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부상서 지안수는 윤구주에게 존재를 들키자 곧바로 겁을 먹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죽이지 말아줘... 제발... 제발 날 죽이지 말아 줘! 난 문부상서야! 내각 여덟 장로 중 한 명이라고!”지안수는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목소리마저 달라졌다.그는 윤구주를 향해 사정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얘기했다.지안수는 줄곧 뒤에 숨어 있었기에 장백웅, 마씨 일가, 그리고 문벌 사람들이 전부 윤구주의 손에 죽는 걸 직접 보았다.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지안수 씨?”이때 육도진도 당황했다.그는 내각 여덟 장로 중 한 명인 지안수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지안수는 육도진을 본 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사람처럼 육도진을 향해 크게 외쳤다.“육도진 우상, 어서 절 구해줘요!”육도진은 현재 어리둥절한 상태였다.내각 여덟 장로 중 한 명인 지안수가 왜 이곳에 있는 걸까?바닥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고 있는 문부상서를 보던 육도진은 그제야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저하,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이 사람에게 물어봐. 왜 문벌, 세가와 내통하여 날 해치려고 했는지.”윤구주의 목소리는 서늘했다.육도진은 다시 지안수를 바라보았다.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지안수는 서둘러 말했다.“육도진 우상, 이건 저랑 상관없는 일입니다! 오늘 전 서남 장씨 일가의 초대를 받고 이곳에 온 거예요! 저도 그들이 구주왕을 죽이려고 한 줄 몰랐어요!”지안수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눈앞의 육도진 우상에게 매달리는 것뿐이라는 걸 알았다.그래서 그는 반드시 애원해야 했다.화진의 우상인 육도진은 당연히 지안수의 속셈을 간파할 수 있었다.‘젠장, 어디서 개수작이야? 내각 장로인 그가 뒤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겨우 문벌 따위가 어떻게 감히 공공연히 서울로 왔겠어?’육도진은 비록 그 점을 똑똑히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그가 진실을 얘기하는 순간 지안수는 오늘 반드시 죽게 될 테니 말이다.그래서 육도진은
그렇다고 해도 지안수는 내각 여덟 장로 중 한 명이었다.그는 문맥의 중추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세가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그래서 육도진은 오늘 반드시 문부상서의 목숨을 지켜야 했다.윤구주가 정말로 그를 죽였다가는 서울 전체가 완전히 혼란에 빠질 테니 말이다.“콜록콜록, 저하! 제가 지안수 장로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정말로 우연히 이곳에 온 듯합니다. 그래서 제 체면을 봐서라도 부디 지안수 장로를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육도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정태웅은 곧바로 펄쩍 뛰었다.“어이가 없네요. 육도진 우상, 멍청한 겁니까?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겁니까? 젠장, 바보라도 알겠어요. 지안수 이 사람이 바로 이 일을 꾸민 장본인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겁니까? 게다가 저하에게 우상의 체면을 봐달라고 했습니까? 육도진 우상, 육도진 우상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입니까?”정태웅의 말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육도진의 가슴을 후벼 팠다.아프고 괴로웠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오늘 그는 바보인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정태웅 지휘사는 절 오해한 것 같네요. 전 진짜로 이 일이 지안수 장로와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지안수 장로는 우리 화진의 문맥을 책임진 중요한 신하니까요. 당시 저하께서 곤륜에서 왕으로 등극했을 때 문맥은 저하를 크게 지지했었습니다.”육도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정태웅은 곧바로 날카롭게 말했다.“당시 저하께서 왕으로 등극하셨을 때 문맥이 감히 지지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맞는 말이었다.6년 전,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문맥도, 무맥도, 화진의 3대 서열도 감히 윤구주를 반대할 수 없었다.누가 반대할 수 있었겠는가?육도진은 정태웅의 반박에 할 말이 없었다.정태웅이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육도진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그는 테이블 위에 손을 놓더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육도진
