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팔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구승훈은 강하리가 다시 만나보자고 했을 때도, 강하리가 자신의 프러포즈를 받아줬을 때도 마음 한구석에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것은 그 아이와 그들의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그녀가 예전처럼 자신을 대해주기를 감히 원하지도 못했고 그저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마침내 그녀도 자신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서려는 것을 느꼈다.그의 말을 들으며 강하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고개를 들어 그의 턱을 깨물었다.“잘하고 다녀요. 누가 물어보면 약혼녀가 준 거라고 말하는 거 잊지 말고!”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뒤집어 그녀를 덮쳤다.“어떡하지? 출근하기 싫어. 너랑...”강하리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입을 막았다.“가서 출근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웃으며 입원 병동으로 걸어갔다.구승훈은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구승훈이 떠난 후 주차장에 있는 다른 차 안에서 정양철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그의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번쩍이더니 휴대전화를 들고 구동근에게 전화를 걸었다.“구동근 씨, 같이 차 한잔할까요? 네, 제가 그리로 가죠.”강하리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간병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 씨, 방금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와서 어머니를 뵙고 싶다고 했어요. 하리 씨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그럴 필요 없다고 해서 안 했어요.”“정 씨요? 나이는요?”“오십대로 보였어요.”강하리의 입꼬리가 잠시 굳어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정양철을 못 본 지도 오래되었다. 처음에 그에게 가졌던 의구심은 순조롭게 퇴사하면서 사라졌다.그런데 오늘 그가 여기로 왔을 줄이야.“다른 말은 없었나요?”간병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전에 어머니를 뵈러 오려고 했는데 어머니께 일이 생겼다고, 오늘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다가 한 번 보러 왔다는 말만 하셨어요.”강하리는 조용히
강하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서둘러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언제 떠나요? 짐 싸줄게요.”구승훈이 웃었다.“아니야, 바로 갈 거야. 앞으로 이틀 동안 조심하고 외출할 땐 노진우와 동행하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강하리가 짧게 답했다.“이번엔 얼마나 걸려요?”“사흘이.”구승훈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내가 돌아오면 혼인신고 하러 가자?”강하리는 깜짝 놀랐고 구승훈은 웃으며 말했다.“하리야, 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그렇게 말한 뒤 그는 전화를 끊었다.강하리는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어느새 그녀의 곁에 도착한 손연지가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는 어깨에 팔을 둘렀다.“또 너희 집 개자식이랑 통화해?”강하리가 웃었다.“언제 왔어?”손연지는 입을 삐죽거렸다.“노민우가 날 끌고 와서 자기네 병원 시설 보러 오래. 보기는 무슨, 시설이 아무리 좋으면 뭐 해, 소 교수님이 있는 것도 아닌데!”강하리가 혀를 찼다.“소 교수님에 대해서는 좀 알아봤어?”손연지는 어깨를 으쓱했다.“뭘 알아봐? 넌 구승훈이랑 만나기 전에 미리 알아봤어?”강하리는 다소 말문이 막혀 바로 화제를 바꿨다.“연수는 언제 가?”“이번 달 말.”“그럼 너랑 소 교수님은...”손연지가 찡긋 윙크를 보냈다.“오늘 저녁에 소 교수님 만나기로 했으니까 저녁 먹고 나서 아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민우가 옆으로 걸어왔다.“소영준이랑 밥 먹는다고?”그를 보자마자 손연지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왜, 안돼?”노민우가 피식 웃었다.“소영준 평소에 나이트클럽 자주 가는 거 알고 있어?”손연지는 조롱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자기는 안 가는 것처럼 말하네.”노민우는 순식간에 할 말을 잃었다.“이젠 그렇게 안 가.”“개는 똥을 못 끊지.”손연지가 그를 흘겨보며 강하리를 자기 차에 태웠다.“가자, 내가 데려다줄게.”노민우는 몇 발짝 뒤에서 따라왔다.“소영준이랑 어디서 밥 먹는데?”“네가
강하리는 짧게 대답하며 나지막이 몇 마디를 덧붙인 뒤 전화를 끊었다.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문을 두드리며 들어온 구승재의 표정이 다소 어둡자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비행기표 예약했어?”구승재가 짧게 대답한 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형, 이거 송유라가 보낸 거야.”구승훈의 눈썹이 사납게 찡그려졌다.“뭔데?”구승재가 물건을 건넸고 그걸 받은 구승재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분홍색 크리스털 목걸이였다.뒷면에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분홍색 리시안셔스.구승재가 나지막이 말했다.“그렇게 매정하게 굴 거면 다시는 자기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래. 방금 그쪽 간병인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손목을 또 그었다고 하더라.”그 말을 듣는 구승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고 구승재도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형, 어차피 강하리 씨랑 결혼할 거면 송유라 쪽은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안 그러면 일 터지는 건 시간 문제야. 송유라가 툭하면 난동을 부리는데 강하리 씨가 아무리 신경 안 쓴다고 해도 기분 안 좋을 거야.”구승훈은 미간을 꾹 누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이제 처리할 때도 됐지. 일단 Y국으로 가자.”번뜩 꿈에서 깨어난 강하리가 눈을 떴을 땐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가정부는 서둘러 그녀를 품에 안고 살며시 토닥였다.“하리 씨, 악몽 꿨어요? 꿈꾸면서 계속 울고 있었어요.”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뒤 멍한 표정으로 가정부를 바라보다가 방금 꾼 꿈에서 조금 벗어났다.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 건 꽤 오랜만인데 오늘 그 꿈이 다시 찾아왔다.절망과 질식이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물 마시고 숨 좀 돌려요.” 가정부가 물 한 잔을 건넸고 강하리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지금 몇 시죠?”“벌써 9시 넘었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만들어 줄게요.”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구승훈이 이미 비행기에서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
