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과연 혈혈단신으로 문주의 자리까지 오른 여자의 위력은 남달랐다.“빨리, 빨리 병원으로 옮겨!”바빌라 옆에 있던 스태프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바빌라는 온몸이 흙투성이인 데다가 여기저기 피까지 묻어 있어 전의 아름다움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누구야. 감히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다니.”어디선가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구릿빛 피부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사탕수수를 뜯으며 나타났다. 그는 아바사의 부하로서, 폭홍구를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형님, 저 년이 바빌라를 이렇게 만들었어요!”비영이 나타나자 주변에 있던 바빌라의 스태프들이 황급히 다가가 상황을 꼰지르기 시작했다. 정말 얼마나 현실감 있게 설명하는지,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상황이 그려질 정도였다. 이때, 바빌라가 고통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덧붙였다.“오빠, 저 대신 복수 좀 해줘요. 그러면 오늘 밤, 저를 줄게요.”“치료해서 데려가.”비영이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였다. 지금 바빌라의 모습은 전혀 그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것이 더 그의 시선을 끌었다.“아가씨가 참 손이 맵네?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나랑 같이 좀 가줘야겠어.”비영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수안을 위아래로 훑으며 입술을 핥았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전혀 숨기지 않는 모습이었다.“무, 무서워요. 다가오지 마세요.”수안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정말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염구준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수안은 보기보다 참 엉뚱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충분히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상대를 농락하려 연약한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에이, 겁먹을 거 없어. 나랑 가자. 잘해 줄게.”비영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토록 요염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는 그도 처음이었다.“오빠, 도와줘요!”수안이 염구준 뒤로 숨으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찢어버려!”염구준이 자신의 기운을 금색 전갈에게 주입하며 외쳤다. 엄청난 에너지를 갖게 된 금색 전갈은 마치 흥분제를 맞은 듯 엄청난 기세를 뿜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금색 전갈이 지네 뒤로 뛰어 노르더니, 단숨에 찢어발겼다. 지네는 전혀 전갈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와!”본명충이 죽자 비영은 그 반동으로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뜻밖의 결과에 그의 일행들도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도망쳤다.칙칙!하지만 금색 전갈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여전히 꼬리를 휘두르며 비영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었다.“돌아와!”수안이 지나치게 흥분한 전갈의 상태를 눈치채곤 소리쳤다. 그러나 전갈은 마치 이성을 잃은 듯,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사실 이건 모두 전갈이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강한 염구준의 기운 때문이다. “그만!”염구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금색 전갈이 뿜어내던 기운이 급속도로 수그러들었다.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전갈은 황급히 수안의 어깨로 올라가 얼굴을 비볐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에게 애교를 부리듯이.“멈춰, 내가 언데 가라고 했지?”비영이 그 틈을 타 도망치려던 순간, 염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제, 제발 목숨만은! 제가 보는 눈이 없었어요! 잘못했습니다!”비영이 스스로 뺨을 때리며 용서를 빌었다.“네 목에 걸린 옥패, 어디서 났어?”염구준이 그의 돌발행동에도 눈 깜빡하지 않고 용건을 꺼냈다.“회사에서 받았습니다. 휘황그룹에서요.”비영이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겨우 옥패 하나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순 없었다.“그럼 이런 옥패, 전에도 본적 있어?”염구준이 품에서 자신의 신무 옥패를 꺼내 보여주며 물었다. 진짜 옥패였다. “본 적 없습니다!”비영이 얼른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이런 대단한 물건, 말단인 그가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때,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탐스럽게 눈을 빛내며 염구준 손에 들려 있는 옥패를 바
