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번화한 거리를 지나 외딴 곳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마치 누가 쫓아올까 두려운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염구준의 기척을 알아차리긴 역부족이었다. 염구준은 소리소문 없이 남자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곧이어 남자가 한 오두막집 앞에 멈춰서더니, 경계가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다 이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렇게 그가 오두막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자갈 크기의 벌레들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순식간에 오두막 속으로 들어갔다. 아마 감시용으로 사용된 벌레들 같았다. 염구준은 이 모든 것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염구준은 발끝에 최대한 힘을 덜 준 채 가볍게 오두막 주변에 있는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 편이 벌레들 몰래 오두막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기 쉬웠기 때문이다. 오두막 안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둘, 하나는 비교적 평범했으나, 한 명이 심상치 않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일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던 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순 장로님.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옥패를 미끼를 사용하니,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남은 한 명, 소좌가 대답했다. “하하, 아주 좋아. 다시 한번 성충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겠군.”순 장로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몇시간 전, 그는 고 대사가 한 정체불명 인물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 대사의 부고는 꽤 큰 일이었지만, 일을 여기서 그르칠 수는 없었다. 그는 소좌에게 더 철저히 상황을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소좌가 살짝 망설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으면 얼른 해. 시간 끌지 말고.”순 장로가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어 보이는 소좌를 보며 재촉했다. 그러자 소좌가 품에서 한 명단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번 대회에 참석하기로 한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고 있었지만,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흥, 겨우 그정도 실력으로 엿들을 생각을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군.”소좌가 사람들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천무산, 이 개자식들! 뒤에서 이 따위 일들을 꾸미고 있다니, 절대로 편하게 죽진 못할 것이다!”소좌의 벌레에 당한 주술사들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약육강식, 그러게 누가 너희들 보고 약하래?”순 장로가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됐다, 소좌야. 저놈들 다 죽여버려라.”“이 사실을 밖에 알리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군.”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주술사가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소좌는 벌레를 시켜 이들을 시체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우게 했다. 이들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황을 마무리 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눈짓한 뒤 빠르게 현장을 떠났다. 이들의 행적을 모두 지켜보는 사람, 염구준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염구준은 멀어지는 두 인영을 보며 계속 뒤따라야 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한편, 번화가.독무대회가 슬슬 시동을 걸며 시작을 알렸다. 대회는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나 독을 겨루는 것이었다. 독을 중독시키는 자와 독을 해독하는 자의 대결, 패자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독매가 열한 번째 시합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또 누가 도전하실 건가요?”심판의 목소리가 대회장에 울려 퍼졌다. 독을 신기할 정도로 잘 다루는 작은 체구의 여자 아이, 이번에도 독매의 승리였다. “시시해. 왜들 이렇게 약하지?”독매가 껌을 씹으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모두 시선을 피했다. 겉모습은 어린 꼬마처럼 보일지 몰라도, 독매의 실력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때, 슉하고 한 인영이 나타났다. 염구준이었다!그는 원래 순 장로 등을 계속 추적할 예정이었지만, 상대가 기시감을 느
