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부는 너무 아까워서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비록 집에도 냉매도가 두 폭이나 있지만 심청하의 친필 그림이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이건 심청하 선생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찢어진 그림 조각들을 모아 조심스럽게 붙였다. 이 그림은 매화가 만개한 매화 나무를 그린 거라 그가 저택에 소장한 그림들보다 더 아름다웠다.게다가 매산의 매화는 저택의 정원에서 자란 나무와 비교할 수 없었다.사여묵은 심청화의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대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말없이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안 태부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게… 어쩌다가… 대체 누가 찢었어!”여자들은 장공주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혜태비는 말하고 싶었지만 장공주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고 하려던 말을 도로 집어넣었다.이때, 송석석이 목청을 높여 고했다.“소녀 송석석 태부께 아뢰옵니다. 이 그림은 제가 장공주의 생신 선물로 드린 것이온데 진왕비께서 가품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가의 군주께서 홧김에 찢어버린 것입니다. 안 낭자께서 그림이 진품이라고 하셔서 장공주께서 태부를 불러 감별을 부탁한 것이옵니다.”사여묵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혜태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방금 한 말 한마디로 진왕비를 아예 적으로 돌린다는 걸 모르는 걸까?장공주와 가의 군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안 태부와 황실 종친들, 그리고 대신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지 누군가의 말만 믿고 그림을 찢다니! 게다가 이미 진품으로 판정이 난 상황.안 태부는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화를 낼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찢어진 그림이 너무 아까워서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따름이었다.송석석이 직접 자신을 지목하자 진왕비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서렸다.장공주 역시 말은 안 해도 날카로운 눈빛
하지만 노부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장공주는 당장에서 사람을 시켜 단 신의를 불러들였다.내원으로 불려 들어온 단 신의는 병풍 뒤에 서서 노쇠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장공주에게 아뢰었다.“노부인이 앓고 계신 질병은 심장 질환이고 각혈 증세 때문에 오랜 시간 고통받았습니다.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완치는 불가능했죠. 단설환으로 병증을 완화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애초에 저는 송 낭자의 얼굴을 봐서 치료를 떠맡은 것이고 송 낭자는 장군부에 시집온 뒤로 매일 밤낮으로 노부인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매달 나가는 단설환 약값만 해도 어마어마했죠. 물론 그 돈이 누구 수중에서 나왔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노부인께서는 굉장히 치료에 비협조적이셨고 저에게 단약이 비싸다고 불평을 하시면서도 대체 어떤 약재가 들어가는지 일절 묻지 않으셨습니다. 솔직히 송 낭자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장군부에 걸음하기도 싫을 정도였죠.””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지만 전 장군께서는 전장에서 승리하시고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를 오랜 기간 보살핀 정실 부인을 내치고 폐하의 명을 등에 업고서는 장군부의 가족들과 연합하여 송 낭자를 쫓아냈죠. 저는 그 사람들이 싫었기에 더 이상 문진을 거부했지요. 약을 계속 팔아준 이유는 민씨가 눈 오는 날에 저의 약왕당 앞으로 찾아와 무릎 꿇고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였기에 그 효심이 갸륵하여 약을 처방만 해준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없어서 못 파는 단설환을 그들에게 줄 이유가 없죠.”“게다가 전 장군과 송 낭자의 혼사는 원래 송 낭자가 아까운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장군은 혼인한 뒤에 낭자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니 순결을 지킨 셈이지요. 그래서 나중에 다른 남자와 재혼한다고 해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말을 마친 단 신의는 장공주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서 나가버렸다.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장공주에게서 전씨 노부인에게로 쏠렸다.물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감히 면전에 대고 장공주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심지어 단 신의가 전 장군댁을 대놓고 까발린 일도 까맣게 잊힐 정도였다.