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끝장이었다.오늘 윤구주를 막을 방법은 없는 듯했다.그러나 윤구주가 정말로 지안수를 죽인다면 아마 서울뿐만 아니라 황성 전체에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아무래도 그가 죽이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각의 여덟 장로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육도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윤구주를 향해 절을 했다.“저하, 저 육도진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지안수 장로를 살려주십시오. 앞으로 지안수 장로가 또 한 번 이런 짓을 벌인다면 제가 제일 처음 나서서 죽이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육도진의 설득에 윤구주는 웃음을 터뜨렸다.“날 설득하려는 거야?”육도진은 감히 대답할 수 없어서 그저 두려워하며 그곳에 서 있었다.“6년 전, 내가 곤륜에서 왕이 되기 전 내가 병부상서 한 명을 죽인 것 기억하지?”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순간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네... 기억합니다!”육도진은 전전긍긍하며 말했다.당시 그 병부상서는 지금 내각의 여덟 장로보다 지위가 더욱 높았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윤구주가 그저 단순히 병부상서를 죽인 게 아니라 황성 안에서, 문무백관들 앞에서 그를 죽였다는 점이다.당시 그 병부상서는 조정에서 말을 한마디 잘못했을 뿐이었다.천하의 무인이 대권을 장악해야 국난이 닥쳤을 때 무인들이 나라를 위해 나설 거라고 말이다.그 병부상서의 뜻은 아주 간단했다. 권력을 달라는 말이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한마디 때문에 윤구주가 조정에서, 문무백관들 앞에서 그의 머리를 벨 줄은 전혀 상상치 못했다.육도진은 그 화면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올랐다.“당시 내가 그 병부상서를 죽이려고 할 때 국주님도 날 설득하려고 했었지.”그렇게 말한 뒤 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들어 육도진을 바라보았다.“국주님도 날 막지 못했었지. 그런데 육도진 우상이 오늘 날 막을 수 있을까?”그 말에 육도진은 완전히 기대를 접었다.그는 표정이 굳은
“그들은 문씨 일가의 편에 서서 문씨 일가와 연합하여 우리 저하를 해치려고 했어. 당신은 어떻게 했지? 문부상서인 당신은 그들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그들과 결탁했어. 그러니까 당연히 죽어 마땅하지 않아?”정태웅의 반박에 지안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오늘 당신을 죽이는 건 당연한 일이야.”정태웅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뒤 칼을 들어 문부상서인 지안수의 머리를 베려고 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아래층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잠깐! 오늘 누가 감히 지안수 장로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그 말과 함께 노란색 갑옷을 입은 금위군들이 태화루에 나타났다.그들은 황성의 친위군, 황기 금위군이었다.서울의 3대 금위군은 황기, 자기, 흑기로 나뉘었다.그중 황기 금위군의 신분이 가장 높았다.그들은 황성과 오늘날의 국주를 대표했다.노란색 갑옷을 입은 금위군들이 모두 도착했고 선두에 선 사람은 내각의 여덟 장로 중 나머지 일곱 명이었다.선두에 선 노인은 백발이지만 체구가 건장했고 눈빛에서 서늘한 빛을 내뿜었다.나머지 여섯 명도 모두 내각 원로였다.“은 장로, 드디어 왔군요! 얼른 절 구해줘요!”지안수는 내각의 여덟 장로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은 장로라고 불린 노인도 절정 내공인 듯했다.게다가 그는 내각의 여덟 장로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이름은 은성구였다.그는 화진의 삼조 원로였고 내각의 여덟 장로 중 수장이었다.은성구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지안수를 힐끗 보았다. 지안수가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는 걸 확인한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쓱 훑어보았다.그런 뒤 서늘한 두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저하, 화진의 최고 군신인 저하께서 무엇 때문에 대낮부터 이렇게 사람들을 학살하신 겁니까? 이건 저희 화진에 먹칠을 하는 겁니다!”“하!”“은 장로,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지? 이놈들 중에 죽어 마땅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 저하께서 이 자식들을 죽이는 게 뭐가
아름다운 이홍연이 나타난 뒤 내각의 여덟 장로들, 육도진을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공주님을 뵙습니다!”공주가 왔다.여섯째 공주가 갑자기 나타나자 정태웅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사실 윤구주도 한때 소꿉친구였던 그녀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생각지 못했다.이홍연의 뒤에는 황성 출신의 절정 실력을 갖춘 내시 두 명이 있었다.두 사람은 안색이 좋고 수염은 하얬다.게다가 둘 다 절정 이중천 이상의 실력자였다.하지만 육도 주도는 보이지 않았다.“공주님, 저 지안수 공주님을 뵙습니다. 공주님, 절 살려주십시오!”지안수는 이홍연을 보자 곧바로 고개를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했다.이홍연은 지안수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아름다운 눈을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원망과 분노 가득한 눈빛이었다.