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가 멈칫하며 곧 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도 함께 사라졌다.그녀는 베개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만졌지만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구승훈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하지도 않았다.어쩌면 송유라 측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손연지는 얼굴을 찡그렸다.“하리야, 혼자서 애 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애한테도 안 좋고.이 아이는 그때의 그 아이와는 다르다.그 아이는 구승훈이 하리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던 시절에 나타났지만 이 아이는... 적어도 하리에 대한 구승훈의 마음이 있을 때 찾아왔으니까.분명히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강하리의 코끝이 시큰해졌다.“연지야, 나 이제 용기가 안 나.”강하리의 말에 손연지는 멈칫했다.“무서워, 이 아이도 그때 아이처럼 될까 봐. 구씨 집안에서 날 싫어하고 문연진이 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그 사람들이 나와 아이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아이가 지난번 그 아이처럼 될까 봐, 우리 엄마처럼 될까 봐 무서워...”손연지는 문득 가슴이 아팠다.“그래, 그럼 말하지 말자. 우리 여길 떠나자. 마침 내가 연수 가니까 너도 같이 갔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어른이 됐을 때 다시 오자.”강하리는 눈물을 참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 해외 파견 가려고. 구승훈 때문에 거절하려고 했는데...”손연지는 입을 벙긋하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안아주었다.“그 개자식은 무시하고 아이 낳으면 우리 둘이 같이 키워.”강하리가 웃었다.“그래.”...송유라는 결국 목숨을 건졌지만 송씨 가문 사람들은 그 일로 난리가 났다.간병인은 송유라가 짜증 나서 밀었을 뿐 의도한 건 아니라고 했으나 송씨 가문에서는 송유라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강하리를 지목했다.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식불명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송유라를 복잡한 눈빛으로 봤다.어쨌든 자신이 그녀에게 빚을 진 건 맞으니까.“구 대표.” 장진영의
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 무의식적으로 강하리를 찾으려다 손가락이 멈칫했다.그는 카톡을 한 번 살펴본 후 급하게 강하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 쪽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구승훈의 심장이 세차게 내려앉았다.“지금 당장 국내로 돌아가!”구승훈은 귀국해 곧장 손연지의 집으로 향했고 반나절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집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자 그는 돌아서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손연지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구승훈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지 않았고 구승훈은 손연지가 퇴근할 때까지 병원 앞에서 기다렸다가 그녀를 만나러 왔다.“강하리 어딨어요?”손연지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구승훈 씨 전에는 뭐하고 이제와요? 하리가 그날 공동묘지에서 하루 종일 당신만 기다린 거 알아요?”구승훈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하리 어딨어요?”손연지가 말을 돌렸다.“나도 모르니까 나한테 와서 물어보지 마요. 알아도 말 안 해요. 구승훈 씨, 누구도 제자리에서 가만히 당신 기다려주지 않아요.”손연지는 말을 끝내고 그냥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의 가슴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노진우에게 연락했다.“강하리 어디 갔어?”노진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강하리 씨는 지난 며칠 동안 저를 못 따라다니게 했어요. 그날 묘지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하루 입원한 뒤로 손 선생님이 저를 떼어냈고요.”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그 여자가 비키라고 해서 안 따라다닌 거야?”“대표님 죄송했다.”구승훈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난 이틀 동안의 동선을 확인해서 연성을 떠난 건 아닌지 확인해 봐.”노진우는 서둘러 대답했고 그 후 구승훈은 심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강하리 지난 며칠 동안 B시에 갔었어?”백아영은 그날부터 아팠고 심준호는 지난 며칠 동안 그녀를 돌보느라 바빴기에 강하리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둘이 싸웠어?”구승훈은 한숨을 내쉬었다.“나한테 헤어지재.”심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게 하기 위해 의사는 전기 충격 요법까지 사용했다.나중에 그 기억은 정말 잊혀졌지만 그는 삶에 대한 희망도 잊은 것 같았다.그러던 어느 날 심준호는 그를 다시 찾아갔고 그의 이러한 말을 들었다.“하양이 데리러 가야 해.”그가 기억하는 건 이름뿐이다, 하양이.심준호는 기억을 더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승훈아, 내가 지나치게 의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송유라가 정말 네 어릴 적 그 사람이 맞아? 나는 왜 네 말대로 송유라가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사악한 기운만 풍겨대는 것 같을까.”구승훈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심준호가 말하지 않아도 가끔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의아했다.“하지만 걘 강주에서의 내 어린 시절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어.”심준호가 멈칫했다.“뭘 아는데?”구승훈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멀리 내다보았다.“내가 언제 가고 언제 돌아왔는지, 거기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내가 살던 곳과 걔가 살던 곳, 그리고 내가 거기 있을 때 돌봐준 가정부 이름과 얼굴까지도. 심지어 내가 아플 때 팥죽을 먹으면 낫는다고 말해준 것까지.”심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내가 괜히 의심하는 건가. 근데 그건 마음먹고 알아보면 다 알 수 있는 거잖아.”구승훈이 웃었다.“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미리 알았던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감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은 너랑 나, 우리 할아버지 말고 구승재조차 몰라.”심준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승훈아, 그때 그 정신과 의사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어?” 구승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할아버지가 찾은 사람이니까 믿을 만하겠지.”심준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그냥 하는 말인데 송씨 가문도 의약 사업을 하고 있으니 그 정신과 의사와 접촉하기만 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구승훈은 당황했다.송유라를 의심한 적이 없었던 것은 송유라가 많이 닮아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사건들은 대외적으로 잘 감춰왔기 때문에 감히 구씨 집안을 상대로
