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도 지안수는 내각 여덟 장로 중 한 명이었다.그는 문맥의 중추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세가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그래서 육도진은 오늘 반드시 문부상서의 목숨을 지켜야 했다.윤구주가 정말로 그를 죽였다가는 서울 전체가 완전히 혼란에 빠질 테니 말이다.“콜록콜록, 저하! 제가 지안수 장로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정말로 우연히 이곳에 온 듯합니다. 그래서 제 체면을 봐서라도 부디 지안수 장로를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육도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정태웅은 곧바로 펄쩍 뛰었다.“어이가 없네요. 육도진 우상, 멍청한 겁니까?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겁니까? 젠장, 바보라도 알겠어요. 지안수 이 사람이 바로 이 일을 꾸민 장본인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겁니까? 게다가 저하에게 우상의 체면을 봐달라고 했습니까? 육도진 우상, 육도진 우상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입니까?”정태웅의 말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육도진의 가슴을 후벼 팠다.아프고 괴로웠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오늘 그는 바보인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정태웅 지휘사는 절 오해한 것 같네요. 전 진짜로 이 일이 지안수 장로와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지안수 장로는 우리 화진의 문맥을 책임진 중요한 신하니까요. 당시 저하께서 곤륜에서 왕으로 등극했을 때 문맥은 저하를 크게 지지했었습니다.”육도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정태웅은 곧바로 날카롭게 말했다.“당시 저하께서 왕으로 등극하셨을 때 문맥이 감히 지지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맞는 말이었다.6년 전,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문맥도, 무맥도, 화진의 3대 서열도 감히 윤구주를 반대할 수 없었다.누가 반대할 수 있었겠는가?육도진은 정태웅의 반박에 할 말이 없었다.정태웅이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육도진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그는 테이블 위에 손을 놓더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육도진
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끝장이었다.오늘 윤구주를 막을 방법은 없는 듯했다.그러나 윤구주가 정말로 지안수를 죽인다면 아마 서울뿐만 아니라 황성 전체에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아무래도 그가 죽이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각의 여덟 장로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육도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윤구주를 향해 절을 했다.“저하, 저 육도진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지안수 장로를 살려주십시오. 앞으로 지안수 장로가 또 한 번 이런 짓을 벌인다면 제가 제일 처음 나서서 죽이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육도진의 설득에 윤구주는 웃음을 터뜨렸다.“날 설득하려는 거야?”육도진은 감히 대답할 수 없어서 그저 두려워하며 그곳에 서 있었다.“6년 전, 내가 곤륜에서 왕이 되기 전 내가 병부상서 한 명을 죽인 것 기억하지?”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순간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네... 기억합니다!”육도진은 전전긍긍하며 말했다.당시 그 병부상서는 지금 내각의 여덟 장로보다 지위가 더욱 높았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윤구주가 그저 단순히 병부상서를 죽인 게 아니라 황성 안에서, 문무백관들 앞에서 그를 죽였다는 점이다.당시 그 병부상서는 조정에서 말을 한마디 잘못했을 뿐이었다.천하의 무인이 대권을 장악해야 국난이 닥쳤을 때 무인들이 나라를 위해 나설 거라고 말이다.그 병부상서의 뜻은 아주 간단했다. 권력을 달라는 말이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한마디 때문에 윤구주가 조정에서, 문무백관들 앞에서 그의 머리를 벨 줄은 전혀 상상치 못했다.육도진은 그 화면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올랐다.“당시 내가 그 병부상서를 죽이려고 할 때 국주님도 날 설득하려고 했었지.”그렇게 말한 뒤 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들어 육도진을 바라보았다.“국주님도 날 막지 못했었지. 그런데 육도진 우상이 오늘 날 막을 수 있을까?”그 말에 육도진은 완전히 기대를 접었다.그는 표정이 굳은
