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유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나민우, 우리 초등학교, 중학교 다 같은 반이었어.”지유는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잠깐 떠올려봤다.그녀가 기억하는 민우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그때 민우는 뚱뚱했고 매 학기마다 제일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지유는 민우와 얘기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었다.그녀는 성적이 좋았던지라 늘 간부였고 숙제를 거둘 때만 그와 몇 마디 나눴을 뿐이다.지금의 민우는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할 만큼 잘생겨졌다.“나민우?”지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너 왜 이렇게 변했어? 몰라보겠다야.”“그래, 많이 변하긴 했지. 몰라봐도 이상해할 거 없어.”민우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봤다.“다들 나 못 알아보더라. 근데 나는 너 기억해.”지유는 옛 친구를 만나니 기분이 좋아졌다.일을 하고 난 후로 매번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동창회에 간 적이 별로 없었다.지유는 생활이 단조로운 편이었다. 일과 가족, 그리고 업무적으로 알고 있는 파트너 외에 친구라고는 지희 하나뿐이었다.생각해 보니 생활이 정말 너무 재미없어 보였다. 대부분 시간을 이현에게 가져다 바쳤기 때문이다.“중학교 졸업하고 어디 갔어? 그 뒤로 소식 못 들은 것 같은데.”지유가 민우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유학 하러 갔었어.”민우가 대답했다.“최근에 귀국한 거야.”“그랬구나.”지유는 한 웅큼이나 젖은 그의 슈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일단 벗어서 줘. 내가 씻어줄게.”“진짜 괜찮아.”지유가 말했다.“어렵게 만났는데 이런 큰 선물을 줬으니 마음이 내려가지 않네. 씻으면 바로 가져다줄게.”지유가 계속 고집을 부리자 민우도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그럼.”그는 슈트를 벗어 지유에게 건네주었다.다행히 안에 입은 셔츠는 젖지 않아 보기에 그렇게 참담해 보이지는 않았다.지유는 쇼핑백에 바로 슈트를 개어 담았다.“나 대표님.”갑자기 누군가 민우를 부르며 열정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Last Updated : 2024-05-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