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201 - 챕터 210

571 챕터

제201화

진왕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안 낭자,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어? 이 인장에 새겨진 글씨체부터 틀렸어. 이 몸이 심청화 선생의 냉매도를 가져올 테니 한번 대조해 볼까?”안여옥도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심청화 선생의 냉매도라면 제 집에도 두 개나 있습니다. 게다가 심청화 선생이 저희 집 정원에 있는 매화나무를 보고 그린 것이지요. 그때 당시 저의 조부께서도 현장에 계셨습니다. 두 폭의 그림은 각자 다른 매화 나무를 그렸지요. 인장도 하나는 소전, 하나는 대전으로 찍었습니다. 그리고 심 선생께서는 각기 다른 글씨체의 인장을 여러 개 가지고 계십니다.”그녀는 냉매도의 인장 부분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이 인장은 저희 집에 있는 그 그림에 찍은 인장과 똑같아요. 조부님이 밖에 계시니 못 미더우시면 조부님을 불러 감별을 부탁드리겠습니다.”진왕비는 살짝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 심 선생이 판매한 그림은 전부 소장 인장을 사용했어. 이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야.”안여옥이 말했다.“그렇죠. 그래서 저희 집에 소장하고 있는 두 폭의 그림 중 하나는 저희가 산 것이고 하나는 선생께서 선물로 준 겁니다. 그리고 선물한 그림에는 대전 인장을 찍었지요.”진왕비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다.가의 군주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말이 되잖아? 심청화 선생이 송석석에게 그림을 선물로 줬을 리는 없을 테니 살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럼 대전 인장이 찍혀 있는 게 말이 안 되지. 이건 가짜야.”같이 있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정말 심청화 선생이 그녀의 부모님이나 가족들한테 선물한 거라고 해도 그러면 부모님 유물이라는 건데 그걸 장공주에게 선물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그녀에게 가졌던 호감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가짜 그림으로 사람을 우롱하려 하다니! 생각할수록 괘씸했다.송석섯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사형의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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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태부는 너무 아까워서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비록 집에도 냉매도가 두 폭이나 있지만 심청하의 친필 그림이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이건 심청하 선생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찢어진 그림 조각들을 모아 조심스럽게 붙였다. 이 그림은 매화가 만개한 매화 나무를 그린 거라 그가 저택에 소장한 그림들보다 더 아름다웠다.게다가 매산의 매화는 저택의 정원에서 자란 나무와 비교할 수 없었다.사여묵은 심청화의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대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말없이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안 태부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게… 어쩌다가… 대체 누가 찢었어!”여자들은 장공주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혜태비는 말하고 싶었지만 장공주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고 하려던 말을 도로 집어넣었다.이때, 송석석이 목청을 높여 고했다.“소녀 송석석 태부께 아뢰옵니다. 이 그림은 제가 장공주의 생신 선물로 드린 것이온데 진왕비께서 가품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가의 군주께서 홧김에 찢어버린 것입니다. 안 낭자께서 그림이 진품이라고 하셔서 장공주께서 태부를 불러 감별을 부탁한 것이옵니다.”사여묵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혜태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방금 한 말 한마디로 진왕비를 아예 적으로 돌린다는 걸 모르는 걸까?장공주와 가의 군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안 태부와 황실 종친들, 그리고 대신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지 누군가의 말만 믿고 그림을 찢다니! 게다가 이미 진품으로 판정이 난 상황.안 태부는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화를 낼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찢어진 그림이 너무 아까워서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따름이었다.송석석이 직접 자신을 지목하자 진왕비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서렸다.