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시, 강하리는 탑승 전 마지막 준비를 마쳤지만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그녀는 터미널에 서서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이 작은 배를 쓰다듬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미안해, 엄마는 너에게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주지 못할지도 몰라.”그녀는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하고 아껴서 아빠의 사랑까지 대신 채워줄 거야, 알았지?”주해찬은 옆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가 멍하니 배를 만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구승훈이 또다시 그녀를 아프게 하면 자신이 꼭 데려가겠다고 다짐했었다.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상처받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그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져와 강하리에게 건넸다.“비가 한동안 그치지 않을 것 같으니 휴게실 가서 좀 쉬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천둥 번개가 하늘을 강타했다.그런데 이렇듯 궂은 날씨에도 공항 반대편에는 전용기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구승훈은 비행기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바람 때문에 동체가 심하게 흔들려 승무원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구승훈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대표님, 착륙이 잘 안될지도 몰라요. 날씨가 안 좋아요.”구승훈은 시선을 들어 깊고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원들은 식은땀을 흘렸다.“즉시 착륙 준비를 하겠습니다.”승무원들은 말을 마친 후 심호흡을 하고 착륙 준비를 하러 갔다.밖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강하리는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린 채 터미널에 앉아있었다.웬일인지 자꾸만 마음이 불안했다.“왜? 몸이 안 좋아?”주해찬이 옆에서 묻자 강하리는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아니요...”그녀가 말하자마자 옆에서 비명이 들렸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밖에 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졌대.”“세상에, 이런 날씨에 착륙하다니 기장 미친 거야?”“다친 사람은 없는지 궁금하네.”“없길
구승훈의 몸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느껴지며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옆에서 주해찬이 다가와서 주먹으로 구승훈의 얼굴을 내리쳤다.주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구승훈은 주먹을 맞고도 그대로 벌떡 일어나 웃었다.“왜, 내 아내를 납치하려다가 안 되니까 화난 거야?”주해찬은 불같은 눈빛으로 구승훈을 노려보았다.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경우가 드문데 오늘은 참을 수 없었다.“구승훈, 잘해주고 지켜준다던 게 이런 거였어?”구승훈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하리야, 우리 둘이 따로 얘기하자.”강하리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남자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녀가 떠나도 계속 귀찮게 굴 것이다.구승훈은 그녀가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VIP실로 그녀를 끌어당겼다.주해찬이 따라가려 했지만 강하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다.VIP실 문이 닫히자 순식간에 외부의 시선이 차단됐다.“하고 싶은 말 빨리 해요.”“너 안 보내.” 구승훈은 그녀에게 심플한 한마디만을 건넸고 강하리는 비웃었다.“구승훈 씨,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요? 우린 이미 헤어졌잖아요!”“헤어지기로 한 적도 없고 더군다나 난 아직 네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잖아!”구승훈의 눈빛이 복잡했다.“하리야, 난 이미 정말로 송유라와 선 그었어.” 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다.선을 그었다고?왜 그 말이 믿기지 않을까.송유라가 살아 있는 한 그 선은 절대 그어지지 않을 텐데.“구승훈 씨, 수없이 했던 그 말을 내가 아직도 믿을 것 같아요?”그녀는 시선을 내린 채 그를 떼어냈다.“게다가 우리 사이에는 송유라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그가 다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하리야, 정말 우리 애가 사생아가 되길 바라는 거야? 넌... 불완전한 가정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구승훈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가득했다.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렸다.“무슨 상황인데요, 왜 갑자기 연기된 거예요?”주해찬은 고개를 저었다.“자세한 건 부서로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강하리는 구승훈을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갔고 구승훈도 말리지 않고 바로 뒤따라 나갔다.주해찬은 그를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 사람이 대기실 밖으로 나왔을 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강하리는 곧장 주해찬의 차로 향했고 구승훈은 뻔뻔하게도 그 뒤를 바짝 쫓았다.주해찬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결국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구승훈만큼 뻔뻔한 사람은 정말 본 적이 없었다.강하리가 이미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여전히 귀찮게 매달리고 있었다.주해찬은 아마도 이것이 자신과 구승훈의 차이점일 거라고 생각했다.외교부에 도착하니 진태형이 기다리고 있었고 약간 어두워진 얼굴이 강하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진 장관님, 무슨 일 있으세요?”진태형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강하리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넸다.