그는 수안이 과거에 얽매여 자신을 갉아먹지 않길 바랐다.“네, 알겠어요.”수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 어렵지만, 그의 말 대로 시도해 보고 싶었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몇 명의 인물들….“염 선생님, 물고기가 미끼를 문 것 같네요.”수안이 뒤따라오는 인기척을 느끼며 나지막이 말했다.염구준이 신무 옥패를 꺼낸 순간, 그녀는 이미 이 순간을 짐작했다.“조급할 거 없어. 좀 더 기다렸다가 한 번에 잡자.”뒤도 돌아보지 않고 염구준이 대답했다. 신무 옥패에 눈이 멀어 여기까지 왔다면, 절대로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터! 이들은 자신들이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눈치채더라도 뛰어들 것이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잡초가 무성하며 인적이 매우 드문 폐허 거리로 들어섰다.“움직여!”어둠속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그러자 즉시 여러 인물들이 나타나 염구준과 수안을 둘러쌌다.총 인원수는 13명,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조차 최소 종사 경지, 가장 강한 사람은 무도 경지였다. 아니, 어쩌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전신 경지 강자도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스스로 미끼를 자처하다니, 배짱 있네.”가장 강한, 서양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의 손엔 하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팔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다. 딱 봐도 주먹을 주로 쓰는 강자였다.“쥐새끼들을 유인하려면, 이정도는 해야지.”염구준이 말하며 손에 든 신무 옥패를 내보였다. ‘진짜다!’사람들의 눈동자가 욕망과 광기로 차올랐다. 당장이라도 누가 튀어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내놔. 그러면 고통은 면할 수 있을 거야.”남자가 오른손을 내밀며 요구했다. 이렇게 노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다. “옥패는 하나인데, 누구한테 줄까?”염구준이 손에 들린 옥패를 여유롭게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염
"감히 우리를 가지고 놀아!"화가 난 양서인은 옥패를 부숴버렸다. 폐가 뒤틀어지는 느낌이었다.그동안 가짜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다."너희들이 멍청한 거라 나를 탓할 수는 없잖아?" 염구준이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머리로 옥패를 훔치려 했고 기꺼이 목숨까지 바쳤다."옥패는 아직 이놈 손에 있어!"남은 사람들은 방향을 틀어 염구준에게로 일제히 달려들었다.그들은 이미 목숨을 걸었던 몸이라 다시 한번 목숨을 거는 것도 상관없었다."염 선생님, 저런 하찮은 것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앞으로 나서는 수안의 팔에 금등전갈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전신 경지의 강자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죽여라!"옥패의 유혹은 부모도 못 알아볼 정도로 강력했다.수안도 움직이자, 전신의 영역이 열렸다. 아무도 그녀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조심해, 그녀는 전신 강자야!"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닥에 쓰러져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수안은 이들이 아직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죽이지 않았을 뿐이다.한 사람만으로도 전체가 섬멸당할 수 있었기에 정면 승부는 피해야 한다.양서인은 염구준을 뒤쪽에서 바라보며 눈알을 굴렸다.사람을 쏘려면 타고 있는 말을 먼저 쏘아야 하고, 도둑을 잡으려면 먼저 그 우두머리를 잡아야한다."너희들은 이 여자를 막아라. 내가 저 남자를 잡으러 가겠다."양서인은 외치며 몸을 돌려 염구준에게 돌진했다.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머지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수안을 공격했다."껄껄, 약한 상대도 아니고 굳이 강한 상대를 선택하다니." 수안은 가볍게 미소 지을 뿐 그들을 막지 않았다."총알 펀치!"양서인은 크게 외치며 기운을 양팔에 모아 부풀려진 근육으로 주먹을 날렸다.순식간에 백여 번 공격을 날렸다.땅땅땅!청명한 충돌 소리가 났지만, 염구준은 미동도 없었다. 양서인의 상태는 알 수 없었다.한바탕 펀치를 날린 양서인은 숨을 헐떡이며 거
