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체내를 흐르던 피가 순간 멈춘 것 같았고, 그녀를 감싸안은 두 팔마저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내리깔아 품 안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방금 전 그녀를 안고 사랑을 나눌 때만 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했는데, 왜 꿈속에서 송사월의 이름을 부르는 걸까?혹시... 혹시 서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송사월을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닐까?그렇다면 그 비율은? 얼마나 되는 걸까? 자신보다 많을까, 적을까?그의 몸이 굳는 것을 느낀 서유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창백해진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보, 난...”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방금 꿈속에서 누구 이름을 불렀어?”그의 힘이 너무 세서 서유의 가늘고 작은 손목이 아팠다...서유는 아픔을 참으며 계속 설명했다. “여보, 방금 잠들지 않았어요. 그저 오늘 사월이를 만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의 이름을 말했는데, 당신이 신경 쓸까 봐 더 말하지 않았어요. 오해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잠든 채로 그의 이름을 부른 게 아니에요.”이승하의 꽉 쥔 손이 서서히 풀렸지만, 창백한 입술 색은 여전했다. 마치 수년 전 그녀가 송사월의 이름을 부르던 때처럼 그를 괴롭게 했다. 억누를 수 없는 고통이었고, 그 고통에 그는 서유를 밀쳐냈다.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나 훤칠한 키의 모습으로 대충 옷을 걸쳤다. 책상으로 걸어가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려는 순간 서유의 하얀 손이 그의 손가락을 눌렀다.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오직 달빛만이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와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마침내 서유가 양손으로 이승하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전에 왜 꿈속에서 사월이 이름을 불렀는지 당신
서유를 안고 있던 이승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힘없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네가 송사월을 사랑했기 때문이야.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를 사랑했으니까...”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승하는 이렇게 두려워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송사월은 달랐다.“송사월은 너를 위해 자살을 시도했고 우울증까지 걸렸어. 그토록 너를 사랑했기에 나는 두려워...”이승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가슴의 통증을 참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그를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마치 예전 워싱턴에서 그가 그녀에게 애원했던 것처럼.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함께 있어달라고 빌었던 것처럼.그때의 그는 건강했고 우울증도 없었는데도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 그와 함께 있기로 했다.지금 송사월은 그녀 때문에 저런 모습이 되었으니, 그녀의 마음이 더 약해지지 않을까...만약 그녀가 마음이 약해져 다시 송사월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서유가 한때 송사월을 그토록 사랑했다가 결국 사랑하지 않게 되지 않았는가?그는 언젠가 그녀가 송사월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처럼 자신도 사랑하지 않게 될까봐 너무나 두려웠다...서유는 이승하의 걱정을 이해하고는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여보, 난 이미 사월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아주 오래전부터요. 내가 무릎 꿇고 그에게 애원했을 때, 그의 형이 그인 척하며 저를 걷어찼을 때, 또 제가 병원에 누워 죽을 뻔했을 때, 그때 이미 사월이에 대한 모든 사랑이 소진되었어요. 오래전에 이미 사랑하지 않게 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겠어요...”“그를 내려놓은 후 제 마음속에 천천히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당신은 의아해할 수도 있겠죠. 왜 같은 오해였는데 당신은 용서하고 함께 있기로 했는데 사월이는 그러지 않았냐고요. 그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늘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당
송사월이 그 해 수술을 마치고 깨어났을 때, 기억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도 여러 번 그녀의 목을 조르며 더럽다고 욕하고 꺼지라고 했다. 그녀가 병원에 와서 그를 돌보려 할 때도, 그녀가 정성스레 끓인 수프를 발로 차 엎어버렸다. 그때 서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그녀는 한 번도 그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을 잃은 후 모든 게 변했다. 서유는 만약 그 당시 송사월이 즉시 기억을 되찾고 와서 오해를 풀었다면, 그의 곁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가 기억을 되찾고 와서 설명하려 했을 때는 이미 5, 6년이 지난 뒤였다. 그때 그녀는 이미 자신을 강제로 그를 사랑하지 않게 만들었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그녀는 송사월이 예전에 자신에게 얼마나 잘해주고 사랑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리한 그녀로서는 더 이상 사랑으로 보답할 수 없었다. 그저 가족의 입장에서 중증 우울증에 걸린 그를 돌보고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는 그녀의 도움을 거절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그를 찾아가려 했다. 어릴 적 그가 잘해준 것 말고도 그의 다리와 우울증이 모두 그녀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모른 체한다면, 그건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이고 그녀 역시 비난받아 마땅했다.이승하는 송사월이 서유를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잠시 놀랐다. 그가 서유를 거절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송사월은 서유를 위해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감수하면서 그녀의 행복을 성전시키려 했다. 어떻게 병을 핑계로 서유를 붙잡을 수 있겠는가. 그의 품격은 여전히 고귀했다...“그토록 관대하니, 오히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이는군.”서유가 빙그레 웃으며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내가 그를 돌보는 걸 허락했을 때도 매우 관대했어요.”이 말에 이승하는 부끄러워졌다. 분명 동의했으면서도 그들이 함께 있는 걸 보고 질투하고 난리를 쳤으니 말이다.“
