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도망치듯 차에서 뛰어내렸다.구승훈은 당황한 그녀의 뒷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휴대폰을 들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내 생각 꼭 해. 며칠 뒤에 시간 나면 보러 갈게.]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구승훈은 화면에 뜬 세 글자를 바라보다가 어두운 눈빛으로 마침내 전화를 받았다.통화가 연결되자 저쪽에서 노인의 성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이 개자식아! 내가 화가 나서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구승훈은 대답 대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몸 안의 욕망을 진정시켰다.저쪽에서 구동근은 여전히 소리치고 있었다.“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친동생을 몇 번이고 배신해? 구승훈, 잘하는 짓이다!”구승훈이 피식 웃었다.“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네요. 걔가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싸고도는데 제가 어떻게 건드려요.”“구승훈, 모르는 척하지 말고 당장 이리로 와!”구승훈은 대답 대신 바로 전화를 끊었고 한편에서 구동근은 피를 토할 지경으로 화가 났다.구승현은 상처투성이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고 구씨 가문 둘째 내외도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어르신은 전화를 끊고 화를 내며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구승현을 바라보며 속으로 저주를 퍼붓지 않을 수 없었다. 쓰레기 같은 놈!구승현을 이용해 구승훈을 협박하려 했는데 그 정도 유혹도 못 견디다니.하지만 그렇다고 구승훈을 내버려둘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이 죽기 전에는 절대 그 여자를 절대 집안으로 들이지 않을 거다.강하리는 터미널에 들어선 뒤에야 구승훈이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그녀는 휴대폰을 쥐고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알았어요.]구승훈은 휴대폰으로 돌아온 메시지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결국 전화를 걸었다.강하리가 B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박근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하리야, 마중 나갈 사람을 보냈어. 오늘 밤에 일이 좀 생겨서 네가 잠시 외교부로 와줘야 할 것 같다.”강하리는
강하리가 입술을 달싹였다.“알겠어요.”박근형이 이 일은 분명히 잘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강하리는 왠지 마음속으로 답답한 억울함이 밀려왔다.박근형의 말처럼 정당한 경쟁을 두려워한 적이 없지만 이런 비열한 수작은 역겨웠다.구승훈은 아마도 그녀가 비행기에서 내린 것을 알았는지 바로 전화를 걸었고 강하리는 맥없이 전화를 받았다.구승훈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녀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무슨 일이야?”강하리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바로 이야기를 꺼냈고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오히려 구승훈을 다독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정정당당하게 싸워도 난 무서울 게 없어요.”구승훈의 얼굴은 어두워졌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살짝 묻어났다.“그래, 알겠어. 우리 강 대표님 실력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지.”강하리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고 웃고 나니 다시 억울함이 밀려왔다.“어떻게 그런 소문을 낼 수 있죠?”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네가 지금 가진 걸 탐내는 거지. 정작 본인은 가질 수 없으니까 흠집 내려는 거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가지 더 알 수 있지.”강하리가 물었다. “뭐요?”구승훈이 웃었다.“네가 뛰어나다는 거.”피식 웃던 강하리는 구승훈이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웃으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교부 앞에 멈췄다.“외교부 도착했어요, 먼저 끊을게요.”구승훈이 답했다.“걱정 말고 해. 잘 해결될 거야.”강하리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요.”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그는 구승재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전용기 좀 준비해 줘, B시로 가야겠어.”구승재는 순간 당황했다.“형, 내일 아침 일찍 SH그룹 이사회가 있는데 오늘 밤에 B시로 간다고?”구승훈이 짧게 답했다.“할 일만 끝나면 바로 돌아올 거야.”구승재와의 전화를 끊은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진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진태형은 전
