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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1화

박지연은 고은서의 격려하는 눈빛을 받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지연아, 엄마가 너한테 전화했었어?”온승준이 물었다.하지만 박지연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내일 언제 시간이 돼? 우리 얘기 좀 하자.”온승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내일은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은 시간이 있어. 너 어디 사는 거야? 내가 갈까?”박지연은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은 9시,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아닌 시간이었다.온승준은 언제 바빠질지 모르니, 얘기할 거면 지금 하는 게 맞았다.“좋아.”박지연은 온승준과 라이트 문 아파트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출발하기 전 박지연은 대충 얼굴을 닦고 외투를 걸쳤다. 옆에서 고은서는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걱정하지 마.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난 전적으로 지지할 거야.”내심 박지연이 전생의 비극에서 벗어나길 바랐지만, 만약 이게 박지연의 선택이라면 고은서는 그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녀는 카페에 도착했다.커피를 주문할 때 박지연은 습관처럼 온승준이 좋아하는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려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결국 삼켰다.그녀는 도우미도 엄마도 아니기에 다시는 그를 돌보고 희생하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좋아하는 블랙커피와 작은 케이크를 주문한 후 박지연은 멀리서 온승준의 모습을 발견했다.그는 편안한 얇은 니트 외투에 검은색 캐주얼 바지를 입고 날씬한 몸매를 뽐냈다. 코끝에 걸쳐진 은색 테가 달린 안경은 금욕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박지연과 온승준은 소개팅에서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지연이 소개팅에서 실수로 커피숍에 앉아 있던 온승준을 소개팅 상대라고 착각한 거였다.그 전에 박지연은 온승준에 대해 조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심장외과 의사였고, 잡지 인터뷰에도 나왔던 사람이었다.박지연은 자신의 운이 믿기지 않아 급히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며 말했다.“저는 건강하고 성격 밝고 활발한 사람이에요. 결혼할 준비가 다 됐어요.”어떤 말에 설득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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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전화 안 받았어. 어머님이 뭐라고 했는지는 직접 보면 알 거야.”박지연은 휴대폰 메시지를 열어 온승준 앞에 휙 던졌다.온승준은 메시지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첫 문자만 봐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이런 잡다한 일들을 싫어해서 결혼하고도 이런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박지연은 유능하고 성격도 좋았기에 모든 일을 철저하게 챙겨서 그가 신경 쓸 것 없이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부모님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박지연에게서 딱히 흠을 잡을 수 없었다.온승준은 처음에 모든 것이 이렇게 순조롭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지연이 이혼하자고 했다.온승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말씀이 너무 거칠었네. 내가 엄마한테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할게.”박지연은 온승준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았기에 조용히 웃었다.“됐어, 더 이상 당신 힘들게 하지 않을게. 어차피 부모님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더 이상 잘 보일 필요도 없잖아. 시간 내서 우리 이혼 절차 진행하자.”온승준은 손끝으로 안경을 정리하며 말했다.“지연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거야?”“엄마는 전에 우리에게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하라고도 하셨고. 아마 그동안 네가 집에 안 들어오고 전화를 받지 않아서 화가 나셨을 거야.”온승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지연아, 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학술 보고서도 마무리해야 하고. 투정 그만 부려. 예전 일은 내가 미안해. 사과할게.”박지연은 온승준한테 이렇게 투정을 부린 적이 없었다. 늘 자기 혼자 억지로 풀어내고 끝냈지만, 이번엔 달랐다.온승준이 미안하다는 말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이 사태가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번거로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는 자세를 낮추는 걸 선택했다.