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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의사는 부승민이 왜 의심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맞습니다. 출산하셨던 여성분들은 다 이렇습니다. 온하랑 씨는 임산부 중에서도 양호한 편이에요. 전혀 티가 안 나잖아요. 첫째가 벌써 세, 네 살쯤 되었죠?”연민우는 숨을 참고 감히 찍소리도 못 내고 고개를 들어 부승민의 반응을 살폈다.부승민의 안색은 더없이 어두워졌다. 눈빛이 한층 어두워진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오진 아닌 건 확실하죠?”“오진이요?”의사는 어리둥절했다.부승민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전 아직 아이가 없거든요.”의사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부승민에게 아이가 없다고? 설마... 그럼 온하랑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사기 결혼을 했단 말인가?이럴 수가. 한 사람은 바람피우고 다른 한 사람은 사기 결혼이라니.누가 가족이 아니랄까 봐, 끼리끼리 만나는구나.부승민의 날카로운 눈빛에 흠칫한 의사는 다급히 설명했다.“오진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잘못 봤을 리가 없어요. 환자분 진료 기록에 다른 의사 선생님의 서명도 있었거든요. 못 믿으시겠으면 온하랑 씨에게 직접 물어보세요!”그러나 부승민의 안색은 여전히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의사는 또 무언가가 떠오른 듯 덧붙였다.“얼마 전 두 분 결혼 3주년 기념일이었죠? 온하랑 씨의 회복 상태로 보아 출산은 3, 4년 전에 하신 것 같았어요...”의사의 말은 온하랑이 출산한 건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부승민이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는 뜻이었다.“알겠습니다. 이제 나가주세요.”부승민의 표정은 그나마 평온했다.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는 그 자신만 알 수 있다.“네, 알겠습니다.”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부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민우에게 말했다.“진료 기록에 서명했다던 의사 불러와.”“네.”연민우는 대답하자마자 바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가 문을 열려고 할 때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한테도 알리지 말고.”“알겠습니다.”이 일이 사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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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승민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들로 마구 뒤엉켰다.이마의 핏줄이 튀어나오고 꽉 악문 이에서 끄드득 소리가 났다. 애써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했다.부승민과 온하랑의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했다. 그런데 온하랑이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니?!그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온하랑의 첫 번째 남자인 걸까?온하랑이 혼자 아이를 낳게 한 것도 모자라 그녀를 책임지지도 않았다.그 사람이 누군지 안다면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것이다.전에 온하랑은 이주혁과 함께 해외로 나가려고 했었다. 설마 이주혁이 그 남자인 걸까?해외에서 둘이 살림을 차린 건가? 온하랑이 대학교 3학년일 때부터 둘이 만났었다니.마음 한구석에서 커다란 불길이 치미는 것 같았다. 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부승민의 이성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연민우는 마치 기둥처럼 병실 밖의 벽에 꼭 붙어 서서 병실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병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연민우는 부승민이 지금 너무 속상하여 혼자 조용히 추억을 돌이키며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모든 슬픔을 삭이는 중일 거라 생각했다.쾅.갑자기 병실에서 들려온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에 연민우는 몸을 흠칫 떨었다.이윽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이어졌다.자세히 들어보니 테이블이 바닥에 쿵, 넘어지는 소리, 소파가 이동하면서 나는 마찰 소리,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바닥에 무언가가 쾅, 떨어지는 소리였다...놀라서 어깨가 움츠러든 연민우는 미리 나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부승민이 분노에 차서 테이블을 걷어차는 모습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지나간 후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먼저 돌아가.”부승민의 목소리는 그나마 차분했지만 피곤함과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연민우는 휴대폰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이미 밤 11시가 되었다.지금 상황을 보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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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알았어.”부승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어둡지만 평온했고 블랙홀처럼 깊었다.밤새 잠을 자지 않아 눈꺼풀은 푹 꺼지고 미간은 잔뜩 구겨져 온몸이 날카롭고 사나운 기운으로 뒤덮였다.그는 일어서서 바닥에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가로질러 옆 병실로 걸어갔다.연민우는 부승민을 따라가 물 한 컵을 부어 그의 앞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물었다.“대표님, 제가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부승민이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손 놓고 있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연민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꼬고 앉은 부승민은 소파에 나른하게 등을 기댔다.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누르자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드러났다.그는 천천히 컵을 들어 물 한 모금 마시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 시켜서 와이프가 대학교 3학년 때 유학을 가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봐.”병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밤을 지새운 부승민은 마침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일의 잘못된 점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첫 번째, 그는 전부터 이런 의문을 가졌다. 