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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작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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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부승호의 사인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부승호가 죽은 후 주식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에 관심이 있었다.

BX그룹은 다른 상장 회사들과 달랐다. 가족 기업이어서 회장을 뽑는 것도 그저 형식상의 절차일 뿐, BX그룹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되곤 했다.

가족 기억이란 가족이 갖고 있는 주식이 많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의 주식은 그저 30% 정도 된다. 나머지 70% 중 10%는 부광훈한테 있었고 10%는 부선월에게 있었으며 부승민과 부민재가 각각 5%씩 갖고 있었다.

부승호가 갖고 있는 40%의 주식이 누구한테 가는지가 중요했다. 곧 다음 회장을 선거하는 것과 같았다.

회장이야말로 그룹의 일인자였다. 회사의 발전 방향과 주주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대표를 바꾸고 회장이 돌아간 후로 그룹의 주가가 하락세를 겪고 있었다. 아무리 책임자가 나서서 대표가 바뀌는 것은 회사의 전략지책에 큰 영향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회장을 정해서 주주들의 심란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주가 하락을 막았으면 했다.

이번 주주총회에 부선월은 영상 통화로 참여하게 된다.

영상 통화를 받은 부선월은 바로 부민재를 가리키며 아니꼽게 얘기했다.

“일 처리를 참 기가 막히게 하네. 아주 대단해! 회사에서 공식 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대표가 바뀐 것도 몰랐을 거야.”

부선월에게는 부민재, 부승민, 부현승, 세 명의 조카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선월이 그중에서도 부승민을 가장 아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승민이 제안하는 것이면 부선월은 두 손 들고 동의할 것이다.

부민재는 그저 담담하게 웃었다.

“고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저 다 이사회에서 결정한 거죠.”

10분 후, 김정숙과 부승호의 변호사가 회의실에 나타났다.

가볍게 몇 마디 나누던 주주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변호사도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

“지금부터 부승호 회장님의 유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서에는 은행 저금, 건물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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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광훈은 그제야 부승호가 회사를 위해 이렇게 한 것임을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다수 주식이 김정숙의 손에 있으니 앞으로 다시 한번 나눠야 할 것이다.부승민은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 주식을 더 갖는 것도 정상이었다.주주들은 잠깐 놀라더니 이내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부광훈은 자기 프랜차이즈 가게를 운영하느라 바쁘고 회사의 운영에 대해 잘 모르기에 주주들은 그를 회장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부선월도 해외에서 살면서 회사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항상 연구실에만 붙어있는 부현승에게는 주식이 없다.김정숙은 회사 경영을 잘 모른다.결국 회장 자리에 어울리는 건 부승민뿐이었다.다만 동생이 회장을 하고, 형이 대표를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고승범 이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그가 부승민을 파면시킨 것은 부승호가 오래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승호가 이리도 갑자기 사망할 줄은 몰랐다.그래도 고승범도 부승민이 회장을 맡아야 여러 주주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승범은 부민재를 힐끔 쳐다보았다.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부민재는 차가운 표정으로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부승호가 죽기 전에 이런 유서를 남겨 부승민을 회장 자리로 떠민 것은, 대표가 바뀐 것에 대한 불만이고 부민재에 대한 불만이다. 만약 회장이 일부러 그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만 똑같은 부승호의 손자로서, 부민재도 회사의 임원이었고 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실수를 한 적도 없는데, 왜 부승호는 부승민만 예뻐하는 것일까?아니면 부민재가 부승호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행동은 한 것인가? 부승민이 마침 별장에 돌아왔을 때, 연민우가 주주총회의 결과를 부승민한테 전달했다.온하랑은 이미 밥을 먹고 있었다. 부승민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2층 발코니에 선 부승민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부승민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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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293화