윤구주 또한 저번의 만남으로 속 좁은 이홍연이 그를 죽도로 미워한다는 걸 알았다.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눈빛이 마주쳤지만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다.이홍연이 갑자기 나타나자 내각의 여덟 장로는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들도 이제 막 서울로 돌아온 여섯째 공주가 왜 갑자기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지 알지 못했다.“공주님, 이제 막 궁으로 돌아오셨는데 왜 갑자기 이곳으로 오신 겁니까?”가장 처음 입을 연 것은 내각의 여덟 장로 중 한 명인 은성구였다.그는 그렇게 물으면서 이홍연의 안색을 살폈다.“오늘 이곳이 아주 떠들썩하다고 해서 한 번 와봤어요!”이홍연은 아주 덤덤히 말했다.이홍연의 말을 들은 은성구는 조금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문벌들이 태화루에 모여서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문벌의 배후인 내각의 여덟 장로가 모를 리가 없었다.“은성구 씨, 제가 와서 많이 놀라셨나 봐요?”이홍연은 갑자기 은성구에게 물었다.“아뇨, 아뇨. 저도 금방 소식을 듣고 이제 막 도착한 겁
윤구주는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홍연이 이렇게 할 줄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공주님, 감사드립니다! 공주님, 제발 절 살려주십시오!”지안수는 서둘러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여기에 있는 이상 아무도 지안수 씨를 죽이지 못해요.”이홍연은 패기 넘치게 말했다.황실의 여섯째 공주이자 국주가 가장 아끼는 딸인 이홍연은 자신감이 넘쳤다.“감사합니다, 공주님!”지안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오늘 그는 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공주가 갑자기 나타났다.이때 다들 의아해했고 우상인 육도진 또한 답답해했다.그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공주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내각의 여덟 장로를 도우려고 하다니?그녀는 소꿉친구인 윤구주를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다들 매우 궁금해할 때 이홍연이 갑자기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 왜 대낮부터 이렇게 많은 문벌 출신의 무인들을 죽인 거야? 그리고 왜 내각의 문부상서를 죽이려는 거지?”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윤구주에게로 향했다.육도진 우상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육도진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공주가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윤구주는 이홍연의 질문을 듣더니 덤덤히 말했다.“죽어 마땅한 놈들이니까.”그 말에 이홍연으 크게 고함을 질렀다.“건방지군! 윤구주, 넌 화진의 구주 군신이자 우리 화진의 기둥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야!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넌 절대 아무도 죽일 수 없어!”이홍연의 말을 들은 윤구주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이홍연은 자신의 말에 윤구주가 화를 내길 바랐지만 윤구주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척 화가 났다.“윤구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이홍연은 잘못했다는 말을 할 때 눈이 벌겠다.아무도 이홍연이 말한 잘못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그들은 이홍연이 윤구주에게 사람을 죽인 잘못을 묻는 줄 알았다.“내가 잘못했다
이홍연이 슬픈 얼굴로 억울한 듯 말하자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마치 진짜 연인처럼 말이다.그 광경에 그 자리에 있던 금위군뿐만 아니라 내각의 여덟 장로, 육도진 등 사람들 모두 넋이 나갔다.이건 원수가 아니라 애인이었다.“홍연아, 미안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그 말에 이홍연은 마음이 녹을 뻔했다.그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눈을 깜빡이면서 울며 말했다.“드디어 나한테 미안하다는 걸 인정한 거야? 그래도 양심은 있네!”윤구주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었다.사실 윤구주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으나 그러한 마음은 반드시 숨겨야 했다.16년 전의 사건을 위해서라도, 강성에 있는 소채은을 위해서라도.윤구주는 소채은에게 미안할 짓을 할 수 없었다.“홍연아, 넌 오늘 일에 끼어들지 마. 문벌이 혼란을 야기했으니 난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해. 문벌과 내각도 마찬가지야. 6년 전 난 말했었어. 감히 우리 화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전부 죽일 거라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거야.”이홍연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난 처음부터 끼어들 생각 없었어.