온하랑은 분명 처음 임신한 사람처럼 임신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만약 온하랑이 정말 아이를 낳았다면 어느 정도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두 번째, 온하랑이 정말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온하랑은 이제 그 남자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 남자와 연락하고 있을까?결혼 3년 동안 온하랑은 한 번도 유학을 갔던 도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부승민은 분명히 알고 있다.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부승민은 그 아이가 이주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당시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온하랑이 아이에 대한 관심과 이주혁에 대한 마음을 미루어 볼 때, 온하랑은 이주혁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았다면 무조건 이주혁과 미래를 함께 하려고 했을 것이다.설상가상으로 이주혁이 그녀를 버린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자기 아이를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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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건물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우뚝 치솟은 탑은 선이 뚜렷하고 스타일이 심플하면서도 웅장했다. 아치형 창문, 병렬된 기둥, 양쪽에 서 있는 두 개의 인물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주현은 쇼핑백을 건네받고 온하랑을 가리키며 말했다.“하랑 씨가 사진 찍어줘요!”주현은 프로페셔널한 사진사였지만 온하랑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며 기분을 끌어올리게 하고 싶었다.“하랑 씨, 저 사진 좀 찍어줘요!”온하랑이 거절하려는 찰나 김시연은 얼른 자기 휴대폰을 온하랑의 손에 밀어 넣었다.온하랑은 어쩔 수 없이 대충 각도를 바꿔가며 김시연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휴대폰을 받은 김시연은 놀라며 말했다.“와! 하랑 씨, 실력 좋네요. 이렇게 예쁘게 찍어주다니!”주현은 다가가서 사진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랑 씨 실력이 좋은데요. 다음에는 하랑 씨가 우리 전속 사진사가 되어 줘요!”“네?”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렸다.김시연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하랑 씨가 우리 전속 사진사가 되는 거예요. 거절하지 말아요. 하랑 씨, 여행 와서 사진도 안 찍을 거면 대신 우리라도 찍어줘요.”“알았어요.”온하랑은 동의했다.그녀도 확실히 잡생각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저녁 식사 장소는 김시연이 여러 후기를 읽고 선택한 샤부샤부 전문점인 한식당이었다.김시연의 말에 따르면 오늘은 반드시 샤부샤부를 먹어야 하는 날이었다.“이렇게 추운 날씨에 따뜻한 샤부샤부를 먹는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에요!”가게에 있는 대부분 손님은 동양인이었고 웨이터도 몇 마디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세 사람은 각각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소스를 가지러 갔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온하랑과 부딪혔다.온하랑이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약간 붉어진 한 젊은 남성이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그녀의 옷을 보고는 영어로 사과했다.“Sorry. I’m so sorry. I didn’t mean it.”(미안해요. 정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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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김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글쎄요. 일단 먼저 카톡부터 추가할까요?”온하랑을 흘끗 쳐다본 젊은 남자는 그녀가 카카오톡을 추가할 생각이 없는 것을 알고는 김시연을 먼저 추가하기로 했다.“그럼 전 먼저 자리로 돌아가 볼게요.”그는 다시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누나, 얼룩이 지워지지 않으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알았어요.”김시연은 온하랑을 대신해 대답했다.젊은 남자가 떠나자 김시연은 온하랑에게 말했다.“아이고, 하랑 씨.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지 마세요.”온하랑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제가 그랬어요?”“안 그랬어요?”김시연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저 사람은 성의를 잔뜩 보여줬는데 하랑 씨는 끝까지 무표정이었잖아요. 그게 쌀쌀맞은 게 아니면 뭐예요?”온하랑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요.”온하랑은 자신의 이런 문제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도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고객을 제외하고는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오는 사람을 굳이 막지는 않았지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 지금처럼 불필요한 사교 활동도 피할 수 있으면 되도록 피하려고 했다.김시연, 주현과 가까워진 것도 두 사람과 일할 때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반면에 부승민은 온하랑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다가갔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김시연이 말했다.“필요하고 불필요한 게 어디 있어요. 그냥 여행 친구로 생각하고 같이 즐기는 거죠.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 되잖아요.”김시연의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그럼 우리도 합류할까요?”온하랑이 물었다.“일정을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요. 보통 국내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은 바로 트로토와로 가요. 여기서 오래 머물면 비용이 더 많이 들거든요. 게다가 저 사람들은 대학생이라 오베니아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거예요.”김시연은 장난기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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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온하랑은 여전히 그녀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거라 생각했다.