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821 - Chapter 830

865 Chapters

제821화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서야 확신했다.“저 사람이 박한빈 씨 친구예요?”“아니.”박한빈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빠르게 부정했다.“나한테 저렇게 멍청한 친구가 있을 리 없잖아.”말하는 동안 그는 이미 선원들에게 도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성유리가 계단을 밟고 배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그와 동시에 안전요원들이 내려가 에릭을 끌어올렸는데 그는 이미 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상태였다.원래는 입에 담지도 못할 거친 욕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차가운 날씨에 재채기가 멈추질 않자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박한빈은 신경 쓰지도 않고 어부에게 돈을 던지듯 건넨 뒤, 성유리의 손을 잡고 안으로 향했다.“그럼 두 분은 아는 사인가요?”성유리가 다시 물었다.“알긴 알아.”박한빈은 그렇게 대답하더니 곧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근데 네게 전화한 건 몰랐어. 나는 그때 방에 갇혀 있었거든. 진짜야.”“근데 왜 박한빈 씨를 가둔 거죠?”“널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쟤가 반대했어.”박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하지만 성유리는 갑자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방금 전 그 남자와 박한빈 사이는 뭔가 이상했다.근데 딱히 뭐가 이상한 건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박한빈은 성유리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은 채, 1층 파티장을 피해 뒷계단으로 향했다.그런데도 성유리는 귀를 울리는 음악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여기서... 파티를 벌이고 있는 건가요?”“응. 맞아.”“그럼 박한빈 씨도 오늘 이 파티에 온 거겠네요?”“응.”“그럼 제가 왔는데 파티에 데려가지도 않으실 거예요?”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의 걸음이 뚝 멈췄다. 그리고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망설이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됐어. 어차피 파티도 끝나가고 저 사람들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있을 텐데... 볼 것도 없어.”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박한빈을 가만히 바라봤다.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Read more

제822화

사실 성유리는 아까부터 박한빈의 말과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자신이 집에 가는 걸 막았다느니, 방에 가뒀다느니 같은 말에 너무 의심이 들었었다.박한빈이 어린애도 아니고 에릭이라는 사람은 그의 보호자도 아닌데 무슨 권리로 막았다는 건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럴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그들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결국 방 안에 있었던 사람은 박한빈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자 성유리의 얼굴에서 천천히 표정이 사라졌다.그녀는 자연스럽게 박한빈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는 이미 성유리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손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더 힘을 주어 성유리를 그대로 품에 끌어안았다.그리고는 정면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이 사람은 내 아내야.”상대방은 이미 술이 많이 취해 있었는지 박한빈이 무슨 말을 했는지에는 관심도 없었다.그저 성유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뿐이었다.그러다 박한빈이 그녀를 끌어안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투덜댔다.“로얀, 너 또 너만 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우리 다 같이 나눠야 하는 거 아니었어?”“닥쳐!”박한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그냥 돌아가자.”성유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굳이 파티에 가겠다고 고집부리지도 않았다.어차피 파티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제는 굳이 가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으니까.원래 박한빈은 작은 보트를 이용해 성유리를 바로 육지로 데려가려 했다.그러나 이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고 날씨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결국 성유리를 객실로 데려가기로 했다.방으로 돌아가는 길, 파티장 쪽에서 풍선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게 오늘 밤의 하이라이트였다.펑!폭발음이 들리자 귀를 찢을 듯한 음악과 함께 여자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소리만 들어도 그곳이 얼마나 난잡한 분위기일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박한빈은 원래도 이런 분위기를
Read more

제823화

“그럼 왜 그런 사람들과 어울렸어요?”마침내 성유리가 입을 열었다.방에 들어온 이후 그녀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박한빈은 이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이 대답에 따라 성유리가 방금 본 것과 들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될지도.그는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박한빈은 에릭, 그리고 밖에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성유리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점점 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끝으로 박한빈은 한 번 더 강조했다.“사실 난 이제 거의 그들과 어울리지 않아. 예전엔 솔직히 말하면 국내에서의 생활이 너무 재미없었어. 아무런 도전도, 자극도 없어서.”“하지만 이제 난 더 중요한 목표가 생겼으니 그런 건 이제 더 이상 손대지 않아.”그러면서 박한빈은 성유리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사실 너도 예전엔 이걸 다 알고 있었어.”“제가 다 알고 있었다고요?”“그래. 너도 에릭을 알잖아.”“그러니까 제가 박한빈 씨가 파티에서 에릭이라는 친구랑 함께 방탕하게 논다는 것도 알았다는 거예요?”“아니야. 난 방탕하게 논 적 없어.”박한빈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런 짓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 난 그어진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아. 그리고...”그는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했다.“나도 그런 건 더럽다고 생각해.”성유리는 잠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그러자 박한빈이 갑자기 말했다.“정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 봐.”그러고는 성유리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그 바람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손을 뺐다.“장난 좀 그만 치세요. 아직 전 당신 말 믿지도 않았다고요.”그런데도 박한빈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지금 믿게 해주려는 거잖아?”성유리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를 악물며 겨우 참았다.박한빈이 다시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성유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박한빈.”그녀의
Read more

