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97화

작가: 고운
온하랑은 유골함을 꼭 안고 차에서 내렸다.

부승민이 미리 얘기를 해두었기에 승려 한 명이 나와 그들을 데리고 뒤에 있는 절로 데리고 갔다. 고개를 든 온하랑은 절에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

[전생당]

들어가자 한쪽 벽에 선반이 있었고 그 위에는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

전생당은 유골함의 위치에도 규칙이 있었다.

보통 시민의 유골은 1층에 안치되고 도를 닦는 승려들의 유골은 2층, 그리고 낙태된 아기의 유골은 3층에 안치된다. 다른 곳에는 또 덕을 쌓은 스님들의 유골을 안치하는 곳도 있었다.

승려의 인도하에 온하랑은 직접 유골함을 선반에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

그리고 승려는 그들을 데리고 서쪽에 있는 전생절에 갔다.

전생전으로 가는 길에는 높은 계단이 수두룩했다.

계단은 모두 81개였는데 모두 81개의 고난을 뜻한다. 그래서 그 고난을 모두 이겨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했다.

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절에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었다.

온하랑은 승려를 따라 벽을 넘어갔다. 그러자 벽 뒤에 있는 노란색 패쪽들이 보였다.

승려는 온하랑에게 설명했다.

“이 패쪽은 우리 불교인에게 있어서는 극락으로 가는 통행증입니다. 노란 패쪽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패쪽을 세워주어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죠. 아이의 영혼을 위해 패쪽을 세워 오랜 기간 덕을 쌓게 하면 빠르게 극락으로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문제도 풀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아이를 위해 패쪽을 하나 세울까?”

의문형이지만 부승민의 말투에서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응.”

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쪽에는 패쪽 주인의 이름이 있어야 하니 두 분께서 이름을 지어주세요.”

승려가 얘기했다.

그러자 부승민과 온하랑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부승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지어.”

온하랑은 절에서 향 냄새를 맡으며 얘기했다.

“원녕이라고 하자.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298화

    절에서 나오자 차가운 바람에 하얀 눈송이가 섞여 불어왔다.눈이 내리고 있었다.온하랑은 하늘을 쳐다보았다.부승민은 온하랑을 보면서 물었다.“지금 돌아갈래?”온하랑은 날씨를 봤다. 눈은 점점 더 크게 내릴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고속도로로 돌아가는 건 위험하다.“여기서 하룻밤 묵고 내일 눈이 그치면 가자.”“그래.”부승민은 자기 코트를 온하랑 어깨에 걸쳐주었다. 온하랑이 거절하려고 하는데 부승민이 얘기했다.“몸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조심해야지.”“고마워.”“고마워할 필요 없어.”원래는 아내라서 고마워할 필요 없다고 얘기하려고 했다.다만 그 말은 꺼낼 수 없었다.결혼한 3년 동안, 그는 온하랑을 여보나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았다.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을 것이다.부승민은 이 눈이 영원히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그렇다면 두 사람은 영원히 여기에 머무를 수 있고 그녀에게 아픈 기억만 남겼던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혼하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부승민의 바램일 뿐이었다.눈은 저녁에 멈추었다.이튿날, 그들은 강남으로 돌아갔다.고속도로에서 내릴 때, 온하랑이 얘기했다.“돌아가서 필요한 서류 챙겨서 동사무소로 가자.”온하랑은 시계를 확인하면서 얘기했다.“아직 한 시간 있으니까 시간이 될 거야.”그녀의 마음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을 들으니 부승민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무거운 바위가 그의 심장을 꾹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다.부승민의 심정은 마치 밖의 날씨처럼 차갑고 처량했다.그는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았다. 목에는 마치 모래가 가득 찬 것처럼 꽉 막히고 아팠다.“그래.”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차에 다시 탔다.부승민은 천천히 운전해서 동사무소로 갔다.차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창밖의 풍경을 쳐다보다 보니 3년간의 추억이 파노라

