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은 과거 강은우가 자신의 여동생과 외도를 했을 때 보았던 그 장면과 같았다.아니, 차이점은 있었다. 그때는 강은우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저 분노가 치밀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연석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이런 모습을 보게 된 지금 마음은 더욱 아팠다.정가혜는 유나희에게 모욕을 당할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눈물이 차오르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왔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샘처럼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눈물이 손등에 떨어지자, 정가혜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며 얼굴을 세게 문질러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물을 참아보려 해도 멈추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져 침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의 나지막한 신음 소리는 그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연석이 자신과 사랑을 나누면서도, 배하린과는 끝없이 얽혀있었다니... 아니,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전에 이미 배하린과는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마치 그때, 그녀가 호텔에서 심형진에게 약을 먹고 나오던 순간, 그가 배하린과 함께 끌어안고 있던 장면을 본 것처럼.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무엇일까? ‘이연석, 당신 마음 속에서 나는 대체 뭐야?’“연석아, 기분 좋아?” 이불로 이연석을 덮어버린 채, 배하린은 의도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이연석의 허리를 세게 꼬집었다. 깊은 잠에 빠져 무의식 중이던 이연석은 고통을 느끼며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그 익숙한 소리는 정가혜를 얼음 속에 빠뜨리듯 차갑게 만들었고 손발은 얼어붙었다. 그녀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눈물을 참으려 애쓰며 몸을 돌려 미친 사람처럼 집을 뛰쳐나갔다.유나희가 했던 말이 맞았다. 이연석은 이승하와 달랐다. 그는 언제나 사랑에 대해 불성실했다. 그는 한 여자와의 침대에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여자의 침대에서는 결혼할 거라고 말했다.한 번, 두 번, 한도 없이 그를 품어주었던 정가혜도 그의
이연석의 마음 속 불안감이 극에 달할 즈음, 정가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급히 메시지를 열어보고 내용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급히 정가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정가혜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시도했을 때는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상태였다. 통화를 종료한 이연석은 대화창으로 돌아가 급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가혜 씨, 무슨 일이에요? 왜 청혼을 거절하는 거예요?] 그러나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대화창에 빨간색 느낌표가 떠오른 것을 보니 그녀가 다시 그를 차단한 것이 분명해졌다. 이연석은 얼굴을 찡그리며 정가혜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연석 씨, 더 이상 청혼 같은 건 하지 마요. 난 당신과 결혼할 생각 없어요. 그날 밤은 그냥 하룻밤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말고요.]그러니까...정가혜가 그때 자신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건, 자신과 결혼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이제야 마음을 정하고 정확한 답을 준 건가?그는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청혼 얘기를 한 건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가혜는 여전히 냉정하고 단호했다. 심지어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후에도 그녀는 그것을 그저 하룻밤의 일로 치부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연석은 화가 나서 핸드폰을 세게 던졌다. 정가혜가 천 걸음을 물러서면 자신은 만 걸음을 따라가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돌보다도 더 단단했고 자신은 결코 그 마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소파에 털썩 앉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핸드폰을 잡고 곧장 정가혜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가혜는 집에 없었다. 노현정은 정가혜가 어젯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연석은 그녀가 다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급히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 나이트클럽에 도착했을 때 매니저는 사장이 오지 않았다고 했고, 이연석에게
서유는 상황을 파악한 뒤 곧바로 정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가혜는 서유의 전화를 받았다. “서유야, 무슨 일이야?” 정가혜의 목소리를 들은 서유는 그제야 안심하며 물었다. “가혜야, 너 어디에 있어?” 공항을 나서며 선글라스를 낀 정가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 M국에 있어.” “뭐? 갑자기 M국에 왜 간 거야?” 서유가 의아한 듯 묻자 정가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털어놓았다. “사월이 수술이 끝났어. 그러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송사월의 이름이 나오자 서유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지만, 곧 자연스럽게 물었다. “수술은 잘 끝났어?” 정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수술은 성공적이었어. 다만 회복 과정을 지켜봐야 해. 그래도 일어설 가능성이 커.” 송사월이 일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말에, 서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일어설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 언제쯤 귀국할 예정이야?” 정가혜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막 수술을 끝냈으니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해. 아마 한 달쯤 걸릴 거야. 회복이 어느 정도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재활 치료를 받을 거야.” 서유는 상황을 파악한 뒤, 이번엔 이연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혜야, 네가 도련님의 청혼을 거절한 건 혹시 그의 부모님이 너를 따로 만났기 때문이니?” 서유가 전화를 건 이유를 이미 알고 있던 정가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석 씨 어머니 말이 맞아. 나와 그 사람이랑 어울리지 않아.” 서유가 정가혜를 설득하려고 하자 그녀는 이를 막았다. “서유야, 나와 연석 씨는 이제 끝났어. 그 일로 더 이상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한 뒤 정가혜는 멀리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김태진을 보았고, 급히 손을 들어 인사하며 덧붙였다. “김 비서가 나를 데리러 왔어. 이만 끊을게.” “잠깐...” 서유가 더 할 말이 있었지만 정가혜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서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연석에게