독매가 작은 손을 내밀며 알약 하나를 염구준에게 건넸다. 검은색에 무색무취의 초콜릿 같이 생긴 알약이었다. 염구준은 별 생각 없이 그것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속으로는 독이 퍼지지 않도록 충분히 진기를 풀어 두었다. 겨우 이까짓 걸로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그는 독을 없애고 밖으로 배출했다. 이들은 독엔 능했지만, 경지가 낮아 염구준의 은밀한 움직임을 눈치챌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모두 염구준이 독에 당해 죽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그가 멀쩡한 모습으로 있자, 먼저 정신을 정신차린 심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괘, 괜찮은 겁니까?”“아, 네. 괜찮은데요.”염구준이 담담히 답했다. 독을 섭취한 사람 치고 너무나도 멀쩡한 호흡과 안색, 그리고 의식, 심판은 믿기지 않았다.“말도 안 돼… 이 독은 내가 아니면 해독할 수 없는데….”이 독의 비밀은 오직 그녀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하다니, 독매는 믿기지 않았다.“너무 실망하지 마, 꼬마 아가씨. 너의 실력은 꽤 출중하니까.”염구준이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는 승패에 딱히 관심 없었다. 그저 소란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잠깐만,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더 강한 독이 있으니, 다시 도전해라!”독매가 그를 붙잡으며 억지부리기 시작했다.“그럼, 내놔 봐.”그렇게 염구준은 또 다시 독을 섭취했고, 이번에도 이변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젠 됐지?”염구준이 다시 멀뚱멀뚱한 얼굴로 물었다. 그를 조롱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독 하나를 해독하는 것은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염구준은 독에 또 독을 복용한 셈이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독매가 울먹이며 소매로 눈가를 비볐다. 마치 어린 아이가 게임에 져서 어리광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더 도전하실 분 계신가요?”심판이 군중을 향해 물었다. 사람들은 꼿꼿이 서 있는 염구준의 모습을
그런데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또다른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수안이었다.‘변태 도둑?’염구준은 의아했다. 아무리 눈이 가는 외모라도, 도대체 누가 감히 겁도 없이 전신 경지 강자에게 도전을 했단 말인가?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함정?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순 장로와 소좌가 나눴던 낮의 대화가 떠올랐다.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문을 열고 둘을 따라 나섰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연군 순간, 그는 멈칫했다. 골목 쪽에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염구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골목이 아닌 수안이 떠난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후….”골목 안, 한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발견하진 못했겠지?’남자는 안도하며 조심스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상황을 보고했다.“로버트님, 목표물이 여관을 떠나 북쪽 숨으로 향했습니다.”“좋아. 계속 추적하면서 수시로 보고 올려.”브루스의 아버지, 로버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보고를 올린 남자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계속 그를 추적하라니,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예!”하지만 그에겐 거부할 권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얼굴을 찡그린 채 염구준을 따라갔다.한편, 진작에 꼬리가 붙은 것을 눈치챈 그는 일부러 상대가 잘 따라붙을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비록 표적이 되었지만, 그는 역으로 이 기회를 이용해 뒤에 있는 배후를 캐 한 번에 없앨 생각이었다. 염구준이 멈칫거리며 속도를 조절할 때마다, 뒤에 붙은 감시자는 심장이 쫄렸다. 혹시라도 상대가 자신을 발견했을까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외각으로 빠졌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복면을 쓴 여러 무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서로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복수하러 온 사람들이 당당히 정체를 까발린 채 움직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염구준은 그런 이들을
공중에 독이 발린 가시 그물이 염구준을 덮쳤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즉사였다. 촘촘하고 굵은 쇠 가시, 초록색 독이 뚝뚝, 섬뜩했다. 곧이어 정체불명의 가루가 담겨 있는 구체가 구름 위로 지나며 온 세상을 물들였다. 그렇게 현장은 뿌연 안개가 낀 듯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동시에 공기를 가르고 쏟아진 수많은 화살들, 누구든 이 함정에 걸려든 이상 죽지 않고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전신 강자 정도 되면 살아서 도망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치명상을 피할 수는 없을 터!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염구준의 죽음을 예상했다. “하하, 성공이다! 일 소대, 가서 확인해봐라!”누군가가 지시했다. 사실 다들 그물이 떨어질 때부터 자신들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현장을 살피고 있던 일 소대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없어. 놈이 여기에 없어!”그 말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수백개의 눈동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목표물이 함정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얀 가루가 가라앉으며 드디어 시야가 열렸다. 정말 함정엔 아무도 없었다.“나, 찾아?”이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나무 위에 염구준이 선채 물었다.매복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 그 모습을 보고 간담이 싸늘해졌다. ‘저 놈이 어떻게?’모두들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염구준의 경지와 그 속도는 그들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성스레 준비한 함정,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누가 보냈지?”염구준이 뒷짐 진 채 여유롭게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독충을 풀어. 놈을 죽여라!”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명령했다. 함정이 헛수로고 돌아간 이상,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사람들이 품에서 독충이 담겨 있는 상자를 꺼내 염구준에게 돌진했다. “멍청한