노진우가 사람들을 데리고 서둘러 달려갔지만 병실 상황을 본 그의 심장이 철렁했다.그는 부하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제압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강하리를 부축하러 갔다.“강하리 씨.”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얼굴과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불러요, 의사!”노진우는 서둘러 의사를 불렀고 수술실의 불은 한 시간 넘게 켜져 있었다.노진우는 내내 강하리의 곁을 지켰고 노민우도 이곳의 상황을 들었는지 서둘러 달려왔다.“강하리 씨, 걱정하지 마요. 병원에 있는 의사들 다 불러놨으니까.” 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말했다.“고마워요.”노민우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승훈이한테 전화했어요?”강하리는 시선을 내렸다. 방금 전화를 걸었는데 여전히 꺼진 상태였다.혹시 비행기가 연착된 건 아닐까.“대표님 아직 비행기 안에 계세요.”노진우가 강하리를 대신해 대답했고 노민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돌아보았다.“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노진우는 잠시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저 사람들, 예전에 어르신 쪽 사람들과 접촉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강하리는 멈칫했다.“뭐라고요?”노진우는 서둘러 설명했다.“대표님이 저쪽 어르신의 움직임을 주시하라고 하셨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어제 어르신 측 경호원들과 접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쪽으로 올 줄은 몰랐어요.”입술을 앙다문 강하리의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구씨 가문 사람들 짓이었어?순식간에 강하리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 차 쌓여가는 것 같았다.‘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이기적이고 무모하게 구승훈 곁에 있어서 그런 거야?’강하리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노진우는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강하리 씨, 괜한 생각 마세요. 단순히 제 의심일 수도 있어요, 조금 더 알아보고...”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하리의 휴대폰으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고 고개를 숙인
“강하리 어딨어? 왜 내 전화를 안 받아?”노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대표님, 강하리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뭐?” 구승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언제 돌아가셨는데?”“조금 전에요. 아마 어르신 쪽에서 한 짓인 것 같아요.”휴대폰을 움켜쥔 구승훈의 손 마디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알았어.”정서원은 수술실에서 영안실로 옮겨졌다.강하리는 정서원의 몸을 닦아준 후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전에 정서원이 깨어났을 때 강하리는 그녀를 위해 새 옷을 여러 벌 사다 주었고 정서원이 그 옷을 입고 함께 연성의 거리를 누빌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런 식으로 옷을 입게 될 줄이야.손연지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울었고 강하리는 오히려 덤덤했다.하고 싶은 말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표정이면서도 정서원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안실에서 나온 강하리는 급히 달려온 구승훈을 발견했다.구승훈은 다가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고 강하리는 가만히 안겨 있기만 했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강하리가 그를 밀어내자 구승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강하리는 이미 뒤돌아 장례식장에 도착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러 간 뒤였다.뒤돌아 따라간 구승훈은 강하리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도맡았고 강하리는 구승훈이 대신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자코 있었다.구승훈은 모든 것을 제대로 준비했다.장례식부터 묘지까지.마치 그럴듯한 사위처럼....한편 B시, 심씨 가문에서 백아영은 심준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가슴 어딘가에서 급격한 통증이 밀려오며 곧바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심준호는 깜짝 놀라 앞으로 달려가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러세요?”백아영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말을 꺼냈다.“중요한 것을 잃은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파.” 심준호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럼 지금 병원으로 갈까요
