈만 받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에 비하면 안내자 노인은 성실한 편이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고대영이 조사한 정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진씨 가문이 귀울진에만 있다는 것만 알아내서 나머지는 염구준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그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내가 귀울진의 정보왕을 알고 있는데 원하는 가격이 너무 사악하고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야.”만약 염구준이 빨리 처리한다면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고 빨리 돌아갈 수 있다.귀울진
노인은 당황해하며 현금 몇 장을 더 놓았다.“전부 여기 두었어. 그러니까 보내줘.”오늘 변고가 생겨 톡톡히 손해를 보아 속으로 산적들에게 욕을 퍼부었다.하지만 산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에 누운 염구준을 가리켰다.“저놈을 남기고 영감은 가면 돼. 소는 우리 형제들이 먹게 넘겨.”“안 돼. 우리도 소 덕에 먹고 사는데 넘기면 굶어 죽어.”노인은 애지중지하는 소를 끌고 되돌아가려고 했다.이 산적들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려는 셈이다.예전에 길을 막던 산적들은 이 정도로 선을 넘지 않았다.그냥 돈만 조금 주면 알아서들 떠났다.만약 안내자를 전부 소멸하면 누구도 이 길을 지날 수 없고 그들은 산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거기서. 죽고 싶어?”그들은 무기를 쳐들고 노인에게 돌진했다.우두머리는 손에 총까지 들고 있었다.‘젠장.’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오늘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여기 개판이네. 벌건 대낮에 길을 막고 강탈하냐?”그때 염구준이 수레에서 내리며 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발로 차서 뿌렸다.파팟!자갈은 빠른 속도로 튕겨 달려오는 무리들에게 하나씩 명중했다.그리고 핏방울을 튕기며 전부 바닥에 쓰러트렸다.순식간에 발생하여 상대방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멸한 것이다.그래도 산적들은 죽어 마땅했다.“어르신, 뭐 하세요? 갑시다.”염구준은 얼떨떨해 서 있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가는 길에 도운 것뿐이니 별일도 아니었다.“어, 그래.”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바로 그때 노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조심해.”우두머리 산적이 죽지 않고 총을 들고 염구준을 향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다.“개자식, 죽어라!”펑펑펑!산적은 방아쇠를 힘껏 당겨 총을 몇 발이나 쏘았다.노인은 너무 놀라 두 눈을 찔끔 감고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그런데 모든 탄알을 사용했지만 염구준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
망기술의 역할을 알고 있는 염구준은 문제점을 말했다.“진씨 가문은 어디 있어? 거록이 혹시 거기에 있나?”고대영은 숨기지 않고 염구준의 질문에 바로 답했다.“진씨 가문은 해외로 쫓겨나서 국경에 있는 귀울진에 있어. 거록이 거기 있는지는 나도 몰라.”염구준은 용하의 은세가문이 왜 해외로 쫓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이런 상황은 정말 흔치 않았다.“수고했어. 약속대로 내가 수고비는 보내줄게.”염구준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그가 원하는 정보는 이것밖에 없었다.“돈은 됐어. 우리 고씨 가문의 외가 가주 자리가…”고대영은 돈을 받는 대신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염구준이 끊어버렸다.“됐어. 이따가 계좌로 이체할게. 시간 되면 청해에 놀러와.”염구준은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끊어버렸다.계속 통화를 했다면 고대영이 또 이 말을 꺼낼 게 뻔했다.“모두 같은 핏줄이니 네가 고씨 외가의 가주가 되어라.”비록 염구준의 생모 고유란이 고씨 외가의 가주였지만 지금 그와 관련이 없으니 이어받을 의무도 없었다.지금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염구준은 집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갔다.손가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귀울진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자창에 갔을 때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아직 싸우기 전에 살기부터 흘리다니 정말 모자란 놈들이었다.스스슥!갑자기 나무 위, 관목 안, 하수도 뚜껑 아래서 그림자들이 뛰쳐나왔다.모두 복면을 써서 진짜 얼굴은 볼 수 없었다.“하, 실력이 제일 강한 놈이 정진왕자라니, 죽으러 왔어?”염구준이 그들을 훑어보았다.“거록 존주께서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다. 청해에만 있어라.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일행은 먼저 협박 어린 말을 전달했다.“청해에서 나가겠다면 어떡할 건데?”염구준이 껄껄 웃으면서 되물었다.“그럼 죽인다!”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하더니 일행이 동시에 염구준을 공격했다.아마도 그의 실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촤아악!염구준이 몸을 번쩍
“필요 없어. 겁 먹고 외국에 도망친 너랑 달라. 정말 창피해. 우리 떠돌이 7인조의 명성에 먹칠했어. 염구준 따위가 감히 내 대업에 끼어들었으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역시 자극을 받은 거록 존주는 흑풍을 경멸하면서 말했다.지금 흑풍은 그가 말한 것처럼 염구준이 무서워서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지난번 윤씨 가문에서 염구준과 맞붙었을 때 한 손을 잃어버려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넷째 형, 잘 생각해 봐.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흑풍은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 여전히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마. 그보다 네가 준 사술법으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냐?”지금 거록의 관심사는 염구준보다 사술법이었다.천인 경지는 꿈에서도 도달하고 싶은 것이라 매우 유혹적이었다.