장공주 역시 말은 안 해도 날카로운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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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하지만 노부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장공주는 당장에서 사람을 시켜 단 신의를 불러들였다.내원으로 불려 들어온 단 신의는 병풍 뒤에 서서 노쇠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장공주에게 아뢰었다.“노부인이 앓고 계신 질병은 심장 질환이고 각혈 증세 때문에 오랜 시간 고통받았습니다.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완치는 불가능했죠. 단설환으로 병증을 완화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애초에 저는 송 낭자의 얼굴을 봐서 치료를 떠맡은 것이고 송 낭자는 장군부에 시집온 뒤로 매일 밤낮으로 노부인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매달 나가는 단설환 약값만 해도 어마어마했죠. 물론 그 돈이 누구 수중에서 나왔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노부인께서는 굉장히 치료에 비협조적이셨고 저에게 단약이 비싸다고 불평을 하시면서도 대체 어떤 약재가 들어가는지 일절 묻지 않으셨습니다. 솔직히 송 낭자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장군부에 걸음하기도 싫을 정도였죠.””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지만 전 장군께서는 전장에서 승리하시고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를 오랜 기간 보살핀 정실 부인을 내치고 폐하의 명을 등에 업고서는 장군부의 가족들과 연합하여 송 낭자를 쫓아냈죠. 저는 그 사람들이 싫었기에 더 이상 문진을 거부했지요. 약을 계속 팔아준 이유는 민씨가 눈 오는 날에 저의 약왕당 앞으로 찾아와 무릎 꿇고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였기에 그 효심이 갸륵하여 약을 처방만 해준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없어서 못 파는 단설환을 그들에게 줄 이유가 없죠.”“게다가 전 장군과 송 낭자의 혼사는 원래 송 낭자가 아까운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장군은 혼인한 뒤에 낭자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니 순결을 지킨 셈이지요. 그래서 나중에 다른 남자와 재혼한다고 해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말을 마친 단 신의는 장공주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서 나가버렸다.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장공주에게서 전씨 노부인에게로 쏠렸다.물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감히 면전에 대고 장공주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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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심지어 단 신의가 전 장군댁을 대놓고 까발린 일도 까맣게 잊힐 정도였다.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혜태비를 바라보았다.북명왕과 송석석 사이에 혼담이 오간다는 얘기인 걸까?하지만 황가의 친왕이 이혼을 당한 여인을?귀부인들은 물론이고 장공주마저도 당황한 눈빛으로 혜태비와 송석석을 번갈아보았다.송석석은 담담히 혜태비를 바라보았지만 언짢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 혼사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북명 왕부에서 아직 정식으로 혼담을 제기한 적도 없는데 이대로 공개해 버리다니!게다가 그녀를 극도로 싫어하던 혜태비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둘의 사이가 알려질까 봐 항상 조심했는데 혜태비가 이대로 공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걸까?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라 당혹스럽기만 했다.앞뒤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전혀 공개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 미래의 시어머니가 되실 분은 참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장공주가 피식 비웃음을 터뜨리더니 입을 열었다.“그래요? 묵이가 송가의 적녀와 혼인한다는 얘기인가요? 경성에 출중한 여인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하필이면 이혼한 과부를요?”혜태비도 갑자기 말이 튀어나왔기에 말하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아직 송석석에게 화나 있었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하면 반대했지 자신이 제 입으로 공개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전씨 노부인은 경악해서 입도 다물지 못했다. 장궁부에서 내친 여자가 황가에 시집가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상대는 남강을 수복한 친왕이었고 만약 혼인만 성사되면 송석석은 권력과 지위 모두 가진 왕비가 되는 것이다.그것은 연 왕비나 회 왕비처럼 가진 건 왕실의 이름뿐인 한량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연회에 참석한 세가의 여식들의 표정도 볼만했다. 북명왕이 송석석과 혼인한다니! 