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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폭군의 장군 황후: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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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봉안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흐느끼듯 말했다.“다 소신의 잘못입니다. 소신이 조금만 더 조심했었다면….”“어제 그자들의 도발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소신이 더 참았어야 했는데…”봉구안은 어떻게 눈앞의 위기를 해결할지만 생각했다.“그들이 원하는 건 오라버니께서 비무에서 참패하는 것이니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결과는 같았을 겁니다.”봉안진이 과거 무과장원이었다는 알고 있는 귀비가 준비를 허술하게 했을 리 없었다.그녀가 궁밖의 상황까지 살피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잠깐의 고민 후에 봉구안이 입을 열었다.“가면을 저에게 주세요. 대역을 제가 찾아보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봉안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아니 됩니다. 이는 폐하와 모두를 기만하는 행위잖습니까.”그가 아무리 무능해도 이런 비열한 방식으로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봉구안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기회는 한번뿐입니다. 선택은 오라버니에게 달렸어요.”봉안진은 씁쓸한 어조로 그녀에게 물었다.“정녕 과거 사건의 진실을 알아냈나요?”봉구안은 확신에 찬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예.”봉안진은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재차 물었다.“제가 이번 기회를 잡는다면 진실을 밝히고 허무하게 죽은 그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겁니까?”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주먹을 꽉 쥔 채로 봉구안을 지그시 응시했다.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녀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확고에 찬 그녀의 눈빛에서 봉안진은 원하던 답을 얻었다.그 순간 봉안진은 오랜 시간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그래도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눈앞에 있는데 자존심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그는 더 이상 의기소침하게 웅크리고 살기 싫었다.여동생과 가문,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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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눈을 떴지만 그들이 예상했던 피 튀기는 장면은 펼쳐지지 않았고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괴두의 주먹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누군지 몰라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누군가가 사람들 틈에서 소리쳤다.“봉가의 장남 같네요!”또 다른 누군가도 소리쳤다.“입고 있는 옷을 보니 확실해요! 보호대도 차고 있잖아요!”봉가의 아들들을 제외하고 중간에 무대로 올라간 무장들은 준비도 없이 그대로 올라갔기에 아무도 보호대를 장착하지 않았다.너무 멀리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차고 있는 보호대와 옷 색깔을 보고 그들은 봉안진이라고 확신했다.“괴두의 주먹을 받아내다니! 정말 대단하네요.”그 말을 듣고 있던 후르달은 괜히 심통이 나서 콧방귀를 뀌었다.고작 한 주먹을 받아냈을 뿐이다.그는 괴두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비무장.괴두는 주먹을 거두고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눈앞에 나타난 상대를 빤히 응시했다.상대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그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무장들과는 사뭇 달랐다.하지만 상대가 맹성주가 아니라면 자신이 있었다.“이리 와!”괴두는 팔뚝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소리쳤다.“여길 때려!”관망대의 모두가 비무장에 올라간 사람을 봉안진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상 그는 변장하고 올라간 봉구안이었다.귀비가 봉씨 형제를 반 죽이기 위해 준비한 가면이 오히려 그녀가 위장하는데 편의를 주었다.양나라와의 전장에서 봉구안은 괴두와 결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그랬기에 그녀는 상대의 초식을 빤히 꿰고 있었다.그녀는 쓰러진 무장의 앞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깔고 읊조렸다.“내려가.”그 무장은 진작에 진이 빠진 상태였지만 남제의 존엄을 위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그를 대신할 사람이 올라왔으니 계속 무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세 사람의 협공도 쓰러뜨리지 못한 괴두였다.