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세 사람이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심형진은 이연석을 찾아가 사과를 전했다.병상에 누워 있던 이연석은 심형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지난번처럼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연석이 흥분하면서 손찌검이라도 할 줄 알았다.근데 이렇게 담담하게 행동하는 걸 보면 정가혜와 얘기가 잘 끝났고 이미 체념한 것 같았다. 그가 이연석의 앞으로 다가가 미안하다고 한마디 내뱉었다.무엇 때문에 사과를 하는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이연석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가 빛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망울로 담담하게 심형진을 흘겨보았다.“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다리가 부서지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고 나한테 사과를 하러 오지는 않을 겁니다.”이미 저지른 일을 뭐 하러 사과까지... 남들이 얕잡아 보기만 할 뿐인데.“강자의 앞에서는 일단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이죠. 난 당신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나면 뒤처리 해주는 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심형진의 말에 이연석은 차갑게 웃었다. “가혜 씨 남자 친구잖아요. 당신이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형이 당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 점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심형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연석의 말이 맞았다. 정가혜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승하가 그를 어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한테 바라는 건 사과일 뿐. 그러나 그 당시 이승하가 대표 이사의 신분을 가지고 동생을 대신해 복수하러 온 걸 보고 부럽고 질투나는 마음에 그는 귀신에 홀린 듯 송사월을 이용해 이승하를 도발하고 비꼬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사월을 언급하지 않고 이연석이 정가혜를 귀찮게 한 일을 가지고 계속 물고 늘어졌더라면 이승하가 그에게 사과를 강요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비꼬는 이연석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고 모든 것이 이연석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연석이 아니었다면 그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테고 정가혜의 앞에서 불쌍한
가시가 박힌 심형진의 말은 밖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까지 화나게 만들었다.“연석이가 여자들을 많이 만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다리를 걸친 적은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여자를 배신한 적도 없고요.”단이수가 친구들의 어깨를 밀치고는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뒤돌아보던 심형진은 시선을 거두고는 이연석을 향해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여자 친구를 그렇게나 많이 사귀다니. 그게 바람둥이 아닌가요?”그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오른 이연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단이수가 손을 뻗어 그를 막아섰다.“여자들과 놀며 시간을 때웠을 뿐. 함부로 여자를 건드린 건 아닙니다.”한마디 내뱉은 단이수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그 점에서는 연석이도 심형진 씨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네요.”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무슨 뜻입니까?”단이수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담담하게 웃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해외로 갔다고 했었죠. 그쪽은 워낙 자유분방한 곳 아닌가요? 사람도 적으니까 뭔가를 알아내는데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심형진의 과거에 대해 돈만 조금 쓰면 바로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잘난 척하다가 결국 자신의 잘못이 이 세상에 드러나면 그땐 어찌하려고...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심형진은 차마 재주가 있으면 한번 조사해 보라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난 고등학교 때부터 가혜를 좋아했었어요. 외국에 있는 동안에도 늘 가혜 생각뿐이었지요. 그러니 날 이연석 씨와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말아요.”단이수는 아무런 반박 없이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그쪽이 한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네요. 다만...”그가 심형진을 쳐다보면서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고등학교 때부터 가혜 씨를 짝사랑했다고 했었죠?”왜 그렇게 묻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심형진은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네.”단이수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짝사랑을 이렇게 오랜 시간 한 걸 보면 가혜 씨를 많이
대문을 들어서니 그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가혜야, 주 원장이 오늘 있은 일에 대해 다 얘기했어?”그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먼저 입을 열었다.“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심형진을 향해 걸어갔다.“왜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예요?”그녀는 그의 변명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변명도 없이 한마디만 했다.“주 원장이 한 말이 다 사실이야. 내가 송사월 씨를 이용해 이 대표님을 조롱했어.”그 말에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이 대표님이 선배를 찾아간 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에 끼어들려고 한 게 아니에요. 동생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화가 난 탓에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으니 선배한테 따지려 했던 것이겠죠. 그저 선배한테 사과를 요구할 생각이었을 거예요. 근데 어떻게 사월이를 이용해 이 대표님을 반격할 수 있어요?”“먼저 널 귀찮게 한 건 이연석이었어.