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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작가: 일설연우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5 13:45:57
봉가의 형제는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황제인 소욱마저도 차마 거절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봉가의 형제에 대해 그도 들은 바가 있었다.

둘째인 봉명헌은 소문난 망나니에 게으른 인간이었다.

봉안진은 어렸을 때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장원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무관 시험은 해마다 있고 아무리 무술 실력이 출중한 자일지라도 모두가 인정할 업적을 세우지 못하면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욱은 이번 대결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어차피 두 번 정도는 양나라에 승리를 양보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올라간 사람이 괴두를 쓰러뜨리고 최종 승리를 거머쥐기만 하면 남제는 위상도 유지하면서 손님을 너무 박대했다고 욕을 듣지 않아도 되니 괜찮은 결과였다.

그는 궁인을 불러 나직이 지시를 내렸다.

“준비하라 이르거라.”

“예, 폐하!”

봉명헌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 정말 올라가야 한다고?’

그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황제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자 거절의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가 눈치가 없어도 이 상황에서 거절한다면 앞으로 진로가 막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더라도 황제의 앞에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

경기장에 올라가서 패배하는 것과 싸워보지도 않고 기권하는 의미 자체가 달랐다.

봉가의 형제가 준비하러 간 후, 귀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제안했다.

“폐하, 연회에서 무장들의 싸움을 보는 건 좀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아요.”

“신첩이 듣기로 민간의 마야족은 매년 씨름대회를 여는데 축제 분위기를 위해 선수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고 해요. 가면은 그들에게 마야신을 향한 존경을 표하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오늘의 비무도 재미를 위한 것이니 마야족의 풍습을 본떠 가면을 쓰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옆에서 궁인들이 북과 징을 울면서 흥을 돋우면 좋을 것 같아요.”

가면을 쓰고 입장한다면 맞아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고 졌다고 소리를 질러도 가까이에 있지 않은 이상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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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는 그날 이후로 병을 앓았다.태의는 고뿔에 걸렸다고 말했으나 소욱은 정무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그렇게 12월이 되던 어느 날, 이혼 교지가 드디어 내려졌다.연상은 기쁨에 겨워 봉구안에게 말했다.“마마, 드디어 떠나실 수 있겠네요!”그녀는 진심으로 황후를 위해 기뻐했다.전에 황제의 행실을 보고 황후가 평생 이 궁에 구금을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그녀였다.다행히도 황제는 결국 생각을 바꿔 황후를 놓아주기로 한 것이다.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폐후가 아닌 이혼이라는 점이었다.역사를 통틀어 황제와 이혼한 황후는 없었다.연상과는 달리, 최 상궁은 구슬피 울었다.“마마, 어찌 이리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 왜 굳이 궁을 떠나시려는 거예요!”최 상궁은 복도에 주저앉아 오열했다.지나가던 궁인들이 그녀를 부축했지만 그녀는 듣지도 않았다.내전 안.봉구안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교지를 빤히 바라보았다.평화로운 이별, 그녀가 바라던 상책이었다.이렇게 되면 봉씨 가문과 연상을 비롯한 궁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소욱과 그녀는 이제 아무 사이라도 아니라는 것을 만 천하가 알게 될 것이고 이는 황후의 실종보다는 귀찮은 일들을 덜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고요하기만 했다. 어쩌면 그녀는 마음을 억누르는데 도가 텄을지도 모른다.봉구안의 짐은 많지 않아서 보따리 하나로 해결되었다.일각이 지난 후, 그녀는 출궁 준비를 마치고 교지를 들고 영화궁을 나왔다.영화궁 밖, 진한길이 굳은 표정을 하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황후를 본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소인 감히, 마마께서 생각을 돌리시기를… 청합니다.”이는 그가 처음으로 황제의 허락을 받지 않고 청한 일이었다.봉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길은 전방에 있다.”그러니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잠깐의 동요는 있었지만 그걸 위해 평생을 헌신할 자신도 없었다.진한길은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바라보며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503화