강하리는 문연진을 보는 순간 이 모든 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문연진이 구씨 가문을 떠나면서 이미 포기한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승훈 오빠라고 부르며 일부러 약선 요리까지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나.“오늘 밤 네 경쟁 상대는 문연진이야.”박근형은 강하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다가와 귓속말로 중얼거렸다.“문연진은 언어에 재능이 있고 이번 미션이 고대 유물과 관련된 건데 문씨 가문 어르신이 이 분야의 전문가라서 문연진이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이 분야에서는 너보다 조금 유리할지도 몰라.”그래도 아끼는 제자가 남에게 이용당하는 건 원치 않았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특별히 준비도 많이 하고 정보도 많이 찾아봤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박근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강하리의 실력을 믿었다.하지만... 그는 슬쩍 저쪽에 있는 심사위원 테이블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이 대회는 공정하고 공평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문연진이 이쪽으로 걸어왔다.“강하리 씨, 우리 또 만나네요.”강하리는 싱긋 웃으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문연진 씨, 반가워요.”박근형은 옆에서 살짝 의아한 모습이었다.“둘이 아는 사이야?”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문연진이 먼저 대답을 꺼냈다.“몇 번 만난 적 있어요.”박근형의 눈빛이 번뜩였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강하리를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강하리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교수님, 제 걱정은 마세요, 괜찮아요.”박근형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와 문연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난 가서 준비하고 있을게.”박근형이 나가자 문연진은 강하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강하리 씨, 오늘은 승훈 오빠가 그쪽 편 안 들겠죠?”말을 하며 그녀는 또다시 웃었다.“남자에게 빌붙기만 하는 여자는 노리개와 다름없다는 말을
박근형은 오늘 강하리가 지더라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심사위원석에 앉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복잡했다.강하리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터라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몇 명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모두 가운데 앉아 있는 문씨 가문 어르신, 문원진을 바라봤다.이때 문원진의 얼굴엔 다소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그가 오늘 굳이 문연진에게 이 대결을 하라고 했던 건 문연진이 강하리보다 열등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하여 많은 인맥을 동원해 이 상황을 만들었고 심사위원들에게도 미리 언질을 해 둔 뒤였다.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연진은 강하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강하리라는 여자가 이기면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착한 손녀도 사람들에게 큰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는 손녀의 몫이 되어야만 했다.사실 대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속으로 이미 답이 나왔지만 최종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연진이 이기게 되었다.“강하리 씨도 잘했지만, 우리가 봤을 때 강하리 씨는 통역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협상하는 걸로 보였어요. 통역사는 통역사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문연진 씨가 통역에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심사위원들의 결론이 나오자 회의실 전체가 술렁였다.강하리는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 채 방음실 입구에 서 있었다.처음으로 너무 잘해도 탈락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문연진은 옆 방음실 문 앞에서 강하리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강하리 씨, 오늘 결과에 만족하시나요?”강하리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웃었다.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연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문연진 씨가 떳떳하게 이겼다고 생각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네요.”문연진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조금 옅어지더
“속상해?”남자의 눈에는 아픔이 묻어났다.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눈꼬리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곳에 맺힌 물기를 살짝 문질렀다.강하리는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구승훈은 웃으며 말했다.“B시로 출장 왔어.”강하리는 눈가에 번지는 서글픔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억울한 건 괜찮다고 쳐요. 근데 내키지는 않아요. 내가 분명 더 잘했는데.”“맞아, 네가 백만 배는 더 잘했지.” 구승훈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줄까, 어때?”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며 한참 후 웃음을 터뜨렸다.“외교부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게 좋아요. 됐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구승훈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내가 참견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능하지.”그렇게 말한 뒤 그는 강하리에게 옆을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그제야 강하리는 자신의 옆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교부의 중요한 임원들이었다.진태형을 비롯해 백아영과 심준호까지 왔다.심준호 옆에는 징계 위원회 직원들도 있었다.강하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다가 구승훈을 돌아보았다.구승훈이 웃었다.“모두 옆 회의실에서 너와 문연진의 대결을 지켜봤어. 누가 이기고 졌는지도 똑똑히 봤지. 진 장관님이 사적으로 해결했는지, 문씨 가문이 부당하게 힘을 썼는지 다 알고 있어. 신고한 사람도 찾았고 이미 징계 위원회로 가서 모함한 거라고 자백했어. 너와 진 장관님은 이제 결백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오늘 밤에 제대로 정의 구현할 수 있으니까.”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끝이 시큰해졌다.원래는 별로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돌려 진태형을 바라보았다.“삼촌, 남은 일엔 더 간섭하지 않을게요.”진태형은