“배신자에겐 죽음뿐!”그리고 이어서 나타난 인물, 브루스의 아버지, 로버트였다. “아버지, 이 놈이에요! 절 때린 그 놈! 놈을 족치면 독충의 먹이로 줄 거예요!”브루스가 염구준을 바라보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로버트가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키며 가증스럽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자, 기회를 주지. 우리 가문에 들어와 내 밑에서 일해라. 그럼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해주마.”그 말을 들은 브루스는 조급한 얼굴이 되었지만, 차마 아버지에게 반격할 수 없어 조용히 있었다. “거절한다면?”염구준이 로버트를 위아래로 내려다보며 오만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죽어야지!”로버트가 가볍게 오른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주술사 다섯명이 뒤에서 튀어나왔다. 뿜어대는 기운을 보니 분명 매우 강한 독충을 가진 최소 무성 강자로 보였다.그런 강자가 다섯명이나 모였으니, 전신 초기 강자까지도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먼저 죽는 건 누굴까?”염구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상대도 빠르게 움직이며 염구준을 둘러쌌다. 한 명이 정면으로 붙으면 나머지 네명이 서포트 하는 그런 형식의 진형이었다. 염구준은 이들이 취한 자세에 꽤 흥미를 느꼈다. 그는 바로 다섯을 죽이지 않고 그들이 움직임에 협력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 다섯은 더 의기양양 맹렬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다섯이 우세하다고 느껴졌던 전투가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아무리 공격을 날려도 염구준의 옷자락 하나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섯은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멈춰!”정면으로 공격을 리드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전투를 멈추더니 염구준을 바라봤다. “미꾸라지처럼 피하지만 말고 정면으로 맞서라!”남자는 무성 경지 강자로서, 우롱당하는 이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염구준이 실망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
로버트의 맹렬한 공격에도 염구준은 여유만만해 보였다. 그는 오른발은 지지대 삼아 몸을 지탱한 뒤, 오른쪽 주먹을 뒤로 당기며 기운을 힘껏 모았다. ‘나를 상대로 전신 영역을 펼치지 않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로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염구준의 오만한 태도를 비웃었다. 이대로 승리는 자신의 것이라 확신하면서.그런데 염구준이 로버트를 향해 주먹을 뻗은 순간이었다. 쾅하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강풍과도 같은 기류가 둘 사이에 흘러 넘쳤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하면 로버트의 옷자락이 펄럭일 정도였다. 견고하고도 강한 로버트의 전신 영이 염구준의 주먹 한방에 산산조각 났다. 로버트는 그 힘에 밀려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큭, 주먹 한방에 이정도 상해라니, 설마 전신 경지를 넘었나?”로버트는 방금 그 일격에 중상을 입어 전투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를 꺼냈는지 알게 되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주제에, 상대보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하다니, 얼마나 웃겨 보였을까?’“내 경지는 네가 신경 쓸 바 아니야.”염구준이 위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며 로버트를 향해 걸어갔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제가 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절 살려주시겠습니까?”로버트가 자존심도 버리고 목숨을 구걸했다. 죽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생각에는?”염구준이 걸음을 멈추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로버트 부자가 판 함정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자기 목숨을 노린 자들에게 베풀 자비 따위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로버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경지를 보아 결코 돈으로 봐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그는 고민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로버트는 결론을 내렸다. 그도 나름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사람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언제까지 고민할 거야?”그가 머뭇거리고 있자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 파열된 몸,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로버트는 죽었다. 염구준은 그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다 몸을 돌려 중상을 입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주술사들을 바라봤다.“선생님, 저희도 저 인간한테 통제당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맞아요. 우리 몸에 저 인간이 심어놓은 독충이 있어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잘못했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로버트가 죽자, 이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며 빌기 시작했다. “꺼져!”