    “보고 싶지, 당연히. 삼촌은 지금 집에 있어.”부승민은 핸드폰을 돌려 주변을 보여주었다.“흥, 안 믿어요! 이제는 아내가 있으면서, 내가 보고 싶을 리가 없잖아요!”그렇게 말하면서 부시아가 부승민의 뒤를 훑어보았다.“삼촌, 숙모는요?”부승민은 그대로 굳어버린 채, 얘기했다.“아파서 병원에 있어.”부시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네? 주사 맞으면 아픈데... 시아는 주사가 제일 무서운데... 숙모는 언제 돌아와요?”“며칠 있다가.”“삼촌, 숙모가 주사 다 맞으면 꼭 케이크 사줘야 해요. 케이크 먹으면 안 아프거든요.”부승민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어. 삼촌이 꼭 숙모한테 케이크를 사줄게.”부선월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시아한테 얘기했다.“시아야, 가서 숙제하자.”로스앤제리너스의 시간은 한국 시간보다 17시간 정도 느렸다. 강남이 점심 12시가 거의 되고 있으니 로스엔제리너스는 전날 저녁일 것이다. 부시아는 저녁을 먹자마자 부승민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그 말을 들은 부시아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얘기했다.“삼촌이랑 얘기하고 싶은데...”부선월은 부시아가 숙제를 하기 싫어서 이런다는 것을 알았다.“숙제 안 하면 케이크는 없어.”부시아의 얼굴에 머뭇거림이 드러났다. 삼촌과 케이크 중, 부시아는 결국 케이크를 선택했다. 부시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부승민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삼촌, 난 숙제하러 갈 거예요. 바이바이. 쪽!”“그래, 공부하러 가. 나중에 시간 있으면 보러 갈게.”어느새 부선월만 남았다.그녀는 부승민의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요즘 제대로 쉬지 못한 거야? 얼굴이 초췌해 보이는데.”“네.”부승민은 담담하게 대답하면서 담배를 피웠다.“너 언제부터 담배를 피운 거야?”부선월이 깜짝 놀랐다.“최근에요.”“주주총회 결과는 알아? 할아버지는 여전히 널 사랑하셔.”부승민은 시선을 내리깔고 말했다.“알아요.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미안하죠.”“미안할 게 뭐가 있어? 할아버지도 죽기 전에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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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294화

    뒷좌석에서는 두 사람이 내렸는데 한 명은 고승범 이사였고 다른 한 명은 기성윤 이사였다.부승민은 두 사람을 내쫓지 않고 서재로 들여 차를 내어주었다.간단히 대화를 나누다가 고승범이 먼저 주주총회 얘기를 꺼냈다.부승민은 표정 변화 없이 그 얘기를 들으며 우아한 동작으로 두 이사한테 차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BX그룹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완곡하게 밝혔다.이유는 두 가지였다.하나는 할아버지의 사망과 아내의 유산이 그한테 큰 충격이었기에 잠시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러니 회사의 일을 맡을 여유가 없었다.둘째는 이사회와 이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민재가 지금 대표직을 맡고 있으니, 부승민은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승범과 기성윤은 서로 마주 보다가 차를 마시고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하지만 회장 자리가 공석인 날이 늘어갈수록 주주들은 심란해할 것이다.이후 기성윤 이사가 두 번 더 왔지만 결국 같은 결말이었다.온하랑은 병원에 5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다섯 번째 날, 김시연이 병원으로 찾아왔다.김시연은 온하랑한테 위로의 말을 건넸다.“아이가 없다고 해서 모든 희망을 버리지 마요. 아이는 그저 우리 인생의 일부분이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하지만 우리의 생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이에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닌, 본인을 위해서 사는 거니까요. 행복하게 살아야 죽어서도 편히 눈 감을 수 있어요.”김시연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가르쳐왔다.김시연은 자기가 꽤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개방적인 부모를 만난 것에 감사해했다.하지만 김시연은 그녀와 온하랑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성격도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온하랑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녀가 가족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래서 김시연은 온하랑이 자기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러고 보니 부승민 씨와 언제 이혼할지 결정했어요?”온하랑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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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295화

