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의 모든 챕터: 챕터 1081 - 챕터 1090

1198 챕터

제1081화

두 사람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절망에 빠졌었고 지옥에서 발버둥 치다가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것이다.이지민과 김시후는 비슷한 경험을 했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전부를 다 걸고 사랑했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자들이었다. 다만 이지민은 이제 그 아픔에서 벗어났고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되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김시후는...그도 어쩔 수 없이 놓아주긴 했지만 더 잔인했던 건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그가 기억을 되찾게 되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지민이 겪은 아픔보다 김시후가 겪은 아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것이었다. 10년을 넘게 사랑한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그의 절망적인 고통을 이지민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짐을 챙겨 이리 달려온 것이었다. 다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그 당시 우울한 마음에 자살하고 싶었을 때 누군가 와서 자신을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터라 그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김시후가 여태껏 어떻게 어떤 신념으로 버텨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런 병에 걸린 사람을 죽을 때까지 무기력하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이지민이 온 것을 보고 서유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우울증을 앓았던 일은 서유도 조금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녀가 정말 송사월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귀찮지 않다면 같이 가요.”이지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유를 향해 단아한 미소를 지었다.“남을 돕는 일인데 귀찮을 리가요?”그녀는 봉사활동도 많이 하면서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도왔었다. 이 일도 그녀에게는 그저 남을 도와주는 좋은 일에 불과했다. 성격이 온화한 그녀는 부잣집 아가씨티가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붙임성이 좋아서 서유는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안주인이 허락했으니 이승하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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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2화

그녀의 제안을 즉시 받아들인 정가혜는 술 몇 잔을 마셔도 쓰러지기는커녕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자신을 향해 웃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온유한 외모 아래 강한 면이 있는 이지민을 보며 정가혜는 황급히 술잔을 거두었다. “그만 마셔요. 내가 졌어요...”이지민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잡아당겼다.“졌으니까 속마음 털어놓아요.”...차라리 서유의 집에 남아있을 걸 그랬다. 이승하를 마주하며 멀뚱멀뚱 소파에 앉아 있기보다 못하였다.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 건데요?”이지민은 술잔을 쥐고 바에 등을 기댄 채 차들이 분주히 오고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우리 오빠 얘기 좀 해줘요.”그 말에 정가혜는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 내 꼴을 봐봐요. 연석 씨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이지민은 고개를 돌리고 자신을 비하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가혜 씨만 원한다면 자격이라는 건 별거 아니에요.”무심한 그녀의 말투에 정가혜는 자신보다 그녀가 더 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렇게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픈 사랑을 겪고 우울증도 겪었으니 성숙하지 않을 리가 있나?다만 그녀의 문제에 정가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손에 든 와인잔을 쳐다보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다시는 결혼 같은 거 안 해요.”이연석의 얘기는 꺼내지 않고 한 마디로 답을 줬다.하지만 이지민은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여자들은 그 남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 그녀처럼 분명하게 말을 한다.정가혜는 분명하지가 않았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건 자신을 단속하는 것일 뿐 이연석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빠한테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잡을지는 오빠한테 달린 것이다. “지민 씨는요?”정가혜가 고개를 돌리고 바에 기대어 있는 이지민을 쳐다보았다. 넓은 집안에는 바에 있는 작은 등만 켜져 있었다. 눈에 거슬리지 않는 조명 몇 개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비추며 따뜻한 빛을 발했다.“이수 오빠 말이에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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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3화

한편, 서유는 침대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녀는 아예 눈을 뜨고 옆에 누워있는 이승하를 바라보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남자는 잠이 든듯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긴 속눈썹에 가져다 댔다. 바로 이때, 그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송사월 때문에 잠 못 자면 벌 줄 거야.”질투가 섞인 차가운 그의 목소리가 전해지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월이 생각 한 거 아니에요.”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달이 왜 이렇게 동그랗게 떠 있나 그 생각 하고 있었어요. 달빛에 잠이 안 와요.”그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창밖의 달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치고 무드 등을 껐다.“이젠 아무것도 안 보여. 얼른 자. 내일 송사월 만나러 가야 하잖아.”그의 말투는 불쾌해 보였다. 송사월이라는 이름을 말하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틈을 타 그녀가 몰래 그를 노려봤다. 그런데 이때 그가 단단한 팔을 뻗었고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가 시력이 그렇게 좋은 건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팔베개 해줄게.”잠이 오지 않을 때면 늘 그의 팔을 베고 그의 품에 안겨 다리를 그의 허리에 올려놓았다.매번 그 자세를 취할 때마다 그녀는 곧 편안히 잠들 수가 있었다. 그녀의 잠버릇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늘 그녀에게 맞춰주었다. 가끔은 팔이 저려도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그의 품에 안겼다. 은은한 그의 향기를 맡으며 그녀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를 안은 채 그는 한참 동안 조용히 그녀의 숨소리를 들었다. 예전처럼 그녀의 입에서 송사월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자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8년 동안 그를 사랑했다고 하면서도 그녀가 왜 잠결에 송사월이라는 이름을 그리 많이 불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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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4화