“그들은 문씨 일가의 편에 서서 문씨 일가와 연합하여 우리 저하를 해치려고 했어. 당신은 어떻게 했지? 문부상서인 당신은 그들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그들과 결탁했어. 그러니까 당연히 죽어 마땅하지 않아?”정태웅의 반박에 지안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오늘 당신을 죽이는 건 당연한 일이야.”정태웅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뒤 칼을 들어 문부상서인 지안수의 머리를 베려고 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아래층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잠깐! 오늘 누가 감히 지안수 장로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그 말과 함께 노란색 갑옷을 입은 금위군들이 태화루에 나타났다.그들은 황성의 친위군, 황기 금위군이었다.서울의 3대 금위군은 황기, 자기, 흑기로 나뉘었다.그중 황기 금위군의 신분이 가장 높았다.그들은 황성과 오늘날의 국주를 대표했다.노란색 갑옷을 입은 금위군들이 모두 도착했고 선두에 선 사람은 내각의 여덟 장로 중 나머지 일곱 명이었다.선두에 선 노인은 백발이지만 체구가 건장했고 눈빛에서 서늘한 빛을 내뿜었다.나머지 여섯 명도 모두 내각 원로였다.“은 장로, 드디어 왔군요! 얼른 절 구해줘요!”지안수는 내각의 여덟 장로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은 장로라고 불린 노인도 절정 내공인 듯했다.게다가 그는 내각의 여덟 장로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이름은 은성구였다.그는 화진의 삼조 원로였고 내각의 여덟 장로 중 수장이었다.은성구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지안수를 힐끗 보았다. 지안수가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는 걸 확인한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쓱 훑어보았다.그런 뒤 서늘한 두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저하, 화진의 최고 군신인 저하께서 무엇 때문에 대낮부터 이렇게 사람들을 학살하신 겁니까? 이건 저희 화진에 먹칠을 하는 겁니다!”“하!”“은 장로,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지? 이놈들 중에 죽어 마땅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 저하께서 이 자식들을 죽이는 게 뭐가
아름다운 이홍연이 나타난 뒤 내각의 여덟 장로들, 육도진을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공주님을 뵙습니다!”공주가 왔다.여섯째 공주가 갑자기 나타나자 정태웅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사실 윤구주도 한때 소꿉친구였던 그녀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생각지 못했다.이홍연의 뒤에는 황성 출신의 절정 실력을 갖춘 내시 두 명이 있었다.두 사람은 안색이 좋고 수염은 하얬다.게다가 둘 다 절정 이중천 이상의 실력자였다.하지만 육도 주도는 보이지 않았다.“공주님, 저 지안수 공주님을 뵙습니다. 공주님, 절 살려주십시오!”지안수는 이홍연을 보자 곧바로 고개를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했다.이홍연은 지안수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아름다운 눈을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원망과 분노 가득한 눈빛이었다.윤구주 또한 저번의 만남으로 속 좁은 이홍연이 그를 죽도로 미워한다는 걸 알았다.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눈빛이 마주쳤지만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다.이홍연이 갑자기 나타나자 내각의 여덟 장로는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들도 이제 막 서울로 돌아온 여섯째 공주가 왜 갑자기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지 알지 못했다.“공주님, 이제 막 궁으로 돌아오셨는데 왜 갑자기 이곳으로 오신 겁니까?”가장 처음 입을 연 것은 내각의 여덟 장로 중 한 명인 은성구였다.그는 그렇게 물으면서 이홍연의 안색을 살폈다.“오늘 이곳이 아주 떠들썩하다고 해서 한 번 와봤어요!”이홍연은 아주 덤덤히 말했다.이홍연의 말을 들은 은성구는 조금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문벌들이 태화루에 모여서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문벌의 배후인 내각의 여덟 장로가 모를 리가 없었다.“은성구 씨, 제가 와서 많이 놀라셨나 봐요?”이홍연은 갑자기 은성구에게 물었다.“아뇨, 아뇨. 저도 금방 소식을 듣고 이제 막 도착한 겁
윤구주는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홍연이 이렇게 할 줄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공주님, 감사드립니다! 공주님, 제발 절 살려주십시오!”지안수는 서둘러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여기에 있는 이상 아무도 지안수 씨를 죽이지 못해요.”이홍연은 패기 넘치게 말했다.황실의 여섯째 공주이자 국주가 가장 아끼는 딸인 이홍연은 자신감이 넘쳤다.“감사합니다, 공주님!”지안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오늘 그는 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공주가 갑자기 나타났다.이때 다들 의아해했고 우상인 육도진 또한 답답해했다.그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공주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내각의 여덟 장로를 도우려고 하다니?그녀는 소꿉친구인 윤구주를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다들 매우 궁금해할 때 이홍연이 갑자기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 왜 대낮부터 이렇게 많은 문벌 출신의 무인들을 죽인 거야? 