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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5화

멀리서 바라보니 꽃밭 속의 남자는 여전히 젊었을 때처럼 맑고 준수하며 우아해 보였다.

눈에 익은 얼굴, 눈에 익은 그림자가 점차 선명해지자 꿈만 같았다.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셀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 떠올린 건 온통 그녀에게 잘해주던 송사월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눈빛은 전혀 달랐다. 그의 눈에는 온통 그녀뿐이었고 그녀의 눈빛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서로 평생을 약속했던 사이였지만 그녀는 결국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고 말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그가 눈 밑의 어둠을 애써 감추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를 바라보며 그녀는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 듯 그녀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몇 초 동안 말이 없던 그가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랜만이네.”

그의 인사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여자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니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걸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 사랑했던 연인은 손가락이 살짝 닿자 서로를 놓아주었고 한 사람은 우두커니 서 있었고 한 사람은 멍하니 앉아 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허리를 굽히고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다리는 어때?”

그의 시선이 그녀를 잡았던 손에서 그녀에게로 옮겨졌다.

“가혜 누나가 소개해 준 박사님이 그러시는데 치료만 잘 받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어.”

그 말에 어두웠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정말이야?”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정가혜를 쳐다보았다.

“못 믿겠으면 가혜 누나한테 물어봐.”

다리를 치료하는 전문가는 이승하가 찾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유는 당연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돌려 정가혜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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