살 수 있다면 그 누가 죽음을 택하겠는가!그들의 반응을 살피던 염구준은 그들에게 신무 옥패가 없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공연히 헛수고만 한 셈이다.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신무 옥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주로 강자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데, 눈앞에 있는 대부분이 하급 무술가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지?"신무 옥패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염구준은 매우 엄숙한 표정이었다.이런 부류의 것들은 겁을 줘야 정신을 차린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퍼뜨렸고 수많은 무술 세력들이 알고 있습니다." 양서인은 열심히 대답했다. 그는 살길을 찾고 있었다."그 사람들의 옷에 검은 단풍잎 표식이 있었나?" 염구준은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있었다."네, 있었습니다!"양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주어 대답했다.흑풍 조직!흑풍 존주는 고약한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틈만 나면 문제를 일으켰다.그가 숨어버리면 신무 옥패를 가진 염구준은 무술 세력들의 공공의 적이 될 것이다.이간질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자였다."염 선생님, 아무것도 없습니다!"검사를 마친 수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옥패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가자!"돌아선 염구준은 수안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상대방이 자신들을 죽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것이다!염구준은 크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늘의 독수리가 어찌 하찮은 개미와 옥신각신할 수 있을까!둘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 때때로 말소리가 들려왔다."앞으로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염 선생은 좀 이상합니다.""그저 호칭일 뿐이니 마음대로 해.""오라버니, 하하, 나에게도 오라버니가 생겼네요!"수안은 기뻐서 깡충깡충 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천진난만한 그녀의 모습은 명성이 좋지 않은 전갈문 문주와는 거리가 멀었다.그녀가 가족을 갈망하는 마음은 타인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휘황
효율은 꽤 높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무수한 발소리가 들려왔고, 경비원들이 도착했다.그들은 빼곡하게 대문을 막았다."이게 전부?" 염구준이 무심하게 물었다.200명도 안 되는 경비력은 몸풀기에도 부족했다.염구준의 말에 대꾸하려던 비영은 바로 눈앞에 있는 금등전갈때문에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입을 열 수 없었던 그는 열심히 고개를 흔들며 사람들에게 싸우라고 부추겼다."공격해!"핵심 부하들은 즉시 이해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앞으로 돌진했다.여기저기에서 소리를 지르는 현장은 마치 파리 떼가 우글거리는 듯이 혼잡했다.전신의 영역!염구준은 사람들이 공격 범위에 들어오자, 영역을 열어 그들을 바닥에 짓누르며 꼼짝 못 하게 했다.모두 일반인들이라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전신 강자!"종사 주술가인 비영은 이 수법을 알아챘다.막 입을 연 그는 후회막심했다."슉!"금등전갈이 꼬리를 흔들어 비영의 몸을 찔렀다.날카로운 고통이 온몸으로 퍼졌다."아아!"너무 고통스러웠던 비영은 급기야 몸부림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체의 상처가 벌어져 더욱 아팠다.상처에 상처가 더해졌다!"그 정도 실력이라면 복수는 꿈도 꾸지 말고 얌전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수안은 경고하며 본명충을 거두었다.그녀에게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방법이 많았다.너무 소란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중에는 이 영역의 일인자, 아바사도 있었다."아아..." "밖에서 누가 낮잠도 제대로 못 자게 소란스러운 거야?"소음에 깨어난 아바사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좀 더 주무시지 그러세요?" 이불 속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 아바사는 음흉하게 웃었다. "밤에 충분히 자게 해줄 테니 서두르지 마."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여기 우두머리인 그는 사리 분별할 줄 알았다."무슨 일인지 한번 가보자."방을 나서는 아바사는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밖으로 걸어갔다.듬직한 발걸음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들은 결
