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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그들은 부승호의 사인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부승호가 죽은 후 주식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에 관심이 있었다.BX그룹은 다른 상장 회사들과 달랐다. 가족 기업이어서 회장을 뽑는 것도 그저 형식상의 절차일 뿐, BX그룹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되곤 했다.가족 기억이란 가족이 갖고 있는 주식이 많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의 주식은 그저 30% 정도 된다. 나머지 70% 중 10%는 부광훈한테 있었고 10%는 부선월에게 있었으며 부승민과 부민재가 각각 5%씩 갖고 있었다. 부승호가 갖고 있는 40%의 주식이 누구한테 가는지가 중요했다. 곧 다음 회장을 선거하는 것과 같았다.회장이야말로 그룹의 일인자였다. 회사의 발전 방향과 주주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사람이다.그리고 대표를 바꾸고 회장이 돌아간 후로 그룹의 주가가 하락세를 겪고 있었다. 아무리 책임자가 나서서 대표가 바뀌는 것은 회사의 전략지책에 큰 영향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그래서 사람들은 회장을 정해서 주주들의 심란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주가 하락을 막았으면 했다.이번 주주총회에 부선월은 영상 통화로 참여하게 된다.영상 통화를 받은 부선월은 바로 부민재를 가리키며 아니꼽게 얘기했다.“일 처리를 참 기가 막히게 하네. 아주 대단해! 회사에서 공식 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대표가 바뀐 것도 몰랐을 거야.”부선월에게는 부민재, 부승민, 부현승, 세 명의 조카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선월이 그중에서도 부승민을 가장 아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승민이 제안하는 것이면 부선월은 두 손 들고 동의할 것이다. 부민재는 그저 담담하게 웃었다.“고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저 다 이사회에서 결정한 거죠.”10분 후, 김정숙과 부승호의 변호사가 회의실에 나타났다.가볍게 몇 마디 나누던 주주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변호사도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지금부터 부승호 회장님의 유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서에는 은행 저금, 건물과 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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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부광훈은 그제야 부승호가 회사를 위해 이렇게 한 것임을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다수 주식이 김정숙의 손에 있으니 앞으로 다시 한번 나눠야 할 것이다.부승민은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 주식을 더 갖는 것도 정상이었다.주주들은 잠깐 놀라더니 이내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부광훈은 자기 프랜차이즈 가게를 운영하느라 바쁘고 회사의 운영에 대해 잘 모르기에 주주들은 그를 회장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부선월도 해외에서 살면서 회사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항상 연구실에만 붙어있는 부현승에게는 주식이 없다.김정숙은 회사 경영을 잘 모른다.결국 회장 자리에 어울리는 건 부승민뿐이었다.다만 동생이 회장을 하고, 형이 대표를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고승범 이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그가 부승민을 파면시킨 것은 부승호가 오래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승호가 이리도 갑자기 사망할 줄은 몰랐다.그래도 고승범도 부승민이 회장을 맡아야 여러 주주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승범은 부민재를 힐끔 쳐다보았다.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부민재는 차가운 표정으로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부승호가 죽기 전에 이런 유서를 남겨 부승민을 회장 자리로 떠민 것은, 대표가 바뀐 것에 대한 불만이고 부민재에 대한 불만이다. 만약 회장이 일부러 그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만 똑같은 부승호의 손자로서, 부민재도 회사의 임원이었고 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실수를 한 적도 없는데, 왜 부승호는 부승민만 예뻐하는 것일까?아니면 부민재가 부승호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행동은 한 것인가? 부승민이 마침 별장에 돌아왔을 때, 연민우가 주주총회의 결과를 부승민한테 전달했다.온하랑은 이미 밥을 먹고 있었다. 