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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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예림은 얼른 주머니에서 옷을 꺼냈다.“온 비서님이 너무 바쁘기도 하고 마침 그쪽에 갈 일도 있고 해서 제가 가져왔습니다.”이현은 자신의 것이 아닌 슈트를 보더니 눈빛이 매서워졌다.남자의 슈트였다.이현은 문득 민우가 떠올랐다.그때 전시에서 지유가 민우를 만났을 때 이 쇼핑백을 들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하지만 그때 이현은 안에 뭐가 들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알고 보니 민우의 슈트였다.이현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예림은 그의 안색을 관찰했지만 별로 크게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이현이 표정 관리에 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예림이었기에 속으로는 분명히 언짢아할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물었다.“대표님, 여기 놓을까요?”이현이 입술을 앙다문 채 차갑게 말했다.“놓고 나가요.”예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네,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일을 마치고 난 예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무실에 나왔다. 지유가 이렇게 이현의 믿음을 저버리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기분이 언짢았던 이현은 업무를 하면서도 그 슈트가 너무 거슬렸다.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지유는 사무실로 들어왔다.동창회에 참석하겠다고 했으니 야근을 할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이현이 아직 사무실에 남아 있었기에 지유는 먼저 퇴근하겠다고 말하러 들어왔다.지유는 이현이 업무를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지유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지유는 오늘 이현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질문 없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시간도 되었으니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순간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지유는 살짝 의아하긴 했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현이 성난 사자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오자 지유는 그제야 불길함을 느끼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지유가 그런 이현을 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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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예약한 룸으로 가보니 2층은 확실히 조금 더 아늑하고 사람도 적었다.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불렀다.“나 대표님 왔다, 나 대표님!”“민우야, 너 진짜 많이 달라졌다. 인물도 훤해지고 대표님까지, 너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줄을 섰겠어.”민우가 그 농담을 받아쳤다.“그건 나도 모르지, 고개 좀 돌려볼까, 있나 없나?”“그럼 아직 솔로라는 거네. 자,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여성분들, 이런 빛이 나는 솔로가 옆에 있는데 기회 잘 잡아야겠죠.”민우와 얘기를 나누던 친구들은 뒤에 서 있는 지유를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뭔가 알아챈 듯 웃으며 말했다.“오늘 귀한 손님이 한 명 더 왔네. 온지유.”지유가 이렇게 말했다.“미안, 내가 많이 늦었지.”“지유야, 너무한 거 아니야? 전에 동창회 했을 때는 거의 참석을 안 하더니. 오늘 민우 아니었으면 또 못 보는 거 아니야? 얼굴 보기 참 힘들어.”“근데 지유 너는 참 한결같이 예쁘다.”“예쁘면 좋지. 예쁜 것도 재산이라잖아. 지금 여진그룹 여 대표님 비서잖아. 그러니 나 대표랑도 같이 올 수 있는 거고.”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다들 수군거렸다.어떤 말에는 듣기 거북한 단어들도 있었다.하지만 지유는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년간 쌓아온 사회 경험으로 이미 마음가짐도 웬만큼 단단해졌다.지유의 업무는 겉보기는 좋아 보여도 사실 다 같은 월급쟁이라는 걸 본인만 알고 있었다.민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지유가 너무 난처할까 봐 얼른 말을 돌렸다.“다들 도착했지. 오늘 내가 사는 거니까 다들 마음껏 먹어. 나 돈 아껴주려고 하지 말고.”“민우야, 너 이제 대표까지 달았는데 당연히 그런 생각은 안 하지.”지유는 자리에 앉은 친구들을 바라봤다. 날씬해진 사람, 뚱뚱해진 사람, 가정주부가 된 사람, 생활에 치여 성격이 많이 차분해진 사람, 어떤 사람은 많이 변했지만 어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지유는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서 앉고 싶었지만 민우가 이렇게 말했다.