아바사는 별다른 표정 변화도 없이 명령했다.부하를 희생시키는 것에 그는 능숙했다."안 됩니다. 저는 형님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비영은 미약한 목소리로 애원했다.그러나 그는 남이 키우던 개에 불과했기에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카드였다. 그에게 중요한 존재일 리 없었다.비영이 끌려간 후 아바사가 웃으며 물었다."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너희들이 뿌린 옥패에 관심이 생겨서 보러 왔다." 수안이 목적을 말했다.어차피 숨길 필요는 없었다.아바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익숙한 듯 말했다."마침 잘됐습니다. 먼저 호텔에서 쉬세요. 오늘 밤에 원하는 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염구준과 수안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왜 아바사를 붙잡아 심문하지 않으세요?" 수안은 이 방법이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소용없어. 그자는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고 배후를 찾아야 해."염구준도 붙잡아 심문하려 했지만, 아바사가 평범하다는 것을 보아내고 생각을 바꿨다.무리안에서 세력을 이끄는 지도자는 모두 강자였다.평범한 이가 우두머리인 경우는 누군가의 도구나 꼭두각시로 이용되는 경우뿐이다."그럼, 아바사가 답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배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수안은 좋은 방법이 떠올리지 못했다."너는 가서 쉬어. 나는 나가서 좀 돌아봐야겠어."염구준은 옥패의 단서를 찾는 것 외에도 용하 사람들을 구출해야 했다.하지만 이들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귀호를 죽이고 보채성맹을 접수한 그들은 장부를 얻었다.그중 가장 큰 거래는 폭홍구 아바사였다. 그리고 이미 많은 용하 사람들이 이곳에서 거래되었다."알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수안은 그를 따라나서지 않았다.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염구준이 하는 말에 절대적을 복종하는 그녀였다.창문을 통해 사라진 염구준은 이미 아래층에 착지했다.일반인은 그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었다.휙!염구준은 빠르게 이동흐며 휘황그룹 내부를 훑어보았
슥- 슥-길을 따라 걸어가던 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수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장치를 건드린 것이었다.그러나 염구준에게는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에 불과해 그의 보호 기운조차 뚫지 못했다.그러던 중 빛이 보였다!염구준은 갑자기 속도를 올려 지하 공간에 도착했다.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염구준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여기는 여러 개의 독립된 작은 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방마다 한 사람씩 갇혀 있었고 그들의 몸 위에는 독충이 기어다니고 있었다.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었지만,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어떤 이들은 독충의 독에 피부가 부식되어 보라색으로 변했거나 괴사되었다.살아 있는 사람으로 독충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어 보였다. 수안처럼 주술에 능한 자가 나서면 더 안전할 것이다.염구준은 분노를 억누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의 목숨을 풀처럼 여기는 그들에게 고통이 무엇이고 두려움이 무엇인지 똑똑히 가르쳐주고 싶었다.그는 독충 제작 구역을 지나 다른 방에 도착했다.여기에는 사람들이 좌우 양쪽에 갇혀 있었다. 외모로 보아 세계 각지에서 온 것 같았고 그 속에 용하 사람들도 있었다.염구준을 주술사로 알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눈에는 공포로 가득했다.방에서 끌려 나가면 대부분 독충 제작 도구로 전락한다."후!"염구준은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많은 사람을 죽이고 시체가 널린 현장을 보아왔지만, 모두 전사들 간의 일이거나 극악무도한 죄인을 죽이는 일이었다.무고한 백성을 해친 적은 없었다."너 누구야? 감히 여기에 들어와?"도전적인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염구준을 향해 걸어왔다. 기운을 보아 주술사임을 알 수 있었다."너희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눈을 번쩍 뜬 염구준은 살기로 가득했고 목소리는 극도로 차가웠다.이렇게 분노하기는 오랫만이었다."허, 아바사의 부하들은 갈수록 무례해지는군." 그들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아 했
염구준은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벼서 특히 살기에 제일 민감했다.촤아악!정체가 드러난 승무원은 더는 연기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비수를 그의 목에 찌르려고 했다.그 동작은 너무 깔끔해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이토록 매섭게 공격하는 수법은 연습이 아니라 실전에서 단련한 것이었다.그러나 염구준는 진작에 눈치채고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비수를 잡았다.“고작 전신경 실력으로 내 목숨을 노리다니 자신감이 넘치네.”승무원은 대꾸하지 않고 다른 손을 등 뒤로 가져가더니 다른 무기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그 전에 염구준이 기운을 뿜어 상대방을 압박했다.승무원은 꼼작도 못하게 되자 손 동작이 느려졌다.펑!이어서 염구준이 한 줄기 기운을 발사했다.강력한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승무원은 혈기가 솟구쳐 입에서 피를 토하고 말았다.그녀의 두 손은 무력하게 양쪽으로 축 처졌다.“누가 너를 보냈는지 말해.”