    소욱은 황후를 꽉 안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황후, 짐은 너를 속이지 않았다. 영비의 아이는 짐의 것이 아니었어. 증거를 찾았다. 네가 못 믿을까 봐. 이제 짐은 드디어 내 결백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짐을 떠나지 말거라.”말을 마친 그는 떨리는 손으로 궁인들에게서 확보한 증거를 그녀에게 내밀었다.봉구안은 멍하니 있다가 그의 손을 밀쳐냈고, 그 순간 종이에 적힌 진술서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을바람이 창문 안으로 들어와 종이가 흩날렸다.소욱은 급급히 진술서들을 줍다가 표정이 굳었다.그 순간 그는 갑자기 정신이 들어 진술서들을 버리고 눈앞의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의 눈동자가 빨갛게 붉어졌다.그는 여전히 갈린 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짐의 결백 여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냐.”봉구안은 진술서들을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굳이 이런 일을 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폐하와 영비 때문에 떠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지금까지도 소욱은 그녀가 왜 떠나려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소욱의 눈가에 그림자가 드리웠다.“알고 있었다. 네가 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대가 짐이 아닌 단회욱이었더라면 넌 절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테지.”“짐은 영비와 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초조해졌었다. 짐이 진짜로 그 아이를 품었고 그 일 때문에 네가 떠날까 봐.”“너에게 그 일을 숨길까 생각도 했었다. 아니면 진실을 다 조사한 후에 너에게 얘기할 생각이었지.”“하지만 진실이 어떻든, 너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드디어 그 증거를 찾았는데… 너는 전혀 동요가 없구나.”그는 그제야 그들 사이에 이미 미래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너무 급한 마음에 최 상궁의 헛소리를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소욱은 가까이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여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침묵이 곧 답이었다.그녀는 진실이 어떻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한참이 지난 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502화

    악몽에서 깬 소욱은 더 이상 잠들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침상을 내린 그는 옷을 걸치고 곧장 영화궁으로 향했다.영화궁에 도착한 소욱은 바로 침전으로 들어가는 대신, 멍하니 밖에서 방 문을 바라보았다.이 시간이면 황후는 잠들어 있을 것이다.그가 들어가야 할지 주저하던 사이에 최 상궁이 다가왔다.최 상궁은 황후화 황제가 화해했으면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 황후께서 말은 그렇게 하셔도 사실은 그냥 폐하께 서운한 일이 있어서예요. 소인이 괜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니고, 황후께서는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라 폐하와 영비마마께서…”소욱은 이상을 찌푸리며 최 상궁에게 물었다.“황후가 영비 때문에 화가 났단 말이냐?”최 상궁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황후께서 평소에 폐하를 얼마나 생각하시는데요. 그게 아니라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자를 변방까지 운송했겠어요? 폐하께서 출정을 떠나신 동안, 마마께서는 폐하를 그리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영비마마가 돌아오시고 황후마마는 갑자기 돌변하셨죠. 이혼을 제기한 것도 그 시점이고요.”“만약 폐하께서 정말 과거의 일을 신경 쓰신다면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얘기를 꺼냈을 리가 없지요. 폐하, 소인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폐하께서 영비마마의 침전으로 가신 그날 밤, 황후마마도 그곳에 가셨습니다. 돌아오신 후, 표정이 안 좋으셨지요.”소욱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그가 장락궁에 머문 그날 밤이라면 흑포가 탈옥한 날이었다.아마 흑포 때문에 그를 찾아갔을 것이다.하지만 최 상궁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궁으로 돌아오기 전, 남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황후는 멀쩡했다.그녀가 돌변한 건 궁으로 돌아온 후, 영비가 한때 회임했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그날 서재에서 그는 영비를 시켜 자신과 영비가 합방한 적 없다는 사실을 해명하게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조촐한 설명이 아닐 수 없었다.어쩌면 황후는 어릴 때부터 그와 함께 자란 영비가 그와 짜고 자신을 속이는 거라고 오해했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501화

