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극 로맨스 / 폭군의 장군 황후 / 챕터 101 - 챕터 110

폭군의 장군 황후의 모든 챕터: 챕터 101 - 챕터 110

691 챕터

제101화

서왕이 먼저 예를 취했다.“폐하를 뵙습니다.”소욱의 시선은 서왕을 지나쳐 곧장 봉구안에게로 향했다.한참 후, 그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그녀를 보고 말했다.“태황태후께서는 외부인이 휴식을 방해하는 걸 싫어하시니 이만 돌아가거라.”옆에서 듣고 있던 연상은 화가 치밀었지만 감히 황제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이 나라 황제의 정실인 황후이고 태황태후의 손주며느리가 되는 분을 외부인이라고 칭하다니!반면 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예를 갖추었다.“예, 폐하.”어차피 그녀가 원해서 온 자리도 아니었다.그가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 그녀가 바라던 바였다.잠시 후, 만수궁.태황태후가 상석에 앉고 양옆에 황제와 서왕이 자리했다.태황태후가 불쾌한 안색으로 물었다.“황후는 왜 아직도 문안인사를 올리러 안 오는 거지?”소욱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히 답했다.“황후는 말주변이 없어서 할마마마의 짜증만 불러올 것 같아 짐이 돌아가라 하였습니다.”태황태후는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으나, 황제와 서왕이 돌아간 후 주 상궁을 시켜 황후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잠시 후, 외출했다가 돌아온 주 상궁이 아뢰었다.“소인이 알아봤는데 황후께서는 어제 몸이 편찮으시더니 밤에는 기절까지 하였다 하옵니다.”“폐하께서도 황후마마를 안타까이 여기시어….”“아니, 황상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태황태후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그녀가 아는 황제는 어느 여인을 안타깝게 여길 사람이 아니었다.그날 저녁.봉구안은 오백에게서 날아온 서신을 받았다.조검의 동생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조검을 옥에 가둘 때, 귀비가 조검의 가족들에게 마수를 뻗칠 것을 그녀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이미 이용가치를 잃은 하인이니 우환을 미리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아니나다를까, 오백이 조검의 고향집을 찾아갔을 때 그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주변인들에게 알아보니 일가족이 밤중에 자다가 화재가 일어 전부 불에 타죽었다고 했다.오백은 현장에서 시신을 대조했지만 일가족 여섯 명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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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귀비는 눈을 떴다.대전 안에 황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귀비의 얼굴에 잠깐 실망의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춘화는 싱글벙글 웃으며 안으로 들어와서 그녀에게 말했다.“역시 폐하는 마마를 제일 총애하시는 것 같아요.”“아침에 나가실 때도 마마 원기회복하라고 꼭 삼계탕을 끓여서 대령하라고 신신당부하셨거든요. 마마,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제도 승은을 입으셨나이까?”귀비의 심복으로서 황제가 귀비를 총애하는 건 더없이 바람직하지만 아직 부상이 낫지도 않았는데 승은을 입는 것은 회복에 좋지 않았다.춘화는 저도 모르게 걱정이 앞섰다.귀비는 질문에 대답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물 좀 다오.”아침 시중을 드는 중에 춘화가 말했다.“태황태후께서 곧 옥양산으로 떠나신다고 합니다. 배웅을 나가실 거죠?”귀비는 냉소를 짓더니 증오에 찬 눈빛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배웅? 다 죽을 노친네 배웅을 왜 나가?”“봉장이 그년을 엄하게 다스릴 줄 알았더니 오자마자 폐하께 합방을 강요하지 않나! 노인네가 늙어서 노망이 난 게 분명해!”춘화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문밖을 살폈다.“마마, 그런 말을 하시면 아니되옵니다.”지금의 영소전은 예전과 비할 수가 없었다.황후는 권력을 잡은 후로 궁녀와 태감을 한바탕 물갈이를 했다.비록 가까이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은 바뀌지 않았지만 자칫 잘못해서 말이 새어나갈 수도 있었다.귀비가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일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지?”춘화가 답했다.“걱정 마세요, 마마. 이미 황성수비사에 언질을 전했습니다. 황후의 오라버니는 고작 구품 좌장에 불과하니 시비에 휘말리게 하는 건 일도 아니지요.”봉구안의 본가.황제와 황후가 드디어 합방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봉 대인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그는 술기운에 취해 부인의 손을 잡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내 이럴 줄 알았어. 구안이는 해낼 줄 알았다니까!”“조금만 더 힘을 내서 황자를 회임하면 앞으로 황후의 입지는 더 단단해질 거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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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삼엄한 궁중 법도 덕분에 봉 부인은 꼬박 하루를 기다려서야 봉구안을 만날 수 있었다.