이승하가 귀국했다. 그의 베일에 싸인 애인으로서, 서유는 곧바로 8호 맨션으로 보내졌다.계약의 규정에 따라 그를 만나기 전엔 티 없이 깨끗하게 몸을 씻어야 했고 향수나 화장품 냄새를 절대 풍겨선 안 됐다.그의 취향에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그녀는 오랫동안 목욕을 하고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2층 침실로 왔다.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이승하는 그녀가 들어오는 기척에 그녀를 흘긋 바라봤다.“이리 와.”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담하면서도 차가운 말투가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서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평소에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종잡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그가 혹시나 화가 나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그의 앞에 제대로 서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를 와락 안아버렸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하는 이승하.항상 그런 식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부드러움도 없었다. 그녀를 만나면 그저 함께 자고 싶을 뿐이었다.이번에 외국으로 출장 가게 되면서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자를 만지지 못했으니 오늘 밤은 쉽게 그녀를 놓아줄 리가 없어 보였다.그녀가 잠에 곯아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남자는 끝날 기미가 보였다.다시 잠에서 깨어난 서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욕실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간유리 너머로 흐릿하게 귀의 기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매번 검사를 마치고 나면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린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왜 떠나지 않은 걸까?서유는 가까스로 피곤한 몸을 이끌어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착한 고양이 마냥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몇 분 뒤, 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추고 남자가 샤워 타워를 두른 채 걸어 나왔다.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넓은 어깨로부터 쇄골 언저리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가슴골을 따라 부드럽고도 단단해 보이는 그의 복근 위로 미끄러졌다. 치명적일 만큼 유혹적이다. 그의 조각처럼 아름다운 얼
방을 떠나는 이승하 뒤로 그의 개인 비서 소수빈이 쟁반 위에 올린 약을 들고 나타났다. “서유 씨, 부탁드립니다.”공손한 태도로 약을 건네주며 그가 입을 열었다.피임약이었다.서유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길 허락하지 않는 이승하였다. 그래서 매번 일이 끝나면 소수빈을 시켜 약을 건네주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먹게 했었다.하얀 알약을 바라보며 서유의 마음이 다시 아려왔다.심장이 허약해져서인지 아니면 이승하의 무정함에 마음이 아파서인지 숨쉬기가 가빠졌다.“서유 씨…”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가 혹여나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 봐 소수빈이 다그치듯 그녀를 불렀다.그런 그를 흘긋 보던 서유는 조용히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그제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살짝 풀며 소수빈은 가방에서 집문서와 수표들을 꺼내 테이블에 배열했다.“서유 씨, 대표님께서 드리는 보상입니다. 부동산과 고급 자동차 외, 현금 백억 원을 준비하셨습니다.”실로 놀라운 액수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돈이었던 적은 없었다.서유는 고개를 들어 소수빈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이런 거 필요 없어요.”약간 놀란 듯,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소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성에 차시지 않은 겁니까?”그 말에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소수빈마저 내가 돈을 위해서 승하 옆에 있는 거로 생각하니 이승하는 오죽할까. 이렇게 많은 이별 비용을 내는 건 앞으로 더는 돈 때문에 들러붙지 말라는 뜻이겠지?’“이건 승하 씨가 줬던 건데 다시 전해주실래요? 그리고 카드에 있는 돈은 건드린 적이 없다고 알려주세요. 지금 주신 돈과 부동산 모두, 전 받지 않을 거예요.”자리에서 일어나 가방 안에 있던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며 서유가 말했다.‘5년 동안 대표님께서 주신 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은 건가?’믿을 수 없다는 듯, 소수빈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그가 믿든 말든 서유는 블랙 카드를 집문서와 수표들
