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두통이라고 하자 서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둘러 그의 관자놀이를 문질렀다.“재발한 거예요?”이 가능성을 떠올리자 그녀는 이승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병원에 가서 검사해요.”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녀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이승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허리를 감싸 안고는 그녀를 책상 위에 앉혔다.“의사가 검사해봤는데 그냥 과도한 두뇌 사용으로 인한 두통이래. 재발한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또 이런 말이었다. 전에 뇌종양에 걸렸을 때도 이렇게 속였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나?“당신이 내가 걱정하지 않길 바란다면, 내 말을 들어요. 지금 당장 나랑 병원에 가서 검사해요.”그녀는 JS 그룹이 수도에 분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이승하가 가면 반드시 의사가 검사해줄 것이다.이 생각이 들자 그녀는 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곧바로 책상에서 내려와 그를 끌고 빠르게 옷 갈아입는 방으로 향했다.“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다고 해야 내 마음이 놓일 거예요.”그녀의 초조하고 긴장된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의 차갑고 서늘한 눈썹과 눈가에 점차 옅은 미소가 번졌다.“당신이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그는 오늘 밤 많은 힘을 써서 그녀를 여러 번 괴롭혔는데, 어떻게 한밤중에 또 그를 위해 뛰어다니게 할 수 있겠는가?그는 서유가 옷장에서 꺼낸 셔츠를 받아 다시 넣고는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먼저 자러 가. 검사는 내일 얘기하지.”서유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그의 강렬하고 독선적인 키스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그는 그녀를 끈적하게 안은 채 옷 갈아입는 방에서부터 주 침실 침대까지 쉬지 않고 키스했다.그녀가 너무 피곤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 번 더 했을 것이다...다행히 이 키스는 결국 가볍게 끝났다.이날 밤, 이승하는 서유를 안고
“...”“할 줄 몰라.”말수가 적은 사람이 무슨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서유는 몽롱한 눈을 뜨고 그를 흘겨보았다.“난 당신이 뭐든 다 할 줄 아는 줄 알았는데...”도발을 참지 못하는 이승하는 이 말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느꼈다...그는 기억해내지 못하고 그저 휴대폰을 꺼내 음악 앱을 급히 다운로드했다.앱을 설치한 후, 한 손으로는 서유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넘겼다.“뭘 듣고 싶어?”“당신이 부르는 거라면 뭐든 듣고 싶어요.”이승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아무 노래나 골랐는데 영어 버전이었다.다행히 그는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기억력이 있어서 한 번 듣고 멜로디를 기억했다.목청을 가다듬기 전에 그는 조금 불확실한 듯 눈을 내리깔고 품 안의 사람을 바라보았다.“정말 괜찮아?”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제 그가 자신을 괴롭힌 것처럼 이제는 그를 좀 괴롭혀 보고 싶었다.이승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애정 어린 표정으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아마도 그가 노래를 시작한 지 5초도 안 되어 앞좌석의 소수빈이 갑자기 칸막이를 올렸다.“대표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음치시네요.”원래 졸리던 서유는 이 말을 듣고 그의 어깨에 기대어 웃음을 참느라 죽을 뻔했다.이승하는 서유가 웃는 모습을 보고 소수빈의 무례함을 따지지 않고 그저 눈을 들어 칸막이를 한번 쳐다보았다.“네가 해봐.”소수빈도 이승하가 재발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기분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 진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서유는 그 쉰 목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웃음을 참지 못했고 심지어 차갑기만 하던 이승하의 입꼬리와 눈가에도 미소가 번졌다.“비서님, 우리 비슷하네요.”소수빈은 그저 대표님과 사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한 것이지 진짜 실력은 보여주지 않았다.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두 분이 잘 지내시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소수빈은 운전하며 두 사람을 빠르게
“그렇게 하면 너무 시간을 빼앗기는 거 아니예요?”“스튜디오를 운영하니까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요. 마침 내가 디자인한 공예품들도 최근에 수도에서 전시 중이고요.”이지민은 여전히 말하자마자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이었다. 바로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가요, 먼저 김 대표님을 만나러 가봐요.”서유가 뭔가 더 말하려 하자 이지민이 한 마디로 끊었다.“이건 그저 내 제안일 뿐이에요. 김 대표님이 동의할지는 별개의 문제니까 미리 부담 갖지 마요.”서유는 이지민에게 너무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거였다. 하지만 이건 초기 분석과 제안일 뿐이고, 최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김시후의 협조에 달려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앉아서 얘기해봤자 헛된 계획일 뿐이니, 차라리 먼저 가서 김시후의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이지민의 말에 서유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일어났다. 일어서면서 옆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여보, 우리랑 같이 갈래요?”이승하의 냉담한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안 갈래.”그는 이전에 서유가 송사월을 어떻게 돌보든 더 이상 개의치 않겠다고 말했었다. 극도의 신뢰감을 주기로 했다면 백퍼센트 그녀를 믿어야 했다.“그럼... 두 시간 후에 집에 올게요.”서유는 손목시계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였다.어제는 약속을 어겼지만, 오늘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애정 어린 미소를 띤 이승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차에 타려던 정가혜를 이승하가 불러 세웠다.“정가혜 씨,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정가혜는 차 문을 잡으려던 손을 놓고 고급차 앞에 서 있는 훤칠하고 정장 차림의 남자를 향해 돌아섰다.“무슨 부탁이요?”이승하는 의미심장하게 휴대폰을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단 변호사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연석이가 어젯밤 수도 구궁에서 술에 취해 아직 깨어나지 않았대요. 단 변호사는 지금 긴급 사건을 처리 중이라 데리러 갈 수 없어서 제가 가달라고