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혜태비를 바라보았다.북명왕과 송석석 사이에 혼담이 오간다는 얘기인 걸까?하지만 황가의 친왕이 이혼을 당한 여인을?귀부인들은 물론이고 장공주마저도 당황한 눈빛으로 혜태비와 송석석을 번갈아보았다.송석석은 담담히 혜태비를 바라보았지만 언짢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 혼사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북명 왕부에서 아직 정식으로 혼담을 제기한 적도 없는데 이대로 공개해 버리다니!게다가 그녀를 극도로 싫어하던 혜태비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둘의 사이가 알려질까 봐 항상 조심했는데 혜태비가 이대로 공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걸까?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라 당혹스럽기만 했다.앞뒤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전혀 공개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 미래의 시어머니가 되실 분은 참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장공주가 피식 비웃음을 터뜨리더니 입을 열었다.“그래요? 묵이가 송가의 적녀와 혼인한다는 얘기인가요? 경성에 출중한 여인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하필이면 이혼한 과부를요?”혜태비도 갑자기 말이 튀어나왔기에 말하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아직 송석석에게 화나 있었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하면 반대했지 자신이 제 입으로 공개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전씨 노부인은 경악해서 입도 다물지 못했다. 장궁부에서 내친 여자가 황가에 시집가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상대는 남강을 수복한 친왕이었고 만약 혼인만 성사되면 송석석은 권력과 지위 모두 가진 왕비가 되는 것이다.그것은 연 왕비나 회 왕비처럼 가진 건 왕실의 이름뿐인 한량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연회에 참석한 세가의 여식들의 표정도 볼만했다. 북명왕이 송석석과 혼인한다니! 아무리 공훈을 세운 여인이라지만 그래도 재혼인데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수많은 원망과 질투의 시선이 송석석에게
송석석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저는 한 번도 제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가의 군주께서 부끄러워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장공주의 적장녀가, 황실의 교육을 받고 자란 숙녀께서 입만 열면 악담에 제 사형이 선물한 그림까지 찢어버리셨잖아요. 이런 게 소문나면 사람들 웃음거리밖에 더 되나요? 저한테 꺼지라고 하셨나요? 지금 축객령을 내리신 거 맞지요? 참으로 우습네요. 공주부에서 저에게 초대장까지 보내서 선물을 들고 축하드리러 온 저를 내쫓으시겠다고요? 이게 손님을 대하는 공주부의 태도입니까? 아니면 원래 이럴 목적으로 저를 부르신 건가요? 제가 전북망과 이혼하고 수치스러워서 사람들 앞에 얼굴도 못 내미는 상황을 기대하셨나요?”“실망을 안겨드려서 정말 송구하네요. 하지만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수치를 느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니까요. 저는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기에 어딜 가든 당당합니다. 가의 군주께서 이리도 안하무인이시고 선황의 비인 혜태비 마마를 무시하고 웃음거리로 만든 행위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다하지 않은 것이며 대체 가정교육을 어디로 받으셨는지 생각해 봐야….”그녀는 불현듯 시선을 돌려 장공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긴, 모친인 장공주께서는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뒤에 악의를 품고 정절문을 보내 우리 가문을 욕보인 분이니 자식 교육은 오죽하겠어요. 쫓아낼 필요 없이 당신들 같은 사람이랑은 저도 함께하고 싶지 않으니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배웅은 사양할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보주와 명주를 불렀다.“가자. 앞으로 이런 곳은 절대 오지 말자. 역겨워서 더는 견디지 못하겠구나. 억울한 원혼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공주부 곳곳에 떠다니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 보이지?”잠자코 있던 장공주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송석석!”송석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덕망 높은 스님을 초대해 한번 제사라도 올리는 걸 추천드려요. 그러지 않다가는 죽은 자의 원망에
