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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작가: 윤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4-05 19:00:00
최현아의 말을 되새기던 박민정은 눈앞의 정원을 바라보며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넋을 잃고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계수나무 한 그루에서 풍기는 향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박민정은 자신이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어릴 적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자주 유씨 가문을 방문했다.

박민정은 계수나무 아래에 서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홍색의 가옥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삐걱-!

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녀는 내부의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방안의 모든 가구와 물건들은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 흰 천으로 덮여있었다.

최현아는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이곳으로 데려온 걸까?

그녀는 의혹을 가득 품은 채 흰 천 하나를 들어 올렸다.

쨍그랑!

뭔가 바닥에 떨어졌다.

앞으로 다가가 보니 액자 하나가 놓여있었고 허리 숙여 그것을 들어 올린 박민정은 액자 속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사진 속에는 똑같이 생긴 아이 둘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한 명은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다른 한 명은 반달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진 맨 아래에는 자그마한 글씨체로 뭔가가 적혀있었다.

[형 유남준, 동생 유남우.]

유남준? 유남우?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오면서 가슴이 답답해진 박민정은 재빨리 다른 흰 천을 젖혀 사진 몇 장을 더 찾았다.

여전히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었는데 어렸을 때가 아니라 성인이 된 모습이었다.

정장 차림으로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른쪽 남자와 달리 왼쪽에 서 있는 남자는 캐주얼한 옷차림에 온화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비록 똑같이 생겼지만 풍기는 분위기로만 봤을 땐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역시나 이 사진 아래에도 자그마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형 유남준, 동생 유남우.]

싸늘함을 풍기는 남자가 유남준,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유남우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밀려오며 박민정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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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남준은 망연자실한 박민정의 표정을 보며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와 재빨리 사람을 시켜 그녀를 방으로 데려갔다.방으로 돌아온 후.유남준은 옷 한 벌을 꺼내 그녀에게 걸쳤다.“확인하고 싶은 게 뭔데?”“쌍둥이 동생 있어요?”박민정은 사진을 손에 꽉 움켜쥔 채 보여주지 않았다.동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싸늘하게 돌변한 유남준은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맞아.”박민정은 쉴 틈 없이 물었다.“왜 지금까지 한 번도 얘기 안 했어요?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유남준은 입술을 깨문 채 감정을 추슬렀으나 싸늘함을 머금은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갑자기 찾아와서 묻고 싶었던 게 고작 이거야?”박민정은 뚫어져라 그를 바라봤다.“집안일이니까 넌 알 필요 없어.”잔인한 독설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고 선을 긋는 말을 들으니 그의 입에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한편으로는 사진을 보여주지 않고 주머니에 숨긴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알려주면 다시는 이 얘기를 꺼내지 않을게요.”유남준의 눈빛에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의아함이 가득했다.“갑자기 왜 그걸 알고 싶은 건데?”동생 유남우는 유씨 가문에서 금기시되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누구도 감히 언급할 엄두가 없었다.심지어 유남우의 존재를 알고 있는 도우미마저도 행여나 말실수로 유남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유남준은 계속하여 따졌다.“누가 뭐라고 얘기해줬어?”박민정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대충 둘러댔다.“지난번에 어머님이랑 대화하는 걸 엿듣고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침 밖에서 산책하고 돌아오면서 누군가 그 얘기를 하고 있길래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본 것뿐이에요.”이런 어설픈 거짓말에 유남준이 속을 리가 없다.더군다나 얼마나 다급하게 자신을 찾았는지, 얼마나 넋이 나갔는지 직접 봤기 때문에 분명히 큰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미안해요. 마음이 급해서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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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30화

