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월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하얀 손가락을 들어 테이블 위의 찻주전자를 들었다. 작은 찻잔에 약간의 차를 따라 서유에게 건넸다.“어릴 때 원장님이 차를 끓이는 걸 보고, 나중에 커서 다도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지. 그런데 결국 차 맛을 구분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잖아.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송사월의 가벼운 말투에 서유의 긴장된 몸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그녀는 찻잔을 받아 들고 입가에 가져가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안해, 아직도 그런 재능은 없네. 이게 무슨 차인지 전혀 모르겠어.”송사월의 생기 없는 눈이 그녀의 익숙하고도 달콤한 미소에 닿자, 서서히 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는 옆에 있던 차 상자를 열어 깨끗한 손가락으로찻잎을 조금 집어 서유에게 차의 종류를 설명해 주었다.“이건 대홍포차야. 현재 여섯 그루만 남아 있는 아주 희귀한 차지.”서유는 그 말을 듣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월아, 언제부터 차 마시는 걸 좋아하게 됐어? 예전에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네가 다도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까, 내가 대신 그 꿈을 이뤄주기로 했어.’ 송사월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지만, 겉으로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는 그가 대답하지 않자, 자신이 쓸데없는 질문을 한 건 아닐까 싶어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어색함을 감추었다.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서유는 찻잔을 내려놓고 긴 속눈썹을 들어 조용히 앉아 있는 송사월을 바라보았다.“사월아, 넌 손씨 집안 아가씨와 결혼할 예정이었잖아. 그런데 왜 결혼 소식을 듣지 못했지?”찻잔을 들고 있던 송사월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가 금방 사라졌다.“약혼 취소했어.”서유는 눈살을 찌푸렸다.“왜?”‘너와 이승하가 결혼을 순조롭게 마쳤으니 이제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어.’“그 아가씨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거든.”서유는 송사월의 맑은 눈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시선을 돌렸다.“사월아, 사실 나는
아무리 자연스럽게 연기해도 서유는 믿지 않았다. 송사월은 항상 그녀를 속이는 데 능숙했다. 마치 예전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녀에게 들키고도 친구를 도와주는 거라고 둘러댔던 것처럼 말이다.송사월은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 감당하며 절대로 그녀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서유는 그를 잘 알고 있었고 지금 그의 평온한 외모 아래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인지도 알고 있었다.“사월아, 네 증상에 대해서는 가혜가 다 말해줬어. 이제 그만 속여.”송사월은 마치 무언가를 떠올린 듯 서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의사가 오진한 거야. 내가 아직 가혜에게 말할 틈도 없었는데 네가 먼저 와버렸구나.”그는 마치 진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 우울증 전문가의 연락처를 서유에게 내밀었다.“못 믿겠다면 내 의사에게 직접 전화해 봐. 아무런 방비도 없이 전화를 받았을 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어?”그가 자신이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의사와 미리 말을 맞춘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서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그가 내민 휴대전화를 밀어냈다.“사월아, 매일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정말 필요 없다고 생각해?”그것은 송사월과 오랜만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어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겠는가?“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그럼 승하 씨는 어떻게 하라고?”서유는 무심코 손목시계를 확인했는데 아직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안도하며 말했다.“나 그 사람이랑 상의했어. 그리고 승하 씨도 네 곁에 있어 주는 것을 허락했어.”우울증 환자에게는 훈계나 설교가 필요하지 않다. 단지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훨씬 나아진다.서유는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곳에서 끝내야만 한다고. 그렇게 해야만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녀 역시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송사월은 그들이 부부끼리 상의했다는 말에 차가운 미소가 점점 씁쓸하게 변해갔다.“서유야,
송사월이 보고는 그녀를 울보라고 놀렸다.“너 어릴 때부터 울기 좋아했는데, 이렇게 컸는데도 여전히 쉽게 우는구나.”그는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다정하게 옆에서 휴지를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닦다 말고 그녀가 든 손에 결혼반지를 보자 천천히 손을 내렸다.“서유야, 날 걱정하지 마. 선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 법이야. 난 누구보다 오래 살 거야.”서유가 스스로 눈물을 닦고 미소 짓는 남자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내 친구 중에 우울증을 앓았다가 극복한 사람이 있어. 내일 데려올 테니 치료 방법을 알려주면 어때?”그녀는 송사월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알기에, 일단 결심한 일은 쉽게 바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거절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송사월은 그녀가 제안한 동행을 거절하고, 또 그녀가 가져온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 너무 예민하고 거부적으로 보일까 봐 수락했다.