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831 - Chapter 840

865 Chapters

제831화

“박한빈 씨 성격이 어떤지 금미라 씨도 잘 아시잖아요. 사씨 가문이 저희에게 베푼 은혜도 있고... 이젠 죽을 사람은 죽고 미쳐버린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그 사람이 더더욱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성유리의 말에 금미라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도 사실 오늘 이 대화에서 큰 성과를 얻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그래서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등을 돌리자 금미라가 갑자기 소리쳤다.“잠깐!”그 목소리에 성유리는 걸음을 멈추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금미라는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망설이는 듯 보였고 깊이 주름진 이마는 금미라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성유리는 서두르지 않았고 조용히 서서 금미라가 내뱉을 말을 기다렸다.잠시 후, 금미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너한테 말해 준다면... 정말 날 가만히 놔둘 거니?”성유리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으실 거예요.”“하지만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딱 하나. 지금 이 평온한 삶을 더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이틀 뒤, 성유리와 박한빈은 함께 모풍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사실 박한빈은 혼자 가려고 했었지만 성유리는 단호했고 예상보다 강한 그녀의 태도에 박한빈은 의아함을 느꼈다.그래서 비행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유리에게 박한빈이 갑자기 물었다.“너 혹시 뭐가 떠오른 거야?”갑작스러운 질문에 성유리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묻는 박한빈을 바라보았다.박한빈 또한 가만히 성유리를 쳐다보고 있었다.성유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뭐가요?”그녀의 반응에 박한빈은 확신이 들었으나 이내 초조해졌다.“그러니까... 네가 기억해 낸 게 뭐야?”성유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떠오른 건 없지만... 어젯밤 꿈을 꿨어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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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라온시, 밤.이곳은 모풍국,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다.여기선 자본만 쥐고 있다면 무슨 짓을 하던지 다 옳은 일이 되기도 한다.누구도 막을 수 없고 어떤 제약도 없었기에 이곳은 자유의 도시라는 별명도 소유하고 있다.귀청을 때리는 음악 속, 에이미는 비키니 차림으로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가느다란 허리는 손끝만 대도 부러질 듯했고 몸을 비틀 때마다 곁에 앉은 남자를 힐끗 바라보았다.그는 단출하게 흰색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목과 소매의 단추를 몇 개 풀어 헤친 채,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다.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사냥감을 고르는 포식자 같았다.하지만 에이미는 그런 시선에 익숙했으니 불쾌함 따위 느낄 이유도 없었다.왜냐하면 그녀가 여기 온 목적 자체가 바로 ‘사냥감’이 되는 것이었으니까.이곳은 넥스트 펀드의 고위 파트너들이 주최한 파티였다. 그래서 이 자리에 발을 들이기 위해선 엄청난 조건이 필요했다.그리고 선택받는 건 오직 최고급의 존재들뿐.에이미는 처음 보는 남자였지만 그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에릭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오늘 밤, 그녀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는 바로 이 남자에게 달려 있었다.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에이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몸을 한 바퀴 휙 돌리더니 자연스럽게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다.애초에 입은 옷이 거의 없었기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남자는 곧바로 에이미의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를 한 번 쓱 훑어보더니 태연하게 손을 뺐다.“춤 배운 적 있나?”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에이미를 보던 남자가 물었다.그러자 에이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잠깐 배웠던 적 있어요.”“좋군.”그 말을 남기며 남자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었다.에이미는 이미 그 시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최소 수천만 원은 족히 될 법한 시계였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남자는 차고 있던 시계를 앞으로 보이는 수영장에 던졌다.“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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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3화

