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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1화

윌슨은 잔뜩 신이 난 채로 별장을 소개하는 부시아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아이가 필라에 가면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함께 보낼 시간만 상상해도 윌슨이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온하랑은 두 사람이 수다를 떨고 있으니 무료함에 핸드폰을 꺼냈고 때마침 윌슨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티켓은 카롤이 갖고 있어? 할아버지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데.”“삼촌한테 있어요. 왜요?”부시아는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바라봤고 그는 마침 맞은편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었다.“우리 카롤이 어디에 앉는지 할아버지가 궁금해서 그래.”윌슨이 말했다.“퍼스트 클래스 A 열이요.”부시아는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제가 직접 창가 자리로 골랐거든요.”윌슨은 미간을 찌푸렸다.‘앨런이 티켓 예매하러 갔을 땐 분명이 퍼스트 클래스가 안 남았다고 했는데...’“민우 삼촌이랑 표 사러 갈 때 마침 세 자리에 남아 있었어요.”“그럼 카롤 옆에는 누가 앉을 거야?”이 항공편의 퍼스트 글래스는 이중 통로로 구성되어 있어 좌석은 2-4-2 배열로 배치되어 있다. 그 말인즉 부시아의 곁에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단 하나뿐이라는 뜻이다.“숙모요.”“아... 그래?”윌슨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고개를 들어 온하랑을 바라봤다.사실 그는 부승민이 앉는 줄 알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주 당연하게 자리 교체하고 손녀와 함께 앉을 수 있었기에 막무가내로 요구하면 그만이다.옆에 있던 온하랑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윌슨의 의도를 알아채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누가 봐도 그는 부시아와 함께 앉고 싶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윌슨은 온하랑이 자신의 뜻을 이해한 것을 보고 솔선해서 먼저 제안할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온하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시선을 거두고 계속하여 핸드폰을 놀았다.눈이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이 정도로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윌슨은 알 수 없는 느낌에 이상함을 느꼈다.비행기는 30분 연착되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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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2화

얼마 후 비행기 체크인이 시작되었다.약 30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필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현지는 이미 밤이었고 부시아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화려한 불빛이 가득 찬 필라시를 바라봤다.윌슨 가문은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일찌감치 차를 보내와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편집장도 온하랑이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마중하기 위해 어시스던트를 보낸 건 물론 미리 호텔까지 예약해 줬다.윌슨은 오늘 바로 부시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부승민이 온하랑을 먼저 호텔에 보내야 한다며 다음날에 부시아와 찾아뵐 거라고 했다.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윌슨은 기분이 언짢은지 사악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훑어보고선 차에 올라탔다. 부시아와의 이별이 힘든 듯 떠나기 전에도 신신당부했다.“카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꼭 할아버지 만나러 와야 해. 알겠지?”“알겠어요. 할아버지, 조심히 들어가세요.”호텔에 도착한 부승민은 온하랑과 부시아를 소파에서 쉬게 한 후 온하랑의 캐리어를 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생활용품을 꺼내 손에 잡히는 대로 놓은 뒤 챙겨온 옷 몇 벌을 옷장에 걸어두었다.그러고선 텅 빈 캐리어를 벽 수석으로 밀어놓았다.비행기에서 한숨도 못 잔 온하랑은 간단하게 야식을 먹은후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세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온하랑은 잡지사 관계자의 픽업을 받았고, 부승민은 부시아와 함께 윌슨 저택으로 향했다.저택은 교외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버금갔는데 엄청 크고 경치마저 아름다웠다.새로운 곳에 도착한 부시아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저택의 도우미들은 일찍이 본부를 받고 공손히 그들은 내부의 본관으로 모셨다.윌슨은 오늘 회사에 가지 않고 아내인 서희수와 함께 이른 아침부터 테라스에서 햇볕은 쬐며 외손녀가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윌슨이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자 서희수는 잔뜩 궁금해하며 물었다.“그렇게 사랑스럽나요? 이 정도로 아이를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네요.”윌슨은 살며시 웃더니 확신에 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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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3화