그렇게 말한 후 그는 방금 결과를 발표한 직원을 차갑고 엄숙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훌륭한 통역사는 통역사다운 모습을 보여라, 누가 보면 네가 협상하러 올라간 줄 알겠다. 자, 그럼 그쪽이 올라와서 어떻게 통역해야 하는지 말해 보시죠?”방금 결과를 발표하던 심사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고 진태형은 말을 이어갔다.“여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잊어버리고 특혜를 받았는지, 징계 위원회 분들이 전부 똑똑히 밝혀낼 겁니다, 오늘 이 대결의 결과에 대해서는...”진태형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연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진 장관님, 제 실력이 강하리 씨보다 훨씬 부족하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러니 오늘 밤 이 기회는 제가 양보하겠습니다.”문연진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당황했다.아무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정의 구현을 하려던 상황이 문연진의 말 때문에 마치 진태형이 외교부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그들에게 기회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졌고 구승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네 거야, 네가 양보하게?”당황한 문연진의 얼굴이 서서히 하얗게 질렸다.구승훈의 어투에는 여전히 조롱이 가득했다.“애초에 이 기회는 네가 훔친 거니까 이제 돌려준다고 하는 게 맞지, 문연진 씨, 이 정도 도리도 모르나?”문연진의 얼굴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려 있다가 한참 후 싱긋 웃으며 말했다.“승훈 오빠, 오해에요. 이 기회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거고 제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양보하는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됐어요?”심준호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공정한 경쟁이라니요, 조금 전 대결은 우리 모두가 지켜봤어요. 문연진 씨는 이런 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합니까? 공정한 경쟁이 무슨 뜻인지 제가 설명해 드릴까요?”문연진은 다소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심준호에게 밉보일 수 없었기에 도움을 청하듯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문원진이 손녀를 위해 나서려는데 진태형이 먼저
강하리가 뒤돌아보니 주해찬이 문 앞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못본 사이 살이 많이 빠졌지만 그의 모습은 더 활기차 보였다.주해찬은 진태형과 함께 와서 강하리에게 인사하러 가고 싶었지만 구승훈이 강하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이제 막 떠나려는 그녀를 보며 도저히 참지 못한 그가 불러세운 것이었다.강하리의 눈에 미소가 담겼다.“선배, 오랜만이네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렇게 말한 뒤 강하리 옆에 서 있는 구승훈을 힐끗 쳐다보던 그의 가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동안 연성에 가본 적이 없고 특별히 연성에 대해 들은 것도 없었지만 구승훈과 강하리가 화해할 때가 가까워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정주현이 매일 같이 그에게 푸념을 널어놓았으니까.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그럭저럭요, 선배는요?”주해찬은 눈가의 씁쓸함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냥 그래.”강하리가 다른 말을 하려던 찰나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았다.“주해찬 씨 요즘 맞선 본다면서요? 어때요, 잘 되어가나요?”주해찬이 싱긋 웃었다.“제가 듣기로 구승훈 씨도 맞선을 본다던데요.”구승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주해찬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하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고 그녀는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좀 받을게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가 옆으로 걸어가자 구승훈의 시선은 그녀를 쫓았고 주해찬은 그런 그의 표정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구승훈 씨, 그렇게 매달리면서 손 놓지 않겠다면 앞으로 잘해주세요. 잘해주지 않으면 내가 또 데려갑니다.”구승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며 주해찬을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주해찬 씨, 당신이 무슨 자격이 있는데?”주해찬의 눈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난 자격 없죠. 하지만 구승훈 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구승훈 씨, 정말 하리를 사랑해요, 아니면 그저 당신 소유욕 때문인가요?”구승훈의 표정이 굳어졌다.“주해찬 씨,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주해찬은 그를 바라보았다.