    온하랑이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그럼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봐요. 이혼하면 일단 같이 여행이라도 하면서 기분 전환해요.”“같이요?”“네.”김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했다.“같이요. 나랑 하랑 씨랑. 주현 씨도 시간 되는지 물어볼게요.”온하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 후에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대답했다.“네.”“그럼 돌아가서 계획 짜고 있을게요. 겨울에 어디로 여행 가면 좋을지 한 번 보자고요.”...여섯 번째 날, 온하랑은 집으로 돌아와 몸이 회복될 때까지 쉬었다. 아주머니는 온하랑을 극진히 챙겨주었다.부승민은 여전히 별장에서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주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장 가깝게 지내던 부부가 지금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부승민은 온하랑 앞에 나타나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온하랑은 침실 발코니에 앉아 햇볕을 쬐는 것을 즐겼다. 가끔 하루 종일 햇볕을 쬐기도 했다.겨울의 태양은 따갑지 않고 따스해서 아주 편했다.저녁에 돌아온 부승민은 온하랑이 발코니에 앉아 먼 곳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아이가 사라진 후, 온하랑은 말을 아끼게 되었다.이튿날 아침, 온하랑은 동물의 울음소리에 깨어났다. 그 울음소리는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도 모를 울음소리였다.침대에서 일어난 온하랑이 문을 열자 금색과 흰색 털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고픔에 울고 있었다.마음이 약해진 온하랑은 고양이를 데리고 먹을 것을 찾으려고 했지만 고양이는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어쩔 수 없이 걸어가 새끼 고양이를 안고 가려는데 마침 주방에서 나오는 도우미가 보였다.“아주머니, 고양이 사료는 어디 있어요?”온하랑은 부승민이 고양이를 데리고 온 걸 바로 알아차렸다. 준비성이 철저한 부승민이니 사료도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사모님, 왜 일어나셨어요?”“전 괜찮아요. 고양이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요.”“어머?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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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296화

    늦은 밤.침실의 문이 약간 열렸다.술 냄새가 약간 나는 부승민은 조용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야옹.”온하랑의 작은 룸메이트가 그를 발견하고 소리를 내었다.“쉿.”부승민은 준비한 참치 캔을 온하랑 룸메이트 옆에 놓아주었다.그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부승민은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침대 옆으로 왔다.달빛 아래 온하랑은 깊은 잠에 들어 편하게 자고 있었다.부승민은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침대 곁에 앉은 그는 깃털로 온하랑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레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오직 이 시간에야 온하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차갑고 증오스러운 눈길을 피할 수 있다.부승민은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웠다.사업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부승민도, 항상 자신 있고 여유로운 부승민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다.예전의 그는 이런 말을 들으면 신경 쓰지도 않고 웃어넘길 것이다.하지만 자기 마음을 깨달은 그 순간, 그제야 깨달았다. 온하랑을 향한 미련의 끈이 그의 온몸을 묶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두 사람은 담담하게 2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또한 이 침대에서 서로 뒹굴기도 했다. 도우미의 눈에는 잉꼬부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모두 예전의 그가 너무 자만했던 것이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영운사에서 돌아오면, 온하랑은 더 이상 부승민의 아내가 아니다.두 사람은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니다.이혼하면 그녀는 아마 이주혁과 함께할 것이다.그 생각에 부승민은 이주혁을 향한 질투심이 활활 타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부승민의 시선은 온하랑의 붉은 입술에 머물렀다. 눈빛이 어두워진 그는 그대로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부드럽고 따스하고 달콤했다. 예전의 추억에 빠진 그는 하마터면 헤어 나오지 못할 뻔했다.이 키스도 이젠 마지막이다.부승민은 눈을 감고 마지막 일탈을 했다.얼마 지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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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하랑은 유골함을 꼭 안고 차에서 내렸다.부승민이 미리 얘기를 해두었기에 승려 한 명이 나와 그들을 데리고 뒤에 있는 절로 데리고 갔다. 고개를 든 온하랑은 절에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전생당]들어가자 한쪽 벽에 선반이 있었고 그 위에는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전생당은 유골함의 위치에도 규칙이 있었다.보통 시민의 유골은 1층에 안치되고 도를 닦는 승려들의 유골은 2층, 그리고 낙태된 아기의 유골은 3층에 안치된다. 다른 곳에는 또 덕을 쌓은 스님들의 유골을 안치하는 곳도 있었다.승려의 인도하에 온하랑은 직접 유골함을 선반에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그리고 승려는 그들을 데리고 서쪽에 있는 전생절에 갔다.전생전으로 가는 길에는 높은 계단이 수두룩했다.계단은 모두 81개였는데 모두 81개의 고난을 뜻한다. 그래서 그 고난을 모두 이겨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절에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었다.온하랑은 승려를 따라 벽을 넘어갔다. 그러자 벽 뒤에 있는 노란색 패쪽들이 보였다.승려는 온하랑에게 설명했다.“이 패쪽은 우리 불교인에게 있어서는 극락으로 가는 통행증입니다. 노란 패쪽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패쪽을 세워주어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죠. 아이의 영혼을 위해 패쪽을 세워 오랜 기간 덕을 쌓게 하면 빠르게 극락으로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문제도 풀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럼 아이를 위해 패쪽을 하나 세울까?”의문형이지만 부승민의 말투에서는 단호함이 엿보였다.“응.”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패쪽에는 패쪽 주인의 이름이 있어야 하니 두 분께서 이름을 지어주세요.”승려가 얘기했다.그러자 부승민과 온하랑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부승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네가 지어.”온하랑은 절에서 향 냄새를 맡으며 얘기했다.“원녕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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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에서 나오자 차가운 바람에 하얀 눈송이가 섞여 불어왔다.눈이 내리고 있었다.온하랑은 하늘을 쳐다보았다.부승민은 온하랑을 보면서 물었다.“지금 돌아갈래?”온하랑은 날씨를 봤다. 눈은 점점 더 크게 내릴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고속도로로 돌아가는 건 위험하다.“여기서 하룻밤 묵고 내일 눈이 그치면 가자.”“그래.”부승민은 자기 코트를 온하랑 어깨에 걸쳐주었다. 온하랑이 거절하려고 하는데 부승민이 얘기했다.“몸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조심해야지.”“고마워.”“고마워할 필요 없어.”원래는 아내라서 고마워할 필요 없다고 얘기하려고 했다.다만 그 말은 꺼낼 수 없었다.결혼한 3년 동안, 그는 온하랑을 여보나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았다.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을 것이다.부승민은 이 눈이 영원히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그렇다면 두 사람은 영원히 여기에 머무를 수 있고 그녀에게 아픈 기억만 남겼던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혼하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부승민의 바램일 뿐이었다.눈은 저녁에 멈추었다.이튿날, 그들은 강남으로 돌아갔다.고속도로에서 내릴 때, 온하랑이 얘기했다.“돌아가서 필요한 서류 챙겨서 동사무소로 가자.”온하랑은 시계를 확인하면서 얘기했다.“아직 한 시간 있으니까 시간이 될 거야.”그녀의 마음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을 들으니 부승민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무거운 바위가 그의 심장을 꾹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다.부승민의 심정은 마치 밖의 날씨처럼 차갑고 처량했다.그는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았다. 목에는 마치 모래가 가득 찬 것처럼 꽉 막히고 아팠다.“그래.”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차에 다시 탔다.부승민은 천천히 운전해서 동사무소로 갔다.차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창밖의 풍경을 쳐다보다 보니 3년간의 추억이 파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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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 위태로운 제안   제1267화

