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빈이 집에 돌아왔을 때, 성유리는 여전히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녀는 박한빈이 이미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전까지는.“뭐 보고 있어?”성유리는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화면을 가렸고 동시에 고개를 돌려 따지듯 박한빈에게 물었다.“왜 박한빈 씨는 발걸음 소리도 안 나요?”박한빈은 성유리의 컴퓨터 화면을 흘끗 내려다보았다.사실 별거 아니었다.그녀가 예전에 작업했던 작품들, 그뿐이었다.그리고 그 작품들을 박한빈은 전부 다 알고 있었다.출판된 것은 물론, 그녀가 그동안 공개한 모든 작품을 이미 다 봤었다.한때 박한빈의 사무실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책상 위에서 익숙한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수많은 서류 더미 사이에 놓인 몇 권의 컬러풀한 만화책.표지에는 한 쌍의 남녀가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그 자체로는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장면이지만 그것이 박한빈이라는 사람과 어울리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그러니 직원들이 몰래 수군거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박한빈은 그런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성유리의 컴퓨터 화면을 스치듯 보기만 해도 박한빈은 그녀의 이야기가 어느 부분까지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아, 다음 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빗속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장면이 나오겠네.”솔직히 말해 그는 이 작품 속 인물들의 논리와 전개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어떤 면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전부 미쳐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하지만 성유리가 떠나 있던 몇 년 동안 이 작품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는 걸 알기에 박한빈은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어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그리고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직업이라면 그는 그것을 존중해야 했다.원래라면 박한빈은 도대체 왜 이런 걸 가리는지 물었을 것이다.이미 출판까지 되었고 영상화도 된 작품인데 이제 와서 숨긴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지만 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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