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난 꼬박 하룻밤을 지새웠다.다행히 허지호는 나와 함께 자지 않는다.아니면 내 상태로는 틀림없이 티가 났을 것이다.사귄 지 3년, 허지호는 한 번도 나를 건드린 적이 없다. 나는 허지호가 고지식하여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허지호는 내 두 눈 밑의 다크서클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왜? 잠 못 잤어?”나는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대답했다.“응, 어제 좀 놀랐어. 하룻밤 내내 악몽을 꿨거든.”“그럼 내가 아린이를 다시 혼내줄까?” 허지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당황해하며 대답했다.“괜찮아, 괜찮아. 아마 어제 내가 갑자기 들어가서 놀랐을 거야. 그래서...아린이 괜찮아?”“응, 너보다 나아. 그냥 맞을 짓을 했어.” 허지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움찔했다.나는 허지호가 이런 말을 하는 걸 처음 봤다.그런데 고향에 돌아온 이틀 동안, 그가 예전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보였다.내가 자세히 생각할 틈도 없이 허지호는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가자, 밥 먹으러. 밥 먹고 나서 내 삼촌 집에 데려다줄게. 아직 안 가봤잖아.”나는 망설이며 대답했다.“응.”“좀 꾸미고. 저녁에 손님들이 올 거야. 그 사람들한테 네가 내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려고.” 허지호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그를 훔쳐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웃음이 이유 없이 불안하게 느껴졌다.허지호의 삼촌은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의 노란 이빨과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 불편했다.하지만 허지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삼촌은 부엌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물을 따르거나 음식을 가져오라고 한 것 같았다.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를 보고 내 피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그 여자는 거칠고 낡은 옷을 입고 있었고, 헝클어져 있는 머리에, 얼굴은 거무스름했다. 손에는 뭔가를 들고 고개 숙이고 들어왔다.정말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왜 그래?” 허지호가 내 팔을 건드리며 경계의
나는 망설이며 말했다. “우리 친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런 걸 빌려? 게다가 여기 사투리도 못 하는데. 차라리 네가 가서 빌려줘.”허지호는 손을 저었다. “내가 남자인데 어떻게 그런 걸 빌려달라고 해? 같이 가 줄 테니까 네가 말해. 네 말 알아들을 거야.”나는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허지호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고, 그의 삼촌이 급히 물었다. “어디 가?”“화장실로 데려다 주려고요.” 허지호가 대답했다.허지호 삼촌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 가는데 네가 왜 따라가? 그냥 혼자 가라고 해.”허지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하지만...”“뭐가 무서워? 못 도망가. 대문에 개도 있고, 다른 쪽은 다 막혔어.” 삼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허지호는 발걸음을 멈췄다.나는 어리둥절하게 그를 돌아보았다.허지호는 웃으며 말했다. “숙모님한테 부탁해. 네가 화장실 가는 건데 내가 따라가는 건 좀 그렇잖아.”허지호의 말을 듣고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그러나 망설이며 그의 소매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삼촌은 크게 소리쳤다. “지호야, 먼저 나랑 한 잔 해. 뭐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어?”허지호는 내 손을 가볍게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혼자 가. 너 어린애도 아니잖아.”그리고는 내 손을 떼어내고 삼촌과 함께 술자리에 앉았다.나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뒤를 돌아보며 그를 힐끔 쳐다본 뒤 발을 구르며 밖으로 나갔다.뒤에서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호야, 여자는 말이야, 너무 봐주면 안 돼. 말을 안 들으면 혼 좀 내.”“예, 예. 삼촌이 최고예요.” 허지호의 무심한 대답이다.문을 나서자마자 찬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나는 부엌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숙모님, 잠깐 뭐 좀 빌리려고요.”부엌에서 여자가 고개를 내밀고 사투리로 물었다. “뭘 빌리려고?”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뭐라고 하셨
화장실에서 재빨리 메시지를 하나 보내고 나서 다시 정실로 돌아왔다.허지호가 의심할까 봐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평정을 유지했다.그는 술에 조금 취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나는 그의 팔을 부축하며 살짝 떠봤다.“지호야, 나 집이 그리워.”“집이 그립다고? 곧 있으면 너도 더는 집을 그리워하지 않게 될 거야.” 허지호의 차가운 눈빛에 몸서리가 쳐졌다.나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나 그냥 내가 집에 가는 게 좋겠어. 설에 내가 없으면 부모님이 분명 날 걱정하실 거야.”허지호가 내 손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손이 아릴 정도였다.“안 돼.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다 왔어, 다 왔어...”찬 바람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졌다.‘제발...제발...’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이 없는 걸 발견했다. 당황해서 사방을 찾기 시작했다.허지호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말했다.“아마 오는 길에 떨어뜨린 것 같아. 그만 찾아. 설 끝나고 돌아가면 새로 하나 사 줄게.”나는 흐느끼며 말했다.“안 돼, 핸드폰 없으면 부모님께 전화 못 드리잖아. 부모님이 내가 연락 없으면 걱정하실 거라고.”“됐어. 나중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되잖아. 아, 머리 아프네. 먼저 좀 자야겠다.”그렇게 말하며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 핸드폰은 분명 허지호가 가져간 것이다.그래도 다행인 건 통화 기록과 채팅 기록을 미리 삭제해 두었다는 점이다.그날 오후, 그 ‘손님’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였지만 내게 향하는 그의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고개를 숙여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손바닥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허지호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가