강하리는 편지를 받아 살펴본 뒤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내부 고발 편지인데 자신이 누군가의 스폰을 받았다는 것이다.주해찬의 얼굴도 어두워졌다.“이미 이 문제에 대해 부서에서 회의했고 감찰위원회 사람들도 왔어. 구승훈이 둘 사이를 밝히는 걸 녹음까지 했는데 그래도 해외 파견에 영향이 생겨서 좀 미뤄질 것 같아.”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이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요?”진태형이 한숨을 쉬었다.“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어. 구 대표가 한 걸 녹음해 둬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이번에 당장 외교부를 떠나야 할지도 몰라. 지금은 불안해하지 마, 일 해결하고 내가 최대한 힘 써볼게,”강하리는 짜증을 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네, 알겠어요. 진 장관님 감사해요.”밖으로 나와서 구승훈은 차에서 내린 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병원에 가서 강하리 임신 검사 기록을 모두 과로로 병명을 바꾸고 임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삭제해.”그가
강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지만 구승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두 마디만 할게. 병원에 임신 검사 기록을 지워달라고 부탁해 놓았어.”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고마워요.”원래 손연지가 해주길 바랐던 일이지만 구승훈이 먼저 생각할 줄이야.“하리야, 내가 당연히 할 일이야.” 구승훈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고 강하리는 웃었다.“구승훈 당신이 송유라한테 간 순간부터 내가 돌아보지 않을 거란 걸 알았어야지!”“하리야, 난 그냥...”강하리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가서 인연 끊으려고 했다는 말은 하지 마요. 당신은 평생 모르겠지. 정말 내버려둘 생각이었으면 그 여자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 구승훈 씨, 당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송유라는 여전히 당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구승훈은 강하리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한동안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나는 걔한테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야.”“그럼 그 마음 갖고 가세요.”말을 마친 강하리는 그를 밀어냈다.도저히 마음속으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말을 못 할까.대체 그의 마음속에 어떤 존재이기에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했던 그가 또다시 송유라를 찾아간 걸까구승훈의 비밀 애인일 땐 뭐라 해도 참을 수 있었지만 정식으로 사귀고 결혼까지 전제로 한 이상 자기 남자가 한눈파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구승훈은 다시 문을 두드리지 않고 프런트로 가서 강하리 옆에 있는 방을 달라고 했다.그러고는 소파 앞 카펫에 앉아 밤새도록 담배를 피웠다.새벽이 되자 심준호에게 전화를 걸어 프런트로 가서 강하리 방의 방 카드를 달라고 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지 않았다.구승훈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가슴 아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병원으로 달려가 영안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봤을 때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눈과 코는 빨갛고 슬픔이 가득했지만 미련은
강하리는 반지를 그에게 그대로 던지고는 뒤돌아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구승훈은 서둘러 반지를 잡았고 손에 놓인 반지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서둘러 뒤를 따랐다.“반지가 싫다면 됐어. 뭐 좋아해? 내가 다 줄게, 응?”강하리의 발걸음이 주춤하더니 피식 웃었다.“구승훈 씨, 나 그 경매에 나왔던 귀걸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애초에 그가 먼저 귀걸이를 주겠다고 해서 무척 기대했지만 결국 그 귀걸이는 송유라에게 돌아갔다.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원래 그녀에게 주기로 약속된 것도 송유라의 손짓 한 번이면 주저 없이 그녀에게 가져다 바칠 거니까.구승훈은 숨이 턱 막히며 한참이 지난 후에야 물었다.“왜 그때 말 안 했어?”강하리는 씁쓸한 눈빛으로 웃었다.“내가 말해도 소용 있었을까요? 구승훈 씨, 그거 알아요? 그때는 내가 꼭 광대가 된 것 같았어요.”강하리는 이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다시 언급해 봤자 무의미했으니까.하지만 마음속으로 참아왔던 울분이 터졌다.왜 자신만 계속 억울하게 참고 있어야 하나.구승훈은 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미안해, 난 몰랐어. 난 네가 귀걸이 정말 싫어하는 줄 알고...”“난 단지 그 여자한테는 제일 좋은 걸 주면서 나한텐 대충 아무거나 골라주려는 당신 태도가 싫었던 것뿐이야.”강하리가 말하며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구승훈의 심장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하리야, 앞으로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너한테 줄게.”하지만 강하리는 곧바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런 건 진작에 필요 없었다.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이미 잃어버렸으니까.지금은 그저 아이만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비행기가 연성에 착륙하고 강하리는 간병인 아줌마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그녀가 통화를 마치자 곧장 차에 태웠다.“구승훈 씨, 당신...”“저번에 묘지로 불렀을 때 물어보고 싶었던 게 뭐였어? 아주머니한
