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처음엔 이연석이 일부러 장난을 치며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자, 친구들은 답답해하며 술을 계속 권했다. 결국 술에 취한 후에야 이연석은 자신이 결혼하려는 사람이 바로 정가혜라고 선언했다.친구들은 모두 정가혜를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듣자마자 큰 소란이 일었다. 이연석이 재혼녀에다 나이도 많고, 심지어 자신을 괴롭혔던 여자를 아내로 맞겠다고 하자, 모두들 이연석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많은 훌륭한 여인들이 이연석과 결혼하기 위해 줄 서 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하냐며 그에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충고했다.술에 취해 의식이 흐릿한 이연석도 그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깨닫고 순간 화를 냈다. 그는 갑자기 의자를 발로 차며 자신에게 충고하던 친구들을 하나하나 욕하기 시작했다. 손을 대는 것만 빼고는 거의 다 했다.단이수가 그를 말리지 않았다면 이연석은 아마 술김에 정가혜를 헐뜯는 친구들을 모두 때려눕혔을 것이다.친구들을 다 욕하고 나자 이연석은 이 자리가 의미 없다고 느끼며 외투를 집어 들고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났다.우울한 기분에 빠진 단이수는 그를 따라가지 않고, 구석에서 혼자 남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름을 달랬다.술기운에 휘청거리던 이연석은 방을 나서다가 우연히 배하린과 마주쳤다.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배하린은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도 않고 다가왔다.“이연석, 너 결혼한다며?” 배하린은 슬픈 눈빛으로 이연석을 올려다보았다.이연석의 눈앞에 두 명의 배하린이 보이다가 결국 하나로 겹쳐졌다. 그는 누가 자신 앞에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인 것만은 알 수 있었다.‘난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어. 다른 여자와는 멀리 있어야 해.’ 머릿속에 오직 정가혜만으로 가득한 이연석은 배하린을 피해 옆 복도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술에 취해 발걸음이 불안정하던 그는 그만 발을 헛디뎌 쓰러질 뻔했지만, 배하린이 그를 붙잡아 일으켰다.“손... 놓아.” 정가혜가 기분 나빠할 것을 생각한 이연석은 힘껏
이 장면은 과거 강은우가 자신의 여동생과 외도를 했을 때 보았던 그 장면과 같았다.아니, 차이점은 있었다. 그때는 강은우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저 분노가 치밀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연석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이런 모습을 보게 된 지금 마음은 더욱 아팠다.정가혜는 유나희에게 모욕을 당할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눈물이 차오르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왔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샘처럼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눈물이 손등에 떨어지자, 정가혜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며 얼굴을 세게 문질러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물을 참아보려 해도 멈추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져 침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의 나지막한 신음 소리는 그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연석이 자신과 사랑을 나누면서도, 배하린과는 끝없이 얽혀있었다니... 아니,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전에 이미 배하린과는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마치 그때, 그녀가 호텔에서 심형진에게 약을 먹고 나오던 순간, 그가 배하린과 함께 끌어안고 있던 장면을 본 것처럼.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무엇일까? ‘이연석, 당신 마음 속에서 나는 대체 뭐야?’“연석아, 기분 좋아?” 이불로 이연석을 덮어버린 채, 배하린은 의도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이연석의 허리를 세게 꼬집었다. 깊은 잠에 빠져 무의식 중이던 이연석은 고통을 느끼며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그 익숙한 소리는 정가혜를 얼음 속에 빠뜨리듯 차갑게 만들었고 손발은 얼어붙었다. 그녀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눈물을 참으려 애쓰며 몸을 돌려 미친 사람처럼 집을 뛰쳐나갔다.유나희가 했던 말이 맞았다. 이연석은 이승하와 달랐다. 그는 언제나 사랑에 대해 불성실했다. 그는 한 여자와의 침대에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여자의 침대에서는 결혼할 거라고 말했다.한 번, 두 번, 한도 없이 그를 품어주었던 정가혜도 그의
이연석의 마음 속 불안감이 극에 달할 즈음, 정가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급히 메시지를 열어보고 내용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급히 정가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정가혜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시도했을 때는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상태였다. 통화를 종료한 이연석은 대화창으로 돌아가 급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가혜 씨, 무슨 일이에요? 왜 청혼을 거절하는 거예요?] 그러나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대화창에 빨간색 느낌표가 떠오른 것을 보니 그녀가 다시 그를 차단한 것이 분명해졌다. 이연석은 얼굴을 찡그리며 정가혜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연석 씨, 더 이상 청혼 같은 건 하지 마요. 난 당신과 결혼할 생각 없어요. 그날 밤은 그냥 하룻밤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말고요.]그러니까...정가혜가 그때 자신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건, 자신과 결혼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이제야 마음을 정하고 정확한 답을 준 건가?그는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청혼 얘기를 한 건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가혜는 여전히 냉정하고 단호했다. 심지어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후에도 그녀는 그것을 그저 하룻밤의 일로 치부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연석은 화가 나서 핸드폰을 세게 던졌다. 정가혜가 천 걸음을 물러서면 자신은 만 걸음을 따라가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돌보다도 더 단단했고 자신은 결코 그 마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소파에 털썩 앉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핸드폰을 잡고 곧장 정가혜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가혜는 집에 없었다. 노현정은 정가혜가 어젯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연석은 그녀가 다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급히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 나이트클럽에 도착했을 때 매니저는 사장이 오지 않았다고 했고, 이연석에게
