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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5화

복잡했던 그녀의 눈빛이 점점 실망의 빛깔로 물들어갔다.

“선배와 사귄 이후로 단 두 번이었어요. 한번은 부산에서 또 한번은 골프장에 갔던 그날이에요. 이연석 씨는 약속대로 날 만나면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날 방해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선배는 그 사람이 날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선배한테 나도 그런 여자였군요.”

무거운 그녀의 말에 심형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거 아니야. 난 널 믿어. 네가 계속 이연석 씨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남자 친구가 있는 너한테 자꾸만 찾아와서 귀찮게 한 그 사람의 잘못인 거지. 그리고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 널 의심하지 말았어야 했어. 미안해. 내가 말실수를 했나 보다. 널 실망하게 했어.”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쳐다보던 그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두 사람 말이에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요. 이쯤에서 그만해요.”

그 말에 그는 다급해졌다.

“이러지 마.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여자가 너라는 걸 부모님께서 아시고는 널 각별히 신경 쓰고 계셔. 그래서 모든 일을 미루고 긴 휴가까지 내서 널 보러 오신 거고. 전 남자 친구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나랑 헤어지자는 말 하지 마. 나도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야.”

고아로 자란 그녀는 부모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각별한 감정이 있었다. 심형진과 헤어지는 것이 그의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이 먼 곳까지 그녀를 만나러 온 분들이니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서 갑자기 피가 흘러나왔다. 선명한 붉은색이 거즈로 스며들어 그의 손등을 붉게 물들이더니 그녀의 손에 떨어졌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고 다시 피로 물든 손을 들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나 지금까지 누구한테 무릎 꿇어본 적 없어. 이 대표가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하면서 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했어. 그렇지 않으면 원장실을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어. 그런 사람과 맞서면서 난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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