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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1화

Author: 송진
“박한빈 씨 성격이 어떤지 금미라 씨도 잘 아시잖아요. 사씨 가문이 저희에게 베푼 은혜도 있고... 이젠 죽을 사람은 죽고 미쳐버린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그 사람이 더더욱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성유리의 말에 금미라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도 사실 오늘 이 대화에서 큰 성과를 얻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등을 돌리자 금미라가 갑자기 소리쳤다.

“잠깐!”

그 목소리에 성유리는 걸음을 멈추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금미라는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망설이는 듯 보였고 깊이 주름진 이마는 금미라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성유리는 서두르지 않았고 조용히 서서 금미라가 내뱉을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금미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너한테 말해 준다면... 정말 날 가만히 놔둘 거니?”

성유리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으실 거예요.”

“하지만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딱 하나. 지금 이 평온한 삶을 더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

이틀 뒤, 성유리와 박한빈은 함께 모풍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박한빈은 혼자 가려고 했었지만 성유리는 단호했고 예상보다 강한 그녀의 태도에 박한빈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서 비행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유리에게 박한빈이 갑자기 물었다.

“너 혹시 뭐가 떠오른 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성유리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묻는 박한빈을 바라보았다.

박한빈 또한 가만히 성유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성유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뭐가요?”

그녀의 반응에 박한빈은 확신이 들었으나 이내 초조해졌다.

“그러니까... 네가 기억해 낸 게 뭐야?”