    태황태후는 진짜로 죽으려던 게 아니라 죽음으로 소욱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그걸 아는 소욱은 태의가 태황태후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고하자마자 굳은 목소리로 경고했다.“할마마마, 굳이 짐을 이렇게 괴롭히셔야겠습니까.”태황태후는 침상에 누워 슬픔에 잠긴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를 협박하는 게 아닙니다. 폐하가 안타까워서 그래요!”“조중의 일은 이 늙은이도 들었습니다. 그 아이 때문에 이 지경이되었는데도 그 아이의 진짜 속마음을 모르시는 겁니까?”“그 아이는 작정하고 궁을 떠나려는 겁니다. 폐하께선 그 아이를 마음에 품었고 옆에 두고 싶겠지만 그 아이는 아니에요.”“딴마음을 품은 여자를 어찌 옆에 묶어둔단 말입니까? 폐하, 선황의 원비 기억하십니까? 진심으로 황후를 아끼신다면 황후가 원비의 처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 아닙니까?”소욱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아름답지만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원비는 선황이 가장 사랑하던 여인이었다.하지만 그 여인은 선황을 사랑하지 않았다.선황은 그녀를 강제로 궁에 머물게 하고 심지어 황후로 책봉할 생각까지 품었었다.하지만 입궁한지 3년만에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렸다.원비 이야기는 황궁의 금지어였으나, 황실의 핏줄인 소욱은 그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원비는 칼로 자신의 얼굴을 긋고 긴 검을 자신의 배에 찔러넣었다. 그때의 원비는 회임 중이었다.뱃속의 아이와 함께 장렬하게 죽음을 택한 것이다.그는 선황이 그녀의 시체를 품에 안고 장례도 거부하고 이틀이나 슬픔에 잠겨 있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그 뒤로 선황은 성격이 완전히 변했다.육신은 살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마음이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매정했다.소욱의 머릿속에는 장렬히 죽어갔던 원비의 처참한 모습과 슬픔에 울부짖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태황태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선황께선 아들들에게 제왕은 정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그건 본인이 사랑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입니다.”“이 늙은이도 그때

  • 폭군의 장군 황후   제500화

    소욱이 모습을 드러내자, 백성들은 두려워하거나 혹은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유사양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꾸짖었다.“대담하구나! 너희들은 폐하를 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예를 올리지 않느냐?”그러자 백성들은 즉시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그러나 누군가는 약한 목소리로 외쳤다.“이혼…”소욱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서 있었으며, 넓은 곤룡포가 바람에 펄럭였다.그의 시선은 봉구안에게 닿았다.“황후는 궁으로 돌아가시오!”그러나 봉구안은 그 자리에서 단호히 외쳤다.“폐하께서는 이혼을 허락해 주시옵소서.”소욱의 손은 단단히 움켜쥐어졌고, 손바닥의 상처는 지금 그의 천 갈래 만 갈래 찢긴 마음만큼 아프지 않았다.조금 전 황후가 말한 모든 것들.그는 들었다.그리고 그것이 모두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그녀가 그로 인해 떠나고 싶어 한다면, 그들 사이에는 아직 희망이 있을지도 몰랐다.그가 저지른 상처를, 기필코 회복시킬 것이다.그러나 이혼? 그것만은 결코 허락할 수 없다!소욱은 분노에 차서 시위들을 쏘아보았다.“너희들은 다 죽었느냐!”유사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폐하, 등문고의 규칙은 깨뜨릴 수 없는 것이옵니다.”소욱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이 등문고를 치워라!”이런 빌어먹을!그는 이 물건이 있는 걸 잊고 있었다.“폐하, 결코 그렇게 하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몇몇 대신들이 극구 만류했다.“폐하, 등문고는 선조께서 세우신 것으로, 이를 없애는 것은…”“짐이 치우라 했다!” 소욱의 목소리는 반박을 용납하지 않았다.그러나 실상, 억울한 사람이 이 북을 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등문고는 그저 황실의 공정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일 뿐이었다.시위들은 명령에 따라 등문고를 옮기고 봉구안을 에워쌌다.그러나 봉구안은 평온한 눈빛으로 소욱을 바라볼 뿐이었다.황후가 등문고를 친 일은 금세 온 세상에 알려졌다.선량한 사람들은 황후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오랜 세월 고통받아온 여성들은 황후의 처지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99화