서희수는 낯선 곳에서도 전혀 겁을 먹지 않는 부시아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난 너의 외할머니야.”“외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카롤이라고 합니다.”부시아는 뒤 돌아보며 부승민의 손을 잡아당겼다.“이분은 제 아빠예요.”서희수는 시선을 돌려 뒤에 있는 부승민을 보고선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지금처럼 따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우연히 강성의 연회에서 만났을 수도 있고, 오빠인 서정훈을 통해 들었을 수도 있는데 서희수는 예전부터 부승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BX 그룹 대표를 취임한 후 현재는 회장으로 지낸다고 한다.기억 속의 부승민은 그야말로 엄친아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손녀의 아버지인 건 맞지만 사위가 아니라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희수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방을 잘못 찾은 이엘리아가 인사불성이 된 부승민과 잠자리를 가졌고, 그 후 부선월의 속임수에 속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끝내 아이를 낳았다.사실 부승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된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서정훈에게 이미 수차례 진심을 표했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딸의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서희수는 부승민에게 썩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부승민은 예의 삼아 서희수에게 인사하였다. 곧이어 윌슨 부부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굳이 왕래가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시아가 잘 도착했으니 전 일 때문에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캐리어에는 시아의 옷과 장난감이 들어있고 평소 습관 같은 건 제가 메모를 하였으니 확인해 보세요. 그럼 시아 잘 부탁드립니다. 보름 뒤에 데리러 올게요.”눈치는 빠른 편이었다.“그럼 멀리 안 나갈게요.”윌슨이 말했다.“아빠, 잘 가요.”부시아가 서운한 표정으로 말하자 부승민은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말 잘듣어. 적응 안 되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연락해. 데리러 올게.”부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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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4화

온하랑은 점심때쯤 벨라에게 연락했다. 그녀가 필라에 왔다는걸 알게 된 벨라는 밥을 사주겠다며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았다.부승민은 눈살을 찌푸렸다.물어볼 것도 없이 친구와의 약속에 그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어느 레스토랑인데? 내가 데려다줄게.”온하랑은 레스토랑의 이름을 말하며 그를 바라봤다.“너는 어떡할 거야?”“나?”부승민은 전방을 주시한 채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며 답했다.“호텔로 돌아가야지. 어차피 아무도 날 신경 안 쓰는데 저녁은 대충 먹으면 돼.”그 모습에 입꼬리가 씰룩인 온하랑은 말을 꺼내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려 다른 곳에 집중되었다.확인해 보니 어디 갔지 왔냐는 벨라의 문자였다.온하랑의 위로를 기대하고 있었던 부승민은 한참을 기다려도 목소리가 그녀의 들려오지 않자 빨간 불이 뜬 틈을 타 고개를 돌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보고 있는 온하랑의 모습을 발견했다.부승민은 할 말을 잃었다.문자에 답장한 온하랑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바라봤다.“그럼 일찍 들어가서 쉬어. 내일 비행기 타려면 힘들잖아.”‘이게 다야?’“응.”부승민은 싸늘하게 답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가는 길 내내 아무런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온하랑은 눈치를 밥 말아 먹은 듯 계속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벨라와 수다를 떨었고 그럴수록 부승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어느새 차는 레스토랑 입구에 멈춰 섰다.“도착한 거야?”핸드폰에서 눈을 뗀 온하랑은 차창을 통해 주위를 둘러봤다.“그럼 갈게.”“응.”부승민은 나지막하게 답했다.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던 온하랑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몸을 돌려 부승민을 바라봤다.“맞다...”부승민은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친구한테 너랑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라던데? 같이 갈래?”온하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이 모든 게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한 행동임을 깨달았다.어쩌면 온하랑은 처음부터 부승민의 생각을 예상하고 친구에게 물어봤을 수도 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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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5화

“아저씨, 아주머니.”깜짝 놀란 진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언제 오셨어요? 연락이라도 해주시지.”온하랑은 그제야 임가희를 발견했다. 그녀는 우아한 옷차림으로 최국환의 곁에 있었고 두 사람이 대화는 나누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최국환을 훑어보았다.비록 이미 쉰 살이 넘었지만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었고 균형 잡힌 몸매와 반듯한 미모를 보니 40대 중반의 잘생긴 아저씨나 다름없었다. 젊었을 때 얼마나 잘나갔을지 상상이 되었고 부선월이 줄곧 잊지 못하는 데는 역시나 이유가 있었다.부승민과 최동철의 카리스마는 그를 닮은 게 틀림없다.온하랑은 진도원과 대화를 나누는 최국환이 은연중에 부승민 쪽을 힐끗 쳐다본 걸 알아챘다.그러나 부승민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눈빛에서는 언짢음이 느껴졌다.최국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잠깐 볼일이 있어서 넘어온 김에 며칠만 놀다가 가려고. 네가 바쁠 것 같아서 따로 연락 안 했어.”“아주머니는 점점 더 젊어지시네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요.”“그런 농담은 넣어둬.”대화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진도원은 정식으로 소개했다.“이분은 동철이의 아버지인 최국환 씨, 그리고 곁에는 아내분인 임가희 씨야.”“벨라는 제 여자 친구예요. 이분은 온하랑이고 저희 모두 친구예요. 그리고 이쪽은 하랑이의 남편분이요.”온하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벨라와 함께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임가희와 그녀의 관계는 아슬아슬했기에 지금 이 순간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진도원만 난처하게 된다.그러니 온하랑은 임가희와 모르는척했고 임가희 역시나 공식석상에서 온하랑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할 생각이 없어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소개받은 최국환은 온하랑을 힐끗 쳐다보더니 곧이어 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도원아, 너 요즘 잘나가네.”진도원이 웃으면서 말하려던 찰나 최국환이 말머리를 돌려 부승민을 바라봤다.“이런 우연이. 부 회장님도 필라에 계실 줄은 몰랐네요.”부승민은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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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6화