제824화

“마침 잘 왔네. 네가 직접 내 아내에게 설명해 줘.”박한빈이 에릭 앞에 서서 말했다.그러자 에릭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뭐라고?”자신은 따지러 온 거지, 이들 부부의 화해를 돕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이 모든 일은 네가 시작한 거잖아. 정말 가만히 두고만 볼 거야? 아니면... 내가 엉망이 되는 걸 즐기는 건가?”솔직히 말하면, 에릭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애초에 그는 언제나 혼자였고 그런 게 익숙했다.그뿐만 아니라 애초에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배우자 같은 존재를 가질 필요도, 가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파트너는 있을 수 있다.연애도 할 수 있다.하지만 그 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하는 관계는 불필요했다.그들에게 중요한 건 거래와 이익이었다.그들의 세계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굳이 이해받을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박한빈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애초에 불필요한 감정에 얽매여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제 와서 자기에게 설명까지 요구하고 있다.이건 굴욕이었다.에릭이 계속 가만히 있자 박한빈이 다시 말했다.“네가 가지고 있는 5% 지분, 아직 필요해?”에릭은 코웃음을 쳤다.“웃기지 마. 내가 그깟 지분에 관심이나 있을 것 같아?”“그건 나도 알아.”박한빈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그래도 너는... 나를 적으로 돌리고 싶진 않잖아?”그 말에 에릭의 표정이 급변했다.그는 박한빈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그는 미동도 없었고 표정 변화도 없었다.박한빈이 내뱉는 말이 전부 진심이라는 게 명백해지자 에릭이 헛웃음을 터트렸다.“로얀, 너 진짜 미쳤구나.”“고작 저 여자 하나 때문에? 네 형제들을 내팽개칠 수 있다고?”“도대체 저 여자가 뭐가 그렇게 좋아서 그래?”“필요하다면 똑같은 여자 수십 명이라도 당장 구해줄 수 있어!”“여자 하나 때문에 우리와 어울리지도 않고 우리와 같은 삶을 살지도 않더니... 이제는 나랑 맞설 셈이야?”에릭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따지듯 물었다.그러나 박한
Read more

제825화

“같이 가자.”박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성유리가 재빨리 그의 어깨를 눌렀다.“방 안에 화장실 있는데 왜 따라와요?”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박한빈은 멈칫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성유리는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성유리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박한빈은 이미 다시 잠들어 있었다.하지만 성유리는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끝없이 검고 깊은 바다만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갑판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자.’박한빈이 한 번만 데려가 줬던 길이었지만 성유리는 금방 기억해 냈다.그런데 성유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갑판에 이미 누군가가 있었다.에릭이었다.그는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입술 사이로 연기를 내뱉었지만 형체를 이루기도 전에 거센 바닷바람에 흩어졌다.그리고 그 연기는 성유리 쪽으로 흘러왔다.강하고 매캐한 냄새에 성유리는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했다.그 순간, 에릭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온몸이 긴장해 있었고 눈빛에는 날카로움과 경계심이 드러나 있었다.하지만 성유리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 차가운 표정이 빠르게 사라졌다.에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마치 그녀를 본 적도 없는 것처럼.성유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에릭의 옆으로 다가갔다.넓은 갑판에 빈 공간이 많았지만 굳이 에릭의 곁에 서서 먼저 말을 걸었다.“당신은 박한빈 씨가 지금 행복해 보이나요?”갑작스러운 질문에 에릭이 흠칫했다.그리고 곧 비웃듯 대답했다.“그런 행복 따위, 싸구려일 뿐이죠.”그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신 후, 한층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랑? 결국 몸에서 나오는 도파민일 뿐입니다. 두 사람 정말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아니죠?”“천진난만하긴...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서 더 이상 그런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으면 당신들은 결국 서로를 하찮게 여기게 될 겁니다.”“마지막엔 결국 싸우고 서로를 헐뜯겠죠. 그때쯤이면 제가
Read more