과연 봉안진이 혼자 힘으로 가능할까?귀비는 표독스러운 눈빛을 하고 비무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봉안진이 진심으로 대결에 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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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진 장군은 무대의 상황을 유심히 살피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봉안진은 괴두의 체력을 소모하려는 게 아니라 방어를 위장한 공격을 하고 있어!”“그럴 리가. 계속 피하고만 있잖아?”“진 장군이 잘못 본 게 아니야?”진 장군은 고개를 젓고는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아니,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봉안진은 방어하는 척하면서 사실 상 공격을 하고 있는 거야!”그럴수록 남은 두 사람은 궁금증에 미칠 것 같았다.“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진 장군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그들에게 설명해 주었다.“봉안진은 공격을 피하며 무대 변두리를 돌고 있어.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계속 왼쪽 방향으로만 몸을 틀고 있어. 괴두에게는 오른쪽이 되겠지.”“그게 뭐? 봉안진이 한 방향으로 빙빙 돌면서 괴두를 어지럽게 만들려는 건가? 맞아! 그런 방법도 있었네! 괴두가 이미 평형을 잃은 걸 보면 유효한가 본데….”진 장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게 아니야!”그렇게 아둔한 방법일 리가 없었다.진 장군은 계속해서 말했다.“괴두의 움직임을 잘 살펴봐. 오른다리가 좀 이상하지? 봉안진을 봐. 왜 굳이 계속 왼쪽으로만 피하는 걸까? 이상하지 않아?”그러자 다른 두 장군도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 봉안진은 주먹을 피하고 이동할 때 꼭 무릎을 구부려서 피하네. 괴두와 봉안진은 키 차이가 심한 편이니까.”“그래서 그게 뭐? 그냥 주먹을 피하기 쉬우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진 장군이 정색해서 말했다.“괴두가 무릎을 굽히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무릎을 굽혀? 그게 무슨 전술이야?”“잠깐! 나 알 것 같아! 괴두의 오른쪽 무릎이….”“뭐야? 또 뭔데?”유일하게 영문을 모르는 무장이 옆에 있는 사람을 재촉했다.진 장군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이 장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이 장군도 알았지?”이 장군은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중얼거렸다.“오른쪽 무릎이 돌파구였다니! 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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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거대한 산과도 같았던 괴두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현장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고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두리번거렸다.한편, 연무장.봉구안은 다리를 뻗어 상대의 가슴을 가격했다.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괴두는 오른쪽 무릎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괴두는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봉구안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돌려차기로 상대의 목덜미를 가격했다.괴두가 중심을 잃고 무대 한복판으로 쓰러졌다.봉구안은 무르팍으로 상대의 숨통을 압박했다.괴두는 두꺼운 가면 너머로 싸늘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봉구안과 시선이 마주쳤다.마치 죽은 자를 바라보는 것 같은 서늘한 눈빛에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네… 네가 어떻게….”괴두는 단 한번의 공격으로 자신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뒤늦게 왜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봉구안이 자신을 유인하여 무대를 빙빙 돌았는지 알아차렸다.‘내가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하지만 대체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가 의문이었다.한편, 관망대에서 시합을 지켜보던 후르달도 당황했다.“어떻게 된 거야?”그 역시 괴두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다른 사신들도 당황했는지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괴두, 일어나!”후르달은 연무장을 향해 고함쳤다.“넌 우리 양나라의 용사야! 이대로 쓰러지면 안 돼!”남제의 관원들도 지지 않고 연무장을 향해 응원을 보냈다.“봉안진! 잘했어!”“계속 공격해!”무려 세 판을 연속 지고 의기소침하던 남제인들은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유일하게 귀비만 표정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었다.‘봉안진이 괴두를 쓰러뜨리다니! 어떻게?’