부선월은 운전석에 앉아 차창 너머로 레스토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있는 손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표정이 흉악하게 변하더니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어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다.최국환과 임가희, 부승민과 온하랑이 지금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다.너무도 화목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부선월은 두 눈이 뒤집혔다.자신의 아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최국환, 임가희와 함께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울화가 치밀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임가희가 앉은 저 자리... 원래는 내꺼라고. 엄마를 대신해 복수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지금 같이 밥을 먹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최국환에게 왜 그랬냐고 따져야지. 왜 임가희랑 붙어먹은 거냐고 따져야지.’부선월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는데 이 모든 게 온하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온하랑의 존재로 인해 부승민이 점점 다른 길로 빠진 거라며 확신했고 이대로 가다간 버림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피가 솟구치는 느낌에 이성을 잃은 부선월은 감정에 휩싸여 무작정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핸드폰이 울리자 최국환은 술잔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나 발신자 번호를 보고선 망설임 없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이를 본 임가희가 물었다.“왜 안 받아요?”“스팸 전화야.”최국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그 시각 차 안의 부선월은 뚝 끊긴 통화를 보고도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이를 악문채 최국환을 노려보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최국환은 여전히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부선월이 또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꺼져있었다.“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 지금 거신 번호는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부선월은 미친 사람처럼 핸드폰을 내던졌다.부승민도 짜증이 나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사실 우연히 최국환의 발신자 번호를 언뜻 보았는데 너무도 익숙한 번호였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거지?’바로 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아니나 다를까 부선월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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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7화

부승민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이마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마침 그의 표정을 가렸다.부선월은 그의 답을 듣기도 전에 마치 악령에 빙의된 사람처럼 원수를 보듯 부승민을 노리더니 고함을 질렀다.“은혜도 모르는 빌어먹을 자식. 애초에 널 목 졸라 죽여야 했어. 그럼 지금까지 외롭게 홀로 해외에서 고생하며 살지는 않았을 거야.”며칠 전 부선월은 최국환이 필라시로 출장 간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달려왔다. 그녀는 우연한 만남을 연출하려고 데이트 당시 입었던 드레스와 나이에 맞지 않는 메이크업을 하고선 필라시로 향했다. 그렇게 오는 길 내내 최국환이 다시 한번 본인에게 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만의 착각에 빠졌다.최국환의 행방을 알아내 급히 레스토랑에 달려간 그녀는 임가희와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그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심지어 최국환은 손수 스테이크를 썰어 임가희에게 건네주는 자상함을 보였다.잔뜩 기대하며 달려온 부선월의 얼굴은 한순간에 갈라졌다.그 후 며칠 동안 최국환의 뒤를 따라다닌 부선월은 그가 임가희와 함께 쇼핑하며 이것저것 사주는 걸 보게 되었다.고통이 밀려오고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부선월은 이 미련을 놓기가 너무 힘들었다. 시궁창 속의 바퀴벌레처럼 빛을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들의 사랑을 깨뜨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최국환의 곁이 있는 사람이 본인이기를 바랐다.실망이 커질수록 임가희에 대한 질투심도 점점 더 커졌다.부선월은 운 좋게 목숨을 구한 임가희를 지금껏 방치해둔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쌓아온 모든 감정은 그들 여섯 명이 함께 앉아 식사하는 것을 보고 최고조에 달했고, 점점 한계점까지 쌓여 마침내 폭발했다.부승민은 제정신이 아닌 부선월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정말 미쳤네요.”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부승민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이를 본 부선월은 흠칫하고선 목 놓아 소리쳤다.“멈춰. 당장 멈추라고. 넌 엄마가 안중에도 없니?”그녀의 질문에 답하는 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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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8화