    설윤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봤어?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돼.”“당연하지.”간하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몰라? 걱정 붙들어 매.”그리고 다정하게 설윤의 팔짱을 끼고 클럽 탈의실로 향했다.아직 아무도 없었고, 간하림은 옷을 갈아입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아, 최 회장님과 어떻게 알게 되었어?”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설윤은 대충 둘러댔다.“우연한 기회에 마주쳤어. 전에 일하던 곳에 놀러 왔다가 마침 내가 접대를 담당했거든.”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간하림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손을 뻗어 설윤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었고, 뽀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최 회장님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직접 출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좋겠네.”설윤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너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든든하긴 개뿔! 하늘과 땅 차이거든?”간하림이 툴툴거렸다.“가게에 오면 지명할 뿐이지 너처럼 최 회장님 전속 담당이 아니야.”심지어 손님마저 감히 설윤에게 집적거리지 못했고, 누가 봐도 사전에 단단히 경고한 게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설윤은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윤아, 나중에 사모님이 되면 날 잊지 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녕 몰라?”이내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더니 간하림을 흘겨보았다.“국환 씨가 싫증이 나기 전에 돈이라도 두둑이 챙기면 땡큐고, 사모님은 감히 넘보지도 않아.”간하림은 납득할 수 없는 듯 바짝 다가갔다.“우리가 뭐 어때서? 최 회장님 와이프도 결국에는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기사 못 봤어?”“무슨 기사?”곧이어 출입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누군가 최 회장님 와이프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해서 끔찍한 상처를 입었대.”“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위태로운 제안   제1266화