부승민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2층 발코니에 선 부승민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부승민은 이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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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보고 싶지, 당연히. 삼촌은 지금 집에 있어.”부승민은 핸드폰을 돌려 주변을 보여주었다.“흥, 안 믿어요! 이제는 아내가 있으면서, 내가 보고 싶을 리가 없잖아요!”그렇게 말하면서 부시아가 부승민의 뒤를 훑어보았다.“삼촌, 숙모는요?”부승민은 그대로 굳어버린 채, 얘기했다.“아파서 병원에 있어.”부시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네? 주사 맞으면 아픈데... 시아는 주사가 제일 무서운데... 숙모는 언제 돌아와요?”“며칠 있다가.”“삼촌, 숙모가 주사 다 맞으면 꼭 케이크 사줘야 해요. 케이크 먹으면 안 아프거든요.”부승민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어. 삼촌이 꼭 숙모한테 케이크를 사줄게.”부선월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시아한테 얘기했다.“시아야, 가서 숙제하자.”로스앤제리너스의 시간은 한국 시간보다 17시간 정도 느렸다. 강남이 점심 12시가 거의 되고 있으니 로스엔제리너스는 전날 저녁일 것이다. 부시아는 저녁을 먹자마자 부승민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그 말을 들은 부시아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얘기했다.“삼촌이랑 얘기하고 싶은데...”부선월은 부시아가 숙제를 하기 싫어서 이런다는 것을 알았다.“숙제 안 하면 케이크는 없어.”부시아의 얼굴에 머뭇거림이 드러났다. 삼촌과 케이크 중, 부시아는 결국 케이크를 선택했다. 부시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부승민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삼촌, 난 숙제하러 갈 거예요. 바이바이. 쪽!”“그래, 공부하러 가. 나중에 시간 있으면 보러 갈게.”어느새 부선월만 남았다.그녀는 부승민의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요즘 제대로 쉬지 못한 거야? 얼굴이 초췌해 보이는데.”“네.”부승민은 담담하게 대답하면서 담배를 피웠다.“너 언제부터 담배를 피운 거야?”부선월이 깜짝 놀랐다.“최근에요.”“주주총회 결과는 알아? 할아버지는 여전히 널 사랑하셔.”부승민은 시선을 내리깔고 말했다.“알아요.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미안하죠.”“미안할 게 뭐가 있어? 할아버지도 죽기 전에 알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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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뒷좌석에서는 두 사람이 내렸는데 한 명은 고승범 이사였고 다른 한 명은 기성윤 이사였다.부승민은 두 사람을 내쫓지 않고 서재로 들여 차를 내어주었다.간단히 대화를 나누다가 고승범이 먼저 주주총회 얘기를 꺼냈다.부승민은 표정 변화 없이 그 얘기를 들으며 우아한 동작으로 두 이사한테 차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BX그룹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완곡하게 밝혔다.이유는 두 가지였다.하나는 할아버지의 사망과 아내의 유산이 그한테 큰 충격이었기에 잠시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러니 회사의 일을 맡을 여유가 없었다.둘째는 이사회와 이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민재가 지금 대표직을 맡고 있으니, 부승민은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승범과 기성윤은 서로 마주 보다가 차를 마시고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하지만 회장 자리가 공석인 날이 늘어갈수록 주주들은 심란해할 것이다.이후 기성윤 이사가 두 번 더 왔지만 결국 같은 결말이었다.온하랑은 병원에 5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다섯 번째 날, 김시연이 병원으로 찾아왔다.김시연은 온하랑한테 위로의 말을 건넸다.“아이가 없다고 해서 모든 희망을 버리지 마요. 아이는 그저 우리 인생의 일부분이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하지만 우리의 생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이에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닌, 본인을 위해서 사는 거니까요. 행복하게 살아야 죽어서도 편히 눈 감을 수 있어요.”김시연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가르쳐왔다.김시연은 자기가 꽤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개방적인 부모를 만난 것에 감사해했다.하지만 김시연은 그녀와 온하랑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성격도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온하랑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녀가 가족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래서 김시연은 온하랑이 자기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러고 보니 부승민 씨와 언제 이혼할지 결정했어요?”