남자가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천천히 쓰러졌다.나는 손에 든 벽돌을 떨리는 손으로 내려놓았다.“무슨 일이야?” 남자가 쓰러진 소리가 꽤 컸는지 허지호 어머니가 밖에서 물었다.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의자를 밀어 넘어뜨렸다.그러자 밖은 다시 조용해졌다.쓰러진 남자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 조심스레 문으로 다가가 문을 잠갔다.다시 돌아와 주변을 뒤적거리다가 소파 커버를 화살 모양 칼로 찢어 천 조각으로 만들고, 남자를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 천을 밀어 넣었다.이 모든 걸 끝내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옷 안쪽에 숨겨둔 예비용 핸드폰을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두 번 울리자 민서우가 전화를 받았다.“지금 바로 와줘. 구매자를 내가 묶어뒀어. 문은 안에서 잠갔고, 밖에 두 명이 더 있어. 게다가 사나운 개도 두 마리나 있어. 사람 좀 데리고 와. 내가 먼저 경찰을 부를까?”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주 낮게 말했다.민서우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바로 경찰에 신고해. 나는 이미 사람을 데리고 가는 중이야. 30분쯤 걸릴 거야. 네 안전을 잘 지켜.”“알겠어.”나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이 계속 떨렸다.경찰에 신고하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꾼 후, 옷 안쪽 주머니에 넣어두니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나는 소파에 앉아 중년 남자의 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내 힘은 세지 않아서 남자의 머리에 난 상처는 깊지 않아 곧 깨어날 듯했다.밖에는 여전히 두 사람과 두 마리의 개가 있었다.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스스로 용기를 내보았다.이 순간,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일분일초가 모두 고통스러웠다.시간이 흐르고 문 밖에서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먼저 허지호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나는 숨을 죽이고 문 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남자는 이미 깨어나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내가 단단히 묶어두어서 쉽게 풀 수 없었다.
조용히 몇 분 정도가 흘렀을까, 허지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유야, 나와. 내가 모든 걸 말해줄게. 나도 사정이 있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울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널 믿을 수 없어. 허지호, 네가 먼저 말해봐. 만약 네가 정말 사정이 있다면 난 널 용서할 수 있어.” 이 말은 나조차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허지호는 조금 믿은 듯했다. 내가 도망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그는 문에 기대어 있는 듯하며 나지막하게 말을 시작했다. “좋아. 어차피 넌 도망칠 수 없어. 강지유, 넌 경계심이 너무 강해. 사실 난 연휴가 끝나고 너를 넘길 계획이었는데 어젯밤 아린과 너의 충돌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어. 오늘 오전 네가 우리 삼촌 집에서 보였던 표정도 이상했어. 아니면 너도 몇 일 더 좋은 날들을 보낼 수 있었을 거야.” 허지호 어머니는 옆에서 뭔가 말리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허지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계획해왔는데. 이토록 미워했던 이유가 뭔지는 지유한테 말해줘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우리 노력은 다 풀거품이 될 거야. 얘 도망칠 수 없어. 그 여자도 처음엔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삼촌한테 잘 교육받아 삼촌 말을 순순히 따르고 있잖아.” 허지호의 목소리는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겨우 힘을 내어 몰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녹음 버튼을 눌렀다. 허지호는 어머니를 달래고 나서 또 다른 말투로 말했다. “강지유, 너는 어릴 때부터 늘 안전하고 편하게 자라왔지. 세상에 악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너는 전혀 몰라.” 나는 울면서 허지호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날 가르치려고 이런 거야?” 허지호는 내 말을 듣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강지유, 사실 내 어머니도 여기로 팔려왔어. 누가 팔았는지 알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밀려왔다. 허지호는 잠시 멈칫한 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벽돌을 꽉 쥐고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허지호, 네가 하는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네가 남을 해칠 이유가 될 수는 없어.”“아버지의 빚은 자식이 갚는 거야. 못 들어봤어?”허지호는 비꼬듯 내 말에 반박했다.나는 비웃으며 그를 조롱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서은희 아버지도 네 어머니를 해쳤다고 할 수 있겠네?”“서은희를 아는구나? 네 반응이 이상한 이유가 있었어. 하하, 뭐, 상관없어. 서은희는 자업자득이야.”내 발이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쓸고 있었다.“뭐? 자업자득이라니? 그저 네 손에 잡힌 불쌍한 여자애잖아.”“그년이 내 은서를 죽였어. 내 은서를 죽였다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 그 독한 년이 은서를 죽인 거야. 