“지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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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친구들도 그의 대답을 무척 궁금해했다.민우가 멈칫하더니 친구들의 주목하게 입술을 열었다.“여기 없어. 너희들은 모르는 사람이야.”순간 친구들의 흥미가 떨어졌다.“아, 난 또 지유인 줄 알았네. 우리가 너무 헛다리 짚었다.”지유는 그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두 사람 사이는 예전보다 지금이 조금 더 가까웠다.그냥 친구들이 너무 떠들어대기를 좋아했을 뿐이다.그 뒤로 더는 그녀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았다. 더는 그들의 화제에 끼지 않아도 되어서 지유도 홀가분했다.동창회라고는 하지만 남자들이 모이면 결국 술과 일 얘기였다.지유도 술을 조금 마셨다. 너무 오래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이내 머리가 어지러웠고 술기운이 올라왔다.그때 누군가 수다를 떨면서 그녀의 이름을 꺼내는 게 들렸다.“중학교 동창 중에 그래도 지유가 잘나가긴 하지. 두 대표님 사이를 전전하면서 많이 벌었겠지?”“그런 방법으로 잘 나가는 건 나도 싫어. 명예를 얻긴 했지만 정당한 방법은 아니잖아. 지유 있는 집 자식 같지는 않은데 무려 에르메스를 들고 있어. 대표님 세컨드 노릇 하고 있는 거 아니야?”몇몇 여자 동창들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실 그들은 지유가 올 때부터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입은 옷도 그렇고 손에 든 가방도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를 들고 있었다.만약 그냥 비서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다.지유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그녀는 가십거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 사는 것에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부하기 싫어해 진작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터라 시야도 그렇고 경지도 그렇고 지유와는 아예 달랐다.“지유, 여진그룹 여 대표님 비서로 있잖아. 둘이 썸씽 있는 거 아니야?”“지유가 여진그룹 다닌 지도 6, 7년 됐지. 그런데도 직장 안 바꾸는 거 보면 진짜 여 대표님이 좋은 거 많이 해주나 봐.”“그걸로 재벌 집 며느리라도 되려고 그러나봐.”“지유가? 무슨 자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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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지유를 때리려던 그 여동창도 얼굴을 가린 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봤다.“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누구한테 사과해야 할지 몰라?”그들은 그제야 알아채고 얼른 지유 앞으로 다가와 자세를 숙이며 말했다.“미안해. 지유야. 우리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잘못했어. 다음엔 안 그럴게.”그들은 이현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여기서 아무리 큰 재주가 있어도 여진그룹을 상대할 사람은 없었다.잘못 건드리는 날엔 지금 다니는 회사도 잘리고 말 것이다.그들은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고 부모님도 모셔야 했기에 직장까지 걸 수는 없었다.지유는 당연히 그들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현을 멍하니 바라봤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이현은 고개를 돌려 지유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는 지유의 팔을 붙잡더니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집에 가자.”지유가 이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내가 왜 당신이랑 집에 가요. 아무 사이도 아닌데.”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지유가 이현의 비서라는 건 다들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집에 가자는 화제랑은 연관 짓기 어려웠다.이현은 지유의 몸에서 술 냄새를 맡았다. 적지 않게 들이부은 것 같았다. 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또 뭐 하려고?”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런지 지유는 점점 담이 커졌다.“지금 이거 안 보여요? 동창회 아직 안 끝났어요.”이현은 인내심이 바닥나 넥타이를 당기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동창회? 이렇게 당하고도 모자라? 얼른 나랑 가자.”이현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지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이때 민우가 따라 나오더니 지유의 다른 쪽 팔을 잡으며 말했다.“대표님, 지유 이미 퇴근했어요. 지금 와서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이현이 민우를 보며 코웃음 쳤다.“그럼 그쪽은 뭘 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의논하는 거 계속 듣고 있으라고요?”