온하랑이 대답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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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온하랑이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그럼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봐요. 이혼하면 일단 같이 여행이라도 하면서 기분 전환해요.”“같이요?”“네.”김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했다.“같이요. 나랑 하랑 씨랑. 주현 씨도 시간 되는지 물어볼게요.”온하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 후에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대답했다.“네.”“그럼 돌아가서 계획 짜고 있을게요. 겨울에 어디로 여행 가면 좋을지 한 번 보자고요.”...여섯 번째 날, 온하랑은 집으로 돌아와 몸이 회복될 때까지 쉬었다. 아주머니는 온하랑을 극진히 챙겨주었다.부승민은 여전히 별장에서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주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장 가깝게 지내던 부부가 지금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부승민은 온하랑 앞에 나타나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온하랑은 침실 발코니에 앉아 햇볕을 쬐는 것을 즐겼다. 가끔 하루 종일 햇볕을 쬐기도 했다.겨울의 태양은 따갑지 않고 따스해서 아주 편했다.저녁에 돌아온 부승민은 온하랑이 발코니에 앉아 먼 곳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아이가 사라진 후, 온하랑은 말을 아끼게 되었다.이튿날 아침, 온하랑은 동물의 울음소리에 깨어났다. 그 울음소리는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도 모를 울음소리였다.침대에서 일어난 온하랑이 문을 열자 금색과 흰색 털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고픔에 울고 있었다.마음이 약해진 온하랑은 고양이를 데리고 먹을 것을 찾으려고 했지만 고양이는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어쩔 수 없이 걸어가 새끼 고양이를 안고 가려는데 마침 주방에서 나오는 도우미가 보였다.“아주머니, 고양이 사료는 어디 있어요?”온하랑은 부승민이 고양이를 데리고 온 걸 바로 알아차렸다. 준비성이 철저한 부승민이니 사료도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사모님, 왜 일어나셨어요?”“전 괜찮아요. 고양이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요.”“어머? 어디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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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늦은 밤.침실의 문이 약간 열렸다.술 냄새가 약간 나는 부승민은 조용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야옹.”온하랑의 작은 룸메이트가 그를 발견하고 소리를 내었다.“쉿.”부승민은 준비한 참치 캔을 온하랑 룸메이트 옆에 놓아주었다.그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부승민은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침대 옆으로 왔다.달빛 아래 온하랑은 깊은 잠에 들어 편하게 자고 있었다.부승민은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침대 곁에 앉은 그는 깃털로 온하랑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레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오직 이 시간에야 온하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차갑고 증오스러운 눈길을 피할 수 있다.부승민은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웠다.사업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부승민도, 항상 자신 있고 여유로운 부승민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다.예전의 그는 이런 말을 들으면 신경 쓰지도 않고 웃어넘길 것이다.하지만 자기 마음을 깨달은 그 순간, 그제야 깨달았다. 온하랑을 향한 미련의 끈이 그의 온몸을 묶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두 사람은 담담하게 2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또한 이 침대에서 서로 뒹굴기도 했다. 도우미의 눈에는 잉꼬부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모두 예전의 그가 너무 자만했던 것이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영운사에서 돌아오면, 온하랑은 더 이상 부승민의 아내가 아니다.두 사람은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니다.이혼하면 그녀는 아마 이주혁과 함께할 것이다.그 생각에 부승민은 이주혁을 향한 질투심이 활활 타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부승민의 시선은 온하랑의 붉은 입술에 머물렀다. 눈빛이 어두워진 그는 그대로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부드럽고 따스하고 달콤했다. 예전의 추억에 빠진 그는 하마터면 헤어 나오지 못할 뻔했다.이 키스도 이젠 마지막이다.부승민은 눈을 감고 마지막 일탈을 했다.