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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못 놔줘의 모든 챕터: 챕터 211 - 챕터 220

1186 챕터

제211화

주변이 삽시에 조용해지고 바람이 나뭇잎을 휩쓸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박민정은 익숙한 유남준의 얼굴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어색해하면서 입을 열었다.“미안해요. 난 이제...”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끼어들었다.“너랑 낳겠다는 게 아니었어.”박민정은 놀라서 동공이 떨렸다. 그의 차갑고 모진 말이 그녀의 고막을 때렸다.“어떤 남자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자와 계속 아이를 낳고 싶겠어.”유남준은 박민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걸어갔다.자기 방에 도착한 그는 짜증스레 외투를 벗어 던졌다.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박민정이 거절하려고 하자 유남준은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우스운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그가 얼마나 황당한 일을 저질렀는지도 알게 되었다.하루 동안 그 아이의 아빠 역할을 해주다니.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었으면 다른 아이의 아빠를 해줬을까.별장 밖.박민정은 홀로 바람 속에 서 있었다.머리에는 유남준이 한 말이 맴돌았다. “어떤 남자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자와 계속 아이를 낳고 싶겠어.”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거실에 들어갔다.거실에는 그녀뿐이어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러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5년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홀로 이렇게 넓은 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박민정은 얼른 방으로 돌아갔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부드러운 선율에 박민정의 마음이 약간 풀렸다.쿠쿵~창밖에서 갑자기 우레가 치더니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멈추지 않을 기세로 쏟아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박민정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거의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그때 마침 밖에서 차량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윽고 대문 벨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 누구지?’박민정은 유남준이 잠에 들었는지 몰라 일단 나가보았다. 문을 열자 환자복을 입은 이지원이 목에는 붕대를 하고 비에 맞아 쫄딱 젖은 채, 핏기 하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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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계속해서 괴롭히다니.박민정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계속해서 남을 모함하는 건 이지원이 아닌가.이지원의 두 손은 이미 피로 물들었다. 유남준은 얼른 그녀를 구급차에 태워 갔다.떠나기 전, 이지원은 박민정을 슬쩍 쳐다보았다.마치 ‘봤지? 너와 나 중에서 유남준은 날 선택할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지금의 박민정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이지원이 빨리 유남준과 사귀어서 유남준이 박민정과 박윤우를 놓아주었으면 했다.구급차에서.유남준의 차가운 얼굴은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이렇게 늦은 밤에 두원에 와서 뭐 하는 거야.”“혼자 병원에 있는 건 너무 무서워서 오빠를 보려고 왔어요.”그렇게 심하게 다쳤지만 끝내 유남준을 잡지 못했다.이지원은 유남준이 앞으로 자기를 버릴까 봐 걱정이었다.그리고 오늘의 일로 그 걱정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유남준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앞으로 두원에 오지 마.”이지원은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왜요? 민정 씨 때문이에요? 그런 여자는 오빠한테 어울리지 않...”유남준이 이지원의 말을 끊었다.“박민정은 내 아내야!”이지원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에도 핏기가 가셔 창백했다.“그럼 나는요? 오빠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8년이나 기다렸어요!”“보상할게.”유남준은 무표정으로 유명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지원의 앞에서 드라마 주인공 배역을 따주었다.“내가 있으면 넌 영원히 승승장구하게 될 거야. 그런 비열한 수단 없이도 말이야.”이지원은 그제야 알았다. 유남준은 진작 그녀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두려워진 이지원은 유남준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전에 이지원이 해외 노래를 표절한 것 때문에 사건이 터졌었는데 유남준 덕분에 깔끔하게 해결되었었다. 여전히 많은 브랜드들이 이지원을 모델로 삼으려고 했다. 이지원의 명성에는 전혀 흠집이 없었다.그날 밤, 유남준은 두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이튿날, 박민정은 뉴스에서 이지원이 또 유명한 감독의 여자 주인공 배역을 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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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차 안에서. 유남준은 뒷좌석에 앉았다.어젯밤 그는 차에서 저녁 내내 박민정의 전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박민정은 전화 한 통 주지 않았다.박민정이 나오는 것을 본 그는 창문을 내리고 피곤한 얼굴로 얘기했다.“타.”박민정은 그가 금방 돌아온 줄 알고 화가 나서 차에 타지 않았다.“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해요.”유남준은 약간 피곤한 눈으로 얘기했다.“아직 보름 남았어. 잊지 마.”박민정은 약간 의아해하면서 차에 올라탔다.유남준은 어젯밤 이지원의 일을 꺼내지 않았다. 박민정도 왜 이제야 돌아왔는지 묻지 않았다.운전기사가 시동을 걸었다.“오늘은 옛 저택으로 간다.”유남준이 얘기했다.박민정은 약간 이해되지 않았다.“옛 저택에 가서 뭐 해요?”“며칠 있으면 추석이잖아.”유남준이 멈칫하고 얘기했다.“전에 나랑 옛 저택에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박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녀가 옛 저택에 살고 싶다고 한 건 옛 저택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유남준과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시간은 많이 흘렀고 그녀는 이제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두 사람은 불가능한 사이니까.