오라버니의 상황을 전해들은 봉구안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꼬투리를 잡힐 일만 하지 않으면 돼요.”최근 봉안진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그녀도 조사하고 있는 중이었다.하지만 과거가 어쨌든 봉가의 장남으로서 이대로 계속 기가 죽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봉 부인은 딸의 냉담함이 서운했다.“안진이는 마마의 오라버니예요! 이대로 진로가 막히면 앞으로 가문은 어찌하고요? 아무리 어렸을 때 같이 자라지 않았어도 그렇지….”봉구안은 싸늘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라버니 스스로 깨우치고 일어나야 하는 문제입니다.”“지금 이 상황이 온 게 다 오라버니께서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한낱 좌장의 자리에 만족하며 살았기 때문이지요. 오라버니의 진로를 막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라버니 자신입니다.”“장미가 사고를 당했을 때, 오라버니께서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였는데 어찌 가문의 중임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봉 부인은 서글픈 얼굴로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탄하듯 말했다.“마마께서는 안진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요.”“아니요. 저도 알만한 건 다 압니다. 식량을 운반하던 수십 명의 장령들 중에 오라버니만 살아남았지요. 그 뒤로 죄책감에 빠져 투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아닙니까.”사실 상, 봉구안이 그동안 겪은 일에 비하면 봉안진의 겪은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 역시 억울함을 당한 적이 많았다.모시는 장군이 그녀가 자신보다 먼저 공을 세우는 것이 두려워서 그녀를 편벽한 산골짜기에 남겨두고 성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그 전장에서 그녀는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상관에게 거만했다는 이유로 포상은커녕 심도 높은 조사와 심문을 받았다.함께 싸우던 전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3년 전, 그녀가 인솔하던 100인 소대 중에 다섯 명만 살아서 돌아왔다.분명 어제도 같이 술을 마셨던 동료가 한순간에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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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영화궁.소욱은 음침한 얼굴로 봉구안을 노려보며 추궁하듯 말했다.“오늘 마침 짐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황후가 몰래 그런 약을 먹고 있는 줄도 몰랐겠군.”봉구안은 평온한 얼굴로 침착하게 대답했다.“약은 어머니께서 입궁할 때 가져다주셨습니다. 가족들은 저와 폐하의 합방이 진짜라고만 알고 있으니 기대를 할 수밖에 없겠지요. 대놓고 아니라고 할 수 없어서 연상에게 조용히 처리하라고 했던 것입니다.”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대답에 거짓말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소욱은 그녀를 빤히 응시하다가 싸늘하게 말했다.“황후, 갖지 말아야 할 욕심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딱딱한 어조로 방문한 목적을 꺼내놓았다.“양나라 사신이 곧 도착하니 초대연회를 베풀 것이다. 예전에는 다 귀비가 맡아서 했지만 귀비가 부상 중이니 황후에게 맡기지.”“양국의 평화가 달린 중대한 일이니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다!”봉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양나라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를 인간들이었다.그들의 이번 남제 방문의 목적은 불투명하지만 필히 한차례 피바람이 불 것이다.무장들은 전장터에서 제 몫을 했으니 남은 건 대신들의 몫이었다.“예, 명심하겠습니다.”한편, 귀비도 바쁘게 돌아치고 있었다.“봉 부인이 입궁했다고?”춘화가 답했다.“예, 마마. 장남 일로 급하게 황후궁을 방문한 것이겠지요. 황후도 아마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라할 것입니다. 이제 마마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알았겠지요. 아마 곧 마마께 고개 숙이고 사죄하러 올 것 같네요.”비록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험난한 황궁에서 살아남으려면 친정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친 오라버니가 변을 당했으니 황후도 애가 탈 것이다.그래서 춘화는 황후가 오늘 안으로 무조건 사과하러 영소전을 방문할 것이라 확신했다.만약 사죄를 거부한다면 봉안진은 계속해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귀비도 황후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봉 부인이 출궁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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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봉가 저택.