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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0화

화실에서 붓을 잡고 구도를 잡고 있던 서유는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붓과 자를 내려놓고 전화를 들었다.

“무슨 생각이 정리됐다는 거야?”

“나는 전에 연석 씨한테 화가 나서 선배랑 사귀기로 한 거야. 내가 사심을 품고 있었지만 그는 진심이었어. 이 기간 동안 선배가 날 아주 잘 대해줬어. 이연석이 나타날 때 좀 과한 행동을 하는 것 빼고는 다 좋았어...”

서유는 이해했다. 정가혜는 심형진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도 그를 용서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련님은 어떡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꽤 힘들어하고 있을 텐데.”

서유의 말 속에는 정가혜에게 이연석의 감정도 고려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정가혜는 억울함에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온몸을 떨던 이연석의 모습이 떠올라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필사적으로 그 감정을 억눌렀다.

“서유아, 내가 전에 선배랑 결혼하기로 약속했을 때 선배가 이미 부모님과 날짜를 정해놨어.”

“내가 먼저 선배를 유혹한 거야. 이런 일이 있다고 해서 밀어낼 순 없잖아.”

“책임을 져야 해. 선배랑 선배 부모님을 갖고 놀 순 없어. 그러면 양심에 걸릴 거야.”

정가혜는 문제의 핵심을 깨달았지만, 지금 그녀가 고려하는 건 이미 개인의 감정이 아니었다.

서유도 정가혜 대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잠시 침묵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정가혜에게 조언을 건넸다.

“너랑 형진 씨도 그리 오래 사귄 건 아니잖아. 좀 더 만나보고 결혼을 고려하는 게 어때?”

심형진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저... 정가혜가 심형진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였다.

물론 정가혜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설령 결국 상처를 받거나 배신당하더라도 깔끔하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으니까.

정가혜의 이런 결혼관도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친구로서 서유는 정가혜가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 자신처럼, 초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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