송석석이 떠난 뒤, 사여묵도 자리를 떴다.내원에서 나눴던 대화는 정원에 전해졌고 현장에 함께 있던 황실 종친과 문무백관들은 북명왕이 송석석 장군과 혼인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남자들의 생각은 여인들과 달랐다.출신과 권세, 여인의 순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시하는 게 이득이었다.송석석이 누군가?진국공의 딸이자 만종문의 제자이며 심청화를 사형으로 둔 여인이었다.만종문은 심청화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현인들을 문하에 두고 있으며 무림의 대 문파이자, 왕년에 표기 대장군(骠骑大将军)이자 남안왕의 증손자인 임양운(任陽雲)이 문주로 있는 곳이었다.임양운이 만종문을 창설한 뒤로 매화산에 있는 문파들은 전부가 그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애초에 매화산이 이미 조부이신 남안왕의 영지였기에 지금은 임양운의 소유였다.남안왕의 신분을 상속받지는 못했지만 영지는 여전히 가족들의 소유였고 그동안 그들은 엄청난 부를 저축했다.재산보다 더 중요한 건 무림 강호 상의 광활한 인맥이었다. 임양운의 무공은 소문에 강호의 2순위이고 그의 사제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물론 이건 강호에 떠도는 소문일 뿐, 입증할 방법은 없었다.하지만 워낙 유명한 문파이고 매산 전체를 호령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으니 혼인으로 그쪽 인맥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보다 이득은 없었다. 송석석 본인도 남강을 수복한 공신이기도 하고 이방 장군을 밀어내고 상조 제일 여장군이라는 호칭을 받은 인물이었다.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아무리 송석석의 과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같은 여인들끼리 서로 헐뜯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송석석과 사여묵은 공주부 저택 입구에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사여묵은 여전히 위풍당당한 그녀를 보고 드디어 시름을 놓았다.어차피 둘 사이도 공개했기에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취현거에 부남의 주방장이 새로 왔다던데 한번 맛 보러 가지 않겠느냐?”“좋지요!”송석석도 배가 고팠기에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그렇게 그녀는 보주와 명주를 데
주문을 마친 뒤, 사여묵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네. 이대로 주문하면 되겠어. 장대성, 가서 주문 마무리하고 와.”장대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잠깐 후에 돌아왔다.“내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 소란스러웠지? 그쪽에서 네가 준 선물을 가품이라고 한 거야? 괴롭힘은 안 당했어?”사여묵은 그녀의 입을 통해 더 자세한 진실을 듣고 싶었다.송석석은 차로 타는 목을 축이고 대답했다.“제가 괴롭힘 당하고 가만히 있을 사람인가요. 시비를 걸어온 사람은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아요.”옆 상에 있던 보주가 끼어들었다.“아가씨가 했던 마지막 발언은 소인도 너무 놀랐어요. 장공주께서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런 말을 하셨어요?”“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그쪽에서 날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내가 왜 참아?”송석석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너도 나랑 함께한지 꽤 오래되었는데 내 성격 몰라? 내가 누굴 두려워하는 걸 봤어?”“그렇긴 하지만 상대가 너무….”보주는 장군 저택을 나온 뒤로 완전히 달라진 송석석의 성격이 이상했지만 그건 북명왕의 앞에서 할 얘기가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어차피 이미 원한은 샀고 두려워서 떤다고 해결되지 않아.”사여묵이 무척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나오기 전에 무슨 말을 했길래 보주가 저러는 거냐?”송석석은 내원에서 있었던 일과 가의 군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사여묵에게 들려주었다.얘기를 다 들은 사여묵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아는 송석석은 원래 이런 여인이었다.게다가 만종문의 마녀를 누가 감히 괴롭힐 수 있을까? 전 장군 저택 사람들이나 송석석을 만만하게 보고 시비를 걸어오지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위치였다. 송석석이 예전에 장군 저택 사람들을 극진히 보살핀 이유도 알고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을 받들기 위해서였지 그녀가 만만한 사람이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사여묵은 아직도 산에서 사저인 평무종을 바닥에 깔아
마침 주문한 요리가 올라와서 대화는 중단되었다. 송석석은 가장 좋아하는 매운 생선찜을 보자 순식간에 식욕이 솟구쳤다.그 외에도 곱창전골, 오리백숙, 당면 게장찜에 찹쌀 갈비찜, 매운 고기볶음까지 진수성찬이 따로없었다.배가 고팠던 송석석은 서둘러 수저를 들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집에서 나오기 전에 진 집사에게 들었어요. 부마가 그동안 많은 첩을 들였는데 아이를 출산한 뒤로 대부분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신분이 비천한 첩이니 난산으로 죽었다고 둘러댔을 것 같아요. 한둘이면 몰라도 공주부에 들어오는 첩마다 죽었다면 충분히 의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요.”말을 마친 그녀는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바르고 양념을 듬뿍 묻혀서 사여묵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이거 한번 드셔봐요. 정말 맛있거든요. 당면도 같이 들면 더 식감이 좋아요.”그러고는 고기볶음과 국물까지 챙겨주었다.