“하하하, 네 몸값이 40억인데 누구 지시가 필요할까?”승무원은 죽음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왜냐면 킬러가 되려고 마음을 먹을 때 언제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돈을 위해서 목숨도 아깝지 않나 봐.”“푸합!”염구준은 말하는 동시에 검끝을 그녀의 이마를 향해 찔러버렸다.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이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했다.40억을 손에 넣으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나가서 보자. 나를 노린다면 여자 혼자서 움직일 리가 없어.”염구준은 일어서서 검갑을 메고는 일반석으로 향했다.잡것들이 그를 노리고 있으니 여기서 깨끗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질 것이다.일반석에 들어서자 승객들은 벌써 제압되었고 킬러 네 명이 복도에 서 있었다.“염구준이야. 핑크 스컬이 실패했어!”“인질을 잡아!”당황한 네 사람은 염구준의 실력을 알고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윙!그 사이 염구준은 빠르게 검을 앞으로 던지면서 킬러 한 명을 죽였다.그리고 오른손에 검을 잡고는 다시 나머지 세 명에게 돌진했다.킬러들은 인질을 잡
그 뒤로 며칠 동안, 염구준은 아내를 도와 신에너지 프로젝트 계약을 처리하고 여유 시간에 부상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귀찮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아서 꽤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그런데 오늘 수상한 메시지를 받으면서 또다시 변고가 생겼다.[넌 누구야?]초상비의 휴대폰으로 온 메시지는 이게 전부였다.마침 아내를 도와 업무를 보고 있던 그는 바로 답장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휴대폰을 꺼놓았는지 답장이 없었다.수상함을 느낀 염구준은 아내에게 말했다.“가을, 여기 계약서는 거의 끝나가고 있어. 나 지금 오스크국에 가서 제이든 부모를 찾아야겠어.”원래 계획대로라면 한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가려고 했다.그런데 지금 초상비의 생사를 알 수 없으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비록 초상비는 부하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러 갔으니 당연히 책임져야 했다.“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가. 이틀 뒤면 나도 따라갈게. 신에너지 프로젝트 때문에 내일 제경에서 미팅하고 팀을 조직해서 그쪽으로 갈 거야.”손가을은 하던 일을 멈추고 염구준에게 말했다.남편의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하니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마음속으로 지지했다.“먼저 갈게. 오스크국에서 보자.”제이든 부모의 일은 단시간에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아 먼저 가려는 것이었다.가기 전에 염구준은 아내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포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집에 도착한 그는 검갑을 메고 제이든과 함께 청해 공항으로 향했다.오스크국은 유럽에 위치했지만 비행기로 이동한다면 몇 시간이면 도착했다.비행기 안에서 제이든은 걱정되는지 손가락을 후벼서 껍질이 일어났다.만약 돌아가서 나쁜 소식을 듣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염구준이 녀석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위로했다.“생각해도 소용없어. 기운을 차려야 뭐든 대응할 수 있어.”이미 발생한 일인만큼 걱정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알고 있어요. 그래도 걱정돼요.”제이든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꿈에서도 집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정작 비행기에 올라
“염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 당장 꺼져!”강준휘가 앞장서서 나가자 일행도 뒤를 따라서 나갔다.강씨 가주가 노발대발하는 상황에서 체면을 잃어도 괜찮으니 더는 염구준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세요.”염구준은 고위 간부들에게 말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간부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면서 활짝 웃었다.“손 대표님, 염 선생님,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급한 일이 아닌 이상 누구도 야근을 하고 싶지 않았다.모두가 회의실 밖으로 나갈 때, 염구준은 아내를 다정한 눈빛으로 보았다.“가을, 우리도 가자. 부모님들이 같이 밥 먹길 기다리고 있어.”“알았어. 방금 진짜 속이 다 후련했어.”손가을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기분이 좋으니 속상했던 일들은 모두 잊기로 했다.든든한 지원군이 곁에 있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그렇게 세 식구는 회사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제이든은 염구준의 말을 명심하고 식구들에게 양마을에 관한 일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염구준과 손가을은 함께 회사로 향했다.