그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였다!‘봉안진이 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어? 설지는 대체 뭘 한 거야!’귀비의 싸늘한 시선이 설지에게 닿았다.‘멍청한 자식!’설지도 불안에 떨고 있었다.괴두 같은 괴물을 쓰러뜨린 봉안진인데 차후 그의 보복이 두려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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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위기의 순간에 봉구안은 기둥을 잡고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뒤로 공중제비를 했다.그녀의 옷깃이 허공에서 휘날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곧이어 그녀는 괴두의 앞으로 달려가서 순식간에 상대의 허리띠를 잡아당겼다.관전 중이던 여인들은 재빨리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다시 고개를 돌리자 긴 허리띠가 봉안진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소욱은 순간 미간을 확 찌푸렸다.이게 과연 우연일까?그와 대적했던 그 여자객도 그에게 같은 수를 쓴 적이 있었다.사람들은 봉안진이 왜 상대의 허리띠를 가로챘는지 어리둥절한 눈치였다.무대 아래에서 관전하던 세 장군들마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단순히 괴두에게 창피를 주기 위함일까? 아니면 괴두가 바지를 올리는 순간을 노리기 위함이었을까?봉구안은 괴두의 후방에 착지했다. 괴두는 바지를 올릴 틈도 없이 나무 기둥을 집어들고 후방을 향해 휘둘렀다.눈 깜짝할 사이에 봉구안은 허리띠를 허공에 집어던지더니 그대로 상대의 손과 기둥을 묶어버렸다.“절묘하네!”진 장군이 맨 먼저 감탄을 터뜨렸다.이 장군도 합세했다.“잘했어! 상대의 손을 나무 기둥에 묶어버렸으니 괴두는 손이 묶인 거와 다름없어!”괴두의 바지는 무릎까지 내려간 상태였고 두 손은 나무기둥에 묶여 있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그는 초조해하기 시작했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사신들이 불만을 토로했다.“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 양나라의 용사에게 이런 모욕감을 선사하다니요!”“남제 폐하, 이 황당한 경기를 당장 그만두게 해야 합니다!”“사내의 바지를 벗기다니! 이게 남제가 손님을 대하는 태도입니까!”남제의 대신들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사신 나리, 진정하시오. 승패는 중요하지 않소. 볼거리가 중요하지. 이 얼마나 역동감 넘치는 대결이오? 무희들의 춤보다 더 재밌지 않소?”“사신 나리, 오해 마시게. 양나라 용사의 바지는 누가 벗긴 게 아니라 저절로 흘러내린 거라오!”“비무는 실력으로 말하는 거지. 귀국의 용사가 나무 기둥을 휘두를 때도 우린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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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소욱은 싸늘한 눈빛으로 방안을 살폈다.탁자 위에는 봉안진이 대결 시 사용했던 가면이 놓여 있었다.소욱은 음침하게 굳은 얼굴로 병풍 뒤에 있는 그림자를 노려보았다.그와 여자객은 수차례 대결을 펼쳤기에 그녀의 초식은 이미 그의 머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봉안진이 연무장에서 보여준 동작은 그녀와 무척이나 흡사했다.우연일지라도 그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남자는 긴 다리를 움직여 안으로 향했다.그리고 병풍 안으로 긴 팔을 뻗었다.팔목이 붙잡힌 봉안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소욱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예를 취했다.“폐하를 뵈옵니다.”봉안진은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정리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소욱의 싸늘한 눈동자는 그를 꿰뚫어보려는 듯이 노려보았다.“방에 혼자 있었던 게 확실하느냐?”봉안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답했다.“예, 폐하.”안으로 들어온 유사양은 어깨가 반쯤 드러난 봉안진과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소욱을 보자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폐하….”소욱은 말없이 봉안진을 뿌리치고는 병풍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곧바로 방을 나가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흔적이라도 찾아내려는 듯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괜한 의심인 걸까?’봉안진은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황제의 모습에 조심스레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나가서 정중히 예를 올렸다.“죄 많은 소신, 폐하를 뵈옵니다.”소욱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괴두를 쓰러뜨렸는데 어찌 죄를 말하는 것이더냐.”겸손이 지나치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가식인 것이다.소욱은 그 뒤로 아무 말없이 편전을 나와 대전을 향해 걸었다.그런데 가는 길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황후와 마주치고 말았다.황후는 공손히 그에게 예를 올렸다.