    궁문 밖은 수많은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대체 무슨 일인가?”“모르겠네, 나도 막 와 보았네.”“들어 보니 황후께서 이혼을 청하셨다던데…”“뭐라고?! 이혼? 황후께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평범한 여인이라도 이혼을 청하려면 시댁의 온갖 압박을 견뎌야 하는데, 문벌 높은 집안에서는 ‘여인이 이혼할 수 없고, 단지 버림받을 뿐’이라 하지 않았던가.하물며 황후가 이혼을 청하다니!사람들은 입을 모아 중얼거렸다.“황후마마께서 미치신 게 분명해…”등문고 아래.봉구안은 단단한 눈빛으로 백성들 앞에 섰다.목소리는 우렁찼으며, 한 마디 한 마디가 울림이 있었다.“창천이시여!”“첫째로 고하옵나니, 혼인을 했으나 받들지 않으셨습니다.”“제후의 대례를 올리셨으나, 폐하께서는 신 대신 다른 이를 보내 혼례를 행하게 하셨사옵니다.”“둘째로 고하옵나니, 혼인을 하셨으나 믿지 않으셨습니다.”“초야에 들어가자마자, 폐하께서는 제 정결을 의심하시어, 봉가의 명예를 짓밟으셨사옵니다.”“셋째로 고하옵나니, 첩을 사랑하시고 아내를 멸시하셨습니다.”“혼인한 밤, 정실을 내버려 두고 비빈과 함께 밤을 보내셨으며, 황후의 인장은 비빈에게 맡기셨사옵니다.”“넷째로 고하옵나니, 아내를 방치하고 돌보지 않으셨습니다.”“폐하께서는 연이어 궁중에서 제 몫을 삭감하셨고, 그로 인해 저는 지참금까지 모두 소진하게 되었사옵니다.”“다섯째로 고하옵나니,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셨습니다.”“궁에 들어온 지 1년이 넘었으나, 수시로 궁규를 필사하게 명하시고, 팔이 부러지게 하시고, 은침으로 몸을 찌르셨사옵니다.”“마지막으로 고하옵나니, 호랑이를 길러 화를 부르셨습니다.”“폐하의 방임이 후궁 황귀비를 제멋대로 굴게 하여, 그녀는 혼례 전 저를 납치하고 명예를 훼손하며 헛소문을 퍼뜨렸사옵니다…”“그만! 그만두거라!!”봉구안의 부친 봉 대인은 군중을 뚫고 앞으로 나왔다.관모는 삐뚤어져 있었으나 바로잡을 겨를조차 없었다.그는 막아서는 시위들을 향해 고함쳤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98화

    소욱은 알고 있었다.지금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번져버린 것은 모두 황후가 낮에 태황태후를 찾은 탓이었다.그는 그녀가 할마마마께 도움을 청하려는 줄로만 알았다.이제야 깨달았다. 그녀의 목적은 바로, 온 세상이 그를 규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하지만 도대체 언제부터였단 말인가?후궁들조차 그녀를 이렇게까지 감싸게 된 것이!정말이지, 그녀의 능력은 대단했다.소욱은 내전으로 들어섰다.그곳에 태연히 앉아 있는 봉구안을 거칠게 끌어올리며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물었다.“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광경이느냐?”봉구안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폐하께서 이대로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면, 장차 폐하께 제 목숨을 청원할 이들은 백성과 장병들이 될 것이옵니다.”소욱은 자신을 비웃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대체 무슨 청원이란 말인가? 내가 너에게 해를 끼쳤다고 말하려는 것이냐?”“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자일 것이다!”“분명히 떠나겠다고 한 건 너였고, 나를 저버린 것도 너였다!”“나는 너에게 천 번 만 번 잘해 주었는데, 너는 마음이 돌처럼 차가워, 죽은 사람 하나만도 못하지 않았느냐!”봉구안은 여전히 고요한 얼굴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그 고요함이 그를 더욱 비참하고 화나게 만들었다.마치 자신이 혼자만 난리를 치는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녀의 침묵은 소욱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그는 이를 악물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나와 끝까지 싸우겠다면, 내가 너에게 이 남제의 태양이 누구를 위해 떠오르는지 보여주도록 하마!”…그날 밤.후궁들은 영화궁 밖에서 밤새도록 무릎을 꿇고 있었다.다음 날이 되자 전조의 대신들 몇몇이 차례로 상소를 올렸다.“폐하, 후궁의 일은 원래 신들이 간섭할 바가 아니지만, 황후께서는 모범적인 군후이십니다.”“전쟁 중에는 기도를 올리셨고, 그 뒤로는 군량미를 직접 보내셨사옵니다.”“이토록 어진 황후를 어찌 그렇게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97화