    연회장에서 겪은 갖가지 구설수로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지금 이 순간 전부 부질없게 느껴졌다.그는 박민정을 깨우지 않고 그대로 품에 안았다.바로 이때 그녀의 이마가 평소보다 뜨겁다는 걸 알아챘다.“너 지금 열나.”그의 움직임에 잠이 깬 박민정은 머리가 아픈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왔어요?”“응, 너 열 나니까 의사 선생님 모셔 올게.”유남준은 그녀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런데 이때 박민정이 갑자기 그를 껴안았다.“싫어요. 해열제 먹으면 되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보름동안 임신 여부를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는데 괜히 의사가 뭔가를 알아챈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적극적으로 품에 안기는 그녀의 모습에 유남준은 온갖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내 말 들어.”박민정은 결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제발요.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요.”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졌지만,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오늘 왜 이래?”박민정은 평소에 애교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나 해외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그 빈도가 더 줄어들었고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가끔 애교를 부리곤 한다.자신을 의심하는 유남준의 눈빛에 박민정은 머리를 그의 품에 파묻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아빠가 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아이도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게 무서워요.”아버지와 아이 얘기를 꺼내자, 유남준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약 가져다줄게.”그는 몸을 일으켜 해열제를 가지러 갔다.소파에 웅크리고 있던 박민정은 훤칠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허무하다는 느낌이 밀려왔다.곧 유남준이 다가와서 따뜻한 물과 약을 건넸고 그녀는 약을 받고 꿀꺽 삼킨 후 애써 밝은 미소를 지었다.“약 먹으면 바로 괜찮아질 거야.”“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남준은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는 걸 듣고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저녁.여전히 미열이 남아있던 박민정은 샤워하고 약을 먹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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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정은 결국 최현아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조언대로 멍청하게 고영란을 찾아가지도 않았다.방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연지석이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문자 보면 나한테 연락 줘.]박민정이 바로 전화를 걸자 금세 통화가 연결되었다.“요즘 어때?”“윤우가 있는 곳 지도를 얻었어. 다음번에 윤우 만나러 갈 때 몰래 데리고 나올 생각이야.”“시간 정해지면 얘기해줘. 너 혼자 하는 건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연지석이 이러는 건 아마 그녀 혼자 윤우를 데리고 나오다가 잡힐 것을 염려해서 일 것이다.“걱정하지 마. 윤우 데리고 나오면 너부터 찾아갈게.”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유남준과 연지석의 충돌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 그녀의 도망을 도운 연지석에서 유남준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는 노릇이니까.“응, 알겠어.”연지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전에 네가 부탁한 일, 성공했어. 임수호는 이제 이지원이 어떤 여자인지 확실히 알아. 그러니까 임수호를 시켜 유남준에게 진실을 알려도 되고 이지원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도 돼.”솔직히 임수호가 몇 번이나 이곳에서 도망쳐 이지원을 찾으러 가려 했을 때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실제로 도망에 성공을 해버렸으니 말이다.하지만 병원에 있는 이지원을 찾아갔을 때 임수호는 미친놈 취급을 당하며 쫓겨났다.마지막까지 그녀를 믿었던 결과가 이것이니 충격이 컸을 것이다.하여 이지원이 원하는 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똑같이 되돌려 주겠다는 게 임수호가 내린 결론이었다.박민정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또 다른 휴대폰의 알림이 울렸다.“잠시만.”연지석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확인하자 마침 그건 이지원이 보낸 문자였다.그녀가 보낸 사진을 보니 거기에는 아티스트 트로피를 들고 있는 이지원이 있었고 그 뒤에는 유남준도 서 있었다.‘오늘 볼일이 있다고 했던 게 이지원을 만나기 위한 일이었나 보네.’이지원은 사진을 보낸 후 메시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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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분만실 문이 열리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간호사가 두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합니다.”유남준은 아기를 보지 않고 바로 분만실로 들어갔는데 분만실에는 박민정이 기력이 없이 누워있었다.“민정아.”박민정은 힘겹게 웃었다. “괜찮아요.”유남준은 그런 그녀가 더욱 안쓰러웠다.“이제 그만 낳자.”“네, 좋아요.”박민정이 대답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아기들은요?”“밖에 있어, 건강해.” 유남준의 이 말에 박민정은 안심되면서도 궁금했다. “남자애예요, 여자애예요?”유남준이 멈칫했다.“잠깐만, 내가 보고 올게.”그는 박민정 생각에만 빠져서 아기를 보는 걸 잊고 말았다.밖으로 나오니 박윤우와 박예찬이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기들은요?”조하랑이 혀를 찼다. “이제 아기 생각나요? 신생아실로 갔어요.”“깜빡했네요.”유남준이 물었다.“남자애예요, 여자애예요?”“멋진 사내아이 둘이에요.”조하랑의 말에 유남준도 박예찬, 박윤우처럼 실망했다. 그는 박민정을 닮은 딸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유남준은 박민정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걸 잊지 않았고 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깊은 잠에 빠졌다.그녀가 쉬는 동안 조하랑과 진서연네는 아기들을 달래고 있었고 의사는 박윤우의 수술을 위한 검사로 바빴다.“너무 작고 귀여워.”진서연은 모성애가 한껏 피어올라 연신 귀엽다고 했으나 박예찬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동생이 하나라도 있었으면...”“남동생 둘도 좋아, 실망하지 마.”조하랑의 위로에 박예찬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랑 이모, 언제 아기 낳으실 거예요? 저랑 윤우한테 여동생 둘 낳아주세요.”“맞아요, 한 명씩이요.” 박윤우마저 한마디 하자 조하랑은 말문이 막혔다.“꿈도 꾸지 마. 내가 낳은 딸을 왜 너희한테 하나씩 줘? 게다가 성별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조하랑이 부글부글 말하고 있을 때 김인우도 다가왔다. “맞아, 우리 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9화