서유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곳은 친구 정가혜가 사는 곳이었다.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곤 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둘은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고 고아라는 슬픔을 공유한 자매 같은 사이었다.과거 이승하가 서유를 데려갈 때, 정가혜가 그녀에게 말했었다.“서유야, 앞으로 갈 데가 없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걸 잊지 마.”바로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서유는 이승하가 준 집을 돌려줄 용기가 생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서유를 본 정가혜가 활짝 웃으며 따듯하게 그녀를 맞이했다.“우와, 오랜만이네!”하지만 서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난감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가혜야, 나 너한테 얹혀살려고 왔어.”그제야 가혜는 서유가 캐리어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미소가 차츰 굳어졌다.“무슨 일이야?”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유가 멋쩍게 웃었다.“그 사람이랑 헤어졌어.”그 미소가 억지로 쥐어짠 미소임이 가혜는 너무 눈에 선했다.서유의 작은 얼굴은 찬찬히 뜯어보면 야위어서 눈이 움푹 꺼져 보였으며 안색이 창백했다.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유의 몸은 얄팍한 종잇장처럼 불안해 보였다.가혜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순간 서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도 두 손으로 가혜를 끌어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나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그 말이 그저 위로일 뿐이라는 걸 가혜가 모를 수 없었다. 서유에게 있어 이승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똑똑히 보아왔으니까.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승하에게 돌려줄 2억이라는 돈을 모으기 위해 서유는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멍청하게도 그리하면 이승하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엔 무정하게 버림받았다.가혜의 기억이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5년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만약 그때, 서유가 송사월을 위해 몸을 팔지만 않았어도 이승하를 만날 수 없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서유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엄청난 비밀을 들은 것처럼 원영이 두 팔로 최민지를 흔들며 흥분해서 물었다.“JS 그룹의 그분, 여자한테 관심 없다고 하던데, 아니에요? 어떻게 여신이 있을 수가 있죠? 게다가 그 여신이 우리 회사에 곧 임명될 CEO란 말이에요?“최민지가 씩 웃으며 원영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저런, 정보가 그렇게 부족해서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시겠어요? 재벌가에서 돌아가는 일에 무지하면 대표님 사무실에서 어떻게 일하시려고 그래요.”그러자 최민지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민지 언니가 한 수 가르쳐 주세요~”그제야 최민지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말했다.“이 대표님이랑 우리 이사장님 따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 사이였대요. 찌라시긴 하지만, 5년 전에 이 대표님께서 청혼하셨는데 아씨가 학업 때문에 거절했대요. 그 일로 둘 사이에 문제가 약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5년 동안 연락을 끊었대요. 하지만 아씨가 귀국하자마자 이 대표님께서 직접 공항으로 마중 나갔어요. 그럼 이 대표님께서 아씨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이걸로 설명 끝 아닌가요?”원영은 과장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세상에나! 완전 로맨스 드라마 같아요!”하지만 듣고 있던 서유는 가슴이 턱 막히며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이승하가 애인 계약을 앞당겨 끝냈던 이유는 그의 여신님께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면서 왜 5년 전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던 것일까?심지어 하룻밤 자고 나서는 애인 계약을 맺자고 강압적으로 나오기까지 했었다.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잘 믿기지 않았다. 최민지에게 어디에서 들은 소문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대표님 전속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열렸다.이사장의 비서 허민과 몇 명의 고위층들이 먼저 내렸고 깍듯한 태도로 허리를 숙여 엘리베이터 안을 향해 말했다.“이 대표님, 연 대표님, 대표님 사무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말이 끝
간단한 소개와 인사말을 마친 연지유가 이승하의 팔짱을 끼고 허민과 함께 대표님 사무실로 걸어갔다.원영은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부임한 첫날부터 이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거 봐요. 설마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대표님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뭐 그런 건가요?”최민지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혀를 끌끌 찼다.“이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모르시나 봐요? 귀국하자마자 대표님 자리부터 꿰찼으니 이온 인터내셔널의 주주들이 다들 옳다구나 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선임 된 첫날부터 이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건 주주들에게 연 대표님 뒤엔 JS 그룹이 받쳐주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부러움이 한도치를 넘은 원영이 턱을 받치고 중얼거렸다.“이렇게나 빨리 여신님을 위해 앞날 걱정까지 다 해주시다니. 정말 로맨티시스트가 따로 없네요.”최민지도 부러움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이 사장님 딸만 아니었다면 서울에서 권력을 주름잡는 남자의 눈에 들기나 했겠어요?”하지만 원영은 동의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연 대표님은 이미 아주 훌륭하세요. 학력도 높지 얼굴도 예쁘지… 그러고 보니까 얼굴이 약간…”원영이 서유를 바라봤다.“서유 씨랑 닮았는데요…?”최민지가 바싹 다가와 서유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어머 웬일이래. 정말 닮은 거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서유 씨가 더 예쁘다고 생각해요.”“장난 그만 쳐요.”창백한 얼굴로 한마디 하고 나서 서유는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곧 쓰러질 듯이 연약해 보이는 뒷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원영이 물었다.“서유 씨 무슨 일 있는 걸까요?”최민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아마도 연 대표님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대표님의 운명을 가지지 못해서 질투 났나 봐요.”원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항상 앞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달랐던 최민지였으니 더는 얘기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화장실에서 서유는 빠르게 심장의 통증을 억제하는 약을 꺼내 물도 없이 삼켜버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