“주해찬 씨, 시간도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주해찬은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야, 애초에 너를 힘들게 한 건 우리 가족이었으니까 이별을 선택한 너를 탓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너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고 강하리는 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선배 말이 사실이에요?”구승훈은 자신의 잘못이 맞았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하리야...” 강하리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런 건 확실히 구승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구승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화났어?”“아니요.” 대답을 마친 강하리가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가자 구승훈은 서둘러 따라가 그녀를 안고 차에 태웠다.차에 탄 그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해. 화 풀어, 응?”강하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때론 자신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난감한 상황에 밀어 넣기도 하고, 오늘처럼 여기까지 달려와서 그녀를 도와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가끔은 그가 정말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손에 얻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차 안엔 끔찍한 적막이 감돌았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구승훈 씨, 그 일 말고 또 나한테 수작 부린 거 있어요?”구승훈의 목울대가 일렁거렸다.많았다.“일부러 다쳤어. 전에 팔 다쳤을 때 피할 수 있었고, 할아버지가 때렸을 때도 피할 수 있었어... 교통사고도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을 수 있었어.” 강하리는 멍하니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이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남자는 독하게 자신이 다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강하리는 답답함이 밀려왔다.“구승훈 씨, 자기 몸으로 장난하는 게 재밌어요?”구승훈은 그녀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하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식사한 것뿐이야. 임 선생에게 분명히 말했어. 앞으로는 다시는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강하리는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지 않고 손가락으로 잔을 살짝 쓸며 말했다.“그게 당신이 말하는 임희주 씨를 처리하는 방법인가?”구승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자기야, 좀 더 시간을 줘.”“얼마나 더? 구승훈, 이제 3일 뒤면 우리 결혼식이야.”“3일 안에 처리할게. 응?”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강하리는 눈을 내리깔고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구승훈과 노민우 회사 인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마치 임희주 일을 잊은 것처럼.하지만 구승훈은 강하리가 속으로는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저녁 식사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집으로 돌아온 구승훈은 바로 서재로 들어갔고 강하리는 연정이를 안고 침실로 돌아갔다.구승훈이 서재에서 나왔을 때, 강하리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구승훈은 한숨을 쉬며 준봉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희주 씨를 다른 데로 보내. 앞으로 보경시에 나타나지 못하게 해.]잠시 후, 준봉의 답장이 왔다.[대표님, 임 선생의 진료소가 폐쇄되었습니다. 불법 진료 행위로 신고가 들어왔고 의사 면허증도 압수당했다고 합니다.]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의 강 대표님은 정말이지 말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됐어. 신경 쓰지 마.]그가 임희주에게 직접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여초연이 눈치채고 임희주를 포기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강하리가 직접 나서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구승훈은 휴대전화를 넣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워 강하리를 끌어안았다.다음 날, 강하리는 다시 바쁜 하루를 보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아 처리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특히 노민우 회사 인수 건이 중요했는데 강하리는 처음으로 인수합병을 진
강하리가 심씨 가문에 도착하자 심문석은 응접실에 앉아 오랜 벗과 바둑을 두고 계셨다.심문석은 강하리를 보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하리야, 이리 와 봐.”“할아버지!”강하리는 웃으며 심문석 옆으로 다가갔다.“장씨,봤지? 이 아이가 내 증손녀야. 어때? 예쁘지?”심문석은 강하리를 옆자리에 앉히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마주 앉은 장씨 할아버지는 강하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정말 예쁘구나. 구씨 가문 그 녀석은 어쩜 이렇게 복이 많아?”그 말에 심문석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강하리가 두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심준호가 밖에서 들어왔다.“서재로 와.”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심준호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혹시 임 선생 문제에요?”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문제가 좀 있긴 한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 혹시 임희주와 구승훈의 관계를 의심하는 거야?”