    영화궁 밖.수많은 후궁들이 줄지어 꿇어앉아 있었다.그들 모두 황후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황제께서 자신들에게 무심하신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었으나, 황후마마처럼 훌륭하신 분께까지 그러하시다니!황후마마는 군량미를 보내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으셨건만, 결과는 어찌 되었단 말인가?영비가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황후께 냉담해지셨고, 심지어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면벽 자숙을 명하셨다.이런 일을 겪고도 황후마마께서 심신이 지쳐 스스로 하당을 청하시고 궁을 떠나시길 구하신 것이 어찌 이상하단 말인가?폐하께서 억지로 황후마마를 붙들어 두시며 그 마음을 짓밟으시는 것은 참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었다.후궁들은 마음을 합해 한목소리로 탄원하였고, 이렇게까지 하나로 뭉친 적은 없었다.그들 대부분은 명문가 출신으로, 이미 은밀히 집안에 소식을 전하여 전조에도 힘을 보태도록 요청하였다.소욱은 이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황후는 실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그가 황후를 붙잡아 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처음에는 후궁들의 행태를 무시하려 했으나, 그녀들이 외치는 소리는 지나치게 크고 비통한 기색이 역력했다.멀리서 들으면 황제가 붕어한 줄 알 정도였다!결국 소욱은 무겁게 명을 내렸다.“모두 물러가라!”그러나, 어명을 받은 호위들은 후궁들에게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그녀들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손을 대면 곧바로 ‘무례하다’고 소리쳤다.심지어 몇몇은 머리 장식인 발채를 목에 들이대며 죽음으로 저항하였다.이 전대미문의 상황에,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결국 천기를 울리며 돌아와 아뢰었다.“폐하, 신하들이 무능하여 대처할 수 없사옵니다.”자녕궁.장공주 역시 이 소식을 들었다.황후가 궁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빨리 옷을 갈아입혀라! 황제를 만나러 가야겠다!”장공주는 오래전부터 황후는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96화

    태황태후는 눈앞의 사람을 보며 깜짝 놀라 물었다.“황후, 네가 방금 뭐라 했느냐!?”봉구안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신첩, 스스로 폐위하길 청하옵니다.”전각 안에 있던 궁인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황후마마께서 무슨 망령된 짓을 하시는 것인지?“건방진 소리 마라! 이런 말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구나! 황상은, 황상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봉구안은 숨김 없이 말했다.“황제 폐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신첩이 마마의 의지를 구하러 온 것이옵니다.”태황태후는 사실 이 손자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이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진심으로 궁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냐?” 태황태후가 물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사옵니다.”“좋다. 내가…”태황태후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일로 할마마마께서 수고하실 필요 없습니다.”태황태후가 고개를 들어보니, 황제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전각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그 눈빛은 심지어 그녀를 향해서도 약간의 적의를 내비치고 있었다.“황상, 네가…”소욱은 봉구안의 허리를 감싸며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황후가 짐과 다투다가 그런 헛소리를 한 것뿐입니다. 할마마마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태황태후는 속으로 모든 것을 간파했으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소욱이 봉구안을 데려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만수궁을 나선 후.소욱은 봉구안을 나무라지 않았다.다만 그녀의 손을 꽉 쥔 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었다.영화궁에 이르러 소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할마마마께서는 이미 폐후할 마음을 품으셨었지. 오늘, 그 바램을 이룰 뻔 했구나?”봉구안의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소욱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그러니 다시는 이런 의미 없는 일을 하지 마라.”봉구안은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띠었다.“제 마음은 변함이 없사옵니다.”소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는 그녀가 웃는 것을 좋아했으나,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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