박지연은 그날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결혼 증명서를 받았을 때의 행복감을 떠올리며 이혼하려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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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박지연이 뒤를 돌아보자 예상치 못하게 육현석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그는 손에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꼬치와 맥주 몇 병을 들고 있었다.전에 그들이 수다 떨 때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수다는 꼬치와 맥주가 더 잘 어울려.”‘설마 그 말을 기억하고 특별히 나를 위해 사 온 건가?’“지연아, 여기서 뭐 해?”육현석이 그들 앞에 다가와서 그녀 옆에 있는 온승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분은?”“온 닥터, 내 남편이야.”그리고 박지연은 반대로 온승준에게도 소개했다.“내 친구 육현석이야.”“아, 온 선생님 반갑습니다!”육현석은 한 손을 비우고 온승준에게 악수를 청했다.온승준은 육현석의 재벌 도련님 인상이 물씬 풍기는 외모와 손에 들려 있는 꼬치와 맥주를 보고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럼에도 그는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며 형식적으로 악수했다.“반갑습니다.”“온 선생님, 오늘 지연이랑 우리 형수님 고은서랑 술 한 잔 하려 했는데, 함께 하실래요?”육현석이 너그럽게 초대했다.온승준은 워낙 낯선 사람과 과도한 사교를 좋아하지 않았고, 쓸데없는 대화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그는 정중히 거절하고 박지연에게 말했다.“난 학술 발표 준비가 남아서 먼저 가볼게.”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온승준이 떠난 뒤 박지연은 육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육현석, 네 마음은 고맙지만 나 방금 막 식사를 마쳤고 은서도 술을 꽤 마셔서 더는 못 마셔.”육현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네가 술 마시고 싶을 때 다시 약속 잡자.”“고마워.”박지연은 진지하게 말했다.육현석이 여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여자를 유혹하는 데도 능숙한 사람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을 기억하고 실천한 것에 감동받았다.육현석은 고맙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기에 웃으며 말했다.“친구 사이에 거리감 느끼게 왜 그래. 그럼 난 가볼게. 내일 병원 운동장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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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곽 대표님, 서인수는 정말 개자식이에요. 저를 압박해 대표님에게 부탁을 하게 만들기 위해 해외에 있는 아들까지 동원했어요. 서인수를 무시할 수는 있지만, 아들에게 걱정 끼치는 건 정말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실례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대표님을 부른 거예요.”곽승재는 병실을 잠시 훑어보았다. 그 안에서는 서인수가 깨어나 있었고, 의사가 검사하고 있었다.“곽 대표님, 곽 대표님... 컥!”서인수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보자마자 급격히 감정이 격해졌다.하지만 몸이 너무 약해서 병상에서 자칫하면 떨어질 뻔했다.의사들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서인수는 이를 무시하고 비틀거리며 곽승재 앞으로 다가가 애원했다.“곽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고의로 사모님에게 손을 대려던 게 아닙니다. 다 백유미가 시킨 겁니다!”경찰과 의사들이 서인수를 다시 병상으로 밀어 넣으며 그를 제지했다.곽승재가 미간을 찌푸리자, 도아름은 백유미가 서인수를 부추겼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은서도 알고 있었나요?”곽승재는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도아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제가 며칠 전에 서인수를 만났어요.”“곽 대표님, 서인수는 그동안 외부에서 칭찬을 받으며 자만해졌어요. 그런 사람은 누군가에게 쉽게 이용당할 수 있는 법이죠.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서인수는 이 일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곽승재는 그 말을 듣고 깊은 눈동자에 냉기가 서렸다.“알겠어요. 제가 처리할게요.”“도 대표님이 저를 부르신 건, 서인수에 일에 대해 부탁이 있어서인가요?”“아니요.”도아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그저 서인수가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예요. 은서 씨가 위험에 처할 뻔했으니, 서인수는 받아야 할 처벌을 전부 받아야 해요.”곽승재는 도아름을 감탄하는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도 대표님, 정말 대범하고 큰 그릇을 가지셨네요. 탄복스럽습니다.”