구승훈은 그녀가 반지를 빼내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강하리의 말이 떨어지자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다시 말해 봐!”강하리는 가만히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너무 사랑하는 사람인데, 돌아오면 혼인신고 하러 가기로 약속까지 했는데...모든 걸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다.과거를 내려놓고, 송유라의 존재를 무시하고, 아이까지 잊기로 했다.하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그의 가족들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를 죽였다.그는 다시는 송유라를 만나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하고도 결국엔 그녀를 만나러 갔다.이 거대한 도박판에서 그녀는 철저히 패배자가 된 것이다.완전한 패배자로 전락했다.“헤어지자고요. 구승훈 씨, 당신 가족들은 나 싫어해요. 우리 더는 억지로 엮이지 말아요. 나 정말...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앞으로는 송유라를 내버려두라고 묻지도 않을 거고, 당신이 정말 송유라를 놓아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을 테니까 우리 여기서 끝내요.”강하리의 눈물이 예고 없이 쏟아졌다.구승훈이 돌아온 후 처음 보는 그녀의 눈물이었다.정서원의 장례식 때도 울지 않던 그녀가 지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강하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발 밑으로 떨어진 다이아몬드 반지가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그녀는 생각했다.이미 깨진 거울은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깨진 건 깨진 거다.다시 이어 붙여도 그어진 틈새는 여전하다.구승훈은 패닉에 빠졌다.자신이 송유라를 만나러 간 사실을 강하리가 모를 거라 생각했다.“하리야, 내가 송유라를 만나러 간 건...”그는 강하리를 끌어당기며 설명하려 했다.강하리가 그를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구승훈이 죽기 살기로 붙잡았다.“하리야, 내가 송유라를 만나러 간 건 송유라랑 제대로 얘기하려고 그랬어. 내가...”강하리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제대로 얘기할 수 있기는 해요? 구승훈 씨, 송유라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당신이 과거
흠뻑 젖은 채 들어오는 그녀를 본 손연지의 얼굴이 확 변했다.“왜 이렇게 흠뻑 젖었어?”강하리는 대답하지 않고 지친 듯 다가와 손연지의 어깨에 기댔다.손연지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강하리를 욕실로 끌고 들어갔다.“일단 따뜻한 물로 목욕해. 내가 핫초코 한 잔 만들어 줄게.”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마워.”손연지가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강하리는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욕조에 기대어 이미 잠든 듯 보였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날카로운 통증이 손연지의 심장을 관통하며 눈가가 붉게 물들어갔다.이미 눈을 뜬 강하리가 그녀의 손에서 핫초코를 건네받으며 말했다.“잘 먹을게.”손연지는 당황했다. 그녀의 손에 끼고 있던 반지가 사라졌다.“하리야, 너랑 구승훈...”“헤어졌어.” 그녀는 가슴이 아프지도 않다는 듯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살짝 떨리는 입꼬리는 여전히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눈 주위가 다시 빨갛게 물들었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구승훈은 동의했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이틀 진정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더라.”“그럼 이틀 동안 쉬어. 마음 정리하고 다시 얘기해.”강하리는 손연지를 바라보았다.손연지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뜻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녀는 둘 사이에 구씨 가문 말고도 걸림돌이 있다는 걸 몰랐다.그럼에도 강하리는 이틀 동안 집에서 기다렸다.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들이 구씨 가문에서 보낸 사람들인지 아닌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틀 동안 구승훈은 오지 않았고 단 한 통의 문자도 받지 못했다.강하리는 끔찍하게 조용한 휴대폰을 바라보며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구승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구승훈 씨, 내일이 어머니 오일장이니까 나랑 같이 묘지로 가요. 물어볼 게 있어요.]메시지를 보냈지만 바다에 던진 돌멩이처럼 감감무소식이었다.정서원의 오일장 날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특별히 꽃집에 가서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사서 묘지로 갔다.그렇게
강하리가 멈칫하며 곧 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도 함께 사라졌다.그녀는 베개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만졌지만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구승훈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하지도 않았다.어쩌면 송유라 측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손연지는 얼굴을 찡그렸다.“하리야, 혼자서 애 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애한테도 안 좋고.이 아이는 그때의 그 아이와는 다르다.그 아이는 구승훈이 하리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던 시절에 나타났지만 이 아이는... 적어도 하리에 대한 구승훈의 마음이 있을 때 찾아왔으니까.분명히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강하리의 코끝이 시큰해졌다.“연지야, 나 이제 용기가 안 나.”강하리의 말에 손연지는 멈칫했다.“무서워, 이 아이도 그때 아이처럼 될까 봐. 구씨 집안에서 날 싫어하고 문연진이 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그 사람들이 나와 아이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아이가 지난번 그 아이처럼 될까 봐, 우리 엄마처럼 될까 봐 무서워...”손연지는 문득 가슴이 아팠다.“그래, 그럼 말하지 말자. 우리 여길 떠나자. 마침 내가 연수 가니까 너도 같이 갔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어른이 됐을 때 다시 오자.”강하리는 눈물을 참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 해외 파견 가려고. 구승훈 때문에 거절하려고 했는데...”손연지는 입을 벙긋하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안아주었다.“그 개자식은 무시하고 아이 낳으면 우리 둘이 같이 키워.”강하리가 웃었다.“그래.”...송유라는 결국 목숨을 건졌지만 송씨 가문 사람들은 그 일로 난리가 났다.간병인은 송유라가 짜증 나서 밀었을 뿐 의도한 건 아니라고 했으나 송씨 가문에서는 송유라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강하리를 지목했다.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식불명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송유라를 복잡한 눈빛으로 봤다.어쨌든 자신이 그녀에게 빚을 진 건 맞으니까.“구 대표.” 장진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