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사실 너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어. 네가 나한테 대답만 해준다면 내가 이 나쁜 지안수 장로를 대신 죽여줄 수도 있어!”지안수는 어리둥절해졌다.공주가 너무 빨리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뒤에 있던 일곱 명의 내각 장로들도 전부 안색이 어두워졌다.이홍연은 과연 정말로 내각 장로들을 돕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걸까? 아니면 윤구주를 돕기 위해서 온 걸까?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일까?급작스럽게 변한 상황 때문에 내각 사람들은 전부 표정이 어두워졌다.물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이홍연은 화진의 여섯째 공주였기 때문이다.“내가 떠난 뒤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거야?”이홍연은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윤구주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했다.윤구주는 길
이홍연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치명적인 일격이었다.심지어 화진의 우상 육도진마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뻔했다.그 질문은 모든 남자에게 치명적이었다.그러한 질문에 윤구주는 당연히 침묵을 선택했다.“대답해! 대답하라고! 누굴 선택할 거야?”이홍연은 계속해 물었다.서울로 돌아온 뒤로 이홍연은 줄곧 대답을 원했고, 그래서 지금 윤구주에게 따져 물었다.내각의 여덟 장로들을 포함해 다들 윤구주만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윤구주가 이홍연을 선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윤구주가 정말로 이홍연을 선택한다면 내각의 여덟 장로는 오늘 끝장날 테니 말이다.다른 사람들이었더라면 당연히 이홍연을 선택할 것이었다.이홍연은 화진의 여섯째 공주였고, 미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윤구주와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고 그녀의 몸에서는 황가의 피가 흐르기도 했다.바보라고 해도 당연히 이홍연을 선택할 것이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이홍연을 선택할까?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눈앞의 아름다운 이홍연을 바라보았다.“정말로 내가 꼭 선택하기를 바라?”“그래. 오늘 넌 나에게 반드시 대답해 줘야 해. 난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난 이미 10년 넘게 기다렸다고!”이홍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휴, 홍연아. 미안해!”윤구주가 드디어 대답했다.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이홍연을 포함한 모두가 그의 대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이홍연은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고 곧 온몸이 언 것처럼 덜덜 떨렸다.“그 뜻은 그 여자를 선택한다는 거야?”이홍연은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움을 견디며 윤구주를 향해 물었다.윤구주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기가 두려운지 고개를 숙였다.“윤구주, 이게 네가 내놓은 대답인 거야? 난 그렇게 오랜 시간 널 기다리면서 널 사랑했어. 그런데 결국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그래, 그래, 그래!”‘그래’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던 이홍연은 갑자기 비참한 얼굴로 웃었다.그러더니 이내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표정을
윤구주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가장 처음 놀란 것은 레이였다.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칠살 절정 강자인 레이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어떻게... 어떻게 당신일 수가... 당신은 분명... 죽었는데?”레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레이 님, 왜 그러세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는 레이의 모습을 보고 서둘러 물었다.옆에 있던 팔이 잘린 밀라나는 궁금증이 생겼다.“저 사람은... 화진의 구주왕이에요. 6년 전 홀로 10국과 싸웠던 그자 말이에요!”레이는 윤구주의 신분을 얘기했다.‘뭐라고?’그 말에 아나스와 밀라나 모두 넋이 나갔다.구주왕?화진의 왕?윤구주를 본 아나스는 몸과 영혼 다 윤구주의 기운에 억눌린 것만 같았다.윤구주로 인해 팔이 잘린 밀라나는 안색이 종잇장처럼 창백했다.“화진의 구주왕이라고요? 이미 죽은 거 아니었나요? 설마 화국이 우리 10국을, 전 세계를 속인 건가요?”아나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윤구주를 본 순간, 그들의 몸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윤구주는 온몸이 흰빛으로 둘러싸였다.조각된 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윤구주는 마치 신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국제중재기구에 날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윤구주의 목소리에 경멸이 어려 있었다.