아무리 공훈을 세운 여인이라지만 그래도 재혼인데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수많은 원망과 질투의 시선이 송석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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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송석석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저는 한 번도 제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가의 군주께서 부끄러워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장공주의 적장녀가, 황실의 교육을 받고 자란 숙녀께서 입만 열면 악담에 제 사형이 선물한 그림까지 찢어버리셨잖아요. 이런 게 소문나면 사람들 웃음거리밖에 더 되나요? 저한테 꺼지라고 하셨나요? 지금 축객령을 내리신 거 맞지요? 참으로 우습네요. 공주부에서 저에게 초대장까지 보내서 선물을 들고 축하드리러 온 저를 내쫓으시겠다고요? 이게 손님을 대하는 공주부의 태도입니까? 아니면 원래 이럴 목적으로 저를 부르신 건가요? 제가 전북망과 이혼하고 수치스러워서 사람들 앞에 얼굴도 못 내미는 상황을 기대하셨나요?”“실망을 안겨드려서 정말 송구하네요. 하지만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수치를 느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니까요. 저는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기에 어딜 가든 당당합니다. 가의 군주께서 이리도 안하무인이시고 선황의 비인 혜태비 마마를 무시하고 웃음거리로 만든 행위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다하지 않은 것이며 대체 가정교육을 어디로 받으셨는지 생각해 봐야….”그녀는 불현듯 시선을 돌려 장공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긴, 모친인 장공주께서는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뒤에 악의를 품고 정절문을 보내 우리 가문을 욕보인 분이니 자식 교육은 오죽하겠어요. 쫓아낼 필요 없이 당신들 같은 사람이랑은 저도 함께하고 싶지 않으니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배웅은 사양할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보주와 명주를 불렀다.“가자. 앞으로 이런 곳은 절대 오지 말자. 역겨워서 더는 견디지 못하겠구나. 억울한 원혼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공주부 곳곳에 떠다니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 보이지?”잠자코 있던 장공주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송석석!”송석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덕망 높은 스님을 초대해 한번 제사라도 올리는 걸 추천드려요. 그러지 않다가는 죽은 자의 원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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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송석석이 떠난 뒤, 사여묵도 자리를 떴다.내원에서 나눴던 대화는 정원에 전해졌고 현장에 함께 있던 황실 종친과 문무백관들은 북명왕이 송석석 장군과 혼인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남자들의 생각은 여인들과 달랐다.출신과 권세, 여인의 순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시하는 게 이득이었다.송석석이 누군가?진국공의 딸이자 만종문의 제자이며 심청화를 사형으로 둔 여인이었다.만종문은 심청화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현인들을 문하에 두고 있으며 무림의 대 문파이자, 왕년에 표기 대장군(骠骑大将军)이자 남안왕의 증손자인 임양운(任陽雲)이 문주로 있는 곳이었다.임양운이 만종문을 창설한 뒤로 매화산에 있는 문파들은 전부가 그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애초에 매화산이 이미 조부이신 남안왕의 영지였기에 지금은 임양운의 소유였다.남안왕의 신분을 상속받지는 못했지만 영지는 여전히 가족들의 소유였고 그동안 그들은 엄청난 부를 저축했다.재산보다 더 중요한 건 무림 강호 상의 광활한 인맥이었다. 임양운의 무공은 소문에 강호의 2순위이고 그의 사제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물론 이건 강호에 떠도는 소문일 뿐, 입증할 방법은 없었다.하지만 워낙 유명한 문파이고 매산 전체를 호령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으니 혼인으로 그쪽 인맥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보다 이득은 없었다. 송석석 본인도 남강을 수복한 공신이기도 하고 이방 장군을 밀어내고 상조 제일 여장군이라는 호칭을 받은 인물이었다.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아무리 송석석의 과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같은 여인들끼리 서로 헐뜯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송석석과 사여묵은 공주부 저택 입구에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사여묵은 여전히 위풍당당한 그녀를 보고 드디어 시름을 놓았다.어차피 둘 사이도 공개했기에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취현거에 부남의 주방장이 새로 왔다던데 한번 맛 보러 가지 않겠느냐?”