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채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곧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살이 찌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살찐 게 싫으면 빨리 나랑...” 은채는 말을 하다 말고, 은비가 깨어난 일이 떠오르자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이제 은비가 깨어났으니, 자신이 먼저 이혼을 요구할 자격도 사라진 셈이었다. 주혁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허리를 감싸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은채는 배를 세게 짓누르는 그의 손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은채는 그를 밀쳐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한 마디 내뱉었다. “미쳤어?” 주혁은 입꼬리를 비웃듯 살짝 올리며 말했다. “미친 사람은 너 아니야?” “네 동생이 이제 막 깨어났는데, 이혼을 하겠다고? 내가 네 집안의 자금줄을 끊어버리면 어쩔 건데? 네 아버지 회사가 망해도 괜찮은 거야?” 주혁의 목소리는 냉정했고, 그 안엔 차가운 조소가 섞여 있었다. “류씨 가문이 지금까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내 덕분이었지. B시에서 너희 집안을 무너뜨리는 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일이야.” “그러니까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마.” 주혁의 말은 마치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이 은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쏟아지는 듯했다. 은채는 깊은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주혁과 끝까지 싸우면 결국 자신만 무너질 것이라는 걸. 은채는 마음속의 불안을 억누르며, 감정을 최대한 다스렸다. 은비가 깨어난 건 차라리 은채에게 다행이었다. 언젠가 신분이 바뀌기만 한다면, 벗어날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주혁은 은채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자, 차갑게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말을 마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은채는 주혁의 차 옆으로 가 조용히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 순간, 주혁의 전화가 울렸고, 그는 등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주혁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자, 은채는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그때, 붉은색 페라리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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