차는 곧 이지민의 아파트 아래층에 멈춰 섰고 기다리고 있던 정가혜는 차가 오자 얼른 앞으로 다가가 차 문을 당겼다.운전자석에 앉아 있는 이승화와 중년 여성 스타일의 서유를 보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올라탔다.“지민 씨는?”“지금은 좀 조심스러우니까 일단 우리가 가서 상황을 파악한 뒤 오겠다고 했어.”짧게 해명한 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데 남편이 직접 데려다준다고?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그래도 가는 내내 차 안의 분위기는 나름 화기애애했고 갈등은 없었다.김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하자 서유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 모습에 정가혜는 예전에 서유가 이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송사월에게 애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낯익은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라 서유는 가슴이 아팠고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한편, 이승하는 그녀가 송사월을 만나는 일 때문에 긴장하고 무서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줄 알았다.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두 시간 줄 테니까 병문안만 하고 얼른 나와.”시간까지 정해놓다니...추억에 젖어있던 서유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이 남자 정말 이제 와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야? 분명히 낮에는 사월이를 돌봐줘도 된다고 했잖아? 저녁에만 돌아오면 된다고 하더니 왜 시간을 재고 있어?뒷좌석에 앉아 있던 정가혜는 시무룩해진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운전자석에서 차갑고 고급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적당한 거리 유지하기.”깜짝 놀란 정가혜는 손을 움츠리더니 바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서유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그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또 있어요?”요구를 한 번에 다 말하라고 한 줄 알고 그는 눈을 내리깐 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요. 나랑 같이 가서 옆에서 수시로 날 감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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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5화

멀리서 바라보니 꽃밭 속의 남자는 여전히 젊었을 때처럼 맑고 준수하며 우아해 보였다. 눈에 익은 얼굴, 눈에 익은 그림자가 점차 선명해지자 꿈만 같았다.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셀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 떠올린 건 온통 그녀에게 잘해주던 송사월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눈빛은 전혀 달랐다. 그의 눈에는 온통 그녀뿐이었고 그녀의 눈빛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서로 평생을 약속했던 사이였지만 그녀는 결국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고 말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그가 눈 밑의 어둠을 애써 감추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부드러운 미소를 바라보며 그녀는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 듯 그녀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오랜만이야.”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몇 초 동안 말이 없던 그가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랜만이네.” 그의 인사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여자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니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걸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서로 사랑했던 연인은 손가락이 살짝 닿자 서로를 놓아주었고 한 사람은 우두커니 서 있었고 한 사람은 멍하니 앉아 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허리를 굽히고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다리는 어때?”그의 시선이 그녀를 잡았던 손에서 그녀에게로 옮겨졌다.“가혜 누나가 소개해 준 박사님이 그러시는데 치료만 잘 받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어.”그 말에 어두웠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정말이야?”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정가혜를 쳐다보았다.“못 믿겠으면 가혜 누나한테 물어봐.”다리를 치료하는 전문가는 이승하가 찾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유는 당연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돌려 정가혜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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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6화