마치 국제중재기구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구주왕, 조금 전에는 저희가 무례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희 국제중재기구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칠살 절정인 레이는 윤구주를 본 순간 서둘러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옆에 있던 아나스와 팔이 잘린 밀라나는 레이가 윤구주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갖추자 완전히 넋이 나갔다.윤구주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계속해 말했다.“국제중재기구는 아마도 설국 일 때문에 온 거겠지?”“...네.”레이는 비록 인정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국제중재기구가 왔으니 얘기해줄게. 설태현의 목은 내가 잘랐어. 설국의 백 년 국운 또한
국제중재기구에서 왔다는 그의 말이 널리 울려 퍼졌다.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붉은 머리카락의 세나미는 국제중재기구란 말을 듣는 순간 몸을 흠칫 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국제중재기구? 드디어 왔어!”세나미는 어두운 밤 중에 등대를 발견한 사람처럼 흥분해서 금전 바깥쪽으로 달려갔다.그런데 얼마 달리지 않아 쾅 소리와 함께 부적대진의 엄청난 힘이 그녀를 튕겨냈다.세나미는 아픈 듯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서 일어났다.그녀는 분노 어린 눈빛으로 금전 위쪽에 있는 윤구주를 죽어라 노려보며 말했다.“구주왕! 당신이 얼마나 강하든 오늘 국제중재기구가 이곳에 온 이상 당신은 반드시 우리 설국을 공격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세계 각국은 국제중재기구의 힘을 믿었다.국제중재기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몇몇 제국이 연합해서 만든 기구였기 때문이다.국제중재기구가 나선다면 그 어떤 나라라도 감히 그들을 푸대접할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고 하는 국제중재기구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레이가 국제중재기구에서 왔다고 하는 순간, 64개의 부적으로 이루어진 부적대진 안에서 갑자기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국제중재기구? 난 당신들을 오랫동안 기다렸어.”비록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특히 레이, 아나스,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젠장. 이 사람 엄청 강해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가 가장 처음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맞아요. 게다가 우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파란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이때 입을 열어 말했다.오직 레이만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부적대진을 노려보고 있었다.“우리가 국제중재기구 사람이란 걸 아시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겁니까?”그렇게 말하자 광기 어린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부적대진 안에서 들려왔다.“겨우 세 명이 국제중재기구를 대표하려고 하다니, 그러기엔 자격이 부족한 것 같은데.”그 말을 들은 순간 파
부적 대진의 중앙에서 윤구주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의 몸은 자줏빛 기운을 흡수하자 온몸의 피와 살, 뼈가 완전히 환골탈태했다.심지어 외모도 예전보다 훨씬 더 잘생겨졌다.우우!갑자기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그의 체내에서 전해졌고 곧이어 무시무시한 코끼리의 형상이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총 9마리였다.코끼리가 9마리가 나타나자 하늘과 땅도 그 엄청난 위엄을 느낀 듯했다.윤구주가 9마리의 코끼리를 나타나게 하자 설국 금전의 바닥이 갈라지면서 금전 전체가 아래로 내려앉았다.“무슨 상황이지? 저 악마... 대체 뭘 하는 거야?”금전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자 금전 안에 있던 세나미는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금전이 뒤흔들렸고 수많은 집들이 무너지고 파괴되었다.심지어 금전 상공에서도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윤구주의 등 뒤에 코끼리 9마리의 형상이 나타나는 순간, 용의 울음소리 또한 들려왔다.곧이어 9마리의 금빛 용이 윤구주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용과 코끼리가 동시에 나타나다니.물에서는 용이 최고며, 육지에서는 코끼리가 최고라고 한다.그런데 윤구주는 용과 코끼리를 동시에 불러냈다.“드디어 성공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두 눈을 번쩍 뜨며 눈빛을 번뜩였다.쿵!그 순간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구음만상결의 수련에 드디어 성공했다.윤구주가 구음만상결을 성공한 찰나, 그의 입가에 갑자기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왔나? 잘 됐어. 너희를 이용해서 시험해 봐야겠어.”윤구주는 도도하게 말한 뒤 다시금 눈을 감았다.먼 곳, 윤구주가 구음만상결을 수련할 때 세 명의 사람이 설국 수도에 도착했다.“엄청 강한 기운이에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푸른 눈동자는 금전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다들 저길 봐요. 저게 뭐죠?”아나스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설국 금전 쪽에 아주 거대한 부적 대진이 설국 금전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부적? 저건 화진의 술법이에요!”파란색 머리카락의 요염한
