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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7화

다른 사람이라면 심형진에게 말려들었을 것이고 심지어 그가 옳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이연석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정가혜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냉정하기 짝이 없는 이승하였다.

“할 말은 다 했으니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5분 시간을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봐요.”

이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봐야겠다는 뜻이었고 심형진이 아무리 변명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심형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표님께서도 그 당시 송 대표님한테서 서유 씨를 빼앗아 오지 않았던가요?”

한 번만 언급했더라면 의도치 않고 한 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두 번 말하는 걸 보면 이건 분명 그를 향한 도발이었다.

그 말은 이연석의 억울함을 넘어 이승하의 인성마저 조롱한 것이었다.

심형진과 정가혜를 소개해 준 사람으로서 주서희는 무의식적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승하가 화를 내기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심 선생, 말조심해요.”

심형진에게 빨리 사과하라는 뜻이었지만 그는 못 알아듣는 척하며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문 채 이승하와 맞섰다.

“송 대표님과 서유 씨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죽마고우인 두 사람은 대표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다정한 연인사이었다고 하던데. 왜 대표님과 결혼하게 된 걸까요?”

“심 선생, 자세한 속사정도 모르면서 대표님과 송사월 씨의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화가 난 주서희는 병원 원장으로서 심형진을 경고했고 더 이상 이승하를 향해 공공연히 시비를 걸지 말라고 했다.

그제야 고개를 들던 심형진은 음험하고 차가운 눈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순간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더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빼앗은 적이 있었죠.”

그가 손을 뻗어 자신의 뺨이라도 한 대 때리거나 발을 걷어차며 울분을 풀 줄 알았는데 그가 갑자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심형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계속해서 반격할 힘이 솟아났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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