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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못 놔줘의 모든 챕터: 챕터 221 - 챕터 230

1186 챕터

제221화

박민정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살짝 떨었다.그제야 그녀가 잠들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유남준은 흠칫 놀라더니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어느새 박민정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잔뜩 고였고, 그가 멈추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깊은 밤.박민정을 품에 안고서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던 유남준은 아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이른 아침,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유남준은 더 이상 곁에 없었다.어젯밤의 모든 일이 마치 꿈처럼 공허하게 다가왔지만 신경 쓰지 않고 씻으러 갔다.거울 앞에 서서 감정을 추스르려고 애쓰던 박민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침실을 나섰고, 서재 앞을 지나며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돌리자 반듯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유남준이 한눈에 들어왔다.그는 평소의 싸늘함을 되찾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순간 계획이 떠오른 박민정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무슨 일이야?”유남준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어제는 내가 실수했어요.”박민정은 뜬금없이 사과했다.“너무 억울해서 본의 아니게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손에 서류를 든 유남준의 시선은 줄곧 첫 번째 단어에 머물러 있었고 전혀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곧이어 그는 서류를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어 박민정을 바라봤다.사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거기에 헝클어진 머리까지 더해지자 괜스레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켰다.이런 모습은 예전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어딘가 달랐다.뭐가 다른지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이리 와.”박민정은 그에게 다가갔다.“이제 그만 저택으로 돌아가요. 혜림 씨한테 사과하고 싶어요.”유남준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얇은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사과하고 싶은 게 맞아? 뭔가 이상한데?”박민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솔직히 말하면 사과하고 싶지 않은데 남준 씨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야죠.”그는 주의깊게 박민정을 훑어보았다.예전에는 그녀의 비굴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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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저택에 도착해 유남준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박민정은 고영란의 문자를 받았다.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순간 망설여진 그녀는 유남준에게 사실대로 말했다.“가고 싶지 않으면 거절해.”퉁명스럽게 내뱉은 그 한마디가 인사치레인지 진심이 담긴 말인지 알 수 없었다.“갈게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영란을 만나러 갔다.바깥 정원.한복 차림의 고영란은 직접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러다 박민정을 발견하고는 자연스레 도우미에게 물조리개를 건넸고 상냥하게 입을 열었다.“여긴 예전부터 꽃이 잘 안 피더라고. 그래서 싹 다 바꿨어.”“그렇군요.”언뜻 봐서는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 같아도 그 속에는 손주를 안고 싶다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박민정은 당연히 그 의도를 알아챘지만 당황하지 않고 일부러 태연하게 행동했다.“민정아, 그거 아니? 내가 최근에 엄청 귀여운 아이를 만났어. 남준이 어렸을 때랑 똑 닮았거든.”결혼생활 3년 동안 유남준이 밤늦게 집에 있는 날이 손꼽힐 정도였으니 말하지 않아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아. 요즘 둘 사이는 어때? 좋아졌어?”고영란은 더 이상 이지원에게 그 어떤 기대도 없었다.특히나 지난번 유남준과 박민정이 방에서 키스하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본 이후로 박민정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고영란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예전에는 내가 많이 실수했어. 이제부터 네가 남준이의 아이를 임신한다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장담할게.”여장부라고 소문난 천하의 고씨 가문의 아가씨도 손자 앞에서는 별수 없었다.“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말만 해.”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던 예전과 달리 한없이 다정해진 고영란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았다.박민정은 원하는 게 있을 때만 돌변하는 고영란의 모습이 역겨운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죄송해요. 이런 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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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고영란은 아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미리 챙겨온 값비싼 장난감들을 그에게 건네줬다.그러나 박예찬은 장난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할머니, 너무 감사하지만 엄마가 낯선 사람이 주는 물건은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박민정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했다.그러나 아직 고영란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불확실한 상황이라 절대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박예찬의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고영란은 ‘낯선 사람’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예찬아, 할머니가 왜 낯선 사람이야? 우리 적어도 몇 달은 알고 지냈잖아. 할머니가 얼마나 널 좋아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박예찬이 언급한 엄마가 조하랑인 줄 알았던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을 이었다.