그리고 왜 내각의 문부상서를 죽이려는 거지?”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윤구주에게로 향했다.육도진 우상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육도진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공주가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윤구주는 이홍연의 질문을 듣더니 덤덤히 말했다.“죽어 마땅한 놈들이니까.”그 말에 이홍연으 크게 고함을 질렀다.“건방지군! 윤구주, 넌 화진의 구주 군신이자 우리 화진의 기둥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야!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넌 절대 아무도 죽일 수 없어!”이홍연의 말을 들은 윤구주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이홍연은 자신의 말에 윤구주가 화를 내길 바랐지만 윤구주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척 화가 났다.“윤구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이홍연은 잘못했다는 말을 할 때 눈이 벌겠다.아무도 이홍연이 말한 잘못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그들은 이홍연이 윤구주에게 사람을 죽인 잘못을 묻는 줄 알았다.“내가 잘못했다
이홍연이 슬픈 얼굴로 억울한 듯 말하자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마치 진짜 연인처럼 말이다.그 광경에 그 자리에 있던 금위군뿐만 아니라 내각의 여덟 장로, 육도진 등 사람들 모두 넋이 나갔다.이건 원수가 아니라 애인이었다.“홍연아, 미안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그 말에 이홍연은 마음이 녹을 뻔했다.그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눈을 깜빡이면서 울며 말했다.“드디어 나한테 미안하다는 걸 인정한 거야? 그래도 양심은 있네!”윤구주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었다.사실 윤구주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으나 그러한 마음은 반드시 숨겨야 했다.16년 전의 사건을 위해서라도, 강성에 있는 소채은을 위해서라도.윤구주는 소채은에게 미안할 짓을 할 수 없었다.“홍연아, 넌 오늘 일에 끼어들지 마. 문벌이 혼란을 야기했으니 난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해. 문벌과 내각도 마찬가지야. 6년 전 난 말했었어. 감히 우리 화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전부 죽일 거라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거야.”이홍연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난 처음부터 끼어들 생각 없었어.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사실 너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어. 네가 나한테 대답만 해준다면 내가 이 나쁜 지안수 장로를 대신 죽여줄 수도 있어!”지안수는 어리둥절해졌다.공주가 너무 빨리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뒤에 있던 일곱 명의 내각 장로들도 전부 안색이 어두워졌다.이홍연은 과연 정말로 내각 장로들을 돕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걸까? 아니면 윤구주를 돕기 위해서 온 걸까?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일까?급작스럽게 변한 상황 때문에 내각 사람들은 전부 표정이 어두워졌다.물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이홍연은 화진의 여섯째 공주였기 때문이다.“내가 떠난 뒤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거야?”이홍연은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윤구주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했다.윤구주는 길
이홍연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치명적인 일격이었다.심지어 화진의 우상 육도진마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뻔했다.그 질문은 모든 남자에게 치명적이었다.그러한 질문에 윤구주는 당연히 침묵을 선택했다.“대답해! 대답하라고! 누굴 선택할 거야?”이홍연은 계속해 물었다.서울로 돌아온 뒤로 이홍연은 줄곧 대답을 원했고, 그래서 지금 윤구주에게 따져 물었다.내각의 여덟 장로들을 포함해 다들 윤구주만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윤구주가 이홍연을 선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윤구주가 정말로 이홍연을 선택한다면 내각의 여덟 장로는 오늘 끝장날 테니 말이다.다른 사람들이었더라면 당연히 이홍연을 선택할 것이었다.이홍연은 화진의 여섯째 공주였고, 미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윤구주와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고 그녀의 몸에서는 황가의 피가 흐르기도 했다.바보라고 해도 당연히 이홍연을 선택할 것이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이홍연을 선택할까?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눈앞의 아름다운 이홍연을 바라보았다.“정말로 내가 꼭 선택하기를 바라?”