    정수미는 돌아간 뒤 박민정이 조산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윤소현이 계속 세뇌를 시도했다. “엄마, 박민정이 회사 일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인 것 같아요.”“지원이가 엄마 딸이잖아요. 박민정도 엄마 딸이라면 쌍둥이라도 낳으셨단 말이에요?”정수미는 귓가가 윙윙거렸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만약 박민정이 정말 딸이라면 그동안 자신이 박민정에게 했던 모든 일들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엄마, 왜 아무 말씀도 없으세요? 절대 믿으시면 안 돼요. 그럼 지원이는 어떻게 해요?” 이 말에 정수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좀 조용히 있어 줄래?”윤소현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고 몰래 이지원에게 박민정이 모든 걸 알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지원도 소름이 돋았다. [정수미가 믿었어요?][아직은요. 하지만 엄마 성격상 분명 조사할 거예요.]이 메시지에 이지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방금 소식 들었는데 박민정이 너무 흥분해서 지금 출산한대요. 소현 씨, 우리는 한 배를 탔어요. 도와주셔야 해요.]혼자서는 박민정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윤소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정씨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윤소현은 이지원을 찾아갔고 정수미는 모든 걸 지켜보며 사람을 시켜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게 했다.이지원은 방에서 계획을 세우다가 윤소현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윤소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적으로는 언니라고 부르지 마요. 무슨 일이겠어요, 박민정 일로 의논하려고 왔죠.”이지원은 윤소현이 악랄하면서도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자기를 찾아오다니, 정수미가 뭐라고 생각할까?“아...”이지원이 목소리를 낮춰 이해관계를 설명한 후에야 윤소현은 깨달았다. “내가 너무 급했네요.”“괜찮아요, 언니. 진실은 밝혀질 테니 일단 쉬세요.”이지원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지만 다른 방에서 대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8화

    박민정은 정수미가 검사 결과를 보고 기뻐할 줄 알았다. 이지원이 가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하지만 정수미가 제일 먼저 위조 얘기를 꺼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박민정은 목구멍이 바늘에 찔린 듯했다.“이건 진짜예요. 위조된 게 아니에요. 믿지 못 하시다면 직접 확인해보세요.” 윤소현이 비웃듯 말했다.“사기꾼 말 믿고 우리 엄마가 세상 모든 여자랑 친자 검사라도 해야 하나?”그녀는 정수미 손에서 검사서를 뺏어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엄마, 가요. 이런 사기꾼이랑 말할 가치도 없어요.”정수미는 일어서지 못한 채 박민정을 바라보았다. “내 친딸 얘기로 장난치지 말라고 했죠. 평생의 아픔이에요!”박민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절대 용서 못 해요. 다시는 연락하지 마요!” 정수미의 마지막 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박민정은 찢어진 검사서를 바라보았고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바보같아.”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식당을 나섰다. 밖에 나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가슴 한켠을 누르는 거대한 바위같은 무게감이 사라지지 않았다.전화벨이 울리자 박민정은 정수미가 마음을 돌려 자신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자신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아보니 유남준이 건 전화였다.“남준 씨.”“일어났어?”남자의 익숙한 목소리에 박민정은 눈물이 났다. “진작 일어났어요.”“그럼 전화하지 그랬어? 지금 갈게.” 유남준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말에 박민정은 휴대폰을 꼭 쥐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일하는데 방해될까 봐... 나 정수미 씨 만나고 왔어요.” 유남준은 걸으며 통화를 이어갔다.“그래서?”“그 사람이 내가 보여준 유전자 검사를 믿지 않았어요. 나더러 사기꾼이래요. 다시는 연락하지 말래요.”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어디야? 내가 갈게. 울지 마.” 유남준이 차에 타며 말했고 박민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병원 근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7화