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이 대표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사과를 강요하는 건데?”그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그래요. 선배 말처럼 이연석 씨가 먼저 잘못한 거예요. 근데 좀 더 당당할 수는 없었던 거예요? 이 대표님이 선배한테 해결 방법을 내놓으라고 할 때, 이연석 씨가 먼저 선배한테 사과하길 바란다고는 할 수 있었잖아요. 이 대표님은 사리가 밝은 사람이라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을 거예요.”“설사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 체면을 봐서 동의했을 거예요. 근데 사월이를 이용해 이 대표님을 도발해요? 그런다고 이 대표님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생이 억울한 일을 당한 데 대해서 다시는 언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세 사람의 과거를 들먹거려요?”그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도덕적으로 권세를 누리고 있는 그들을 질책하고 싶었으니까. 침묵하는 그를 보며 그녀도 감정을 추스르고 부드
복잡했던 그녀의 눈빛이 점점 실망의 빛깔로 물들어갔다. “선배와 사귄 이후로 단 두 번이었어요. 한번은 부산에서 또 한번은 골프장에 갔던 그날이에요. 이연석 씨는 약속대로 날 만나면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날 방해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선배는 그 사람이 날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선배한테 나도 그런 여자였군요.”무거운 그녀의 말에 심형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거 아니야. 난 널 믿어. 네가 계속 이연석 씨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남자 친구가 있는 너한테 자꾸만 찾아와서 귀찮게 한 그 사람의 잘못인 거지. 그리고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 널 의심하지 말았어야 했어. 미안해. 내가 말실수를 했나 보다. 널 실망하게 했어.”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쳐다보던 그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우리 두 사람 말이에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요. 이쯤에서 그만해요.”그 말에 그는 다급해졌다.“이러지 마.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여자가 너라는 걸 부모님께서 아시고는 널 각별히 신경 쓰고 계셔. 그래서 모든 일을 미루고 긴 휴가까지 내서 널 보러 오신 거고. 전 남자 친구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나랑 헤어지자는 말 하지 마. 나도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야.”고아로 자란 그녀는 부모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각별한 감정이 있었다. 심형진과 헤어지는 것이 그의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이 먼 곳까지 그녀를 만나러 온 분들이니까.망설이고 있는데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서 갑자기 피가 흘러나왔다. 선명한 붉은색이 거즈로 스며들어 그의 손등을 붉게 물들이더니 그녀의 손에 떨어졌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고 다시 피로 물든 손을 들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나 지금까지 누구한테 무릎 꿇어본 적 없어. 이 대표가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하면서 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했어. 그렇지 않으면 원장실을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어. 그런 사람과 맞서면서 난 사월
집으로 돌아간 그는 밤새 잠을 설쳤다. 주서희가 쓸데없는 참견을 해서 그녀가 자신에게 이별 통보를 한 거라고 생각하고는 주서희를 원망했다. 다음 날, 기운 없이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해 사무실에 들어서니 윤주원이 자료 뭉치를 들고 기뻐하며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심 선생님, 제가 개발한 약제가 성공했습니다.”그 말에 밤새도록 끼어있던 먹구름이 갑자기 걷혔다. 그가 급히 손을 뻗어 윤주원이 건네준 자료를 받았다. “전 세계에서 유명한 전문가들이 내린 찬사 아닌가요?”“그러니까요. 우리 병원도 함께 표창을 줄 겁니다.”감격한 심형진은 자료를 쥐고 있는 손을 벌벌 떨었다. “그럼 이 약으로 노벨 의학상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윤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수롭지 않은 척 손을 저었다.“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이 약이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겁니다.”의사로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가장 근본적인 의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명예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심형진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을 살리는 것과 개인의 명예 모두 다 중요한 겁니다.”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히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뭐라 할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자료를 들고 기뻐하며 뒤적거리는데 주임교수가 들어와 윤주원의 어깨를 툭 쳤다.“윤 선생, 대단해. 이번 노벨 의학상은 윤 선생이 받게 될 거야.”윤주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이게 다 팀원들 덕분입니다. 심 선생님도 많이 도와줬고요.”주임교수는 심형진을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심 선생은 옆에서 도와준 것뿐이고 정말 상을 받게 된다면 윤 선생이 직접 가서 상을 받아야지.”말을 마친 주임교수는 앞으로 다가가 심형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심 선생, 자네도 훌륭해. 멀지 않아 자네도 윤 선생처럼 큰 성과를 이뤄낼 거야.”자료를 쥐고 있던 심형진의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지만