그들을 쓱 훑어본 염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가,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들은 후다닥 인사를 건넨 뒤 빠르게 현장에서 탈출했다. 그렇게 브루스 일당은 톡톡히 사람 잘못 건드린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격렬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은 거기에 수안의 기운이 섞여 있는 것을 느끼고 빠르게 움직였다. 어두운 숲속, 두 인영이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의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거대한 바위를 방패삼아 공격을 피했지만, 여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 변태 도둑! 넌 오늘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여자가 살기를 내뿜으며 외쳤다. 그녀는 바로 수안, 스타킹 도둑을 잡기 위해 북쪽 숲까지 쫓았지만, 상대는 생각보다 강자였다. “예쁜이, 그것 하나 좀 훔쳤다고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남자가 장난스레 말했다. 남자의 별명은 초상비, 달리기에 특화된 신법을 연마한 고수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어디에 나타나든 말썽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죽여버리겠다!”수안은 상대가 뻔뻔하게 나오자 크게 분노하며 더 거칠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상비의 움직임이 너무 빠른 탓에 한 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이때, 숲속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바로 염구준이었다.“수안아, 무슨 일이야?”“어? 오라버니, 여긴 어떻게?”수안이 멍한 얼굴로 공격도 멈춘 채 물었다.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도둑이 훔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세력들은 세라와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스텔라성과 엮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베르가 말한 동맹도 결국은 이익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염병할 놈!”베르는 염구준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에취!”한편, 바다의 동굴을 지나던 염구준이 재치기를 하더니 귓구멍을 파며 중얼거렸다.“또 어떤 놈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거야?”그는 이미 수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굴을 살펴보았다.오래전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로서 지하수도로 사용했거나 육지에서 지각이 변화하여 이곳에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었다.이제 동굴 내부에 완전히 적응되어서 속도를 낼 때가 되었다슝!위험도 없고 갈림길도 없으니 팔다리를 빨리 저으며 앞으로 전진했다.동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참 기대가 되었다.그것이 고대 옥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푸!가는 도중에 갑자기 장어 같은 바다 동물의 습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누가 있어.’얼마나 헤엄쳤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염구준은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한 줄기 검기를 발사했다.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수복을 입은 시체는 부패되지도 않고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그 옆에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황금, 비취. 진주 등 값나가는 보물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진짜 보물이 있었네. 고대 옥패도 있을까?”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보물이 가득한 가방은 뒤로 한 채 계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체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염구준은 궁금했다.왜 시체들이 하나 같이 상처도 입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죽었는지 말이다.이상한 상황으로 하여금 점점 주변을 경계하게 만들었다.앞으로 더 나아갔을 때, 동굴은 사라지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이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 같았다.그리고 내부를 살펴보려고 수십 발의 불꽃을 발사하던 염구준
찾겠다고 약속했던 보물이며 고대 옥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소식을 전했다.“절벽 위에 동굴이 있어요!”“여기에도 있어요. 불덩어리를 던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요!”“동굴에서 100그람되는 금덩어리를 발견했어요!”드디어 보물이 나타났다는 말에 다들 동료를 잃은 슬픔에서 금세 벗어났다.“일단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 대책부터 세웁시다.”중요한 순간에 베르가 나서서 대국을 주재하려 했다.염구준을 고립시키고는 각 세력들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수작이었다.“부성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지시를 따를게요.”메노스가 환심을 사려고 스텔라성의 편에서 말했다.염구준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 맞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나머지 가주들은 드디어 줄을 서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줄을 서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 문제였다.