    윤소현은 정수미가 박민정과 만난다는 걸 알자마자 전화를 걸었고 진짜 그렇다는 걸 확인하고는 순간 급해졌다.“엄마, 제가 같이 갈게요. 박민정이 엄마를 만나자고 한 건 분명 좋은 일이 아닐 거예요. 지난번에 칼을 들고 엄마를 협박했던 일을 잊으셨어요?”정수미는 그 말을 듣고 경계심이 들었다. “네가 말하니 기억나네. 걱정 마, 이번엔 경호원을 데리고 갈 거야. 그러면 못할 거야.”“엄마, 무서워요. 제가 꼭 같이 가야겠어요.” 윤소현은 이미 차에 탄 상태였다. “엄마, 주소 보내주세요. 엄마는 제 전부예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요.”정수미는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알았어.”주소를 보내고 나서 정수미는 윤소현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비서도 대화를 대충 들었다. “소현 아가씨가 냉철해도 대표님을 많이 생각하시네요.”정수미는 미소 지었다. “그 애는 내가 너무 잘해줘서 그래. 난 정말 걱정이야. 내가 먼저 가버리면 어떡하나...”“대표님, 분명 오래 사실 거예요.” 비서가 아부했다.정수미는 한숨을 쉬었다. “내 몸은 내가 알지. 젊을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육칠십까지만 살아도 만족해.”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박민정과 약속한 식당에 도착했다.윤소현이 오기 전에 정수미는 비서 겸 경호원과 함께 올라갔다.룸의 고급 방에서 박민정은 조용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긴장된 마음을 달랬다.마침내 발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리자 정장 차림의 정수미가 비서와 함께 들어왔다.“민정 씨, 무슨 얘기하실 건가요?”정수미는 들어오자마자 앉지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함미현 일 때문 아닌가요? 박민정 씨가 이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네요.”예전 같았으면 박민정은 바로 받아쳤을 테지만 지금은 정수미의 얼굴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정수미가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면 대가를 치르게 되죠.”박민정이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아무 반응 없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6화

    병실에서 퇴원할 생각 없이 늦게까지 떠나지 않는 진서연 일행. 남자인 유남준은 당연히 그들과 할 얘기가 없어 다른 방에서 계속 일했고 그들이 떠나자마자 그는 밖으로 나왔다. 박윤우는 이미 피곤함에 지쳐 잠들어 있었고 그걸 본 유남준이 박민정 곁으로 다가왔다. “피곤하지 않아? 좀 누워있을래?” 박민정은 매번 누울 때마다 그가 이것저것 장난치는 걸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졌다. “안 피곤해요, 좀 더 앉아있고 싶어요.”“출산이 얼마 안 남았는데 가서 좀 누워있자. 응?” 유남준이 다정하게 달랬고 결국 박민정은 그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함께 누웠다.불을 끄자 밖의 희미한 불빛만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함미현네는 괜찮아요?” 박민정이 물었다. 유남준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걱정 마, 내가 몰래 사람을 붙여뒀어.” “네...”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정수미는 왜 저렇게 잔인한 걸까요?” 박민정은 자신과 박예찬이 그녀 손에 죽을 뻔했던 걸 떠올렸다. 또 함미현네 일을 생각하니 그 사람이 무서워졌다. 함미현의 일은 자업자득이지만, 자신은? 그저 윤소현의 미움을 샀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친어머니라니!“여자가 그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어느 정도 수단은 필요하지.” 유남준이 대답했다. 박민정도 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고민이에요. 그분을 엄마로 받아들여야 할지...”“사실 진실을 말해도 좋을 것 같아. 그 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면 되고.” 유남준이 말했다. 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결심이 선 듯했다. “좋아요, 내일 가서 얘기해 볼게요.” 어차피 이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했다.“응.” 유남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박민정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남준 씨!” 유남준은 또 ‘응’하고 대답했는데 목소리가 쉰 듯했다.좋아하는 여자가 곁에 있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5화