한 무리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세면대로 향하더니 장갑을 벗고 비누로 손을 씻고 살균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윤 선생님도 정말 재수가 없어요. 심 선생님 도와서 수술 맡으신 거잖아요. 근데 사고가 났으니 이 책임을 누가 져요?”“누구겠어요? 당연히 윤 선생님이 책임을 져야죠.”“그렇긴 하지만 심 선생님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요?”수간호사가 말을 하는 의사를 힐끗 쳐다보았다.“지금은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유족들이 하나같이 윤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문제죠.”손을 씻고 있던 의사는 동작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수간호사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수간호사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의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죽은 환자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학 전문가잖아요. 전에 윤 선생님께 진찰을 받으셨는데 두 분 사이의 의견이 좀 달랐다고 해요. 진료실에서 언쟁이 있었고 환자분이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에요. 진료실을 나서며 윤 선생님한테 돌팔이 의사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하던데요.”의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환자분과 윤 선생님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있었네요. 유족들이 윤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고소할만 하네요.”옆에서 듣고 있던 한 의사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윤 선생님은 그렇게 속 좁은 분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사소한 일로 환자를 살해하겠어요? 어쩌면 벌써 그 일을 잊어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았다면 심 선생님이 수술을 부탁했을 때 분명 거절했을 거예요. 그런 환자의 수술까지 맡지는 않았겠죠...”세면대 머리맡에 있던 의사가 고개를 돌리고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유족들이 잡아떼는 한 윤 선생님은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할 수 없을 겁니다.”“병원에서는 뭐라고 해요?”“아직 회의 중이에요. 어떻게 해결할지는 잘 모르겠어요.”방금 윤주원과 죽은 환자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의사가 다
병원 회의실에서 주서희가 수술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심문하고 있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의사의 실수로 사고가 났다고 했다. 심형진이 일부러 환자의 병세를 숨겼다고 의심한 그녀는 직접 환자의 의료 차트를 확인해 보았다. 근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녀는 또 CCTV 영상을 가져와 수술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심형진은 그 자리에서 윤주원에게 큰 혈관을 다치지 못하게 하였고 부검 결과 환자의 사인은 큰 혈관을 보수하는 과정에 실수로 죽었다고 했다. 증거가 없으니 아무리 의심스러워도 심형진에게 직접 떠넘길 수는 없었다.그녀는 먼저 나서서 의료분쟁을 해결하고 유족들에게 거액의 비용을 배상한 뒤 윤주원을 해고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윤주원이 연구 개발한 약에 대해서 사망한 환자의 학생들이 하나같이 병원으로 달려와 그 일에 개입하였고 윤주원이 연구 개발로 다시 의학계에 발을 붙이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말이 학생이지 사실은 모두 세계 각지의 의료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사람들은 윤주원이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그의 품행에 문제가 있으니 노벨 의학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만약 그에게 상을 받으라고 한다면 그들은 여러 병원 그리고 의학계 관계자들과 연합하여 병원을 공격하고 상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주서희는 그 영광을 포기하더라도 약을 연구 개발한 윤주원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병원의 다른 사람들은 이 연구는 병원에서 허가를 받은 것이고 병원 측에서 윤주원에게 연구를 맡긴 것뿐, 윤주원은 그저 개발팀의 주요 인원일 뿐이니 그 공로를 온전히 윤주원이 차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상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며 이건 병원의 영예라고 했다. 이 약으로 인해 병원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짙은 영향력과 호소력을 얻을 수 있기 위해 병원 측에서는 연구 개발을 도왔던 심형진이 윤주원을 대신해 이 논문을 완성할 것을 제안했다. 윤주원이 노력한 성과
서로를 한참 바라보던 두 사람, 얼마 후 윤주원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알아요. 당신은 내가 상을 받기를 원한다는 걸. 이 영광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사실 난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아요. 환자들이 내가 개발한 약을 사용하여 완쾌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요.”“하지만...”주서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윤주원이 웃으며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그거 알아요? 나 약을 개발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에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다음번에는 꼭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의학 연구를 포기하지 않는 한...”오후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회의실로 비스듬히 들어와 윤주원의 몸을 비추자 은은한 금빛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눈이 부셨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주서희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주원 씨가 다른 분야의 약도 연구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난 믿어. 하지만 당신의 명성은...”그녀의 안타까운 심정을 윤주원은 느낄 수 있었다.“서희 씨가 날 믿어주기만 하면 돼요. 명성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꼬리 같은 거에요. 난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잠시 후, 윤주원은 주서희와 또 상의를 했다.“의료 시스템이 매우 복잡해요. 관련된 사람도 많고 이익도 얽히고설켜 있죠. 이 대표님 끌어들이지 말아요. 나 때문에 환자분의 제자와도 맞서지 말고요.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의사 면허증까지 취소될까 봐 두려워요. 그것만은 남겨두고 싶어요. 제약 회사에 가서 연구개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요. 외과수술보다는 약 개발에 몰두하는 게 나한테는 더 적합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사실 주서희는 그가 외과수술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당분간은 윤주원이 억울함을 당해야 할 것 같다.“주원 씨, 걱정하지 마. 반드시 증거를 찾아 당신의 결백을 증명할 거니까. 다시 이 병원으로 당당하게 돌아오게 할 거야.”윤주원은 미소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