“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어.”강하리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가다듬었다.“구승훈, 송유라한테 갔을 때도 당신은 내가 한 말을 잊은 게 아니야. 다만 원하는 대로 선택한 것뿐이지.”“하리야, 다 알면서 왜 그래. 내가...”“난 몰라. 내가 아는 건 내가 필요할 때 당신이 송유라에게 갔다는 것뿐이야. 구승훈, 그때 엄마가 그렇게 됐을 때 내가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알아? 얼마나 당신이 곁에 있어 주길 바랐는지 알아? 근데 당신은 없었어. 당신은 두 번이나 그렇게 날 버렸어. 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구승훈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저릿한 통증이 밀려왔다.“미안해,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하리야, 약속할게.”그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맞춤하며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하리야, 나한테 속죄할 기회를 줘, 응? 난 너를 지키고 우리 아이도 돌보고 둘에게 온전한 집을 주고 싶어.”강하리의 가슴이 아플 정도로 답답해 났다.집이라...간절히 원했지만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던 그녀는 곧바로 그를 밀어붙였다.“모든 잘못에 속죄할 기회가 주어지진 않아.”구승훈의 심장이 철렁하며 곧 그의 시선이 그녀의 작은 배로 향했다.“하리야, 그냥 우리 아이에게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그의 큰 손이 그녀의 배에 내려앉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 모습이 정말 아이의 탄생을 고대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강하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 남자는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그가 정말 송유라와 선을 그으려고 노력하는 걸지도 모른다.하지만 그 경계는 너무나도 약하고 허무했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 그의 손을 밀어냈다.그런데 그 순간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았다.“하리야, 이제부터 내가 너와 아이를 지켜줄게.”강하리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하지만 그녀의 눈가는 살짝 붉어져 있었다.간병인 아주머니는 강하리의 모습에
가방 안에는 간병인 아줌마가 말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열쇠와 책, 그리고 상자.강하리는 열쇠를 집어 들었을 때 다소 놀란 눈빛이었다. 은행 금고 열쇠라니.그리고 그 책은 정서원의 일기장이었다.그 상자는... 강하리는 상자를 열어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놀랍게도 깨진 분홍색 크리스털 목걸이였는데 애초에 강찬수에 의해 산산조각 났던 목걸이를 정서원이 어떻게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조립해 놓은 것이다.강하리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정서원이 조용히 이런 일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녀가 갑자기 흐느끼자 구승훈은 약간 당황한 듯 그녀를 품에 안았다.“왜 그래, 아주머니가 너한테 뭐 남겼어?”하지만 강하리는 그냥 그렇게 울기만 했다.강하리는 한참을 울고 나서야 서서히 진정했고 구승훈은 그녀를 안은 채 마음이 아파 큰 손으로 강하리를 토닥거렸다.강하리는 눈물을 닦으며 구승훈에게 말했다.“고마워요.”구승훈은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옷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됐는데 그냥 고맙다는 말로 때우려고?”강하리는 그를 밀어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구승훈의 시선이 상자로 향했고 상자 안에 금이 간 목걸이를 본 순간 머리끝까지 서늘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핸들을 잡은 손의 핏줄마저 튀어나왔다.목걸이는 완벽하게 조립된 것이 아니었고 온통 금이 간 데다가 가장자리와 모서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하지만 그는 강하리의 목걸이와 송유라의 목걸이가 똑같다고 확신했다.“이거 아주머니가 준 거야?”강하리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그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냐고.하지만 입가에 차오른 말을 그녀는 다시 삼켰다.이미 두 사람이 이렇게 된 마당에 기억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강하리가 나지막이 말했다.“나 다시 데려다줘요.”구승훈은 다소 무심하게 물었다.“뭐 먹고 싶어, 일단 뭐 좀 먹고 돌아갈까?”강하리는 물건을 넣은 뒤 밖을 내다보다가 대꾸했다.“아뇨, 입맛이 없어요.”구승훈은
그리고 같은 시각, 다른 쪽에서 문연진은 강하리가 떠나지 않고 구승훈까지 찾아왔다는 소식에 집에서 또 한 번 성질을 부렸고 문원진은 눈살을 찌푸렸다.“됐어, 투정을 부려서 뭐 해?”문연진은 화가 났다.그녀는 이번엔 정말 둘이 헤어질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이 있고 난 뒤에도 둘은 여전히 붙어 있을 줄이야.“저 강하리는 왜 어딜 가나 있어! 저 여자가 있는 한 승훈 오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문원진이 콧방귀를 뀌었다.“뭘 서둘러? 강하리는 조만간 누가 처리할 거야. 송유라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송씨 가문에서 전부 걔한테 뒤집어씌웠어. 구씨 집안에서도 저런 식으로 계속 구승훈 곁에 있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야.”문연진은 얼굴을 찡그렸다.“할아버지, 송유라 일 할아버지가 그랬어요?”문원진이 콧방귀를 뀌었다.“쓰레기 같은 것 남겨둬서 뭐 하겠어. 쓸모가 있으면 써먹어야지.”문연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송씨 가문은 하나같이 다 쓰레기인데 쓸모가 있을까요?”문원진이 웃었다.“증오의 힘은 무시할 수 없지.”...강하리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구승훈이 얼굴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식탁에 앉았고 정신을 차린 구승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뭐 먹고 싶어?”강하리는 그의 손을 피했다.“아무거나.”애초에 식욕이 별로 없었고 방금 장진영까지 보고 온 탓에 더더욱 입맛이 없었다.구승훈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더 묻는 대신 평소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 몇 가지를 주문했다.밥을 다 먹고 나서야 그가 물었다.“이따가 아파트로 돌아갈 거야?”“연지네 집으로 가.”강하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고 구승훈은 그저 웃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또 위가 아파?”강하리는 시선을 내렸다.“괜찮아.”이번 임신은 지난번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아주머니한테 손연지 씨 집으로 가서 밥해주라고 할까?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