“엄마한테 혼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추석 지내고 나면 할머니가 직접 엄마를 만나서 얘기할게. 그럼 이제 낯선 사람이 아닌 거지?”박예찬은 엄마를 함부로 대하며 괴롭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이러는 게 이해 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무려 20일을 유지훈을 데리러 온다는 핑계로 유치원을 찾아왔다.매번 거절했음에도 고영란은 늘 선물이나 음식을 가져왔다.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박민정에게 했던 무자비한 행동을 떠올리면 그런 마음마저 사라졌다.“할머니, 제가 비록 어린아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아요.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니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절대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걸요.”그 말 한마디에 고영란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리에 얼어붙었다.비수 같은 말에 상처받은 것도 있지만 그의 모습이 어릴 적의 유남준과 너무 똑 닮아있어 기분이 착잡했다.“왜 할머니를 싫어하는 거야?”슬픔에 허덕이는 고영란과 달리 박예찬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저에게는 진짜 할머니가 있거든요.”혈육 간의 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박민정은 다시 한번 느꼈다.어찌 보면 고영란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건 친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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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저택으로 돌아온 후.고영란은 신중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박민정을 설득했다.“현실이 얼마나 잔인한지 네가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혼한 여자가 무슨 수입이 있겠니? 박씨 가문도 그렇고... 이제는 의지할 구석이 없잖아.”박민정은 유남준의 방 밖에 있는 발코니에 서서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고영란의 말을 머릿속에 되새겼다.이혼한 여자는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뜻인가?박민정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성공한 모습을 기필코 보여주리라 다짐했다.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손에 든 물컵을 내려놓고 조하랑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민정아, 무슨 일이야?”조하랑은 과일을 먹고 있었다.“예찬이랑 얘기하고 싶어.”“그래? 잠깐만 기다려.”조하랑은 재빨리 카메라를 돌렸고 곧이어 단정한 옷차림으로 테이블에 앉아있는 박예찬의 모습이 보였다.“엄마.”박민정은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고영란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물어보고 싶어 고민하던 찰나 뜻밖에도 박예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나 오늘 엄마를 봤어.”박민정은 흠칫 놀랐다.“그런데 왜 아는 척을 안 했어?”사뭇 박예찬이 어른처럼 성숙해 보이는 순간이다.“엄마가 나한테 다가오지 않았잖아. 바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방해하지 않았어.”박예찬은 일부러 고영란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엄마, 혹시 유치원 입구에서 엄청 나이 드신 어르신 봤어? 유치원에서 한번 만난 이후로 요즘 계속 나 보러 오거든.”줄곧 우아함을 유지하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고영란이 나이 먹은 사람으로 표현되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모든 의혹이 말끔히 사라졌다.“그건 우리 예찬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래.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잖아.”그녀의 말에 박예찬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엄마, 내일 추석이잖아. 그래서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한테 추석 안부를 전했어.”“정말이야? 고마워.”박민정은 당장이라도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었다.유씨 가문에서는 길게 영상 통화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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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유남준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아이인 유지훈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에 애써 감정을 억제했다.유성혁 부부는 수치심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방을 나섰다.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곧바로 돌변했다.“남준이 저 자식은 위아래가 없는 건가? 감히 나한테 덤벼?”최현아도 분노를 못 이겨 씩씩거리며 유지훈을 끌고 나왔다.“동생이라면서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어르신이랑 지훈이가 보는 앞에서 이렇게 체면을 짓밟을 수가 있죠?”최현아는 유남준이 머문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띠었다.“방금 우릴 비웃는 거 봤어요?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유성혁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무슨 뜻이야?”“민정 씨를 다시 데려왔다는 소식 못 들었어요?”“그게 왜?”유성혁은 예쁜 박민정이 난청 때문에 외출할 때마다 보청기를 착용하는 게 불쌍하다고 여겼다.“여보, 걱정하지 마요. 오늘 받은 모욕은 반드시 되갚아 줄 거예요.”최현아는 이를 악물었다.“비밀 하나 얘기해줄까요? 민정 씨가 사랑하는 사람은 도련님이 아니에요.”이 일은 최현아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박민정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걸 보고 싶어 지금껏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남준에게 한 방 맞고 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골탕을 먹이고 싶었다....유남준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박민정은 이미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은은한 불빛이 그녀의 몸을 비추자 유난히 매혹적이었다.유남준은 외투를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잡아당기더니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어머니가 뭐래?”박민정이 그를 바라봤을 땐 바지만 남은 상태였다.다부진 상체가 고스란히 눈에 보이자,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아이를 임신하면 4,000억을 준대요.”“그래서 동의했어?”유남준은 곧장 침대에 올라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아니요. 