온하랑이 연고를 다 바를 때쯤 부승민이 입을 열었다,“이제는 완전히 미쳤어.”그 말투에는 무기력함과 짜증이 가득했다.부승민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설마 식사 자리에서 회장님한테 전화한 것도...”“맞아.”온하랑은 부승민을 바라보며 손에 들고 있던 면봉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무슨 마음인지 조금 알 것 같아.”“응? 뭔데?”“이미 회장님한테 너무 많은 걸 쏟아부었어. 여기서 손을 놓는 건 수십 년의 시간을 포기한 셈이잖아.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이대로 물러선다면 인생을 헛살았다고 생각하겠지.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아마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는걸 증명하기 위해 목숨도 바칠거야.”번호를 저장한 것도 아닌데 최국환은 일련의 숫자만 보고 부선월인 걸 알았다. 그 말인즉 두 사람은 예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고 최국환은 부선월의 번호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더 이상 부선월과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번호를 차단했을 텐데 최국환은 그게 아닌 핸드폰을 꺼버렸다.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온 부승민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온하랑의 품에 안겼다.“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아.”온하랑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차분하게 타일렀다.“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생각하고 일찍 자자.”그 시각 또 다른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밤이 깊어가자 임가희는 어느새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최국환이 관계자와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자 임가희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이제 그만하고 얼른 쉬어요.”최국환은 고개를 끄덕인 후 화장실로 가려는데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아... 시간이 늦었는데 내일 보는 건... 지금요? 알겠어요. 바로 나갈게요.”누우려던 임가희는 그 말을 듣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왜요? 지금 또 나가봐야 하는 거예요?”“회사에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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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9화

최국환은 상황 파악을 못한 듯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재빨리 부선월을 밀어냈다.“그만해요.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 왜 이래요.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아요?”부선월은 최국환을 있는 힘껏 껴안은 채 놓지 않았다.“아니요. 그동안 제가 어떻게 버텼는지 아세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면서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자본 적이 없어요. 더 이상 이런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한 번뿐인 인생을 지금처럼 고통스럽게 살다가 갈 수는 없잖아요? 저 국환 씨 좋아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나한테 손가락질해도 절대 후회 안 할 자신있어요. 국환 씨는 절 이해해 줄 거죠?”부선월은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매우 진지하고 집요했다.예전과 마찬가지로 부선월의 두 눈에는 온통 최국환뿐이었다.최국환은 흔들린 듯 잠시 멍하니 있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애써 그녀를 밀어냈다.그 반응을 본 부선월은 이때다 싶어 까치발을 들고 두 손으로 목을 감싼 채 그에게 입을 맞췄다.그래도 이성이 남아있었던 최국환은 정신을 다잡고 재빨리 뒤로 몸을 피했다.“지금 많이 취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말을 마친 그는 부선월이 뭐라고 하든 무작정 끌고 계단 쪽으로 향했다.실은 이대로 있다가는 결국 사고가 생길 것 같아 회피하는 중이었다.“국환 씨, 왜 내 두 눈을 못 보는 거예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겁나는데요?”부선월은 최국환에게 끌려가며 물었다.최국환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어느 호텔에서 지내고 있어요?”“말 돌리지 말고요.”부선월을 재빨리 최국환의 앞을 가로막았다.“국환 씨, 솔직하게 말해봐요. 마음속에 아직도 제가 있잖아요. 남은 인생을 후회하며 살 거예요?”“제발 그만 좀 해요. 어디 살고 있는지부터 말해요.”“국환 씨 옆방이요.”최국환이 걸음을 멈추자 부선월은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왜요? 아내분한테 들킬까 봐 겁나요?”최국환은 묵묵히 그녀를 계속 끌고 내려갔다.“어지러우니까 부축해 줘요.”부선월은 술에 취한 듯 그에게 몸을 기댔다.이번에도 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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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0화

눈을 뜨고 소파에서 일어나 앉은 부선월은 불안해하는 최국환을 바라봤다.“누구예요?”최국환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진정한 뒤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가희?”부선월은 할 말을 잃었다.“응. 회사에 도착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별일 없어. 금방 돌아갈게.”대화를 엿들은 부선월은 최국환이 회사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본인을 만나러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최국환은 전화를 끊자마자 싸늘한 표정으로 부선월을 바라봤다.“이제 가봐야 해.”“국환 씨...”이번에는 부선월이 따라잡기도 전에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고 마치 귀신이라도 쫓아오는 것마냥 부랴부랴 도망쳤다.굳게 닫혀진 문짝을 바라보던 부선월은 살이 파일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버텼으면 성공인데... 임가희...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최국환은 옥상에서 30여 분 동안 찬 바람을 쐬고 나서야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잠이 옅었던 임가희는 인기척을 듣고 깬 듯 졸린 두 눈으로 물었다.“왔어요? 일은 해결됐어요?”“응.”최국환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옷을 벗었다.그가 침대에 눕자 은은한 술 냄새가 느껴진 임가희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최국환의 품에 안겼다.“도원이는 하랑이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도원이를 통해서 하랑이랑 식사 자리 한번 만드는 게 어때요? 관계도 풀 겸.”최국환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진도원은 온하랑이 임가희와 전남편 사이의 딸이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둘 사이에 오해가 생겼는데 지금껏 풀지 못해서 어제도 모른척했다고 말하자 진도원은 망설임 없이 도와주겠다고 했다.임가희가 딸인 온하랑과의 관계를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씨 가문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최씨 가문의 지원이 필요하여 승낙한 것도 있다.부승민이 떠난 후 온하랑은 스튜디오에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진도원의 연락을 받게 되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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