강하리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삼촌. 전 그냥 구승훈이 걱정돼서.”심준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사한 자료를 강하리에게 건넸다.강하리는 천천히 자료를 넘기다가 뒷장의 사진을 보고는 손이 멈추었다.사진은 총 세 장이었다.첫 번째 사진은 임희주와 임명우가 함께 서서 무언가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는데 분명히 두 사람은 아는 사이 같았다.두 번째 사진은 임희주와 구승훈이 식당에 앉아 있는 매우 친밀해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사진 촬영 날짜는 오늘이었다.세 번째 사진은 임희주가 구승훈의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었다.사진을 쥔 강하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심준호는 강하리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임희주의 출신은 좀 의심스럽지만 구승훈의 심리 상담사니까 두 사람이 만나는 건 어쩔 수 없어. 두 장의 사진 때문에 화내지 말고 구승훈에게 직접 물어봐. 구승훈이 합리적인 설명을 해 줄 거야.”심준호가 자신 때문에 강하리와 구승훈와 싸우는 것을 걱정했다.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삼촌,
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안예서는 그녀를 따라갔고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강하리는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원래 하얀 피부였던 그녀의 손은 쉴 새 없이 씻겨졌다.안예서가 그녀를 위로하려는 순간, 강하리는 갑자기 수도꼭지를 잠그더니 표정이 평소처럼 돌아왔다.“괜찮아. 회의가 곧 시작될 것 같으니 준비하도록 해.”하지만 안예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정말 괜찮아요? 구 대표님께 전화를 드려볼까요?”강하리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괜찮아.”안예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강하리는 세면대 앞에 서서 천천히 휴지로 손을 닦으며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만약 임명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구승훈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구승훈의 신중함을 생각해 볼 때, 아무런 조사 없이 그 약을 사용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만약 조사를 했다면, 왜 그 약을 계속 사용했을까?강하리는 침묵 속에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삼촌, 사람 한 명 조사 좀 해줘요.”이후 회의에서 강하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고 침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임명우는 평소에 자주 보이던 웃는 표정을 거두고 진지하게 회의에 임했다.협상은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회의가 끝나고 강하리는 무표정하게 짐을 챙겼다.임명우는 깔끔한 옷차림으로 회사 파트너들을 배웅한 후, 강하리 앞으로 다가왔다.“같이 식사하면서 출장 이야기 좀 나눌까요?”강하리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출장은 일주일 전에 통보해야죠, 그러니 이번에는 못 가요.”임명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말했다.“알았어요. 출장은 못 가도 그 일은 강 대표님께서 신중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강하리는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가 바로 다시 걸어갔다.회사로 돌아온 강하리는 바로 임원들을 소집하여 노민우의 회사 인수 계획을 세
문을 잠그는 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에 울려 퍼지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임명우를 바라보고는 잠겨진 문손잡이에 시선을 고정했다.“임 대표님, 무슨 뜻이세요?”임명우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강 대표님,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오늘 회의 내용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요.”“그렇다고 문을 잠글 필요까지 있나요?”강하리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문을 잠그는 행동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그녀는 임명우와의 협력을 계속 거부해 왔는데 임명우의 의도적인 접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그런 의도적인 접근은 마치 예전의 정양철처럼 대개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는 임명우에게 항상 거부감을 느껴왔다.하지만 지금까지 임명우는 특별히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처럼 문을 잠근 것은 처음이었다.강하리는 임명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임명우는 웃으며 어딘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저는 강 대표님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없나요?”강하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임명우를 바라보았다.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임 대표님,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우리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그렇죠?”임명우는 또 한 번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강하리의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보며 그는 어색한 미소를 거두었다.“제가 꼼수를 써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요? 강 대표님, 왜 저를 그렇게 싫어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어요. 임 대표님, 본론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강하리는 말을 마치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그녀가 문에 도착하기 전에, 임명우가 그녀를 가로막았다.“임명우 씨!”강하리는 임명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대체 무슨 짓이에요?”“강하리 씨, 저와 거래를 하죠. 강하리 씨가 저를 다정하게 대해주면 제가 그 심리 상담사를 구승훈 옆에서 떼어내