“그래. 오늘 넌 나에게 반드시 대답해 줘야 해. 난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난 이미 10년 넘게 기다렸다고!”이홍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휴, 홍연아. 미안해!”윤구주가 드디어 대답했다.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이홍연을 포함한 모두가 그의 대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이홍연은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고 곧 온몸이 언 것처럼 덜덜 떨렸다.“그 뜻은 그 여자를 선택한다는 거야?”이홍연은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움을 견디며 윤구주를 향해 물었다.윤구주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기가 두려운지 고개를 숙였다.“윤구주, 이게 네가 내놓은 대답인 거야? 난 그렇게 오랜 시간 널 기다리면서 널 사랑했어. 그런데 결국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그래, 그래, 그래!”‘그래’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던 이홍연은 갑자기 비참한 얼굴로 웃었다.그러더니 이내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표정을
잇달아 비명이 터졌다. 운이 좋지 않았던 금위군들은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민규현의 막강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들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민규현, 감히 국령을 무시해? 여봐라, 저놈을 잡아!”은성구가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그는 오늘 일을 크게 키울수록 내각의 여덟 장로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황기 금위군이 이곳에서 많이 죽기를 바랐다.안타깝게도 황기 금위군은 은성구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그들이 다시 한번 나서려고 하자 갑자기 차가운 고함이 뒤에서 들려왔다.“다들 멈춰!”육도진 우상이 앞으로 나섰다.황기 금위군은 육도진 우상의 목소리를 듣고 전부 그 자리에 멈춰 섰다.“육도진 우상, 이제 무슨 뜻이죠?”은성구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육도진을 바라보았다.“제 뜻은 아주 간단해요. 오늘 제가 이는 한 아무도 소란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육도지은 카리스마 넘치게 대답했다.은성구는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다면 육도진 우상은 암부가 반역죄를 판결받았다는 걸 아나요? 그리고 이 민규현 지휘사는 공공연히 우리 죄 없는 금위군을 죽였어요. 육도진 우상은 법을 어기고 그들을 감싸려는 건가요?”“감싼다고요? 은성구 장로, 그 말씀은 틀리셨네요. 우선 암부가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하는데 국주님께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명령을 내린 적이 없으세요. 그러니까 암부에 정말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이렇게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시면 안 되죠. 그리고 민규현 지휘사는 종3품 지휘사예요. 그리고 구주왕의 가장 훌륭한 부하기도 하죠. 그런데 은성구 장로는 우리 화진 구주왕이 가장 아끼는 부하를 잡으려고 했죠. 그게 죽음을 자초하는 게 아니면 뭐죠?”육도진은 아주 날카롭게 내각의 여덟 장로 중 수장인 은성구와 격렬한 설전을 벌였다.“육도진 우상은 말을 아주 잘하시네요. 하지만 한 가지 잊으신 게 있는 것 같네요. 이 구주왕은 이제 더 이상 우리 화진의 왕이 아니에요. 지금 화진의 왕의 성함은 문아름이
자신의 강한 기운만 믿고 있던 손형재는 누구도 안중에 없었다.“이 사람들은 누군데 작은 주인님을 해하려 하는 것일까요?”철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묻자, 천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온 것으로 보아 호락호락한 놈들은 아닌 것 같아요.”천현수의 말을 듣고 있던 철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쾅!바로 그 순간, 우레와 같은 폭발음과 함께 맨손으로 덤볐던 절정이 민규현의 호마권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했다.그의 몸이 뒤로 젖혀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칼을 사용하던 절정도 버티기 힘들어하긴 마찬가지였다.이 절정은 검을 휘두르는 검술만 쓰다 보니 온몸에 호마의 기운이 가득한 민규현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그의 허점이 드러나는 순간, 민규현은 재빨리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세게 쳤다.이 절정도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두 절정이 민규현의 상대가 전혀 아닌 것을 확인한 변만산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함께 덤벼서 저 자들을 죽여버리자.”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위에 있던 3명의 절정이 공격 태세를 갖췄다.번개 같은 힘을 가진 변만산이 긴 창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민규현을 향해 달려갔지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규현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뒤에 있던 호영이 점점 더 난폭해지기 시작했다.