이에 민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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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지유는 자신이 겪었던 억울한 일들이 떠올라 점점 더 세게 울었다.그녀가 그렇게 서럽게 울자 구경꾼들이 몰려왔다.“아이고, 여자 친구 화나게 했어? 서럽게 우는 거 봐서는 많이 억울했나 보네.”행인들이 지유가 통곡하자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씩 했다.이현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수모를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냥 조금 삐진 것뿐이에요. 조금 있으면 좋아져요.”이현은 지유를 안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지유는 마치 미꾸라지처럼 이현에게 업힌 채 점점 더 크게 통곡했다.“여자 친구를 잘 달래주려면 인내심이 있어야지.”행인이 말했다.“잘못할 짓을 해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야. 어떤 여자애가 아무 이유 없이 화내겠어.”이현도 도대체 왜 그녀가 화났는지 몰랐다.그가 화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지유가 화내고 있다.하지만 지유가 너무 서럽게 울자 이현도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이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렇게 여자를 달래본 적이 없으니 생소하면서도 방법이 없었다. 정말 비즈니스 담판보다도 어려운 것 같았다.“지유야, 어떡해야 화가 좀 풀릴까?”지유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이 몸을 숙이고 있자 지유가 두 팔을 벌렸다.“업어줘요. 그럼 알려줄게요.”“내가 말했지. 여자 친구 화난 게 맞다고.”행인이 웃으며 말했다.이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분고분 무릎을 꿇고 지유를 등에 업었다.지유는 머리를 이현의 어깨에 기댔다. 지유의 눈물이 이현의 목을 타고 떨어졌다.“울지 마. 다 큰 성인이 아직도 울고 그래.”“이현 씨가 나 안 건드렸으면 내가 왜 울겠어요.”지유가 이현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이렇게 말했다.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유는 반쯤 취한 상태로 이현의 목을 감싸더니 이렇게 말했다.“이현 씨, 나 처음 업는 거 알죠.”“응.”“노승아 씨 만나러 간 거 아니에요? 나는 왜 찾으러 왔대?”“네가 당하고 있을까 봐.”지유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다행이네. 나를 업고 이렇게 먼길을 오게 했으니 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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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이현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지유가 긁은 자리는 이미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그는 얼른 더 긁으려는 지유의 팔목을 잡았다.“긁지 마.”지유는 불편한지 계속 툴툴거렸다.“간지러워.”이현이 미간을 찌푸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알코올 알레르기 있으면서 왜 그렇게 술을 마셔?”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뜬 지유가 이현을 발견하고는 물었다.“여기 어디예요?”“집이야.”이현은 지유의 신발과 다소 걸리적거리는 옷을 벗겨주고는 이불을 덮어줬다.지유는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동창회에서 술을 조금 마신 뒤로 트러블이 좀 있었던 것 같았다.관건적인 순간에 이현이 나타났다.“이현 씨가 나 데리고 온 거예요?”지유가 물었다.이현은 욕실로 가서 뜨거운 물을 받아오더니 수건을 적셔 지유의 팔을 꼼꼼하게 닦아줬다.빨개진 팔은 두드러기가 돋아나 있었고 마구 긁은 흔적이 보였다.“내가 아니면 누군데. 다음부터 술 마시기만 해봐 아주.”이현은 지유가 술을 먹는 게 싫었다.알코올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술을 먹으면 위험해지기 십상이다.지유는 직접 자신의 얼굴과 몸을 부드럽게 닦아주는 이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렇게 뼛속까지 부드러운 이현은 처음이었다.표정이 살짝 변한 지유가 물었다.“왜 갑자기 이렇게 챙겨주는 거예요?”이현이 지유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아니면 어떻게 자? 나는 주정뱅이랑 자기 싫어.”말이 끝나기 바쁘게 몸도 다 닦았다.하지만 지유는 아직도 몸이 간지러웠다.약간 불편했다.누워 있으니 머리도 아프고 몸도 허약해진 것 같았다.지유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이현은 물을 한 잔 가져오더니 손에 든 알약 두 개를 지유의 입가로 가져갔다.“약 먹자.”지유가 눈을 뜨더니 말했다.“이거 무슨 약이에요?”“알레르기 낫게 하는 약. 먹으면 좀 편해질 거야.”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착하지. 얼른 먹어.”이현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이렇게 말했다.지유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현이었다. 