“물론이지. 심혈주를 만들어서 삼키면 바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흑풍은 더는 설득하지 않고 확실하게 대답했다.거록이 단호하게 나오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그렇다면 됐다. 내가 천인 경지를 돌파하면 너 대신 염구준 그놈을 죽여줄게.”거록은 자신있게 말했다.그 단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최고 고수로 거듭나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마워, 형.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염구준의 손에 있는 옥패 4개도 챙겨줘.”흑풍은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그의 목표는 지금도 옥패였으니 천인 경지에 도달하는 사술법에 관심이 없었다.어쩌면 다른 방법을 알기에 사술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걱정 마. 난 옥패에 관심이 없어. 만약 손에 넣으면 너한테 줄게.”거록도 승낙했다.옥패 8개에 심도 깊은 무학이 있어서 보물이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더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다.“그럼 이만 끊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흑풍은 말을 끝내고 통화를 끊어버렸다.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두운 지하였다.그곳에 허약한 몸의 사내가 견갑골을 입고 있었다.“젠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사술법을 알려주면 날 풀어준다고 했잖아.”사내는
염구준은 초상비 일행에게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물론 치료비는 모두 그가 부담할 것이다.광대와 서커스단 관련자들은 경찰에 보내서 법으로 다스리도록 안배했다.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청해 동물원에 보내져서 적절하게 배치했다.그 바람에 동물원에서 땡잡았다.더는 허스키를 늑대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호랑이로 분장할 필요도 없었다.모든 후사를 처리한 후, 염구준은 공연장에서 나와 모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그날 저녁, 염구준에게 전화가 왔었다.“염구준 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서커스단은 원래 합법이었는데 단장이 살해된 후 나쁜 놈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파렴치한 짓을 했더군요.”“이들 우두머리는 코브라라 부르고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유사한 패거리가 더 있는 걸로 추측합니다. 구제척인 것은 아직 자백받지 못했어요.”경찰 측에서 조사한 것을 모두 염구준에게 알려줬다.“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염구준이 대답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경찰에게 맡기면 되니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이어서 초상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구출한 사람들이 모두 고비를 넘겼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치료비는 염구준이 모두 낼 테니 이 일에 대한 모든 권한을 초상비에게 맡겨서 처리하게끔 안배했다.심혈을 뽑으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아무리 치료를 해도 수명이 최소한 10년은 줄어들 것이다.떠돌이 7인조에서 하는 짓들은 어느 하나 정당한 것이 없었다.이런 독종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염구준은 거록 존주의 소식을 얻지 못했지만 다른 방면으로 단서를 찾았다.망기술이라는 독특한 방법은 용하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는 은세가족의 윤대약, 고대영에게 연락해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동시에 직접 얼음 인간 즉 봉유곡의 초상화를 그려 전신전에서 행방을 찾으라 지시했다.모든 일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거록 존주가 사람의 심혈을 뽑았던
서커스단 공연은 염구준이 사라진 후로 잠시 중단되었다.손가을은 손씨 그룹에서 절반 넘는 경호원들을 불러 수색하기 시작했다.거기에 호찬, 초상비 등 고수들도 있고 신위무관의 원종과 정경림도 있었다.이 기세로 보아 은세가문과 전쟁을 치러도 충분할 것 같았다.용필은 신혼여행을 떠나서 연락하지 않았다.“당장 사람을 풀어줘!”손가을이 언성을 높이며 모처럼 화를 냈다.평소 그녀는 성격이 털털해서 어떤 일에 부딪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하지만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아무리 남편의 실력이 대단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여사님, 저희 계약서까지 작성했어요.”광대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촤아악!“부끄럽지 않아서 이런 불법 계약서를 꺼내?”손가을은 빼앗아와서 바로 찢어버리고 바닥에 내팽개쳤다.오늘 염구준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근데 마술사가 사라져서 저희도 찾을 수 없어요.”광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땅을 파서라도 찾아내세요!”손가을이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아빠 예전처럼 사라지는 거예요?”깜짝 놀란 염희주가 울면서 물었다.지난 일은 어린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팠다.이번 일로 인해 아마 평생 서커스단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아니야. 아빠는 우리랑 숨박꼭질하는 거야.”손가을은 애써 웃으면서 딸을 진정시켰다.지시를 받은 손씨 그룹 경호원은 이미 굴착기까지 불러서 땅을 팔 기세였다.서커스 경호원들은 아무리 말려도 역부족이었다.관중들은 그 장면을 보고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뿔뿔이 사라졌다.“가자. 대표님 화 나셨어. 보통 일이 아니야.”“손 대표님 사람이 얼마나 좋은데, 부디 남편을 찾길 바라.”“이제 보니 서커스가 문제 있네. 방금 무대에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떠들썩하던 관중석은 텅텅 비어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펑!경호원이 굴착기를 작동해 땅을 파려고 할 때 굉장한 소리가 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