그가 두통이라고 하자 서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둘러 그의 관자놀이를 문질렀다.“재발한 거예요?”이 가능성을 떠올리자 그녀는 이승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병원에 가서 검사해요.”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녀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이승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허리를 감싸 안고는 그녀를 책상 위에 앉혔다.“의사가 검사해봤는데 그냥 과도한 두뇌 사용으로 인한 두통이래. 재발한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또 이런 말이었다. 전에 뇌종양에 걸렸을 때도 이렇게 속였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나?“당신이 내가 걱정하지 않길 바란다면, 내 말을 들어요. 지금 당장 나랑 병원에 가서 검사해요.”그녀는 JS 그룹이 수도에 분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이승하가 가면 반드시 의사가 검사해줄 것이다.이 생각이 들자 그녀는 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곧바로 책상에서 내려와 그를 끌고 빠르게 옷 갈아입는 방으로 향했다.“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다고 해야 내 마음이 놓일 거예요.”그녀의 초조하고 긴장된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의 차갑고 서늘한 눈썹과 눈가에 점차 옅은 미소가 번졌다.“당신이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그는 오늘 밤 많은 힘을 써서 그녀를 여러 번 괴롭혔는데, 어떻게 한밤중에 또 그를 위해 뛰어다니게 할 수 있겠는가?그는 서유가 옷장에서 꺼낸 셔츠를 받아 다시 넣고는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먼저 자러 가. 검사는 내일 얘기하지.”서유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그의 강렬하고 독선적인 키스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그는 그녀를 끈적하게 안은 채 옷 갈아입는 방에서부터 주 침실 침대까지 쉬지 않고 키스했다.그녀가 너무 피곤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 번 더 했을 것이다...다행히 이 키스는 결국 가볍게 끝났다.이날 밤, 이승하는 서유를 안고
“...”“할 줄 몰라.”말수가 적은 사람이 무슨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서유는 몽롱한 눈을 뜨고 그를 흘겨보았다.“난 당신이 뭐든 다 할 줄 아는 줄 알았는데...”도발을 참지 못하는 이승하는 이 말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느꼈다...그는 기억해내지 못하고 그저 휴대폰을 꺼내 음악 앱을 급히 다운로드했다.앱을 설치한 후, 한 손으로는 서유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넘겼다.“뭘 듣고 싶어?”“당신이 부르는 거라면 뭐든 듣고 싶어요.”이승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아무 노래나 골랐는데 영어 버전이었다.다행히 그는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기억력이 있어서 한 번 듣고 멜로디를 기억했다.목청을 가다듬기 전에 그는 조금 불확실한 듯 눈을 내리깔고 품 안의 사람을 바라보았다.“정말 괜찮아?”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제 그가 자신을 괴롭힌 것처럼 이제는 그를 좀 괴롭혀 보고 싶었다.이승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애정 어린 표정으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아마도 그가 노래를 시작한 지 5초도 안 되어 앞좌석의 소수빈이 갑자기 칸막이를 올렸다.“대표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음치시네요.”원래 졸리던 서유는 이 말을 듣고 그의 어깨에 기대어 웃음을 참느라 죽을 뻔했다.이승하는 서유가 웃는 모습을 보고 소수빈의 무례함을 따지지 않고 그저 눈을 들어 칸막이를 한번 쳐다보았다.“네가 해봐.”소수빈도 이승하가 재발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기분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 진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서유는 그 쉰 목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웃음을 참지 못했고 심지어 차갑기만 하던 이승하의 입꼬리와 눈가에도 미소가 번졌다.“비서님, 우리 비슷하네요.”소수빈은 그저 대표님과 사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한 것이지 진짜 실력은 보여주지 않았다.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두 분이 잘 지내시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소수빈은 운전하며 두 사람을 빠르게