    이지원도 함미현의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지만 윤소현이 이토록 잔인할 줄은 몰랐다.그녀가 알기로는 함미현에게 어린아이가 있지 않았던가.윤소현이 전화를 끊자 그녀는 부드럽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윤소현은 그녀를 보면서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것, 둘 다 박민정을 싫어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숨기지 않기로 했다.“함미현이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데, 만약 이 비밀이 정수미의 귀에 들어가면 우리 둘 다 큰일 날 거예요.”이지원이 의아해했다. “무슨 비밀인데요?”“내가 어떻게 지원 씨랑 정수미의 친자 감정 결과를 혈연관계가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었는지 알아요? 박민정이 바로 정수미의 친딸이기 때문이에요.” 윤소현이 한 글자 한 글자 말하며 이지원의 표정 변화를 주시했다.과연 이지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고 머릿속이 윙윙거렸다.“그럴 리가 없어요...”“왜 없겠어요? 박민정도 고아잖아요. 진주시 보육원에서 한수민이 입양했고 마침 태어난 날도 폭설이 내렸어요. 지원 씨랑 박민정의 나이도 딱 맞지 않아요?” 윤소현의 말에 이지원은 한참을 정신을 못 차렸다.왜? 그녀는 자신이 정씨 가문의 귀한 딸이 되어 이제는 박민정이 따라올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왜?왜 박민정이 정수미의 딸인 거지?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은 왜 그녀가 다 차지하는 걸까?이지원은 분하기만 했다. 꽉 쥔 주먹의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지원 씨, 괜찮아요?”윤소현은 그녀가 한참을 말이 없자 일부러 그녀를 불렀다.이지원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괜찮아요.”“함미현이 아마 박민정에게 진실을 이미 말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박민정이 왜 정씨 가문과 적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그 여자를 구해줬겠어요.” 이지원이 말했다. “소현 씨, 지금 사람을 보내 함미현 일행을 쫓는 건 너무 늦었을 것 같네요.”윤소현도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만약 아닐 수도 있잖아요? 박민정이 진실을 알았다면 지금쯤 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4화

    함미현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박민정은 이때 가정부에게 동하와 동하 아빠를 불러오라고 했다.두 사람은 곧 아동방에서 나왔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함미현을 보고 물었다.“미현아,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야?”“엄마, 많이 아파요?”함미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우리 먼저 떠나자. 민정 씨한테 더 폐를 끼치지 말자고.”“그래.”동하의 아빠는 아들을 안고 함미현과 함께 박민정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동하는 떠나면서도 잊지 않고 말했다. “아줌마, 감사해요. 윤우 형이 나으면 저랑 놀게 해주세요.”박민정은 그를 향해 미소 지었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일이라 아이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이쪽에서 박민정이 함미현 일가의 일을 잘 처리했을 때 정수미도 곧 소식을 받았고 함미현과 동하가 떠났다는 걸 알게 됐다.“누가 한 짓이지?”감히 그녀에게 맞서다니!부하가 말했다. “박민정과 유남준인 것 같습니다.”정수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또 박민정 그 여자야. 지난번 교훈을 잊은 모양이구나?”그녀가 말하는 중에 윤소현도 급히 왔다.“엄마, 들으셨어요? 박민정이 사람을 시켜 동하를 데려갔대요. 함미현도 병원에 없고요.”윤소현은 지금 누구보다도 초조하고 두려웠다. 박민정이 무언가를 알게 된 걸까? 그렇지 않다면 왜 함미현과 동하를 데려갔을까?이런 망할!그녀는 옆에서 정수미의 일을 전담하는 사람을 보며 꾸짖었다. “너희들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왜 쫓아가 데려오지 않은 거야?”“그게...”부하들이 정수미를 쳐다보았다.정수미도 윤소현이 이렇게 격앙될 줄은 몰랐다. “소현아, 그만두자. 그 집안을 놓아줘. 어차피 함미현 어머니도 돌아가셨으니 용서할 만한 건 용서하는 게 좋아.”“안 돼요.” 윤소현이 단번에 거절했다. “엄마, 함미현은 엄마의 친딸인 척했잖아요. 우리가 그 여자를 감옥에 보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텐데 어떻게 자비를 베풀어 용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3화