“걱정하지 마. 우리 저하께서 설국 수도에 남아있는 건 분명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그런 걸 테니까 말이야. 우리는 그냥 여기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돼. 조급해할 이유가 없어.”염수천의 말을 듣자 박천후는 그제야 입을 다물고 더 질문하지 않았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세 명의 강한 절정 기운이 갑자기 박천후의 신해 속에 나타났다.똑같이 절정 강자인 박천후는 허공에서 나타난 절정 강자들의 기운에 안색이 급격히 달라졌다.“강자가 왔어. 다들 경계해!”박천후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수많은 병사들이 곧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박천후의 옆, 눈밭에서 앉아 있던 염수천은 이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무홍의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었다.하늘에서 세 명의 사람이 아주 빠른 속도로 설국의 낙일성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세 사람을 본 순간 염수천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싸늘한 살기를 드러내며 말했다.“준절정 세 명이야.”“세 사람의 실력은 아마 우리보다 약하진 않을 거야.”염수천은 차가운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어떡하지? 설국에서 부른 지원군일 것 같은데 지금 바로 저 세 명을 공격할까?”박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세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그에게 있어 윤구주를 해치려는 사람은 전부 죽어 마땅했다.“조급해하지 마. 저 세 사람은 설국인이 아닌 것 같아. 게다가 저하께서는 출발하기 전 우리에게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명령을 내리셨어.”염수천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박천후는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그러면 저 빌어먹을 놈들이 우리 저하를 상대하는 걸 그냥 지켜봐야만 해?”“그들에게 그럴 실력이 있겠어?”염수천은 비웃었다.말을 마친 뒤 그는 박천후의 어깨를 토닥였다.“박천후, 걱정하지 마. 우리 저하께서 홀로 설국으로 가서 그들을 공격한 이유는 다른 나라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니까. 그러니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든, 감히 우리 저하를 공격하려고 한다면 모두 죽게 될 거야
“맞아요. 만약 화진의 구주왕이 살아있다면 우리 국제중재기구는 조금 두려워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잖아요...”레이라고 불린 가장 앞에 서 있던 금발의 남자는 윤구주의 얘기가 나오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레이 님,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당시 10국 간의 전쟁에서 레이 님께서는 구주왕을 직접 본 적이 계시죠? 소문이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당시 우리 10국의 강자들이 함께 연합해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나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금발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금발의 남자는 잠깐 침묵하더니 고개를 들어 흩날리는 눈보라를 바라보았다.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6년 전 전쟁 때가 떠올랐다.그 전투에서 피는 바다를 이루었고 시체는 쌓여 산더미를 이루었다.당시 그 전투에서 레이는 구주왕의 실력을 본인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었다.그는 그 전투에서 12명의 신급 절정 강자가 윤구주와 고전을 치렀던 걸 똑똑히 기억했다.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중 반이 죽었다.최후에 10국이 투항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날 10국의 강자들은 전부 윤구주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 장면을 떠올리자 국제중재기구 출신이며 칠살 급인 레이는 눈가가 심하게 떨렸다.그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그 남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는... 악마예요!”악마라는 말에 아나스도, 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도 침묵했다.“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죽었죠.”