손씨 그룹에서 신에너지 프로젝트를 맡았으니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일단 계약서부터 다시 작성해야 하고 인수인계 절차도 밟아야 했다.염구준은 의도치 않게 아내에게 큰일을 맡기게 되어서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부부가 로비에 들어서자 한 노인이 소파에서 일어서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염 선생님, 어제 저희 집 녀석이 무식하게 굴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이 노인은 염구준에게 사과하려고 밤새 달려온 강천길이었다.염구준은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여보, 먼저 올라가 있어. 금방 따라갈게.”이런 일에 관해서 강천길과 사석에서 얘기하고 싶었다.같은 반보천인끼리 혹시나 싸우게 된다면 옆사람이 다치게 될 것이다.“그래. 사무실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염구준은 아내에게서 시선을 떼고 거리낌 없이 소파를 가리켰다.“앉아서 얘기하죠. 큰일도
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강준휘는 마치 처형을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끼익!얼마나 지났을까, 회의실 문이 다시 열리며 염구준이 들어왔다.“지금부터 신에너지 프로젝트는 손씨 그룹에서 진행합니다. 너희들은 꺼져도 돼!”방금 나가서 국주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이랬다.신에너지 프로젝트는 본래 국주가 강씨 가문의 기술 실력을 믿고 맡긴 것이었다.그런데 이놈들이 돌아서자마자 팔아 넘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모종의 의미에서 말하자면 강씨 가문의 행위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었다.그 외에 프로젝트 계약금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강씨 가문에서 손씨 그룹에 100조나 덧붙여 제시한 게 아닌가.그들은 앉아서 돈 벌려는 것도 모자라 파렴치하게 용하의 발전까지 들먹이며 협박한 것이었다.“그럴 리가 없어요. 거짓말하지 마세요!”강준휘는 거짓말이라 우기면서 현실을 부정했다.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강씨 가주 강천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준휘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우리 가문이 법을 어겼다면서 국주님이 갑자기 프로젝트를 회수하셨어.”염구준의 말이 진짜라니 강준휘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가… 가주님, 방금 사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그는 버벅거리며 방금 발생한 일들을 숨기지 않고 전부 보고했다.강씨 가문은 용하 제경에 있는 세력가지만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소홀히 대하지 못했다.“썩을 놈, 돌아오면 책임을 물을 줄 알아. 지금 당장 휴대폰을 염 선생에게 넘겨!”휴대폰 너머로 욕설이 들리는 것을 보아 얼마나 분노하는지 알 수 있었다.‘염 선생?’강준휘는 어리둥절했다.제경의 세력가들을 통틀어 가주가 공손하게 대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그런데 가주가 염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다.지금 강준휘는 본인의 신분으로 염구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무엇을 대표하는지 알 수 없었다.“염 선생님, 가주님이 하실 말씀이 있답니다.”그는 손을 벌벌 떨며 휴대폰을 건넸다.“기분이 잡쳐서 말하고 싶지 않아.
“알았어. 내가 처리할게.”염구준은 아내의 속내를 꿰뚫고 있으니 두말없이 뒷일을 맡았다.그가 곁에 있는 한, 아내가 평생 아무런 걱정없이 살길 바랐다.하지만 눈치 없는 사람들은 그 평화를 깨고 말았다.“둘이 시시덕덕거리지 말고 빨리 사인하세요!”불청객의 말에 염구준은 고개를 홱 돌려 매섭게 노려보았다.“내가 화내기 전에 당장 나가.”그도 상대방처럼 직설적으로 반격했다.방금 여비서가 기세로 손가을을 제압하려고 할 때 몹시 눈에 거슬렸었다.마음 같으면 참교육을 시키고 싶었지만 여기는 손씨 그룹이니 본인 회사에서 싸우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아서 나서지 않았다.그런데 상대방은 자기가 더 센 줄 알고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나왔다.솔직히 여비서는 염구준과 호찬이 말로만 겁주고 실제로 싸울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오늘 누가 나가는지 두고 봅시다!”여비서는 말하면서 앞으로 나서더니 손가락을 매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세우고 염구준의 목을 향해 공격했다.단번에 급소를 치려는 수작이었다.스스슥!그런데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스치더니 여비서의 목을 졸랐다.갑작스러운 공격에 여비서의 기운은 막강한 기운에 밀려 흩어지고 말았다.염구준은 부상을 입었지만 전신지상을 상대하기에 여유가 넘쳤다.“구준 씨, 싸우지 마!”손가을은 남편이 상대방을 죽일까 봐 재빨리 나서서 제지했다.“걱정 마. 나도 선은 지켜.”염구준이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그때 본인의 여비서가 단번에 제압당하자 강준휘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섰다.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을 보니 그도 전신지상에 도달한 무술인이었다.“내 비서를 풀어주고 말로 해결합시다.”“왜, 너도 무력을 쓸 거야?”염구준이 말하기 전에 호찬이 기운을 펼치면서 강준휘에게 달려들었다.‘반보천인 두 명이야!’그제야 강준휘는 큰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아챘다.“손 대표님, 신에너지 프로젝트는 용하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항입니다. 게다가 국주님께서 특별히 승인하신 프로젝트인데 당신들은 용하를 적으로 삼