“신첩, 폐하를 뵈옵니다.”소욱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다들 대전으로 옮겼을 것인데 황후는 어딜 가는 길이냐.”봉구안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태연자약하게 답했다.“오라버니가 걱정이 되어 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소욱은 더 이상 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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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소욱의 눈빛이 음침하게 굳었다.자고로 후궁이 정치에 간섭하는 것이 금기시된 이유는 후궁과 조정의 대신들이 결탁하여 외척이 과도하게 황제의 정치에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견식이 짧은 후궁의 여인들이 공식적인 장소에서 말실수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소욱이 어떻게 하면 양나라 사신들을 달랠지 고민하는 사이, 봉구안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귀비가 실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은 한 사람의 출중함을 가리키는 말이나, 전장의 공훈은 변방의 천만 장령들이 힘을 합쳐 싸운 결과이지 어느 한 사람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아까도 마찬가지다. 앞서서 여러 장군들이 힘을 합쳐 괴두의 체력을 소모하여 그가 약점을 드러내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 오라비도 이 대결에서 쉽게 그를 쓰러뜨리진 못했을 것이다.”“양나라에서는 한 사람만 내보냈으니 이 비무는 우리 남제가 수적으로 유리한 싸움이었다.”“양국의 교전 역시 남제가 십만 병력으로 양나라의 구만 병력을 물리쳤으니 양나라는 패하였지만 부끄러운 전투가 아니었다.”그녀의 말은 양나라의 체면을 살려주었기에 사신들의 표정도 어느 정도 풀어졌다.하지만 후르달은 아니었다.‘결국엔 자기네 남제가 더 잘났다고 강조하는 거잖아!’후르달이 생각하기에 듣기 좋은 말로 포장했을 뿐, 말하고자 하는 뜻은 똑같았다.하지만 워낙에 빈틈이 없는 말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봉구안을 바라보는 소욱의 눈빛도 많이 풀어져 있었다.‘역시 그 세치 혀는 여전하군.’다만 저택에서 곱게 자란 귀족가의 아가씨가 전장의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 뜻밖이기도 했다.후르달이 여전히 씩씩거리며 말했다.“예, 양나라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남제 폐하, 저희와 협상할 마음이 없다고 하신다면…”소욱은 근엄한 목소리로 상대의 말을 잘랐다.“백성을 생각하는 양나라 황제의 마음에 짐도 감탄하였다.”“그리하여 취산골 전역이 끝난 후에 양나라 황제의 바람에 따라 철수를 결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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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봉안진이 이 자리에서 과거 사건을 들출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무려 2년이나 지난 사건이고 재조사를 시작한들 단서가 나올 리 만무했다.설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호통쳤다.“봉 공자, 뭐가 억울하단 말이오. 억울함이 있으면 대리사를 찾았어야지! 폐하 앞에서 과거 사건을 고발하는 건 너무 무례한 처사 아니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남제의 조사관들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소!”봉 대인도 아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해서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폐하, 아이가 철이 없어서...”하지만 봉안진의 태도는 결연했다.“2년 전, 소신은 명을 받고 구호식량을 운송하는 길에 박주 일대를 지나다가 강도들의 습격을 당했습니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지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봉안진, 무슨 염치로 그날의 일을 입 밖에 내는 거지?”“너의 판단 착오 없었고 그날 그 길로 가지 않았으면 그 많은 형제들이 죽지 않았어!”그는 어떻게든 봉안진의 잘못으로 몰아가려고 했다.과거의 일을 떠올린 대신들도 의논이 분분했다.“그 사건을 말하는 거였구나. 이미 끝난 사건 아니었나?”“봉안진이 무능하여 그르친 일을 왜 억울하다고 하는 거지?”“우리가 모르는 사정이라도 있었나?”소욱은 싸늘한 눈빛으로 봉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의 억울함을 계속 말해보거라.”봉안진은 당당히 답했다.“그날의 불행은 소신의 판단 착오가 아니라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이옵니다.”관원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눈치만 살폈다.누가 봉안진을 배신했다는 걸까?게다가 구제물자 운송은 재난지역 백성들의 목숨이 달린 중대한 일이었다!봉안진은 담담히 설지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배신자는 바로, 현임 참장인 설지입니다!”설지는 흠칫하더니 바로 반박했다.“폐하, 소신은 억울합니다! 소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봉 공자가 제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렇게 저를 모함하는지 모르겠습니다.”소욱이 질문을 이어갔다.