레이는 갑자기 길게 숨을 내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갑시다. 일단은 설국으로 가야죠.”그는 그렇게 말한 뒤 설국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아나스와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는 그를 뒤따랐다....낙일성은 설국 수도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었다.이 시각, 낙일성 30km 밖에서는 화진 군대가 진지를 확고히 정비하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수십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은 기세가 남달랐다.선두에 선 장수는 화진 북방군의 총사령관 박천후와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예전에 윤구주는 신념을 이용하여 염수천에
예전에 세나미는 윤구주가 자신의 실력을 전부 보여줬고, 그래서 설국을 이 정도로 파괴할 수 있었던 거로 생각했다.그러나 윤구주의 등 뒤에 나타난 거대한 코끼리의 형상을 본 순간 세나미는 그를 증오할 용기 또한 없었다.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윤구주가 더는 설국 사람들을 죽이지 않기를 말이다.시간은 1분 1초 흘렀다.설국의 국운은 마치 강물처럼 윤구주의 체내로 천천히 흘러들었다.같은 시각, 설국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사람 세 명이 나타났다.그 세 사람은 모두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선두에 선 사람은 금발 머리카락의 남자였다.남자는 흰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일거수일투족이 매우 우아했다.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사악한 기운이 그를 매우 음산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그의 곁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있었다.남자는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여자는 요염하고 관능적이었다.세 사람이 나타나자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에 눈보라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그들은 모두 절정 강자였다.게다가 선두에 있는 금발의 남자는 칠살 급의 초극 준절정 강자였다.다른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역시 오악 이상의 절정 강자였다.이 순간 설국에 이 세 사람이 나타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아나스, 곧 설국이죠?”유럽 악센트가 강한 금발의 남자가 눈보라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곧 도착할 겁니다.”아나스라고 불린 건장한 남자가 대답했다.“설국이 우리 국제중재기구에 연락해서 나서달라고 했다니, 이번에 설국이 정말로 화진을 제대로 건드렸나 봐요.”금발의 남자는 그 말을 할 때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띠었다.“흥! 설국이 자초한 일이죠. 왜 하필 화진을 건드린 건지. 설마 6년 전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얼마나 처참히 실패했는지를 잊은 걸까요?”아나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하, 아나스.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비록 화진은 세계 최강의 무도 강국이지만 그럴
“정말요? 아버지, 윤구주를 진국왕으로 책봉하실 생각이세요?”이홍연은 예쁜 눈을 크게 뜨고 들뜬 얼굴로 국주를 바라보며 물었다.국주는 천천히 말했다.“6년 전 그때 난 구주를 이미 진북왕으로 책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종문과 세가에서 날 방해했지. 그러나 이번에 감히 날 막아서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자를 적으로 돌릴 것이다. 조정 전체를, 무도 천하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국주가 패기 넘치는 말투로 얘기하자 육도진은 흥분하며 말했다.“국주님, 대단하십니다. 국주님, 만세!”국주는 싱긋 웃더니 옆에 있는 이홍연을 바라보았다.“게다가 구주는 앞으로 우리 화진의 진국왕일 뿐만 아니라 우리 화진의 부마가 될 것이니 말이다.”부마라는 말에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화진의 여섯째 공주는 순간 목까지 붉어졌다.“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이홍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왜? 내 말이 틀리더냐?”국주가 말했다.이홍연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전, 전, 전 구주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비록 이홍연을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꿀을 먹은 것보다도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국주는 딸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래. 네가 싫다고 하니 기회를 봐서 구주를 위해 다른 배필을 찾아봐 줘야겠구나. 어차피 구주는 지금 연인이 없고 우리 화진에는 여자들이 많으니 말이다.”“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구주는 제 거예요. 아무도 저에게서 구주를 빼앗을 수 있어요.”아버지가 윤구주를 다른 여자와 결혼시키겠다고 하자 이홍연은 버럭 화를 냈다.국주는 큰 소리로 웃었다.“그래. 장난은 그만할게. 육도진 우상, 구주가 승리를 거머쥐고 돌아온다면 나는 태산에서 친히 구주를 진국왕으로 책봉할 것이다.”육도진은 서둘러 대답했다.“네!”...설국.윤구주가 설태현을 머리를 벤 뒤 설국 전체가 설태현을 위해 애도했다.설국의 국주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수도 금전.윤구주의 부적대진