“좋지요!”송석석도 배가 고팠기에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그렇게 그녀는 보주와 명주를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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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주문을 마친 뒤, 사여묵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네. 이대로 주문하면 되겠어. 장대성, 가서 주문 마무리하고 와.”장대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잠깐 후에 돌아왔다.“내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 소란스러웠지? 그쪽에서 네가 준 선물을 가품이라고 한 거야? 괴롭힘은 안 당했어?”사여묵은 그녀의 입을 통해 더 자세한 진실을 듣고 싶었다.송석석은 차로 타는 목을 축이고 대답했다.“제가 괴롭힘 당하고 가만히 있을 사람인가요. 시비를 걸어온 사람은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아요.”옆 상에 있던 보주가 끼어들었다.“아가씨가 했던 마지막 발언은 소인도 너무 놀랐어요. 장공주께서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런 말을 하셨어요?”“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그쪽에서 날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내가 왜 참아?”송석석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너도 나랑 함께한지 꽤 오래되었는데 내 성격 몰라? 내가 누굴 두려워하는 걸 봤어?”“그렇긴 하지만 상대가 너무….”보주는 장군 저택을 나온 뒤로 완전히 달라진 송석석의 성격이 이상했지만 그건 북명왕의 앞에서 할 얘기가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어차피 이미 원한은 샀고 두려워서 떤다고 해결되지 않아.”사여묵이 무척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나오기 전에 무슨 말을 했길래 보주가 저러는 거냐?”송석석은 내원에서 있었던 일과 가의 군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사여묵에게 들려주었다.얘기를 다 들은 사여묵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아는 송석석은 원래 이런 여인이었다.게다가 만종문의 마녀를 누가 감히 괴롭힐 수 있을까? 전 장군 저택 사람들이나 송석석을 만만하게 보고 시비를 걸어오지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위치였다. 송석석이 예전에 장군 저택 사람들을 극진히 보살핀 이유도 알고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을 받들기 위해서였지 그녀가 만만한 사람이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사여묵은 아직도 산에서 사저인 평무종을 바닥에 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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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마침 주문한 요리가 올라와서 대화는 중단되었다. 송석석은 가장 좋아하는 매운 생선찜을 보자 순식간에 식욕이 솟구쳤다.그 외에도 곱창전골, 오리백숙, 당면 게장찜에 찹쌀 갈비찜, 매운 고기볶음까지 진수성찬이 따로없었다.배가 고팠던 송석석은 서둘러 수저를 들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집에서 나오기 전에 진 집사에게 들었어요. 부마가 그동안 많은 첩을 들였는데 아이를 출산한 뒤로 대부분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신분이 비천한 첩이니 난산으로 죽었다고 둘러댔을 것 같아요. 한둘이면 몰라도 공주부에 들어오는 첩마다 죽었다면 충분히 의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요.”말을 마친 그녀는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바르고 양념을 듬뿍 묻혀서 사여묵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이거 한번 드셔봐요. 정말 맛있거든요. 당면도 같이 들면 더 식감이 좋아요.”그러고는 고기볶음과 국물까지 챙겨주었다.“그래, 들자!”사여묵은 눈앞에 쌓인 요리를 힐끗 바라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괜한 의심이 아니야. 부마가 들인 첩들은 전부 고모가 죽인 게 맞아.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살해했지.”“오늘 첩을 한 명도 못 봤는데 설마 다 죽인 건 아니죠? 그리고 첩들이 낳은 아이들도 안 보이던데요.”“그 정도는 아니야. 눈치가 있고 말을 잘 듣는 첩들은 살아 있어. 출산한 뒤에 아이를 장공주 밑으로 보냈지. 그 아이들은 자라서 장공주의 발을 닦아주는 노비가 되었어. 물론 그걸 거부해서 죽은 아이들도 있지만….”그는 당면을 한입 물었다가 짜릿한 매운 맛에 눈시울을 붉히며 급기야 차를 찾았다.“아, 사레가 걸려버렸네.”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았다. 손석석은 눈에 익은 손수건을 보고 수치스러워 시선을 돌렸다.‘대체 저게 뭐야? 새도 아니고 꿀벌도 아니고! 그런데 누가 준 건지는 기억할까?’송석석은 그가 기억하든 말든, 저건 무조건 없애버려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그런 생각을 하며 당면을 입에 넣자 자극적인 매운 맛이 입안에 퍼졌다. 