봉 부인은 옷차림이 흐트러진 상태로 돌아온 아들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안진아, 대체 어떻게 된 거니?”봉안진은 묵뭄부답으로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귓가에는 과거의 처참했던 칼부림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눈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그는 이 모든 게 자신이 무능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형님!”그의 앞을 가로막은 봉명헌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고 시비조로 물었다.“형님, 관직에 계신 분이 옷차림이 이게 뭔가요?”봉안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봉명헌은 임명장을 흔들며 자랑하듯 말했다.“이거 봤죠? 저 통사가 되었어요! 그것도 팔품이요! 품계로 따지면 좌장보다 더 높답니다!”“축하한다.”그 말을 끝으로 봉안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지나쳤다.봉명헌은 멀어지는 그의 등 뒤에 대고 침을 뱉었다.“멍청한 놈!”한때는 무장 장원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한낱 관직을 잃은 평민에 불과했다.‘역시 이 집안의 기둥은 나야!’봉명헌은 의기양양하게 생각했다.이청원.임씨는 아들이 통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십여 년을 참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어깨를 펼 날이 온 것이다.그녀는 임명장을 애지중지 들고 손에서 놓기 아쉬워했다.“우리 아들, 정말 잘했어! 어서, 가서 나으리를 불러와. 나중에 이 소식을 네 아버지께 알리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이때, 시종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이랑, 큰집 쪽에서 난리가 났어요. 큰 도련님께서 관직에서 파면당해 나으리께서 화를 내고 계세요.”임씨 모자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좋은 일이! 명헌아, 이제 우리 모자 어깨 펴고 살 수 있겠어!”봉 대인은 줄곧 장남이 높은 관직에 올라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관직은 올라가기는커녕 점점 내려가기만 하더니 이제 구품 관직도 잃어버렸으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분노가 치민 봉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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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열흘 만에 결국 발작하고 말았는데 송려에게서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봉구안은 조용히 내력을 운영하여 독성의 발작을 억제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해독약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었다.그녀는 소욱을 찾아가 해독약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그날 밤.그녀는 변장을 하고 장신궁으로 향했다.이번에 그녀는 더욱 더 신중히 움직였다.장신궁 주변에 매복은 없었고 대전 안에는 진한길 혼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폐하께서는 독으로 너를 통제할 수 있으니 체포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경계할 것 없어.”봉구안은 당연히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폭군은 언제 생각이 바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약을 받은 그녀는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갔다.진한길도 그녀를 뒤쫓지 않고 자진궁으로 돌아갔다.소욱은 책상 앞에 마주앉아 자객이 남기고 간 채찍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진한길은 황제가 왜 이걸 여태 가지고 계신지 이해할 수 없었다.“폐하, 그 자객을 이대로 풀어둬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소욱이 싸늘하게 대꾸했다.“잡으라고 하면 잡을 수는 있고?”몇 번의 매복이 있었지만 그녀를 잡는데는 실패한 그들이었다.만반의 준비가 없이 섣불리 움직인다면 상대가 수 틀려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지금 상황으로서는 독으로 통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소욱은 그녀가 궁 안에 잠복해 있는 목적이 궁금해졌다.깊은 밤, 영화궁.봉구안은 해독약을 가루로 만든 후에 소량을 취해 종이에 감싸고 비둘기 다리에 묶어서 날려보냈다.그리고 남은 것은 전부 입안에 털어넣었다.송려가 한시라도 빨리 해독약을 만들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봉가 저택.장남은 관직에서 파면당하고 동생인 봉명헌은 통사가 된 후로 봉 대인의 태도도 눈에 띄게 바뀌었다.이미 장남에게 실망할대로 실망한 그는 며칠 연속 임씨의 이청원에 머물렀다.임씨 모자는 그럴수록 의기양양해졌고 봉 부인의 처소는 쓸쓸함이 감돌았다.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황성 수비사에 자신의 물건을 가지러 간 봉안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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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붉은색 궁복은 황후의 상징이었다.