에릭은 그 말에 가늘게 눈을 뜨고 박한빈을 쓱 바라보았다.“들어오라고 해.”잠시 고민하던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대답했다.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긴 걸 에릭이 놓칠 리 없었다.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그는 사람들을 모아 간단한 내기를 열었다.내기의 주제는 바로 박한빈이 성유리를 보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였다.에릭은 박한빈을 오래 봐온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장담했다.박한빈은 절대 버티지 못할 거라고.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에이, 박한빈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걸로 무너지겠어?”“난 2000원 건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그럼 난 4000원.”내기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참여하기 시작했다.에릭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사람들이 진짜 박한빈을 모른다고 몰래 혀를 끌끌 찼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그를 비웃었다.“야, 박한빈이 그렇게 감정적일 거라고 생각해?”“너야말로 걔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그렇게 말들이 오가는 사이 드디어 웨이터가 성유리를 데리고 파티 장소로 들어왔다.성유리는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그곳에 있던 여자들이 몸매를 과시하는 비키니를 걸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그렇기에 오히려 그 단아한 차림새가 이곳에서 더욱 눈에 띄었다.성유리는 조용히 걸어와 박한빈 앞에 멈춰 섰다.사실, 박한빈이 에릭보다 먼저 그녀를 봤어야 맞다.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술만 마시고 있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을 마주 선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랑 같이 가요.”그녀의 태도는 한없이 공손했다.그 모습에 에릭은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이미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남자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는 모습을 봐왔다.그리고 한때는 박한빈에게도 말했었다.“여자를 너무 애지중지하지 마라.”하지만 막상 이렇게 성유리가 박한빈 앞에서 몸을 낮추는 걸 직접 보니 묘하게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그런데도 정작 박한빈은 여전히 술만 마실 뿐,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성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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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성유리는 멀리 가지 않았다.에릭이 내려왔을 때, 그녀는 호텔 정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여기는 라온시.이곳은 그녀가 사는 금성이 아니었다.아무리 도심의 조명이 밝다고 해도 한밤중에 동양인 여성 혼자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위험했다.더군다나 성유리는 작고,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처럼 보였다.그런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무언가로 인식되기 쉬웠다.박한빈도 그걸 알았다.그래서 예전에 그녀를 라온시에 데려왔을 때는 마치 깨지기 쉬운 도자기라도 되는 듯 늘 가까이에서 성유리를 지켜보며 보호했다.그런데 오늘 박한빈은 그녀를 혼자 남겨두었다.에릭은 이 상황이 꽤 복잡하게 느껴졌다.솔직히 말해 그가 일하면서 수백 개의 금융 데이터를 한꺼번에 분석하는 것보다도 이 상황이 더 복잡하게 느껴졌다.그러나 에릭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그저 ‘호스트’로서 자연스럽게 성유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제가 사람 불러서 호텔까지 바래다주라고 할게요.”그제야 성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에릭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고마워요.”성유리는 나직이 말했다.그런데 그녀의 눈가가 방금 전보다 더 붉어져 있었다.솔직히 에릭 정도 되는 사람이 몇 방울의 눈물에 흔들릴 리 없었다.얼마 전, 그가 어느 채무자의 집에 돈을 받으러 갔을 때 그 집의 10대 소녀가 에릭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피가 나도록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었다.그러나 그때조차 에릭은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성유리의 눈가에 맺힌 그 몇 방울의 눈물은 왠지 모르게 에릭을 짜증 나게 했다.에릭은 자기도 모르게 귀찮은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대체 두 사람... 무슨 일로 싸운 겁니까?”성유리는 고개를 뚝 떨구고 자신의 발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류수미 씨가 미쳐버렸어요. 알고 계세요?”“알고 있습니다.”에릭은 별 감흥 없이 답했다.미쳤다 한들 어쩌겠는가?그들의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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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5화