만약 잘못 선택하면 아무런 이득은 보지 않고 끝없는 재앙만 맞이할 것이다.…그 외에 무술인들은 가주들이 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것을 알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몇몇 사람들이 토론한 결과로 대다수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염 선생은 대책이 있습니까?”노신기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를 깨고 떠보듯 물었다.지금 염구준은 혼자서도 스텔라성를 상대하기 충분했다.다들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염구준이 한 동굴 입구에 서서 말했다.“상의할 게 뭐가 있어요? 보물이 보이면 능력에 따라서 챙기면 되죠. 실력이 있으면 많이 챙기고 없으면 바닷물이나 마시다 가면 되죠.”그 말 뜻은 물질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했다.지금 각 세력들이 꿍꿍이를 세우고 있으니 아무리 상의를 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다.어차피 나중에 사이가 틀어질 텐데,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염구준의 말을 들은 베르는 각 세력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염구준, 지금 분열을 일으키는 거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어떤 무술인들은 적대 관계이고 위에서 아무런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베르 일행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고 있으니 염구준을 칭찬하는 것은 더 불가능했다.“이곳은 위험해서 항상 조심하세요. 그렇다고 매번 도와줄 수 없어요.”염구준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이번만 도와줄 거라 뻔뻔하게 구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때 통신기에서 당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저기 모래벌레 무리가 오고 있어요!”그 말에 다들 다시 안절부절했다.염구준이 재빨리 통신기에 대고 모두를 진정시켰다.“당황하지 마세요. 대부분 바닥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만 뒤를 따라왔을 겁니다.”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래벌레들은 전부 그의 검에 잘렸기 때문이었다.다들 안심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공을 들고 앞에 나섰다.이곳까지 오면서 나약한 실력 때문에 항상 타인의 보호를 받았는데, 왜 이제야 나서는지 다들 알지 못했다.“썩을 놈의 벌레야! 첨단 과학기술의 위력을 보여 줄게!”젊은이가 건방지게 말하며 손에 든 공을 힘껏 던져버렸다.“안 돼!”메노스가 나서서 말렸지만 공을 이미 던져서 늦어버렸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방어!”염구준이 고함을 지르며 기운으로 호체 기운을 끌어냈다.반보천인인 염구준마저 긴장하게 만들다니, 모두 젊은이가 던진 공은 틀림없이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펑!공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으로 흘러서 올라간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마침 달려오는 모래벌레들을 순식간에 폭발시켰다.물속에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보기만 해도 감탄이 흘렀다.“악!”그런데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물속에서 퍼지더니 사람들의 몸에 부딪치며 오장육부에 침투되었다.순식간에 거대한 생물체를 몇 마리나 제거했으니 사람에 미치는 영향도 치명적이었다.실력이 약한 무술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죽었다.퍽!가장 먼저 공격받은 젊은이는 충격에 한참이나
“알겠습니다.”“네.”두 사람은 대답하자마자 각자 맡은 20명이 넘는 부하들을 이끌고 심해 모래벌레가 드문 변두리 지역으로 향했다.실력이 뛰어난 무술인 두 명이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로서 부하들의 사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그 장면을 본 남은 세력들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는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살고 싶으면 빨리 천기문의 뒤를 따라가!”지금 염구준이 뒤를 맡고 있었기에 그들도 벗어나기 훨씬 수월했다.베르가 떠날 때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의 뒤를 노려보면서 저렇게 싸우다 콱 죽으라고 저주까지 했다.결국은 살려고 바삐 피신하느라 누구도 염구준을 도와주지 않았다.혼자 남은 그는 결국 심해의 모래벌레에게 포위되었다.“에휴, 저럴 줄 알았어. 그동안 도와준 걸 봐서라도 우리도 도와줍시다.”염구준은 자신이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벌레를 살해했다.각 세력의 무술인들이 이미 멀리 떨어졌으니 지금은 이 무리를 뚫고 나가야 했다.촤아악!순식간에 수많은 검기가 주변에 발사하며 바다 밑을 들쑤시는 바람에 모래와 진흙이 시야를 가렸다.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덩치가 큰 물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이었다.아무리 바다가 모래벌레의 구역이라 해도 염구준의 검을 막지 못했다.검망이 닿는 곳은 그들 시체로 널렸다.염구준이 뛰쳐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도망친 각 세력들은 균열 변두리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염 선생이 우리를 위해 혼자 희생하는데 우리도 소수 정예병을 조직해서 도와줍시다!”그레이가 통신기에 대호 한마디 제안했다.흔쾌히 나설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말은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하, 대단한 것처럼 건방지게 굴더니, 저런 놈은 죽어도 싸.”“그러게요. 저 악마의 생사는 우리랑 상관없어요.”베르와 세라가 시큰둥하게 자신들의 태도를 표명했다.“당신들…”그레이가 나서서 비판하려고 할 때 그들과 싸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더는 말을 잇지 않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