어젯밤, 박민정은 오랫동안 생각했다.만약 이번에 임신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이미 유남준의 정자를 얻었으니 앞으로도 임신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정림원의 지도를 알았으니 박윤우를 데려오는 것도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그저 유남준이 자기와 윤우를 놓아주지 않고 다시 붙잡아 올까 봐 걱정이었다.그래서 그저 유남준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네.”옛 저택.고용인부터 집주인까지, 누구 하나 박민정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이 이곳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을 몰랐다.보슬비 때문에 이 세계에 한 층의 얇은 막이 씌워진 기분이 들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끝도 안 보이는 옛 저택을 보면서 우울감을 느꼈다.‘아직도 17일...’옆의 보디가드가 검은 우산을 씌워주었고 박민정은 하이힐을 신고 유남준과 함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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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박민정은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어젯밤 유남준이 이지원과 키스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그저 메스꺼웠다.차가운 벽을 등진 채, 박민정은 힘껏 유남준을 밀어냈다.유남준은 그저 고양이가 할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자기 외투를 벗어 던졌다.“싫어...”박민정은 그가 뭘 하려는 지 알기에 얼른 거부했다.유남준은 박민정이 좋으면서 말로만 싫다고 하는 줄 알았다.박민정은 조급해져서 눈이 붉어졌다.그리고 그대로 유남준을 힘껏 물어버렸다.유남준은 약간 신음을 흘리더니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박민정을 쳐다보았다.“뭐 하는 거야.”“날 놓아줘요!”박민정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유남준은 손을 그녀의 얼굴에 대고 얘기했다.“싫어.”유남준은 박민정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계속 키스하려고 했다.어젯밤의 유남준과 이지원도 이랬을까. 그 생각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유남준의 어깨를 잡고 손톱으로 그를 꼬집었다.하지만 유남준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유남준! 날 놓아달라고요!”유남준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이유는 모르겠지만 박민정이 반항하고 벗어나려고 할수록 그는 박민정을 더욱 깊게 새기고 자기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방안이 열기로 후끈거리는 것 같았다.이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유남준이 멈추더니 불쾌한 듯 물었다.“누구야.”문밖에 서 있던 이혜림은 안의 소리를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부럽기도 하고 질투 나기도 했다.“도련님, 어르신이 부르십니다.”이혜림이 붉어진 볼을 만지며 얘기했다.“알았어.”유남준은 품의 박민정을 보더니 옷으로 그녀를 꽁꽁 감싸고 침대에 데려다 놓았다.“잘 쉬어.”해외에서 몇 년간 어떻게 살았길래 몸은 여전히 이토록 허약한 건지.박민정은 이불을 끌어 올리며 창백한 얼굴로 얘기했다.“네.”유남준은 옷을 갈아입고 가지 않고 박민정 앞으로 왔다. 그의 어깨에 박민정이 물었던 상처와 등에 있는 상처들이 선명하게 보였다.하지만 그는 정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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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귓가에 들려오는 조롱 섞인 여자의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린 박민정은 고개를 돌려 이혜림을 바라봤다.반듯한 정장과 달리 훤히 드러난 그녀의 가슴골은 일부러 연출한 듯 자연스러웠고 계란형 얼굴과 얇은 눈썹, 살짝 찌푸린 눈에는 질투심이 가득했다.박민정은 그녀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현실은 집사의 딸에 불과한데 마치 유씨 가문의 사모님처럼 행동하는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혔었다.이혜림은 박민정이 대답이 없자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은 줄 알고 제멋대로 행동하더니 바닥에 놓인 옷을 발로 차며 모욕적인 말들을 일삼았다.“정말 뻔뻔하네. 설마 장애인이라는 걸 잊은 건가? 예전에는 순직한 척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남자를 유혹하려고 참 애쓰네. 옷차림이...”이혜림은 그녀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 듯 바닥에 놓인 럭셔리한 옷들을 보란 듯이 발로 짓밟았다.과거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박민정을 마음껏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오늘날의 박민정은 더 이상 유남준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박민정은 외투를 걸치고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 한 걸음 이혜림에게 다가갔다.고개를 든 이혜림은 그녀의 귀에 보청기가 꽂혀 있는 걸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어머, 듣고 있었네요? 완전히 귀먹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민정은 손을 들었고 곧이어 ‘짝’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혜림의 뺨을 내리쳤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넋을 잃은 이혜림은 뺨이 얼얼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감히 날 때려?”박민정도 손이 따끔한 건 마찬가지였다.“때렸어요. 왜요?”화가 치밀어 오른 이혜림은 반격하려고 손을 들었으나 곧바로 박민정에게 손목이 잡혔고 박민정은 또다시 이혜림의 뺨을 후려갈겼다.이혜림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겁쟁이가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하이힐을 신은 채 비틀거리던 그녀는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박민정 씨, 그쪽은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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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비록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서늘한 찬바람이 불어오자 여전히 춥게만 느껴졌다.정민기는 주변의 CCTV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야윈 모습의 박민정이 나타났고 그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줬다.“고마워요.”박민정은 앞으로 나서며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차에 올라탄 정민기는 자상하게 히터를 켰다.