전 아이를 팔고 싶지 않거든요.”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입술은 마침 유남준의 볼에 닿았다.순간 가슴이 찡해지며 알 수 없는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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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CEO로 알려진 유남준이 이런 뻔뻔한 면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닌듯싶다.유남준은 옆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앞으로도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그렇게 날이 막 밝아올 무렵에야 박민정은 잠이 들었다.추석날.유씨 가문은 늘 그렇듯 수많은 친척들이 모여 시끌벅적했다.유일하게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오늘은 이 자리에 박민정이 있다는 것이다.일찌감치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추측이 사실인 것처럼 사석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남준 오빠가 직접 데려왔다고? 도대체 왜?”“진짜? 저 여자가 먼저 연락한 게 아니라고?”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지던 그 시각 박민정은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몸을 일으켰다.침대에서 일어나자 준비된 드레스와 한쪽에 놓인 화려한 주얼리가 보였지만 재빨리 시선을 떼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남준은 드레스를 갈아입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파티라도 하는 건가? 아무튼 전 참석할 생각 없어요.”박민정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왜? 이유를 말해봐.”유남준은 지그시 그녀를 바라봤다.“이유가 왜 필요하죠?”박민정의 질문에 유남준은 위압감을 풍기며 한 걸음 다가갔다.“이번에는 다를 거야.”박민정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가고 싶지 않아요.”‘달려졌다고? 날 괴롭히는 방법이 달라진 건가?’5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면전에서 얼마나 많은 핀잔을 줄지 안 봐도 뻔하다.유남준은 오늘 박민정을 데리고 직접 가족 연회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늘 서럽다고 얘기했으니까.“친구들은 남편이랑 같이 파티도 가던데 나만 혼자예요... 다들 지켜줄 사람이 있는데 나만 없고...”하지만 이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지금의 박민정은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도,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을 만큼 연악하지도 않았다.유남준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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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오랜만이네. 너무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어.”최현아는 손을 내밀었지만, 박민정은 이를 무시하고 그저 예의 바른 웃음을 지었다.“그쪽은 변한 게 없네요.”순간 표정이 굳어버린 최현아는 손을 거두었다.“나가서 얘기 좀 할래?”최현아는 박민정보다 일찍 유씨 가문에 시집왔다.박민정이 유남준과 약혼 얘기가 오가던 와중에 최현아는 친한 언니처럼 시간 있을 때마다 찾아와 수다를 떨었다.두 사람이 결혼한 후, 박형식이 세상을 뜨고 박씨 가문이 점점 무너지자, 그녀는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냈다.타고난 연기파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바깥의 오솔길을 걸으며 최현아는 상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그거 알아? 5년 전에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한숨도 못 잤어. 심지어 그때 지훈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유산할 뻔했다니까?”진심은 일도 없는 가식 섞인 말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왜요? 무서웠어요?”박민정은 농담인 척하며 태연하게 물었다.“설마 밤에 찾아올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니겠죠?”그녀는 박민정의 결혼 생활에서 발목잡는 걸림돌 같은 존재였다.유남준이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실종된 적이 있었다. 그때 박민정은 유앤케이 그룹이 휘청거리지 않도록 유씨 가문의 친인척과 임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모든 사람이 유남준은 죽었다고 단정하는 와중에도 희망의 끝을 놓지 않은 채 홀로 그를 찾기 위해 두바이로 떠났다.운 좋게 그곳에서 유남준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 계약을 성사했을 뿐만 아니라 유명훈의 눈에 들어 성공적으로 유씨 가문에 시집오게 되었다.하지만 이 모든 걸 최현아가 망쳐버렸다. 그녀는 박민정이 두바이에서 부자를 꼬셨다는 루머를 여기저기 퍼뜨렸다.그 얘기를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유명훈은 곧바로 벌을 내렸고, 그렇게 박민정은 사당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하루 밤낮을 보냈다.이런 일은 약과에 불과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잔인한 수단과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혀왔는지 짐작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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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최현아의 말을 되새기던 박민정은 눈앞의 정원을 바라보며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넋을 잃고 안으로 들어섰다.정원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계수나무 한 그루에서 풍기는 향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박민정은 자신이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어릴 적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자주 유씨 가문을 방문했다.박민정은 계수나무 아래에 서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홍색의 가옥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삐걱-!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녀는 내부의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방안의 모든 가구와 물건들은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 흰 천으로 덮여있었다.최현아는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이곳으로 데려온 걸까?그녀는 의혹을 가득 품은 채 흰 천 하나를 들어 올렸다.쨍그랑!뭔가 바닥에 떨어졌다.