성유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떠오른 건 없지만... 어젯밤 꿈을 꿨어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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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리는 손끝에 힘을 잔뜩 줬다.하지만 박한빈의 팔 근육이 워낙 단단해서 자신이 아무리 힘을 줘도 제대로 꼬집히지도 않았다.이 사실을 깨닫자 성유리는 살짝 짜증이 났다.성유리가 눈썹을 찌푸리며 박한빈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자 그는 곧장 그녀의 기분을 이해한 듯 말했다.“차라리 깨물어 볼래?”“됐어요.”그녀는 퉁명스럽게 대답한 뒤,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그렇지만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그제야 박한빈은 성유리가 진짜로 신경 쓰고 있는 게 뭔지 깨달았다.“일이 잘 안 풀려?”성유리는 입술을 살짝 깨문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아까 감독이랑 이야기했다고 했지? 무슨 얘기였어?”“대본 관련해서...”“수정해야 돼?”박한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다른 작가들도 있으니까 너 혼자 할 필요 없잖아.”“제작사가 새로운 배우를 끼워 넣으려고 해요. 그래서 캐릭터를 추가해야 하는데...”성유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이미 대본이 충분히 꽉 차 있어서 추가하려면 거의 처음부터 다시 짜야 돼요. 그런데 감독은 일주일 안에 끝내라고 했어요.”“넌 그걸 동의한 거야?”“제가 싫다고 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저쪽이 우리 영화 최대 투자사거든요 그래서 감독도 쉽게 거절할 수 없고요.”“음... 그럼 곧 최대 투자사가 바뀌겠네.”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요?”“내가...”그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성유리를 힐끔 바라봤다.그런데 성유리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박한빈을 바라보며 물었다.“성유리, 너 지금 나 떠보는 거지?”“아니요? 전혀 아닌데요?”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을 듣고도 그녀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아야!”갑작스러운 행동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 손까지 휘저으며 외쳤다.“뭐 하는 거예요! 살살 좀 하라고요!”성유리가 두 손으로 자신을 마구 밀쳐내자 박한빈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놓아주었다.“내가 제작사에 투자하게 만들고 싶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 이렇게 덫을 세우지 말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5화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고 게다가 투자사에서 내건 조건도 까다로웠다.“주인공보다 비중은 적어야 하지만 캐릭터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합니다.”감독이 단순히 조건만 언급했을 뿐인데도, 성유리는 이미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성유리 작가님.”감독은 마치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원작자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겠죠? 어디에 캐릭터를 끼워 넣어야 자연스러울지. 그러니까 이 작업은 당신이 맡아주세요.”감독의 말에 성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러나 감독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통보를 내렸다.“투자사에서 일주일 내로 수정된 대본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준비하세요. 그리고 임 작가님이 성 작가님 작업에 맞춰 협조해 주세요.”그 말을 끝으로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캐스팅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나갔다.회의실에 남겨진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임 작가는 성유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작가님, 혹시 떠오르는 아이디어 있으세요?”성유리는 묻는 임 작가를 한 번 바라본 뒤, 고개를 저었다.“그럼 어쩌죠? 겨우 일주일인데 이 대본을...”임 작가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성유리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보자 예상대로 박한빈이었다.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임 작가에게 말했다.“일단 먼저 돌아가세요. 통화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볼게요. 필요한 부분 있으면 따로 연락할게요.”“네, 알겠습니다.”상대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성유리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으니 결국 조용히 짐을 챙겨 회의실을 나갔다.그제야 성유리는 전화를 받았다.“아직 회의실에 있어?”수화기 너머 박한빈의 목소리는 살짝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첫 두 글자만 들어도 이미 감정이 묻어나왔지만 그는 곧 스스로 감정을 누그러뜨리려는 듯 어조를 차분하게 바꿨다.“네.”“그런데 내가 보낸 메시지는 왜 안 봤어?”“감독님이랑 이야기 중이었어요.”“아... 그래?”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4화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했다.이제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거의 다 박한빈 때문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였을까, 이우빈이 식사 제안을 했을 때도 성유리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하지만 막상 듣고 나니 순간적으로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잠시 고민하던 끝에, 담담하게 대답했다.“아마 그이도 시간 없을 거예요. 여기 온 것도... 원래 업무 때문에 온 거라서요.”“아, 괜찮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네.”성유리는 고개만 끄덕이며 대충 상황을 넘겼다.그렇게 대화를 마쳤으면 떠날 법도 한데 이우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성유리는 원래 하려던 대본 수정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바로 옆에서 버티고 있는 이우빈이 신경 쓰여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더 할 얘기 있어요?”“아니, 없습니다.”“그럼...”“전 그냥 할 일이 없어서 여기 있는 겁니다.”이우빈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작가님이 일하는 거 보는 게 꽤 재밌기도 해서요.”성유리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갑자기 이우빈이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맞다, 재국 형님이 오후에 라이브 방송을 잡아놨는데 작가님도 같이하실래요?”“전 괜찮...”“이번 신작 영화 관련해서 팬들이랑 얘기할 건데 제가 대본을 보긴 했지만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거든요. 작가님은 확실히 알고 계시죠?”“저도 잘 몰라요. 그리고 저 라이브 방송 안 할 거고요.”“그렇지만...”이우빈이 뭐라고 더 말하려던 순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성유리는 갑자기 몸이 굳었다.마치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우빈과 거리를 두고 있었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실례합니다, 성유리 씨 계십니까?”낯선 목소리에 성유리는 긴장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러나 이우빈이 먼저 나서서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던 건 배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3화

    성유리는 컵을 한 번 힐끗 보기만 해도 이우빈이 뭔가를 오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를 굳이 설명하기도 난감했다.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점심도 안 드셨던데 뭐라도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매니저더러 시켜드리라고 할까요?”“괜찮아요. 전 그냥...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그래요.”“그래도 굶으시면 안 됩니다. 밥은 꼭 챙겨 드셔야죠.”이우빈은 굴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면서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 성유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이거 보세요, 어제 유재국 형님이 드셨던 건데 꽤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죄송하지만 전... 감독님이 체중을 더 감량해야 한다고 해서 요즘 다이어트식만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천은 못 해 드리겠어요.”“아니, 정말 괜찮아요. 지금은 별로 안 먹고 싶어서...”“그럼 그냥 시켜놓겠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조금이라도 드셔야 하니까요.”이우빈은 성유리가 거절할 틈도 없이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리고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매니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뭔가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남자는 성유리를 한 번 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이우빈 씨, 유재국 씨께서 계속 찾고 계십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오랜 시간 인기 스타로 활동해 온 이우빈이 이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그렇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매니저를 향해 손을 휙 내저었다.매니저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결국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자, 빨리 드셔보세요.”그리고 이우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음식을 성유리 앞에 밀어놓았다.워낙 적극적인 태도에 성유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음식을 받아들었다.이우빈이 시킨 건 이 지역 특유의 비빔면이었다.고소한 참깨와 땅콩 소스가 올려져 있었는데 고추기름은 따로 곁들여져 있었다.“작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2화