탁!갑자기 강준휘의 여비서가 테이블을 탁 치며 벌떡 일어섰다.“손가을 씨, 주제를 파악하세요. 강씨 가문에서 손씨 그룹을 좋게 봐서 사업을 제안하는 겁니다. 당장 계약서에 사인하세요.”상대 측에서 드디어 노골적으로 협박하기 시작했다.강준휘가 비서를 제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도 이런 행동을 묵인한 셈이다.“사인하지 않으면 어쩌시려고요?”손가을은 정색하며 여비서를 노려보았다.“핍박하지 마세요!”여비서는 싸늘하게 말하면서 기운을 끌어올렸다.전신지상의 실력을 갖춘 무술인이었다.입구를 지키던 호찬은 회의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나서서 말렸다.“이봐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싸우자는 거야? 어떤 놈을 때리면 되냐?”방금까지도 졸던 용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근육을 팽팽하게 부풀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무술인들은 싸움으로 끝낼 일에 대해 절대 쓸데없이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그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회의실 분위기가 점점 미묘하게 변하더니 공기에 긴장감이 감돌았다.그때 회사 로비에 들어선 염구준은 프런트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염희주를 발견했다.지금 프런트 직원들이 모여서 그녀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다.“염 선생님, 오셨어요?”한 직원이 염구준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그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우리 딸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인사는 됐고 편하게 말하세요.”“아빠, 이 수학 문제 어떻게 풀어요? 여기 언니들이 설명한 게 다 달라요.”염희주가 도움을 청했다.그 말에 직원들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그녀들도 대학교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수학을 손에 놓아서 대부분 까먹었다.“여기 정삼각형은…”염구준이 나서니 일분도 안 되는 사이에 문제를 해결했다.그것도 문제를 풀이하면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었다.“아빠, 최고예요!”그제야 염희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여기서 숙제하고 있어. 아빠는 엄마 찾으러 갈게.”염구준은 딸의 머리를 가볍게 톡 쳤다.그가 익숙하게 회의실에 찾아왔을 때 밖에서
“제가 아니었다면 삼촌이 다치지 않았을 텐데… 죄송해요.”제이든은 미안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하하하.”그 말에 염구준은 생뚱맞은 녀석의 뇌회로에 웃음이 터졌다.“내가 다친 건 너랑 상관없어. 내가 그놈들을 찾아간 거야. 자책하지 마.”양마을에 만능 전당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진상을 알아보러 갔을 뿐이다.그런데 상대방이 미리 함정을 파고 기다릴 줄은 몰랐다.만옥루는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이니 단번에 처리한 것이 참 다행이었다.아니면 흑풍 같은 놈이 또 생겼을 것이다.“네.”제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죄책감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았다.청해 외곽에 도착하자 염구준이 옆을 바라보며 엄숙하게 당부했다.“집에 도착하면 양마을 사건과 내가 부상을 입은 거 절대 말하지 마. 알겠지?”“알겠어요.”제이든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바로 대답했다.염구준은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청해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이런 일들은 그가 혼자 감당하면 충분했다.“구준이 왔어? 밥은 먹었어?”마침 식사 중이던 두 노인이 염구준과 제이든을 보더니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이런 따뜻한 미소는 가족들에게서만 볼 수 있었다.두 사람을 본 순간 손태석은 제이든의 부모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먹었어요. 가을이는 어디 있어요? 올 때가 되었는데 보이지 않네요.”아내와 딸이 보이지 않자 염구준이 물었다.지금은 오후 6시, 두 노인이 회사에서 돌아왔으니 손가을도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요새 처리할 게 많아서 아직도 회사에 있어. 우린 저녁 준비하러 먼저 온 거야.”손태석이 말할 때 표정이 어색한 것이 뭔가 숨기는 것 같았다.“그럼 제가 가을이 데리러 갈게요.”입구로 가던 염구준이 다시 돌아서서 제이든에게 당부했다.“제이든, 이제 함부로 나가지 마. 네 부모님 일은 내게 맡겨.”저녁 무렵, 손씨 그룹 빌딩의 전등이 대부분 꺼지고 유독 회의실만 밝게 켜져 있었다.지금 백 명
