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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제안의 모든 챕터: 챕터 281 - 챕터 290

1272 챕터

제281화

두어 번 쳐다보던 온하랑은 마지못해 입을 벌리고 삼겹살을 먹었다. 고소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요리사의 솜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맛이었다. 온하랑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슬픔에 잠겨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배 속의 아기를 위해 한입 두입 먹다 보니 아주머니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절반이나 먹었다.분명 조금 전 배불리 먹었는데도 부승민이 짚어주는 음식을 저도 모르게 계속 받아먹고 있었다. 임신 초기 입덧할 때가 지나니 요즘 들어 식욕이 부쩍 늘어났다.부승민은 온하랑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두 점 더 집어 주었다.세 점을 먹은 온하랑은 부승민이 더 집어주려고 하자 다급히 말했다.“나 진짜 배불러. 오빠가 먹어.”“진짜 안 먹을래?”“응, 안 먹어.”젓가락을 내려놓은 부승민은 휠체어에서 온하랑을 안아 소파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그럼 좀 자.”온하랑은 할 수 없이 몸을 가누며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이틀 동안 눈도 못 붙였잖아. 오빠도 좀 자.”자신을 걱정해 주는 온하랑의 말에, 부승민은 눈을 반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도시락을 다 먹은 부승민은 쓰레기를 버리고 온하랑의 옆에 가서 누웠다.온하랑은 살며시 한쪽 눈을 뜨고 부승민을 흘긋 쳐다봤다. 그는 소파 가장자리에 조금만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은 자세로 간신히 누워 있었다.“잘 곳이 많고도 많은데, 왜 하필 여기서 자는 거야?”그러자 부승민은 손을 뻗어 온하랑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그만 말하고 빨리 자.”쪽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부승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삼일장 제일 마지막 날이 되어 할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하고 발인식이 치러졌다.검은색 승용차 여러 대가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도심을 가로질러 교외에 있는 부씨 가문의 선산으로 향했다.온하랑은 따라가지 않았다. 묘원은 산 위에 있어 그녀는 산을 오를 수 없었고, 산길이라 휠체어도 밀고 가기 힘들었다.차에 오르기 전, 부승민은 운전기사더러 온하랑을 집에 데려다주라고 말했다.온하랑은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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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사모님, 이제 돌아가요.”아주머니가 담요와 도시락통을 들고나왔을 때는 오미연이 이미 떠난 뒤였다.온하랑의 비통한 표정을 본 오미연은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자기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흡족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온하랑은 주먹을 꽉 그러쥐고 아무 말도 없이 제자리에 앉아있었다.온하랑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불렀다.“사모님?”정신을 차린 온하랑은 깊은숨을 내쉬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네, 돌아가요.”아주머니는 온하랑의 표정을 보며 왠지 조금 전이랑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아주머니는 온하랑을 부축하여 계단을 올라가려고 했지만, 온하랑은 거절하고 소파에 앉아서 말했다.“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아주머니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하러 갔다.오후 3시쯤이 되어서 검은색 승용차가 별장 정원으로 들어왔다. 시동을 끈 부승민은 등받이에 기대어 스틸 시계를 찬 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차 키를 뽑고 차에서 내렸다.긴 다리를 뻗으며 안정된 자세로 거실로 걸어 들어온 부승민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몸에 담요를 덮고 동공이 풀린 채 한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온하랑을 보았다.부승민은 차 키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온하랑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왜 여기 누워 있어? 방에 데려다줄까?”온하랑은 그제야 그의 존재를 눈치챈 듯 시선을 집중하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돌아온 거야? 서두를 거 없어. 나 오빠한테 물어볼 것도 있고.”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뭘?”“할아버지 대체 어쩌다 돌아가신 거야?”온하랑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지막이 물어오자 부승민은 흠칫하는가 싶더니 두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말했잖아. 병세가 워낙 위중해 시일이 얼마 안 남으셨다고...”“왜 아직도 거짓말해!”이 한마디에 눈을 치켜뜨고 온하랑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부승민은 갑자기 가슴이 선득해졌다.