서유는 상황을 파악한 뒤 곧바로 정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가혜는 서유의 전화를 받았다. “서유야, 무슨 일이야?” 정가혜의 목소리를 들은 서유는 그제야 안심하며 물었다. “가혜야, 너 어디에 있어?” 공항을 나서며 선글라스를 낀 정가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 M국에 있어.” “뭐? 갑자기 M국에 왜 간 거야?” 서유가 의아한 듯 묻자 정가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털어놓았다. “사월이 수술이 끝났어. 그러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송사월의 이름이 나오자 서유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지만, 곧 자연스럽게 물었다. “수술은 잘 끝났어?” 정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수술은 성공적이었어. 다만 회복 과정을 지켜봐야 해. 그래도 일어설 가능성이 커.” 송사월이 일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말에, 서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일어설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 언제쯤 귀국할 예정이야?” 정가혜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막 수술을 끝냈으니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해. 아마 한 달쯤 걸릴 거야. 회복이 어느 정도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재활 치료를 받을 거야.” 서유는 상황을 파악한 뒤, 이번엔 이연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혜야, 네가 도련님의 청혼을 거절한 건 혹시 그의 부모님이 너를 따로 만났기 때문이니?” 서유가 전화를 건 이유를 이미 알고 있던 정가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석 씨 어머니 말이 맞아. 나와 그 사람이랑 어울리지 않아.” 서유가 정가혜를 설득하려고 하자 그녀는 이를 막았다. “서유야, 나와 연석 씨는 이제 끝났어. 그 일로 더 이상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한 뒤 정가혜는 멀리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김태진을 보았고, 급히 손을 들어 인사하며 덧붙였다. “김 비서가 나를 데리러 왔어. 이만 끊을게.” “잠깐...” 서유가 더 할 말이 있었지만 정가혜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서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연석에게
이연석은 집으로 돌아간 후, 정말로 본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안에 있던 물건들은 전부 부숴버렸고 수백 년 된 골동품들도 그의 발길질에 산산조각 났다. 마치 폭도처럼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고, 미친 듯이 온 집안을 휘저으며 파괴했다. 아들의 과격한 행동을 바라보며, 유나희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연석아! 너 여자 하나 때문에 어떻게 부모에게 이럴 수 있니? 양심이란 게 남아 있기는 하니?” 이연석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물건을 부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혜 씨랑 결혼하고 싶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끼어들어야만 했어요? 두 분의 양심은 어디에 있어요?” 고가의 골동품들이 이연석의 손에 의해 하나둘씩 부서지는 것을 보자 마침내 참지 못한 이진철이 앞으로 나섰다. “이연석!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연석은 아버지가 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백옥 연적을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어머니가 가혜 씨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물건을 다 부숴버릴 거예요.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을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평소에도 집에서 권위가 없던 이진철은 아들의 협박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너희 엄마가 다 널 위해서 그런 건데, 네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네 엄마를 끌어내려 그 여자에게 사과하게 하려고 하니?” 이연석은 또다시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골동품 진열대의 꽃병들을 모두 박살냈다. “정말 절 위했다면 제 결혼을 도와줘야죠. 제 뒤에서 제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게 험담이나 하고 다녀서는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사랑하던 꽃병들이 부서진 것을 보자 이진철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이 꽃병들은 수백 년 된 것들이야. 하나에 수백억 원짜리인데, 네가 그걸 다 부숴버리다니... 너 정말...” 이진철은 분노에 휩싸여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다행히 하인이 그를 붙잡아 겨우 버텼다. 남편이 이토록 분노에 차 있는 것을 본 유나희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구는 아들을 보며 이진철은 유나희에게 쓴소리를 했다.“그냥 결혼 허락해 주면 될 것을. 뭐 하러 애들 뜯어말려?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고? 이 나이를 먹고 아들내미 시중까지 들게 생겼으니...”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유나희가 그를 흘겨보았다.“당신은 늘 이런 식이야. 항상 대충 얼버무리기나 하고.”“얼버무리는 게 아니라 애들 일은 애들 스스로 알아서 하게 내버려둬. 다 자기들 복이 있는 거야. 뭐 하러 그렇게 간섭해? 그러다가 죽을 때까지 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우리 연석이가 얼마나 좋은 남자인데?