“그렇게 하면 너무 시간을 빼앗기는 거 아니예요?”“스튜디오를 운영하니까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요. 마침 내가 디자인한 공예품들도 최근에 수도에서 전시 중이고요.”이지민은 여전히 말하자마자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이었다. 바로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가요, 먼저 김 대표님을 만나러 가봐요.”서유가 뭔가 더 말하려 하자 이지민이 한 마디로 끊었다.“이건 그저 내 제안일 뿐이에요. 김 대표님이 동의할지는 별개의 문제니까 미리 부담 갖지 마요.”서유는 이지민에게 너무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거였다. 하지만 이건 초기 분석과 제안일 뿐이고, 최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김시후의 협조에 달려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앉아서 얘기해봤자 헛된 계획일 뿐이니, 차라리 먼저 가서 김시후의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이지민의 말에 서유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일어났다. 일어서면서 옆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여보, 우리랑 같이 갈래요?”이승하의 냉담한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안 갈래.”그는 이전에 서유가 송사월을 어떻게 돌보든 더 이상 개의치 않겠다고 말했었다. 극도의 신뢰감을 주기로 했다면 백퍼센트 그녀를 믿어야 했다.“그럼... 두 시간 후에 집에 올게요.”서유는 손목시계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였다.어제는 약속을 어겼지만, 오늘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애정 어린 미소를 띤 이승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차에 타려던 정가혜를 이승하가 불러 세웠다.“정가혜 씨,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정가혜는 차 문을 잡으려던 손을 놓고 고급차 앞에 서 있는 훤칠하고 정장 차림의 남자를 향해 돌아섰다.“무슨 부탁이요?”이승하는 의미심장하게 휴대폰을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단 변호사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연석이가 어젯밤 수도 구궁에서 술에 취해 아직 깨어나지 않았대요. 단 변호사는 지금 긴급 사건을 처리 중이라 데리러 갈 수 없어서 제가 가달라고
이지민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대답 대신 멀리 놓인 다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김 대표님도 차를 우리시나요?”송사월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잠깐 보더니 대답했다. “가끔요.”이지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반응에 송사월은 약간 의아해했지만 굳이 말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고개를 숙이고 조금씩 디저트를 먹고 있는 서유에게 슬쩍 향했다.어제 그녀가 다녀간 후, 송사월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잤고 행복한 꿈도 꾸었다. 그 꿈에서 그는 서유과 어릴 적 약속을 지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함께 늙어갔다. 꿈에서 깨어난 후, 송사월은 창밖 달빛을 바라보며 꿈속의 자신을 이승하로 바꾸어 보았고, 그제서야 그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서유는 이지민이 치료 계획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지민은 ‘서두르지 마요’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송사월에게 물었다. “김 대표님, 집 구경을 좀 시켜주실 수 있나요?”두 사람의 눈빛 교환을 지켜본 송사월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이지민이 일어서며 서유의 어깨를 눌렀다. “새언니, 아침을 적게 드셨으니 디저트 좀 더 드세요.”서유는 즉시 이지민이 송사월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월아, 지민 씨를 데리고 가봐. 난 먼저 뭘 좀 먹고 있을게.”‘새언니’라는 단어를 곱씹던 송사월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민정 씨에게 말해. 너무 눈치 보지 말고.”서유는 얌전히 대답하고 고개를 숙여 계속 디저트를 먹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의 그녀는 지나치게 냉담해 보였다.이를 지켜본 송사월은 그녀가 이곳을 떠난 후 이승하와 다툰 뒤 화해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의 표정에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이지민을 데리고 긴 복도를 지나 뒤뜰로 나왔다. 여름이었지만 그가 심은 꽃들이 많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코끝에 꽃향기를
이 말에 송사월의 차가운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내 다리는 스스로 만든 거고, 우울증도 내가 스스로 앓게 된 거요. 서유랑은 상관없어요. 내가 가서 설명하겠어요...”그가 휠체어를 돌리려 하자 이지민이 하이힐로 바퀴를 막았다. 송사월이 고개를 돌려 턱을 치켜든 채 눈썹을 치켜 올린 이지민을 바라보았다. “당신...”이지민은 그를 막은 채 팔짱을 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 대표님, 당신이 아무리 새언니랑 상관없다고 해도 언니는 모든 걸 자기 탓으로 여길 거예요. 당신이 너무 많이 베풀었기 때문이죠.”“너무 많이 베풀어서 이번 생에 그녀는 다 갚을 수 없을 정도예요. 그래서 그런 죄책감을 안고 우리 오빠랑 살아가는 거예요. 그들 사이에서 당신 얘기만 나오면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생기죠. 당신이 포기해야만 우리 새언니도 진정으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거예요.”송사월은 이해했다는 듯 힘없이 창백한 입술을 올렸다. “내가 서유 짐이 되었군요.”이지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제 말은... 정말 새언니를 생각한다면 다시 고민해 보세요. 당신의 다리와 우울증이 그녀를 죄책감에 빠뜨리고 있어요. 다리를 치료하고 다시 일어서세요. 우울증도 이겨내고요. 당신이 좋아지면 언니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예요...”송사월은 고개를 돌려 거실 복도를 통해 소파에 앉아 얌전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 통유리창 밖에서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그녀 몸에 반사되어 황금빛을 띠었다.마치 성인이 되어 처음 그녀에게 마음이 설렜을 때 본 광경과 같았다. 언제나 달콤하고 조용한, 맑은 시냇물 같은 그녀가 그의 마음속을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나 온화하고 다정했으며 지나치게 말을 잘 들었다. 어느 정도냐면, 누군가 그녀를 좋아하면 그녀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심지어 그 마음 때문에 모든 것을 바칠 정도였다.그녀는 사랑이 부족했지만 감사할 줄 알았다. 정이 있고 의리가 있지 않았다면, 그런 상처를 받고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