B시, 강하리는 탑승 전 마지막 준비를 마쳤지만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그녀는 터미널에 서서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이 작은 배를 쓰다듬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미안해, 엄마는 너에게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주지 못할지도 몰라.”그녀는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하고 아껴서 아빠의 사랑까지 대신 채워줄 거야, 알았지?”주해찬은 옆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가 멍하니 배를 만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구승훈이 또다시 그녀를 아프게 하면 자신이 꼭 데려가겠다고 다짐했었다.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상처받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그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져와 강하리에게 건넸다.“비가 한동안 그치지 않을 것 같으니 휴게실 가서 좀 쉬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천둥 번개가 하늘을 강타했다.그런데 이렇듯 궂은 날씨에도 공항 반대편에는 전용기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구승훈은 비행기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바람 때문에 동체가 심하게 흔들려 승무원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구승훈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대표님, 착륙이 잘 안될지도 몰라요. 날씨가 안 좋아요.”구승훈은 시선을 들어 깊고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원들은 식은땀을 흘렸다.“즉시 착륙 준비를 하겠습니다.”승무원들은 말을 마친 후 심호흡을 하고 착륙 준비를 하러 갔다.밖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강하리는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린 채 터미널에 앉아있었다.웬일인지 자꾸만 마음이 불안했다.“왜? 몸이 안 좋아?”주해찬이 옆에서 묻자 강하리는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아니요...”그녀가 말하자마자 옆에서 비명이 들렸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밖에 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졌대.”“세상에, 이런 날씨에 착륙하다니 기장 미친 거야?”“다친 사람은 없는지 궁금하네.”“없길
구승훈의 몸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느껴지며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옆에서 주해찬이 다가와서 주먹으로 구승훈의 얼굴을 내리쳤다.주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구승훈은 주먹을 맞고도 그대로 벌떡 일어나 웃었다.“왜, 내 아내를 납치하려다가 안 되니까 화난 거야?”주해찬은 불같은 눈빛으로 구승훈을 노려보았다.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경우가 드문데 오늘은 참을 수 없었다.“구승훈, 잘해주고 지켜준다던 게 이런 거였어?”구승훈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하리야, 우리 둘이 따로 얘기하자.”강하리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남자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녀가 떠나도 계속 귀찮게 굴 것이다.구승훈은 그녀가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VIP실로 그녀를 끌어당겼다.주해찬이 따라가려 했지만 강하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다.VIP실 문이 닫히자 순식간에 외부의 시선이 차단됐다.“하고 싶은 말 빨리 해요.”“너 안 보내.” 구승훈은 그녀에게 심플한 한마디만을 건넸고 강하리는 비웃었다.“구승훈 씨,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요? 우린 이미 헤어졌잖아요!”“헤어지기로 한 적도 없고 더군다나 난 아직 네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잖아!”구승훈의 눈빛이 복잡했다.“하리야, 난 이미 정말로 송유라와 선 그었어.” 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다.선을 그었다고?왜 그 말이 믿기지 않을까.송유라가 살아 있는 한 그 선은 절대 그어지지 않을 텐데.“구승훈 씨, 수없이 했던 그 말을 내가 아직도 믿을 것 같아요?”그녀는 시선을 내린 채 그를 떼어냈다.“게다가 우리 사이에는 송유라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그가 다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하리야, 정말 우리 애가 사생아가 되길 바라는 거야? 넌... 불완전한 가정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구승훈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가득했다.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렸다.“무슨 상황인데요, 왜 갑자기 연기된 거예요?”주해찬은 고개를 저었다.“자세한 건 부서로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강하리는 구승훈을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갔고 구승훈도 말리지 않고 바로 뒤따라 나갔다.주해찬은 그를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 사람이 대기실 밖으로 나왔을 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강하리는 곧장 주해찬의 차로 향했고 구승훈은 뻔뻔하게도 그 뒤를 바짝 쫓았다.