제826화

“별다른 이상행동은 없지만 말을 너무 안 하세요. 그리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려 하고요. 매일 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 멍만 때리고 계세요.”의료진은 성유리를 안내하는 길에 환자의 증상을 설명했다.이곳은 최고급 정신병원이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사실 똑같은 분위기였다.길을 걸으며 성유리는 점점 더 강한 억압감을 느꼈다.복도 양옆으로는 굳게 닫힌 병실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하지만 그 문들은 평범한 병실 문이 아니라 쇠창살이 덧대어진 감옥과도 같은 구조였다.여기는 병원이 아니라 감옥에 가깝다는 느낌에 성유리는 점점 더 미간을 찌푸렸다.류수미는 이 긴 복도의 가장 깊숙한 방에 있었다.그녀는 문을 등지고 앉아 위쪽의 작은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유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류수미 씨?”방 앞에 도착한 의료진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류수미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그러자 의료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사민혁 씨.”이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류수미의 흐릿한 눈빛이 갑자기 또렷해졌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그녀가 몸을 홱 돌렸다.성유리는 류수미를 맞이할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시선이 마주친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비록 류수미는 이전에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었지만 그녀의 지위와 체면이 있는 이상 언제나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려 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헝클어진 머리카락, 탁해진 눈동자, 이미 하얗게 센 귀밑머리, 거칠고 갈라진 입술.류수미의 눈빛, 그리고 하는 모든 행동들은 마치 죽음을 앞둔 노파 같았다.성유리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그 순간, 류수미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성유리가 멍해졌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류수미는 다시 입
Read more

제827화

성유리는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그녀는 이 집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귀국한 후 한 번도 이곳을 찾은 적이 없었으니까.하지만 몸에 새겨진 기억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성유리는 지금 차 안에 앉아 있었지만 마치 과거의 자신이 이곳을 드나들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다.그때는 사씨 저택 안에도 사람들의 웃음이 가득했겠지?현재, 그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던 저택이 이렇게 쓸쓸하게 변해버렸다.황량한 정원, 법원의 봉인 딱지가 붙은 대문.그 모습이 주는 충격은 예상보다도 컸다.성유리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몰랐다.그러다 박한빈의 전화가 걸려 왔다.“지금 어디야?”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많이 초조해보였다.성유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사씨 저택이요.”그 말이 끝나자 수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그리고 박한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뭐라고?”“사씨 저택이라고요.”성유리는 다시 한번 말했다.“하지만 집은 법원에서 봉인해서 들어갈 수 없어요.”이번에는 확실하게 들었는지 박한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는 짧은 침묵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거기서 기다려. 지금 바로 갈게.”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전화를 끊지 않은 것만으로도 박한빈의 말을 따르겠다는 의미였다.전화를 끊은 후, 성유리는 다시 대문을 바라보았다.이번에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이제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이 찾는 곳이 아니었기에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성유리는 박한빈이 도착했음을 알았다.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박한빈은 금세 차를 세우고 성유리의 차 문 앞까지 걸어와 창문을 두드렸다.성유리는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저 문 잠금을 풀었다.그러자 그는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랐다.박한빈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그는 성유리가 계속 저택의 대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며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Read more