절정에 발을 들인 후부터 그의 호마는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호영이 울부짖는 소리와‘펑펑’하는 소리가 나며 민규현은 6명의 절정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이들의 싸움을 한참 지켜보고 있던 현문 도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들! 삼중천 절정조차도 못 이기면 어떡해? 그야말로 세가의 수치야!”이 현문 도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힘차게 한 발짝 내디뎠다.쿵쿵!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검은 현기가 이 도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손형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먹물 같은 검은 현기가 순식간에 검은 대검으로 변하더니 무지개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민규현을 향해 날
두 사람이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민규현은 고개 들어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세가 절정과 현문 도자를 쏘아보았다.이때 장원 안에 있던 천현수, 철영, 은설아도 함께 밖으로 뛰쳐나왔다.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재이와 용민을 보더니 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너희들은 누구야? 어디서 감히 행패야?”건장한 체격을 가진 민규현이 호마 기운을 뿜어내며 소리쳤다.뒤에 있던 위압적인 호랑이 그림자는 그를 더욱 난폭해 보이게 만들었다.“암부 3대 지휘자인 호존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 이렇게 만날 줄이야!”이때 세가 쪽에서는 변씨 성의 노인이 나섰다.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민규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 노인을 흘끗 쳐다봤다.“너도 세가 출신이냐?”“지휘사라 그런지 보는 안목이 있네. 난 서남 세가인 변만산이야.”상대방이 세가 출신이라는 말에 민규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민규현의 뒤에 있던 천현수와 은설아도 마찬가지로 안색이 어두워졌다.노룡산 전투 이후 제자백가의 그 누구도 감히 행패 부릴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남 세가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이 변씨 성을 가진 절정이 제자백가가 아닌 다른 세가 출신이 분명했다.“빌어먹을! 서남 세가마저 구주왕을 찾으러 왔다고?”민규현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변만산이 웃었다.“민 지휘사의 말이 맞아. 구주왕이 문벌과 세가에 진 빚을 내가 갚아주러 왔어.”“너희 같은 오합지졸들이 구주왕을 상대하겠다고?”민규현이 거칠게 소리쳤다.“당연하지. 하지만 우리는 구주왕에게 복수하러 왔을 뿐 암부와 척지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 구주왕을 어서 나오라 해.”변만산이 말했다.“하하하!”민규현은 갑자기 크게 웃었다.“쓰레기 같은 놈들이 망발을 잘도 지껄여대는구나.”그의 뒤에 떠 있던 청색 호영이 울부짖자, 민규현의 온몸에서 호마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민 지휘사가 기어코 막겠다면 어쩔 수 없지.”변만산이 눈빛이 차가워졌다.“죽여버려!”그의 말에 아까부터 벼르고 있던 2명의 절정이 나섰다.이들 6명의 절
“빌어먹을! 절정이라니!”용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재이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당신들 누구야? 어딜 감히 침범해?”용민이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우리는 구주왕을 찾고 있으니 싸우기 싫으면 썩 비켜! 그러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야.”손형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뭐라? 작은 주인님을 찾는다고?”용민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손형재와 그의 뒤에 있는 절정들을 쏘아보았다.“잘못 찾아왔네. 작은 주인님은 이곳에 없어.”용민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손형재의 뒤에 있던 1명의 세가 절정이 코웃음을 쳤다.“말이 많구나!”이 절정은 말하자마자 번개처럼 빠르게 용민을 향해 달려갔다.용민은 비록 실력이 있다고는 하나 신급 수준에 불과했다.이 세가 절정의 공격에 그는 황급히 두 손바닥을 모으더니 온몸의 힘을 손에 집중시킨 후 절정을 향해 공격했다.하지만 그가 손바닥으로 절정을 치려는 순간 그 절정도 손바닥을 내밀며 맞받아쳤다.펑!두 손바닥이 마주치자, 용민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뒤로 십여 미터 튕겨 나갔다.그리고 땅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용민 씨! 괜찮나요?”튕겨 나간 용민이를 본 재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난… 난 괜찮으니 어서 규현에게 가서 이 상황을 알려.”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용민은 바닥에서 일어났다.“곧 황천길로 갈 텐데 뭔 발악이야?”