도아름이 답하려던 순간, 그녀의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휴대폰을 확인하자, 박지연이 연속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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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도아름의 질문에 곽승재는 얇은 입술을 오므리며 대답했다.“도 대표님, 죄송하지만 일부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도아름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은서와 곽승재 사이의 일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고, 곽승재가 나름의 계획이나 고려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으니까.다음 날 아침 고은서는 소파에서 눈을 떴다.박지연은 이미 병원에 갔고 식탁 위에는 평소처럼 그녀를 위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휴대폰을 열어보니 박지연이 어젯밤 고은서가 잠든 후 찍은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거기에 술 취한 미인이라며 놀리면서 도아름에게 그녀를 모델로 추천했다고 했다.사진을 보고 고은서는 웃었지만, 박지연이 온승준과 화해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톡 화면을 나가려던 고은서는 미확인 전화 두 통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신자는 유성준이었고, 시간은 어젯밤 집에 돌아온 직후였다.그제야 집에 도착하면 연락하겠다고 했던 약속이 떠올라 급히 유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유성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서야, 일어났어?”“미안해요, 성준 오빠. 어제 잠들어서 전화 오는 걸 못 들었어요.”“괜찮아, 예상했어.”유성준은 이어서 말했다.“어젯밤 와인이 꽤 독했지? 나도 약간 취했어.”그 말을 듣고 나서야 고은서는 술이 독해서 취한 거지,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유성준과의 통화를 마친 고은서는 아침을 먹으며 박지연과 톡으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여시은의 이름이 휴대폰 화면에 나타났다.“고은서 씨, 무슨 일이세요?”여시은의 목소리는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살짝 잠겨 있었다.“별건 아니에요. 어제 술 마시고 좀 취하셨나 해서요. 저도 어제 머리가 어지러워서 바로 잠들었거든요. 제 술이 약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네요.”“아마 어제 술이 좀 독했던 것 같아요.”고은서는 유성준도 취했었다는 이야기를 여시은에게 전했다.“성준 씨가 은서 씨를 집까지 데려다줬겠네요. 성준 씨는 괜찮아요?”여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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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업무상 횡령죄로 경찰 측 조사받으러 갔다고 하던데. GS그룹에서는 명예 훼손을 피면하기 위해 백유미 모든 직무를 정지시켰다 하더라고. 요즘 들어 백씨 가문에 구경할 거리가 많이 생기네. 백승엽 스캔들이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불구가 된 다리를 고치기도 전에 백유미한테 또 일이 생기다니.”민시후가 말하다가 고개를 돌려 고은서를 쳐다보았다.“고은서, 너 진짜 예상 밖으로 능력 좀 있다?”민시후는 고은서와 백유미 사이의 원한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모든 걸 계획한 사람이 고은서라는 것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런데 백유미가 경찰 측 조사받으러 갔다는 건 나도 모르고 있었어.”그녀의 말을 민시후는 이내 콧방귀를 뀌면서 대답했다.“딱 봐도 알리잖아. 곽승재 그 개자식이 네 환심을 사려고 백유미를 처리하려는 거겠지.”고은서는 곽승재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민시후를 쏘아보았다.곽승재가 그녀와 재혼하려고 애를 쓰는 건 사실이지만 백유미가 했던 일을 그저 눈 감고 넘어가 준 것도 사실이었다.그가 갑자기 백유미를 처리하려는데는 꼭 고은서랑 민시후가 모르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그만 생각해. 무슨 이유든 모든 게 다 네가 소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잖아. 그런데 나 며칠 동안이나 회사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내가 뭐하러 갔는지 궁금하지도 않아?”민시후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민 도련님이 어디에서 뭘 하든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너 진짜 냉정하다.”민시후는 더는 뜸을 들이지 않고 그가 며칠 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은 원인을 이실직고했다.“해성에 있는 동물원 하나를 매수했거든. 수속도 거의 다 끝나가고 서운 판다 기지에 연락해서 네가 이름 지어준 아기 판다랑 엄마 판다를 함께 데려오면 돼. 때가 되면 부를게. 같이 수속하러 가면 돼.”고은서는 순간 어안이벙벙해졌다.‘그냥 장난치면서 한 말이 아니었어? 진심이었단 말이야?’“내가 말로만 하는 줄 알았어? 아기 판다한테 이름 지어준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동물원을 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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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경찰서 접견실.