“그래, 들자!”사여묵은 눈앞에 쌓인 요리를 힐끗 바라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괜한 의심이 아니야. 부마가 들인 첩들은 전부 고모가 죽인 게 맞아.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살해했지.”“오늘 첩을 한 명도 못 봤는데 설마 다 죽인 건 아니죠? 그리고 첩들이 낳은 아이들도 안 보이던데요.”“그 정도는 아니야. 눈치가 있고 말을 잘 듣는 첩들은 살아 있어. 출산한 뒤에 아이를 장공주 밑으로 보냈지. 그 아이들은 자라서 장공주의 발을 닦아주는 노비가 되었어. 물론 그걸 거부해서 죽은 아이들도 있지만….”그는 당면을 한입 물었다가 짜릿한 매운 맛에 눈시울을 붉히며 급기야 차를 찾았다.“아, 사레가 걸려버렸네.”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았다. 손석석은 눈에 익은 손수건을 보고 수치스러워 시선을 돌렸다.‘대체 저게 뭐야? 새도 아니고 꿀벌도 아니고! 그런데 누가 준 건지는 기억할까?’송석석은 그가 기억하든 말든, 저건 무조건 없애버려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그런 생각을 하며 당면을 입에 넣자 자극적인 매운 맛이 입안에 퍼졌다. 정말 맛이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라 기침만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송석석도 이상함을 눈치챘다.그녀는 책자를 다시 그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오늘은 목안이 불편해 보이니 일단은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들로 새로 주문하는 게 좋겠어요.”“그러네. 오늘따라 목안이 따갑네.”사여묵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양유를 가져오라고 할게요.”송석석은 벌떡 일어서서 별실을 나가 주인장에게 양유를 주문했다.“양유로 매운맛을 중화할 수 있어요.”송석석은 아이를 달래듯 양유가 든 사발을 그에게 내밀었다.“어서 마셔요.”사여묵은 사발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부드럽고 차가운 양유가 목안에 들어가자 따갑고 불편하던 느낌이 조금 사라졌다. 그는 그녀의 이런 배려가 고마웠다.분명 그의 거짓말을 눈치챘을 텐데도 그 자리에서 까발리지 않고 일부러 아부하지도 않으며 서로에게 편안한 방식으로 제안했다. 매산에서 봤던 그녀와는 정말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전북망의 어머니를 모셨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쓰리기도 했다. 그때 당시 그녀는 정말 진심을 다해 장군부 사람들을 대했을 것이고 아마 그 일이 없었으면 전북망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었을 것이다.‘양심도 없는 개 자식들이 어찌 이런 마음을 알아본다고!’사여묵의 주변으로 싸늘한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다. 이방을 향한 수란키의 보복은 너무 안일했다. 모욕감을 주면 아마 서경의 태자처럼 자결을 택할 줄 알았는데 이방은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송석석은 싸늘하게 식은 그의 표정을 보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사여묵은 이내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얘기하지.”눈치 빠른 장대성은 보주와 명주를 밖으로 안내했다.“우린 옆 방으로 가서 먹죠.”보주는 두 사람이 중요한 대화를 나누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인장을 불러 요리를 모두 옆방으로 옮겼다.그렇게 별실에는 둘만 남게 되자 송석석이 물었다.“왕야, 뭐 언짢은 일이라
노주에는 영락루라는 곳이 있었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영락루에 소비하러 가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면 귀족이었다. 하지만 영락루의 왼쪽 모퉁이에는 난잡하고 텅 빈 곳이 있었는데 장사꾼은 매일 그곳에서 장사를 했다. 밥을 파는 사람, 떡을 파는 사람, 완탕을 파는 사람 등이 있었는데 이곳은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여 음식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과 부두의 노동자들이었다. 장사하는 자리 밖에는 몇 개의 낮은 탁자와 걸상이 놓여 있었는데 손님들은 거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시끌벅적했고, 어떤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유독 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없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중 완탕을 파는 노점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도 수수하고 평범했다. 한 사람은 회색 솜저고리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있었고 나이는 대략 30살 좌우로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대략 40살 좌우로 보였는데 청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 옷차림이 다소 얇아 보였다. 하지만 완탕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다 먹은 후에 그릇을 내려놓고 회색 저고리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럼 그냥 놔준단 말입니까?” 그러자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니 그만둘 수밖에 없지.”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거 참 아쉽군요.”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그릇에 남은 국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왕에게도 초조한 맛을 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를 않으니 날이 갈수록 남의 자리가 안정되어 승산만 줄어드는 것 아니냐?” “나는 진성에서 왜 연왕을 돌려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진성에서 연왕이 역모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연왕을 풀어준 건 호랑이를 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
