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천천히 내리까는 데 그녀의 마음과 표정이 흔들리고 있었다.내가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 단이수 같은 사람은 지민이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는 두 사람을 갈라놓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단이수한테도 사정이 있었던 것이었다.지금은 정가혜라는 이 여자가 아들의 짝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한다. 다만...어느 날 갑자기 단이수처럼 정가혜도 자신이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도 지금과 같이 오늘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까?그 생각에 유나희는 식은땀이 났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이런 걱정이 앞서다니. 지난 일에 대한 후회 때문에 생긴 후유증 같은 것일까?단이수를 잃은 이지민이 고통스러워하던 모습과 그 진실을 알고 그녀와의 인연을 끊고 집을 뛰쳐나간 모습을 생각하며 온몸이 차가워졌다. 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아들까지 잃고 싶은 걸까?유나희가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아 이승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연석이와 가혜 씨 두 사람 허락해 주시는 게 어떠합니까? 숙모님 말씀대로 연석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언젠가는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겠죠. 그때 가서 마음에 드시는 며느릿감 찾으시면 되잖아요. 그때는 연석이라도 더는 뭐라 하지 않을 겁니다.”“그저 자신을 걱정하는 숙모님한테 고마운 마음뿐이겠죠. 지금 이렇게 들끓고 있는 애한테 찬물을 끼얹으면 연석이의 행복도 망치는 것이고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도 끊어지고 말 겁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연석과 이지민은 다르다. 이연석은 남자이고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자 JS 그룹 아시아 지역의 대표이기도 하다. 재혼을 하더라도 여자는 차고 넘칠 것인데 무슨 걱정이 필요하겠는가?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녀가 허락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연석의 말대로 정가혜한테 가서 사과를 해야 했다. 정가혜가 훗날 자신의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 상항에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하는 일은 정말 내키지
결국 이승하의 압박에 못 이겨 유나희는 전용기에 올라탔고 이연석도 그녀와 함께 전용기에 올랐다.도착하기 전에 이연석은 그녀에게 정가혜를 만난 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당부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서 난리를 피우는 것도 모자라 유씨 가문에서까지 난리를 피우겠다고 협박했다. 사람을 위협하는 수단은 이승하와 많이 닮은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빠진 호랑이처럼 이승하만큼 큰 위협은 없었다.문득 이승하가 자신의 아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협박하는 수단이 얼마나 타고난 건지 그녀가 이리 어쩔 수 없이 전용기에 올라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작 아들놈은 남을 위협하는 재주가 옹졸한 것 같았다. 집안에서 소란을 피울 줄밖에 모르니...옆에서 자꾸만 재잘재잘 거리는 이연석을 향해 그녀가 불쾌하게 한마디 내뱉었다.“시끄러워.”그제야 입을 다문 그가 승무원에게서 커피를 건네받아 한 모금 마셨다.“엄마,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줘요. 가혜 씨 마음을 돌려주면 앞으로 제가 효도할게요”이 말은 떠나기 전 이승하가 특별히 그에게 당부한 것이었다. 사실 둘째 형이 왜 이렇게 말하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정가혜 때문에 이런 말까지 하는 아들을 보며 유나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정가혜 씨가 그렇게 좋아?”커피잔을 들고 있던 그가 대답했다.“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요. 그 여자 정말 많이 사랑해요.”허구한 날 날라리 같던 아들이 이렇게 진지한 걸 그녀는 처음 본다. 갑자기 이승하의 말이 떠오른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정가혜 씨가 없으면 너 어떡할 거야?”이지민처럼 우울증에 걸려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하고 결국은 더 이상 단이수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할 것인지?그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유나희를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그 여자 없으면 나 죽을지도 몰라요. 교통사고 났을 때 그 생각 했거든요. 가혜 씨가 날 버리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유나희는 못마땅한 얼굴
밖에 사람이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정가혜는 고개를 숙인 채 누워있는 남자를 향해 물었다.“사월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만들어줄게.”큰 수술을 받은 송사월은 얼굴이 창백하고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말할 힘도 없지만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태진이한테 시켜요. 힘들게 만들지 말고.”그동안 그녀는 병원과 숙소를 오가며 고생을 많이 했다. 그녀가 수건을 짜면서 입을 열었다.“여기 음식 네 입맛에 안 맞잖아. 내가 가서 만들어올게.”말리려고 하는데 그녀가 송사월의 말을 끊어버렸다.“밥 한 끼 만드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래? 그리고 어차피 넌 죽 먹어야 하니까 어려운 일 아니야.”밥하는 게 힘들지 않다고?요리를 하는 게 어렵기만 했던 유나희는 정가혜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어렸을 때부터 쭉 요리를 해서 어렵지 않은 건가?그 생각에 유나희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내가 왜 또 정가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거야? 쓸데없이 정말...한편, 이연석은 바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물을 붓고 병실을 나오자 그제야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가혜 씨.” 이연석의 모습에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그의 곁을 지나갔다.여전히 자신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에 그가 급히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가혜 씨, 엄마가 당신을 찾아갔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요.”그 사실을 서유한테 말한 적이 있으니 이연석이 알고 있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만... 정가혜는 멀리 서 있는 유나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여긴 어떻게...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몸을 돌려 유나희를 가리켰다.“엄마를 데리고 당신한테 사과하러 왔어요.”“사과요?”도도한 부잣집 사모님이 그녀한테 사과를 한다고?정가혜는 믿을 수가 없었다.“우리 엄마가 먼저 당신을 비난한 거니까 당연히 사과해야죠.”그가 말을 마치고는 유나희를 향해 끊임없이 눈