제828화

박한빈도 처음부터 사민혁의 목숨을 노린 건 아니었다.심지어 의사들도 말했듯이 그의 사망 원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본인이 이미 살고 싶은 욕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의사들이 아무리 살리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하지만 사민혁의 죽음이 박한빈과 전혀 관련이 없는 건 아니었다.연정우가 그들의 곁에 있던 것 자체가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박한빈이 손을 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그들의 자산이 연정우에게 다 넘어갔을 것이다.그러나 사실은 박한빈이 지금 그 속도를 더 빨리 만든 장본인임이 분명했다.그는 자신이 사씨 가문이 모든 것을 잃게 된 속도를 가속시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유리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긴 시간이 지나도 박한빈이 대답하지 않자 성유리는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박한빈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성유리의 손을 꽉 잡았다.“내가... 상황을 더 빠르게 진행되게 했다는 건 인정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이 평화롭게 늙어가던 상황이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야.”“연정우가 사씨 가문의 자산을 몰래 빼내기 시작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어. 그 사람은 사씨 가문에 붙어 모든 걸 빨아먹고 있던 흡혈귀야. 나는 연정우 씨가 빼앗아 간 걸 다시 돌려놓았을 뿐이고.”박한빈은 행여나 말을 잘 못 뱉을까 봐 단어 하나하나를 고민하고 골랐다.물론, 이 과정이 박한빈이 말한 것처럼 간단하고 깔끔하지는 않았다.그러나 인과 관계는 결국 그렇게 맞아떨어졌다.박한빈은 사실 사씨 가문을 용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는 사씨 가문이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을 도와줄 생각이 있었고 연정우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면서 재산을 지킬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박한빈이 말했던 대로 사씨 가문이 하늘이를 양손녀로 삼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들이 원한다면 박한빈은 그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박한빈은 사실 어떤
Read more

제829화

“그래서 전 연정우 씨가 지금 다른 재단들과 협력하고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에요.”성유리는 자신이 맞게 추측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필경 이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생각뿐이었으니까,연정우는 국내에서 명예가 실추되었지만 그가 빼앗은 자산은 적지 않았다.그 자산으로 해외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따라서 연정우가 이렇게 잠잠해질 가능성도 있지만 성유리는 그가 그렇게 쉽게 물러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연정우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그런 그가 평범한 삶에 만족할 리 없었다.복수의 기회를 엿보며 박한빈이 모든 것을 잃도록 만드는 것이 연정우의 선택일 것이다.성유리가 말을 마친 후에도 박한빈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침묵에 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제 말이 틀린 건가요?”박한빈은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니. 난...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어.”성유리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로 박한빈을 쳐다봤다.“그러니까... 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건가?”그때, 박한빈이 다시 물었다.“뭘 원망해야 하는데요?”박한빈은 말을 잇지 않았다.그러나 그들이 지금 있는 장소와 방금 나눈 대화는 성유리에게 이미 충분한 답을 주었다.성유리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말을 꺼냈다.“방금 말했잖아요. 박한빈 씨가 가만히 있었다고 해도 연정우 씨는 사씨 가문을 무조건 집어삼켰을 거라고.”“그렇다면 문제의 근원은 연정우 씨지, 당신이 아니에요.”성유리는 진지하게 말하며 박한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박한빈은 그 순간, 성유리가 말하는 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사실 그동안 박한빈은 마음속으로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특히 그날, 크루즈에서 일어난 일 이후로는 자신이 버려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그렇기에 지금까지 손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그러나 성유리가 그에게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박한빈은 감동해
Read more

제830화

성유리는 차를 멈추자마자 눈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 이름부터 확인했다.새누리 아파트.이 아파트는 금성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지만 교통이 편리하고 주변에 슈퍼마켓과 병원이 있어 생활이 편리한 곳이었다.성유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몇 명의 노인들이 운동하거나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꽤 활기찬 분위기였지만 성유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은 그들 중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박한빈이 미리 아파트 단지의 배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성유리는 금세 찾던 사람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그 집의 큰 문은 꽉 닫혀 있었고 입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발도 가지런히 놓여 있고 우산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성유리는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그래서 성유리는 주저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물건은 문 앞에 두고 가면 됩니다.”그러자 안에서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성유리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집안에서 누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문을 열어줬는데 성유리를 보고 나서는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그녀는 무심코 문을 닫으려 했지만 성유리가 빠르게 손으로 문을 막았다.“금미라 씨? 왜 이렇게 급해하세요?”금미라는 손으로 문을 계속 누르다가 실패하고 두 손을 허리에 올리며 말했다.“뭐 하려는 거야? 내가 여기 사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성유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당신이 여기 살고 있다는 게... 그렇게 알아내기 어려운 일인가요?”그 말에 금미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그래서? 도대체 뭘 하려고 여기까지 왔어? 말해두는데 나 돈 없어. 그리고 모든 일은 연정우 혼자 한 거니까 찾으려면 걔를 찾아가.”그러자 성유리는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맞아요. 원래는 연정우를 찾으려고 했어요.”“근데 지금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성유리의 물음에 금미라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내가 뭘 안다고 그래? 그리고 방금
Read more
PREV
1
...
8182838485
...
8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