예전에 다툴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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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눈을 감은 그녀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마구 닦더니 부승민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서 추서윤을 만나야겠어.”“진정해. 넌 지금 안정이 우선이야!”온하랑은 들은 체 만 체 몸을 곧게 세우고 앉았다.“가서 추서윤을 만나 똑똑히 물어봐야 해! 할아버지 복수를 해야 한단 말이야!”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부승민을 보며 온하랑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네가 안 된다고 하면 그냥 나 혼자 만나러 가면 돼!”“하랑아!”부승민은 두세 걸음에 온하랑 앞으로 와서 팔을 뻗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추서윤은 지금 병원에 없어. 얼마 전에 병원에서 나갔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나도 몰라. 이미 사람을 시켜 찾으라고 했으니까 넌 일단 올라가서 쉬어. 추서윤을 찾으면 알려줄게!”온하랑은 어이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삼키며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추서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아직도 그 여자를 감싸는 거야? 왜, 내가 찾아가서 죽이기라도 할까 봐?”온하랑은 부승민의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계속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온하랑을부승민이 번쩍 안아 들었다.“제발 진정해!”온하랑은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세상이 핑 도는 것 같았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저 추서윤을 찾아가 따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던 그녀는 두서없는 말을 내뱉었다.“난 지금 아주 냉정해! 너야, 부승민. 네가 추서윤한테 홀린 거야! 넌 그 여자가 그렇게 좋아? 할아버지 목숨도 마다할 만큼? 이유를 대고 싶으면 그럴싸한 이유를 대던가. 네가 추서윤을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부승민은 온하랑의 두 손을 제압하고 아무 말도 없이 바로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부승민에게 저항 한번 못해보고 꼼짝없이 위층으로 옮겨진 온하랑은 화가 나 엉엉 울며 피가 날 정도로 그의 목을 꽉 깨물었다. “날 내려놓으란 말이야! 부승민, 넌 양심도 없어! 할아버지가 널 그렇게 아끼셨는데 넌 아직도 할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나 감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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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문밖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점점 날카롭게 밀려오는 복부의 통증으로 인해 온하랑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쏟아져 내렸다. 덜덜 떨리는 몸과 함께 목소리마저 떨려오고 손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부승민, 제발 문 열어! 나 배가 너무 아파... 살려줘, 아이를 살려줘...”그녀는 휴대폰으로 구조요청을 하려고 했지만, 그제야 휴대폰을 아래층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빨리 문 열어... 제발 살려줘...”바닥에 쓰러진 온하랑은 몸을 웅크린 채 배를 꼭 감쌌다. 몸이 뻣뻣하게 경직된 그녀는 이를 악물고 복부에 밀려드는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바로 그때, 마치 무형의 손길이 그녀의 아랫배를 집어 밑으로 사정없이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문 열어...”목이 잠기며 목소리는 점점 미약해지더니, 무기력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온하랑의 눈가에 서서히 절망이 드리웠다. 그녀는 다리 사이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부승민, 문 열어...”온하랑은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그녀의 아이... 끝내는 이 아이를 지킬 수 없었다......“하랑아, 이제 좀 진정됐어?”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제야 부승민은 방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방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혹시 잠든 건가?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온 부승민은 눈에 비친 처참한 광경에 온몸이 차디찬 얼음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온하랑은 의식을 잃은 채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에 의해 바지는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바닥에 흥건한 빨간 핏자국이 눈을 찔렀다.부승민은 동공이 수축되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더니 2초가 지나서야 반응한 부승민은 온하랑을 번쩍 안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하랑아, 하랑아?”