    야시장은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였다.옆에서 스피커로 광고를 틀어대는 덕분에 원래도 시끄러운 거리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그런데도 박한빈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느꼈다.붐비는 인파 속에서, 진한 삶의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여자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박한빈에게는 그 말이 한 편의 사랑 고백처럼 들렸다.“나는 널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아.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어젯밤의 냉전도, 오늘 하루 내내 품고 있던 답답함도, 사실은 성유리 때문이 아니었다.박한빈은 그저 자신을 탓하고 있었을 뿐이다.뜻밖의 반응에 성유리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그럼... 이제 화 안 난 거지?”박한빈이 다시 물었다.그러자 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안 났어요.”사실 어젯밤 박한빈을 몰아붙이고 나서 성유리의 감정은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온 건 그저 그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선택한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니 박한빈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그러고는 성유리를 가만히 안아 올렸다.주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심지어 길 건너편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한빈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허리를 숙이고 성유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이제 그는 알맞은 힘과 각도를 완벽히 익혔다. 그래서 아프지 않지만 벗어나기도 쉽지 않은 포옹이었다.성유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박한빈의 가슴을 가볍게 밀어내며 말했다.“계속 구경 안 할 거예요?”“안 해.”그는 단호했다.성유리는 순간 당황했지만 박한빈이 곧장 자신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자 그제야 의도를 깨달았다.“저 아직 다 못 먹었는데요?”당황한 성유리는 발걸음을 뚝 멈추곤 말을 얼버무렸다.“가서 마저 먹어.”“진짜 먹을 수 있게 해 줄 거예요?”성유리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자 이번엔 박한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1화

    음식이 다 익자 아주머니는 건져 올린 재료들을 가위로 잘게 잘라 그릇에 담고 매운 고추장과 참깨를 듬뿍 뿌려 버무렸다.성유리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바라보았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이내 아주머니가 음식을 내주자 성유리는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들어 박한빈에게 내밀었다.“한번 드셔볼래요?”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 성유리를 뚫어져라 보던 박한빈은 입술을 달싹였다.몇 초 뒤, 마치 이제야 정신이 든 듯 천천히 입을 벌렸다.“맛있어요?”성유리가 기대에 잔뜩 찬 눈빛으로 물었다.음식이 입안에 들어오는 순간, 박한빈은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릴 뻔했다.하지만 성유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표정을 재빨리 고쳐 잡고 대답했다.“맛있네.”성유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도 한입 먹었다.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에릭 일은... 내 잘못이었어.”갑작스러운 말에 성유리는 젓가락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조언해 줬어. 사실... 그냥 무책임했지.”박한빈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그래서 오늘 확실하게 이야기했어.”“뭐라고 했는데요?”“결혼을 왜 하려는 건지 제대로 생각해 보라고 했어.”박한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이건 결국 에릭의 감정 문제잖아. 내가 너무 간섭하는 것도 안 좋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걔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거야.”“그래서 물어봤어. 이게 단순한 복수심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아라 씨와 결혼하고 싶은 건지.”“만약 에릭이 진심이라면 최소한 앞으로 아라 씨와 그 사람의 가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테니까. 그렇다면 결혼이 꼭 나쁜 선택은 아닐 수도 있잖아.”박한빈은 성유리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해?”그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마치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성유리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듯이.성유리는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0화