마을은 이미 그들의 사람들로 가득 차 뜨거운 물이며 옷이며 없는 게 없었다. 다만 옷들이 상대적으로 짧아 무소위는 다른 사람을 시켜 그의 몸에 맞는 옷으로 한 벌 구해오라고 했다. 사여묵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송석석은 그의 몸에 묻은 흙을 닦아준 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씻어주었다. 사청엽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머리를 감는 비누도 좋아서 잠깐 문질렀더니 머리카락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다만 사여묵의 머리카락이 너무 더러워 물을 세 번이나 갈아서야 깨끗해졌다. 그리고 송석석은 천천히 그의 수염을 깎아주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었다. 사여묵은 홀쭉해진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아마 그동안 잠도 못 자고 매일 걱정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사여묵은 이럴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편지를 한 통 보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옷을 사 오지 않아 일단 사청엽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좀 짧긴 했지만 큰 영향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사여묵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올 줄 몰랐소. 심 사형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한 것 같소.” “당신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송석석은 그의 품에 안겨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쌌는데 몸이 밀착되어 전해오는 진실함이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근심과 초조함을 씻어 주는 것 같았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소.” 그의 뜨거운 입술은 송석석의 이마에 닿았고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엔 힘이 더 들어갔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마오.” 방금 송석석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는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평시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여묵도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게 항상 자신의 감정을 참아왔던 것이었다.그는 송석석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지만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사여묵과 장대성은 식량을 배달하는 행렬을 따라 나갔다. 현지 사람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낯선 사람이 두 명이나 등장하자 그들은 다소 이상하게 여겼지만, 특별히 묻지는 않았다. 그저 새로 온 사람이라 계속 뒤에서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훈련이 잘 된 대석촌의 사람들과 비하면 사청엽 쪽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무소위와 송석석은 원래 왔던 길로 되돌아가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사여묵은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이 송석석과 사부님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식량을 훔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인솔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임시로 고용된 노동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송석석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사여묵을 보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거리가 너무 멀어 머리만 보였다. 그녀가 계속 고개를 돌린 이유는 방금 장대성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시만자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아까 혼란을 틈타 두 사람이 우리 대오로 잠입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왕야님과 장대성일 거야.” 