신속히 계단을 내려온 그는 애타게 온하랑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하랑아, 괜찮을 거야. 당장 병원에 가자! 조금만 참아!”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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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온하랑의 말이 틀렸다. 절대 그녀의 탓이 아니다. 할아버지를 죽인 건 다름 아닌 그였다.지나간 일들을 돌이켜 보던 부승민은 지난날 자신이 한 짓을 용서할 수 없었다.처음부터 그의 잘못이었다. 그는 온하랑에 대한 감정을 잘못 판단하고, 추서윤에 대한 죄책감을 호감으로 착각해 온하랑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그리하여 온하랑은 임신한 사실을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혼자 얼떨떨한 심정으로, 임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임신 기간 동안 받아야 할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만약 그가 온하랑이 금방 임신했을 때부터 세심하게 보살폈더라면 이 아이는 지금 온하랑의 배 속에서 건강하게 자랐을 것이고, 이미 태동이 있었을 것이다...만약 그가 추서윤을 데리고 귀국하지 않았더라면 온하랑은 그와 이혼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할아버지도 몇 번이고 그 때문에 속을 태우지 않았을 것이고, 추서윤을 만나러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겉으로는 온하랑을 위해 하신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를 위해서였다. 그가 온하랑과 이혼하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걸 할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다.자신이야말로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이다.결국 또 이렇게 할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겨드렸다.할아버지가 그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지켜주신 결혼생활은 끝끝내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수술실 문이 열리자 부승민은 담배를 비벼 끄고 곧바로 달려갔다.비상계단 입구에는 담배꽁초와 담뱃재가 널브러져 있었다.수술실에서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은 지난번에 봤던 의사였다. 이 의사도 그 후에야 부승민과 온하랑의 정체를 알았다.부승민이 바람을 피운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태아를 지키기 위해선 온하랑이 앞으로 침대에 누워지내며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약을 제때 먹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달이 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부승민은 온하랑보다는 내연녀에게 정신이 팔린 게 확실해 보였다. 그때 해명하러 나온 건 온하랑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의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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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부승민은 못 듣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말했다.“아주머니더러 음식을 해오라고 할게.”“꺼지라고. 내 말 못 알아들어?”온하랑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싸늘했다.“하긴, 그게 아니면 날 방에 가두지도 않았겠지.”자리에 얼어붙은 부승민은 한참을 침묵했다.“그래, 나갈게. 아주머니가 오면 뭐 좀 먹어.”그는 두 눈이 빨개진 채 천천히 병실에서 걸어 나와 문 앞 의자에 앉았다.삐걱,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온하랑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부승민을 마주할 때 그녀는 시트를 그러쥐고 자신을 억제하며 가까스로 이성을 다잡을 수 있었다.부승민을 좋아한 것도, 부승민과 결혼한 것도 이렇게까지 후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곁에 남아있는 가족이 없었던 온하랑은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나면 혼자 남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부승민과 이혼하더라도 이 아이만은 꼭 낳으려고 했다.이 아이는 그녀의 소중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 소원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고, 그녀의 아이는 끝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그녀는 이제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그녀는 결국에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될 것이다.만약 애초에 부승민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점심이 다가오자, 아주머니가 삼계탕과 밥을 가지고 왔다. 온하랑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아주머니는 한숨을 토해냈다.“사모님, 점심 드세요.”