독수리 눈을 가진 세가 절정이 말을 내뱉자마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2개의 장영을 발산하며 용민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재이가 장영을 막으려고 긴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갔다.“제 주제를 모르나 보네.”장영이 재이가 들고 있던 긴 채찍을 휘감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재이 역시도 절정의 힘에 밀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죽여주마.”독수리 눈을 가진 이 세가 절정은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재이와 용민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모자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에게 일격 가할 준비를 하고 있
문아름의 설득에 손형재는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그러면 아름 씨의 청을 받아들여 이 자들을 데려가도록 할게요.”손형재의 말에 얼굴에 미소가 번진 문아름은 6명의 절정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어서 도자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도자님, 감사합니다.”말을 마친 6명의 세가 절정은 손형재의 뒤에 다가갔다.“구주야, 네가 이번에 어떻게 죽는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거야.”손형재는 눈빛에는 살의가 가득했다.문아름이 떠나자, 현문의 장로인 구진철이 다급히 물었다“형재 씨, 정말로 저 화진의 구주왕을 죽일 생각인가요?”“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손형재가 말했다.“형재 씨의 생각이 짧은 것 같아서요. 문씨 세가의 목적은 오직 형재 씨를 이용하려는 것이에요. 그리고 다른 종문이 아직 나서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리 현문만 나서는 것이 이 늙은이는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드네요.”구진철이 계속해서 충고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을 손형재는 전혀 듣지 않았다.“구 장로님이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 같아요. 3대 서열 중의 1순위인 우리 현문이 하찮은 구주왕조차도 없애지 못한다면 어찌 종문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단 말입니까?”“도자님…”구진철이 또다시 그를 설득하려 하였으나 손형재의 얼굴에는 이미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그만하세요. 저는 이리 하기로 정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장로님이 저와 함께하기 싫다면 산으로 돌아가든지.”말을 마친 후, 손형재는 구진철을 무시하고 밖으로 향해 걸어갔다.제멋대로 행동하는 손형재를 보며 구진철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서울의 외곽.정태웅이 공수이를 데리고 떠난 후, 장원에는 용민, 철영, 재이, 그리고 은설아, 민규현, 천현수 등이 남았다.장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용민이 재이에게 말했다.“재이야, 작은 주인님의 소식은 아직 없는 거냐?”그의 입에서 나온 작은 주인님이란 윤구주를 말하는 것이었다.윤신우가 손수 키웠던 3명 사사의 목숨이 윤신우가 준 것이니 윤구주에게 충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오만방자한 손형재가 절대로 용납할 리 없었다.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더욱 그러했다.“몰락한 왕인 주제에 오만하기 짝이 없네요. 제가 그의 목을 베서 아름 씨의 원한을 풀어드릴 것이니 안심하세요.”살기 가득한 눈빛을 한 손형재의 말을 들은 문아름은 자신의 계략이 먹혔다는 걸 알아챘다.윤구주를 처리하기 위해 종문이 나서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무도 3대 서열의 종문 두목인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마워요. 만약 도자님이 정말로 미쳐 날뛰는 구주를 없애준다면 저희 문씨 세가는 도자님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겁니다.”문아름이 말했다.“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그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 지금 당장 미친 구주에게 달려가 그의 모가지를 따겠는데.”살기 어린 눈빛으로 보아 손형재가 정말로 윤구주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문아름은 생각했다.“구주가 어디 있는지 제가 알아요.”문아름이 갑자기 말했다.“어디 있는데요?”손형재가 서둘러 그녀에게 물었다.“서울 외곽에 있는 그의 어머님 댁에 있어요.”윤구주의 개인정보를 문아름은 손형재에게 알려주었다.“그 미친놈이 어디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명도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아름 씨,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그를 죽이러 가겠어요.”이 현문 도자가 정말로 윤구주를 죽이려는 하자, 문아름이 말했다.“도자님, 잠깐만요!”“왜요?”손형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구주가 당시 수련한 봉왕팔기로 천하를 제압했잖아요. 혼자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 드릴 게요.”문아름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너희들도 이제 나와.”그네의 말에 절정의 기운이 감도는 6명의 강자가 갑자기 지하 궁전에 나타났다.이 6명의 리더는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반반인 노인이었다.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던 노인의 주름투성이 얼굴에는 희끄무레한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노인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절정 강자들이었다.“형재 씨를 만나 뵙게