귀비가 화려하게 단장하고 나타난 이유도 황후의 체면을 짓밟기 위함이었다.하지만 황후가 나타나자 그녀를 향했던 시선은 모조리 황후에게로 향했다.귀비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황후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가 저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졌다.황색 궁복에 황후의 상징인 왕관을 머리에 쓴 황후가 눈부신 자태를 뽐내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귀비에게서 볼 수 없었던 존귀한 귀티가 뿜어져 나왔다.귀비를 경국지색이라고 치면 황후는 인간세상에서 보기 드문 고결한 아름다움이었다.귀비를 정복 욕구를 자극하는 한 떨기의 꽃에 비유한다면 황후는 감히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죄책감이 느껴지는 밤하늘에 고고이 빛나는 달이었다.자리에 앉은 태후는 황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봉황에 가장 어울리는 여인.이런 여인만이 황후의 자리에 어울리는 여인이라 할 수 있었다.‘봉가의 여식은 여전히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태후는 속으로 생각했다.저도 모르게 존경심이 들게 만드는 풍채는 능연처럼 여리여리한 여인이 흉내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사신들은 결례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시선을 떨구며 그녀에게 예를 취했다.“황후마마를 뵙습니다.”봉구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일어나시게.”상석에 앉은 소욱도 무심한듯 봉구안을 관찰했다.오늘 본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하지만 어디가 다른지는 꼭 집어 말할 수 없었다.귀비의 두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요망한 년! 분명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늦게 온 걸 거야!’‘하지만 너무 기뻐하지는 마. 곧 온 나라 대신들이 있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될 터이니….’이번 궁중 연회에는 관원들의 식솔들도 함께 참석했다.봉 대인은 당연히 장남인 봉안진과 동행했다.서자인 봉명헌은 사신을 접대하는 통사직을 맡았기에 위풍당당하게 사신들과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연회가 시작되자 사람들 틈에서 악의가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제의 황제폐하께서는 참으로 상남자이십니다.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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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황후마마!”양국의 사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하지만 이 몸은 한 번도 그런 유언비어들을 진실이라 믿지 않았다.”사신들은 갑갑한 마음에 서로 눈치만 살폈다.당사자인 황후가 이렇게 대범하게 나오는데 이 자리에서 얼굴을 붉힐 수는 없었다.그리고 남제 황후의 입에서 더 많은 소문들이 나올까 봐 두려웠다.후르달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대답했다.“예, 다 헛소문입니다! 저는 악취가 없습니다!”재상의 건강 상태는 그가 감히 거론할 바가 아니었다.약간의 소동이 있은 후, 사신들은 아무도 감히 황후의 납치 사건에 대해 꺼내지 못했다.반면 남제의 대신들은 입장이 달랐다.그들은 황후에게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한편, 귀비는 몰래 입술을 깨물었다.후르달이 이대로 입을 다문 것이 불만이었다.‘고작 유언비어 따위에 겁을 먹다니!’사실 봉구안이 말한 것들은 전부 사실이었다.그리고 양나라 사신들은 듣고 싶지 않겠지만 그녀는 더 많은 ‘소문’을 알고 있었다.소욱은 무심한듯 황후를 바라보았다.황후가 양나라에 대해 이리도 많이 알고 있을 줄은 그의 예상밖이었다.양나라 황제의 말못할 비밀은 대체 뭘까?그녀는 이것말고도 얼마나 많은 비밀을 알고 있을까?후르달 옆에 앉은 봉명헌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지금의 봉구안은 그가 알던 봉장미와 사뭇 달랐다.여리고 착하기만 하던 봉장미는 전에는 한 번도 누구에게 독설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사람들 중에 혼자만 진실을 알고 있는 봉 대인은 몰래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혼란스럽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양나라의 사신들 면전에 대고 면박을 주다니!이런 일은 사내가 나서서 해결해야 마땅했다. 봉 대인은 여인인 봉구안이 자꾸만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것이 불편했다.사내라면 강인하고 기가 센 여자에게 매력을 느낄 리 없었다.‘이러니 혼인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합방을 했지.’그는 부인을 시켜 잘 타이르게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맹씨 부부가 너무 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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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봉가의 형제는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황제인 소욱마저도 차마 거절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봉가의 형제에 대해 그도 들은 바가 있었다.