  • 위태로운 제안   제299화

    “날 기다리려고?”부승민은 원래 온하랑을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시간과 동사무소로 가는 시간이 비슷하기에 잘못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을 들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응. 어차피 난 아무 일도 없으니까.”“그래.”부승민의 목울대가 약간 움직였다. 온하랑이 굳게 마음을 먹고 이혼하려는 것을 본 부승민은 마음이 씁쓸해졌다.분명 이혼하자고 얘기한 건 부승민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후회되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을 BX그룹 맞은 편의 카페에 데려다주고 얘기했다.“곧 점심인데 나랑 회사 휴게실로 가서 잠깐 쉴래?”온하랑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난 이미 사직했는데 또 회사에 나타나면 좋을 게 없어.”그 말을 들은 부승민의 눈이 어두워졌다. 곧 눈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두 사람의 관계를 이미 공개했지만, 온하랑은 부승민과 함께 회사에서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한다.부승민은 예전이 그리웠다.예전처럼 아침에 같이 조깅하고 같이 아침을 먹고 같이 회사에 와서 출근하는 것 말이다.“알겠어.”부승민은 온하랑에게 커피와 디저트를 사주고 온하랑을 보더니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떠났다.온하랑은 카페의 구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반 시간쯤 지났을까. 배달 기사가 음식을 들고 카페 앞에 나타나 물었다.“누가 온하랑이에요? 남편이 시킨 배달이에요.”카페 안의 고객들이 입구에 선 배달 기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카페 안을 둘러보며 온하랑이라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온하랑은 얼른 나가서 배달을 가졌다.“저예요. 감사합니다.”배달 기사는 온하랑을 쳐다보았다. 전화로 들은 사람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것을 확인한 그는 음식을 온하랑에게 전해주었다.“식사 잘하세요.”온하랑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음식 포장을 뜯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함께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일이 많았기에 부승민은 그녀의 입맛에 대해 잘 알았다. 이번에 사 온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볶음 요리였다.고객들은 온하랑이 자리로 돌아가자

  • 위태로운 제안   제300화

    온하랑은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저 부승민이 술에 취해 잠꼬대한다고 생각했다.손목을 잡은 그의 손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부승민은 더욱 세게 온하랑의 손목을 잡았다.온하랑은 손을 뻗어 부승민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부승민이 또 가볍게 속삭였다.“하랑아, 사랑해.”온하랑은 온몸이 그대로 굳어 하려던 동작도 멈춘 채 서 있었다. 환청인 줄 알고 천천히 부승민에게로 몸을 숙여 물었다.“뭐라고?”“사랑해, 하랑아. 제발 날 떠나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널 더 사랑하고 아낄게. 제발 날 떠나지 마...”부승민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았다.차갑게 조소하는 온하랑의 시선이 두려워 이런 방법으로 온하랑에게 비는 것이었다.온하랑은 그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어쩌면 부승민이 잠결에 사람을 착각했을지도 모른다.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해도, 그가 이혼하기 싫다고 해도, 지금 이 행동은 그저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 처참한 대가를 치렀으니, 온하랑은 더 이상 부승민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온하랑은 계속해서 부승민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냈다.온하랑이 떠나려고 하자 부승민은 속으로 실망하고 절망했다.그의 고백을 듣고도 온하랑은 아무 반응이 없다.결국은 붙잡지 못할 인연인 것이다.감정이 파도처럼 치고 올라왔다.아니, 그는 아직 온하랑을 놓을 수가 없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목을 잡은 채 힘을 줘서 끌어당겼다. 놀란 온하랑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의 몸 위로 넘어졌다.부승민이 몸을 돌려 온하랑을 자기 아래에 깔고 정확히 입술을 향해 키스를 퍼부었다.부드럽고 달콤한 그 입술에 부승민은 점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읏...”두 사람 사이에 독한 술 냄새가 퍼졌다. 온하랑은 숨을 꾹 참고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한 채 열심히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부승민의 입술을 피하기도 했다.“부승민... 이거 놔...”부승민의 가슴은 마