이승하가 귀국했다. 그의 베일에 싸인 애인으로서, 서유는 곧바로 8호 맨션으로 보내졌다.계약의 규정에 따라 그를 만나기 전엔 티 없이 깨끗하게 몸을 씻어야 했고 향수나 화장품 냄새를 절대 풍겨선 안 됐다.그의 취향에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그녀는 오랫동안 목욕을 하고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2층 침실로 왔다.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이승하는 그녀가 들어오는 기척에 그녀를 흘긋 바라봤다.“이리 와.”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담하면서도 차가운 말투가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서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평소에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종잡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그가 혹시나 화가 나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그의 앞에 제대로 서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를 와락 안아버렸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하는 이승하.항상 그런 식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부드러움도 없었다. 그녀를 만나면 그저 함께 자고 싶을 뿐이었다.이번에 외국으로 출장 가게 되면서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자를 만지지 못했으니 오늘 밤은 쉽게 그녀를 놓아줄 리가 없어 보였다.그녀가 잠에 곯아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남자는 끝날 기미가 보였다.다시 잠에서 깨어난 서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욕실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간유리 너머로 흐릿하게 귀의 기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매번 검사를 마치고 나면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린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왜 떠나지 않은 걸까?서유는 가까스로 피곤한 몸을 이끌어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착한 고양이 마냥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몇 분 뒤, 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추고 남자가 샤워 타워를 두른 채 걸어 나왔다.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넓은 어깨로부터 쇄골 언저리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가슴골을 따라 부드럽고도 단단해 보이는 그의 복근 위로 미끄러졌다. 치명적일 만큼 유혹적이다. 그의 조각처럼 아름다운 얼
방을 떠나는 이승하 뒤로 그의 개인 비서 소수빈이 쟁반 위에 올린 약을 들고 나타났다. “서유 씨, 부탁드립니다.”공손한 태도로 약을 건네주며 그가 입을 열었다.피임약이었다.서유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길 허락하지 않는 이승하였다. 그래서 매번 일이 끝나면 소수빈을 시켜 약을 건네주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먹게 했었다.하얀 알약을 바라보며 서유의 마음이 다시 아려왔다.심장이 허약해져서인지 아니면 이승하의 무정함에 마음이 아파서인지 숨쉬기가 가빠졌다.“서유 씨…”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가 혹여나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 봐 소수빈이 다그치듯 그녀를 불렀다.그런 그를 흘긋 보던 서유는 조용히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그제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살짝 풀며 소수빈은 가방에서 집문서와 수표들을 꺼내 테이블에 배열했다.“서유 씨, 대표님께서 드리는 보상입니다. 부동산과 고급 자동차 외, 현금 백억 원을 준비하셨습니다.”실로 놀라운 액수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돈이었던 적은 없었다.서유는 고개를 들어 소수빈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이런 거 필요 없어요.”약간 놀란 듯,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소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성에 차시지 않은 겁니까?”그 말에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소수빈마저 내가 돈을 위해서 승하 옆에 있는 거로 생각하니 이승하는 오죽할까. 이렇게 많은 이별 비용을 내는 건 앞으로 더는 돈 때문에 들러붙지 말라는 뜻이겠지?’“이건 승하 씨가 줬던 건데 다시 전해주실래요? 그리고 카드에 있는 돈은 건드린 적이 없다고 알려주세요. 지금 주신 돈과 부동산 모두, 전 받지 않을 거예요.”자리에서 일어나 가방 안에 있던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며 서유가 말했다.‘5년 동안 대표님께서 주신 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은 건가?’믿을 수 없다는 듯, 소수빈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그가 믿든 말든 서유는 블랙 카드를 집문서와 수표들
서유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곳은 친구 정가혜가 사는 곳이었다.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곤 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둘은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고 고아라는 슬픔을 공유한 자매 같은 사이었다.과거 이승하가 서유를 데려갈 때, 정가혜가 그녀에게 말했었다.“서유야, 앞으로 갈 데가 없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걸 잊지 마.”바로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서유는 이승하가 준 집을 돌려줄 용기가 생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서유를 본 정가혜가 활짝 웃으며 따듯하게 그녀를 맞이했다.“우와, 오랜만이네!”하지만 서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난감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가혜야, 나 너한테 얹혀살려고 왔어.”