에릭은 심지어 박한빈이 진짜로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기 시작했다.하지만 박한빈은 되려 에릭에게 되물었다.“너는 예전부터 나한테 이런 삶 살라고 하지 않았어?”“근데 왜 이제 와서 막상 내가 즐기니까 갑자기 미쳤다고 하는 거지?”에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박한빈은 그를 한 번 쓱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으며 에릭에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앞쪽에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물었다.“저 여자 봐봐, 어때?”...성유리는 호텔에서 혼자 3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그동안 박한빈은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호텔 로비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결국 귀국을 앞당기기로 결심했다.휴대폰으로 항공권을 검색하며 예약하려던 순간, 누군가 성유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이제 막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호텔 로비는 여전히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그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부드러운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성유리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하지만 남자가 앉는 순간, 마치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감지한 것처럼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다 이내 서서히 주먹을 꽉 쥐었다.그러나 성유리는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그 짧은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성유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그때, 맞은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유리 씨 맞으십니까?”그제야 성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남자는 어두운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콧날 위에는 선글라스를 걸치고 있었다.무겁게 얹힌 한국어 발음에서는 외국 특유의 억양이 묻어났다.그리고 이내 성유리는 남자가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실망한 표정이 살짝 드러났다.남자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그리고 재미있다는 듯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저희 보스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누구요? 박한빈 씨인가요?”성유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치 무언가 기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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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6화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눈앞의 남자는 잠시 멍해졌다.그러더니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그리고 그 눈빛엔 확신이 담겨 있었다.그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확실한 확신.연정우는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천천히 손을 들어 코끝까지 내려와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그제야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얼굴.수염이 조금 자랐고 눈가에는 그늘이 더 깊어졌다.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인상이 더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그러나 연정우가 성유리를 바라볼 때만큼은 따뜻한 온기가 묻어났다.“유리 너... 날 기억하는구나?”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연정우는 그들의 마지막 만남을 잊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녀가 정말로 모든 걸 기억해 낸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을 알아본 것뿐인지.그런 연정우의 마음이 묘하게 불안하게 흔들리는 순간, 성유리가 입을 열었다.“왜 연정우 씨가 여기 계시는 거죠?”연정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일하러 왔지.”“금성에서는...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었으니까.”그는 말하는 내내 계속해서 성유리의 반응을 살폈다.연정우의 대답에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그리고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민혁 씨...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연정우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자 무릎 위에 올리고 있던 성유리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이내 주먹을 꽉 쥐었는데 어찌나 강한지 손가락 마디마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그럼 류수미 씨는...”연정우가 어렵게 말을 꺼내자 성유리가 담담히 대답했다.“미쳐버렸어요.”“지금은 정신병원에 계시고요.”“뭐?”연정우는 많이 놀란 듯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리고 아주 잠깐 숨을 헐떡이다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다 내 잘못이야.”“내가... 더 강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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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7화

“넌 지금 나를 동정하는 거야?”연정우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아, 아니요.”성유리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전 그냥 제가 당신을 끌어들인 것 같아서 그래요.”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갈라졌다.“제가 연정우 씨랑 결혼할 뻔했던 그 일 때문에 박한빈 씨가 당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거잖아요.”“그 일만 아니었으면 연정우 씨는 아직도 국내에서 순조롭게 살고 있었을 테고 사씨 가문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예요.”“그래서... 너무 미안해요.”성유리의 목소리는 이미 잠식된 듯이 메말라 있었다.연정우는 한동안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것도 굉장히 즐겁다는 듯한 웃음.마치 무언가 정말 웃긴 걸 발견한 것처럼.“그래서?”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이제야 박한빈 씨의 본모습을 알았다는 거야?”“내가 전부터 말했잖아.”“그 사람은 애초부터 널 아껴주지 않았어.”“그게 아니었으면 네가 하늘이를 데리고 그렇게까지 급히 도망칠 필요가 있었겠어?”연정우의 눈빛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그리고 그때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너도 강제로 박한빈 씨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성유리. 너 기억나? 네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건... 바로 나였어.”“봐. 지금 박한빈 씨는 너한테 질려버렸잖아? 그 사진으로 충분히 설명이 안 돼?”“그러니까 유리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야.”연정우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그리고 그를 보는 성유리의 시선은 한없이 투명했다.연정우는 확신했다.이제야 그녀가 믿기 시작했다는걸.그때, 연정우가 다시 말했다.“나랑 같이 가자.”연정우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성유리는 망설이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안 돼요.”“왜 안 돼?”“하늘이가 아직 국내에 있어요. 그 애는 저희 아인데 만약...”“내가 데려오면 되잖아.”연정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넌 아이의 엄마야.”“하늘이가 얼마나 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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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에이미가 그 남자를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첫 번째 만남에서도 남자는 여러 명 중에서 콕 집어 자신을 선택했다.그리고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더 중요한 건, 에이미가 지금 몸에 걸치고 있는 액세서리다.그 남자가 직접 사준 것인데 몇백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신구였다.남자는 그것을 사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그 순간, 에이미는 확신했다.이번에도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것을.여러 명의 ‘사냥감’ 중에서 그 남자의 눈에 들게 된 것이라고 착각하며 몰래 기뻐했다.그렇지만 에이미는 남자의 관심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라온시의 상류층.에이미와 그녀의 동료들은 이미 사람들의 ‘등급’을 매겨둔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그 남자는 리스트에 없었다.하지만 암묵적으로 남자가 최상위급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 사실은 남자를 대하는 에릭과 다른 남자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그래서 에이미는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기회를 붙잡았다.그 선택은 결국 틀리지 않았다.지금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질투, 그리고 선망.독특한 디자인의 슈퍼카가 고속도로 위를 질주했다.엔진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고 에이미의 기분도 한층 더 들떴다.그러면서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에이미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손을 잡았지만 남자는 즉시 손을 뿌리쳤다.그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단호했다.마치 에이미의 손이 오염이라도 된 것처럼.순간, 에이미의 몸이 굳었다.그리고 문득 남자는 신체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지난번 호텔에서도 마찬가지였다.에이미를 방으로 데려가 놓고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떠나지도 못하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결국 그날 밤 소파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그리고 지금, 남자는 에이미의 손조차 잡으려 하지 않았다.에이미는 생각했다.혹시 남자에게 무언가 숨겨진 사정이 있는 걸까?그래서 남자는 항상 파티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여자들은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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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에이미는 아마 자신이 하고 있던 추측이 남자에게 들킨 거라고 짐작했다.필경 이 남자가 속한 세계에서는 사람 하나 사라지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질 터였다.‘그럼 지금 이 사람이 나를 없애려는 건가?’에이미는 알았다.그들에게 자신 같은 존재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 걸.그래서 만약 상대의 기분이 나쁘다면 자신 같은 사람 하나쯤 없애버리는 것도 아무렇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에이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이 바짝 말라 본능적으로 혀로 입술을 훑었다.뭔가 변명을 해야 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차에서 내리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름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뭐지?’에이미는 순간 멍해졌으나 이내 이런 고민이 생겼다.‘따라가야 할까?’‘그런데 만약 저 사람이 진짜로 나를 해치려 한다면 어떡하지?’에이미 같은 사람은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그런 뜻이 아니라면? 이렇게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쳐버리면 어떡하지?’‘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 남자를 잡았는데!’에이미가 고민하는 시간 동안 남자는 이미 여관 안으로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그래서 에이미는 더는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확신이 서자 그녀는 즉시 가방을 움켜쥐고 그의 뒤를 쫓아 여관으로 들어섰다.남자는 이곳이 익숙한 듯했다.프런트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안쪽으로 걸어갔다.그러자 에이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이미 예약된 방이 있다는 거네?’그렇다면 왜 이런 곳을 선택한 거지?자신이 생각하는 남자의 신분이라면 굳이 이런 허름한 곳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에이미에게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었다.중요한 건 바로 지금 자신이 이 남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설령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남자의 곁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남자가 자신을 죽일 게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용할 가치가 있을 테니까.에이미가 결심하는 순간, 남자가 방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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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0화