“제가 얘기했잖아요. 그냥 저한테 드라이클리닝 비용을 주려는 거라고요.”김시연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민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제 친구 카톡은 추가해서 뭐 하려고요?]휴대폰 화면 상단에 입력 중... 이 나타나고 한참 후에야 민지훈에게서 문자가 왔다.[제가 누나 옷을 더럽혔으니, 클리닝 비용을 드리는 게 당연하죠.]문자를 본 온하랑은 손사래를 쳤다.“거봐요, 제가 말했잖...”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지훈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그리고 그 누나 정말 예쁘거든요.]김시연은 씨익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온하랑 씨, 아직도 할 말이 남았습니까?”온하랑은 시선을 피하고 무심코 민지훈의 일행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다가 우연히 민지훈과 눈이 마주쳤다.이내 시선을 돌렸지만 매우 난처했다. 온하랑은 지금 당장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연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온하랑은 사랑이 고픈 사람이기에, 자신을 포용해 주고 아버지처럼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성숙하고 듬직한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지금 대학생들은 대부분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어린아이가 천천히 성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볼 흥미는 없었다.오베니아에서 삼 일간 머무르고 온하랑 세 사람은 트로토와로 향했다.같은 시각 부승민은 병원에서 퇴원하여 더윈파크힐 별장으로 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송이가 발밑에서 그를 맞이했다.부승민은 걸음을 멈추고 송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아이를 잃은 온하랑이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집에서 몸조리하던 때가 떠올랐다. 만약 그때 송이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상태는 더 악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그토록 소중히 여겼는데, 만약 그녀가 정말로 전에 아이를 낳은 적이 있다면 어떻게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송이는 그다지 경계심이 없었고 낑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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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한참 동안 반지를 보던 부승민은 눈빛이 흐릿해졌다. 그는 반지를 다시 상자 안에 넣어 뚜껑을 닫고 위층으로 가져갔다....저녁 8시, 클럽 룸 안.불빛이 희미하고 아주 시끄러웠다. 강민은 룸 문을 열고 들어와 한효건과 다른 몇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구석진 소파로 걸어갔다. 그는 부승민의 곁에 앉아 무심코 물었다.“왜 여기 앉아 있어?”“조용히 있고 싶어서.”부승민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혼했어?”강민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응.”그를 흘긋 쳐다본 강민은 담배를 건넸다. 부승민은 강민이 건넨 담배에 불을 붙여 피웠다.“하랑 씨는 지금 어디 있어?”강민의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친구들이랑 노르빈으로 여행 갔어.”부승민의 태연한 모습에 강민은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았다.“그냥 이렇게 놓아 버릴 거야? 만약 나라면 좋아하는 여자를 그렇게 쉽게 보내지 않았을 거야!”부승민은 아무 말 없이 검지로 담배 재를 털고 다시 입에 가져갔다.어떻게 이렇게 쉽게 놓을 수 있을까?정말 이렇게 쉽게 놓아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육광태를 시켜 온하랑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그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쯤 노르빈에 있었을 것이다.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강민은 부승민이 말이 없자 그가 진짜로 놓으려는 줄 알았다.“이건 너답지 않아.”“시간이 필요할 뿐이야.”부승민은 눈을 감고 소파에 등을 기대어 입술을 살짝 벌렸다. 담배 연기가 입술 사이로 빠져나와 원을 그리며 위로 떠올랐다가 흩어졌다.그 일은 마치 그의 심장을 깊숙이 파고드는 가시가 되어, 똑바로 알아내지 못한다면 시시때때로 그의 심장을 찌르며 온하랑이 다른 남자와 아이를 낳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하지만 부승민은 온하랑을 사랑하게 된 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들이닥쳐 손쓸 겨를이 없었다.내려놓는다고? 그는 할 수 없다.부승민은 온하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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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사정을 모르는 일부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특히 갖은 수를 써서 부승민에 대한 소식을 알아내 처음으로 이곳에 나타나 그와 돈독한 관계를 다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노준형은 부승민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부승민은 한참 침묵하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럼 당신이 보기엔 내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데요?”그 사람은 부승민이 자기 말에 대꾸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기분이 들뜬 그 사람은 무심코 한마디를 내뱉었다.“당연히 추서윤 씨 같은 분이죠!”부승민은 아무런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물었다.“당신들도 같은 생각인가요?”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잇따라 고개를 끄덕였다.어두운 그림자 속에 앉아 있는 부승민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술잔을 흔들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아직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남자가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아마 대표님과 추서윤 씨의 경사스러운 날도 곧 다가올 테지요?”쾅!갑자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승민은 앞에 있는 테이블을 걷어차 넘어뜨렸다. 위에 놓인 술이 와르르 깨지며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부승민은 어두운 표정으로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아무 말도 없이 술잔을 집어던지고 큰 보폭으로 자리를 떠났다.