박민정이 해외로 나간 이후로 줄곧 옆에서 지켜주며 시간을 보낸 덕분에 자연스레 그녀가 추위를 탄다는 걸 알게 되었다.“어디로 갈까요?”박민정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두원 별장으로 가요.”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은 유남준도 곧 알게 될 것이기에 분명히 여기저기 들쑤시다가 찾아올 게 뻔하다.“알겠습니다.”정민기는 경치가 좋은 길을 택했다.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박민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지난번에 급한 일 있다며 집으로 돌아갔잖아요. 이제는 괜찮아요?”핸들을 꽉 움켜쥔 손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했다.“약혼녀랑 파혼했어요.”그의 말에 박민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보디가드라는 직업 특성상 그들은 남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여 박민정은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갑작스럽게 듣게 된 파혼 소식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더니 난처한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일 때문인가요?”정민기처럼 책임감 있는 보디가드는 정말 흔치 않다. 그는 박민정이 찾는 한 늘 그녀의 곁을 지켰고 몇 시가 됐든 달려 나왔다.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뭔가를 망설이는 듯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대요.”이 말 한마디에 차 안은 쥐 죽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박민정은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죄송해요. 정말 몰랐어요...”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유남준이었다.순간 자신을 홀대하는 유씨 집안 사람들이 떠오른 박민정은 이를 무시한 채 벨소리를 무음으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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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부하들은 줄곧 그녀를 미행했으나 정민기가 운전하는 차가 택시여서 별다른 의심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방금 택시를 탔고 두원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박민정이 아직 진주에 있다는 사실에 유남준은 긴장된 마음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갑자기 돌아가려는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왜 두원으로 가는지 알아?”“모르겠습니다.”줄곧 밖에서 뒤를 밟으며 미행하는 그들이 이유를 알 리가 없었다.유남준은 전화를 끊자마자 두원으로 갈 차를 준비했다.두원으로 향하던 중.그는 또다시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고 다급한 마음에 기사에게 최대한 빨리 운전해달라고 부탁했다.같은 시각, 두원에 도착한 박민정은 정민기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곧바로 별장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멍하니 문 앞에 서 있었다.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어깨 위로 가랑비가 내렸고 그녀의 눈빛에서는 심란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얼마 후, 등 뒤로 차 한 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랜드로버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고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달려와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왜 전화 안 받아?”박민정의 맑은 두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다.“따지려고 찾아온 거죠?”유남준은 뜬금없었다. 말없이 제멋대로 떠나고 전화도 받지 않았는데 따지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그녀는 유남준을 밀어내더니 비를 맞으며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보름밖에 안 남았으니까 괜히 헛수고하지 말아요.”잔뜩 어두워진 눈빛으로 박민정을 따라 걸음을 옮긴 유남준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그게 무슨 뜻이야?”박민정은 가랑비 사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왜 한 달 동안 부부로 지내자고 제안했는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우리 사이는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윤우 돌려주고 이만 헤어져요.”유남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저택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 나 때문에 화난 거야?”그의 손은 조심스럽게 박민정의 차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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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그는 어느새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긴 다리를 꼰 채 태연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다.아직 마르지 않은 젖은 머리와 또렷한 이목구비는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고 심연처럼 깊은 눈동자 속에는 착잡함이 담겨 있었다.“그냥 문 열고 들어왔는데?”여유롭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몸에 두른 가운을 꽉 조였다.“나가요.”유남준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왜 화난 거야?”아직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으니 박민정이 직접 말해주기를 기다렸다.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듯 대충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아무 일도 아니니까 얼른 나가요. 옷 갈아입을 거예요.”유남준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래.”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어쩔 수 없이 유남준을 등지고 옷을 갈아 입었고 그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시선은 박민정의 매끈한 등을 향했다. 그러다가 몸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에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핸드폰을 꺼내 보디가드에게 연락했다.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보디가드에게 메시지가 왔다.[대표님,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 끝에 알아냈습니다. 