손형재가 차갑게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고 이 늙은이는 생각합니다. 또한 6대종문이 의논을 거친 후에 움직이라고 회장님께서 저에게 신신당부도 했고요.”구진철의 말에 손형재는 콧방귀를 뀌었다.“또 6대종문. 천 년이나 더 된 우리 종문은 왜 단독으로 일 처리를 못하고 매번 다른 종문들과 논의해야 하는 겁니까?”구진철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갑자기 현문 제자가 뛰어왔다.“도자님, 밖에 도자님을 뵈러 온 분이 계세요.”“누군데?”손형재가 물었다.“문씨 세가의 문아름 씨요.”문아름이라는 말에 손형재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그녀가 나를 찾아왔다고? 어서 들여보내.”“네!”현문 제자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봉황관을 쓴 절세미인 문아름이 들어왔다.마치 천하를 호령하는 고대의 황후 같았지만,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손형재를 향해 예의를 갖췄다.“아름이 도자님을 뵙습니다.”문아름을 보자마자 손형재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아름 씨, 너무 예를 차리실 필요 없어요.”“아니에요. 도자님은 하늘이 내리신 현문의 미래니 당연히 예를 갖춰야죠.”문아름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만하기 짝이 없던 손형재가 이런 말을 들었으니, 입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아름 씨가 어인 일로 예까지 발걸음하셨는지?”손형재가 물었다.“당연히 그 윤 씨 성을 가진 사람 때문이죠.”문아름은 천천히 말했다.“윤 씨요? 혹시 백성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그 구주왕 말인가요?”손형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네. 맞아요. 도자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와 구주는 혼인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녀는 억울한 듯 눈물을 흘렸다.문아름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본 현문 도자는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아름 씨, 어서 그 눈물을 거두세요. 혹시 그가 아름 씨를 괴롭혔나요?”“아니요. 저를 괴롭힌 적은 없지만 구주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데다 고집불통이에요. 평생을 그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네 말이 틀리지는 않아. 하지만 종문이 우리 편에 서지 않을지도 몰라. 특히 만불종과 서요산 검종.”문창정은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았다.만불종은 영리하여 주도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일이 없었고, 화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서요산 검종은 베일에 싸여있어서 문씨 세가조차도 그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문아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안심하세요. 화진에는 6대종문이 있어서 이 두 종문이 아니더라도 4개의 종문이 남아있어요. 특히 역사가 유구한 현문 회장인 창현진인은 이미 백 년 전에 절정 경지에 오른 인물이에요. 그래서 현문을 선봉으로 내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문아름의 말을 들은 문창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현문을 인간 방패로 쓰겠다는 말이냐?”“바로 그거예요. 할아버지께서도 현문 도자의 본성을 잘 알잖아요. 그를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죠.”현문 도자에 대해 말할 때 문아름의 얼굴에는 요염한 미소가 번졌다.손녀의 생각을 잘 알고 있던 문창정이 말했다.“한 번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긴 한데 현문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 특히 구씨 성을 가진 늙은 장로는 문무를 겸비하여 얕잡아보면 안 돼.”“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문아름이 말했다.“그래. 그러면 현문의 일은 너에게 맡길게.”문창정이 결론을 내렸다.…서울에 온 이후로 현문의 사람들은 문씨 세가의 지하 궁전에 머물고 있었다.이 순간, 십여 명 현문의 제자들이 화려한 거실 양쪽에 서 있었고, 가운데 벽화 앞에는 현문 도자인 손형재가 서 있었다.벽화에 그려진 인물은 다름 아닌 절세미인인 문아름이었다.선녀 같은 문아름을 바라보며 이 도자가 혼자서 중얼거렸다.“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인이 여기 있었네.”“콜록콜록.”이때 그의 옆에서 갑자기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형재 씨, 이 늙은이가 할 말이 있는데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요.”말을 꺼낸 사람은 손형재와 함께 산에서 내려온 현문 장로인 구진철이었다.“어서 말해보세요. 구 장로님.”시선을