잠시 후, 시만자는 무소위를 한 번 바라본 뒤 말했다. “게다가 네 사숙이 얼마나 담담하게 걸어가는지 봐라. 만약 왕야님이 이 안에 들어온 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보다 조급해할 것인데 말이야.” 송석석은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더니 시만자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숙님은 확실히 그녀만큼 급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숙은 귀가 밝아 송석석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왠지 돌아가는 길이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들은 금방 밀도로 연결되었고 식량이 쌓여 있는 밀실에 도착했다. 무소위와 송석석은 먼저 나갔고 심청화와 사청엽을 밀실에 남겨두었는데 사청엽은 뒤에 비수가 있어 다리가 나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서 있었다. 심청화는 모든 사람들이 두 번째로 나르려고 할 때 명령을 내렸다. “진국장군의 명령이다. 오늘은 그만 나르거라.” 모두들 의아해하
그들은 걸으면서 사방을 끊임없이 살펴보며 다른 곳과 연결된 밀실이 있는지 확인했다.그때 갑자기, 앞쪽에서 채찍이 휘둘리는 소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렸다.그 후, 수령이 분노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규율을 잊었냐? 두리번대지 말고 앞으로만 가라!"채찍에 맞은 사람은 수령 앞에서 횃불을 들고 있던 사람이었고, 그의 등에 선명한 혈흔이 비쳤다. 그만큼 채찍을 세게 휘두른 것이었다.채찍에 맞은 사람은 아프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바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손에 든 횃불을 더 높이 들으며 침착하게 걸어갔다.사여묵과 장대성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군기가 꽤나 엄격하군.’반대쪽에서는 송석석 일행이 이미 사청엽을 끌고 밀실로 들어가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멀지 않은 앞에는 식량을 운반하는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이 밀실은 수레를 밀 수 없기에, 한 사람이 큰 자루 하나씩 어깨에 메고 힘겹게 걸어야 했다.식량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아마 오늘 밤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아니면 며칠 동안 계속해서 운반해야 할 수도 있었다.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면서 밀실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모든 길은 문이 잠겨 있었고, 문을 열어보아야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었다.무소위와 송석석은 이를 조용히 눈여겨보았다. 이 문들이 지도에 표시된 밀실의 위치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일치한다면 지도에 그려진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하며, 이후 탐색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었다.중간에 건장한 남자들이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했지만, 얼마 쉬지 않고 곧바로 다시 일어나 식량을 운반하기 시작했다.그 무거운 식량 자루가 그들의 허리를 펼 수 없게 만들었지만 그들 모두 큰 자루를 메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기에 여전히 빠르게 걸어갔다. 그렇게 약 한 시진 정도 걸어갔을 때, 앞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누군가 횃불을 들고 와서 맞이하는 것 같았다.송석석 일행은 앞서 가는 식량을 운반하는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있었고,
사여묵은 오늘 밤 저녁 식사가 개선된 것을 느꼈다. 장대성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구웠지만 겉과 속을 전부 태워버렸다. 먹고 나면 입안이 비린내와 탄내로 가득했다.개선되었다고 말한 이유는 적어도 먹고 나서 기름지지 않고 단순히 역겨운 맛만 남았기 때문이다.오늘 밤, 동굴 안에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이 명확히 보였다.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산으로 올라왔다. 모습을 보니 이제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았다.사여묵은 구운 물고기를 먹고 나서 나무 위로 뛰어올라 아래를 주시했다.장대성은 이미 동굴 근처로 기어갔다. 그곳은 그들이 오랫동안 관찰해온 곳으로, 사람들이 대소변을 보는 곳이었다.냄새가 구역질이 날만큼 역겨웠긴 했지만 이곳은 가장 좋은 공격 지점이었다. 그들은 종종 두세 명씩 오면 기습적으로 공격해 옷을 바꿔 입곤 했다.거의 반 시진 동안 기어가던 중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두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용변을 보러 왔고, 장대성은 즉시 그들에게 다가가 단 몇 초 만에 그들을 제압했다.그는 그들을 한 명씩 어깨에 메고 빠르게 산 위로 향해 돌아왔다. 사여묵은 나무에서 뛰어내려 두 사람의 옷을 벗기고 그 옷으로 갈아 입은 후, 그들의 혈점을 풀어주었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목을 조르고 몇 대를 때리자 두 사람은 힘없이 쓰러졌다.사여묵은 그들의 검은 옷을 입었는데, 꽤나 따뜻했고 그 사람의 몸집이 꽤 컸기에 외투로 입으니 딱 맞았다.장대성은 칼을 그들의 앞에서 흔들었다. 겁에 질린 두 사람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그들은 식량을 운반하러 가는 일이었으며, 안으로 들어가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식량은 석달에 한 번씩 운반되었는데, 마을에서 경작한 양이 부족해 외부에서 운반해 와야 한다고 덧붙였다.왜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냐고 묻자, 그들은 식량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상위에서 지시한 대로 신비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들이 누구의 병사인지 물었을 때,