그렇게 남자가 필요하니까 내가 찾아준 거야. 평생 개처럼 살라고.” 허지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그 말투에는 원한이 가득했다.“말도 안 돼, 서은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반박했다.우리 집과 서씨 집안은 오래된 친분이 있었다. 나는 서은희와 거의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그런데 중학교 때 서씨 집안이 이사 가면서 우리도 헤어지게 되었다.그 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대학에 가고 나서 연락이 줄어들었다.2년 전, 갑자기 어머니가 서은희가 실종됐다고 말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그런데 알고 보니 허지호에게 팔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였다.“하하! 그래서 한 말이야. 너희들처럼 가식적인 인간들이 많아!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의리 있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더럽고 비열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허지호는 갑자기 문을 세게 쳤다. 문이 “쿵” 하고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벌써 25분이 지났다.하지만 문 밖에는 허씨 집 사람들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강지유, 나와라. 이렇게 계속 안에서 잠겨 있는 것도
나는 초조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이미 29분이 지나갔다.‘민서우, 너는 왜 아직 안 오니?’아마도 이 기억들과 이야기들이 허지호를 더 짜증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는 문을 세게 두드리며 말했다.“강지유, 너 문 열어! 안 열면 내가 문 부술 거야.”나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허지호, 네 말 대로면 우리 이복 남매가 된 거야?”“뭐? 남매? 나는 너 같은 위선자랑 남매 아니야! 강지유, 빨리 문 열어! 그만 좀 말하고 문이나 열어.”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네가 3년 동안 사귀고도 입 맞추지 않은 거였어? 난 네가 게인 줄 알았어.”“강지유, 너도 그 여자들처럼 더러워. 그렇게 남자 부족하냐? 그럼 내가 찾아준 이 남자 어때?”허지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하며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그때 허지호 어머니가 갑자기 크게 말했다.“지호야, 빨리 나와봐!”허지호는 두드리는 걸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나는 속으로 기뻤다. ‘민서우가 드디어 온 건가?’하지만 그 다음 순간, 나는 한 남자의 거대한 손에 허리를 붙잡혔다.“더러운 년, 감히 나를 때려? 오늘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남자도 아니야.”나는 비명 지르며 깜짝 놀랐다.‘이 개자식, 언제 풀려났지? 내가 그렇게 꽉 묶어놨는데!’다행히 내 손엔 벽돌이 여전히 있었다.나는 벽돌로 그의 손에 내리쳤다.“아! 이년이!” 남자는 고통에 손을 풀었다.나는 서둘러 몇 걸음 물러섰다.당황한 나머지 나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툭!” 소리와 함께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손에 쥐었던 벽돌도 옆으로 굴러갔다.내 머리는 하얘졌다.그렇게 반응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그 남자는 달려들었다.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옆으로 구르며 일어나려고 애썼다.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남자가 한 손으로 내 코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나는 발버둥 치며 핸드폰도 땅에 떨어졌다.남자는 그것을 보고 더욱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망가지 마! 너 절대 도망 못 간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세게 열렸다.내 위에 눕고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지호야, 나가. 나가. 아저씨는 괜찮으니까 이 여자를 처리하고 나서 들어와. 걱정하지 마, 돈은 적지 않...”나는 멍하니 문 쪽을 바라봤다.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민서우가 드디어 온 것이다.한 경찰이 나한테 다가와서 남자를 내 몸에서 밀어내고는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요. 우리가 왔어요.”거대한 공포와 두려움 뒤에 감정이 폭발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의 품에 뛰어들어 크게 울었다. 그는 잠시 멈칫한 뒤 어색하게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만 울어요.”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살아 돌아왔다는 기분에 이 사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관없이 오직 안전하다는 것,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이 중요했다. 한참 뒤,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만 좀 울어요. 아니면 지은 누나한테 가볼래요? 나...나 해야 할 일이 남았거든요.”내가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았다. 흐릿한 눈앞에 각이 진 얼굴과 짧은 머리를 한 평범한 남자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눈물을 닦고 “푸흣” 하고 웃어버렸다. “미안해요. 저 그냥 좀 놀랐어요.”“괜찮아, 서훈이 여자친구 없어. 몇 분 안겨주는 건 괜찮아. 이리로 와.” 한 중년의 여경이 나를 그녀 쪽으로 이끌었다. 그때 그 '서훈'이라는 경찰이 돌아서서 뛰쳐나갔다.“놀랐죠?” 지은 언니이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또 눈물을 터뜨리고 싶었다. 애써 참으면서 입술을 쭈욱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제야 왔어요? 오늘 여기서 죽을 줄 알았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민서우 그 자식은요? 그거 30분이면 온다고 해놓고, 얼마나 늦었는지 알아요?”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눈물은 마치 끊어진 구슬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은 언니는 나를 꽉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