정말 맛이 있었지만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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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라 기침만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송석석도 이상함을 눈치챘다.그녀는 책자를 다시 그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오늘은 목안이 불편해 보이니 일단은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들로 새로 주문하는 게 좋겠어요.”“그러네. 오늘따라 목안이 따갑네.”사여묵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양유를 가져오라고 할게요.”송석석은 벌떡 일어서서 별실을 나가 주인장에게 양유를 주문했다.“양유로 매운맛을 중화할 수 있어요.”송석석은 아이를 달래듯 양유가 든 사발을 그에게 내밀었다.“어서 마셔요.”사여묵은 사발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부드럽고 차가운 양유가 목안에 들어가자 따갑고 불편하던 느낌이 조금 사라졌다. 그는 그녀의 이런 배려가 고마웠다.분명 그의 거짓말을 눈치챘을 텐데도 그 자리에서 까발리지 않고 일부러 아부하지도 않으며 서로에게 편안한 방식으로 제안했다. 매산에서 봤던 그녀와는 정말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전북망의 어머니를 모셨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쓰리기도 했다. 그때 당시 그녀는 정말 진심을 다해 장군부 사람들을 대했을 것이고 아마 그 일이 없었으면 전북망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었을 것이다.‘양심도 없는 개 자식들이 어찌 이런 마음을 알아본다고!’사여묵의 주변으로 싸늘한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다. 이방을 향한 수란키의 보복은 너무 안일했다. 모욕감을 주면 아마 서경의 태자처럼 자결을 택할 줄 알았는데 이방은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송석석은 싸늘하게 식은 그의 표정을 보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사여묵은 이내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얘기하지.”눈치 빠른 장대성은 보주와 명주를 밖으로 안내했다.“우린 옆 방으로 가서 먹죠.”보주는 두 사람이 중요한 대화를 나누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인장을 불러 요리를 모두 옆방으로 옮겼다.그렇게 별실에는 둘만 남게 되자 송석석이 물었다.“왕야, 뭐 언짢은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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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사여묵은 묵묵히 반찬만 챙겨주며 답을 피했다.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었기에 송석석도 더 캐묻지 않았다.그가 웃으며 말했다.“오늘 연회가 끝난 이후로 한동안 경성이 시끄러워지겠군.”송석석은 얄밉게 그를 흘기며 말했다.“그렇지요. 수많은 귀족 여식들이 눈물을 흘리겠지요. 태비께서 저희의 관계를 공개하신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여식들의 눈총을 받았는데요.”“나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남자들도 많을 거야.”사여묵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전북망은 땅 치고 후회 중이며, 폐하도 그녀에게 흔들리지 않았는가.“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시댁에서 쫓겨난 과부를 누가 아쉬워하겠어요?”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살짝 튕기며 말했다.“곧 북명왕비가 될 몸인데 아직도 자신을 깎아내리면 안 되지.”“세속의 시선은 항상 그랬으니까요.”그녀는 재빨리 얼굴을 피하며 생긋 웃었다.”하지만 제가 못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엄청 잘난 사람이거든요.”의기양양한 미소를 바라보며 사여묵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속으로는 신경 쓰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씩씩한 마음을 보니 시름이 놓였다.처음 남강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송석석은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그를 바라보며 그가 아직도 연모하던 여인을 내려놓지 못해 아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갑자기 그 여인이 궁금해졌다. 만약 이렇게 좋은 신랑감이 곧 혼인한다는 걸 알면 후회하지는 않을까?식사가 끝나고 그들은 작별인사를 나눈 뒤에 각자 저택으로 돌아갔다.송석석은 전보다 그와 더 가까워진 것에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혼인하더라도 적어도 서로 존중하며 의지하는 동료가 되어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다음 날, 사여묵은 예부의 관원과 안 태부와 함께 혼담을 제안하러 국공부를 찾았다.송태공과 송세안도 국공부에 초대되어 절차를 도왔다.안 태부가 직접 나서준 것에 송 태공은 크게 기뻐했다. 그는 송석석이 공훈을 세우고 가문의 이름을 빛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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