그 날, 사청엽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농장에 왔다. 그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장, 식초, 소금, 설탕 등의 물자를 실은 마차가 도착했다.이것들은 새로 추가된 것들이었고, 식량은 이미 이전에 농장으로 보내졌다.이 곳의 경비는 그다지 삼엄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무종은 낮에도 조용히 지붕 위에 올라 농장 안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잠시 후 청엽이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밤부터 작업을 시작하라."농장쪽 뿐만아니라 다른 출구에서도 사람들의 활동이 잦아졌다.무소위는 처음엔 밖에서 감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나누어 활동하기로 하자 차라리 지하도로도 진입하여 상황을 조사하고, 지도에 표시된 대로인지 확인해보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가장 좋은 방법은 이 노주에 정말 오천 병력만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고,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는 대담한 계획이 있었다. 매산에서는 또다른 무리들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며칠 내로 다양한 신분으로 노주에 들어올 것이었다.사여묵은 그의 유일한 직계 제자였기에 이번에는 그도 약간 당황한 상태였다. 만약 사여묵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그래서 그는 사형을 시켜 매산의 여러 문파에 편지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노주에 인원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담긴 편지였다.그가 당황한 주된 이유는 사여묵이 일을 매우 잘 처리하는 사람이었기에, 실종된 후 그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는 것이 비정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노주로 출발하기 전, 그는 노주의 모든 자료를 뒤져보는 와중에 사여묵이 지하도를 감시하며 노주의 군권 소유와 사병의 인원을 확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여 정말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 만약 제자가 노주에서 죽었다면, 최소한 시체를 찾아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노주에 도착한 후, 그는 심청화를 통해 사여묵이 완전한 매화 표식을 남겼
송석석은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 사숙을 바라보았다. 사숙이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다.한 장의 지도 위에 머리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지도 위에 표시된 지하도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지만 입구는 단 네 개뿐이었다.동쪽에 두 개, 서쪽에 한 개, 남쪽에 한 개의 지하도 입구가 있었다. 그러나 대석촌 마을 입구 북쪽에는 하나도 없었다.즉, 유일한 길은 지하도 입구가 없는 길이라는 것이다.그렇다고 네 개의 입구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 속에는 많은 입구가 있다. 그러나 산에서 지하도로 들어가면 결국 네 개의 출구를 통해서만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이 산 속 어디서 들어가든, 결국 이 네 개의 출구에서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 보기도 전에 무소위가 두 번째 지도를 펼쳤다. 손으로 지도를 밀며 손가락으로 그가 표시한 기호들을 하나씩 찍었다.이 마을들에는 모두 입구가 있으며 총 13개의 마을이 있다. 빨리 보고, 머릿속에 잘 기억해두어라. 이제 각 대열로 나뉘어 네 개의 출구로 흩어져 그들을 지원하러 가야하니. 나머지 마을은 따로 사람을 보내서 조사할 것이다.”그러자 송석석은 몸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소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아부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사숙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시자마자 막힌 상황을 깨주셨어요. 대열이 나뉘면 저는 사숙과 함께 가겠습니다.”무소위는 그녀를 보고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나는 안 간다.”“데리러 가는 것도 내가 가야 하겠냐? 이 사람들을 모조리 데리고 왔으면 됐지.”송석석은 웃으며 말했다.“예, 사숙님. 안 가셔도 됩니다. 그런데 진짜 그 둘이 지하도를 탐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위험에 처했을까 걱정되지는 않으십니까?”무소위가 그녀에게 물었다.“너희들이 며칠 동안 산을 돌아다녔을 때 혹시 훼손된 매화꽃을 본 적 있느냐?”산에 들어갔다 온 이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발견한 매화꽃은 두 송이뿐이었고, 모두 온전한 상태였다