방금 보낸 문자는 성유리가 박한빈에게 보낸 것으로 그녀가 예약한 여관 주소와 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이 며칠 동안 그들은 실제로 만나지 않았고 전화도 하지 않았다. 성유리는 연정우가 그녀의 주변에 사람을 배치해 지켜보고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래서 조금이라도 흔적이 남으면 계획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믿어버릴 정도로 연기를 하기로 했다.성유리는 연정우가 자기 자신을 고귀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자부심은 어렸을 때부터 받은 가족의 교육과 외부에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나왔다.박한빈과는 달리 연정우는 외부 사람들의 평가를 매우 신경 쓴다. 비록 그가 내면은 차갑고 이기적이라 해도 겉으로는 온화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박한빈은 외부에서 하는 평가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리 공공장소라고 해도 누군가를 극도로 싫어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연기를 하려고 애를 쓰지도 않았다.사람들 앞에서 싫어하는 사람에게 망신을 주지 않는다면 정말 신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냉철한 인간이었다.성유리는 연정우가 만약 ‘영웅’이 될 기회를 얻으면 주저 없이 그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그래서 그녀는 그 기회를 주기로 했다.지금 그녀는 ‘영웅’이 구해줘야 할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역할은 성유리만이 할 수 있다.왜냐하면 그녀는 연정우가 갈망했던 사람이었고 연정우가 여러 번 실패한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성유리 때문에 연정우와 박한빈은 적이 되었고 박한빈의 손에 의해 계획한 모든 일이 여러 번 실패로 돌아간 적도 있다.그래서 성유리는 연정우에게 기회를 주면 반드시 그것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결국 그녀가 고통에서 벗어나고 연정우도 성유리에게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한빈은 처음부터 성유리가 연정우를 끌어내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박한빈은 성유리가 이러는 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성유리의 안전을 암암리에 지키고 있었지만 그는 세상에 100% 안전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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