이지민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대답 대신 멀리 놓인 다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김 대표님도 차를 우리시나요?”송사월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잠깐 보더니 대답했다. “가끔요.”이지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반응에 송사월은 약간 의아해했지만 굳이 말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고개를 숙이고 조금씩 디저트를 먹고 있는 서유에게 슬쩍 향했다.어제 그녀가 다녀간 후, 송사월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잤고 행복한 꿈도 꾸었다. 그 꿈에서 그는 서유과 어릴 적 약속을 지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함께 늙어갔다. 꿈에서 깨어난 후, 송사월은 창밖 달빛을 바라보며 꿈속의 자신을 이승하로 바꾸어 보았고, 그제서야 그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서유는 이지민이 치료 계획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지민은 ‘서두르지 마요’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송사월에게 물었다. “김 대표님, 집 구경을 좀 시켜주실 수 있나요?”두 사람의 눈빛 교환을 지켜본 송사월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이지민이 일어서며 서유의 어깨를 눌렀다. “새언니, 아침을 적게 드셨으니 디저트 좀 더 드세요.”서유는 즉시 이지민이 송사월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월아, 지민 씨를 데리고 가봐. 난 먼저 뭘 좀 먹고 있을게.”‘새언니’라는 단어를 곱씹던 송사월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민정 씨에게 말해. 너무 눈치 보지 말고.”서유는 얌전히 대답하고 고개를 숙여 계속 디저트를 먹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의 그녀는 지나치게 냉담해 보였다.이를 지켜본 송사월은 그녀가 이곳을 떠난 후 이승하와 다툰 뒤 화해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의 표정에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이지민을 데리고 긴 복도를 지나 뒤뜰로 나왔다. 여름이었지만 그가 심은 꽃들이 많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코끝에 꽃향기를
이 말에 송사월의 차가운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내 다리는 스스로 만든 거고, 우울증도 내가 스스로 앓게 된 거요. 서유랑은 상관없어요. 내가 가서 설명하겠어요...”그가 휠체어를 돌리려 하자 이지민이 하이힐로 바퀴를 막았다. 송사월이 고개를 돌려 턱을 치켜든 채 눈썹을 치켜 올린 이지민을 바라보았다. “당신...”이지민은 그를 막은 채 팔짱을 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 대표님, 당신이 아무리 새언니랑 상관없다고 해도 언니는 모든 걸 자기 탓으로 여길 거예요. 당신이 너무 많이 베풀었기 때문이죠.”“너무 많이 베풀어서 이번 생에 그녀는 다 갚을 수 없을 정도예요. 그래서 그런 죄책감을 안고 우리 오빠랑 살아가는 거예요. 그들 사이에서 당신 얘기만 나오면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생기죠. 당신이 포기해야만 우리 새언니도 진정으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거예요.”송사월은 이해했다는 듯 힘없이 창백한 입술을 올렸다. “내가 서유 짐이 되었군요.”이지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제 말은... 정말 새언니를 생각한다면 다시 고민해 보세요. 당신의 다리와 우울증이 그녀를 죄책감에 빠뜨리고 있어요. 다리를 치료하고 다시 일어서세요. 우울증도 이겨내고요. 당신이 좋아지면 언니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예요...”송사월은 고개를 돌려 거실 복도를 통해 소파에 앉아 얌전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 통유리창 밖에서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그녀 몸에 반사되어 황금빛을 띠었다.마치 성인이 되어 처음 그녀에게 마음이 설렜을 때 본 광경과 같았다. 언제나 달콤하고 조용한, 맑은 시냇물 같은 그녀가 그의 마음속을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나 온화하고 다정했으며 지나치게 말을 잘 들었다. 어느 정도냐면, 누군가 그녀를 좋아하면 그녀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심지어 그 마음 때문에 모든 것을 바칠 정도였다.그녀는 사랑이 부족했지만 감사할 줄 알았다. 정이 있고 의리가 있지 않았다면, 그런 상처를 받고도 그
송사월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이지민은 원래 무료로 도와주겠다고 할 생각이었지만, 그가 거절할 것 같아 말을 바꿨다. “200억 원이요. 김 대표님께서 감당할 수 있겠죠?”다른 재활치료사들은 기껏해야 20억 원 정도 받는데, 이지민은 일부러 비용을 높게 불렀다. 송사월이 더 쉽게 마음 편히 그녀의 도움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의도였다.이지민의 의도를 모르는 송사월은 오히려 일억 원이라는 숫자가 몹시 비꼬는 듯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지금의 그로서는 당연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이지민은 그가 동의하자 곧바로 돌아섰다.송사월은 잠시 그 자리에 머물다 휠체어를 돌려 거실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와 인사를 나누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서유는 아직 가지 않고 있었다.“사월아, 우리는 오늘 먼저 돌아가볼게. 다음에 또 보러 올게.”송사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서유야, 나는 앞으로 해외로 수술하러 갈 거야. 몇 달 동안 수도에 없을 테니 날 보러 오려고 신경 쓰지 마.”