    이곳에 다시 온 건 사실 성유리에게도 몇 년 동안 처음 있은 일이었다.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곳은 사회의 발전과 함께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높이 솟은 빌딩들과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들.그 풍경 속에서 성유리는 마치 자신의 기억이 엉켜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아무리 큰 변화가 찾아와도 사람들의 생활 습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이 지역은 밤이 되면 산바람이 불어와 꽤 서늘했기에 매운맛과 강한 양념을 선호하는 문화는 여전했다.박한빈은 원래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지만 성유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주 매운탕을 먹으러 다녔다.물론 그는 여전히 맑은 국물을 선택했지만 가끔은 매운 국물에도 도전하곤 했다.그렇지만 오늘 밤 성유리는 매운탕 집 대신 내비게이션을 따라 근처의 음식 거리로 향했다.사실 전국 어디든 이런 음식 거리에서 파는 것들은 대체로 비슷했다.그런데도 박한빈은 이런 곳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고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 서 있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성유리는 불편해하는 박한빈의 기색을 눈치챘지만 아무렇지 않아 하며 말했다.“이 음식 거리를 지나면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요. 그리고 그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이 예전에 제가 다녔던 학교고요.”그 말을 들은 박한빈은 꽉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조금이나마 풀었다.“가볼래?”그러다 문득 그가 물었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을 한 번 흘겨보며 대답했다.“이 늦은 밤에 학교엔 누가 가요? 게다가... 전 못 가요.”“왜? 누가 널 보면 곤란해?”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사람이 아니고....”주변이 워낙 시끄러워서인지 박한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그래서 그는 몸을 숙이며 다시 물었다.“뭐라고?”성유리는 박한빈의 귀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다들 그러잖아요. 우리 학교는 원래 공동묘지였다고. 원한 맺힌 혼령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던데... 학교를 세운 뒤에도 밤이면 돌아다닌대요.”성유리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89화

    “응?”“그 사람이 나보다 잘생겼어?”“그게 아니라...”“혹시 내 젊었을 때랑 좀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야?”“박한빈 씨 지금도 안 늙었어...”“그런데 왜 그 사람을 남자 주인공으로 선택한 거지? 남자 주인공은 나여야 하는 거 아니야?”성유리는 상황이 좀 꼬여버렸다고 느꼈다.어젯밤, 그들은 격렬한 말다툼을 한 데다가 심지어 따로 잠을 잤었다.그녀는 최소 며칠은 냉전 분위기가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왜 대답 안 해?”박한빈이 다시 물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성유리는 그를 한 번 보고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캐스팅은 제가 관여하는 부분이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쓴 남자 주인공이 꼭 박한빈 씨라고 말한 적도 없고요.”“그럼 네 그림이랑 내 사진을 한번 비교해 보면...”박한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유리는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성유리의 작품은 늘 공개되어 왔고 출판되거나 영상으로 각색될 때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박한빈 입에서 직접 그런 말이 나오니 이상하게 부끄러웠다.“그래요. 맞다고 합시다.”하지만 박한빈이 계속해서 집요하게 쳐다보자 성유리는 이를 악물고 다시 말했다.“그래서 어쩌라고요? 각색은 각색일 뿐이에요. 설마 배우가 돼서 직접 연기라도 하겠다는 건 아니죠?”“연기는 안 해. 하지만 네가 인정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해.”성유리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박한빈도 잠시 조용해졌다.이 대화는 이쯤에서 끝이 난 것 같았다.그렇지만 이제 그들 사이의 현실적인 문제로 다시 돌아왔다.예를 들면 성유리가 왜 여기 있는지, 왜 말도 안 하고 혼자 왔는지 같은 것.성유리는 천천히 손을 내렸고 박한빈도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그는 입술을 다물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 순간 성유리의 휴대폰이 먼저 울렸다.성유리는 박한빈을 살짝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엄마, 왜 내 메시지 안 봤어?”수화기 너머 하늘이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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