  • 위태로운 제안   제301화

    예전 부승민은 일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담배를 피우기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담배꽁초를 비벼 끈 부승민은 찬 바람을 맞으며 몸에 밴 담배 냄새를 다 날려 보내고서야 방에서 나왔다.온하랑은 이미 아래층에서 부승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곧 내려올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두 사람은 일순간 마주쳤던 시선을 재빨리 피했다.부승민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고, 온하랑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다. 굳이 서로 말하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었다.“가자.”“그래.”온하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승민의 뒤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부승민은 이번에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거나 하지 않았다. 가는 길 내내 막힘이 없었고, 차가 이내 가정법원 주차장에 도착해 멈춰 섰다. 그들이 이곳으로 온 건 이번이 두 번째다.차에서 내린 후 각자의 서류를 챙긴 부승민과 온하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괴이한 침묵이 흘렀다.안으로 걸어 들어갈 때 부승민은 갑자기 온하랑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손을 빼내기 전에 얼른 한마디를 보탰다.“마지막으로 한 번만.”지난 3년 동안, 부승민은 당장이라도 멀리 떠나가 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온하랑의 마음을 되돌릴 기회가 무수히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끝내는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그녀는 이미 그에게서 마음이 떠난 지 오래였다.온하랑의 손을 꼭 감싸쥔 부승민의 커다란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온하랑은 지난번 가정법원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부승민은 그때도 지금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또 뭔가 달라 보였다.창구 앞으로 간 부승민과 온하랑은 서류를 들이밀었다. 이름을 흘긋 본 직원은 고개를 들어 그들과 말하려다가 문득 무언가 알아챈 듯 다시 고개를 숙여 서류에 적힌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재차 확인한 직원은 고개를 들어 부승민과 온하

  • 위태로운 제안   제302화

    부승민은 손에 들린 이혼 확인서 등본을 어찌나 힘껏 구겨 쥐었는지 뼈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한순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직원은 혼인관계증명서에 무효 처리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이건 다시 가져가실 건가요? 아니면 바로 폐기할까요?”“주세요!”서류를 건네받은 부승민은 나머지 하나를 온하랑의 손에 쥐여주었다.온하랑은 적잖이 당혹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혼 확인서와 함께 가방에 집어넣었다.“가자.”“그래.”돌아가는 차 안에서 온하랑은 창문을 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얼굴에 날카롭게 부딪혔다.온하랑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쪽 백미러를 통해 자기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후련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거울 따름이다.미세한 욱신거림과 쓰라림이 천천히 그녀의 가슴 한구석을 옥죄어왔다.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가슴 전체가 답답하고 불편했다.온하랑은 자신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부승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며 버텼다.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열여섯 살 때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키우던 반려동물을 갑자기 떠나보내도 커다란 아쉽움이 남을 텐데, 그게 사람이라면?그것도 온하랑이 10년을 좋아한 사람이다. 차갑고 어두웠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햇살 같은 사람이자, 그녀가 애타게 쫓으려 했던 빛이다.부승민은 이미 온하랑의 삶에 녹아들어 습관처럼 굳어버렸다.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그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끝내 그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이미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온하랑은 이제는 그냥 다 내려놓고 싶었다.온하랑은 칼로 찌르는 듯한 마음의 고통을 억누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제 안녕, 열여섯 살의 하랑아.오늘 이후부터 그녀는 과거와 작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부승민.”온하랑이 돌연 그의 이름을 불렀다.“왜?

  • 위태로운 제안   제303화

    부승민은 키가 너무 커서 병원 침대는 그가 눕기엔 작아 보였다.의식을 잃기 직전에 발생한 일을 떠올린 온하랑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어쩔 바를 모르며 부승민의 침대 옆에 뛰어가 그의 손을 꼭 그러잡았다.“오빠? 괜찮은 거지? 빨리 일어나서 뭐라고 말 좀 해봐!”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다. 부승민도 아버지처럼 교통사고 이후 혼수상태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그녀는 그때의 사고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도 트럭이 그녀가 앉아있는 조수석을 향해 오른쪽에서 돌진했다.아버지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자신의 생사를 마다하고 그녀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죽는 사람은 오히려 그녀였다. 바로 그때처럼 부승민도 위험을 무릅쓰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설마 부승민도 이렇게 그녀를 떠나가려는 걸까?온하랑이 아무리 불러도 침대에 누워있는 부승민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온하랑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음속의 공포가 점점 커졌다.“부승민, 죽지 마!”온하랑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부승민을 내려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기를 잃고 침대에 누워있는 부승민을 보는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손길이 그녀의 심장을 옥죄이며 천천히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부승민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온하랑은 절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그녀는 화근덩어리다.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여러 가지 불행을 가져다준다.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녀다.“울지 마. 나 괜찮아.”부승민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하랑이 고개를 들어보니 부승민은 어느새 눈을 뜨고 있었다.머리에 하얀 붕대를 감고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는 살짝 헝클어지고 잘생긴 얼굴은 약간 창백해져 오히려 유연한 아름다움이 비쳤다.온하랑은 저도 모르는 새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왜 그래? 좋아서 못