앞으로 다가가 보니 액자 하나가 놓여있었고 허리 숙여 그것을 들어 올린 박민정은 액자 속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사진 속에는 똑같이 생긴 아이 둘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한 명은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다른 한 명은 반달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사진 맨 아래에는 자그마한 글씨체로 뭔가가 적혀있었다.[형 유남준, 동생 유남우.]유남준? 유남우?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오면서 가슴이 답답해진 박민정은 재빨리 다른 흰 천을 젖혀 사진 몇 장을 더 찾았다.여전히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었는데 어렸을 때가 아니라 성인이 된 모습이었다.정장 차림으로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른쪽 남자와 달리 왼쪽에 서 있는 남자는 캐주얼한 옷차림에 온화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비록 똑같이 생겼지만 풍기는 분위기로만 봤을 땐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역시나 이 사진 아래에도 자그마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형 유남준, 동생 유남우.]싸늘함을 풍기는 남자가 유남준,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유남우다.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밀려오며 박민정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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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유남준은 망연자실한 박민정의 표정을 보며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와 재빨리 사람을 시켜 그녀를 방으로 데려갔다.방으로 돌아온 후.유남준은 옷 한 벌을 꺼내 그녀에게 걸쳤다.“확인하고 싶은 게 뭔데?”“쌍둥이 동생 있어요?”박민정은 사진을 손에 꽉 움켜쥔 채 보여주지 않았다.동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싸늘하게 돌변한 유남준은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맞아.”박민정은 쉴 틈 없이 물었다.“왜 지금까지 한 번도 얘기 안 했어요?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유남준은 입술을 깨문 채 감정을 추슬렀으나 싸늘함을 머금은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갑자기 찾아와서 묻고 싶었던 게 고작 이거야?”박민정은 뚫어져라 그를 바라봤다.“집안일이니까 넌 알 필요 없어.”잔인한 독설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고 선을 긋는 말을 들으니 그의 입에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한편으로는 사진을 보여주지 않고 주머니에 숨긴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알려주면 다시는 이 얘기를 꺼내지 않을게요.”유남준의 눈빛에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의아함이 가득했다.“갑자기 왜 그걸 알고 싶은 건데?”동생 유남우는 유씨 가문에서 금기시되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누구도 감히 언급할 엄두가 없었다.심지어 유남우의 존재를 알고 있는 도우미마저도 행여나 말실수로 유남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유남준은 계속하여 따졌다.“누가 뭐라고 얘기해줬어?”박민정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대충 둘러댔다.“지난번에 어머님이랑 대화하는 걸 엿듣고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침 밖에서 산책하고 돌아오면서 누군가 그 얘기를 하고 있길래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본 것뿐이에요.”이런 어설픈 거짓말에 유남준이 속을 리가 없다.더군다나 얼마나 다급하게 자신을 찾았는지, 얼마나 넋이 나갔는지 직접 봤기 때문에 분명히 큰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미안해요. 마음이 급해서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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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연회장에서 겪은 갖가지 구설수로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지금 이 순간 전부 부질없게 느껴졌다.그는 박민정을 깨우지 않고 그대로 품에 안았다.바로 이때 그녀의 이마가 평소보다 뜨겁다는 걸 알아챘다.“너 지금 열나.”그의 움직임에 잠이 깬 박민정은 머리가 아픈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왔어요?”“응, 너 열 나니까 의사 선생님 모셔 올게.”유남준은 그녀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런데 이때 박민정이 갑자기 그를 껴안았다.“싫어요. 해열제 먹으면 되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보름동안 임신 여부를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는데 괜히 의사가 뭔가를 알아챈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적극적으로 품에 안기는 그녀의 모습에 유남준은 온갖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내 말 들어.”박민정은 결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제발요.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요.”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졌지만,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오늘 왜 이래?”박민정은 평소에 애교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나 해외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그 빈도가 더 줄어들었고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가끔 애교를 부리곤 한다.자신을 의심하는 유남준의 눈빛에 박민정은 머리를 그의 품에 파묻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아빠가 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아이도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게 무서워요.”아버지와 아이 얘기를 꺼내자, 유남준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약 가져다줄게.”그는 몸을 일으켜 해열제를 가지러 갔다.소파에 웅크리고 있던 박민정은 훤칠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허무하다는 느낌이 밀려왔다.곧 유남준이 다가와서 따뜻한 물과 약을 건넸고 그녀는 약을 받고 꿀꺽 삼킨 후 애써 밝은 미소를 지었다.“약 먹으면 바로 괜찮아질 거야.”“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남준은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는 걸 듣고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저녁.여전히 미열이 남아있던 박민정은 샤워하고 약을 먹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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