둘째인 봉명헌은 소문난 망나니에 게으른 인간이었다.봉안진은 어렸을 때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장원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무관 시험은 해마다 있고 아무리 무술 실력이 출중한 자일지라도 모두가 인정할 업적을 세우지 못하면 잊혀지기 마련이었다.그래서 소욱은 이번 대결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어차피 두 번 정도는 양나라에 승리를 양보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나중에 올라간 사람이 괴두를 쓰러뜨리고 최종 승리를 거머쥐기만 하면 남제는 위상도 유지하면서 손님을 너무 박대했다고 욕을 듣지 않아도 되니 괜찮은 결과였다.그는 궁인을 불러 나직이 지시를 내렸다.“준비하라 이르거라.”“예, 폐하!”봉명헌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저… 정말 올라가야 한다고?’그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황제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자 거절의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그가 눈치가 없어도 이 상황에서 거절한다면 앞으로 진로가 막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더라도 황제의 앞에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경기장에 올라가서 패배하는 것과 싸워보지도 않고 기권하는 의미 자체가 달랐다.봉가의 형제가 준비하러 간 후, 귀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제안했다.“폐하, 연회에서 무장들의 싸움을 보는 건 좀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아요.”“신첩이 듣기로 민간의 마야족은 매년 씨름대회를 여는데 축제 분위기를 위해 선수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고 해요. 가면은 그들에게 마야신을 향한 존경을 표하는 의미이기도 하고요.”“오늘의 비무도 재미를 위한 것이니 마야족의 풍습을 본떠 가면을 쓰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옆에서 궁인들이 북과 징을 울면서 흥을 돋우면 좋을 것 같아요.”가면을 쓰고 입장한다면 맞아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고 졌다고 소리를 질러도 가까이에 있지 않은 이상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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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봉안진은 어제 설지의 부하들에게 맞아 오른팔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이 상태로 비무장에 나간다면 괴두를 쓰러뜨리기는 고사하고 능욕만 당할 것이다.봉구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봉명헌은 비무장에서 괴두의 주먹에 농락당하고 있었다.승부는 일목요연했다.남제의 관원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그들은 아무리 그래도 유명한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봉가의 차남이 이렇게 처참히 패배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봉 대인은 존재감을 줄이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그는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할 수만 있다면 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쾅! 소리와 함께 봉명헌은 무대에서 굴러떨어져 의식을 잃었다.하지만 떨어지는 순간에도 가면은 그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궁인들이 달려가서 그를 부축했다.봉 대인은 걱정이 되었지만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흥분한 괴두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야수처럼 포효했다.“아직 부족해! 다음 주자 올라와!”남제의 무장들은 분노에 휩싸였다.귀비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폐하, 다음 주자는 봉가의 장남이 나서기로 하지 않았나요?”후르달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모두가 봉안진이 겁을 먹고 도망갔다고 생각했다.소욱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봉안진은 어디 있느냐!”잠시 후, 태감 한 명이 다가와서 작게 아뢰었다.“폐하, 봉가의 장남은 몸이 불편한다고 잠시 쉬러 갔습니다.”주변을 둘러보던 귀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황후가 사라진 것이다.‘봉명헌이 맞는 장면을 보고 겁이 나서 도망간 건가?’‘어쩌면 봉안진이 시간을 끌고 있는 것도 황후의 사주를 받아서일지도 몰라!’귀비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빛났다.“폐하, 무려 봉가의 장남인데 비무를 피한다고 꾀병을 부리진 않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볼까요?”하지만 괴두는 인내심이 많은 인간이 아니었다.대결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는 짜증이 치밀었다.그는 비무장 옆에 있는 나무 기둥에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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