  • 위태로운 제안   제304화

    “괜한 생각하지 마. 오빠가 날 실리려다가 다쳐서 마음이 편치 않을 뿐이야.”온하랑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그녀는 부승민 때문에 아픈 마음을 단순한 불안감으로 관념을 바꿔버렸다. 낯선 사람이 그녀를 구하려다가 다쳤을지라도 감동받고 걱정하긴 매한가지니까.그러나 마음이 아프다는 건 다른 의미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이 한 남자를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건 그 남자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부승민의 눈은 다시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왜 널 살리려고 했는지 안 물어보는 거야?”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그는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자기 안위조차 내팽개치고 의도적으로 핸들을 돌렸다. 오로지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본능보다 이성이 앞섰다.“이유가 어찌 됐든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야. 고마워, 오빠.”온하랑은 진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부승민이 목숨을 걸고 구해줬으니 온하랑도 목숨으로 보답할 것이다.혹시나 언젠가 부승민한테 위험이 닥친다면 온하랑도 그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믿을 수는 없었다. 다시 마음을 내줄 리는 더욱 만무했다.온하랑의 감사 인사는 부승민이 듣기에 그저 가혹할 따름이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그저 입으로만 고맙다고?” “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너...”엉겹결에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왔지만 부승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퇴원할 때까지 병원에서 돌봐주면 안 돼?” 그 한순간 부승민이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너 나를 떠나가지 않으면 안 돼? 우리 다시 시작하자’ 라는 말이었다.온하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위급한 상황을 틈타 이런 말을 하면 안 됐다고 생각한 부승민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온하랑이 동의하자 부승민의 마음에 기쁨이 차올랐다.이윽고 온하랑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날 구하려다가 다쳤으니 내가 돌

  • 위태로운 제안   제305화

    부승민은 한참 뒤에야 두 사람이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서로의 행방에 대해 알려줄 의무가 없었고, 생활에 간섭할 이유도 없었다.온하랑은 앞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며 자기만의 일을 할 것이다.아마도 부승민은 어쩌다 가끔 본가에서만 온하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온하랑이 일부러 그를 피한다면 일 년 동안 못 보는 것도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부승민은 가슴이 저렸다. 그는 정말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뭐 먹고 싶어? 내가 내려가서 사 올게.”온하랑의 목소리에 부승민은 생각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그냥 아무거나 사. 난 별로 입맛이 없어.”“그래. 그럼 내가 알아서 살게.”온하랑은 휴대폰을 들고 병실을 나섰다.이십 분쯤 지나자 그녀는 밖에서 음식을 사 들고 돌아왔다. 손에는 만두, 빵, 계란, 두유, 소고기 야채죽을 들고 있었다.온하랑은 음식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것저것 사 왔어. 뭘 먹을래?”“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먹기 싫어도 먹어야지. 가뜩이나 다치기까지 했는데, 잘 먹어야 몸도 빨리 회복할 거 아니야. 게다가 원래 위도 안 좋잖아...”절반 말하다가 온하랑은 갑자기 멈추고 침묵했다.그들은 이미 이혼한 사이다. 어떤 말은 그녀가 하기에는 주제넘은 감이있었다. 부승민도 침묵했다. 지난 3년 동안 온하랑은 항상 부승민을 관심하며 하루 세끼를 잘 챙겨 먹으라 당부했다. 그가 업무에 몰두하거나 회의하느라 식사 시간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온하랑은 직접 찾아가 그를 감독하곤 했다. 그렇게 그들은 점차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밥 먹는 습관을 들였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는 다시는 그녀의 관심과 당부를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함께 마주 앉아 밥 먹을 그 흔한 기회조차 드물었다.온하랑은 모든 음식을 절반씩 덜어 침대 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여기다 올려 둘게. 먹고 싶을 때 알아서 먹어.”온하랑이 돌아서서 병실을 나가려고 하자 부승민은 온하랑이