“서유, 어제 가혜가 말해주더라. 네가 올 거라고 해서 민정 씨에게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준비하라고 했어. 점심도 같이하고 가.”그는 이 소식을 듣고 순간 망설였다. 거절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만약 만나지 않으면 서유가 자신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줄로 오해할까 봐 결국 나오기로 결심했다. 그는 서유가 자신이 이미 잊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랐다. 그녀가 마음 편히 이승하와 평생을 함께하며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하지만 오랜만에 그녀를 보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5시, 그는 휠체어를 밀고 꽃밭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해가 막 떠오르며 햇살이 비출 때 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녀를 드디어 만났다. 그 순간, 멈춰있던 그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내 깨달았다. 평생 잊지 못할 거라는 것을. 하지만 잊은 척해야 한다는 것도.“그래.”서유는 눈물을 머금은 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송사월은 그녀를 집 안으로 안내하며 문 앞을 지나갈 때 휠체어를 잠시 멈췄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서유가 과거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던 순간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녀를 안고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 나는 절대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하지만 시간은 이미 흘러가 버렸고 세월은 되돌릴 수 없었다. 후회해도 다시 기회를 얻을 수는 없었다.서유가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결혼한 김민정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서유 씨, 정말 오랜만이에요.”김민정은 서유의 손을 잡고는 위아래로 그녀를 살펴보았다.“여전히 예쁘시네요.”“당신도 여전하네요.”서유는 눈앞의 환하게 웃는 소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의 배로 향했다. 김민정의 배는 살짝 불러 있었고 보아하니 임신한 것 같았다.“이 아이는 저와 태진 씨 아이예요.”김민정은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옆에 서 있던 김태진의 팔을 감싸고는 그의 팔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민정 씨, 정말 축하해요.”예전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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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7화

송사월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하얀 손가락을 들어 테이블 위의 찻주전자를 들었다. 작은 찻잔에 약간의 차를 따라 서유에게 건넸다.“어릴 때 원장님이 차를 끓이는 걸 보고, 나중에 커서 다도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지. 그런데 결국 차 맛을 구분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잖아.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송사월의 가벼운 말투에 서유의 긴장된 몸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그녀는 찻잔을 받아 들고 입가에 가져가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안해, 아직도 그런 재능은 없네. 이게 무슨 차인지 전혀 모르겠어.”송사월의 생기 없는 눈이 그녀의 익숙하고도 달콤한 미소에 닿자, 서서히 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는 옆에 있던 차 상자를 열어 깨끗한 손가락으로찻잎을 조금 집어 서유에게 차의 종류를 설명해 주었다.“이건 대홍포차야. 현재 여섯 그루만 남아 있는 아주 희귀한 차지.”서유는 그 말을 듣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월아, 언제부터 차 마시는 걸 좋아하게 됐어? 예전에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네가 다도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까, 내가 대신 그 꿈을 이뤄주기로 했어.’ 송사월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지만, 겉으로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는 그가 대답하지 않자, 자신이 쓸데없는 질문을 한 건 아닐까 싶어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어색함을 감추었다.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서유는 찻잔을 내려놓고 긴 속눈썹을 들어 조용히 앉아 있는 송사월을 바라보았다.“사월아, 넌 손씨 집안 아가씨와 결혼할 예정이었잖아. 그런데 왜 결혼 소식을 듣지 못했지?”찻잔을 들고 있던 송사월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가 금방 사라졌다.“약혼 취소했어.”서유는 눈살을 찌푸렸다.“왜?”‘너와 이승하가 결혼을 순조롭게 마쳤으니 이제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어.’“그 아가씨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거든.”서유는 송사월의 맑은 눈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시선을 돌렸다.“사월아, 사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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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8화

아무리 자연스럽게 연기해도 서유는 믿지 않았다. 송사월은 항상 그녀를 속이는 데 능숙했다. 마치 예전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녀에게 들키고도 친구를 도와주는 거라고 둘러댔던 것처럼 말이다.송사월은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 감당하며 절대로 그녀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서유는 그를 잘 알고 있었고 지금 그의 평온한 외모 아래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인지도 알고 있었다.“사월아, 네 증상에 대해서는 가혜가 다 말해줬어. 이제 그만 속여.”송사월은 마치 무언가를 떠올린 듯 서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의사가 오진한 거야. 내가 아직 가혜에게 말할 틈도 없었는데 네가 먼저 와버렸구나.”그는 마치 진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 우울증 전문가의 연락처를 서유에게 내밀었다.“못 믿겠다면 내 의사에게 직접 전화해 봐. 아무런 방비도 없이 전화를 받았을 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어?”그가 자신이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의사와 미리 말을 맞춘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서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그가 내민 휴대전화를 밀어냈다.“사월아, 매일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정말 필요 없다고 생각해?”그것은 송사월과 오랜만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어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겠는가?“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그럼 승하 씨는 어떻게 하라고?”서유는 무심코 손목시계를 확인했는데 아직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안도하며 말했다.“나 그 사람이랑 상의했어. 그리고 승하 씨도 네 곁에 있어 주는 것을 허락했어.”우울증 환자에게는 훈계나 설교가 필요하지 않다. 단지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훨씬 나아진다.서유는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곳에서 끝내야만 한다고. 그렇게 해야만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녀 역시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송사월은 그들이 부부끼리 상의했다는 말에 차가운 미소가 점점 씁쓸하게 변해갔다.“서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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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9화