그 말에 육도진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여섯째 공주 이홍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설국 국주가 죽었다고요? 이게 무슨 상황이죠?”이홍연은 이때 입을 뻐끔거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심지어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을 뻔했다.바로 이때 국주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구주가 설국의 그 젊은 국주를 정말로 베었나 보구나.”그 말에 이홍연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버지, 윤구주가 설국 국주를 죽였다는 말씀이세요?”화진 국주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이 세상에 그 정도 능력과 배짱을 가진 사람이 윤구주 말고 또 있겠느냐?”“하지만... 하지만 윤구주는 설국에 간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걸요!”이홍연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구주가 설국의 국주를 죽여본 적 없는 것도 아니고. 잊지 말거라. 6년 전, 설국의 전 국주 역시 구주가 죽였었다.”꿀꺽.국주의 말을 들은 이홍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자신의 남자가 설국 국주를 두 명이나 죽였다는 생각에 이홍연은 크게 놀랐다.“구주는 지금 어디 있느냐? 대답해 보거라.”국주의 질문에 신하가 대답했다.“국주님, 그쪽에서 전해온 전보에 따르면 구주왕께서는 지금도 설국 수도에 있을 거로 예상됩니다.”“아직도?”국주는 조금 의아했다.“그렇습니다. 전보에 따르면 설국 금전이 빛에 완전히 뒤덮였고 설국 백성들은 구주왕이 자줏빛 기운을 빨아들이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자줏빛 기운?그 말을 들은 국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이 망할 놈, 설국 국주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설국의 국운까지 흡수하려는 것이구나.”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국주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국 국주를 죽였으면 바로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거기에 남아서 무슨 자줏빛 기운을 흡수한단 말이에요? 뭘 위해서요?”이홍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국주는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몰라서 그래. 자줏빛 기운이랑 한 나라의
부진이 가동되었고 윤구주가 금전 전체를 뒤덮었다.하늘을 가득 메운 부적 진법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세나미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이, 이 악마. 뭘 하려는 거야?”윤구주는 피식 웃더니 시선을 들어 상공의 부적 진법을 보았다.“오늘 나는 설국의 백 년 국운을 파괴할 것이다.”국운이란 무엇인가?바로 한 나라의 운세였다.그런데 윤구주는 혼자의 힘으로 설국의 백 년 국운을 파괴할 거라고 했다.과연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일까?우렁찬 목소리로 말한 뒤 윤구주는 훌쩍 뛰어올라 설국 금전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그의 온몸에서 기운이 넘실댔다.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적선기가 그를 신처럼 보이게 했다.윤구주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그가 두 손으로 수인을 맺는 순간, 하늘과 땅이 윤구주를 중심으로 거대한 빛줄기를 형성했다.빛줄기 아래, 윤구주는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부진, 가동!”쿵쿵쿵.금전 전체를 뒤덮었던 거대한 부적 진법이 가동됨과 동시에 진법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64개의 금빛 부적이 64개의 금빛이 되어 설국 금전 위로 내려앉았다.그 뒤로 금전 아래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그리고 곧이어 파멸적인 기세의 자줏빛 기운이 윤구주에게 흡수되어 금전의 땅 밑에서부터 올라왔다.자줏빛 기운은 상서로운 기운이었다.설국 수도에서 이 금전은 역대 설국 황실이 거주하던 곳이자 설국의 수많은 신하들이 경배하는 곳이었다.그곳에는 용의 기운도, 상서로운 기운도 있었다.이 순간, 수많은 설국 국민들이 살고 있는 이 신성한 곳의 기운을 윤구주가 조금씩 흡수하기 시작했다.그 광경에 세나미는 얼이 빠졌다.“이... 이... 이 악마! 우리 설국 황실의 기운을 흡수하는 거야?”세나미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윤구주가 만약 설국의 기운을 빨아들인다면 설국은 당연하게도 쇠락할 것이다.심지어 심각할 경우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이 모든 건 설국이 자초한 일이야.”윤구주는 세나미를 무시하고 미친 듯이 설국의 국운을 흡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