곽승재는 차가운 눈빛으로 백유미를 바라보며 물었다.“날 만나겠다고 한 이유가 뭐야?”“내가 조사받으러 왔는데 GS그룹 대표인 널 불러서 증언해달라고 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백유미는 살면서 처음으로 그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왜 날 업무 횡령죄로 신고한 건데? 난 서인수가 한 짓에 참여한 적이 없어. 그저 회사 업무 때문에 몇 번 연락한 것뿐이야. 판주 투자은행이 명운 프로젝트 때문에 손해를 본 건 사실이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내가 서인수를 도와 일 처리를 한 것도 서인수한테 속아서 그런 거라고. 난 서인수가 진짜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틀린 판단을 내렸을 뿐이야!”“그럼 사실대로 경찰한테 말하면 되잖아.”곽승재가 덤덤하게 말했다.백유미는 헛웃음을 치면서 말을 이어갔다.“승재야, 아무리 내가 책임이 있다고 해도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갑자기 내 죄를 묻는다는 게 맞다고 생각해? 넌 지금 다른 이유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곽승재는 부정하지 않았다.“또 무슨 일을 나한테 덮어씌우려는 거야? 우리 아빠가 고은서한테 당한 것도 모자라 이젠 너까지 우리 부녀를 망가뜨리려고 해?”“네가 했던 일들과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곽승재는 억울해하는 백유미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서를 납치하게끔 서인수를 교사한 죄. 대체 왜 그런 걸까? 네가 말한 모순만 일으키고 고은서를 해치려 한 적은 절대 없다는 게 바로 이거야?”백유미는 순간 흠칫하더니 이내 진정하고 부정했다.“지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난 서인수 대신 일 처리를 해준 것 빼고는 서인수랑 따로 연락한 적이 없어. 서인수가 곧 판결받게 된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어. 죄명도 꽤 크다며? 하지만 도아름 씨랑 은서 씨가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날 일부러 모함하면서 죄책감을 덜려 하거든 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이런 억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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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동물원을 ZY 그룹 새로운 투자 프로젝트로 만드는 것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더라고. 내가 조사해봤는데 동물원 규모가 꽤 커. 새로운 장비 추가하고 또 홍보를 제대로 하면 지금 수입 2배 정도는 얼마든지 벌어들일 수 있어.”“널 좋아한다고 준 선물을 갑자기 투자 프로젝트로 만든다고?”박지연이 물었다.“그럼 어떡해? 난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그 선물을 받는다는 것도 이상하잖아.”고은서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틀린 말도 아니지.”박지연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거절하니까 민시후는 어떤 반응이었어? 엄청 실망해 할 것 같은데.”방금전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선물을 받아달라고 하는 민시후를 고은서가 단호하게 밀어내자마자 그는 약간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냥 평범한 사업 파트너로 생각한다고 명확하게 말했어. 실망하든 말든 내가 알 바가 아니잖아.”“너 요즘 남자운 좋은가 봐? 전남편 곽승재랑 널 오랫동안 좋아하면서 널 위해 MQ로 들어간 유성준, 그리고 이젠 민시후까지 널 좋아한다고 하는데 넌 누굴 고를 거야?”박지연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다 싫은데. 난 내 사업을 선택할 거야.”고은서는 고민하는 척하더니 아주 단호하게 다 거절해버렸다.“재미없게 왜 그래. 사업한다고 연애를 못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럼 어제 곽승재랑 왜 그렇게 다정하게 서 있었던 거야? 다시 시작할 생각인 거야?”고은서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박지연을 쏘아보며 답했다.“아니. 그저 사고였을 뿐이야.”“더 자세히 말해 봐봐. 무슨 사고였는데 그렇게 다정하게 가까이 서 있었던 거야?”“미안하지만 거절할게요.”두 사람이 한창 수다 떨고 있을 때 고은서의 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곽승재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박지연의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 아래 고은서는 망설임 없이 폰을 꺼버렸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한테서 어제저녁 더는 자신을 밀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냐고 문자가 왔다.전화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을 때 고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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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곽승재는 원망과 결연함으로 가득찬 표정을 하고 있는 고은서를 보면서 말했다.