“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아주머니는 흠칫 놀라더니 문밖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랑 씨, 조금이라도 드세요.”“지금은 입맛이 없으니 저기 두세요.”온하랑은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아주머니는 더 말하고 싶었으나 온하랑이 한마디를 덧붙이는 바람에 말을 삼켰다.“저 혼자 있고 싶어요. 그만 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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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그녀가 이주혁을 좋아하니 이주혁이 오면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 일순 정적이 흐르더니 이내 이주혁의 질책이 쏟아졌다.“부승민 씨, 다 당신 때문이에요! 대체 왜 하랑이를 놓아주지 않는 거예요!”이윽고 이주혁이 물었다.“어느 병원이에요? 병실은요?”부승민이 주소를 말했다.“바로 갈게요.”말을 마친 이주혁은 전화를 끊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반 시간 뒤 이주혁이 병실 앞으로 달려왔다. 부승민의 초췌한 모습을 본 이주혁은 그 이유가 온하랑 때문이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 부승호 회장님이 돌아가신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부승민을 향해 콧방귀를 끼고 병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병실로 들어온 사람이 이번에도 부승민일 거라 생각한 온하랑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앞으로 다가간 이주혁은 침대에 걸터앉아 나지막이 말했다.“하랑아, 나야.”목소리를 들은 온하랑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뜨고 이주혁을 바라보았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널 보러 왔지.”이주혁은 테이블에 놓인 아침 식사를 보며 물었다.“아침은 먹었어? 내가 먹여줄까?”“지금 입맛이 없어.”온하랑은 고개를 저었다.“하랑아, 네가 아이를 잃어 괴롭고 받아들이기 힘든 거 알아. 하지만 내 입장에서, 너를 걱정하는 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아이가 없어서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해. 내가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상처받지 마. 하지만 생각해 봐. 만약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넌 영원히 부승민한테서 벗어나지 못해. 너 부 회장님의 은혜 때문에 부승민과 결혼한 거잖아? 이제 부 회장님도 안 계시고 아이도 없으니까 부승민이랑 이혼하고 네 삶을 되찾을 수 있어. 부승민은 그저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재벌 집 도련님일 뿐이야. 이런 사람한테 네 에너지를 낭비할 가치가 없어.”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라보는 온하랑의 고요한 눈동자에는 아무런 생기도 담겨있지 않았다.맞다, 그녀는 부승민과 이혼해야 한다.하지만 이혼 후에는?그녀는 마치 삶의 원동력을 잃어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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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그런데 이때, 갑자기 죽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온하랑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쓰레기통에 대고 구역질을 했다.깜짝 놀란 부승민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와 얼른 온하랑의 옆으로 가서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금방 먹은 얼마 안 되는 죽을 모두 토해낸 온하랑은 화장실에 가서 양치하려고 했지만, 부승민이 곧바로 그녀를 안아 다시 침대에 올려놨다.“움직이지 마.”말을 마친 부승민은 이내 따뜻한 물 한 컵을 따라 협탁에 올려두고 쓰레기통을 들고 왔다.온하랑은 그를 쳐다보지 않고 컵을 들어 물로 입을 가시고 쓰레기통에 뱉었다. 그리고 다시 죽그릇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부승민은 입을 꾹 다물고 멀찍이 서서 온하랑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하지만 온하랑은 몇 입 먹고는 다시 그릇을 내려놓고 침대 옆에 엎드려 토했다. 신물이 다 나오고 눈에서는 생리적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다급히 다가온 부승민은 미간을 찡그리고 온하랑의 등을 두드리며 그릇을 멀리 치워버렸다.“일단 먹지 마. 내가 가서 의사를 불러올게.”성큼성큼 걸어 나간 부승민은 곧 의사를 데리고 돌아왔다.의사는 온하랑에게 신체적 느낌에 대해 묻고 청진기를 사용하여 온하랑의 위장부위에 대고 귀를 기울였다.이윽고 청진기를 귀에서 빼낸 의사는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부승민은 의사를 따라 병실 밖으로 나왔다.“의사 선생님, 왜 저러죠? 왜 먹기만 하면 토하나요?” “환자분의 설명과 제가 진찰한 바에 따르면 위장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아마도 심리적인 요인 때문일 거라 의심됩니다만. 많은 여성이 유산하거나 출산 후 경증이든 중증이든 심리 장애를 겪습니다. 사람마다 가정 상황이 다르고 이유도 다양하다 보니 정신과 의사를 찾아 상담받는 걸 추천합니다.”이 말을 들은 부승민은 잠시 멈칫하더니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그녀는 억지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별말씀을요.”