“주상께 보고합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체포했습니다.”백호는 상황을 보고하다 잠시 사색하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근데 여자 한 명이 너무 시끄럽게 굽니다. 공을 세워 죄를 갚겠다면서 주상께 중요한 일로 보고할 것이 있답니다.”나무가 무너지면 원숭이들도 흩어진다고, 만옥루가 멸망하니 아랫사람들은 자기 살길을 도모하기 시작했다.염구준은 이미 누군지 짐작하고 있었다.“데리고 와. 일단 들어보고 다시 처리해도 늦지 않아.”한참 뒤, 진희는 두 손이 묶인 채 부하들에게 끌려왔다.헝클어진 머리와 얼굴에 먼지가 묻은 것을 보아 체포할 때 어지간히 반항한 것 같았다.도도하고 기품이 흐르던 화장이 지워지니 평범한 여자의 얼굴로 돌아왔다.“시간이 없으니까 쓸데없는 말은 말고 본론만 말해.”염구준은 먼저 경고했다.그런데 진희는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오자마자 조건부터 내세웠다.“내가 아는 걸 전부 말할게요. 날 보내줘요.”“끌고 가!”염구준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귀찮아 바로 손을 휘저었다.이미 죄인 신세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사태가 파악되지 않은 모양이었다.“말할게요. 만능 전당포의 세력은 막강하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만옥루는 용하에 시장을 개척하러 왔을 뿐이에요. 그리고 제이든을 납치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해외에서 왔어요. 그들 세력도 만만치 않아요.”진희는 끌려갈 때 두 가지 조건을 제기했지만 염구준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이런 말들은 너무 포괄적이라 들을 가치가 없었다.염구준이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 세력이나 개인의 이름이었다.그래야 상대방을 찾을 수 있으니까.나중에 진희는 심문을 받으면서 죽지는 않았지만 평생 전신전에 갇혀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으로 속죄했다고 전해졌다.그때 사타가 히죽거리며 면상을 들이댔다.“염 선생님, 일이 끝났는데 저희 가도 됩니까?”그 말에 염구준이 되물었다.“어디로 가는데?”“집에 가죠. 보내준다고 약속했잖아요.”음양쌍살 중 남자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너희들 죽이지 않는다고
백호는 몸을 약간 떨더니 곧 이를 악물고 약물이 체내에서 천천히 흐르도록 유도했다.일단 약효가 폭주하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염구준도 가만히 있지 않고 두 손으로 백호의 등을 누르며 온몸의 기운을 일사불란하게 불어넣어 날뛰는 약효를 제지했다.만약 컨디션이 최고조였다면 이런 것쯤은 염구준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고 있어 기운이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에 약효를 억누르는게 매우 힘들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억지로 버텼다. 주위의 전신전 성원들은 모두 두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고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두 사람 모두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남에 따라 백호는 얼굴색이 많이 붉어졌으나 염구준은 되려 창백해져만 갔다.“쿨럭!”결국 그는 피가 올라오는 걸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으나 기운을 주입하는 건 멈추지 않았다.생사를 함께한 전우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괜찮기 때문이었다.직위에는 높고 낮음이 있다지만 생명에는 귀천이 없었다.“주상, 그만하세요.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백호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바로 제지했다.“조용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이건 명령이야!”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는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 백호는 살리고야 만다. 염라대왕이 와도 못 데려 가.’“네!”백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명령이었다. 명령이라고만 하면 무작정 따른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그는 다시 염구준의 지시대로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한편,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전신전 성원들은 전부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조급해하는 수박에 없었다. “후.”또 30분이 지난 후, 백호의 상태가 어느정도 안정되자 염구준은 손을 떼고 숨을 길게 내쉰 뒤, 자아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원기가 크게 상한 탓에 그는 최소 몇 달은 걸려야 다시 컨디션이 최고조로 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상!”백호는 무릎을 꿇고 울부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