“은서야, 네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내가 도와줄게. 나한테 보상할 기회를 줘.”‘보상?’고은서는 속으로 보상이라는 두 글자를 곱씹으면서 순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생에 백유미가 한 짓을 무시하며 그녀의 편을 들어준 죄, 그리고 이번 생에 고은서를 의심하면서 아이까지 잃게 한 죄.그가 그녀에게 입한 상처는 보상이라는 한 마디로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게다가 그녀는 처음부터 그의 보상을 바란 적이 없었다.“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지나간 상처가 보상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야. 나한테 있어 제일 큰 보상은 당신이 나랑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는 고은서를 보면서 곽승재는 그녀가 일부러 자신의 화를 돋우면서 자신을 쫓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녀의 속셈을 알아차린 곽승재는 화를 내지 않았다.고은서가 그를 무시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곽승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은서야,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올라가서 쉬어. 난 이만 돌아갈게.”그는 디저트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는 운전석에 올랐다.고은서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화내면서 다신 날 찾아오지 않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왜 저렇게 담담해 보이는 거야.’...곽승재가 육현석을 찾아갔을 때 그는 열심히 배구시합 해설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그저 간단한 친선 경기일 뿐인데 이렇게 신중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어? 누가 보면 네가 국제대회라도 나가는 줄 알겠어.”곽승재가 덤덤하게 말했다.“친선 경기가 어때서! 나한테는 모든 경기가 다 최선을 다할 만큼 엄청 중요하 거든.”육현석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반박했다.“지연 씨가 참가하니까 창피당하는 걸 피면하기 위해 그러는 거잖아.”곽승재가 육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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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곽승재의 경고하는 듯한 차가운 눈빛에도 육현석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그만큼 형한테 실망하고 상처받았으니까 그런 끔찍한 꿈을 꾼 거겠지.”곽승재의 눈빛 속의 한기가 순간 사그라들었다.다른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보상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악몽만큼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육현석은 곽승재가 자신의 말을 듣고 약간 속상해하는 것 같아 보이자 조심스레 그를 위안했다.“그래도 형수님이 형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잖아. 행동으로 형수님의 생각을 바꾸면 되지. 악몽 속에서 있었던 일이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믿게 만들면 되잖아. 그럼 형수님도 형을 다시 받아들이려고 할 거야.”육현석은 또 요즘 그가 했던 일들에 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백씨 가문을 도와주지 않고 백유미 직무를 정지시킨 것부터 엄청 좋은 스타트야. 형수님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신분을 막론하고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하면 돼.”...며칠 후.제인 제약에서 반나절 동안 미팅을 한 고은서과 송민아는 ZY 그룹으로 돌아가자마자 또 부문 직원들과 함께 짧은 미팅 하나를 했다.송민아는 점차 자신만의 업무 템포를 찾아가고 있었고 비서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날이 갈수록 더 노련해졌다.미팅은 퇴근이 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고은서가 직원들과 함께 수다 떨면서 회사 문을 나설 때 갑자기 익숙한 사람 한 명이 회사 문밖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민시후였다.그는 흰색 정장에 은색 넥타이를 하고 손에는 아주 큰 장미꽃다발을 들고 회사 문 앞에 서 있었다.고은서는 그를 보자마자 순간 불안감에 휩싸였다.아니나 다를까, 민시후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면서 꽃다발을 내밀었다.“고은서, 선물이야!”직원들의 와 하는 소리와 함께 고은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민시후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어제 분명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절대 사귈 리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건만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회사에 들어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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