    임연지는 집에 도착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임가희를 발견했다.테이블에 놓인 등기 전용 서류 봉투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고모, 왜 그래요?”말을 마치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모부가...”이내 나머지 사진도 확인했는데 전부 어떤 젊은 여자와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 최국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코 가벼운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임가희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임연지는 목을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임가희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고모, 이제 어떡해요?”“어떡하긴?”임가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모른 척해야지. 지금 네 고모부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야. 괜히 추궁했다가 홧김에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손해이지 않겠어?”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었다.지금껏 비슷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텅 빈 여자들이라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서 부랴부랴 찾아와 따지기 급급했다. 나중에 울면서 최국환에게 하소연하면 정이 떨어진다며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또한 최국환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신분과 집안, 그리고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다.어쨌거나 그 나이 먹고 결혼을 3번이나 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본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은 이상 고작 여자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면 그만이었다.“그냥 넘어가려고요?”비록 고모의 말도 맞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넌 신경 쓰지 마. 고모부 앞에서도 티 내지 말고.”임연지는 사진 속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여우 년’이라고 욕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임가희는 사진을 모두 치웠다.무언가를 떠올린 듯 임연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고모, 만약 이 여자가 임신하면 어떡해요?”“네 고모부의 컨

  • 위태로운 제안   제1265화

    “침착해.”임연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느긋하게 껴입었다.“샤워했어? 나랑 같이 씻을래?”“꿈 깨.”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면서 문을 열자 알몸으로 나타나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오재원을 발견했다.“연지야.”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슬쩍 피했다.“호텔에서 푹 쉬어. 먼저 가볼게.”“아직 이른데? 좀 더 있다 가.”“안돼.”임연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재원을 스쳐 지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쌀쌀맞은 얼굴을 보자 오재원은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그럼 언제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원하는 집이 있으면 알려줘. 부동산에 물어볼게.”“방 3개, 풀옵션. 나머지는 알아서 해.”“그래.”임연지는 옷매무새와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을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뒤돌아보며 혀를 찼다.‘역겨운 놈.’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고 한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호텔을 벗어나니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야.]한진이 대답했다.[하하하!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오빠가 인맥을 동원해서 각 언론사에 수시로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중에서 제보받은 회사가 있는데 편집장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했대.]그러고 나서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본문의 첫 마디가 온하랑이 필라시에서 유학할 때 최동철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임연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대박인데? 고마워, 한진아. 오빠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줘.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아프리카로 쫓겨났을지도 몰라.]그동안 한진의 오빠가 사전에 뉴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자칫 폭로라도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제 결과를 확인한 이상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체 누가 제보했단 말이지?한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물론 메일 주소를 역추적한 결과 여전히 너희 집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상 주소를 사용한 것 같아.][미친놈.]임연지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 위태로운 제안   제1264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연지는 그 틈을 타서 오재원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오재원은 그녀를 따라 나가려고 했지만 잠시 뒤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끌며 엘리베이터를 나왔다.방에 들어가자 오재원은 서둘러 캐리어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임연지를 끌어안고는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연지야, 빨리 나 주라고. 더는 참을 수 없어.”“오재원! 이거 놔! 먼저 일어나!”“안 돼. 연지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 그녀는 그를 힘껏 밀쳤고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재원의 힘이 너무 강해 벗어나기 힘들었다. “오재원, 내 말 들어봐. 우리 얘기 좀 해야 해.” 임연지는 차분하게 말하며 그가 자신의 말을 듣길 바랐다.하지만 오재원은 이미 욕망에 눈이 멀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임연지에게 입을 맞추려 했고 손은 그녀의 몸을 함부로 만지기 시작했다.“얘기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알아.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는 말을 마친 후 임연지의 입술을 막았다. “연지야, 잘 생각해. 네가 만약 나를 밀어내면 난 바로 나갈 거야.” 임연지는 속에서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밀치는 손길은 결국 멈춰 섰다.“그래 이거지.”오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충분히 즐겼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오재원은 임연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 너무 향기로워. 연지야. 어쩌면 이제 우리 아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임연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으면 정말로 오재원에게 뺨을 갈길 것만 같았다.화장실에 들어간 임연지는 핸드폰을 꺼내 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진아, 살려줘. 진짜 그 사람이 너무 싫어!][돌아오자마자 나랑 자려고 하고 역겨워 죽겠어!][내가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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