    박씨 집안에서.박민정은 어제 늦게 자서 아침에도 늦게 일어났다.밖에 나오자 정민기가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고 정민기 곁에는 동하라는 아이가 있었다.“동하야, 날 기억하니?” 박민정은 정민기가 동하를 데리고 나온 것을 보고 안심하며 인사했다.동하의 눈이 반짝였다. “아줌마, 윤우 엄마시죠.”역시 아이들끼리는 더 잘 기억하는 법이었다.“그래.”박민정이 동하 앞으로 와서 정민기에게 물었다. “어디서 데리고 나온 거예요?”“병원에서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동하 의료비와 입원비를 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요. 제가 미납금을 내고 데리고 나왔습니다.” 정민기가 말했다.박민정은 정씨 가문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아이어머니를 가두고 아이는 혼자 병원에 버려둔 채 전혀 신경 쓰지 않다니...“그럼 동하 아빠는요?”“정씨네 회사에서 해고당했어요. 지금은 일자리를 찾으면서 함미현 씨와 동하를 찾고 있죠.” 정민기가 답했다.동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박민정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줌마, 전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요. 저를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 소현 아줌마가 우리 엄마 아빠가 저를 버렸대요.”말하면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박민정은 서둘러 몸을 낮춰 그를 달랬다. “동하야, 아줌마가 지금 널 네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주려고 하는 거야.”“그분들이 어떻게 너를 버릴 수 있겠니?”그녀는 윤소현과 정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줄은 몰랐다!먼저 엄혜란을 죽이더니 이제 또 이런 짓을 하다니...“그런데 왜 엄마 아빠가 병원에 절 보러 안 오셨어요?” 동하의 눈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두 분이 일하느라 바빠서 그랬어. 이제 시간이 나셔서 아줌마보고 널 데리러 오라고 하신 거야.” 박민정이 부드럽게 설명하자 동하는 그제서야 조금 기뻐졌다.“윤우 형은요?”박윤우 얘기가 나오자 박민정은 슬퍼졌다. “윤우는 아파서 지금 병원에 있어.”“아, 윤우 형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2화

    “하지만 증조할아버지, 이 일은 반드시 비밀로 해주세요.” 박예찬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하랑 이모가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연기를 가르쳐 사람들을 속였다는 걸 알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사실 그도 어쩔 수 없었다.김훈이 어느 순간부터 조하랑을 마음에 들어 하더니 꼭 손자며느리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박예찬에게 이 어려운 임무를 맡겼다.박예찬은 할아버지가 이런 어려운 임무를 자신에게 맡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도움을 얻기 위해 온갖 부탁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는 거절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런 꾀를 내게 된 것이다.신혼 방에서 김인우와 조하랑은 나란히 누웠지만 감시당할까 봐 말도 못 꺼냈다.“자요.” 김인우가 어색하게 기침을 했다.“네.” 조하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지만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김인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일 아침 일찍 노인네가 방에 설치해 둔 도청 장치를 반드시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방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한편, 강씨 가문에서 강연우가 황예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온몸이 상처투성이인 황예지가 누워서 그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미안해.”강연우는 그녀의 사과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왜 나한테 사과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황예지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난 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어. 당신에게 짐이 되기 싫었거든. 내가 죽으면 당신은 자유로워질 수 있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고.”강연우는 그제서야 그녀가 왜 갑자기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알게 됐다. 바로 자신이 한 말 때문이었다.죽음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었다.“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야. 당신이 떠나버리면 내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겠어?”강연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입 맞췄다.“당신은 정말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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