강하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노민우 씨는 해야 할 일 해요. 손연지와 얘기 좀 할게요.”노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연지를 돌아보았다.“어제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손연지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내 몸에 있는 이 흔적들은 내가 스스로 만든 거야?”“그냥 키스만 했어.”“아까는 아무것도 안 했다더니, 이제는 키스만 했다고?”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강하리는 재빨리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병원 정원에서.강하리는 손연지의 화난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아직도 웃겨? 너 누구 편이야?”강하리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화내지 마. 노민우는 사실 괜찮은 사람이야.”손연지가 말하려던 순간, 강하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내 말 좀 들어봐.”강하리는 어제 노민우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손연지에게 대략적으로 전했다.손연지는 강하리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미쳤어?”강하리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번졌다.“미쳤는지는 그 사람이 더 잘 알겠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지?”강하리는 손연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하지만 노민우 씨가 여씨 가문과 완전히 관계를 끊기 전까지는 더 깊은 관계는 맺지 마.”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후, 그녀가 강하리를 돌아보며 물었다.“왜 병원에 왔어? 혹시 아픈 거야?”“일이 좀 있어서.”손연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두 사람은 정원에 앉아 있다가 각자의 일을 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강하리는 약병을 약리 연구소에 가져다주고 인성 테크로 향했다.안예서는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강하리를 보자마자 달려왔다.“대표님, 방금 회의 일정이 추가되었어요. 오후에 출장을 가야 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강하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안예서를 돌아보았다.“언제 통보받았어?”“방금이요.”강하리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안예서는 불안해졌다.안예서는 강하리가 원래 임명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 이렇게 온 것도 계약 때
구승훈은 자연스럽게 강하리 앞으로 다가갔다.그녀 손에 들린 작은 병을 빼앗아 들고 우유 컵을 그녀에게 건넸다.“노민준이 준 약이야. 손 찔리겠다.”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시선을 구승훈의 얼굴에 고정한 채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하지만 구승훈이 너무 잘 감추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의 얼굴에서 어떠한 이상한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괜찮다고 하지 않았어?”“응, 괜찮아.”구승훈은 대답하며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의자에 앉혔다.“노민준이 신경 써서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고 했어. 걱정하지 마, 괜찮아. 나중에 연성시에 돌아가서 심리 치료도 함께 받으면 금방 나을 거야.”강하리는 구승훈이 다시 쓰레기통에 버린 앰플 병을 내려다보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구승훈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같이 야근할까?”“괜찮아. 가서 쉬어.”그러고는 일어나서 프린터 옆에 있는 자료를 가져왔다.구승훈은 떠날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했고 강하리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을 계속했다.구승훈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임희주의 계획을 노민준에게 이메일로 보냈다.서재의 고요함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고 강하리가 일을 계속하고 있자 구승훈은 그녀의 손에서 자료를 빼앗았다.“자.”그러고는 강제로 강하리를 끌어안고 침실로 향했다.두 사람은 밤새도록 아무 말도 없었다. 그 앰플 병에 대한 일은 잊힌 듯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바빴다.구승재는 미국에서 돌아왔고 구승훈은 오늘 회사에 가서 그를 만나야 했다.“회사에 데려다줄까?”구승훈은 강하리의 허리를 잡으며 물었고 강하리는 생각할 틈도 없이 거절했다.“직접 거래처에 갈 거야.”“그럼 내가 거래처까지 데려다줄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거절했다.구승훈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집을 나섰다.강하리는 연정이와 조용히 아침 식사를 했다.연정이
강하리는 침실 문을 흘끗 보고는 구승훈을 무시했다.하지만 곧 밖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강하리가 ‘꺼져!’라고 말하려던 순간, 가정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술 드셨으니, 숙취 해소에 좋은 차를 끓여 드리라고 하셨습니다.”“구승훈은 지금 옆에 있어요?”가정부는 옆에 서 있는 구승훈을 힐끗 보며 대답했다.“아니요, 대표님은 방금 준봉 씨와 함께 서재로 가셨습니다.”가정부가 말을 마치자 강하리는 바로 문을 열었다.그러자 문 앞에는 숙취 해소차를 들고 있는 구승훈과 그의 뒤에 서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정부가 있었다.“이제 가서 쉬세요.”구승훈은 가정부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러고는 숙취 해소차를 들고 침실로 들어왔다.강하리가 말할 틈도 없이 그는 숙취 해소차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강하리에게 입을 맞췄다.