그제야 가혜는 서유가 캐리어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미소가 차츰 굳어졌다.“무슨 일이야?”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유가 멋쩍게 웃었다.“그 사람이랑 헤어졌어.”그 미소가 억지로 쥐어짠 미소임이 가혜는 너무 눈에 선했다.서유의 작은 얼굴은 찬찬히 뜯어보면 야위어서 눈이 움푹 꺼져 보였으며 안색이 창백했다.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유의 몸은 얄팍한 종잇장처럼 불안해 보였다.가혜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순간 서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도 두 손으로 가혜를 끌어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나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그 말이 그저 위로일 뿐이라는 걸 가혜가 모를 수 없었다. 서유에게 있어 이승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똑똑히 보아왔으니까.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승하에게 돌려줄 2억이라는 돈을 모으기 위해 서유는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멍청하게도 그리하면 이승하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엔 무정하게 버림받았다.가혜의 기억이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5년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만약 그때, 서유가 송사월을 위해 몸을 팔지만 않았어도 이승하를 만날 수 없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서유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엄청난 비밀을 들은 것처럼 원영이 두 팔로 최민지를 흔들며 흥분해서 물었다.“JS 그룹의 그분, 여자한테 관심 없다고 하던데, 아니에요? 어떻게 여신이 있을 수가 있죠? 게다가 그 여신이 우리 회사에 곧 임명될 CEO란 말이에요?“최민지가 씩 웃으며 원영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저런, 정보가 그렇게 부족해서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시겠어요? 재벌가에서 돌아가는 일에 무지하면 대표님 사무실에서 어떻게 일하시려고 그래요.”그러자 최민지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민지 언니가 한 수 가르쳐 주세요~”그제야 최민지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말했다.“이 대표님이랑 우리 이사장님 따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 사이였대요. 찌라시긴 하지만, 5년 전에 이 대표님께서 청혼하셨는데 아씨가 학업 때문에 거절했대요. 그 일로 둘 사이에 문제가 약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5년 동안 연락을 끊었대요. 하지만 아씨가 귀국하자마자 이 대표님께서 직접 공항으로 마중 나갔어요. 그럼 이 대표님께서 아씨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이걸로 설명 끝 아닌가요?”원영은 과장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세상에나! 완전 로맨스 드라마 같아요!”하지만 듣고 있던 서유는 가슴이 턱 막히며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이승하가 애인 계약을 앞당겨 끝냈던 이유는 그의 여신님께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면서 왜 5년 전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던 것일까?심지어 하룻밤 자고 나서는 애인 계약을 맺자고 강압적으로 나오기까지 했었다.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잘 믿기지 않았다. 최민지에게 어디에서 들은 소문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대표님 전속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열렸다.이사장의 비서 허민과 몇 명의 고위층들이 먼저 내렸고 깍듯한 태도로 허리를 숙여 엘리베이터 안을 향해 말했다.“이 대표님, 연 대표님, 대표님 사무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말이 끝
간단한 소개와 인사말을 마친 연지유가 이승하의 팔짱을 끼고 허민과 함께 대표님 사무실로 걸어갔다.원영은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부임한 첫날부터 이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거 봐요. 설마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대표님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뭐 그런 건가요?”최민지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혀를 끌끌 찼다.“이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모르시나 봐요? 귀국하자마자 대표님 자리부터 꿰찼으니 이온 인터내셔널의 주주들이 다들 옳다구나 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선임 된 첫날부터 이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건 주주들에게 연 대표님 뒤엔 JS 그룹이 받쳐주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부러움이 한도치를 넘은 원영이 턱을 받치고 중얼거렸다.“이렇게나 빨리 여신님을 위해 앞날 걱정까지 다 해주시다니. 정말 로맨티시스트가 따로 없네요.”최민지도 부러움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이 사장님 딸만 아니었다면 서울에서 권력을 주름잡는 남자의 눈에 들기나 했겠어요?”하지만 원영은 동의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연 대표님은 이미 아주 훌륭하세요. 학력도 높지 얼굴도 예쁘지… 그러고 보니까 얼굴이 약간…”원영이 서유를 바라봤다.“서유 씨랑 닮았는데요…?”최민지가 바싹 다가와 서유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어머 웬일이래. 정말 닮은 거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서유 씨가 더 예쁘다고 생각해요.”“장난 그만 쳐요.”창백한 얼굴로 한마디 하고 나서 서유는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곧 쓰러질 듯이 연약해 보이는 뒷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원영이 물었다.“서유 씨 무슨 일 있는 걸까요?”최민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아마도 연 대표님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대표님의 운명을 가지지 못해서 질투 났나 봐요.”원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항상 앞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달랐던 최민지였으니 더는 얘기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화장실에서 서유는 빠르게 심장의 통증을 억제하는 약을 꺼내 물도 없이 삼켜버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