전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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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이를 들은 이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유가 울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창가에 선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공기 속에서 점차 차가워졌다.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야 이현은 방에서 나갔다. 그러더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이튿날.지유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침대에서 일어나 지유는 머리가 천근만근이라 꼭 감싸 안았다.지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며 술을 깨려 했다.씻으러 욕실에 들어가 보니 눈이 많이 부어있었다. 어제 분명 얌전하게 자지는 않았을 것이다.어젯밤 이현이 자신을 데리고 온 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침대 옆자리는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이현이 옆에서 자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하지만 이현이 꽤 오래 자신을 보살폈던 건 기억이 났다.그렇게 따듯하게 챙겨준 건 처음이었다.지유는 무슨 상황인지 정리가 잘되지 않았다. 어제 이현이 왜 마침 그곳에 나타난 건지, 그리고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준 건지 말이다.성질을 부렸던 것 같은데 이현은 화내지 않았을뿐더러 다독여주기까지 했다.다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도우미가 아침 준비를 마친 뒤였다.이현도 내려와서 같이 먹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이현 씨 어디 갔어요?”도우미가 대답했다.“대표님,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오늘은 주말이었다.지유가 핸드폰을 꺼내 이현과의 카톡을 열었다.[어제는 고마웠어요...]지유는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어제 또 밤새 신세를 졌네요...]지유는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끝내 보내지 못했다.너무 오글거리는 문자라 차마 보낼 수 없었다.그것보다 더 두려운 건 이현이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이다.어젯밤 보여줬던 부드러운 모습도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밥을 먹은 지유는 집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제일 큰 쇼핑몰로 향했다.날씨가 쌀쌀해졌으니 두꺼운 옷을 좀 사야 했다.이현에게 코트를 하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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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이현 씨가 입은 오트 쿠튀르 옷이 좀 많아요?”지유가 무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산 옷을 입으면 그만이죠. 근데 승아 씨는 누구 옷을 고르러 온 거예요?”승아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서로 물러서려 하지 않았고 곧 불꽃이라도 튀어 오를 것 같았다.승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제 남자 친구한테 전 세계에 딱 10벌 있는 오트 쿠튀르 사주러 왔죠. 한번 보여줄까요?”승아의 말투는 어딘가 묘하게 자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에게 명품 코트를 사주려고 하는데 지유는 매장에서 흔히 보는 옷들을 고르고 있었다.남자한테 옷을 골라주는 일로만 봐도 둘은 차원이 달랐다.매장 직원은 한정판 코트가 담긴 박스를 들고나왔다. 포장만 봐도 돈이 많이 깨졌을 것 같았다.시유가 이를 힐끔 보더니 비아냥거렸다.“드레스 하나도 다른 사람 돈으로 사면서 이번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승아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남자 친구가 날 위해 지갑을 여는 게 부러웠나 보죠?”“부러운 건 아니고.”지유가 덤덤하게 말했다.“그 돈이 그렇게 떳떳한 돈은 아닌 것 같아서, 소문이라도 나면 승아 씨 명예가 실추될까 봐 그러는 거죠.”승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지유가 무슨 말 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아직 지유는 이현과 부부 사이였기에 이현이 승아에게 쓴 돈에 지유의 지분도 있었다.지유가 다시 회수하고 싶다면 방법은 많았다.그러면 승아의 명예가 실추될 수밖에 없다.유명한 가수가 유부남을 꼬셨다는 소식이라도 나면 그대로 연예 생활은 끝이 난다.이런 스캔들을 터트리지 않고 참은 것도 다 지유가 마음이 착해서였다.“그걸로 협박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승아도 더는 지유를 상대하기 싫어 차갑게 말했다.“지유 씨는 오빠랑 이혼하면 한 푼도 못 받을 거예요. 애초에 오빠랑 결혼한 것도 여씨 집안 돈 보고 결혼한 거잖아요. 지유 씨는 그저 비서일 뿐이에요. 