주해찬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결국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구승훈만큼 뻔뻔한 사람은 정말 본 적이 없었다.강하리가 이미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여전히 귀찮게 매달리고 있었다.주해찬은 아마도 이것이 자신과 구승훈의 차이점일 거라고 생각했다.외교부에 도착하니 진태형이 기다리고 있었고 약간 어두워진 얼굴이 강하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진 장관님, 무슨 일 있으세요?”진태형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강하리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넸다.강하리는 편지를 받아 살펴본 뒤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내부 고발 편지인데 자신이 누군가의 스폰을 받았다는 것이다.주해찬의 얼굴도 어두워졌다.“이미 이 문제에 대해 부서에서 회의했고 감찰위원회 사람들도 왔어. 구승훈이 둘 사이를 밝히는 걸 녹음까지 했는데 그래도 해외 파견에 영향이 생겨서 좀 미뤄질 것 같아.”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이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요?”진태형이 한숨을 쉬었다.“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어. 구 대표가 한 걸 녹음해 둬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이번에 당장 외교부를 떠나야 할지도 몰라. 지금은 불안해하지 마, 일 해결하고 내가 최대한 힘 써볼게,”강하리는 짜증을 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네, 알겠어요. 진 장관님 감사해요.”밖으로 나와서 구승훈은 차에서 내린 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병원에 가서 강하리 임신 검사 기록을 모두 과로로 병명을 바꾸고 임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삭제해.”그가
강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지만 구승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두 마디만 할게. 병원에 임신 검사 기록을 지워달라고 부탁해 놓았어.”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고마워요.”원래 손연지가 해주길 바랐던 일이지만 구승훈이 먼저 생각할 줄이야.“하리야, 내가 당연히 할 일이야.” 구승훈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고 강하리는 웃었다.“구승훈 당신이 송유라한테 간 순간부터 내가 돌아보지 않을 거란 걸 알았어야지!”“하리야, 난 그냥...”강하리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가서 인연 끊으려고 했다는 말은 하지 마요. 당신은 평생 모르겠지. 정말 내버려둘 생각이었으면 그 여자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 구승훈 씨, 당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송유라는 여전히 당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구승훈은 강하리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한동안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나는 걔한테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야.”“그럼 그 마음 갖고 가세요.”말을 마친 강하리는 그를 밀어냈다.도저히 마음속으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말을 못 할까.대체 그의 마음속에 어떤 존재이기에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했던 그가 또다시 송유라를 찾아간 걸까구승훈의 비밀 애인일 땐 뭐라 해도 참을 수 있었지만 정식으로 사귀고 결혼까지 전제로 한 이상 자기 남자가 한눈파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구승훈은 다시 문을 두드리지 않고 프런트로 가서 강하리 옆에 있는 방을 달라고 했다.그러고는 소파 앞 카펫에 앉아 밤새도록 담배를 피웠다.새벽이 되자 심준호에게 전화를 걸어 프런트로 가서 강하리 방의 방 카드를 달라고 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지 않았다.구승훈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가슴 아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병원으로 달려가 영안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봤을 때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눈과 코는 빨갛고 슬픔이 가득했지만 미련은
강하리는 반지를 그에게 그대로 던지고는 뒤돌아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구승훈은 서둘러 반지를 잡았고 손에 놓인 반지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서둘러 뒤를 따랐다.“반지가 싫다면 됐어. 뭐 좋아해? 내가 다 줄게, 응?”강하리의 발걸음이 주춤하더니 피식 웃었다.“구승훈 씨, 나 그 경매에 나왔던 귀걸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애초에 그가 먼저 귀걸이를 주겠다고 해서 무척 기대했지만 결국 그 귀걸이는 송유라에게 돌아갔다.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원래 그녀에게 주기로 약속된 것도 송유라의 손짓 한 번이면 주저 없이 그녀에게 가져다 바칠 거니까.구승훈은 숨이 턱 막히며 한참이 지난 후에야 물었다.“왜 그때 말 안 했어?”강하리는 씁쓸한 눈빛으로 웃었다.“내가 말해도 소용 있었을까요? 구승훈 씨, 그거 알아요? 그때는 내가 꼭 광대가 된 것 같았어요.”강하리는 이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다시 언급해 봤자 무의미했으니까.하지만 마음속으로 참아왔던 울분이 터졌다.왜 자신만 계속 억울하게 참고 있어야 하나.구승훈은 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미안해, 난 몰랐어. 난 네가 귀걸이 정말 싫어하는 줄 알고...”“난 단지 그 여자한테는 제일 좋은 걸 주면서 나한텐 대충 아무거나 골라주려는 당신 태도가 싫었던 것뿐이야.”강하리가 말하며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구승훈의 심장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하리야, 앞으로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너한테 줄게.”하지만 강하리는 곧바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런 건 진작에 필요 없었다.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이미 잃어버렸으니까.지금은 그저 아이만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비행기가 연성에 착륙하고 강하리는 간병인 아줌마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그녀가 통화를 마치자 곧장 차에 태웠다.“구승훈 씨, 당신...”“저번에 묘지로 불렀을 때 물어보고 싶었던 게 뭐였어? 아주머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