“증거가 있느냐.”봉안진은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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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말을 마친 봉구안은 서신을 소욱에게 건넸다.설지와 암찰사는 멍하니 서서 서로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불안에 떨었다.가장 초조한 사람은 설지였다.그는 속으로 당연히 가짜일 거라고, 황후와 봉안진이 거짓 증거를 내민 거라고 반복해서 되뇌었다.쾅!서신을 탁자에 내려놓은 소욱의 두 눈에 살기가 돌았다.“너희 둘, 꿇어라!”두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곧이어 궁인들이 서신을 그들의 앞에 내밀었다.억울하다고 하면 필적 대조에 들어갈 판이었다.서신을 확인한 설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럴 수가!’분명 아무도 모르게 보관했다고 생각했던 서신들이 눈앞에 있었다.설지는 그래도 믿기지 않아 서신을 들고 위조의 단서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보면 볼수록 초조하기만 했다.서신은 진짜가 틀림없었고 그의 탄탄대로는 오늘로서 끝장이었다!‘아니지, 거의 다 암찰사 나리께 불리한 내용만 있으니 아직 희망이 있어!’설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머리를 굴렸다.하지만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 놓인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서신을 본 암찰사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왕래한 서신이라고는 하지만 전부 그가 설지에게 보낸 것들이었다.그는 이런 위험한 것들을 없애지 않고 보관한 설지의 멍청함이 증오스러웠다.암찰사는 당장에서 설지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황제에게 큰절을 올렸다.“폐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소신이 잠깐 설지의 꼬임에 넘어가서 큰 잘못을 저질렀사옵니다. 놈이 봉안진을 음해하였다는 것을 알고도 돈 욕심에 눈이 멀어 고발을 미룬 죄, 사죄드리옵니다!”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던 설지는 그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황 대인을 쳐다봤다.‘이 개자식이 이렇게 날 배신한다고?’황제가 심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 불어버렸으니 모든 것은 봉구안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그녀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설지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설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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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능지형 얘기가 나오자 문무백관이 당황했다.율법대로라면 두 사람이 저지른 잘못은 사형에 처할 정도가 아니었다.설지와 암찰사의 두 눈에 충격과 공포가 서렸다.‘안 돼! 봉안진은 고작 관직을 파면당하고 말았는데 왜 난 이제 와서 능지형에 처한다는 것이야!’“폐하, 재고하여 주십시오! 폐하!”설지는 봉안진의 앞으로 기어가서 그의 다리에 매달렸다.“안진 형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희 한 때는 생사를 같이한 동료였잖아요…”어제까지 봉안진의 앞에서 거만을 떨던 설지가 지금은 개처럼 납작 엎드려 봉안진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봉안진은 할 수만 있다면 이들을 전부 제 손으로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는 냉랭한 얼굴로 답했다.“네가 동료를 배신하고 그들의 목숨으로 네 관직을 바꿨을 때는 우리가 동료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겠지! 설지, 난 황 대인보다 네가 더 괘씸해!”설지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형님, 저한테 이러시면 안 돼요. 잊으셨나요? 한때 우리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이상을 말하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 형님께서 우린 평생 함께할 형제라고도 말씀하셨어요…”지켜보던 관원들조차 고개를 흔들었다.그를 능지형에 처한 것은 이 나라의 황제이고 그의 생사를 좌우지할 수 있는 사람도 황제뿐이었다.그런데 여기서 봉안진에게 목숨이나 구걸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반면 봉구안은 싸늘한 눈빛으로 봉안진을 응시하고 있었다.설지는 멍청한 게 아니라 똑똑한 인간이었다.봉안진이 그를 용서하고 황제께 죽음을 사해주라 간청만 한다면 아까 비무장에서 괴두를 쓰러뜨린 봉안진의 공로와 과거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그를 안타까이 여기는 황제가 간청을 거절할 리 없었다.한편, 설지가 자신에 관한 것들까지 털어놓을까 두려웠던 귀비는 재빨리 호위를 재촉했다.“폐하의 명이 안 들리느냐? 뭘 꾸물거리고 있어?”“시끄럽게 떠드는 저 입부터 틀어막아라! 졸렬한 것들이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으니.”호위무사들이 달려들어 설지를 끌고 가려던 순간, 봉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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