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태진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송사월을 바라보았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수술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가 해외로 간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전문가가 다리 수술은 해외에서 해야 한다고 했어?”“그래.”송사월은 다리 위에 올려둔 손가락을 살짝 오그리며 손바닥을 꽉 쥐었다.“국내 의료 장비가 그리 선진적이지 않아서 전문가가 해외에서 수술하라고 권했어.”말을 마친 뒤 그는 옆에 서 있는 이지민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내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면 지민 씨에게 재활치료를 부탁드릴게요.”이지민은 송사월의 속내를 꿰뚫어 본 듯 서유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김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면 제가 도와드리기로 했어요.”서유의 시선이 잠시 송사월의 다리에 머물다 떠났다.“어느 나라에서 수술하는 거야? 가혜랑 같이 가서 문병할게.”송
정가혜는 핸드폰을 들고 확인한 후 방 번호를 확인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깜깜했고, 불이 꺼져 있을 뿐만 아니라 커튼도 닫혀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코를 찌를 정도로 강한 술 냄새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정가혜의 뒤를 따르던 직원이 불을 켜주며 말했다. “정가혜 씨, 이 도련님께서 안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저희 직원들이 아무리 깨우려 해도 일어나지 않아서, 정가혜 씨께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직원은 말을 마치고 소비 내역서를 정가혜에게 건넸다. “총액은 천만 원입니다. 먼저 결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정가혜는 코를 막으며 소비 내역서를 받아들고 한번 훑어본 뒤,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그런 다음, 하이힐을 신고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소파에 누워 있는 한 남자의 날씬한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정장 재킷을 배 위에 걸치고, 흰 셔츠의 깃을 약간 풀어 놓아 섹시하게 드러난 목젖과 뚜렷한 쇄골이 보였다. 조명이 비치자, 잘생기고 뚜렷한 얼굴에 옅은 홍조가 감돌았고, 본래 희고 고운 피부가 더욱 빛나 보였다.그 시각의 이연석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긴 속눈썹이 내려앉아 낮은 조명 아래에서 부채 모양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마치 휴식 중인 나비처럼 보였다. 짙은 머리카락이 뒤로 잘 정리되어 이마가 드러나 있었고, 아마 잠자는 중에 이리저리 움직였던 듯, 이마 양옆으로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흩어져 내려와 있었다.그런 이연석을 바라보며 정가혜는 문득 과거의 자신이 왜 그에게 심쿵했는지를 다시금 떠올렸다.그는 잠시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낮추고 그의 팔을 살짝 흔들었다. “이연석 씨, 일어나요. 집에 데려가려고 왔어요.”여러 병의 와인을 마신 이연석은 정가혜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졌는지 짜증을 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소파 안쪽을 향하고 그 상태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쿠션 하나를 더듬어 끌어안았다.깊이 잠든 그는 쿠션을 꼭 끌어안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
“연석 씨 둘째 형이 데리러 오라고 해서 왔어요.”정가혜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숙여 손에 든 물을 이연석의 입술 가까이 가져갔다. “해장국은 없으니, 일단 물이라도 좀 마셔요.”멍하니 있던 이연석은 정가혜를 바라보더니, 그녀가 건네준 물을 보고는 약간 놀라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입술을 열어 천천히 물을 마셨다.이상하게도, 평소에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던 생수가 그 순간에는 달콤하게 느껴졌다. 혹시 여기 물이 A시의 물보다 더 좋은 걸까?이연석이 물을 다 마시자 정가혜는 비로소 컵을 내려놓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이제 가요, 집에 데려다줄게요.”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그의 팔을 감싸자 이연석의 심장이 한 번 쿵 하고 뛰었고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전신이 저릿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보다 한참 작은 정가혜가 억지로 힘을 내어 자신을 부축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고마워요...”정가혜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차는 어디에 세워뒀어요?”머리가 너무 아픈 이연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외투를 보고는 그 안에 있는 차 키를 꺼내려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해 소파로 넘어지고 말았고, 그와 함께 정가혜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마침 이연석은 등을 대고 누웠고, 정가혜는 그의 위에 엎어진 채로 넘어졌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스치듯 닿았다.순간적인 스침이었지만 그 작은 접촉만으로도 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가혜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그의 위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이연석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가혜 씨...”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대신 눈에는 명백한 욕망이 드러났다. 그가 그녀를 원한 지 벌써 2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그 욕망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 욕망을 마음속 깊이 억눌러 두었다.오랜 시간 동안 쌓였던 갈망 때문인지 아니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이연석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정가혜의 뒷머리를 잡고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입을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