그는 아마도 며칠 내로 사람들이 식량을 운반해 올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은 두 명뿐이었기에, 밤이 되면 몰래 그들 틈에 섞여 나갈 수 있을 터였다. 사람 수가 많으면 오히려 더 번거로울 것이었다.그때 출구를 찾고 한두 명을 잡아 심문한다면 대개는 상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불지 않는다면 말을 할 때까지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내면 됐다.“조금만 더 참자. 최대한 삼 일이면 끝날 테니.” 사여묵이 말했다.“찐빵이 너무 먹고 싶습니다.” 이미 배불리 먹은 장대성이 꺼억 트림을 하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밀가루 음식을 못 먹으면 사람은 죽는다고 하던데, 매일 이렇게 고기만 구워 먹으니 기름져서 느끼합니다.""풀 하나 뜯어서 입에 넣고 씹으면서 입맛을 달래라." 사여묵이 손을 뻗어 풀 한 줌을 꺾어 주었다. 이 풀은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이 시기가 가장 부드러울 때였다. “자, 빨리 먹게.”“써서 못 먹겠습니다.” 장대성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사여묵의 호의를 거절했다.그가 먹지 않자, 사여묵이 대신 먹었다. 이 풀은 뿌리도 먹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잎에서는 약간 쓴맛이 났지만 입맛을 달래는 데는 꽤 좋았다. 심지어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심선생께서 왕비께 우리가 실종되었다고 편지를 보냈을까요?” 장대성이 물었다.“아마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곳곳에 표식을 남겼으니 대사형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야.” 사여묵은 칼로 작은 구멍을 파고, 먹고 남은 뼈를 뱉어 땅에 묻었다.왕비를 언급하자마자, 사여묵에게 송석석을 향한 그리움이 다시 물밀듯 밀려왔다. “일이 끝나면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진성으로 돌아간다." “당연합니다!” 장대성이 말했다.사여묵은 나무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 ‘석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그는 송석석이 노주에 있고 심지어 이 산에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산에서의 거리로 보면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긴 했다.
시만자는 송석석이 이전보다 확실히 살이 많이 빠진 듯한 것 같다고 느꼈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는 그녀가 안타까워, 꼭 안으며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대고 말했다. “내 어깨를 빌려줄게. 울면 조금은 나아질거야.”송석석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쳐내더니 급히 일어나 작은 개울을 뛰어넘어 몇 걸음 더 달려가 나무 한 그루 앞에 멈췄다.나무 줄기에는 뚜렷하게 매화꽃이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그 완전한 매화꽃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완전한 꽃 형태라 하더라도, 나무 줄기와 매화 표식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 표식은 확실히 대사형과 몽동이가 발견한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발견하긴 했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만자, 너희는 먼저 산을 내려가. 나는 이 산을 조금 더 돌아볼게. 이렇게 흔적을 남겼으니 아마 더 있을 거야.”시만자가 놀라며 송석석의 머리를 한 대 탁 치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우리는 함께 가고 함께 남는 거야. 가고 싶으면 같이 가고, 머물고 싶으면 같이 머물어."“그치만 식량이 부족하잖아.” 송석석이 말했다.“그럼 물고기를 잡고 열매를 따면 되지.” 그러자 시만자가 그녀의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말했다. “시경님과 장대성도 그렇게 살아남았을 거야.”송석석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사여묵과 장대성이 이 산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가지고 올라온 식량이 다 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산에는 열매도 별로 없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끼나 산닭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이 길에서 송석석은 그런 생물들을 꽤 많이 봤고, 서쪽 산 중턱에, 수염이 덥수룩한 두 명의 남자가 작은 동굴에 앉아 갓 구운 야생 토끼를 잡아먹고 있었다.이 두사람의 옷은 이미 더러워졌고, 온 몸엔 기름기가 가득했으며, 머리는 매우 헝클어져 있었다.다행히 얼굴은 마침 오늘 근처에서 발견한 작은 샘에서 씻을 수 있었기에 덜 지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