손에 든 그 옷을 사려고 해도 몇 개월 치 월급은 써버려야 되는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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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이현이 지유에게 200억이 담긴 카드를 줬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승아는 다 조사해 봤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현이 지유를 별로 챙기지 않는다고 말이다.이현의 비서로 7년이나 있었는데 이현은 여전히 지유를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만약 이현이 정말 지유를 좋아하는 거라면 결혼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했겠지.승아는 지유가 이현 몰래 스폰서를 찾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믿더라도 이현이 돈을 줬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내 조카가 조카며느리한테 돈 좀 쓰는 게 어때서? 다른 설명이 필요한가? 승아 씨가 갖지 못한다고 다른 사람도 갖지 못하는 건 아닌데 말이죠?”순간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비녀로 머리를 얹은 여희영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거의 오십이 되는 나이었지만 몸매는 여전히 잘 관리되어 있었고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작은 고모님.”여희영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던 지유가 웃으며 불렀다.여희영이 웃으며 말했다.“옷 좀 사러 나왔다가 너를 만날 줄은 몰랐네.”여희영은 이현의 하나뿐인 고모였다.할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막내딸이었다.자유로움을 좋아하는 여희영은 여씨 본가에서 지내지 않고 여행 다니기 좋아했다.만나려면 정말 인연이 닿아야만 했다.저번에 본 건 작년이었다.그것도 스치며 한번 만났다.“언제 들어오셨어요? 소식 못 들었는데.”지유는 여진숙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고모인 여희영과는 잘 맞았다.여희영의 사상이 오픈 마인드라 젊은이들과 비슷했다.하여 지유는 그를 선배가 아니라 친구로 대했다.“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이게 인연 아니겠어?”여희영도 열정적으로 지유에게 인사를 건넸다.승아는 이런 곳에서 여희영을 만날 줄은 몰랐다.여희영은 이현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승아도 여진숙보다 여희영과 더 잘 지내고 싶었다. 여씨 집안 사람들과 잘 지내야 여씨 집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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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승아는 거기 멈춰 선 채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고모님, 혹시 다른 일 있어요?”여희영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옷 사러 온 것 같은데, 그 옷 본인이 입을 거 아니죠?”노승아의 얼굴이 굳었다.“네, 선물하려고 산 거예요.”여희영은 다 알고 있었지만 톡 까놓고 얘기하기는 싫어 앞으로 팔짱을 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노승아 씨, 공인으로서 어떤 일은 해도 되고,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야죠. 어떤 일은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노씨 집안 체면을 생각해서 눈감아주는 거지 내가 동의한 건 아니에요. 뭐든 다 까밝혀지고 나서 후회하지 말라는 말이죠. 나는 여진숙이 아니니까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마요.”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던 승아는 여희영의 말에 눈시울이 빨개지더니 주먹을 꼭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잘 알겠습니다. 고모님.”여희영은 그런 승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코웃음을 쳤다.승아는 모욕받았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렸고 매니저의 부축을 받으며 매장을 나섰다.“지유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뭐 좀 마시자.”여희영이 웃으며 말했다.“좋죠. 옆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거기로 가요.”둘은 카페로 향했다.여희영은 여씨 본가에서 지내진 않았지만 늘 이현과 지유를 걱정했다.“현이랑 결혼한지도 3년이 되어가는데 아이 가질 생각 없어?”지유가 멈칫하더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여희영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지유야, 나는 슬하에 아이가 없잖니. 현이가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너희들이 빨리 손주 안겨줬으면 싶은데. 내 친구 중에 나보다 나이가 어린 애들도 벌써 손주 있더라.”지유는 커피만 홀짝거렸다.이현은 여희영과 사이가 좋았고 친모인 여진숙보다 고모 여희영을 더 잘 따랐다.여씨 집안은 사실 관계가 조금 복잡했다.이현도 어릴 때 여씨 집안에서 자란 게 아니었다.이현이 여씨 집안으로 오게 된 것도 여희영 덕분이었다.여진숙은 이현을 별로 상관하지 않았고 그에게 오히려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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