얼마 지나 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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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온하랑은 유골함을 꼭 안고 차에서 내렸다.부승민이 미리 얘기를 해두었기에 승려 한 명이 나와 그들을 데리고 뒤에 있는 절로 데리고 갔다. 고개를 든 온하랑은 절에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전생당]들어가자 한쪽 벽에 선반이 있었고 그 위에는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전생당은 유골함의 위치에도 규칙이 있었다.보통 시민의 유골은 1층에 안치되고 도를 닦는 승려들의 유골은 2층, 그리고 낙태된 아기의 유골은 3층에 안치된다. 다른 곳에는 또 덕을 쌓은 스님들의 유골을 안치하는 곳도 있었다.승려의 인도하에 온하랑은 직접 유골함을 선반에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그리고 승려는 그들을 데리고 서쪽에 있는 전생절에 갔다.전생전으로 가는 길에는 높은 계단이 수두룩했다.계단은 모두 81개였는데 모두 81개의 고난을 뜻한다. 그래서 그 고난을 모두 이겨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절에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었다.온하랑은 승려를 따라 벽을 넘어갔다. 그러자 벽 뒤에 있는 노란색 패쪽들이 보였다.승려는 온하랑에게 설명했다.“이 패쪽은 우리 불교인에게 있어서는 극락으로 가는 통행증입니다. 노란 패쪽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패쪽을 세워주어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죠. 아이의 영혼을 위해 패쪽을 세워 오랜 기간 덕을 쌓게 하면 빠르게 극락으로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문제도 풀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럼 아이를 위해 패쪽을 하나 세울까?”의문형이지만 부승민의 말투에서는 단호함이 엿보였다.“응.”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패쪽에는 패쪽 주인의 이름이 있어야 하니 두 분께서 이름을 지어주세요.”승려가 얘기했다.그러자 부승민과 온하랑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부승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네가 지어.”온하랑은 절에서 향 냄새를 맡으며 얘기했다.“원녕이라고 하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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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절에서 나오자 차가운 바람에 하얀 눈송이가 섞여 불어왔다.눈이 내리고 있었다.온하랑은 하늘을 쳐다보았다.부승민은 온하랑을 보면서 물었다.“지금 돌아갈래?”온하랑은 날씨를 봤다. 눈은 점점 더 크게 내릴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고속도로로 돌아가는 건 위험하다.“여기서 하룻밤 묵고 내일 눈이 그치면 가자.”“그래.”부승민은 자기 코트를 온하랑 어깨에 걸쳐주었다. 온하랑이 거절하려고 하는데 부승민이 얘기했다.“몸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조심해야지.”“고마워.”“고마워할 필요 없어.”원래는 아내라서 고마워할 필요 없다고 얘기하려고 했다.다만 그 말은 꺼낼 수 없었다.결혼한 3년 동안, 그는 온하랑을 여보나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았다.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을 것이다.부승민은 이 눈이 영원히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그렇다면 두 사람은 영원히 여기에 머무를 수 있고 그녀에게 아픈 기억만 남겼던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혼하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부승민의 바램일 뿐이었다.눈은 저녁에 멈추었다.이튿날, 그들은 강남으로 돌아갔다.고속도로에서 내릴 때, 온하랑이 얘기했다.“돌아가서 필요한 서류 챙겨서 동사무소로 가자.”온하랑은 시계를 확인하면서 얘기했다.“아직 한 시간 있으니까 시간이 될 거야.”그녀의 마음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을 들으니 부승민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무거운 바위가 그의 심장을 꾹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다.부승민의 심정은 마치 밖의 날씨처럼 차갑고 처량했다.그는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았다. 목에는 마치 모래가 가득 찬 것처럼 꽉 막히고 아팠다.“그래.”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차에 다시 탔다.부승민은 천천히 운전해서 동사무소로 갔다.차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창밖의 풍경을 쳐다보다 보니 3년간의 추억이 파노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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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날 기다리려고?”