이한석 집사님의 딸인 이혜림 씨가 민정 씨를 모욕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르신께 알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유씨 가문에서 나가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묵묵히 메시지를 읽고 난 후, 그의 살벌한 분위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당장 데리고 와.]문자를 보낸 뒤 핸드폰을 끄고 다시 박민정을 바라봤을 때, 박민정은 이미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왜 나한테 직접 얘기하지 않는 거야?”그는 자기 아내를 쫓아낸 사람이 유씨 가문의 일개 도우미라는 사실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박민정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사실대로 얘기하면 믿어줄 거예요?”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유남준과 달리 박민정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한 말을 믿든 안 믿든 그건 남준 씨의 선택이니까 강요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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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날 뭐로 보는 거야? 내가 우스워?”말을 마친 유남준은 그녀의 답을 듣지도 않은 채 침실을 나섰다.혼자 자리에 남겨진 박민정은 그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어딘가 불안한 듯 몸 둘 바를 몰랐다.이 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남준과 한 달 동안 부부로 지낸다 한들 절대 그녀와 윤우를 놓아줄 사람이 아니었다.이렇게 된 이상 유남준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윤우를 데려갈 수밖에 없다.또다시 연지석에게 신세지기 싫었던 박민정은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마음을 가다듬었고 윤우와 함께 떠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쿵!아래층에서 유남준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혼자 의자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유남준이 윤우와의 만남을 허락해야만 단둘이 정림원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나 다름없다.도망칠 기회를 얻었다 한들 진주를 벗어나는 것도 큰 산이다.이때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른 그녀는 정민기가 준 핸드폰에 낯익은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곧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변호사님, 저 민정이에요.”장명철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정말 민정이니? 살아있었어?”“네.”“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야?”장명철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그건 나중에 제가 차차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장명철은 박민정의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신임했던 변호자이자 진주시에서 꽤 많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다.“그래, 뭐가 됐든 말만 해.”“출국할 신분이 두 개 필요한데 구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이 일은 절대 아무에게도 알려서는 안 돼요.”사실 돈으로 얼마든지 주민등록증을 살 수 있지만 직접 사면 유남준이 무조건 의심하기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언제쯤 필요한데?”“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알겠어.”위조 주민등록증을 얻으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이 소요되기에 무조건 일주일 내에 윤우를 데려올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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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이한석이 허둥지둥 지하실로 달려갔을 때 유남준은 이미 없었고, 그곳에 남은 건 구석에 숨어서 벌벌 떨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이혜림뿐이었다. 그는 걱정스럽게 물었다.“혜림아, 왜 그래?”옆에 있던 보디가드가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이한석 집사님, 대표님께서 더 이상 혜림 씨를 유씨 가문에 들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부로 당장 진주시를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이한석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해외로 보낼게요.”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린 이혜림은 이한석의 다리를 붙잡고 간절하게 애원했다.“아빠, 전 떠나고 싶지 않아요.”곧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게 다 박민정 때문이에요...”이한석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으나 눈빛만큼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그 시각 별장 밖. 차에 올라탄 유남준은 서다희의 업무 보고를 들으며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연지석 씨의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밑지는 장사인 만큼 주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서다희는 눈치를 살피더니 쭈뼛거리며 말했다.유남준이 데이트하느라 자리를 비운 틈에 회사 임원들은 자기가 주인이 된 것처럼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으며 면박을 줬다.“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유남준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예전이라면 자신 있게 예측했겠지만, 연지석 씨의 뒤를 지키는 그룹들이 워낙 뼈대가 굵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평범한 외국계 회사라면 유남준의 공격 속에서 반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다.하지만 연지석은 무려 5년을 버텼다.물론 유남준도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손해가 두렵지 않은 듯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계속 진행해. 그 철옹성 같은 장벽이 언제 무너지는지 궁금하네.”그는 연지석이 해외에서 몇 번이나 암살당할 뻔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건 뒤에서 지켜주는 세력이 많다는 뜻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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