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목을 매는데. 혼자 늙어 죽기야 하겠어?”“좋은 남자?”이진철은 고개를 돌려 거실 소파에 축 늘어져 있는 이연석을 힐끔 쳐다보았다.아무리 봐도 저놈이 어디가 좋은 남자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여보.”시선을 거두고 손을 내밀어 유나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저기... 정가혜 씨한테 가서 사과하는 게 어때?”제발 저놈 좀 이 집안에서 안 보게 해줘.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이때, 유나희가 물을 받아 냄비에 붓자 불길이 확 달아올랐다. 그 광경에 그가 바로 달려가 냄비 뚜껑을 가져와 위로 덮었다. “봐봐. 요리는커녕 이런 상식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거야? 얼른 가서 사과해.”남편이 자꾸만 사과하라고 부추기자 유나희는 화가 벌컥 치밀어올랐다.“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데?”뚜껑을 열고 냄비 안의 음식을 확인해 보니 이미 까맣게 타서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화를 참으며 냄비 안의 음식을 버리고 다시 요리를 했다.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연석이 배달 음식을 주문하지 말고 기어코 직접 만들라고 하는 바람에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요리를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며 이진철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타일렀다.“이젠 아시아 지역의 대표이기도 하니까 회사 일로 많이 바쁠 거야. 이렇게
이지민이 떠난 후, 이승하는 펜을 내려놓고 우아하게 일어나 외투를 집어 들고는 사무실을 나섰고 곧장 이진철의 집으로 향했다. 우뚝 솟은 그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접시 하나가 날아왔고 그는 빠르게 몸을 피하였다. 접시는 그의 곁을 지나쳐 뒤에 있는 벽에 부딪혔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바닥에 깨진 접시와 어지러운 거실을 쳐다보며 그가 짙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그는 이진철의 집에 거의 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 이진철의 집은 항상 깨끗하고 단정했다.지금 눈에 들어온 이곳은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연이가 뒤뜰에 지은 강아지 집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한창 이연석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유나희와 이진철은 이승하를 발견하고는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를 향해 걸어갔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그는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이연석을 흘끗 쳐다보았다.“일 때문에 연석이한테 볼 일이 있어서요.”그가 이연석을 도와주러 온 것이라고 착각했던 유나희는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승하가 자신의 집안일에 간섭하는 걸 원치 않았다. “서재에 가서 얘기 나눠. 차 가져다줄게.”그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이연석을 향해 턱을 쳐들고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제야 이연석은 손에 들고 있던 골동품 꽃병을 내려놓고 이승하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나희가 커피를 들고 와서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네 취향을 잘 몰라서 연석이 좋아하는 걸로 준비했어. 일단 마셔봐. 입맛에 안 맞으면 다른 걸로 바꿔 줄게.”카리스마가 넘치는 이승하를 보며 그녀는 말투가 상냥하고 한결 부드러워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승하가 그녀의 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이승하는 밖에서 음식을 쉽게 먹지 않았다. 그러나 유나희의 열정적인 대접에 그는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맛이 별로였지만 예의 바르게 유나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맛있네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난감해도 그녀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아무리 너의 처형이라고 해도 우리 집안에 시집오려면 내 동의가 있어야 하는 거야. 시어머니로서 얘기조차 할 자격도 없는 거니?”그녀를 한동안 쳐다보던 그가 차갑게 되물었다.“정가혜 씨가 이 집안으로 시집오겠다고 했었나요?”“그 생각이 없었다면 우리 연석이한테 5년 동안 매달리지도 않았겠지.”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있던 그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드님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내가 내 아들을 모르면 누가 알아?“연석이는 내가 배 아파서 나은 자식이고 내가 애지중지 키운 내 아들이야. 이 세상에서 나만큼 연석이를 잘 아는 사람도 없어.”고집을 부리는 유나희에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헤어진 후, 연석이가 2년 동안 쫓아다니면서 가혜 씨한테 매달린 건 모르고 계시죠?”흠칫하던 그녀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걔 성격으로 여자한테 2년씩이나 매달렸다고? 그럴 일은 절대 없어.”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그랬을 거라고 전혀 믿지 않았다. 밥 먹듯이 여자가 바꾸는 아들이 어떻게 누군가에게 진심일 수가 있겠는가?두 사람이 5년 동안 관계를 이어온 건 정가혜가 재벌 집에 시집오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연석에게 매달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정가혜의 편을 들고 있는 이승하의 앞에서 유나희는 대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연석이가 그럴 리 없어. 정가혜 씨가 매달린 거겠지.”유나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승하는 중요하지 않았다.“가혜 씨가 매달린 거라면 숙모님과 만난 이후 바로 연석이의 프러포즈를 거절하지 않았을 겁니다.”“거절한 건 밀당 같은 거 아니야? 연석이와 내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야 결국 중간에서 어부지를 얻게 되는 거잖아. 아니라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사람 사이를 허락해달라고 했겠지.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연석이가 집에서 이 난리를 치는 걸 보고만 있어.”서유의 언니를 이렇게 악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유나희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