“좋아, 네 말대로 할게.”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고 해도 그는 불평 없이 따를 것이다.말을 터놓은 듯 두 사람의 분위기가 점점 편해졌다.“차 종류를 바꿔볼까? 맛이 어떤지 알아맞혀 봐.”송사월이 다시 찻잎을 고르려 하자 서유가 급히 말렸다.“송 선생님, 제발 봐주세요. 전 차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기껏해야 동영상으로 차 끓이는 법을 배운 정도라 반쪽짜리 지식도 안 되니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송 선생님'이란 말에 송사월은 문득 중학교 2학년 때 인내심을 갖고 그녀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때 서유는 수학 모의고사에서 27점을 받아 반 꼴찌였다. 시험지를 들고 고등학교 교사실로 달려가 엉엉 울기도 했다.송사월은 그녀가 우는 걸 보고 안타까워 매일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이불 속에 숨어있는 그녀를 끌어내 책상 앞에 앉혀놓고 보충수업을 했다.그녀는 수학 문제에 막힐 때마다 볼펜을 쥐고 그를 흘겨보며 선생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빈정거렸다. 그래서 수학 성적이 27점에서 98점으로 오를 때까지 반년 동안 그
서유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오로지 송사월의 이마를 닦는 데만 집중했다.세심하게 돌봄을 받은 남자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서유야, 넌 이미 결혼했어. 이렇게 나를 돌보는 건 적절하지 않아...”서유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눈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사월아, 괜찮다면 내가 널 오빠처럼 여기게 해줘.”잔인한 말이었지만, 이것이 그들 두 사람의 최종 귀착점이었다.끊을 수 없는 은혜와 잊을 수 없는 감정을 친정으로 승화시키자는 뜻이었다.송사월의 눈이 순간 물기로 흐려졌다. 그는 반짝이는 눈물을 감추려 살짝 고개를 들었다.푸른 하늘과 흰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와 그의 눈을 찔렀다.분명 아팠지만, 그는 그 빛을 마주하며 눈물을 억지로 밀어 넣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그럼 수고스럽겠지만 동생, 내 얼굴도 좀 닦아줄래?”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서유 앞으로 다가갔다.목소리에 담긴 밝은 기운은 마치 그녀를 동생으로 인정한 듯했다.서유는 그가 동의하는 것을 보고 입가에 더욱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응.”그녀는 다시 물티슈를 들어 그의 얼굴을 닦아주고 일어나 휠체어를 밀었다.두 사람은 배나무 아래에 도착했고, 송사월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가지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서유야, 내년 봄이 되면 이 배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날 거야. 정말 아름다울 거야.”서유는 그의 시선을 따라 햇살 속의 큰 배나무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년 봄에 다시 와서 함께 배꽃을 보러 올게.”송사월은 고개를 돌려 서유를 보며 미소 지었다.“약속이야?”“응, 물론이지. 약속이야.”어떤 부분이 그를 감동시켰는지, 송사월은 이 말이 마치 구원의 밧줄처럼 그를 깊은 심연에서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그럼 내년 봄에 오빠가 네 방문을 기다릴게. 너는... 이번엔 약속을 어기지 마.”“응.”서유의 달콤한 대답에 송사월의 눈가에 체념의 미소가 어렸다.이생에서 함께할 수 없다
이승하가 전화를 받지 않자 서유는 핸드폰을 꼭 쥔 채 운전기사에게 더 빨리 가달라고 했다.수도의 고급 빌라에서 이승하는 소파에 누워있었고, 개인 주치의가 그의 머리를 진찰하고 있었다.“의사 선생님, 어떻습니까?”옆에 서 있던 소수빈은 이승하가 돌아왔을 때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의사를 불렀다.진찰을 마친 의사는 장비를 내려놓고 일회용 장갑을 벗으며 소수빈에게 대답했다.“대표님 상태를 보니 자극을 받으셨거나 과도한 두뇌 사용으로 인한 두통으로 보입니다.”소수빈은 눈썹을 찌푸린 이승하를 힐끗 보았다. 자신의 아내를 전 남자친구를 만나러 보냈는데 자극받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그럼 뇌종양은 재발하지 않았나요?”“현재로선 그런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져온 장비로는 한계가 있어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한 번 더 받으시는 게 좋겠습니다.”의사는 말을 마치고 약가방에서 두 병의 약을 꺼내 소수빈에게 건넸다.“이건 진통제입니다. 아프실 때 각각 두 알씩 드세요.”소수빈은 약을 받아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다른 주의사항은 없습니까?”“뇌 수술을 받으셨으니 음식은 담백하게 드시고, 정서적으로는 자극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조금의 자극도 안 됩니다. 그리고 절대 과도한 두뇌 사용은 피하셔야 합니다.”마침 이승하는 서유가 송사월의 이마를 닦아주는 장면을 보고 자극을 받았고, 또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를 과도하게 썼으니 두 가지 모두에 해당했다.“대표님의 정서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은 두통에 그치지만 나중엔 혈압이 올라가 뇌출혈이 재발할 위험이 있습니다.”소수빈은 모든 내용을 꼼꼼히 기억한 뒤 의사를 배웅하고 돌아와 약을 꺼내 물과 함께 이승하에게 건넸다. 그가 약을 먹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소수빈은 입을 열어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대표님, 송사월 씨가 아프다고 해서 대표님도 아프시면 어떡합니까. 대표님이 사모님께 송사월 씨를 보러 가라