부승민은 원래 온하랑을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시간과 동사무소로 가는 시간이 비슷하기에 잘못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을 들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응. 어차피 난 아무 일도 없으니까.”“그래.”부승민의 목울대가 약간 움직였다. 온하랑이 굳게 마음을 먹고 이혼하려는 것을 본 부승민은 마음이 씁쓸해졌다.분명 이혼하자고 얘기한 건 부승민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후회되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을 BX그룹 맞은 편의 카페에 데려다주고 얘기했다.“곧 점심인데 나랑 회사 휴게실로 가서 잠깐 쉴래?”온하랑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난 이미 사직했는데 또 회사에 나타나면 좋을 게 없어.”그 말을 들은 부승민의 눈이 어두워졌다. 곧 눈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두 사람의 관계를 이미 공개했지만, 온하랑은 부승민과 함께 회사에서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한다.부승민은 예전이 그리웠다.예전처럼 아침에 같이 조깅하고 같이 아침을 먹고 같이 회사에 와서 출근하는 것 말이다.“알겠어.”부승민은 온하랑에게 커피와 디저트를 사주고 온하랑을 보더니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떠났다.온하랑은 카페의 구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반 시간쯤 지났을까. 배달 기사가 음식을 들고 카페 앞에 나타나 물었다.“누가 온하랑이에요? 남편이 시킨 배달이에요.”카페 안의 고객들이 입구에 선 배달 기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카페 안을 둘러보며 온하랑이라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온하랑은 얼른 나가서 배달을 가졌다.“저예요. 감사합니다.”배달 기사는 온하랑을 쳐다보았다. 전화로 들은 사람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것을 확인한 그는 음식을 온하랑에게 전해주었다.“식사 잘하세요.”온하랑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음식 포장을 뜯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함께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일이 많았기에 부승민은 그녀의 입맛에 대해 잘 알았다. 이번에 사 온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볶음 요리였다.고객들은 온하랑이 자리로 돌아가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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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온하랑은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저 부승민이 술에 취해 잠꼬대한다고 생각했다.손목을 잡은 그의 손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부승민은 더욱 세게 온하랑의 손목을 잡았다.온하랑은 손을 뻗어 부승민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부승민이 또 가볍게 속삭였다.“하랑아, 사랑해.”온하랑은 온몸이 그대로 굳어 하려던 동작도 멈춘 채 서 있었다. 환청인 줄 알고 천천히 부승민에게로 몸을 숙여 물었다.“뭐라고?”“사랑해, 하랑아. 제발 날 떠나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널 더 사랑하고 아낄게. 제발 날 떠나지 마...”부승민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았다.차갑게 조소하는 온하랑의 시선이 두려워 이런 방법으로 온하랑에게 비는 것이었다.온하랑은 그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어쩌면 부승민이 잠결에 사람을 착각했을지도 모른다.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해도, 그가 이혼하기 싫다고 해도, 지금 이 행동은 그저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 처참한 대가를 치렀으니, 온하랑은 더 이상 부승민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온하랑은 계속해서 부승민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냈다.온하랑이 떠나려고 하자 부승민은 속으로 실망하고 절망했다.그의 고백을 듣고도 온하랑은 아무 반응이 없다.결국은 붙잡지 못할 인연인 것이다.감정이 파도처럼 치고 올라왔다.아니, 그는 아직 온하랑을 놓을 수가 없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목을 잡은 채 힘을 줘서 끌어당겼다. 놀란 온하랑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의 몸 위로 넘어졌다.부승민이 몸을 돌려 온하랑을 자기 아래에 깔고 정확히 입술을 향해 키스를 퍼부었다.부드럽고 달콤한 그 입술에 부승민은 점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읏...”두 사람 사이에 독한 술 냄새가 퍼졌다. 온하랑은 숨을 꾹 참고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한 채 열심히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부승민의 입술을 피하기도 했다.“부승민... 이거 놔...”부승민의 가슴은 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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