최신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276화

    어두운 조명과 검은색 자동차가 어우러져 최동철의 실루엣이 희미해졌고, 거기에 부승민이 거의 다 왔다고 메시지를 보낸 터라, 온하랑은 무심코 그가 부승민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하필 이때 최동철이 올 줄은 말이다.“너 내 차가 온 걸 보고서도 그 사람한테서 안 떨어지고 오히려 머리를 돌려서 못 본 척하더라.”그는 최동철이 일부러 그와 비슷한 차를 몰고, 비슷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에 온 걸 보면 내일 출장을 핑계로 별장에 묵으려는 게 뻔했다.“...!”온하랑은 난감해서 울상 지었다.“못 본 척한 게 아니라 진짜 못 봤어...”눈 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이 쫙 비친 순간 온하랑은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냥 지나가는 이웃 차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내가 경적 안 울렸으면, 넌 내가 온 줄도 모르고 계속 그 사람이랑 얘기했겠네?”“아니거든.... 사람 잘못 본 걸 발견하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네 차를 알아봤어.”온하랑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변명하듯 말했다.부승민이 말없이 그녀만 지그시 바라보자 온하랑은 눈을 깜빡였다.“왜 그렇게 쳐다봐? 혹시 내가 그 사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렇다면?”온하랑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바로 널 차버렸지. 뭐 하러 여기 앉아서 연기하겠어?”“...”온하랑은 문득 차창 밖을 보다가 여전히 차 옆에 서 있는 최동철을 발견했다. 그를 보는 순간 다시 민망해져서 부승민 팔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우리 이제 가자.”부승민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온하랑 뺨에 입을 맞췄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몸을 살짝 뒤로 빼고 투명한 창문 너머로 최동철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 나서 가속 페달을 밟아 단지 밖으로 차를 몰았다.차 안에는 난방이 빵빵하게 돌아서 훈훈했다.온하랑은 얼굴이 달아올라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뒷자리에 던졌다. 그러곤 바깥 풍경을 힐끗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우리 어디 가서 밥 먹을 거야?”부승민은 대답 대신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왜 멈춰?”

  • 위태로운 제안   제1275화

    온하랑은 하루 종일 메이슨과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해 질 무렵이 돼서야 돌아왔다.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메이슨은 이미 잠이 들었다.도착하자 도우미가 저녁 식사를 먼저 할 거냐고 물었다. 온하랑은 메이슨이 잠에서 깨면 같이 먹겠다고 했다.오후 늦게쯤, 메이슨이 조금 출출해해서 온하랑이 그를 데리고 디저트 가게에 갔고 같이 케이크를 먹었기에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온하랑은 노트북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처리했다.창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온하랑이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 확인해 보니 부승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지금 데리러 갈게. 야식 먹자. 거의 다 왔어.]온하랑은 답장을 보냈다.[좋아, 나도 아직 저녁 못 먹었어.]그리고 노트북을 덮고 도우미에게 말했다.[잠깐 밖에 나갈 건데 언제 들어올지 몰라요. 30분 뒤쯤에 메이슨 깨워서 밥 먹여 주세요.]도우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은 방으로 올라가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방에서 나오며 베란다를 지나칠 때 무심코 밖을 내다봤다.부승민의 차가 이미 별장 입구에 와 있었다.차 옆에는 듬직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한 손을 차 문 위에 올리고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였다. 불빛이 빨갛게 깜빡이고 있었다.온하랑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부승민이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자, 온하랑은 조용히 다가가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허리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서프라이즈!”남자는 온몸이 움찔했다. 뜨거운 손이 온하랑이 교차한 두 손을 덮었고, 다른 손에서 담배가 땅에 떨어졌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담배꽁초를 발로 짓눌렀다.마침 그때, 앞쪽 코너에서 자동차 한 대가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다가왔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남자 등 뒤에 얼굴을 묻은 채 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게 꿈인 것 같아.”낯설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4화