의사는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부승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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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네... 알겠습니다.”정신과 의사가 떠나는 걸 지켜보던 부승민은 한참을 제자리에 서있었다. 멀리 앞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바로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퍼뜩 정신을 차린 부승민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연민우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연민우는 BX 그룹의 직원이었지만, 이제 부승민의 개인 비서나 다를 바 없었다.부승민이 BX 그룹에서 퇴임한 후 그도 퇴사하고 부승민의 옆에 남아 다른 투자와 사업 처리를 도왔다.“왜, 무슨 일이야?”부승민은 다소 조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연민우는 바로 알아듣고 되도록 짧게 말했다.“대표님, 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유언장을 남기셨어요. 이제 장례도 치르셨고 변호사가 유언장을 발표할 거예요. 그룹에서 주주총회를 소집하려고 하는데 큰 사모님께서 대표님더러 회사로 와달라고 하셨어요!”큰 사모님은 바로 김정숙을 말하는데, 부승민을 회사로 부른 목적은 매우 뚜렷했다.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손에 있던 주식을 자손들에게 나눠줘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가 됐든 당연히 부승민의 몫도 있었다.그리고 부영훈이 가지고 있던 주식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할아버지가 부승민과 부민재에게 나눠줬다.부승민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그룹의 주주이기에 마땅히 주총에 참석해야 한다. 그러나 참석할 여유가 없었다.“나 바빠서 못 가니까 임 비서가 아무 이유나 찾아서 말해. 할머니께 내가 병원에 있단 말은 하지 말고.”온하랑이 유산한 일을 부승민은 아직 김정숙에게 말하지 않았다.이제 막 남편을 잃은 아픔을 겪은 김정숙이 견디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저...”연민우가 다른 말을 하려 하자 부승민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걱정 마세요, 대표님. 영운사에 이미 연락했습니다. 아무때나 가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확고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부승민은 문을 밀고 병실로 들어가 침대에서 1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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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기억해.”부승민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온하랑이 처음 내연녀로 소문났을 때, 부승민은 해명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눈을 다친 온하랑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온하랑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었다.“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온하랑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슬퍼했다.“난 그때, 우리는 언젠가는 헤어질 거고, 내 임신 사실도 감추지 못할 거니까 오빠가 양육권을 포기하길 바랐어. 난 이 아이를 낳을 거야! 그래서 이혼하고 싶을 때도 그 소원권을 쓰지 않았는데... 그런데...”온하랑은 울면서 마지막 말을 꺼내지 못했다.이 소원권은 이제 더는 쓸 수 없다.온하랑의 말은 마치 비수처럼 부승민의 가슴 깊숙한 곳을 찔렀다. 몇 번이고 그에게 기회를 줬었지만, 그는 여태까지 뭘 했는가.온하랑은 이미 그때부터 그녀와 아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하지만 부승민은 추서윤의 사업을 도와주느라 온하랑의 억울함도 몰라주었다,부승민이 말하기 전에 온하랑이 또 얘기했다.“내가 내연녀라고 욕먹을 때, 추서윤 팬이 뭐라고 한 줄 알아? 영원히 애를 못 낳을 거라고 저주했어. 이제 그 저주가 현실이 됐네... 하하하... 그래, 내 탓이야. 오빠를 탐내지 말았어야 해. 추서윤이 데었던 날, 나랑 헤어지는 걸 결심하고서도 추서윤을 만나러 갔잖아. 나는 강도까지 만나서 아이를 잃을 뻔했어. 그게 하늘의 경고였어. 그때 오빠를 포기했어야 하는데 내가 괜히 고집을 부려서 저주에 걸린 거야!”온하랑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웃었다.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그런 온하랑을 보는 부승민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르는 기분이었다.그때 부승민이 심한 말을 내뱉고 떠난 후, 강도까지 만났다니. 하지만 온하랑은 이런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어떻게 아무 도움도 없이 이 모든 것을 견뎌왔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온하랑이 겪은 모든 건 다 부승민 탓이었다.만약 그가 오미연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그와 추서윤의 과거를 밝혔다면 온하랑은 내연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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