“여보, 무슨 일이에요?”서유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녀의 오른손으로 송사월의 이마와 얼굴을 닦아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조금 무리하게 구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마음이 불편했다.이 불편한 감정은 마치 갇힌 짐승에게 뜯기는 것 같았고, 그를 꽉 물어뜯고 있었다.화를 내거나 냉담하게 대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는 이상한 짜증을 꾹 눌렀다.“괜찮아, 걱정하지 마.”“하지만 당신 얼굴이...”입술마저 하얗게 되어 있어 마치 방금 극심한 고통을 겪은 것처럼 몹시 초췌해 보였다.“어디 불편한 데가 있어요? 말해요.”서유는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그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하지만 그는 아무 내색 없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화장실로 데려갔다.세면대 수도꼭지를 틀고 그녀의 오른손을 물에 넣었다.“손바닥에 땀이 났네. 깨끗이 씻고 안아줘.”서유는 눈을 들어 이상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전에는 그녀의 손에 땀이 나도 개의치 않았는데 왜 지금은...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의 이승하에게서 냉랭함이 느껴졌다.이승하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꼼꼼히 씻어주었다.“앞으로 네가 송사월을 만나러 갈 때 난 함께 가지 않을 거야.”“왜요?”그가 늘 그녀 곁에 있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이승하는 대답하지 않았고 무심한 눈동자에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닦아준 뒤 휴지를 버리고 다시 비누로 자신의 손을 씻었다.세면대 앞에 서서 말없이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서유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여보, 시간 제한을 말할 때 농담인 줄 알았어요. 진심이었다니 놀랐어요.”그녀는 이렇게 냉담한 이승하를 마주할 때마다 두려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그를 안으려 했다.“약속할게요. 내일 사월이를 만나러 갈 때 두 시간만 있다 올게요. 제발 화내지 마요, 네?”그녀가 다가오자 마치 뜨거운 불꽃이 살갗을 태우는 것 같았고 온몸의 서리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이승하는 몸을 돌려 서유를 들어 세면대
“당신이에요...”정욕에 빠진 서유는 정신은 혼미했지만 마음만은 자신의 방향을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그녀의 대답을 들은 이승하의 불안한 마음이 점차 가라앉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계속되었다.이승하의 뛰어난 능력은 서유가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안기면 숨이 멎을 듯 치명적이어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특별히 달랐다. 그는 미친 듯이 그녀를 요구했고, 쉬지 않고 거듭 반복했다.얇은 이불을 감싼 채 긴 속눈썹을 들어 옆에 누운 이승하를 바라보며 서유가 말했다.“여보, 걱정 마요. 난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그가 계속 자신에게서 위안을 찾는 건 불안한 마음 때문이라는 걸, 송사월을 만나면 마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송사월에게 죄책감과 연민은 있었지만 사랑은 이미 없었다. 그녀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흔들릴 리 없었다.“알아.”절정에 오를 때마다 그녀는 그의 귓가에 ‘여보, 사랑해요’라고 계속 속삭였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난 정신적 결벽증이 꽤 심해. 앞으로 송사월 씨를 만날 때 친밀한 접촉은 하지 마. 신경 쓰이니까.”많이 신경 쓰였다.그는 자신의 아내가 중증 우울증 환자를 돕는 것은 용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 외의 남자를 만지는 것, 특히 송사월을 만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송사월은 그녀의 첫사랑이자 이상형이었다. 둘이 스치기만 해도 옛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그는 자신이 조금 옹졸하다는 걸 인정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랑 앞에서 그는 티끌만한 불순물도 용납할 수 없었다.서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깨달았다.“오늘 내가 사월이 이마를 닦아준 걸 봤어요?”이승하는 입술을 꽉 다문 채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모습에서 답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데려가 손을 씻게 한 거였구나. 봤던 거였어.서유가 뭔가 말하려
이승하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체내를 흐르던 피가 순간 멈춘 것 같았고, 그녀를 감싸안은 두 팔마저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내리깔아 품 안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방금 전 그녀를 안고 사랑을 나눌 때만 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했는데, 왜 꿈속에서 송사월의 이름을 부르는 걸까?혹시... 혹시 서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송사월을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닐까?그렇다면 그 비율은? 얼마나 되는 걸까? 자신보다 많을까, 적을까?그의 몸이 굳는 것을 느낀 서유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창백해진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보, 난...”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방금 꿈속에서 누구 이름을 불렀어?”그의 힘이 너무 세서 서유의 가늘고 작은 손목이 아팠다...서유는 아픔을 참으며 계속 설명했다. “여보, 방금 잠들지 않았어요. 그저 오늘 사월이를 만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의 이름을 말했는데, 당신이 신경 쓸까 봐 더 말하지 않았어요. 오해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잠든 채로 그의 이름을 부른 게 아니에요.”이승하의 꽉 쥔 손이 서서히 풀렸지만, 창백한 입술 색은 여전했다. 마치 수년 전 그녀가 송사월의 이름을 부르던 때처럼 그를 괴롭게 했다. 억누를 수 없는 고통이었고, 그 고통에 그는 서유를 밀쳐냈다.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나 훤칠한 키의 모습으로 대충 옷을 걸쳤다. 책상으로 걸어가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려는 순간 서유의 하얀 손이 그의 손가락을 눌렀다.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오직 달빛만이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와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마침내 서유가 양손으로 이승하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전에 왜 꿈속에서 사월이 이름을 불렀는지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