    “그러면 이젠...”“네가 기회를 봐서 사모님을 도발해 봐. 사모님이 열받아서 너를 미워하게 만들어야 해.”간하림이 말했다.그 말이 떨어지자 전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간하림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설윤이 내 의도를 알아챈 거 아니야?’“내가 임신한 척해서 사모님을 자극하고 사모님이 열받아서 나를 밀면 유산한 척한다... 이런 걸 말하는 거야?”“맞아.”간하림이 한숨을 내쉬며 맞장구쳤다.“바로 그거야!”‘때가 되면 사모님이 널 밀기는커녕 오히려 네 거짓 임신을 들춰내 버릴걸.’“근데...”“왜?”“나, 진짜 임신했어.”“진짜 임... 뭐라고? 네가 진짜로 임신했다고?”간하림이 깜짝 놀랐다.“응.”설윤 목소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어제 집에 돌아왔는데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매스꺼워서 문득 생리가 밀린 게 떠올라 임신 테스트기를 사 봤거든. 근데... 정말로 임신이라고 나오더라.”간하림은 속이 쓰린 듯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나이도 많은 최국환이 그녀를 임신시킬 줄도 몰랐다.‘운도 참 좋지.’만약 아이를 낳아서 최씨 가문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면 설윤은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늦둥이는 더 귀여움을 받기 마련이다.“맞다.”설윤은 혼잣말하듯 계속했다.“아직 병원에는 안 가 봤어. 언제 가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너 임신한 거 회장님한테 말했어?”간하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 병원에서 검사받은 다음에 보고서 들고 가서 서프라이즈로 보여주려고.”“그렇구나... 음, 윤아. 네가 임신했다면 아까 그 방법은 쓰면 안 돼. 네 몸 상하면 안 되지. 내가 좀 더 고민해 볼게.”‘사모님께 한번 물어보고 나서 다시 얘기해야겠다.’“하림아, 만약 내가 아이를 낳으면 회장님한테도 양육 의무가 생기지 않아? 그럼 사모님도 날 쉽게 쫓아내지 못할 텐데 굳이 지금 상대할 필요가 있나?”“...”전화를 끊고 나서, 간하림의 마음속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견딜

  • 위태로운 제안   제1273화

    임연지도 임가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임가희는 그녀가 너무 성급했다고 나무랐다.임연지는 입으로는 잘못을 인정했지만 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그녀는 일부러 설윤의 정체를 드러내서 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오후가 되자, 임연지는 예상대로 점원에게서 설윤이 환불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가방을 예약하고 직접 가게에 가서 찾아왔다.가방을 손에 넣은 임연지는 후련한 기분으로 예쁜 사진을 찍어 한진에게 보냈다.[나 가방 받았어.]시간을 보니 이때쯤 한진은 막 일어났을 것 같았다.잠시 후 한진이 답장을 보냈다.[진짜 예쁘네! 처음 나왔을 때부터 딱 꽂혔는데 네가 준다니까 사양 안 할게.][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쪽에 맡겨뒀다가 네가 귀국할 때 가져갈래, 아니면 누가 대신 가져다주게 할까?][며칠 뒤에 우리 오빠가 갈 거야. 나 대신 가져다줄 수 있어. 너 언제 시간 돼? 시간 맞춰서 오빠를 보낼게.][난 지금도 괜찮아. 나 센트럴 백화점 4층 커피숍에 있어.][좋아, 내가 오빠한테 전화해 볼게.]몇 분 뒤, 한진이 다시 연락했다.[오빠가 지금은 바쁘대. 그래서 오빠 비서가 대신 갈 거야. 거기서 좀 기다려 줘. 곧 도착할 거야.][알겠어.]임연지는 커피를 시켜 천천히 마시면서 한진과 채팅을 이어갔다.[진아, 근데 네 방법 진짜 효과 좋아. 내가 이틀 정도 오재*을 냉대했더니 바로 전처럼 나한테 잘하려고 해.][그 사람 몰래 귀국해서 부모나 친구들한테도 알리지 못하고 호텔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 결국 너밖에 연락할 데가 없잖아? 계속 차갑게만 대하면 안 돼. 가끔 잘해주기도 하면서 밀당해 봐. 그래야 헷갈릴 거야.][알겠어.]카페에서 20분쯤 기다리자,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깔끔한 청년이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장 임연지에게 다가왔다.임연지는 그 청년이 비서임을 확인한 뒤 가방을 건네주고 커피숍을 나왔다....간하림은 임가희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지만 속으로는 난감해졌

  • 위태로운 제안   제1272화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