한참 지나서야 민규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종문이 움직인 것은 분명 저하 때문일 거야.”그 말에 천현수도 한마디 했다.“화진의 무도 3대 서열의 실력 차가 분명하다고 해도 어찌 됐든 같은 줄기에서 뻗어져 나온 것이잖아요. 종문이 움직인 것은 저하가 전에 노룡산에서 세가를 학살한 것이 누설되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현수야. 3개 종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라고 암부에 전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보고하라 하고.”민규현이 지시를 내렸다.“네!”…서울의 어느 숨겨진 지하 궁전, 절세미인인 문아름이 봉황관을 쓴 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문창정이었다.“할아버지.”“현문, 만불종, 칠수방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도착했어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문아름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문창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서두를 것 없어. 6대종문이 모두 모인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아.”문창정이 차분하게 답했다.“하지만 서요산은 물론 천도궁과 자운각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이들을 계속 기다려야 한단 말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구주가 설국을 수복한 이후 국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그리고 육도진도 태산에 갔고요. 아마 곧 큰 일이 터질 것 같아요.”문아름의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육도진이 태산에 갔다고?”“네.”“무슨 연유로?”문창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문아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황성 사람들이 비밀로 하고 있어서 무엇 때문에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들 말로는 조만간 국주의 움직임이 있을 거래요. 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국주가 움직인 것은 확실해요.”‘그’라는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다.“할아버지. 만약 국주가 정말로 구주의 편을 든다면 저의 왕위가 온전치 못할 것 같아요.”문아름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다.‘하긴 화진의 왕으로서 위대한 업적이 없다면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긴 하
은설아는 마음속으로 윤구주를 존경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컸다.무예가 출중하다면 윤구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그녀가 그와의 실력 차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수련한 것이었다.붉은 치마를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재이가 열심히 수련하는 은설아의 모습을 보고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설아 씨,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 인제 그만 쉬도록 하세요.”윤설아가 말했다.“괜찮아요. 아직 할만해요.”윤설아의 말에 재이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설아가 열심히도 수련하네.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수련하는 윤설아를 바라보며 용민이 혼자서 중얼거리자, 강철 몸을 가진 철영도 한마디 했다.“사랑 때문에 저 짓거리 하고 있는 거예요.”“뭣이라?”철영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용민은 어리둥절했다.한마디만 내뱉고 철영은 정원 밖을 빠져나왔다.“야! 이 자식아. 말하다 말고 어디 가? 사랑 때문이라니?”용민이 그를 뒤쫓아가며 물었다.은설아가 한창 수련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민규현과 천현수가 얘기를 나누며 방 안에서 나왔다.“이놈아, 수이 소식이 아직 없다고?”말을 꺼낸 사람은 민규현이었다.“없어요. 형님.”천현수가 답했다.“수이 때문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민규현이 계속 말했다.“흑여산맥 쪽의 저하 소식은 없고?”“그쪽에서 보내온 소식통에 따르면 저하는 이미 그곳에서 떠났대요.”“그렇다면 서울로 돌아온다는 말이냐?”민규현이 서둘러 묻자, 천현수는 고개를 저었다.“그들의 말로는 서울 아니고 강성으로 갔대요.”“강성?”강성이란 말에 민규현은 어리둥절했다.“형님, 잊으셨어요? 형수님이 강성에 있잖아요.”천현수가 그에게 상기시켜 주자, 민규현은 자기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내가 이렇게 멍청하다니까. 맞아. 저하가 서울에 온 이후로 형수님을 본지가 꽤 되었으니, 강성에 가는 것도 이해는 되지.”“그건 그렇고 형님, 암부가 최근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대요.”천현수가 갑자기 화제를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