강하리는 구승훈에게 숙취 해소차를 넘겨받았지만 삼키기도 전에 구승훈은 다시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가 숨이 가쁠 때까지 구승훈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숙취 해소차는 누가 더 많이 마셨는지 알 수 없었다.“맛있어?”구승훈은 강하리의 입술을 핥으며 아쉬운 듯 물었다.강하리는 그를 밀어내며 침실 안쪽으로 걸어갔다.“나가서 자.”구승훈은 숙취 해소차를 옆에 내려놓고 강하리의 손을 잡았다.“아직 화났어? 내가 잘못했어. 임희주 씨 문제는 내가 잘 처리할게. 응?”강하리는 그를 무시하고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무릎에 앉히고 따뜻한 숨결을 그녀의 목덜미에 뿌리며 부드럽게 입술을 핥았다.“그럼 내가 잘못을 만회할게.”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오늘 밤, 강 대표님을 편안하게 모실게. 어때?”강하리는 임희주의 끈질긴 집착 때문에 짜증이 났을 뿐이지 진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이 남자의 뻔뻔한 모습을 보니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좀 염치가 있어야지.”“염치가 중요한 게 아니야.”구승훈은 콧방귀를 뀌며 손을 강하리의 잠옷
구승훈은 휴대전화 화면에 뜬 메시지를 보자마자 주저 없이 준봉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재로 와.”준봉은 곧 자료를 들고 서재로 왔다.“말해 봐.”준봉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보고했다.“임희주 씨의 과거는 조작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 조사했던 정보에 따르면 임희주 씨는 남쪽 작은 도시의 보육원 출신이고 여 사모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로 보입니다. 며칠 전에 대표님께서 여 사모님 쪽을 조사해 보라고 하셔서 관련된 사람들을 추적해 봤는데 여씨 가문의 오래된 집사가 몇 년 동안 연성시 외곽의 보육원을 후원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보육원을 조사해 보니 실제로 임희주 씨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었는데 입양한 사람이 그 집사의 고향 친구였답니다.”준봉은 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구승훈의 표정을 살폈다.임희주의 출신을 보면 여초연이 얼마나 치밀하게 사람을 키워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만약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해치기 위해 이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마음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준봉은 구승훈의 표정을 긴장하며 지켜보았지만 구승훈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었다.다만, 그 깊고 짙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대표님, 괜찮으세요?”구승훈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별일 아니야.”준봉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대표님은 사모님과 아가씨가 계시잖아요. 두 분 다 잘 지내고 계시니까요.”구승훈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후 다시 물었다.“아내가 화난 데다가 꼬맹이까지 울려버렸어. 어떻게 달래야 할까?”“네?”준봉은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대표님, 저는 아직 솔로예요.”구승훈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나가 봐.”“그럼 임 선생은 어떻게 할까요?”구승훈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계속 감시해. 조만간 여씨 가문 사모님과 연락할 거야.”준봉은
노민우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에 가득했던 득의만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강하리의 화난 모습을 보니 솔직히 겁이 났다.“저기, 승훈이랑 싸웠어요?”“민우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말해봐요, 무슨 일이에요? 손연지는 어디 있어요?”“손연지는 호텔에 있어요.”노민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강하리는 서두르지 않고 노민우를 가만히 지켜보았다.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노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회사, 강하리 씨가 인수해 줬으면 좋겠어요.”강하리는 놀라서 노민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노씨 가문은 의학계의 명문가였고 대대로 의사 집안이었다.이번 세대에는 병원을 노민준에게 물려주었지만 노민우 또한 의료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그는 명인병원 지분 외에도 의약품과 의료기기 사업을 하는 회사를 직접 설립했고 꾸준히 잘 운영해 왔다.그런데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뭘까?“무슨 뜻이에요?”노민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전 어릴 때부터 엄마를 무서워했어요. 엄마는 항상 강압적이었고 제 결혼을 강요하면서 제가 거부하면 손연지에게 달려갈 거라고 협박했어요.”그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말에 따라 결혼했는데도 엄마는 손연지를 찾아가는 바람에 손연지가 많이 억울하게 됐어요. 다 제가 잘못한 탓이죠.”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 없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노민우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손연지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노력해서 손연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사실 전 승훈이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손연지에게 달려갈 수 없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손연지에게 가면, 오히려 우리 둘 다 더 힘들어질 거예요. 그래서 우리 회사를 먼저 정리하고 싶어요.”강하리는 이제야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하지만 굳이 저한테 부탁할 필요가 있을까요? 노민우 씨도 회사를 독립시킬 수 있잖아요. 아니면, 구승훈이 도와줄 수도 있고요.”노민우는 웃으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