남자는 깜짝 놀라 멍하니 부승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이 닫힐 때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 남자의 주위에 있던 몇 사람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침묵을 지켰다. 룸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얼떨떨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반대편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몇 명의 사람들도 무슨 일인지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카드를 손에서 내려놓고 만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계속하세요.”이때 강민의 목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깼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부승민을 쫓아갔다.다른 룸 안에서.“화내지 마.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굳이 상대할 필요 없어.”술잔을 들고 잔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던 부승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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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부승민은 최근 밤마다 그를 뒤척이게 했던 일을 떠올리며 또다시 술을 연거푸 들이마셨다.아무리 말려봤자 소용이 없었고, 강민은 그저 부승민이 술을 퍼마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부승민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자 강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밖으로 나가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온하랑은 오베니아 공항 대기실에서 트로토와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온하랑은 강민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을 보고 김시연과 주현을 슬쩍 쳐다보고는 일어나 창가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강민 씨? 무슨 일이에요?”“승민이가 지금 술을 마시고 있어요.”그 이름을 들은 온하랑은 심장 박동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무슨 뜻이에요?”그가 술을 마시는 게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금방 퇴원하고 아직도 약을 먹고 있어서 술 마시면 안 되는데, 제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아서요.”“지금 저더러 설득하라는 건가요? 강민 씨도 설득하지 못하는데 전 더더욱 불가능할 거예요. 게다가 애초에 제 말은 듣지도 않을 거고요.”“우선, 효과가 있든 없든 적어도 시도라도 해보세요. 어쨌든 하랑 씨를 구하려다 다친건데, 상처가 재발해 치료도 못하고 죽게 내버려둘 건 아니잖아요.”치료 못하고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온하랑은 미간을 찡그리고 잠시 망설였다.“알았어요. 그럼 전화 바꿔주세요.”룸으로 돌아온 강민은 부승민이 술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만 마셔!”부승민이 눈살을 잔뜩 구기고 쳐다보자, 강민이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네 전화야.”‘벨소리를 못 들은 것 같은데?’이미 눈이 살짝 풀려있던 부승민은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건네받았다.“여보세요?”그는 조금 불안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부승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술을 마셨다는 걸 알아챈 온하랑은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오빠?”익숙한 목소리에 부승민은 몸을 움찔하더니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 그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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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전화를 끊은 온하랑은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김시연은 기분이 다소 가라앉아있는 온하랑을 보고 무심히 물었다.“누구 전화에요?”“친구요.”온하랑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쳇, 하랑 씨 친구를 제가 모를까 봐요. 그 친구가 설마 부승민은 아니겠죠?”자기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눈치 챈 김시연이 투덜거렸다.“아직도 전화해서 뭐 한대요? 설마 하랑 씨한테 질척거리는 건 아니죠? 하랑 씨,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당연하죠.”온하랑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방금 전화한 사람은 승민 씨 친구예요. 지금 승민 씨가 술 마신다고 저더러 설득해 달라고 했어요. 어쨌든 절 구하려다 다친 건데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주현이 말했다.“전 하랑 씨가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 믿어요. 그렇지만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에요.”두 시간 뒤, 온하랑 일행은 트로토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와 그들은 공항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버스 창밖을 내다보니 도로 양쪽이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었다.김시연이 예약한 호텔은 오로라클리오였다.“제가 공략을 좀 찾아봤었는데 이 호텔은 부둣가 바로 옆에 있대요. 전망도 좋고, 제일 위층에 야외 온수 풀도 있고요.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거예요.”김시연이 들떠서 말했다.노르빈의 겨울에 최상층의 야외 온수 풀에서 몸을 담그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호텔에 체크인한 세 사람은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호텔 레스토랑은 부두 바로 맞은편에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온하랑이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와 김시연의 맞은편에 앉아 먹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누나?”고개를 들어 올린 온하랑은 민지훈이 놀란 표정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싱긋 웃었다.김시연은 온하랑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바라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오, 또 만나네요. 여기 머무시나 봐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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