송사월이 보고는 그녀를 울보라고 놀렸다.“너 어릴 때부터 울기 좋아했는데, 이렇게 컸는데도 여전히 쉽게 우는구나.”그는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다정하게 옆에서 휴지를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닦다 말고 그녀가 든 손에 결혼반지를 보자 천천히 손을 내렸다.“서유야, 날 걱정하지 마. 선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 법이야. 난 누구보다 오래 살 거야.”서유가 스스로 눈물을 닦고 미소 짓는 남자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내 친구 중에 우울증을 앓았다가 극복한 사람이 있어. 내일 데려올 테니 치료 방법을 알려주면 어때?”그녀는 송사월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알기에, 일단 결심한 일은 쉽게 바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거절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송사월은 그녀가 제안한 동행을 거절하고, 또 그녀가 가져온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 너무 예민하고 거부적으로 보일까 봐 수락했다.“좋아, 네 말대로 할게.”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고 해도 그는 불평 없이 따를 것이다.말을 터놓은 듯 두 사람의 분위기가 점점 편해졌다.“차 종류를 바꿔볼까? 맛이 어떤지 알아맞혀 봐.”송사월이 다시 찻잎을 고르려 하자 서유가 급히 말렸다.“송 선생님, 제발 봐주세요. 전 차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기껏해야 동영상으로 차 끓이는 법을 배운 정도라 반쪽짜리 지식도 안 되니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송 선생님'이란 말에 송사월은 문득 중학교 2학년 때 인내심을 갖고 그녀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때 서유는 수학 모의고사에서 27점을 받아 반 꼴찌였다. 시험지를 들고 고등학교 교사실로 달려가 엉엉 울기도 했다.송사월은 그녀가 우는 걸 보고 안타까워 매일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이불 속에 숨어있는 그녀를 끌어내 책상 앞에 앉혀놓고 보충수업을 했다.그녀는 수학 문제에 막힐 때마다 볼펜을 쥐고 그를 흘겨보며 선생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빈정거렸다. 그래서 수학 성적이 27점에서 98점으로 오를 때까지 반년 동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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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0화

서유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오로지 송사월의 이마를 닦는 데만 집중했다.세심하게 돌봄을 받은 남자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서유야, 넌 이미 결혼했어. 이렇게 나를 돌보는 건 적절하지 않아...”서유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눈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사월아, 괜찮다면 내가 널 오빠처럼 여기게 해줘.”잔인한 말이었지만, 이것이 그들 두 사람의 최종 귀착점이었다.끊을 수 없는 은혜와 잊을 수 없는 감정을 친정으로 승화시키자는 뜻이었다.송사월의 눈이 순간 물기로 흐려졌다. 그는 반짝이는 눈물을 감추려 살짝 고개를 들었다.푸른 하늘과 흰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와 그의 눈을 찔렀다.분명 아팠지만, 그는 그 빛을 마주하며 눈물을 억지로 밀어 넣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그럼 수고스럽겠지만 동생, 내 얼굴도 좀 닦아줄래?”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서유 앞으로 다가갔다.목소리에 담긴 밝은 기운은 마치 그녀를 동생으로 인정한 듯했다.서유는 그가 동의하는 것을 보고 입가에 더욱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응.”그녀는 다시 물티슈를 들어 그의 얼굴을 닦아주고 일어나 휠체어를 밀었다.두 사람은 배나무 아래에 도착했고, 송사월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가지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서유야, 내년 봄이 되면 이 배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날 거야. 정말 아름다울 거야.”서유는 그의 시선을 따라 햇살 속의 큰 배나무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년 봄에 다시 와서 함께 배꽃을 보러 올게.”송사월은 고개를 돌려 서유를 보며 미소 지었다.“약속이야?”“응, 물론이지. 약속이야.”어떤 부분이 그를 감동시켰는지, 송사월은 이 말이 마치 구원의 밧줄처럼 그를 깊은 심연에서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그럼 내년 봄에 오빠가 네 방문을 기다릴게. 너는... 이번엔 약속을 어기지 마.”“응.”서유의 달콤한 대답에 송사월의 눈가에 체념의 미소가 어렸다.이생에서 함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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